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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디지털 경험</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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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탈중앙화 거버넌스 사례: 시빌 레지스트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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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gemong]]></dc:creator>
		<pubDate>Mon, 14 May 2018 15:51:56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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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탈중앙화된 자율 네트워크는 스스로 조직하고 지속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이다. 이더리움 기반의 퀄러티 저널리즘 플랫폼을 꾀하고 있는 시빌(Civil) 프로젝트는 토큰 선별 레지스트리(Token-Curated Registries)라는 알고리즘을 채용한 시빌 레지스트리(Civil Registry)를 중심 거버넌스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 참여 3심 재판 제도 같은 것인데, 높은 품질의 뉴스룸 목록을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다. 다만, 참여 동기 부여가 충분할 것인가, 권력이 집중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도전 자체의 가치가 매우 높으며, 시행착오를 거치면 분명 훌륭한 거버넌스의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탈중앙화된 자율 네트워크는 스스로 조직하고 지속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이다. 이더리움 기반의 퀄러티 저널리즘 플랫폼을 꾀하고 있는 시빌(Civil) 프로젝트는 토큰 선별 레지스트리(Token-Curated Registries)라는 알고리즘을 채용한 시빌 레지스트리(Civil Registry)를 중심 거버넌스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 참여 3심 재판 제도 같은 것인데, 높은 품질의 뉴스룸 목록을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다. 다만, 참여 동기 부여가 충분할 것인가, 권력이 집중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도전 자체의 가치가 매우 높으며, 시행착오를 거치면 분명 훌륭한 거버넌스의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em></p>
<p><span id="more-3283"></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26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269"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84"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515/civil_registry/attachment/804113836_9afd5d0c35_z/"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jpg" data-orig-size="640,480"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804113836_9afd5d0c35_z"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480x360.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jp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284"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jpg" alt="" width="640" height="480"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jpg 640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804113836_9afd5d0c35_z-480x360.jpg 480w" sizes="(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3269" class="wp-caption-text"><em>New York Times Newsroom</em>. Photo by <a href="https://www.flickr.com/photos/cheesebikini/804113836/in/photolist-2e4i2E-2e4i4q-2e4i3w-6BRp6i-2e3N4W-2e4i35">Sean Savage</a> @Flickr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cc</a>)</figcaption></figure>
<p style="text-align: center;">・      ・      ・</p>
<p><b>탈중앙화 미디어 플랫폼의 도전</b></p>
<p><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80309/another-nakamoto-breakthrough/">암호화폐는 새로운 플랫폼 기술로서 중요하다</a>.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서버-클라이언트 개념 체계를 뿌리째 흔들 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기술은 완성이 아니라, 여전히 돌파구가 필요한 미완성이다.</p>
<p>그 미완의 돌파구 중 하나가 자율 거버넌스이다. 즉, 탈중앙화 자율 네트워크는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보상에 대해 기대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는 일반 소비자 중심 네트워크가 아니라, 본격적인 비즈니스 대상의 네트워크라면, 이 자율 거버넌스를 성공시키는 것이 네트워크 생명과 직결될 것이다.</p>
<p>예를 들면, 고품질 콘텐트의 유통을 목적으로 하는 탈중앙화 미디어 플랫폼에서 본격적인 자본과 자원을 가진 콘텐트 사업자가 고비용의 고품질 콘텐트로 사업을 한다고 가정하자. 중앙 통제 회사가 없는 자율 거버넌스 하에서, 자칫 고비용 고품질 사업자에게 불공정하고 극복할 수 없는 결정들이 내려진다면, 고품질 콘텐트 사업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그 네트워크 또한 자멸할 것이다.</p>
<p>사실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라는 것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 원인이 구글, 페이스북의 메가 플랫폼 횡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메가 플랫폼을 해체하고 탈중앙화된 자율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정한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돌아가게 할 자율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전의 상황과 달라질 것이 없다.</p>
<p><b>탈중앙화 퀄러티 저널리즘 플랫폼: 시빌(CIVIL)</b></p>
<p>그런 취지로 출발한 탈중앙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소개하려는 &#8216;<a href="https://joincivil.com/">시빌(CIVIL)</a>&#8216;이다. 시빌은 스스로 지속 가능한 퀄러티 저널리즘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으며, 이더리움 기반(ERC-20 기반)의 암호화폐 CVL을 기반으로 한다.</p>
<p>그러나 비트코인의 원래 목적이었던 전자 화폐의 역할도 완전하지 않은 시점에, 미디어 플랫폼을 탈중앙화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정말 대단한 도전이다. 어떤 미디어 전문가는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같은 기술에 대한 미디어 산업의 큰 기대를 판타지라 평가하며, 역할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원래 기술은 판타지를 바탕으로 진화한다. 문제는 판타지와 현실의 통로를 뚫어줄 돌파구가 필요할 뿐이다. 초기 기술이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건 당연하다.</p>
<blockquote>
<p style="text-align: center;">미래에 관한 유용한 아이디어는 어떤 것이든<br />
분명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 짐 데이터<br />
Any useful idea about the Futures<br />
should appear to be ridiculous. — Jim Dator</p>
</blockquote>
<p>그나마 성공적인 프로젝트인 스팀잇(Steemit)을 보자. 일반인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스팀잇의 복잡한 경제 구조는, 일부 스타트업 펀딩 생태계나 금융 공학에 밝은 전문가들이 천재적 설계라며 침이 마르게 칭송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이 과연 &#8220;어떤 문제&#8221;를 해결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현재 당장 가격 상승으로 눈에 보이는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 복잡한 경제 구조 설계의 결과물인가? 이것은 정말로 지속 가능한가?).</p>
<p>그보다, 스팀잇에는 지나친 부의 집중, 탈중앙화 가치가 퇴색된  합의 구조, 일부 집중된 콘텐트 관리 구조의 불안정성 등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치 비트코인처럼 삐거덕거리며) 돌아간다. 그래서 손가락질이 아니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보아야 한다.</p>
<p>그나마 잘 돌아간다는 스팀잇도 문제가 많은데, 시빌 프로젝트는 아직 서비스가 시장에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a href="https://blog.joincivil.com/the-civil-white-paper-3e6c6f72dd9e">백서</a>도 지난주(정확히는 2018년 5월 11일)에야 겨우 발간된 태아 수준이다. 이더리움 기반 토큰을 사용한다 하며, 저작 출처 및 텍스트를 블록체인에 저장한다는 간략한 설명만 있지, 정확히 어떤 기술적 프로세스와 구조를 가졌는지도 불분명하다.</p>
<p>게다가 시빌 프로젝트가 설명하는 플랫폼의 궁극적 모양은 트위터 설립자 중 하나인 에번 윌리엄스(Ev Williams)가 이끄는 &#8216;<a href="https://medium.com/">미디엄(Medium)</a>&#8216;과 거의 유사해 보인다. 시빌의 &#8216;뉴스룸&#8217; 구조는 미디엄의 발행 유통 구조인 &#8216;퍼블리케이션&#8217;과 비슷하며, 광고를 철저히 배제한 사용자 구독 수익 모델도 같다.</p>
<p>시빌의 차별점은 물론 미디엄에는 없는 &#8216;탈중앙화&#8217;에 있다. 미디엄은 자동화된 로직에 따라 콘텐트를 선별한다고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서비스의 품질 책임은 회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역으로 말하면, 미디엄이 판단한, 또는 미디엄이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넣는 이해관계자(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의 의도에 의한, &#8220;좋은&#8221; 콘텐트 선별 과정은 중앙 통제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p>
<p>반면, 시빌은 중앙화된 통제 조직을 최소화하고,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집단적으로 고품질을 유지하는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버넌스를 도모한다. 그 핵심에 있는 개념이 바로 &#8216;시빌 레지스트리(Civil Registry)&#8217;이다.</p>
<p><b>퀄러티 뉴스룸 선별 프로세스: 시빌 레지스트리(CIVIL Registry)</b></p>
<p>시빌의 목표는 분명하다. 광고 없이 유료 구독 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퀄러티 저널리즘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 퀄러티 저널리즘이냐는 원론적 질문은 있을 수 있다. 시빌이 먼저 집중하는 분야는 지역, 국제, 정책, 탐사 저널리즘이다. 이 분야의 사업성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있으나 일단은 논외로 하자)</p>
<p>시빌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일 과제를 우수한 저널리스트 확보라고 본 것 같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미디엄의 퍼블리케이션(예를 들어 &#8216;<a href="https://hackernoon.com/">해커 눈(Hacker Noon)</a>&#8216;) 개념과 유사하게, 시빌은 일종의 신문/잡지 브랜드인 &#8216;뉴스룸&#8217;이라는 발행 단위를 가진다. 시빌에서 이 뉴스룸을 열고 싶은 저널리스트는 시빌의 독특한 신청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빌 레지스트리이다.</p>
<p>시빌 레지스트리의 원리는 &#8216;<a href="https://medium.com/@ilovebagels/token-curated-registries-1-0-61a232f8dac7">토큰 선별 레지스트리(Token-Curated Registries)</a>&#8216;라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다. 이 알고리즘은 이더리움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투자 업체로 유명한 컨센시스(Consensys)의 리드 개발자인 마이크 골든(Mike Goldin)이 소개한 것이다(참고로 컨센시스는 시빌에 5백만 달러를 투자했다).</p>
<p>이 알고리즘은 한마디로 사용자들이 원하는 좋은 목록(화이트리스트)을 만드는 것이다. 목록에 등재될 후보를 반대하거나 기존 등록자를 탄핵하는 절차를 통해 목록의 품질을 관리한다. 목록에 등록을 원하는 사람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모두 자신의 토큰을 걸고 진행을 해야 하며, 판결은 커뮤니티의 투표 결과에 따르고, 최종적으로 대결의 패자가 건 토큰을 승자가 나눠 갖는다는 것이 기본 원리이다.</p>
<p>이제 시빌 레지스트리의 구조를 살펴보자.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이 프로세스는 3심 재판 제도와 유사한 3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즉,</p>
<ol>
<li>신청(APPLY) 된(또는 이미 등재된) 뉴스룸에 대한 이의 제기(CHALLENGE) 및 토큰 보유자의 투표(VOTE) 판결(1심),</li>
<li>1차 결과에 대한 반대 탄원(REQUEST APPEAL) 및 시빌 위원회의 탄원 수용(GRANT APPEAL) 여부 판결(2심),</li>
<li>위원회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CHALLENGE APPEAL) 및 토큰 보유자의 거부 투표(VOTE TO VETO) 판결(3심)의 순서로 진행된다.</li>
</ol>
<p>(용어를 최대한 의역을 했기 때문에 혹 오해될까 해서 괄호 안에 대문자로 원문의 표현을 덧붙였다. 자세한 내용 확인을 위해서는 <a href="https://blog.joincivil.com/the-civil-white-paper-3e6c6f72dd9e">백서</a>를 참고하라.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 말단에 원문의 순서도를 한글로 변환하여 덧붙였으니, 필요하면 아래 설명과 대조하여 참고하라)</p>
<p>표결의 판단 기준은 기본적으로 <a href="https://blog.joincivil.com/the-civil-constitution-beta-64460a181e08">시빌 헌법(Civil Constitution)</a>에 규정한 시빌의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시빌의 목적은 무엇보다 자유, 공명,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의 서비스에 충실하고, 외부 간섭 없이 저널리즘이 이 임무를 지속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자율 프로토콜 구축을 통해 완수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시빌의 핵심 가치는 저널리즘 생산 수단에 공정하고 평등한 접근과 윤리적 저널리즘이다. 사실 구체적인 판단은 이의 제기를 하는 사람의 주관이 될 것이다. 다만, 다수의 투표로 결정되므로, 주관은 정규화될 것이다.</p>
<p>이 프로세스의 결과물은 결국 시빌에서 콘텐트 발행을 할 수 있도록 승인된 퀄러티 뉴스룸 목록이며, 이들 뉴스룸에서 발행하는 글은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콘텐트일 것이라는 가정이다.</p>
<p>그런데 기본적으로 <em>이 프로세스의 참여자는 시빌의 자체 토큰인 CVL을 보유한 사람으로 한정</em>된다. 이 참여자들은 일반 독자하고는 구별되는데, 왜냐하면 일반 독자들은 CVL을 보유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일반 독자는 신용카드를 이용해 법정 화폐 결재가 가능하며, CVL도 물론 가능하지만 ETH로도 결재할 수 있다. 시빌에선 일반 독자와 네트워크 참여자를 구분하는 &#8216;수선(Waterline)&#8217;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즉, 수면 위에선 일반 독자들이 복잡한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에 관련된 내용을 전혀 몰라도 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수면 밑에선 (마치 백조의 물갈퀴 질처럼) 토큰 보유자 및 뉴스제작자들이 바쁘게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것이다.</p>
<p>제1심부터 살펴보자. 제1심은 <em>뉴스룸 신청(APPLY)에 대한 이의 제기(CHALLENGE) 절차</em>이다. 뉴스룸이 등재 신청을 하려면 일정량의 CVL 토큰(이 금액을 CVLx라 하자)을 예치해야 하고, 일정 기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지 대기해야 한다. 이 기간에 이의 제기자가 없으면 문제없이 자동 등재된다. 이의 제기자는 신청자의 예치금에 상응하는 CVLx를 걸어야 한다. 이의 제기가 되면 이제 전체 CVL 토큰 보유자를 대상으로 표결에 들어간다. 50% 이상 과반이 이의 제기에 찬성하면, 뉴스룸 신청은 기각된다. 새롭게 신청하는 뉴스룸이 아닌, 기존 등록된 뉴스룸이라도 잘못하면(즉, 시빌 헌장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 이의 제기를 당할 수 있다.</p>
<p>결과에 따라 건 토큰을 분배한다. 신청자든 이의 제기자든 승자가 자기가 건 CVLx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상대 CVLx의 일정 비율(DISPx라 하자)을 가져간다. 상대 CVLx의 나머지 비율(1-DISPx)은 승리 쪽 투표자들이 나눠 가진다. 이는 2심, 3심을 거칠 경우라도, 그 최종 결과에 따른다.</p>
<p>제2심은 1심 <em>이의 제기(CHALLENGE) 결과를 번복하기 위한 탄원(APPEAL) 절차</em>이다. 이를 위해 탄원 요청자는 일정량의 CVL 토큰(이는 애초의 CVLx와는 다른 CVLy가 될 수 있다)을 예치해야 한다. 이번엔 이 탄원의 승인을 결정하는 주체는, 시빌 헌법의 목적과 가치를 지지하고 변호하기 위해 설립되는 비영리 시빌 재단(Civil Foundation)이 구성하는 시빌 위원회(Civil Council)이다. 이 위원회에서 탄원을 승인(GRANT APPEAL)하면, 1심 결과는 번복되고, 예치금 CVLy은 탄원 요청자에게 되돌려준다. 만약 탄원이 거부되면, 1심 결과는 유지되고, CVLy는 애초 이의 제기자 및 지지자들에게 분배된다.</p>
<p>제3심은 2심 <em>탄원이 승인되어 애초의 이의 제기가 번복된 것을 되돌리려는 탄원 이의 제기(CHALLENGE APPEAL) 절차</em>이다. 탄원 이의 제기자는 탄원 요청자가 예치한 CVLy와 같은 양의 토큰을 걸어야 한다. 탄원 이의 제기가 개시되면, 전체 토큰 보유자는 탄원에 대한 거부 투표(VOTE TO VETO)에 돌입한다. 2심에서 승인된 탄원이 거부되려면, 이번엔 2/3 이상의 절대다수가 찬성해야 한다. 거부 투표가 성공하면, 탄원 이의 제기자는 자신의 CVLy를 회수함과 동시에 탄원 요청자가 걸었던 CVLy의 일정 비율(DISPy)을 가져가고, CVLy의 나머지 비율(1-DISPy)은 거부 찬성을 한 투표자에게 분배된다. 거부 투표가 실패하면, 토큰 분배는 거꾸로 원래 탄원자 및 그 지지자에게 분배된다.</p>
<p><b>문제점 </b></p>
<p>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집단적으로 퀄러티 뉴스룸을 필터링한다는 의미에서 시빌 레지스트리가 제대로 동작한다면 이는 앞으로 다양한 경우에 사용될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자율 거버넌스 도구가 될 수 있다. 누구의 편향된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좋은 목록, 즉 고품질의 화이트리스트가 자율 관리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p>
<p>하지만 첫 번째 문제점은 과연 사람들이 돈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이의 제기나 탄원을 할까, 그리고 토큰 보유자들은 기꺼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할까 하는 점이다. 즉, 충분한 동기 부여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퀄러티 저널리즘을 만든다는 사명감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다. 이겼을 경우 상대방의 토큰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이 일상적으로 기대되는 수익이 아니라면, 예치금은 행동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는 수단 이상의 역할은 하기 힘들 것 같다.</p>
<p>더욱이 아무리 명분이 있는 투표라도 투표 참여율은 기대보다 한참 낮을 수 있다. 게다가 자기 돈을 걸고 투표를 해야 한다면 심리적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다수가 참여하지 않는 투표로 유지되는 품질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p>
<p>보상 가능한 예치금의 규모라든가, 보상 규칙 같은 부분에서 많은 변형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 게임적 요소를 넣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또한, 아직은 평판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이 부분을 고려한 동기 부여도 생각해 봄 직하다.</p>
<p>두 번째 우려되는 문제점은 탈중앙화의 가치가 손상될 일은 없을까 하는 점이다. 원조 비트코인을 비롯해 이후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탈중앙화는 성능, 효율성 등 현실적 구현 문제와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시빌의 경우도 시빌 위원회의 역할이 다소 우려스럽다. 이를 구성하는 주체인 시빌 재단은 아마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지만) 시빌을 구축하고 있는 영리 회사인 시빌 미디어 컴파니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될 것이다.</p>
<p>그런 재단이 구성하는 위원회도 아마 회사가 선별하는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시빌의 설명으로는 위원회는 언론 자유 변호사, 베테랑 저널리스트, 저널리즘 학자로 구성된다는 위원의 전문성 구색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런 엘리트주의는 함정이다. 실은 그런 언론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뉴스룸 이의 제기에 대한 탄원을 &#8216;결정&#8217;한다는 것은 제법 강력한 권력 집중이 될 수 있다.</p>
<p>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악하고 영향력 있는 언론 재벌이 뉴스룸을 신청했는데, 누군가 그들의 비도덕성을 문제 삼아 이의 제기를 해서 성공을 했다고 해보자. 당연히 언론 재벌은 누군가를 시켜 탄원하게 할 것이고, 언론 재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변호사, 저널리스트, 학자 등의 위원회는 그 탄원을 승인해 줄 것이다. 물론, 탄원 승인을 거부하는 마지막 3심이 남아 있지만, 그걸 통과하려면 과반이 아니라 훨씬 높은 2/3 이상의 절대다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p>
<p>생각해 보라. 그런 일이 벌어진 후에 결국 언론 재벌의 뉴스룸이 거부되었다 하더라도, 위원회와 시빌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도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위원 자격에 대한 진입 장벽도 없애고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운영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p>
<p><b>결론</b></p>
<p>거버넌스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스팀잇 처럼 대충 어느 정도의 부조리는 감수하면서 굴러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고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은 안되는 것 100가지를 나열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부정적 말만 쏟아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1가지로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시작해 보는 데 있다.</p>
<p>탈중앙화라는 가치를 지켜내면서, 참여자들의 동기 부여를 극대화하는,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지속하는 자율 거버넌스 네트워크의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판타지가 맞다. 우리는 그런 미래 이미지를 끊임없이 그려가며 발전해 왔다. 시빌 레지스트리 같은 시도는 앞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점 단단해질 것이다. 또는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의 힌트를 주고 소멸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후발 프로젝트들의 좋은 선례가 될 것은 분명할 것이다. 끝.</p>
<p>첨부: 시빌 레지스트리- 뉴스룸 등재 라이프사이클(원본은 <a href="https://blog.joincivil.com/the-civil-white-paper-3e6c6f72dd9e">백서</a> 참조)</p>
<p><a href="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jpg"><img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92"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515/civil_registry/attachment/civil_registry-2/"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jpg" data-orig-size="1600,4965"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1&quot;}" data-image-title="civil_registry"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206x640.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330x1024.jpg" class="aligncenter wp-image-3292 size-full"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jpg" alt="" width="1600" height="4965"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jpg 1600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206x640.jpg 206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768x2383.jpg 768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5/civil_registry-330x1024.jpg 330w" sizes="(max-width: 1600px) 100vw, 1600px" /></a></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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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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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gemong]]></dc:creator>
		<pubDate>Wed, 18 Apr 2018 07:42:12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category><![CDATA[Cryptocurrenc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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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암호화폐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향해 '행동'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율 거버넌스를 움직이게 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로, 게미피케이션 요소가 가미된 '내기' 형태의 투표 방법이 유효하게 동작할 수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암호화폐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향해 &#8216;행동&#8217;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율 거버넌스를 움직이게 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로, 게미피케이션 요소가 가미된 &#8216;내기&#8217; 형태의 투표 방법이 유효하게 동작할 수 있다.</em></p>
<p><span id="more-3278"></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26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269"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79"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418/motivaiton-mechanism-via-cryptocurrency/attachment/18961060922_8dcfcae1af_z/"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jpg" data-orig-size="640,427"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18961060922_8dcfcae1af_z"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480x320.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jp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279"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jpg" alt="" width="640" height="427"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jpg 640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4/18961060922_8dcfcae1af_z-480x320.jpg 480w" sizes="(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3269" class="wp-caption-text">Photo by <a href="https://www.flickr.com/photos/130132803@N07/18961060922/in/photolist-uTwoPu-bagHBK-KUD7o-bagDUi-9HouVP-8rccL-bvnfNm-ijPUsG-3irRmp-ihnDm5-oVbGxG-dTWBwr-ijQihP-g3M7nF-9EyNNH-bsri9K-9e6VpN-f5QsXB-hiyZAF-ijPF2c-bBLak9-bqG5eb-8Y2aSb-9sPAHo-dsNAgy-qWXRt-ijP97Q-ijQikp-ijPLpj-8eDrDb-bYnNKU-dErDZT-4NpVog-ijPUyo-a1KtT9-ijNXY2-8ErQy9-gACsY-DGYaMe-5YRvvk-7S4TxZ-nFe4ca-qtUyGT-s3aSMk-zuJyR1-25nBLBq-fGtgL4-dawY3P-ejoKPT-ijP9py">Nichole Burrows</a> @Flickr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cc</a>)</figcaption></figure>
<p style="text-align: center;">이 글은 더비체인에 기고한 글임. 기고글은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thebch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strong>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strong></p>
<p>암호화폐가 다양한 네트워크를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이유는, 더 많은 참여자를 네트워크에 끌어들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행동’하게 하는 동기 부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동기 부여 없이, 지속 가능한 동기 부여 방법이 있다면, 굳이 암호화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 같은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이 세계 최대의 집단적 백과사전 집필이라는 자원봉사로 동기 부여된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메가 플랫폼도 다른 방식의 동기 부여가 동작한다. 우수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다(사실은 자신의 프로필/행동 데이터와 희소한 시간/관심 자원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에 무감각할 뿐이지만).</p>
<p>암호화폐를 동기 부여로 동작시키려면, 자원봉사나 무료 서비스/콘텐트 제공과는 다른 멘탈 모델이 필요하다. 즉, 바람직한 일을 한다는 명분, 그리고 보상을 받는다는 이득이 공존해야 한다. 명분만으로는 지속력을 지탱하기 힘들 수 있다. 언제나 위키피디아는 독지가의 기부를 절실히 독려할 뿐, 언제든 쇠퇴할 수 있다.</p>
<p>경제적 보상을 설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성 자체를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이익을 너무 좇다 보면, 원래 의도했던 목적과는 다른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전자 화폐 거래 데이터를 안전하게 블록에 생성하는 대가로 보상을 받고, 스팀잇의 작가와 추천인들은 좋은 글을 쓰고, 추천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채굴자의 집중화와 스팀잇 고래의 영향력 문제 등은 이런 이익 기반 보상 체계에 대한 문제를 드러낸다.</p>
<p>특히 자율 거버넌스를 암호화폐로 설계하려면, 최대한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방식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에서 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대명사인 투표 시스템일 것이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 등 투표로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p>
<p>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기’ 등 게미피케이션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암호화폐에서 유독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신의 토큰 얼마를 ‘내기’로 걸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p>
<p>그런 종류의 몇 가지 고려되고 있는 개념들을 살펴보자.</p>
<ul>
<li>퓨타키(Futarchy)</li>
</ul>
<p>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 로빈 핸슨(Robin Hanson) 교수가 이미 2000년에 처음 제창한 방식으로, ‘예측 시장’ 기법으로 미래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퓨타키가 괴상한 용어 같이 들리지만, 미래(future)와 정부(archy)의 합성어일 뿐이다. 원숭이와 애널리스트의 주식 투자 결과에 차이가 없더라는 자극적인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라도 미래 정책 방향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런데, ‘군중의 지혜’를 모으면 신기하게도 근사치로 잘 맞춘다는 것이다. 개별 예측은 터무니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커다란 단지 안을 꽉 채운 젤리빈의 숫자를 맞추는 실험) 이것을 거버넌스에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GDP를 증대하는 정책에 내기를 한 사람들은, 실제로 GDP가 증대된다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버넌스 로직은, 사람들의 지혜가 모인 정책, 즉, GDP를 증대할 것으로 확실히 예측되는 정책을 채택하면 된다.</p>
<ul>
<li>쉘링코인(SchellingCoin)</li>
</ul>
<p>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터린이 2014년에 제안한 방식이다(참 대단한 친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쉘링(Thomas Schelling)의 초점(focal point; 이름을 따라 ‘쉘링 포인트’라고도 한다) 개념을 도입한 것인데,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했을 것으로 기대하는 바에 대한 기대치의 합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선호에 기반하여 선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서로 선택했을 것으로 기대하는 최대한 객관적인 선택지로 의사 결정을 조정하는 것이다. 쉘링코인은, 참여자가 어떤 목표하는 값들을 제시하면, 그 중간값을 결과로 채택하고, 중간값에서 편차가 작을수록 보상을 더 가져가는 구조이다.</p>
<ul>
<li>이차방정식 투표(Quadratic Voting)</li>
</ul>
<p>이차방정식 투표는 2013년 시카고 대학(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글렌 웨일(Glen Weyl)이 제안한 투표를 사는 방식이다. 찬반 의사 결정을 하는 투표자가 구매할 투표수의 제곱 가격으로 투표를 사는 것이다. 이는 어떤 투표 결과가 개인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소수인 동성 결혼의 합법화 같은 사안), 1인 1표 방식이 가지는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면서도, 돈으로 너무 많은 투표를 사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절묘한 방식이다. (이차 방정식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치솟는 것을 상상해 보라)</p>
<ul>
<li>토큰 선별 목록(Token-Curated Registries)</li>
</ul>
<p>컨센시스(ConsenSys)의 개발자인 마이크 골딘(Mike Goldin)이 제안했다. 이는 고품질 목록을 원하는 소비자, 그리고 이 목록에 들어가길 원하는 제공자의 니즈를 조율한다. 예를 들어, 퀄러티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시빌(Civil) 프로젝트가 참여하는 저널리스트의 물관리를 위해 이 방법을 쓴다. 방법은 이렇다. 시빌에 뉴스룸을 개설하려는 저널리스트는 일정 금액의 토큰을 예치해야 한다. 만약 어떤 구성원이 그 저널리스트가 예를 들어 언론 윤리 강령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뉴스룸 개설을 반대한다면, 예치 금액과 동일한 토큰을 걸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의 토큰을 걸어 투표하고, 전체 토큰 수량에 따라 결과가 가결로 결정되면, 저널리스트의 예치금은 몰수되어 문제 제기자 및 그 지지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부결되면 그 반대가 된다.</p>
<ul>
<li>큐레이션 마켓(Curation Market)</li>
</ul>
<p>역시 컨센시스의 개발자이자, 음악 서비스인 우조 뮤직(Ujo Music)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이먼 드 라 루비어(Simon de la Rouviere)가 제안한 큐레이션 마켓은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우선 흥미로운 점은 토큰 발행 방법이다. 큐레이션 마켓의 토큰은 구매자에게 이더(ETH)를 받고 발행되며, 받은 이더는 공공 기금에 보관된다. 토큰은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가격이 선형 또는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즉, 초기 구매자일수록 싼 가격에 토큰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초기 투자자들은 토큰을 공공 기금에 팔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기금의 이더를 챙겨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토큰은 특정 주제에 대한 양질의 큐레이터에게 본딩(bonding)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여러 본딩 토큰의 양 만큼의 영향력으로 좋은 콘텐트 또는 제안 등을 추천할 수 있다(마치 스팀잇 스팀 파워처럼). 그 결과의 가치가 높다면, 토큰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서 주안점은 이런 것이다. 이차 시장(외부 거래소) 없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과 토큰 발행량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가치에 따라 자율 조정(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발행되고 팔고 나가면 소각)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해진 발행량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가격 변동성이 없고, 다만 큐레이션 품질 등 원하는 네트워크의 목적에 따라 가치가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다.</p>
<p>위에 소개한 방법들은, 투표라는 단순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 결과의 품질을 위해 노력할 때 보상이 더 클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에, ‘게임’적인 요소가 있다. 보상은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측 시장의 경우, 예측 정확도 이력이 높은 사용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평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사용자의 예측 정확도 점수를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이득 못지않은 동기 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p>
<p>이렇게 암호화폐가 주는 동기 부여는 네트워크의 목적에 잘 부합되도록 ‘노력’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실제로 잘 돌아갈지는 아직 모른다. 모두 지극히 초기 실험적이다. 한 가지 큰 우려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행위를 위해 토큰을 살까 하는 점이다. 그 네트워크의 가치를 원하는 사람은 살 것이다.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네트워크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된다. 실은 거의 모든 초기 인터넷 서비스 사업이 원래 가지고 있는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모일까?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 네트워크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암호화폐가 분명 동기 부여로 동작할 수 있을 것이다. 끝.</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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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또 다른 &#8216;나카모토&#8217; 돌파구를 기대한다</title>
		<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309/another-nakamoto-breakthrough/</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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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gemong]]></dc:creator>
		<pubDate>Fri, 09 Mar 2018 10:27:03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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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암호화폐는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을 향한 정보 기술의 궁극적 이상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 않고, 거대한 장벽에 다다랐다.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의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합의 가치 시스템' 설계의 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가 필요하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암호화폐는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을 향한 정보 기술의 궁극적 이상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 않고, 거대한 장벽에 다다랐다.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의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8216;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8217;와 &#8216;합의 가치 시스템&#8217; 설계의 또 다른 &#8216;나카모토&#8217; 돌파구가 필요하다.</em></p>
<p><span id="more-3266"></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26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269"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69"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309/another-nakamoto-breakthrough/attachment/9125510233_a3d94e1d9e_z/"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3/9125510233_a3d94e1d9e_z.jpg" data-orig-size="640,360"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9125510233_a3d94e1d9e_z"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Photo by Ian Burt @Flickr (cc)&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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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이 글은 테크M에 축약하여 기고한 컬럼의 원 글임. 기고글은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techm.kr/bbs/board.php?bo_table=article&amp;wr_id=4683">암호화폐가 중요한 플랫폼 기술인 이유</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strong>암호화폐 기술은 왜 플랫폼 기술로서 중대한가?</strong></p>
<p><em>암호화폐는 왜 플랫폼 기술로서 ‘중대’한가?</em> (‘중대&gt;&gt;중요’의 무게감이다) 누구나 암호화폐에서 전환적 기술로서의 잠재력을 보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람마다-개발자, 투자자, 사업가, 정책자, 일반인- 보는 관점이 조금씩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리고, 이 통제 불가능한 화폐 시스템을, 어떤 이는 궁극적 시장 자유주의의 메커니즘으로 보고, 정치적 반대쪽의 또 다른 이는 이상적 아나키스트 장치로 본다. 따라서 내가 플랫폼으로서의 암호화폐를 ‘중대&#8217;하게 생각하는 관점을 명확히 전달하려면, 내 배경과 관심사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그러니, 더 나은 이해를 위해 보잘것없는 내 얘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좀 양해해 달라. (공지: 이 글은 투자 정보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실명 소개는 최대한 배제했다)</p>
<p>나는 시쳇말로 대기업 ‘기획자’ 출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규 사업 개발이 주 업무였다. 내가 대기업에 속해 있을 시절, 신규 사업 개발 업무는 대개 내부의 직원으로 구성된 팀에서 시작했다. 어떤 때는 없는 시장을 그리는 맨땅에서 시작했다. 심지어 뭐든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오라는 지시도 받았었다. 그래서 보통 전략 업무가 병행됐다. 디자이너나 개발자 같은 인력은 보통 외주의 영역이었다. 말하자면 그런 기획팀은 순수한 기획자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나를 보고 기획자 출신이냐고 물을 때, 선뜻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요즘 흔히 말하는 웹/앱 서비스 기획자하고는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이력은 이동전화 회사의 엔지니어로 시작했지만, 십수 년 전부터 같은 회사의 신규 사업 발굴 업무로 전환하면서 지금까지 주로 IT/미디어 분야의 신규 플랫폼 사업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플랫폼&#8217; 개념의 기원은, 밀레니엄 초기 이동전화 회사에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을 만드는, 이동 전화 ‘네트워크&#8217; 사업에서 ‘플랫폼&#8217; 사업으로의 가치 사슬 전환 확대를 모색하는 신규 사업 발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들이 언제부터 플랫폼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는지 궁금하여 과거 보도자료를 검색해 봤다. KT는 2012년 이전 자료가 없어 확인이 불가하고, SKT를 보니 2001년에 처음 등장한다. 맞다, 대략 닷컴 거품이 난리를 치던 바로 그 무렵이다). 즉, 나는 어떤 특정 플랫폼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보다는, 조금 큰 그림에서 새로운(또는 세상에 없던) 플랫폼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일에 더 힘을 기울여왔다. 물론 나도 UX라는 단어가 생길 무렵부터 대규모 디자인 씽킹 프로젝트도 진행해 봤고, 시나리오나 기능 정의서도 수없이 그려봤지만, 다 요즘 말하는 여러 기획 방법론의 초창기 버전쯤 되고, 요즘 날고 기는 기획자에 비교하면 나 스스로 기획자 출신이라고 말하기가 좀 민망해진다. 말하자면 기획자들이 고공 낙하하여 새로운 전투지에 안착하여 전문 기획자 그룹으로 변모하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수송기에서 아래 지형을 살피고 있는 전략가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이고, 나름대로는 그런 나 자신을 ‘기술 사회 미래전략가(풀어쓰자면, 미래 기술 응용과 사회 작용 연구자)&#8217;라고 정의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암호화폐 기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우선 고려해 주길 바란다.</p>
<p>시야를 좀 더 확대해서 전투지를 조망하려면 수송기의 고도를 더 높이는 메타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내가 말하는 플랫폼의 뜻을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플랫폼은 다양한 목적의 서비스(생산자)와 다양한 목적의 사용자(소비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거래를 하는 장소(시장)이다. 원래 뜻 ‘승강장’을 떠올려보자. 플랫폼은 아마 어떤 형태로든 어느 시대에나 있었겠지만, 정보 시대의 플랫폼을 구별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디지털’이고, 따라서 이 ‘디지털’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나는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디지털’의 특성은 ‘개방성’이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를 특징짓는 위대한 두 발명품이라 생각한다. 컴퓨터는 대중에게 저렴하고 고품질의 생산과 소비의 도구를 제공하여 생산자의 문턱을 낮추고 확산시켰으며, 개개인의 소비 기회를 극대화했다. 또한,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일방적인 전달(생산→소비)이 아닌, 거대한 양방향(생산<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7.0.2/72x72/2194.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소비) 미디어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시대의 플랫폼은 이 폭발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용광로 같은 자유 시장이다. 우리는 비단 콘텐트 시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정보로 번역된다. 물건이 거래되고, 음식이 배달되고, 방을 빌려주고, 부품을 프린트하고, 자동차를 움직인다. 누구나가 자유롭게 정보를 생산하여 누구하고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된 시장이 열렸다. 거기에서 대중은 자유롭게 정보를 거래한다(그리고 돈을 번다). 이 벡터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em>권력이 분산되고 자유가 확산된다</em>. 이렇게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플랫폼’은 한없이 <em>개방된</em> 공간이(어야 한)다.</p>
<p>예를 들어 보자. 개방된 플랫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다. 아기 동영상부터 고품질 영화까지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생산자 누구나가 제한 없이 참여한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애플 앱스토어이다. 누구나 코딩만 할 수 있으면 앱을 등록할 수 있다. 애플 앱스토어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개발자에게 제한 없이 참여할 기회를 준다. 에어비앤비는 누구나 집에 남는 방이 있으면 사이트에 등록하고 전 세계로부터 손님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상업 숙박 시설에도 에어비앤비는 기회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플랫폼은 누구나 생산자로도 소비자로도 참여할 수 있는 평등의 장이고, 상호 소통의 장이다. 단순한 디지털 시스템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기존의 방송 플랫폼을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에 &#8216;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같은 거창한 이름을 마구 갖다 붙이는 것은 우리 시대 플랫폼의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한다. 우리가 정보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논할 때,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생산 도구를 대중화하고 소비 접근성을 극대화하면서, 생산과 소비 각각의 장벽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모든 것이 정보로 번역되는 거대한 세계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개방된 플랫폼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p>
<p>그러나 과연 그런가? 개방된 플랫폼은 우리에게 권력을 분산시켜 나눠 주고 더 많은 자유를 주었나? 컴퓨터는 개방된 플랫폼이다. 누구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누구에게나 복제되어 돌릴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도 거대한 개방된 플랫폼이다. 누구나 정보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공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방된 땅에서 권력은 여전히 집중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 좋게 그리고 머리 좋게 운영 체계 플랫폼을 독점했다. 곧이어 핵심 소프트웨어(오피스 제품들, 인터넷 브라우저 등) 시장을 장악했고, 경쟁 제품들은 사라졌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거인 플랫폼들은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뿌리를 내리고 사용자 트래픽을 빨아들이고 있다.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유망한 스타트업 서비스는 가장 선호하는 출구로서 앞다투어 거인의 한 뿌리가 되길 자처한다. 그럼 어떤가? 우리는 고품질 소프트웨어를 제공받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훌륭하면서도 대부분 무료다. 언제 어디서나 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세상에 공유할 수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넘치도록 널려있다. 기술이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그런 혜택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p>
<p>아니다. 보통 다양성이 없는 시장은 건전한 경쟁이 없는 죽은 시장으로 본다. 그래서 독과점법 등으로 규제를 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업들은 국경 없는 시장에 사업 영역 구분도 모호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규제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오히려 디지털 산업에서 독과점은 가장 우선시되는 사업 전략으로 칭송받는 분위기다. 지난 40년간 시장 자유주의가 절대 선처럼 떠받들어져 온 세상에서, 더욱이 현시대의 경제를 이끄는 디지털 산업에서 규제는 악일 뿐이다. 여기선 시장 선점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압도적 1등 전략이 기본 공식이다. 물론 언제든 새로운 스타트업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기존 거인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다 그렇게 컸다. 하지만 빅데이터가 점점 쌓이고 인공 지능 등의 알고리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용자의 행태를 분석해 최대한 자기 플랫폼에 묶어두는 힘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사용자들은 무료와 편리함의 이득을 얻기 위한 대가로 자신의 데이터를 구글과 페이스북에 기꺼이 헌납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 기계에 들어가 거인 플랫폼이 사용자의 트래픽을 극대화하도록 활용되고, 플랫폼은 더욱더 강력해진다. 거인을 위한 완벽하고 멋진 선순환이다.</p>
<p>그리고, 잠깐, 우리가 얻는 이득의 실체는 무엇인가?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흐르는 이 거대한 트래픽의 물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료+광고=관심 경제. 즉, 우리는 우리의 희소 자원인 ‘관심’을 판다. 우리가 얻는 것은? 재미. 그게 끝이다. 아니, 정보를 얻는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일부는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을 돌아가게 하는 건 그런 진지한 지식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최대한 확보하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는 과정(보통 우리는 이것을 마케팅이라 부른다)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부분 충격적인 뉴스 (제목), 눈요기, 엔터테인먼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것에 더 관심을 소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차곡차곡 플랫폼에 쌓이고, 그것을 알고리즘 기계에 넣어 돌리면,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전이 나온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던가. 우리는 그 공짜 서비스를 선이라고 여기고, 우리의 소중한 관심 자원의 가치, 우리가 헌납하는 데이터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여 내던지고 있다. 재미를 얻기 위해 소비한 희소한 관심 자원(=시간)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라. 게다가 우리가 이미 교과서로도 배웠듯이 사기업의 제일 목표는 이윤 극대화이지 절대 사회 공헌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100% 이윤 극대화에 사용된다. 보험회사는 알고리즘으로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고객을 찾아내 보험을 판매하고, 대부회사는 재정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독이 되는 고리 대출을 권하는 광고를 내보내도 이상할 것 없다. 그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불법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다.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듯이 그 정보가 권력 기관과 공유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는 감시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p>
<p>수백조 원에 달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사실 수십억의 사용자가 스스로 내던지는 그런 가치들로 채워져 있다. 사용자가 기업 가치의 핵심인데도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 말고는 사용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지분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런 정보 기술의 오용 또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캐시 오닐(Cathy O&#8217;Neil)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불평등을 프로그램하고 있는 <em>대량살상 수학 무기</em>라고 경고한다. 팀 오라일리(Tim O&#8217;Reilly)는ﾠ우리가 글로벌 엘리트의 손아귀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em>역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순간</em>에 있다고 진단한다.</p>
<p>우리는 디지털 생태계를 관통하고 있는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선구자들은 자유의 기치 아래 오픈 소스와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 배포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가치는 그런 자유 노력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이 깃발이 변색하였다. 그것은 바로, 정보가 무한히 복제되기 때문에 한계 비용이 제로이고 따라서 디지털 정보, 서비스, 소프트웨어, 콘텐트는 무료라는 관념 때문이다. 일찍이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디지털 경제가 무료 기반의 비즈니스로 돌아가는 새로운 시대에 돌입할 것이라 규정했다. 그는 이 경제에서는 돈이 아니라 <em>관심과 평판이 희소성 자원</em>이 되고, 돈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새로운 화폐가 되어 구글 같은 회사가 이 새로운 경제의 중앙은행 역할을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 부작용은?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하던 사람들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 눈알 관심 자원은 정보 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양과 별 상관이 없다. 평판은 때론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일 뿐, 그 열매를 따 먹는 것은 또 다른 무한 경쟁일 뿐이다. 우리는 좋은 정보를 올바르게 보상할 방법도, 좋은 정보를 생산할 동기부여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돈과 권력은 새로운 중앙은행에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선구자들이 개방의 가치로 내세웠던 ‘자유로운(free)’ 무엇이 ‘공짜의(gratis)’ 무엇으로 잘못 해석되었다. 이제는 공짜 서비스가 아니라, 진정한 가치가 참여자들에게 정당하게 배분되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절실히 필요하다.</p>
<p>생각해 보라. 권력의 분산과 자유의 확산은 분명 좋은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는 도구이다. 그런데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권력의 집중과 자유의 침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목을 조르고 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의 와중에도 앤더슨이 무료 기반의 관심과 평판 경제를 비즈니스의 미래라고 선언하고 있었을 때, 다른 한편에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암호학을 이용해 정부와 기업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자칭 &#8216;사이퍼펑크(cypherpunk)’-암호(cypher)와 사이버펑크(cyberpunk)를 합친 말- 집단이다.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위키리크스, 비트토런트 같은 단체와 서비스들이 그런 기조로 생겨났다. 그중 한 명인 (아직도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사람이 2008년 앤더슨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의 논문을 하나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개념의 피어-투-피어 전자 현금 시스템(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비트코인의 시작이었다.</p>
<p>처음엔 사이퍼펑크 집단 밖에서는 비트코인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디지털 화폐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고 언제나 실패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암호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의미를 대번 알아차렸고 칭송하기 시작했다. 대략 2011년경부터 언론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나도 당시 언제나처럼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기에, 컴퓨터를 돌려 돈을 캔다는 개념이 신기해서 내 PC에서 며칠 돌려보기도 했었다. 물론 한 푼도 벌지 못했고, 관심은 곧 식었다. 비트코인이라는 시스템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지만, 비트코인을 사용하여 마약 등을 거래하는 암시장인 실크로드 설립자가 체포되고, 당시 최대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가 해킹 등으로 파산 신청을 하는 등, 대중에게 비트코인이 알려지게 된 사건들은 하나 같이 다 부정적이었다. 주류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돌려서 나오는 디지털 화폐라니, 그것이 비즈니스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장난감&#8217;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p>
<p>비즈니스적인 의미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8217;이라는 기술을 이해하면서부터이다. 사람들이 이해한 블록체인은 불변의 분산 원장(또는 데이터베이스)이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라니, 정말 꿈의 기술처럼 들린다. 어떤 가치든 담을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그릇이 생긴 것처럼 들린다. 게다가 제3의 중개인이나 감독자가 필요 없으니 비용 절감도 된다. 그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중앙화된 플랫폼을 뒤엎을 수 있는 역사적 발명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기술의 가능성을 본 것도 바로 지점이다. 아까 말했지 않나. 우리는 권력이 집중되고 자유가 침해되는 무료 기반의 거대 플랫폼을 대체할 대안이 절실하다. 집중된 권력을 탈중앙화하고, 네트워크에 가치를 담아 거래할 수 있다니, 블록체인은 대안 플랫폼을 위한 완벽한 후보 기술로 보였다.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하고,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밀려 있던 IBM이나 인텔 같은 오래된 거인들도 반격의 호재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위 기업형 프라이빗 블록체인(또는 분산 원장)이라는 기술 정의가 시작되었다.</p>
<p>나도 플랫폼에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검토해 보기 위해 지난 몇 달간 수많은 자료를 뒤져보았다. 많은 저녁 소모임 행사에 참석해 귀동냥도 해보았다(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어 힘들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국제적 소모임이 일상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나의 이런 행적은 공교롭게도 또 다른 키워드의 트렌드와 그 궤적이 겹친다. 그 키워드는 바로 ‘암호화폐’였다.</p>
<figure id="attachment_327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275" style="width: 151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75"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80309/another-nakamoto-breakthrough/attachment/blockchain-cryptocurrency/"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8/03/blockchain-cryptocurrency.png" data-orig-size="1512,924"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blockchain-cryptocurrency"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그림 1.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검색 키워드에 대한 구글 트렌드 결과(2009.1-2018.1). 2013년 경 부터 두 키워드가 눈에 띄기 시작하며, 2015년~2016년에 ‘블록체인’ 키워드 검색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2017년 하반기부터는 ‘암호화폐’ 키워드가 역전하며 압도적으로 증가한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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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실은 2011년경부터 라이트코인 등 비트코인을 모방한 대안 코인들이 등장하면서, 암호화폐라는 용어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2017년부터이다. 세계 컴퓨터를 자처하는 스마트 계약이 강화된 이더리움의 등장으로, 수백 개의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블록체인보다는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구글 트렌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나는 이것을 또 다른 관점의 변화로 해석하는데, 바로 블록체인 기술의 중요성보다는 암호화폐라는 경제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네트워크 생태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카모토 블록체인이라는 장치는 네트워크의 성장과 함께 가치가 올라가는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가 필수적인 동인이 되어야 한다. 이 트릭이 바로 나카모토가 발명한 비트코인의 핵심 요소이다. 비트코인 외의 다양한 암호화폐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묘수를 풀어내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으며,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8217;이라는 용어로 이 어려움을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더리움을 이끄는 <a href="http://vitalik.ca/files/intro_cryptoeconomics.pdf">비탈릭 부터린의 정의</a>에 의하면, 암호경제학이란 특정 희망 속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과거에 발생한 메시지에 대한 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암호학을 사용하고, 미래에 확보하려 하는 희망 속성을 장려하기 위해 시스템 내부에 정의된 경제적 인센티브를 사용한다.</p>
<p>사실 플랫폼의 분산화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냅스터, 비트토런트가 밟아온 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료 기반으로 참여자의 경제적 동인이 거의 무시되거나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대를 바꿀 힘은 없었던 것이다(아, 음악산업을 기울게 하긴 했다). 사용자가 네트워크에서 가치 창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강력한 분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이 아니라 암호화폐가 이 기술의 핵심이다. (이미 블록체인 형태와 무관한 암호화폐도 등장했다)</p>
<p><strong>암호화폐의 어떤 문제에 집중해야 하나?</strong></p>
<p>그렇다면 암호화폐는 대안 플랫폼의 후보 기술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가? 우선 기업형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존 기업 시스템의 일부를 대체하는 기술로 적용될 수는 있어도 대안 플랫폼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당초 블록체인의 거대한 잠재력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이미 거품이 빠졌다. 아니, 여기에선 블록체인이라는 게 아예 필요조차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대표적인 기업형 블록체인 컨소시엄의 CTO는ﾠ <em>&#8220;우리는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8221;</em>고 <a href="http://www.r3cev.com/blog/2016/4/4/introducing-r3-corda-a-distributed-ledger-designed-for-financial-services">솔직한 고뇌의 결론</a>을 내린다. 폐쇄적 네트워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없다는 데서 이미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시대를 바꿀 솔루션, 정부 유행어로 하면 4차산업혁명의 솔루션은 분명 아니다.</p>
<p>그렇다면 암호화폐 본진(소위 퍼블릭 블록체인)의 사정은 어떠한가. 비트코인에 내포된 나카모토의 트릭은 말하자면 생명체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같은 것이다. 즉, 나카모토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환경 변화나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율 조절 장치를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채굴자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거래 처리 용량이 너무 적으며, 거래 수수료는 너무 높아서, 현실적인 응용은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비트코인은 붕괴하든, 고사하든,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 솔루션을 제시하며 수많은 대안 암호화폐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한 보장을 못 한다. 그런데도 각자의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 투자(다른 말로 &#8216;투기&#8217;)에 사활을 건 프로젝트들이 어마어마한 ICO 자금을 끌어들이며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와 개미와 사기꾼들이 모여들고, 시장은 과열되고 가격은 요동친다. 정부, 아니 실은 전 세계가 당황했다. 아니, 4차산업혁명으로 써먹을 좋은 기술 아이템인 줄 알았더니, 허점투성이에 투기 도구였다니!</p>
<p>이쯤에서 열을 가라앉히고 정리를 좀 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em>권력을 분산하고 자유를 확산하는 대안 플랫폼</em>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암호화폐에 거는 기대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암호화폐는 기존 플랫폼의 인간(또는 자본)에 의한 거버넌스(또는 의사 결정 방식)를 자동화된 코드와 분산된 네트워크, 즉, <em>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em>를 통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둘째, 암호화폐의 <em>합의 가치 시스템</em>은, 사용자들이 생산자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인으로서, 정당한 가치 생성과 분배, 그리고 자유로운 거래의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확장성, 수수료, 프라이버시, 상호운용성, 편의성 등), 또는 사회적으로(투기성, 에너지 낭비, 불평등한 부의 배분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지속적 기술 개발과 사회적 조정과 합의를 통해, 그리고 사용처의 목적에 맞게, 이런 개별 문제들은 해결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는 대중에게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네트워크가 지속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암호화폐의 성배이다. 이를 위한 하나의 돌파 실험(비트코인)의 시작이 수많은 복제와 변이로 이어져 마치 캄브리아기의 생명 대폭발과도 같이 진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암호화폐는 커다란 장벽에 도달했고 또 다른 획기적 돌파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생명이 그러하였고, 인공지능 기술이 그러하였듯이, 곧 빙하기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메커니즘도 인공지능의 메커니즘도 그냥 사라져 버리기엔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끈질기게 버텨냈고 새롭게 태어났다. 암호화폐의 메커니즘도 정말 매력적이기에 빙하기가 와도 동굴 안쪽에서 열심히 버텨낼 동기는 충분하다. 새롭게 태어날 준비만 하면 된다. 지금은 우리가 그 얘기에 집중할 때이다.</p>
<p>정리하자면, 나는 현재의 불완전한 암호화폐가 주는 교훈에서 대안 플랫폼의 두 가지 핵심 필수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p>
<ol>
<li>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li>
<li>합의된 가치 시스템</li>
</ol>
<p>&#8220;무슨 소리냐, 확장성 등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반박할 수 있다. 당면 문제 맞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기술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위의 두 가지 네트워크 ‘항상성’ 메커니즘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저쪽 절벽(이상 사회)으로 가는 외줄 타기라고 생각해 보자. 말하자면 손에 쥐어진 장대가 알고리즘 거버넌스이고, 앞에 놓인 외줄이 가치 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바로 그 외줄 타기 중이고, 끝까지 균형을 잡아 건너가야 한다. 속도, 바람, 신발, 옷…. 변수는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대(알고리즘 거버넌스)와 외줄(가치 시스템)이다.</p>
<p>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는 권력 집중 문제이다. 채굴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나카모토도 맨 처음부터 우려하던 바이다. 그는 한 IP 당 1 투표가 아닌 한 CPU 당 1 투표 방식을 택한 이유가 IP는 얼마든지 많이 할당하여 쉽게 네트워크를 전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누구든 쉽게 참여하여 그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하지만, 연산량이 늘어나면서 자본력이 없는 개인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지분 증명(proof of stake), 위임 지분 증명(delegated proof of stake) 방식 등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권력 집중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필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 목적의 권력이 어느 정도 동작해야 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과연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고르게 그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주목해야 한다.</p>
<p>또 다른 거버넌스 문제는, 과연 알고리즘이 모든 거버넌스를 자동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코드가 법이고, 옳고 그름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게 이 동네의 불문율 같은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확장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거버넌스 문제를 드러냈다. 개발자, 채굴자, 빅마우스 사이에 전쟁 같은 논쟁이 일었지만, 결국 견해차를 줄이지 못하고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로 블록체인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활용한 <em>ﾠ탈중앙화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em>을 꿈꾸며 호기롭게 시작한 &#8216;더 다오(The DAO)&#8217; 프로젝트가 버그로 거액의 해킹 사고를 당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으로 이더리움 블록체인 분기를 결정한 것은 그 탈중앙화 자율 조직의 코드 규칙이 아니라 이더리움 재단이었고, 반대 세력의 이더리움 클래식은 다른 블록체인으로 분기했다. 나카모토가 가장 긴 블록체인을 선택함으로써 막으려 했던 블록체인 분기가 오히려 일종의 해법이 된 듯하다.</p>
<p>이렇게 거버넌스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알고리즘 외적인 의사 결정 문제를 해결할 <a href="https://medium.com/@FEhrsam/blockchain-governance-programming-our-future-c3bfe30f2d74">새로운 알고리즘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들</a>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의도되지 않은 오류를 가지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강제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자동화된 거버넌스를 어디까지 정의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비스 약정 같은 블록체인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를 디지털 헌법으로 코드화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대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의 계층을 유지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자발적 ‘선의’ 같은 인간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 계층의 가장 큰 해결 과제는 역시 권력 집중의 문제가 될 것은 자명하다.</p>
<p>규칙을 너무 복잡하게 코드화하는 것도 문제이다. 시스템 복잡성이 높을수록 오류 존재의 가능성이 높고 유지 보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이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튜링 완전성을 구현한다고 내세우는 스마트 계약은 버그 가능성을 높이고 보안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은, 이미 &#8216;더 다오&#8217; 사태를 겪으면서 모두 인식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튜링 완전성을 조금 제한하더라도 더 엄격한 스마트 계약 작성 언어 규칙을 적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심지어 인공 지능으로 코드를 최적화한다는 프로젝트도 있다(그러나 아마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또한, 누구도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옳고 그름을 합의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범위 내에서 거버넌스가 정의되어야 한다. 스마트 계약 언어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서술형으로 하려는 예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식이 동등한 수준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정보 불균형이 일어나고 참여의 기회도 낮아진다. 자유는 그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억압된다. 비트코인을 칭송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프로토콜의 단순함에 있다. 오컴의 면도날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p>
<p>정리하자면, <em>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em>는 다음과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
<ul>
<li>의사 결정 권력이 집중되지 않게 해야 하며, 최소한의 필수 공공 권력의 기회는 모든 참여자에게 최대한 평등하게 분산되어야 한다.</li>
<li>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의 범위와 해결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의 방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li>
<li>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가장 단순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li>
</ul>
<p>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가치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암호화폐에 대한 대부분의 공격은 그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고 가치가 제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치는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하는 미래 가치에 맞춰져 있다. 사실 단 두 사람만 가치를 인정해도, 가치가 생기고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은 원래 복제 특성으로 희소성과 상반되는데, 비트코인은 말하자면 최초로 디지털 희소성까지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네트워크 참여자들 사이에 어떤 효용성이 있다면, 그것을 거래 가능한 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가치 투자는 투기의 다른 말이다. 최근의 암호화폐 열기도 다름 아닌 투기 과열이었다. 이건 주식 시장과 똑같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가 악이면, 주식도 악이다. 지나친 투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단기 투자 수익에 집중하여 가치 변동성을 높이는 것은 암호화폐 자체의 기능에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생태계 유지를 위한 건전한 장기 보유에 대한 보상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p>
<p>네트워크가 잘 돌아가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참여자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 프로세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개발자나 검증을 하는 노드에는 정의된 보상이 없다. 여러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제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초기 자금을 ICO(Initial Coin Offering)라는 크라우드펀딩+IPO 형식의 전례 없는 투자 유치 수단으로 비교적 쉽게 끌어오고 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상반된 두 가지다. 첫째는 마음껏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 밑천이 생긴다. 두 번째는 마음껏 사기를 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생긴다. 프로젝트에 진정성이 있다면 개발자를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2~3쪽짜리 백서만 있는(또는 홈페이지만 있는) 사기 ICO도 판을 치는 것이 문제다.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터린은 스마트 계약을 활용해 개발자가 투자금을 수도꼭지 물처럼 일정 속도로만 사용하게 하거나 투자금 회수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시 시장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초기 암호화폐 보유자와 후에 참여하는 보유자 간에 가치 불균형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암호화폐 보유량이 힘을 가지는 구조라면 그 자체가 권력 불균형이 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것이다.</p>
<p>앞서 말한 네트워크의 미래 가치 말고, 다른 방식의 가치를 고민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포스팅한 글에 독자들이 추천하면 보상을 받는다든지, 노동 시간을 토큰화하여 인력 시장에 활용하는 예 같은 것이 있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 등의 외부의 안정된 자산에 가치를 고정하는 암호화폐도 있다. 내 생각엔 지금까지 선의의 자발적인 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수많은 소소한 노동과 권리가 가치로 환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디지털 특성은 복제이고 그래서 무료라는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노동과 권리가 보상이 된다면 선의가 아닌 당연한 참여가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심 경제로 낭비되는 많은 시간이 건전한 노동 시간-예를 들면 내가 하는 행동이 별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p>
<p>또한,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 외에도, 평판 같은 사회적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이기도 하다. 우리 두뇌는 초콜릿을 먹는 것과 사회적 인정을 받는 쾌락 회로가 같고, 신체적인 구타와 사회적인 버림을 받는 고통 회로가 같다고 한다. 사회적인 보상도 경제적 보상 못지않게 우리 행동에 큰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평판 체계를 설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꽤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평판의 높낮이가 또 다른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암호화폐 보유량 자체가 투표 등의 힘을 가지는 경우인데, 그것이 마치 돈으로 산 평판의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있다. 또한, 평판은 아이덴티티를 전제로 하므로 프라이버시와의 절충이 필요하다.</p>
<p>정리하자면, <em>합의된 가치 시스템</em>은 다음과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
<ul>
<li>투기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적정 가치 안정성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li>
<li>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기여도에 따라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li>
<li>경제적, 사회적 보상 모두를 반영하되, 보상이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li>
</ul>
<p><strong>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또 따른 돌파구가 필요하다</strong></p>
<p>나는 암호화폐가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은 세 번째 위대한 발명품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호명 되기를 기대한다. 성공한다면, 암호화폐가 가속할 수 있는 권력의 분산은 다양성을 가진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텃밭이 될 것이다. 자유의 확산은 그 텃밭에서 더 많은 사람이 기꺼이 활동하게 할 것이다. 정보 기술이 꿈꾸던 그런 이상은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암호화폐로 완성될 수 있다. 그 방향성 자체에 정치 공학적인 이견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암호화폐가 던지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담론이 기술적 사회적 의미 모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공 지능은 주로 미래 인류의 멸망 또는 신인류의 탄생 같은 공상과학적 담론을 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암호화폐는 현재의 돈, 가치, 경제, 권력,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하고, 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때로는 아나키즘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장 자유주의 같기도 하다. 사회학자 김성국은 잡종화를 통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아나키즘과 시장 자유주의의 잡종)가 새로운 문명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나는 묘하게도 암호화폐 현상에서 그 공명을 느낀다.</p>
<p>어쨌든 아직은 후보지만, 4차산업혁명 유망 아이템 맞다.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억제하는 것 같지만, 잘나가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중국발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하튼 여러 난제가 있고, 이렇게 저렇게 해도 나카모토가 제시한 묘수 이상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헛수고란 없다. 실패한 후 우리 자신을 보면 퀀텀 점프해 있는 내재한 역량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단 &#8216;장난감&#8217;을 &#8216;망치&#8217;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음번엔 진짜 망치를 만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걸로 집도 짓고, 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8216;나카모토&#8217; 돌파구가 등장할 것이다. 끝.</p>
<p>&nbsp;</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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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 감성 로봇</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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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1 Aug 2015 08:21:4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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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세계 최초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소프트뱅크의 페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 지능 개발 역사의 초기에 지극히 간단했던 일라이저(ELIZA)라는 프로그램마저도 사람들은 쉽게 감정 이입을 했다. 모든 것에 마음을 부여하고, 그 대상물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려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어쩌면 고도의 인공 지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잘 수용해 줄 페퍼 같은 로봇이 인공 지능의 킬러 앱이 될 수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세계 최초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소프트뱅크의 페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 지능 개발 역사의 초기에 지극히 간단했던 일라이저(ELIZA)라는 프로그램마저도 사람들은 쉽게 감정 이입을 했다. 모든 것에 마음을 부여하고, 그 대상물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려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어쩌면 고도의 인공 지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잘 수용해 줄 페퍼 같은 로봇이 인공 지능의 킬러 앱이 될 수 있다.</em></p>
<p><span id="more-3236"></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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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지디넷 코리아에 기고한 컬럼.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821063316">페퍼,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인가</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최근 몇 년간 (내가 느끼기에는 특히 지난해부터) 인공 지능과 로봇에 관한 기사가 급등하고 있다. 인공 지능은 그 시작부터 기대와 실망의 연속으로 등락을 거듭해 온 대표적인 (언제나 차세대인) 첨단 기술이다. 체스 경기 우승이 지능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는 사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으로 만들어야만 했던 전문가 시스템이 보편적 지능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은 인공 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그저 과학 소설이나 영화 속의 판타지에 머무르게 했다.<br />
그런 인공 지능/로봇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간 하드웨어에서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에 힘입어)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졌고, 접근 가능한 실질적인 빅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딥 러닝 등 발전된 인공 지능 알고리즘이 어느 정도 상업화 가능한 수준의 효능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p>
<p>이에 힘입어, 다시금 인공 지능 초기의 기대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즉, 앨런 튜링이 60여 년 전 튜링 테스트를 고안하며 상상했던 궁극적인 디지털 컴퓨터의 모습인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기대감이다. 오히려 기대감이 지나쳐, 이제는 인간 수준 지능을 넘어서는 초지능의 등장과 그로 인해 벌어질 위험성-약하게는 중산층 노동 시장의 붕괴에서 강하게는 인류 존재 위협까지-에 대한 담론이 심심치 않게 회자하고 있다.</p>
<p>그러나 사실 기술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꿈은 그렇게 부정적은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기대하는 기술 발전의 결과물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감성적이다. 예를 들면,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가 작년 6월 출시하면서 “<a href="https://twitter.com/masason/status/474170100832927745">25년간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a>”는 인간형 로봇 “페퍼”는 세계 최초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 홍보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얼마 전 공개한 페퍼의 홍보 <a href="https://youtu.be/3a4sZnLRvqk">동영상</a>을 보면, 인간의 슬픔과 기쁨을 이해하고 다독이고 공유할 줄 아는 로봇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조금은 과하다 싶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페퍼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페퍼는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p>
<blockquote class="twitter-tweet" lang="en">
<p dir="ltr" lang="ja">明日、我々の新技術への取り組みを発表します。 私は、25年間この日が来ることを夢見て来ました。 6/5 13時〜 <a href="http://t.co/P3Ys1f4C7R">http://t.co/P3Ys1f4C7R</a></p>
<p>— 孫正義 (@masason) <a href="https://twitter.com/masason/status/474170100832927745">June 4, 2014</a></p></blockquote>
<p><script src="//platform.twitter.com/widgets.js" async="" charset="utf-8"></scrip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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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페퍼는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프랑스 로봇 회사, <a href="http://www.aldebaran.com/en">알데바란</a>(나오, 로메오 등의 로봇 개발로 유명)에서 개발을 했고, AGI 사의 <a href="http://www.agi-web.co.jp/technology/trend.html">감정 지도 기술</a>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a href="http://www.softbank.jp/robot/products/">소프트뱅크의 홍보</a>에 의하면, 페퍼는 현재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로봇이다. 이를 위해 페퍼는 각종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센서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감정로 정의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감정 생성 엔진’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생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아기의 감정 발달 수준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p>
<p>이 정도의 수준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지난 2월 개발자 물량 300대, 6월 가정용 초도 물량 1,000대가 개시 1분 만에 매진되는 ‘<a h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decono/201506/e2015062118111869760.htm">대박</a>’이 났단다. 페퍼 본체의 가격만 부가세 포함하여 한화로 200여만 원, 게다가 감정 클라우드에 연동되려면 월 15만 원 정도의 ‘기본 플랜’에 가입해야 하고, 수리 및 상담을 위한 ‘보험 팩’까지 더하면 월 총 약 25만 원을 지출(<a href="http://www.softbank.jp/robot/price/">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참조</a>)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개발자와 얼리어답터의 지갑을 여는 데는 꽤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p>
<p>그러나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페퍼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인가? 또는 그 정도 비용으로 만족할 만한 그럴듯한 감정 로봇인가? 이런 질문은 인공 지능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대표적인 논쟁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 방’ 비유가 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 있는데, 이 사람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중국어 쪽지를 받아 복잡한 지시 사항이 적힌 긴 목록의 규칙에 맞게 중국어를 조합하여 다시 문밖으로 내보낸다. 문밖에 있는 사람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즉, 튜링 테스트 같은 것을 통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방 안의 사람이 진짜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중국어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긴 목록을 만들어 내는 중국어 방 자체라는 시스템이 ‘이해’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수십 분의 1초에 수백만 개의 기억된 규칙으로 전개된다면 중국어 방이 중국어를 이해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있겠느냐는 등의 반론이 <a href="http://en.wikipedia.org/wiki/Daniel_Dennett">대니얼 데닛</a>이나 <a href="http://en.wikipedia.org/wiki/Steven_Pinker">스티븐 핑커</a> 같은 계산주의자들에 의해 맹렬히 전개되었다.</p>
<p>어느 쪽이 맞는다고 결론을 맺기에는 아직 우리가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을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다. 우리는 페퍼가 정말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증명할 수 없다.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검증 방법은 튜링 테스트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 개척자인 <a href="http://en.wikipedia.org/wiki/Jaron_Lanier">재론 래니어</a>는 튜링 테스트가 기계 지능은 인간 관찰자의 관점에서의 상대적 의미로만(즉, 기계 지능의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관찰자의 주관적 판단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기계가 똑똑한 것처럼 하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기계의 수준에 쉽게 적응한다.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수고스러운 데이터 입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디지털 인터넷 기기에 ‘스마트’라는 명칭을 쉽게 부여한다. 그것이 얼마나 스마트한지는 잘 모르지만, 스마트하다고 맘 좋게 인정해 준다. 우리가 어쩌면 신기루일지 모르는 페퍼에 주목하고, 페퍼와 손정의가 무대에서 그럴싸하게 <a href="http://buzzap.jp/news/20140605-softbank-pepper/">소통하는 모습</a>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은, 페퍼가 대단히 뛰어나서 아니라, 우리의 눈높이를 페퍼의 수준으로 확 낮추었기 때문이다.</p>
<p>그런 현상은 인공 지능 개발 역사의 초기부터 이미 인지되었다. 1960년대 <a href="http://en.wikipedia.org/wiki/Joseph_Weizenbaum">요제프 바이첸바움</a>이 개발한 일라이저(ELIZA)라는 심리 치료 상담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프로그램은 본격적인 심리 치료 상담 목적은 아니지만, 실험적으로 몇 가지 상담 규칙을 적용해 본 지극히 간단한 모델이었다. 환자에게 긍정적인 공감을 표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환자가 “나는 ~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왜 ~이 필요한가요?”라고 하거나, “나는 ~해요”라고 말하면, “스스로 ~한 것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나요?”하고 되묻는 식이다. 프로그램이 환자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환자의 말을 되받아 질문하는 식으로 문장을 던질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일라이저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실제 심리 치료사와 상담을 하는 듯한 착각을 보이고,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p>
<p>바이첸바움은 이렇게 단순한 기계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프로젝트를 그만두었으며, 그 후 인공 지능의 위험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일라이저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챗봇(chatbot) 후예들을 남겼다. 예를 들면 피상담자의 표정과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a href="http://youtu.be/ejczMs6b1Q4">엘리(Ellie)</a> 같은 여러 진보된 인공 지능 챗봇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엘리도 근본적으로는 일라이저의 원형을 벗어나진 못했고, 그나마 20분 이상 대화를 하면 임상 심리학적 유용성도 제한된다고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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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능이 있다고 하기 힘든 일라이저 같은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인간은 사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읽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a href="http://en.wikipedia.org/wiki/Fritz_Heider">하이더</a>와 <a href="http://en.wikipedia.org/wiki/Marianne_Simmel">시멜</a>의 유명한 <a href="http://youtu.be/VTNmLt7QX8E">도형 애니메이션 실험</a>에서 보듯, 인간은 한낱 움직이는 두 개의 삼각형과 동그라미의 짧은 애니메이션에서도 각각 성격(마음)을 갖는 인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모든 미디어가 작동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로봇 얘기를 하고 있으니, 또 다른 예로 <a href="http://m.hitchbot.me">히치봇(hitchBOT)</a>을 보자. 간단한 말을 할 줄 알고, GPS와 카메라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하는 이 로봇 같지 않은 로봇은, 단순히 히치하이크만으로 여행을 다닌다. 사람들은 이 지극히 단순한 여행 로봇도 쉽게 의인화한다. 마치 생명을 대하듯 한 사람들의 선의로 히치봇은 캐나다에서 26일간 19건의 히치하이크로 1만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기록을 세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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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런데 반전이 있다. 히치봇은 올해 미국 종단을 목표로 새로운 여행길에 나섰다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이 잘려 없어진 처참한 모습으로 <a href="http://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5/aug/03/hitchbot-hitchhiking-robot-destroyed-philadelphia">발견</a>되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일본에서 수행된 <a href="http://spectrum.ieee.org/automaton/robotics/artificial-intelligence/children-beating-up-robot">연구</a>에서, 공공장소에 자율 운행 중인 로봇에 대한 어린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놀랍게도, 이 연구는 많은 아이가 아무런 해가 없는 이 로봇을 괴롭히고 폭력을 가하고 욕을 하는 등 학대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 이입에도 한계는 있는 것일까? 일본 연구 사례에서, 조사된 아이의 대부분(74%)은 로봇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면서도 그렇게 폭력을 가했다. 히치봇 살해 사건도 부정적 결과라는 면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무생물에 대한 감정 이입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럼 기계라서가 아니라 그냥 약자라서 폭력을 가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명백히 감정을 지닌 로봇이라도 같은 결과였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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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명확지는 않지만, 스티븐 핑커의 주장에서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핑커는 많은 데이터로부터 인류의 역사에 폭력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폭력성, 가학성 같은 인간 내면의 악마보다는 감정 이입의 확대 등 선한 천사가 더 우세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출판 기술의 발전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인터넷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디어의 영향으로 간접적 감정 이입의 기회가 많아지고, 문명화, 민주화, 국제적 교류 등으로 다른 집단과 지역의 사정을 더 잘 이해될 기회가 많아지게 되면 폭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의 폭력은 아마도 교육적인 문제로 치부될 수 있다. 로봇에의 폭력성은 그야말로 비문명적이거나 유아적인 소수에 대한 지엽적 문제가 될 것이다.</p>
<p>게다가 심리학자 <a href="http://https://en.wikipedia.org/wiki/Matthew_Lieberman">매튜 리버만</a>은 많은 신경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인간이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의식주의 욕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말하자면 매슬로우 욕구 5단계 피라미드의 맨 밑이 사회적 욕구가 된다는 것이다. 로봇의 킬러 앱은 바로 이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관련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로봇이 감정을 가졌는지, 이해는 하는지가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얼마나 로봇이 수용해 줄 것이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p>
<p>위에서 언급했던 엘리의 사례에서도 이와 관련한 로봇의 잠재성을 엿볼 수 있다. 엘리 연구자들은 한 실험 집단에게는 엘리가 실제 사람에 의해 원격 조종된다고 하고, 다른 집단에는 엘리가 사람이 배제된 완전한 자율 기계라고 말하고 나서 상담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사람이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상담자들이 덜 참여적이고 마음도 덜 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사회적 욕구는 반대로 사회적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생면부지의 원격 의사와 응대하느니, 자신을 전혀 평가하지 않을 기계와 상대하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다.</p>
<p>며칠 전, 마포대교 자살 방지 노력에 대한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4525.html">기사</a>를 봤을 때, 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포대교 같은 곳에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인공 지능 기계만 있어도, 죽으려던 사람을 많이 살릴 것이라고 했고, 나도 그 말에 공감했었다. 그 단순했던 일라이저마저도 사람들이 도움되었다고 느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어쩌면 페퍼 홍보 영상의 과하다 싶은 시나리오가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인공 지능 로봇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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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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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Mar 2015 02:59:51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category><![CDATA[Book Review]]></category>
		<category><![CDATA[Netflix]]></category>
		<category><![CDATA[Netflixe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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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이라는 책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 간의 치열한 전쟁의 기록이다. 자본에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었겠지만 블록버스터는 그 때문에 파괴적 넷플릭스를 제때 대응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운도 좋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그 유명한 개인화도 요금제도 밑바탕엔 다 그 자본의 논리가 깔렸다. 자기 소멸적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로, 언제가는 넷플릭스도 넷플릭스 당하게 할 것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8216;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Netflixed]&#8217;이라는 책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 간의 치열한 전쟁의 기록이다. 자본에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었겠지만 블록버스터는 그 때문에 파괴적 넷플릭스를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운도 좋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그 유명한 개인화도 요금제도 밑바탕엔 다 그 자본의 논리가 깔렸다. 자기 소멸적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로, 언제가는 넷플릭스도 넷플릭스 당하게(netflixed) 할 것이다.</em></p>
<p><span id="more-3211"></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212"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50317/netflixed/attachment/netflixed/"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jpg" data-orig-size="640,480"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2.2&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iPhone 5s&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1426556102&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4.15&quot;,&quot;iso&quot;:&quot;8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033333333333333&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1&quot;}" data-image-title="netflixed"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480x360.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jp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212"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jpg" alt="netflixed" width="640" height="480"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jpg 640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tflixed-480x360.jpg 48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p>
<p>&#8216;넷플릭스(netflix)&#8217;를 동사로 쓰면 무슨 뜻일까? 사울 캐플런(Saul Kaplan)은 이렇게 <a href="http://fortune.com/2011/10/11/how-not-to-get-netflixed/">정의</a>한다.</p>
<blockquote><p>넷플릭스하다 (netflix)</p>
<ol>
<li>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붕괴하거나 어지럽히다<br />
(to cause disruption or turmoil to an existing business model)</li>
<li>이전의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다<br />
(to destroy a previously successful business model)</li>
<li>가치가 현재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획득되는 방법을 폐기하다<br />
(to displace the way value is currently created, delivered, and captured)</li>
</ol>
</blockquote>
<p>이 동사의 기원이 되기도 한 대표적인 사용 예문이 바로, &#8220;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 당했다(Blockbuster was netfliexed)&#8221;이다. 저널리스트인 지나 키팅(Gina Keating)의 2012년 책을 한역한 &#8216;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8217;의 원제가 &#8216;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8217;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동사의 기원이 되었던,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 당하는 그 처절했던 10여 년의 기록이다.</p>
<p>그렇다고 일방적인 넷플릭스의 영웅담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무능해 보였던 블록버스터도 내부적으론 정말 치열했고, 거의 넷플릭스를 뒤엎을 수도 있었던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결론은 역시 현실은 실력만이 아니라 운도 필요하더라.</p>
<p>아이디어는 어쨌든 실행을 해야 빛을 발하는 법이며, 성공을 위해서는 수많은 &#8216;안되는 이유&#8217;를 타파해가야 한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1997년 당시 이미 스타트업 하나를 성공적으로 엑시트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고, 기존 비디오 대여점을 대체할 아직은 생소한 매체인 DVD 우편배달에 기회를 봤다.</p>
<p>헤이스팅스가 일단 주머니에 회사를 판 돈이 있었기에 뭔가를 더 할 마음이 생겼겠지만, 그게 그저 돈을 편하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미 대부분 사람이 비디오 대여점을 사용하는 시장에서, DVD 플레이어 보급률도 출시된 타이틀도 지극히 저조한 상황에서,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식인 위험에 노출된 우편 배송을 이용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p>
<p>비디오 시장 수요는 이미 검증되어 있다.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지만 블록버스터 등 기존 대형 업계가 안정적으로 사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대여점을 찾아가야 하고, 반납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 불편에 대한 개선 여지가 분명했다. 여기에 파괴적인 포인트가 있었다. 기존 업체의 사업 기반인 대여점을 붕괴시키고, 매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던 연체료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존 업체가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p>
<p>그 역할이 스타트업의 몫이다. 스스로 부정할 기반이 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베팅을 해야 할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을 넷플릭스는 무모하게 도전을 했다. 그럼 기존 업체들은 파괴될 운명만을 갖는가? 슬픈 얘기지만, 대부분 그렇다. 생명의 주기가 있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위기를 극복하여 얼마나 더 오래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위기의 순간에 가장 합리적으로 내리는 경영 의사 결정이 파괴적 기술 앞에서는 가장 바보 같은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p>
<p>블록버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넷플릭스가 회사를 블록버스터에 넘기려 했을 때 몇 번이고 거부했다. 앞으로의 시장 경쟁 가능성을 평가 절하한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대응하려 했을 때는 모기업이나 투자자의 입김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 자원을 적극적으로 할당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오프라인 매장과 블록버스터 온라인의 가입자를 통합한 통합 회원제[Total Access]라는 기가 막힌 한수로 가입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넷플릭스를 벼랑 끝까지 몰았던 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기업사냥꾼인 아이칸이 이사회와 CEO를 자기 사람들로 심으면서 그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쪽 세계에 문외한인 새로운 CEO가 온라인 사업 투자를 줄이고 오히려 기존 대여점을 부흥하는 정책을 미는 바람에 스스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오프라인 시장도 이미 키오스크 방식의 레드박스가 틈새를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p>
<p>어쩌면 이윤 극대화라는 당연한 자본의 논리가 기업이 가지는 태생적 자기 소멸 메커니즘일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도 예외는 아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블록버스터를 물리치고, &#8216;포천&#8217;지의 표지 모델을 장식하는 등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아마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언젠가는 털어내야 했을) DVD 대여 회원제에 대한 요금 조정과 &#8216;퀵스터(Qwikster)&#8217;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DVD 사업 부분을 분리하려 한 성급한 의사 결정은 큰 반발을 불렀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논리는 언제나 자본으로부터 나온다.</p>
<p>넷플릭스의 그 유명한 추천 시스템을 봐도 그렇다. 넷플릭스는 영화를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40107/76897-altgenres/">수만 가지 장르로 구분</a>하여 개인화를 한다지만, 그 원래 목적은 넷플릭스의 빈약한 라이브러리에 있었다. 최신작들 위주로 구비하기엔 비용과 재고 부담이 너무 커서, 잘 안 알려지거나 철 지난 타이틀 위주로 재고를 소비시키는 방법으로 개인화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50217/super-artificial-intelligence/#more-3167">재론 래니어(Jaron Lanier)가 지적했듯이</a> 이런 방식의 자기충족적 빅데이터(넷플릭스가 찍어주는 콘텐트를 소비하는 행태가 재축적되는 빅데이터)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볼만한 콘텐트도 없는데 개인화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40107/is-netflix-doomed/">볼멘소리</a>가 터져 나온다.</p>
<p>이 문제는 약간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하고 넘어가자. 물론,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 주제이기도 했는데, 개인의 취향이라는 게 과연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인이 전해준 말처럼,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취향이라고 믿도록 하는 게 대중의 취향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엔 결국 그것은 사회관계적인 문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사회관계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결정한다. 공유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그 만족감은 떨어진다. 한 심리학 연구에서, 굉장한 비디오와 밋밋한 비디오를 시청하는 그룹을 나누고, 굉장한 비디오를 보는 사람은 그 내용을 공유하지 못하게 하고, 밋밋한 비디오를 시청한 그룹은 그 내용을 공유하게 했더니, 만족감이 후자가 더 크더라는 것이다.</p>
<p>결국, 각자 개인들이 자기만의 딱 맞는 콘텐트만을 보는 것이 진정한 개인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대표적인 콘텐트가 최신 히트작이다. 사람들이 그런 콘텐트를 주로 찾는 이유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그런 콘텐트들을 끌어모으는 게 쉽지 않다면, 가지고 있는 빈약한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던지, 아니면 스스로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마도 넷플릭스의 결정은 후자가 된 듯하다.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넷플릭스의 위상은 HBO와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p>
<p>다시 본래 문제로 돌아와서, 다른 예도 보자. 퀵스터 사태 이후에도 어떻게든 요금제를 손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때로는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40202/netflix-pricing-by-heuristics/">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조정하는 방식</a>을 시험하기도 한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런 논리가 바로 자기 소멸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파괴적 기술이 나타나도, 기존 자본의 논리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의사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할 것이다. 바로 블록버스터처럼.</p>
<p>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게 흥미로운 드라마이긴 하다. 이 책이 마치 한편의 미드를 재밌게 감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가치 중에는 희망적으로 들리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소비자의 &#8216;<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30426/moments-of-truth/">결정적 순간[moments of truth]</a>&#8216;에 대한 고민이 그런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지향점을 중심축으로 굳건히 가지고 간다면 넷플릭스도 꽤 오래갈 것이다.</p>
<p>하지만 언젠간 넷플릭스도 넷플릭스 당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전설로 남을 것이다. 그 선배들처럼.</p>
<p>&nbsp;</p>
<p>이윤수</p>
<p>&nbsp;</p>
<ul>
<li>트위터 검색을 해보니, 대중적으로는 &#8216;netflix&#8217;를 동사로 쓰는 경우 주로 &#8216;넷플릭스를 보다&#8217;, &#8216;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8217;라는 뜻으로 쓰인다. 아래 트윗처럼.</li>
</ul>
<blockquote class="twitter-tweet" lang="en"><p>It was 75 degrees today and I Netflixed all day. <a href="https://twitter.com/hashtag/noragrets?src=hash">#noragrets</a></p>
<p>— Taylor Oates❁ (@TaylorrOates) <a href="https://twitter.com/TaylorrOates/status/577303419918008320">March 16, 2015</a></p></blockquote>
<p><script src="//platform.twitter.com/widgets.js" async="" charset="utf-8"></script></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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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스터 존 애플씨드의 부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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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Mar 2015 03:17:41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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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Apple TV]]></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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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애플의 2015년 첫 이벤트가 있었다. 애플 TV, 뉴 맥북, 애플 와치, 리서치키트 등의 발표가 있었다. 새로운 제품군들이 각자의 포지셔닝을 잘 찾아갈지 불분명한 가운데, 애플은 점점 모범 답안적이고 장황한 설명에 귀착되는 것 같다. 애플 제품의 데모 화면에 자주 등장하던 가상의 존 애플씨드라는 인물도 이젠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다소 감상적인 것이긴 해도, 애플은 어쨌든 스티브 잡스 이후 알게 모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길 기대해 본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애플의 2015년 첫 이벤트가 있었다. 애플 TV, 뉴 맥북, 애플 와치, 리서치키트 등의 발표가 있었다. 새로운 제품군들이 각자의 포지셔닝을 잘 찾아갈지 불분명한 가운데, 애플은 점점 모범 답안적이고 장황한 설명에 귀착되는 것 같다. 애플 제품의 데모 화면에 자주 등장하던 가상의 존 애플씨드라는 인물도 이젠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다소 감상적인 것이긴 해도, 애플은 어쨌든 스티브 잡스 이후 알게 모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길 기대해 본다.</em></p>
<p><span id="more-3193"></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19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99"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99"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50316/absence-of-mr-john-appleseed/attachment/2013_carplay/"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2013_CarPlay.png" data-orig-size="640,360"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2013_CarPlay"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2013년 카플레이를 소개하는 에디 큐. 존 애플씨드의 모습이 보인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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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지디넷 코리아에 기고한 컬럼.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316081824">포스트 잡스 시대, 달라진 애플</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존 애플씨드(John Appleseed)씨를 기억하는가?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하면서 첫 광고와 이벤트 데모 화면에 사용되던 그 이름 말이다. (아이폰 이전에도 깨알 같은 디테일의 예전 버전 TextEdit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에 쓰인 편지 내용에 발신인으로 등장한다고는 한다) 분위기 자체가 애플식 홍길동쯤으로 느껴지는 이 이름의 기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p>
<p>우선 가장 많이 연상하는 인물은 조니 애플씨드라는 별명을 가졌던 초기 미국 개척 시대의 실존 인물인 존 채프먼(John Chapman)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서부 개척지에 사과를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던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 개척 정신과 애플씨드라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애플이 이 이름을 사용한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또 다른 설은 초기 애플 투자자이자 CEO도 역임했던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이다. 그는 프로그래머로서 애플II 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그 개발자로서의 필명이 존 애플씨드였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존 애플씨드가 쿠퍼티노에 사는 평범한 실존 인물로, 스티브 잡스가 마치 외부 고문처럼 마음을 터놓고 애플의 새로운 신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얘기를 나눴던 외부 인사였는데,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는 얘기도 있고, 또는 호주의 작은 고등학교 졸업생 데이터베이스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 학교 졸업생들의 이름이 애플의 다른 데모 화면에도 사용되었다더라는 설도 있다. 후자의 이야기들은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듯하나, 앞의 이야기들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p>
<p>좌우간, 존 애플씨드는 그 후에도 애플의 이벤트 데모에서 자주 등장했다. 그러다가 팀 쿡이  CEO가 되고,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뜨면서, 존 애플씨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 명맥은 계속 유지되어, 2013년 카플레이(CarPlay)를 소개할 때, 그리고 2014년 애플 페이(Apple Pay)의 데모 화면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애플의 2015년 첫 이벤트를 다 보고 난 후, 불현듯 그의 부재를 깨달았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존 애플씨드의 부재가 왜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일까? 부재와 추억이 의미하는 것은, 어쨌든 시대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가슴 뛰던 아이폰의 시대도 그렇게 갔다는 것을 존 애플씨드의 부재에서 발견하게 된다.</p>
<p>그래도 어떻게 이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지, 제품 폼팩터별 포지셔닝을 중심으로 이번 이벤트의 내용으로 몇 가지만 짚어보자.</p>
<p>첫째, 애플 TV는 빅 스크린의 어댑터 역할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애플도, 팬보이들도 이미 눈치챘듯이. 사실 애플 TV는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인 2006년에 &#8216;iTV&#8217;라는 코드명으로 발표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동안 일체형 TV가 나온다느니, 게임 플랫폼을 갖춘다느니 루머가 많았지만, 애플 TV의 정책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아이팟-아이튠스의 비디오 서비스 확장의 일환이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그간 겨우 세 번의 세대교체만 있었을 뿐이다)</p>
<p>이번 &#8216;HBO 나우&#8217;의 독점 공급을 화두에 넣은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HBO가 넷플릭스 등과의 경쟁을 위해선 언젠가 케이블 가입 기반을 벗어나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고, 이번 애플과의 협력이 그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이 대목을 가장 우려해야 할 당사자는 넷플릭스이다. 오리지널 자체 콘텐트를 제작하며 이미 TV 네트워크화된 넷플릭스가 그 핵심 사업에서 진짜 강자인 HBO와 직접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어차피 오늘내일하던 얘기니까 큰 감흥은 없지만)</p>
<p>애플 TV 하드웨어 자체의 세대교체는 없이 가격만 99달러에서 69달러로 낮춘 것은, 로쿠(Roku) 같은 제품과의 경쟁 관계가 큰 이유겠지만, 애플 TV가 하드웨어 판매가 아닌 콘텐트 판매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해준다. 앞으로 그나마 있을법한 하드웨어적인 업그레이드는 아마도 로쿠 스트리밍 스틱 같은 초소형 폼팩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p>
<p>둘째, 새로운 맥북은 맥북 에어의 아성마저 넘어버렸다. 이로써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에 큰 혼란이 생겼다. 항간에 떠도는 빅 아이패드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 아이패드는 당시의 열등했던 성능의 넷북 포지셔닝을 대체하는 것이었다.</p>
<p>즉, 아이패드는 생산성 단말기로서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없애고, 미디어 소비성 단말기로서 특화되었다. 월트 모스버그가 일찍이 애플의 아이팟 성공을 두고 마이크로소프트 시대를 넘어선 &#8216;<a href="http://allthingsd.com/20060511/apple-model-beats-pc/">포스트 PC</a>&#8216; 시대의 등장을 예고했듯이, 애플은 아이팟, 애플 TV, 아이폰, 아이패드으로 그렇게 이 &#8216;포스트&#8217; 시대를 이끌어 왔다.</p>
<p>하지만 아이패드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단순한 소비성 기계가 아닌 생산성, 창의성 도구로서도 성장하고, 노트북은 반대로 초소형화로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에 근접 중이다. (아마도 엄격하게 따지자면 가장 분명한 구분점은 가격뿐일 것이다)</p>
<figure id="attachment_319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98"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98"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50316/absence-of-mr-john-appleseed/attachment/newmacbook_vs_ipadair2/"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png" data-orig-size="640,480"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newmacbook_vs_ipadair2"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뉴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 2의 크기 비교&lt;/p&gt;
"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480x360.pn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png" class="size-full wp-image-3198"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png" alt="뉴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 2의 크기 비교" width="640" height="480"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png 640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3/newmacbook_vs_ipadair2-480x360.png 48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3198" class="wp-caption-text">뉴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 2 비교</figcaption></figure>
<p>모르긴 해도, 아이패드의 운명은 애플 TV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콘텐트의 거대한 파이프가 아이패드 꼭지에 경제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왜 굳이 초소형 노트북이 아닌 아이패드가 필요하겠나? 다만 애플 TV는 파이프 싸움이 주요하다면, 아이패드는 소비 행태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그런 아이패드가 현재의 얼리어답터 성벽을 허물고 과연 아줌마, 아저씨의 장난감이 될 수 있을까?</p>
<p>반면, 새로운 맥북은 노트북의 영역을 더 굳건히 할 것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하나는 초박형의 이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엔드 방향이다. 새로운 맥북은 더 얇고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는 방향축에 있다. 이다음엔 또 다른 축에서 멋진 뭔가가 나오고, 그렇게 로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뜻밖에 이 오래된 폼팩터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올지도.</p>
<p>셋째, 애플 와치는 새로운 대중적 폼팩터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 대중적 수용은 반드시 절실한 필요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들고나온 아이폰은 아이팟, 전화, 인터넷의 삼위일체를 강조한 단말기였다. 모두가 이미 대중적인 소비 기반을 두고 있었던 서비스였고, 제대로 된 개인화된 모바일 단말기의 등장에 목말라하던 시기였다.</p>
<p>그런데 팀 쿡이 설명하는 애플 와치도 비슷한 삼위일체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번엔 시간, 통신, 건강 및 운동이다. 물론 셋 다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는 맞다. 하지만 그래서 왜 시계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손목시계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모셔진 지 오래다. 손목시계의 귀찮음을 휴대폰이 멋지게 해결했다. 그런데 왜 다시 시계인가? 통신, 운동 센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아이폰에는 훌륭한 앱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굳이 시계인가?</p>
<p>웨어러블 컴퓨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웨어러블인가? 결국, 양손과 주머니의 자유를 위해서 아닌가? 거의 실패를 인정한 구글 글라스도 양손의 자유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속박을 강요한다. 라섹, 라식의 시대에 웬 난데없는 안경인가? 똑같은 속박이 애플 와치에도 있다. 여전히 아이폰은 들고 다녀야 하며, 손목에 시계도 차야 한다. (이번 이벤트에서 소개된 동영상에서 아이폰 암밴드와 애플 와치를 모두 차고 달리는 크리스티 번즈의 모습을 보라! 도대체 왜?)</p>
<p>이 필요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기에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갖다 부어도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애플 와치 시연에 나왔던, 주가, 스포츠, 트위터, 항공 스케쥴 알림 등의 위젯 화면이나 &#8216;헤이 시리&#8217;라면서 음성 검색하는 서비스를 보면, 구글 글라스에서 시연되었던 &#8216;구글 나우&#8217;나 &#8216;오케이 구글&#8217; 음성 명령과 완벽히 오버랩된다. (분명, 멋지긴 하다!) 애플 페이를 손쉽게 하는 것이나, 항공권을 패스포트로 바로 확인하거나, 프런트를 거치지 않고도 열쇠카드 없이 호텔 방문을 열거나, 원격에서 차고 문을 여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8216;시계가 있다면&#8217;이지, &#8216;그래서 시계가 필요하다&#8217;는 아니다. 이미 자체로 완벽한 준비된 플랫폼인 내 아이폰으로도 그런 일들은 하지 않는다. 그런 서비스들이 그렇게 필요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반짝반짝 빛나는 애플 와치는 멋진 액세서리가 될 것은 분명하다. 결론은, 멋진 것과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필수적인 폼팩터가 되지 않는 한, 구글 글라스가 대량 양산을 포기한 결정이 선견지명이었다는 것을 탄식하게 될 정도로 애플 와치의 미래는 더 암울할 수 있다.</p>
<p>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지만, 리서치키트(ResearchKit)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홈키트(Homekit)와 마찬가지로, 애플이 최근 강화하고 있는 오픈 플랫폼 전략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향후 빅데이터의 방향성에서 큰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벤트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서치키트의 목적은 의학 연구를 위해 일반인(환자)들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리서치키트를 사용한 연구 기관의 앱을 사용자들이 설치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만들어주면, 해당 연구 기관에서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다는 공익적 성격의 오픈 소스, 오픈 플랫폼이다.</p>
<p>중요한 점은 애플은 둘 사이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 말고는 데이터 자체에 관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자발적이라는 점, 정확히 필요한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 제 3자(애플 포함)가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빅데이터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한다. 즉, 여타의 빅데이터 서비스는 데이터 수집을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정 목적에 꼭 맞는 데이터를 생성하지도 않으며(일차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항상 있다.</p>
<p>사실 현재의 이런 문제점들은 빅데이터가 또 다른 기술 거품이 될 것 수도 있는 심각한 것이다. 사용자가 자발적이지 않고 거부감을 느끼는 서비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없고, 선순환 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곧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돌파구는 명확하다. 자발적인 참여가 기본 전제가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리서치키트처럼 공익적인 목적으로 진정한 빅데이터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래야 자발적이기도 할 것이다)</p>
<p>여기까지 이번 애플 이벤트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나열해 보았다. 잡스 이후에 애플의 행보에 대해선 언제나 꼬리표처럼 붙는 말들이 있다. 더 이상 혁신적이지 않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혁신과 새로움이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애플의 최근 행보가 굉장히 모범 답안적인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고, 또한 그 설명이 꽤 장황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플이 문을 연 포스트 PC 시대의 특성이 기본적으로 전선이 너무 넓은 탓도 있겠다. (애플의 주요 경쟁사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세 회사만 언급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애플의 모습이 파괴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상당히 절차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8216;아하!&#8217;가 없고, &#8216;잘 빠졌네&#8217;만 있다. 사실은 그게 더 두려운 것이다.</p>
<p>이런 다소 막연한 아쉬움과 더불어, 서두에 얘기했듯이, 애플씨드씨의 부재가 사람을 갑자기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애플은 분명 포스트-잡스의 변화를 겪고 있다. 잡스 취향의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20925/%EC%95%A0%ED%94%8C%EC%9D%98-%EC%8A%A4%ED%81%90%EC%96%B4%EB%AA%A8%ED%94%BC%EC%A6%98%EA%B3%BC-%EA%B8%B0%EC%88%A0%EC%9D%98-%EC%9D%B8%EB%AC%B8%ED%95%99/">스큐어모피즘 디자인 퇴출</a>이나, 존 애플씨드의 은퇴가 그런 &#8216;변화&#8217;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저 좀 아쉬운 정도의 &#8216;변색&#8217;이랄까.</p>
<p>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소개하는 이벤트의 말미에, 회사의 명칭에서 &#8216;컴퓨터&#8217;를 빼버리면서,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인용했었다.</p>
<blockquote><p>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있을 곳으로 스케이트를 탄다.<br />
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p></blockquote>
<p>그런 게 변화다. 스티브 잡스가 그리워도, 미스터 존 애플씨드가 아쉬워도, 그런 &#8216;변색&#8217;은 감상적일 뿐이고, 애플의 &#8216;변화&#8217;는 분명 퍽이 있을 곳을 향해 있길 바란다.</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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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래서, 슈퍼 지능은 도대체 언제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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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Feb 2015 06:26:52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category><![CDATA[Artificial Intelligence]]></category>
		<category><![CDATA[Singularit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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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슈퍼 지능 또는 특이점의 도래 시점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대략 금세기 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하지만 그 예측에는 전문가적 지식이나 논리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보다는, 슈퍼 지능이 너무 낙관적인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하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에 불과하고, 예언자 대부분이 진화심리학적 편향이 있을 수 있는 남자라는 함정이 있다. 미래학자들이 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20년~50년의 시간 지평을 바라본다. 우리도 ‘괴짜들의 휴거[the Rapture of the nerds]’ 날짜를 기다리는 기술 광신도가 아니라, 나아갈 미래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다음 세대에 새 지평을 물려주고 영광스럽게 사라지는 부모 세대가 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슈퍼 지능 또는 특이점의 도래 시점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대략 금세기 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하지만 그 예측에는 전문가적 지식이나 논리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보다는, 슈퍼 지능이 너무 낙관적인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하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에 불과하고, 예언자 대부분이 진화심리학적 편향이 있을 수 있는 남자라는 함정이 있다. 미래학자들이 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20년~50년의 시간 지평을 바라본다. 우리도 ‘괴짜들의 휴거[the Rapture of the nerds]’ 날짜를 기다리는 기술 광신도가 아니라, 나아갈 미래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다음 세대에 새 지평을 물려주고 영광스럽게 사라지는 부모 세대가 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em></p>
<p><span id="more-3184"></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18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85"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85"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50226/time-horizon-for-superintelligence/attachment/4091338317_885720a154_z/"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2/4091338317_885720a154_z.jpg" data-orig-size="640,426"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4091338317_885720a154_z"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Photo by JD Hancock @Flickr (cc)&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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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지디넷 코리아에 기고한 컬럼.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225193609">인간 뛰어넘는 슈퍼 지능 예측의 함정</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a href="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216162553">지난 칼럼</a>에서, 슈퍼 인공 지능이 만들어낼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려에 관해 얘기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묵시록의 실체는 언제 나타난단 말인가? 이번엔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지난 칼럼의 후편이다.</p>
<p>우선 오해의 소지가 있어, 용어 수정부터 해야겠다. 지난 글에서 ‘슈퍼 인공 지능’이라고 했던 용어는 사실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수준의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도달하게 되면, 이 인공 지능이 스스로 ‘지능 폭등’을 일으켜 인간을 능가하는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기 때문에(이 지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도 부른다), 엄격히 말하면 그 지능은 ‘인공’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슈퍼 인공 지능”이라는 용어는 그냥 “슈퍼 지능” 또는 “초지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p>
<p>좌우간, 인공 지능 연구자, 미래학자, 그리고 과학 저술가 등 이 분야에 심도 있는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그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슈퍼 지능이 언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전망한다. 일부는 뭔가 천기누설이라도 하듯, 선지자처럼 ‘예언’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쇼맨십은 ‘그래서, 그게 도대체 언젠데?’라고 하는, 대중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약간의 의무감 내지는 인간의 공통적 미래 본성의 발현일 것이다.</p>
<p>근래에 인공 지능 분야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미래 예측은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견해일 것이다. 근래라고는 했지만, 그의 책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도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좌우간 아직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 예측값이니 소개해 보겠다. 이 책에 의하면, 커즈와일은 우선 개인용 컴퓨터가 인간 두뇌 용량을 넘는 시점을 2020년으로 봤다. (얼마 안 남았다! 최근엔 그때쯤 애플 자동차가 출시될 거라는 <a href="http://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5-02-19/apple-said-to-be-targeting-car-production-as-soon-as-2020">소문</a>도 돈다) 그리고 대략 그 시점에 나노 로봇 시대가 열리고, 이를 통해 인간 두뇌를 속속들이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 지능이 2029년에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 (작년에 13세 소년 버전의 인공 지능이 세계 최초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대해 커즈와일이 <a href="http://www.kurzweilai.net/ask-ray-response-to-announcement-of-chatbot-eugene-goostman-passing-the-turing-test">반박</a>하고 나선 것을 기억하는가? 그는 2029년 튜링 테스트 통과 여부를 두고 로터스 창립자인 밋치 케이푸어(Mitch Kapor)와 내기까지 한 상태다) 이후 2030년 말쯤이면 인간 두뇌를 기계에 업로딩하는 게 가능해지고(그래서 인간 2.0으로 거듭나게 되고), 2045년 즈음에 드디어 인간을 능가하는 슈퍼 지능이 나타나는 특이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커즈와일이 이 책에서 근거로 현란하게 보여주고 있는 수십 종의 지수함수, 멱함수 그래프를 보다 보면, 이 예측 시점들이 정말 과학적 분석의 결과라고 믿고 싶어진다.</p>
<p>정말일까?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할까? 친절하게도,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최근 펴낸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라는 책에서, 인공 지능 관련 전문가 170명의 예측을 설문 조사한 통계 자료를 싣고 있다. 그 통계의 중간값 결과에 의하면, 전문가들이 보는 인간 수준 기계 지능에 도달할 시점은 2022년까지는 10% 가능성, 2040년까지는 50% 가능성, 2075년까지는 90% 가능성이다. 또한, 이 시점으로부터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슈퍼 지능의 도래 시점은 2년 내 가능성이 10%, 30년 내 가능성은 75%였다. 따라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커즈와일보다는 보수적이긴 하지만, 다른 전문가 집단이 보기에도 대략 금세기 안에는 슈퍼 지능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어림잡아, 2075년 90% 가능성에, 추가 30년 75% 가능성을 적용하면, 90% * 75% = 67.5%)</p>
<p>정말 그럴까? 하지만 여기에 좀 초를 치는 논문 결과가 있다(<a href="http://https://intelligence.org/all-publications/">Armstrong &amp; Sotala, 2012</a>). 이 논문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공 지능 관련 문헌에 나오는 95건의 예측을 분석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간 수준 인공 지능의 도달 시점 예측이 대략 예측 시점 이후 15년에서 25년에 몰리는 분포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분포 결과가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한 예측만 모아서 분포를 그려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는 옛날 사람이 했든 요즘 사람이 했든, 그 예측이라는 게 전문 지식이나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적 과정(편향 또는 오류)에 기반을 둔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것이다.</p>
<p>공식적 학술 분석 결과는 아니지만, 비슷한 관찰 사례가 있다. 바로 와이어드 편집장인 케빈 켈리(Kevin Kelly)가 마스-<del>갤로우</del>개로우(Maes-<del>Galleau</del>Garreau) 법칙이라 <a href="http://kk.org/thetechnium/2007/03/the-maesgarreau/">이름 붙인 것</a>으로, 미래 유망 기술에 대해 예측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의 예상 수명의 경계에 그 기술의 도래 시점을 갖다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처음 언급한 것은 MIT 미디어 랩의 패티 마스(Pattie Maes)인데, 그녀는 동료 연구자들이 인간 두뇌 업로딩에 대해 예측할 때, 그 기술에 대한 예측 도래 시기가 대부분 예측자의 나이가 70세가 되는 시점에 수렴하는 것을 발견했다. 과학 소설 작가인 조엘 <del>갤로우</del>개로우(Joel <del>Galleau</del>Garreau)도 그의 책 ‘급진적 진화[Radical Evolution]’에서 비슷한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켈리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마스-<del>갤로우</del>개로우 시점을 정의했는데, 이게 바로 예측자의 기대 수명 바로 직전(켈리의 표현을 빌자면, n-1)이다. 켈리는 더 나아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평균적인 마스-<del>갤로우</del>개로우 시점이 그 사회의 공식적인 마스-<del>갤로우</del>개로우 시점이 된다고 가정한다. 즉, 베이비붐 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떠날 2040년경에 대부분의 세계적 규모의 혼란을 일으킬만한 미래 사건들의 시점이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p>
<p>애초 미래 예측의 명제 자체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기술 미래의 시나리오는,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기술은 어쨌든 급격히 ‘발전’할 것이고, 그 전제하에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 대개 가정한다. 일단 인간 수준의 인공 지능이 개발되면 슈퍼 지능이 단기간 내에 달성될 것이라는 예상은 일종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 즉 실제로 실험하거나 검증해 볼 수 없는 사건을 상상해 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를 들어,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라는 사고 실험을 보자. 이는 수학자 라플라스가 가정한 뉴턴 물리학적 결정론을 표현한 것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반대 이론은 많은데, 대표적인 예로 양자 역학의 확률론적 물리학과 배치된다. 즉,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마찬가지로 슈퍼 지능의 사고 실험에도 강한 반론이 있다. 그것은 아직 인간의 사고라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밝혀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사고 실험의 가장 큰 함정이라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라플라스의 악마를 부정한 것처럼, 인간 사고의 메커니즘, 또는 그 메커니즘에 이르는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슈퍼 지능의 악마 논쟁은 그냥 과거의 해프닝으로 묻힐지도 모른다.</p>
<p>그리고 또 한가지, 인공 지능 미래 예측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다른 함정은, 그 예언자들 대부분이 남자들이라는 데 있다. 아까 언급한 켈리의 글에 의하면, 패티 마스가 발견한 또 다른 사실은, 인간 두뇌 업로딩으로 기계적 영생에 이르는 데 관심을 두는 그녀의 동료들은 대부분 남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실질적인 생물학적 방법을 경험하기 때문에, 그런 기계적 영생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이 학술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으므로 진위를 논할 수는 없지만,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다. 남녀 간의 생물적,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상과학물의 주요 소비층이 남자인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인트다. 지난 칼럼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스티브 핑커의 의견도 이와 관련된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파괴적 인공 지능 디스토피아는 지능의 개념에 편협한 우두머리 수컷[alpha-male] 심리를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었다. 핑커는 그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인류 문명의 폭력성이 감소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여성화’를 들고 있다. 그는 여성 친화적 가치들이 폭력을 줄이는 이유를, ‘남자는 여자에 대한 성적 접근성을 놓고 서로 경쟁하려는 동기가 크지만, 여자는 자식을 고아로 만들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에서 물러나 있으려는 동기가 크다’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남녀의 진화 심리학적 차이가 미래를 보는 관점뿐 아니라 실제로 미래가 만들어져 가는 방향성도 (예를 들어 핑커가 주장하듯 폭력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을지 모른다.</p>
<p>이제 기술 예찬론자들의 기술 지상주의적 미래 예측에서 조금 벗어나 보자. 한 논문(<a href="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16328705000066">Brier, 2005</a>)에서 미래학자들의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미래학 관점에서 보는 미래 시점은 관심 주제에 따라 크게 변동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략 향후 20년에서 50년 사이로 가정된다. 앞서 언급한 미래 시점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추세를 근간으로 하는 기술론적 미래 예측과는 그 관점이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심’을 두는 미래의 시점이다.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시대, 즉, 향후 20년에서 50년의 사회 변화인 것이다. 우리의 관심이 바로 우리 자식들에게 쏠려있듯, 미래에 대한 관심은 우리 자식들의 시대에 대한 관심이다. 기술론자의 미래 예측 시점이 비슷하게 수렴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내재된 본능적 인간성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p>
<p>하지만 기술 유토피아(또는 디스토피아) 시나리오가 꼭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건설적인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커즈와일은 그가 예언한 (그리고 그가 97세가 되는) 2045년, 특이점의 순간을 보기 위해 매일 150여 알의 노화방지제, 비타민 등을 먹으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생물학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인간 2.0으로 업그레이드된 기계적 영생의 삶을 기대하는 기술 예찬론자들은 많다. 이런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엑스트로피아니즘(Extropianism) 같은 기술-이즘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이래, 새롭게 부활한 기술 신을 받드는 21세기 신흥 종교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럼 기계적 영생의 삶을 살게 된 인간 2.0들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21세기 버전인가? 이런 특이점 주의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휴거’에 빗대, ’괴짜들의 휴거[the Rapture of the nerds]’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표현의 출처로 알려지기도 한-본인은 아니라지만- 과학 소설가 켄 매클리언(Ken MacLeon)은, 오히려 인간 본질에 충실했던 전통적 종교와는 달리 이런 기술 예찬론자들이 실은 더 반휴머니즘적이라고 <a href="http://aeon.co/magazine/philosophy/ken-macleod-socialism-and-transhumanism/">비판</a>한다.</p>
<p>영어식 표현이긴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때 미래 시점을 ‘시간 지평[time horizon]’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평은 영원히 다다를 수 없다. 언제나 지평은 저만치 멀리 있다. <span class="s6">시간 지평의 너머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이지만,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항해하는 배의 키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목적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를 아는 것은 단지 마음의 혀끝을 위한 MSG일 뿐이다. 게다가 저 지평 너머에 나를 위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리라는 상상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span>‘새로운 지평을 연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는 그 목적지와 현재의 방향감을 가지고 꾸준히 미래의 시간 지평을 열어나가는 개척자 부모 세대로서, 우리 자식 세대에게 새롭게 열릴 또 다른 지평을 넘겨주고 영광스럽게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더 가치 있게 들리지 않는가?</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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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세기 탈로스 신화: 슈퍼 인공 지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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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Feb 2015 01:08:2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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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슈퍼 인공 지능이 인류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급기야 엣지[Edge]의 2015년 질문 주제로 "생각하는 기계"가 선정되었고, 200명에 가까운 세계 석학들이 답을 달았다. 그러나, 사실 이건 있지도 않은 신화에 대한 얘기일 뿐이고,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인공 지능으로 당장 바뀌게 될 우리 사회,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슈퍼 인공 지능이 인류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급기야 엣지[Edge]의 2015년 질문 주제로 &#8220;생각하는 기계&#8221;가 선정되었고, 200명에 가까운 세계 석학들이 답을 달았다. 그러나, 사실 이건 있지도 않은 신화에 대한 얘기일 뿐이고,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인공 지능으로 당장 바뀌게 될 우리 사회,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em></p>
<p><span id="more-3167"></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figure id="attachment_3176"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76"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s://www.flickr.com/photos/jdhancock/7801182534/in/photolist-cTn6M9-7Uxhx9-5LpzsN-a6z7Kp-8akZTE-37sJCF-bxfJwH-4WBw8k-d2EUi-81MXJq-9VsN7R-dSrHa-2Sb7c-DkL-7xkD-eax6ap-a9HrBK-4YaDp7-8LgxD-hKwyn-cfv5qj-863fGt-4GLf8H-3LFq7z-FtcTf-bo4Lj1-8NYffe-eEuk9H-bWU5c4-eeaNLg-5VPLh7-4vFr76-NA5rP-dtgib-5Drouk-6KYR2s-CBNN3-7ef4Vt-4tjEND-7B1Kkj-dcBE4C-8H2ihf-tyKQ-245jE6-7Nojam-AAKAq-7t5BDs-6pBD5-eYwfFt-hyUv"><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76"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50217/super-artificial-intelligence/attachment/7801182534_19a6c11c43_z/"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5/02/7801182534_19a6c11c43_z.jpg" data-orig-size="640,426"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quot;orientation&quot;:&quot;0&quot;}" data-image-title="7801182534_19a6c11c43_z"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Photo by JD Hancock @Flickr (cc)&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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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지디넷 코리아에 기고한 컬럼. 아래 링크 참조.</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216162553&amp;type=xml">21세기 탈로스 신화: 슈퍼 인공 지능</a></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원고)</p>
<p>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탈로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거인이다. 이는 제우스가 (연인인 유로파를 위해)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준 것으로, 크레타 섬을 하루 세 번 돌면서 무단 접근하는 배들에 바위를 집어 던지고, 상륙하려는 사람들을 불타는 몸으로 껴안아 죽게 한다는 가공할 위력의 (일종의) 로봇이다.</p>
<p>문명 이래로 반복되는 인조 인간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작년, 그리고 해를 넘겨서까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아마도 가장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주제는 가공할 위력의 ‘인공 지능[AI]’일 것이다. 바로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는 최첨단 탈로스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최첨단 키워드 자체는 이미 신상은 아니다. <a href="https://twitter.com/pmarca/status/564535075006476289">마크 앤드리슨이 며칠 전에 날린 트윗</a>이 이 키워드의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다.</p>
<blockquote><p>1960-1985: “AI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8221;<br />
1985-2010: “AI는 실패로 끝난 대실망이다!&#8221;<br />
2010-current: &#8220;AI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8221;</p></blockquote>
<p>왜 다시 인공 지능인가? 흔히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컴퓨팅 파워의 지수함수적인 증가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웹 서비스 기반의 (진짜) 빅 데이터의 등장, 그리고 이 빅 데이터를 이용한 기계 학습, 특히 ‘딥 러닝’ 기술 적용이라는 환경 변화가 인공 지능의 붐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lt;트렌센던스&gt;나 &lt;그녀[Her]&gt;, 최근의 &lt;엑스 마키나&gt;까지, 최근 부쩍 늘어난 인공 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 철학자인 닉 보스트롬은 최근 출간된 ‘초지능[Superintelligence]’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의 가치, 문제점, 시나리오에 대한 진지한 화두를 던졌다. 이에 <a href="http://www.cnbc.com/id/101774267">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스티븐 호킹)와 가장 선망되는 첨단 기업가(엘론 머스크)가 인공 지능의 위험성을 경고</a>하고 나섰고, <a href="http://www.reddit.com/r/IAmA/comments/2tzjp7/hi_reddit_im_bill_gates_and_im_back_for_my_third/">세계 최고의 부자(빌 게이츠)가 맞장구</a>를 쳤다. 과연 슈퍼 인공지능이 인류 멸망의 &#8216;존재론적 위험[Existential Risk]&#8217;을 가져올 것인가?</p>
<p>이에 대해, 작년 하반기에 세계 석학들의 온라인 결집소라는 엣지(Edge.org)에 컴퓨터 과학자인 재론 래니어가 ‘<a href="http://edge.org/conversation/the-myth-of-ai">AI의 신화[The Myth of AI]</a>’라는 제목의 의견을 제시하자, 스티븐 핑커 등 쟁쟁한 학자들이 댓글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급기야 엣지에서는 매년 석학 회원들에게 한 가지 주제를 던져 의견을 받는 행사의 2015년 주제를 아예 ‘<a href="http://edge.org/annual-question/what-do-you-think-about-machines-that-think">생각하는 기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What do you think about machine that think?]</a>’라고 정했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물리학, 심리학, 인지과학, 뇌과학, 컴퓨터 과학, 저널리즘, 예술 등 인공 지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의 자타 공인 전문가 <a href="http://edge.org/responses/q2015">186건의 답변</a>이 올라와 있다.</p>
<p>우선 재론 래니어가 이 ‘신화’를 반박하는 의견부터 살펴보자. 래니어는 현재 나오고 있는 인공 지능의 위협은 가짜라고 단언한다. (진짜보다 가짜의 위험성이 더 크단다) 현재의 패턴 인식 기술, 예를 들어 사람 얼굴 인식이나 번역 같은 분야에서 최근의 딥 러닝 기법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이것은 사용자들이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대가 없는 자발적 빅 데이터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선 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이 만들어내는 추천을 사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그런 사용자들이 만들어내는 빅 데이터가 다시 인공 지능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경험적 비교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이것은 잘못된 자기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라이브러리가 빈약한 넷플릭스가 첫 화면에서 추천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을 사용자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럼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가 순수한 데이터라고 말할 수 있나?</p>
<p>빅 데이터의 다른 문제는 이렇게 사용자들이 쌓아가는 데이터에 대해 공식적인 대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경제 시스템이라면 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 (사용자들이 빅 데이터를 안 만들면 그만 아닌가? <a href="http://www.businessinsider.com/twitter-maus-q4-2014-2015-2">줄어들고 있는 트위터 사용자 수</a>를 보라. 야후, 싸이월드, 마이스페이스 등 불과 몇 년 전 성공 신화들의 현재는 어떤가)</p>
<p>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간의 많은 과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인간의 생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어쨌든 기술이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풀릴 문제가 아니냐는 항변에 대해, 래니어는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곳의 지리도 모르는 상태로 가속도만 높아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며 반박한다. 이런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날로 영향력만 높아지고 있는 기술 회사들(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전통적 종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AI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마치 예전엔 종교 권위의 엘리트 집단을 대중들이 떠받치고 있었듯이, 빅 데이터 알고리즘을 가진 기술 엘리트 집단을 떠받치기 위해 소비자들이 이용되고 있는 새로운 양상의 종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p>
<p>여기에 엣지의 2015년 질문에 대한 답변들도 몇 가지 간단히 들여다보자. (너무 많아서 아는 이름들 위주로 정리했음을 용서하시라)</p>
<p>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더 먼 미래적 관점에서 볼 때, 결국 비 유기체적인 기계 마음이 유기체적인 인간 마음을 압도하고 세상을 철저히 변화시키는 포스트 휴먼 시대가 되리라 전망한다.</p>
<p>철학자 닉 보스트롬도 ‘슈퍼 지능’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비하기 위한 인공 지능의 제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능과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얼마 전 닉 보스트롬은 스티븐 호킹, 엘론 머스크, 마틴 리스 등과 함께 바람직한 인공 지능 개발에 대한 <a href="http://futureoflife.org/misc/open_letter">성명서</a>에도 서명했다)</p>
<p>철학자 대니얼 대닛은 생각하는 기계가 문제라기보다는 생각을 못 하는 기계에 너무 큰 권위를 주게 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p>
<p>저술가이자 와이어드 편집장인 케빈 캘리는 창발하는 인공 지능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이질적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다름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더 심오한 과학적 질문들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p>
<p>과학 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인간의 지능이 그랬듯,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이 그렇듯, 집단적, 협동적, 분산적 지능이 급진적 기계 지능을 만들 것이라 예상한다.</p>
<p>MIT 미디어랩 소장 조이치 이토는 인공 지능이 인간을 능가해도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예술, 문화 등에 역할 분담을 하여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p>
<p>저술가이자 출판업자인 팀 오라일리는 인터넷 환경에서 이미 인간과 기계는 글로벌 인공 지능이라는 거대한 유기체 안에서 서로 연결된 미생물체라고 생각한다.</p>
<p>과학사학자 조지 다이슨은 디지털 컴퓨터가 아니라 그것들이 네트워크화되어 나타나는 아날로그 프로세스(마치 뉴런의 동작처럼 네트워크의 위상이나 연결 간의 펄스 주파수로서 처리되는 것처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공 지능으로 발전하게 되리라 전망한다.</p>
<p>심리학자 매튜 리버먼은 3인칭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1인칭 관점에서 스스로 생각을 경험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1인칭 관점의 경험의 기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p>
<p>심리학자 존 투비는 인공 지능이 진화의 최적화된 산물인 욕망에 들끓는 인간 지능을 닮아야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 생각한다.</p>
<p>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인간 마음에 대한 계산 이론이 결국 기계 마음을 만들어 내겠지만, 그 위험성의 경고는 마치 21세기 초 Y2K 버그 걱정 같은 미미한 문제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누가 안전장치도 없이 그런 위험을 내버려두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파괴적 인공 지능 디스토피아는 지능의 개념에 편협한 우두머리 수컷[alpha-male] 심리를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p>
<p>대략 분위기를 종합해 보면, 1) 아직 인간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2) 먼 얘기긴 하지만 언젠가는 될 것이다, 3) 상상하기 힘든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4) 좋은 결과를 낼 수도 나쁜 결과를 낼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해야겠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애초에 재론 래니어가 제기했던 현실적인 우려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 지금의 빅 데이터 기반의 딥 러닝 알고리즘은 지속 가능한가? (소비자가 계속 거기 묶여 있을까?) 괜히 인공 지능에 대한 헛된 신화의 공포가 꾸준히 정진해야 할 연구 환경을 해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인공 지능 연구 윤리 지침은 과연 어떤 제한을 가져오게 될까?) 이런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문제 말이다.</p>
<p>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뇌과학자 김대식이 출연해 제기했던 문제점이 더 와 닿는다. 그의 주장은, 자율성이 부여되는 ‘강한’ 인공지능보다는, 현 수준의 인공 지능이 극대화되는 ‘약한’ 인공지능에서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점을 더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카이프가 동시통역을 하고, 블룸버그가 자동으로 기사 작성을 하고, IBM이 특허를 대신 써주는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면, 통역사, 기자, 변리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산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GDP의 부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향상되겠지만, 그 부를 과연 누가 가져가게 되는 것일까? (피케티가 증명한 이미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p>
<p>학자들은 이제 자본주의의 종말을 얘기한다. 이제 어떤 새로운 사회가 되든, 좋으나 싫으나 인공 지능이 핵심적 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그런 사회 격변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먼 미래의 신화를 걱정하는 건 한가한 소리가 될 것이다. 슈퍼 인공 지능과 고질라는 현실의 걱정거리가 아닌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라는 면에서 같다. 재밌게 영화를 봤으면, 이젠 영화관 밖에서, 기계가 내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 상황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이 사회는 도대체 날 위해 뭘 준비하고 있을까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p>
<p>탈로스 신화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이 괴력의 로봇은 목에서 발목까지 하나의 정맥에 신성한 피인 이코르가 흐른다. 탈로스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이 정맥을 막고 있는 발목의 못이다. 이 못을 빼버리면 이코르가 다 빠져나가 버려 결국 탈로스는 죽는다.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슈퍼 인공 지능의 발목에서 이제 못을 빼버리고, 거기서 흘러넘치는 인공 지능의 진짜 이코르를 이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p>
<p>&nbsp;</p>
<p>이윤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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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마트홈의 정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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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gemong]]></dc:creator>
		<pubDate>Mon, 03 Feb 2014 05:53:30 +0000</pubDate>
				<category><![CDATA[Insights]]></category>
		<category><![CDATA[Samsung]]></category>
		<category><![CDATA[SK Teleco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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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새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스마트홈’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10년 전의 그 허브 박스와 플랫폼을 또 들고 나왔다.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스마트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고객이 장바구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것은, 스마트홈이 앞으로 갖게 될 서비스들이라고 늘어놓고 있는, 아직 있지도 않은 상품들이 될 것이다. 시작은 그런 구체적인 상품들의 도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새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스마트홈’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10년 전의 그 허브 박스와 플랫폼을 또 들고 나왔다.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스마트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고객이 장바구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것은, 스마트홈이 앞으로 갖게 될 서비스들이라고 늘어놓고 있는, 아직 있지도 않은 상품들이 될 것이다. 시작은 그런 구체적인 상품들의 도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em></p>
<p><span id="more-3133"></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del>지난주</del>얼마전 SK텔레콤이 ‘세상에 없던 전화∙TV를 내놨다’는 <a href="http://www.sktelecom.com/press/detail.do?idx=3154">보도 자료</a>를 냈다. 오호라, 새해 비전 선포 같은 분위기의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다. 하지만 내용에 들어가, 홍보 문구 몇 개를 읽어보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이다. “신개념 홈 Hub 기기 &#8216;B Box&#8217; 하나면, 미래 ‘스마트홈&#8217;이 현실로.”</p>
<p>조금 더 가보자. &#8216;B Box&#8217;에 대한 설명이다.</p>
<blockquote><p>B box는 IPTV와 VOD(주문형 비디오)는 물론 고화질 영상 통화, 홈 모니터링, 가족간 SNS, 클라우드 서비스 등 유무선 통신서비스와 최적으로 융합된 홈 미디어 기능을 통합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OS 기반 ‘홈 허브(hub) 기기’이다.</p></blockquote>
<p>휴, 일단 알겠다. 그런데 SK브로드밴드 사이트의 <a href="http://service.skbroadband.com/bbox/guide_settop.asp" target="_blank">설명</a>에 의하면, 놀랍게도 이 박스엔 카메라가 없다. 그럼 도대체 고화질 영상 통화와 홈 모니터링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한 <a href="http://blog.sktworld.co.kr/4402" target="_blank">설명</a>은 SK텔레콤 블로그에서 어렵게 찾았다. 카메라는 3만 원을 주고 별도로 사야 한다. 결국, B Box의 실체는, 몇 가지 앱이 미리 탑재된, 월 임대료 3,000원의 (구글 안드로이드 TV와는 호환되지 않는) 안드로이드 셋탑박스에 불과하다.</p>
<p>몇 주 전 삼성전자 CES <a href="http://www.samsung.com/sec/news/corpnews/2014/ces-samsung-electronics-samsung-smart-home-anchor-stand-ups" target="_blank">보도 자료</a>를 봤을 때의 기분이 데자뷔처럼 겹쳐진다. 삼성은 가전과 IT 기기(스마트TV, 스마트폰, 웨어러블)를 통합 플랫폼으로 연동시키는 &#8216;삼성 스마트홈&#8217;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것이다. 즉, 스마트TV, 스마트폰, 그리고 갤럭시 기어로 집안의 가전을 제어하는 것이 주요 서비스이다. 그런데 중심으로 내세운 스마트홈 통합 플랫폼의 실체가 궁금하다.</p>
<p>결론적으로 SK텔레콤이 말하는 ‘스마트홈’이란, ‘스마트 IPTV’인가? 삼성전자가 말하는 ‘스마트홈’이란, &#8216;사물 인터넷 플랫폼&#8217;인가?</p>
<p>아마 SK텔레콤과 삼성전자 모두, 이런 단순한 결론은 반대할 것이다. 둘 다 스마트홈의 결론은 확장성으로 마무리한다. 예를 들어, B Box 소개 자료에는 화상 회의, 클라우드 게임, 클라우드 PC, IoT, 헬스 케어, 에너지 관리 같은 항목이 적혀 있다. 삼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 스마트홈은 향후 스마트 출입통제, 에너지, 건강, 친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힐 예정이라고 설명한다.</p>
<figure id="attachment_3134"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34" style="width: 64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34" data-permalink="http://digxtal.com/insight/20140203/identity-of-smart-home/attachment/slide-75-1024/"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jpg" data-orig-size="1024,587"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 data-image-title="slide-75-1024"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B Box 스마트홈 서비스 확장 (출처: SK텔레콤 공식 블로그)&lt;/p&gt;
"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480x275.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jpg" class=" wp-image-3134 " style="border: 0px;" alt="B Box 스마트홈 서비스 확장 (출처: SK텔레콤 공식 블로그)"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jpg" width="640"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jpg 1024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slide-75-1024-480x275.jpg 480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3134" class="wp-caption-text">B Box 스마트홈 서비스 확장 (출처: SK텔레콤 <a href="http://blog.sktworld.co.kr/4404">공식 블로그</a>)</figcaption></figure>
<p>두 회사 보도 자료에 소개되어있는 키워드를 보면, ‘스마트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스마트 라이프’, 또는 &#8216;스마트 리빙’이 두 회사가 바라보는 ‘스마트홈’의 궁극적 모습이다. 갑자기 시계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21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 이 두 회사는 지금과 거의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땐 그래도 꽤 미래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고객들의 관심을 끌진 못했고, 한동안 그 사업은 사라진듯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다시 나왔다. 상황이 어떻게 바뀐 것일까?</p>
<p>애석하게도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이렇다. ‘스마트홈’은 실체가 없다. ‘스마트 라이프’? 대단히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서비스인가? 소비자들이 장바구니에 담을 상품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SK텔레콤과는 달리 꾸준히 스마트홈 사업의 끈을 이어왔던 KT는 스마트홈을 스마트홈패드, 키봇(교육용 로봇) 등 스마트 홈 디바이스로 풀고 있다. LG유플러스도 비슷한 홈보이라는 제품을 팔고 있다. 그걸 SK는 셋탑박스로 풀어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은 스마트 가전을 묶고 싶어한다.</p>
<p>자, 거품을 다 걷고 한번 보자. 소비자의 장바구니엔 태블릿이나 IPTV 셋탑박스, 가전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 과연 무엇이 스마트홈인가.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이 내놓는 건 항상(!) ‘홈 모니터링’이나 ‘가전 제어’뿐이다. (위키피디아에서 ‘smart home’을 검색하면 ‘home automation’ 페이지로 전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p>
<p>이번엔 시계를 한 60년 전으로 돌려보자. 50~60년대 미국 잡지에 나오는 가정용 심부름 로봇과 자동 조리 기구가 마련된 미래 주거 환경 삽화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미래상이다. 미래에도 경제는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고, 과학 기술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막연한 기대감이다. 독자들은 쉽게 그런 꿈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밝지 않은 미래를 처음 경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기술은 항상 경제성과 타협하며 상용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집에 심부름 로봇과 자동 조리 기구를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젠 그런 걸 미래라고 그리면 유치하다고까지 할 것이다.</p>
<p>시계는 다시 10년 전이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막연한 것은 천성인 것 같다. 이번엔 스마트홈이 그렇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그래도 심부름 로봇과 자동 조리 기구는 대신 로봇 청소기와 전자레인지를 갖추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치자. 스마트홈은 정체도 불명이다. 그럼에도, 온갖 미디어가 다 모여있고, 보안도 되고, 원격에서 보일러도 켜고, 건강 관리와 에너지 관리까지 다 해준다는 스마트홈의 (데모) 비전을 보여주면, 소비자들은 대부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그 멋진 스마트홈을 위해 ‘플랫폼’을 집안에 끌어들이진 않았다.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게 10년 전의 결과이다. 집의 붙박이처럼 통째로 밀어 넣어주지 않으면, 플랫폼으로서의 스마트홈은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개별 스마트홈의 상품은 자취를 감추고, 건설과 도시계획 수준의 U-City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지 않았나.</p>
<p>물론, 그 실패한 개념을 또 들고 나오는 이유는 앎직 하다. SK텔레콤은 IPTV의 다음을, 삼성전자는 스마트TV의 다음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숙제가 남아있다. IPTV는 성공한 뉴미디어인가? 스마트TV는 성공한 플랫폼인가? IPTV나 스마트TV가 스마트홈이라는 통합된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개념을 말하기 전에, IPTV가 정말 개인 미디어의 중심인지, 스마트TV가 진정 홈 플랫폼의 중심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문제는 이 과도기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이냐지, 어떻게 확장할 것이냐는 아니다.</p>
<p>더욱이 스마트홈의 방향성은 소비 경향과도 상반되어 있다. 뉴미디어는 더는 집이 아니라 움직이는 개인에 집중되고 있다. 왜 SK는 어렵게 모바일 IPTV를 만들었고, 그럼에도 왜 그 상품이 그리 임팩트가 없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도 B TV의 다음이 과연 새로운 셋탑박스일까? 고객은 때론 모든 것을 다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꼭 필요한 것에만 돈을 낸다. 삼성은 최첨단 스마트 TV 개발에 온 역량을 쏟아 부었음에도, 왜 고객들은 그 스마트 기능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자. 그런데도 과연 스마트 TV에 추가될 기능이 가전 제어일까?</p>
<p>물론 무슨 비관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앞으로 미디어 소비는 더 다양해질 것이고, 사물 인터넷은 점차 확산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헬스 케어는 날로 중요해질 것이고, 에너지 관리도 곧 절실해질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스마트홈’이라는 가상의 상품 또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IPTV나 스마트TV의 미래는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 상품, 사물 인터넷 가전, 헬스 케어 서비스, 에너지 관리 서비스, 그 개별 상품과 서비스 하나하나가 진짜 소비자에게 보이는 실체이다. 또한, 그 하나하나가 사업자들이 넘어야 할 도전이다. 그 어느 하나라도 쉬워 보이는 과제가 있는가?</p>
<p>통합 플랫폼이 아니라, 개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LG전자가 내놓은, 가전제품과 채팅을 한다는 ‘홈챗’ 서비스는 발상이 깜찍하기라도 하다. 물론 가전이 인공지능을 갖추지 않는 다음에야 채팅의 포맷이 무슨 의미겠느냐만, 사물 인터넷의 미래를 그런 은유로 그려내겠다는 의지가 가상하다. 구글이 스마트 온도조절기 회사인 네스트를 거금에 인수했다는 소식도 솔깃하다. 구글이 스마트홈 시장을 장악하려는 행보라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될 것이었으면, 이미 구글 파이버나 구글 TV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네스트는 팔리는 제품을 만든다. 구글이 그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셋탑박스 임대료 모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스마트 기능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최신 모델의 가전을 사게 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한 온도조절기가 필요한 소비자가 있고, 그것을 아주 세련된 솜씨로 잘 만들어줬기 때문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p>
<p>플랫폼 사업 모델은 철저히 사업자 지향적이지, 결코 소비자 지향적이지 않다. 카메라가 포함되지 않은 홈 모니터링 서비스를 플랫폼의 대표 상품으로 소개하는 건 결코 실수가 아니다. 소비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플랫폼 적으론 아무 결함이 없기 때문이다. 카메라야 써드 파티들이 잘 알아서 만들어 줄 것이라 상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참신한 ‘스마트&#8217; 카메라가 붙을지도. 하지만 이미 소비자가 관심이 없는 플랫폼에 어떤 사업자가 관심을 두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소비자는 네스트의 제품은 산다. 거기엔 삼성 플랫폼도, SK 플랫폼도 필요 없다. 그렇다고, 누가 이 플랫폼을 위해 그런 제품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줄까. 혹, 삼성이나 SK가 스스로 네스트 같은 제품을 만들 생각은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예를 들어 에너지 관리는 도대체 무슨 수로 한다는 말인가. 또다시 B2B 모델로, 건설 모델로, U-City 모델로 결론을 낼 것인가.</p>
<p>그렇다면 정말로 지난 과거는 완벽하게 잃어버린 10년이 될 것이다.</p>
<p>&nbsp;</p>
<p>[게몽]</p>
<p>&nbsp;</p>
<p>* 알림: 너무 부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을 양해 바란다. 필자는 약 10년 전에 SK텔레콤 디지털홈 사업에 몸담고 있었다. 안타까운 스마트홈 사업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와 감정을 숨길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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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넷플릭스 휴리스틱 요금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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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gemong]]></dc:creator>
		<pubDate>Sat, 01 Feb 2014 20:04:2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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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약] 넷플릭스가 7.99달러 요금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동시 접속 스크린 수나 품질 차이 등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오판을 해버리는 소비자의 휴리스틱 심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생각하는 요금 전략의 방향도 그런 전제가 깔렸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요약] 넷플릭스가 7.99달러 요금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동시 접속 스크린 수나 품질 차이 등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오판을 해버리는 소비자의 휴리스틱 심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생각하는 요금 전략의 방향도 그런 전제가 깔렸다.</em></p>
<p><span id="more-3130"></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월 7.99달러라는 단일 요금제를 고수하던 넷플릭스가 작년부터 여러 요금제를 실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동시에 4개 스크린 접근이 가능한-기본형은 동시 2개 스크린 접근- 가족형 11.99달러 요금제를 내놓더니, 12월에는 1개 스크린에 제한된 SD 해상도 전용 6.99달러 요금제를 발표했다. 미국이었으면 제2의 퀵스터(Qwikster) 사태를 맞았을 대담한 가격 인상까지도 실험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가격을 1유로 올린 7.99유로(10.94달러)로 변경한 것이다.</p>
<p>이 실험들을,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8216;좋은, 더 좋은, 최적의 가격&#8217;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입에 발린 소리다.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던 넷플릭스가 이런 실험을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당연히 이런 논리일 것이다. 현재의 가격을 언제고 유지할 수는 없다. 인플레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성장을 지속하려면 매출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저가격 고정 요금제로는 이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방법은 가입자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긴 하나 곧 한계에 부딪힌다. 해외로 확장하여 가입자 풀을 늘려야 하지만, 그 비용도 만만찮다. 게다가 컨텐트 소싱 비용은 점점 버거워가는데, 가입자들은 점점 볼 게 없다는 볼멘소리만 한다. (그런 팰릭스 새먼의 불평에 대해선 <a href="http://digxtal.com/insight/20140107/is-netflix-doomed/">지난 글</a>을 보라.)</p>
<p>자, 기업이 고객에게 최적의 가격을 찾아 실험한다는 것은 최저 가격으로 보답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高)의 가격을 찾겠다는 소리다. 즉, 현재의 (평균) 가격을 올리고 싶다는 얘기다. 1달러 저렴한 요금제를 내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요금제는 모든 가입자에게 열려있지 않다. 일부 신규 가입자들에게 테스트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실험의 목적은 명백하다. 가격에 의한 신규 가입 유도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p>
<p>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a href="http://www.theatlantic.com/business/archive/2014/01/the-behavioral-psychology-of-netflixs-plan-to-charge-higher-prices/283367/">얘기</a>를, 넷플릭스의 CFO인 데이비드 웰스가 하고 있다.</p>
<blockquote><p>요금 정책 이론에 보면 소비자들이 휴리스틱에 의한 선택 판단도 있다. 그래서 1달러가 논리적 기준으론 크게 의미가 없을지라도 소비자들은 중간 것이든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선택하게 하는 지름길을 가질 수 있다.</p></blockquote>
<p>이게 무슨 말인가. &#8216;휴리스틱&#8217;은 무엇이고, &#8216;지름길&#8217;이 무엇인가. 해석이 매끄럽지 않지만, 이 용어엔 추가 설명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양해를 바란다.</p>
<p>&#8216;휴리스틱(heuristic)&#8217;이란, 이성이나 추론이 아니라, 경험이나 직관을 바탕으로 어림잡아 판단을 해버리는 심리 과정을 의미한다. 심리학에선 이런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생각의 과정을 시스템 1, 이성적이고 추론적인 생각의 과정을 시스템 2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스템 1은 수렵 채집 시절의 기억을 유전자에 그대로 담고 있는, 말하자면 생존의 메커니즘이다. 즉, 적으로부터의 위험 회피나, 먹잇감의 빠른 포획을 위해선 직관적인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 1엔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시스템 2가 시스템 1의 입력을 추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p>
<p>문제는 시스템 2는 게으르다는 데 있다. 시스템 2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당연히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수준의 문제라면, 굳이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더라도 시스템 2를 작동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바로 웰스가 말한 &#8216;지름길&#8217;이다. 힘들이지 않고 그냥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시스템 1로 판단을 해버리는 것이다. 1 달러의 값어치를 굳이 따져보려고 수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
<p><a href="http://www.theatlantic.com/business/archive/2014/01/the-behavioral-psychology-of-netflixs-plan-to-charge-higher-prices/283367/">애틀랜틱</a>은 웰스가 말한 요금 정책 이론으로 &#8216;골딜록스(Goldilocks) 효과&#8217;를 들고 있다. 골딜록스는 유명한 전래 동화 &#8216;곰 세 마리&#8217;에 나오는 소녀의 이름이다. 곰의 빈집에 들어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수프를 먹고, 너무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적당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그 소녀 말이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제일 싼 가격과 제일 비싼 양 극단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p>
<p>애틀랜틱에 소개된 실험 결과를 보면 그런 요금 정책의 효과를 알 수 있다. 싼 맥주와 비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은 33% 대 66%이다. 여기에 더 싼 맥주를 추가하면, 가운데 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이 33%에서 47%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번엔 가장 싼 맥주를 없애고 아주 비싼 맥주를 추가하면, 가운데 가격이 된 비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이 66%에서 90%로 치솟는다.</p>
<figure id="attachment_312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3123" style="width: 65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data-attachment-id="3123" data-permalink="http://digxtal.com/netflix-sd-plan-hed-2013/" data-orig-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jpg" data-orig-size="652,367" data-comments-opened="1" data-image-meta="{&quot;aperture&quot;:&quot;0&quot;,&quot;credit&quot;:&quot;&quot;,&quot;camera&quot;:&quot;&quot;,&quot;caption&quot;:&quot;&quot;,&quot;created_timestamp&quot;:&quot;0&quot;,&quot;copyright&quot;:&quot;&quot;,&quot;focal_length&quot;:&quot;0&quot;,&quot;iso&quot;:&quot;0&quot;,&quot;shutter_speed&quot;:&quot;0&quot;,&quot;title&quot;:&quot;&quot;}" data-image-title="netflix-sd-plan-hed-2013" data-image-description="" data-image-caption="&lt;p&gt;넷플릭스 요금제 선택 화면 (출처: 애드위크)&lt;/p&gt;
" data-medium-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480x270.jpg" data-large-file="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jpg" class="size-full wp-image-3123" alt="넷플릭스 요금제 선택 화면 (출처: 애드위크)" src="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jpg" width="652" height="367" srcset="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jpg 652w, http://digxtal.com/wp-content/uploads/2014/02/netflix-sd-plan-hed-2013-480x270.jpg 480w" sizes="auto, (max-width: 652px) 100vw, 652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3123" class="wp-caption-text">넷플릭스 요금제 선택 화면 (출처: <a href="http://www.adweek.com/news/technology/netflix-knocks-dollar-its-sd-streaming-service-new-users-154672">애드위크</a>)</figcaption></figure>
<p>공교롭게도, 넷플릭스의 지금 실험은 6.99달러, 7.99달러, 11.99달러의 3단계 가격 체계로, 위 실험 모델과 같다. 물론 11.99달러 가족형의 비율이 미미한 상태에서 6.99달러짜리가 추가된 형국이니, 딱 위 실험의 재현은 아니다. 사실 6.99달러 요금제는 제한적이고 엔트리 성격이 강하므로 예외적이다.</p>
<p>하지만 가치를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위 요금제는 기본적으로 동시 접속 스크린 수로 구분된다. 이것은 가족의 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므로 판단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다고 치자. 하지만 6.99달러에선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SD 전용이라는 품질 항목이 추가된다. 넷플릭스가 UHD를 지원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예를 들어, 8.99달러짜리 UHD 요금제를 가정해 볼 수도 있다.</p>
<p>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최신 컨텐트를 마냥 늘릴 수 없는 넷플릭스의 입장에선 새로운 프리미엄 요금제를 만들만한 모멘텀이 별로 없다. 그러니, 동시 접속 스크린 수가 아니면, 품질의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8.99달러짜리 UHD 요금제를 받아들일까?</p>
<p>알 수 없다. 3가지 중 가장 무난한 중간을 선택하는 요금 정책 이론의 휴리스틱은 만들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해상도는 최첨단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UHD를 평가하게 될 또 다른 휴리스틱은 여전히 살아있지 않을까?</p>
<p>결국, 넷플릭스는 어떤 식의 휴리스틱이든,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게 될 것이다.</p>
<p>&nbsp;</p>
<p>[게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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