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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stylesheet type="text/xsl" media="screen" href="/~d/styles/rss2full.xsl"?><?xml-stylesheet type="text/css" media="screen" href="http://feeds.feedburner.com/~d/styles/itemcontent.css"?><rss xmlns:feedburner="http://rssnamespace.org/feedburner/ext/1.0" version="2.0"><channel><title>네이버캐스트 :: 건축기행</title><link>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id=118&amp;category_type=series&amp;list_type=all</link><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atom10:link xmlns:atom10="http://www.w3.org/2005/Atom"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href="http://feeds.feedburner.com/NaverCastArchitect" /><feedburner:info uri="navercastarchitect" /><atom10:link xmlns:atom10="http://www.w3.org/2005/Atom" rel="hub" href="http://pubsubhubbub.appspot.com/" /><feedburner:browserFriendly></feedburner:browserFriendly><item><link>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732&amp;category_type=series</link><author><![CDATA[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author><pubDate>Wed, 16 Nov 2011 01:00:00 +0900</pubDate><title>만국박람회 - 서양 건축여행</title><description><![CDATA[ <h3 class="ending_tit_new"><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1/11/04/1633281059443569.jpg" alt=""/></h3><div class="smarteditor_area">			&#13;
				<!-- 컨텐츠 내용 -->&#13;
				
<p>
</p><table class="NHN_Layout_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NHN_Layout_Preset" valign="top">
<table style="WIDTH: 735px; HEIGHT: 241px" class="Basicborder NHN_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35" height="241"><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 class="NHN_Layout_Preset m-tcol-c">
<p align="justify">만국박람회는 19세기 건축에 내재된 경쟁 구도가 드러난 장이었다. 새로운 공산품을 전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국가 간에는 산업화 경쟁의 장이었다. 전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매 계약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경쟁하는 장이기도 했다. 건축적으로는 역사주의와 신건축 운동이 날카롭게 충돌하던 곳이었다. 두 진영은 만국박람회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열리는 축제 성격의 행사라는 점, 한 번 열릴 때마다 십 수 채의 건물들을 새로 지어야 하는 점, 이 건물들이 대부분 일회용이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적 실험을 하는 데 부담이 적다는 점 등은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경향을 적극 드러내서 널리 알리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들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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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 #333333; FONT-SIZE: 12pt">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수정궁</span><br/></strong><img id="013333f12763000f32e85fed"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0/24/17/10px.jpg"/></p>
<p align="justify">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오랜 준비 끝에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야심차게 열어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대 박람회’라 불리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했는데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의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주 전시관 건물이 주인공이었다. 건물 전체를 유리만으로 지어서 19세기 신건축 운동의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중요한 건물이었다. 기술적으로 새로운 발전은 없었으나 대량 생산 체제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물량 공세가 두드러졌으며 철물과 유리가 어우러져 전대미문의 환상적 장면을 선보였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p><!-- 이미지캡션 시작 -->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40"><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8c25940014a0c78696"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1/4/181/01.jpg"/><p class="caption_type2">팩스턴의 수정궁. 1851년 런던 대 박람회의 주 전시관이었던 이 건물은 유리만으로 지어 돌 건물의 전통적 공간개념을 일거에 뒤집었다.</p></td>
<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8c0b2c0022abd262ec"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4/275/02.jpg"/><p class="caption_type2">팩스턴의 수정궁 표준화된 구조 부재.</p></td></tr></tbody></table><!-- 이미지캡션 끝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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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class="NHN_Layout_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NHN_Layout_Preset" valign="top">
<table style="WIDTH: 735px; HEIGHT: 262px" class="Basicborder NHN_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35" height="262"><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 class="NHN_Layout_Preset m-tcol-c">
<p align="justify">길이는 564미터, 폭은 124미터, 높이는 32.4미터, 면적은 70,000제곱미터(=21,212평)였다. 개장 날에는 무려 25만 명의 관람객이 들어왔는데도 실내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효율적 공사를 위해 표준화를 도입했다. 7.2미터 모듈을 반복해서 564미터 x 124미터의 전체 평면을 짰다. 유리는 1.2미터 길이의 패널을 기본단위로 사용했다. 골조는 약 15만 개의 표준 부품을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건식으로 짰다. 건축적 효과는 실로 대단해서 장 스팬, 밝고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찬 거대 공간, 동일 부재의 끊임없는 반복 등은 산업문명의 힘과 미래적 이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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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 #333333; FONT-SIZE: 12pt">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와 에펠탑 </span><br/></strong><img id="013333f12763000f32e85fed"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0/24/17/10px.jpg"/></p>
<p align="justify">런던과 경쟁하던 파리는 이에 뒤질세라 1855년과 1867년 연달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수정궁에 뒤쳐진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1867년 박람회에서는 에펠이 등장해서 타원 모양의 유리 건물을 짓는 등 신건축 운동 진영에게 건축을 맡겼지만 수정궁에 크게 못 미치며 별무 효과였다. 빈과 필라델피아를 거친 뒤 1878년과 1889년에 다시 연달아 파리에서 열리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주역은 계속 에펠이었다. 1878년 박람회에서는 좀 더 성숙한 신건축 양식을 선보인 뒤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1889년 박람회에서는 드디어 에펠탑을 남기며 수정궁을 능가하는 큰 획을 그었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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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id="01336d9039a10012d94b7f76"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1/4/93/03.jpg"/></p>
<p class="caption_type2">에펠의 가라비교. 교량 엔지니어었던 에펠은 여러 다리에서 철물건축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p><!-- 이미지캡션 끝 -->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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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40"><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9072350083e4a9b7c4"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4/116/04.jpg"/><p class="caption_type2">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전경. 에펠탑과 기계관이 보인다.</p></td>
<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9192a300233634165f"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4/298/05.jpg"/><p class="caption_type2">에펠탑 장식 디테일. 기본적으로 토목 구조물인 에펠탑도 가까이에서 보면 레이스 장식으로 뒤덮여 있다.</p></td></tr></tbody></table><!-- 이미지캡션 끝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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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class="NHN_Layout_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NHN_Layout_Preset" valign="top">
<table style="WIDTH: 735px; HEIGHT: 221px" class="Basicborder NHN_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35" height="221"><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 class="NHN_Layout_Preset m-tcol-c">
<p align="justify">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은 철도와 교량 전문 토목기술자로 철물을 이용한 아치형 장 스팬을 핵심 기술로 삼아 많은 다리를 세웠다. 아치를 이용해서 강기슭 양쪽을 연결하고 아치 밖은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었다. 님(Nimes) 근교의 가라비교(Viaduct de Garabit, 1879~88)가 대표작이었다. 이 다리는 165미터 스팬의 아치가 강을 가로지르는 장관을 연출했다. 에펠은 역사 양식 등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토목 구조물에 건축 모티브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가라비교의 이런 구성도 님에 있는 로마시대의 가르교를 본뜬 것이었다. 과거 선례를 철물로 번안한 점에서 부알로와 같은 태도를 가졌다.</p>
<p align="justify"><br/>교량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 잡으면서 도시에 지어지는 대중적 건물에도 구조 자문을 하기 시작했다. 1867년과 1878년 두 차례의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관 구조, 부알로의 봉마르셰 백화점(Le Bon Marche, 파리, 1872~78), 자유의 여신상(1885) 내부 골조 등이 대표적 예였다. 이 끝에 탄생한 것이 에펠탑이었다. 에펠 자신의 개인 경력과 수정궁을 누르려는 프랑스의 국가적 노력이 합해진 결과물이었다. 에펠은 수에즈 운하 공사에 참여했을 때 봤던 피라미드를 기본 모티브로 삼았다. 이외에 슈테판 소베스트르(Stephen Sauvestre)가 건축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쾨클린(Maurice Koeklin)과 누기에(Emile Nougier)가 역학계산을 담당했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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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id="01336d92c22c000f17616d72"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1/4/92/06.jpg"/></p>
<p class="caption_type2">에펠탑. 에펠은 다리에서 쌓은 구조 실력을 바탕으로 310미터의 기록을 세운 대중적인 탑 구조를 세웠다. &lt;출처: NGD&gt; </p><!-- 이미지캡션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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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class="NHN_Layout_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NHN_Layout_Preset" valign="top">
<table style="WIDTH: 735px; HEIGHT: 364px" class="Basicborder NHN_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35" height="364"><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 class="NHN_Layout_Preset m-tcol-c">
<p align="justify">에펠탑도 첨단 기술은 없었다. 에펠이 이전의 다리에서 완성시켰던 아치 기술을 수직으로 올린 것이었다. 전체 구성은 기단, 몸통, 탑의 기본 삼단으로 이루어졌다. 에펠은 가능한 한 부재를 작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총 중량을 대폭 줄여서 내력 부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풍압에도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거미집 형식(spidery system)'으로 불리는 이런 구조방식도 이미 다리에서 쓰던 것이었다. 310미터짜리 탑이 탄생하면서 프랑스는 국민적 자존심에 걸맞은 상징물을 갖게 되었다. 수정궁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기술 대중주의의 산물이었다. 수정궁이 수평 방향으로 기록의 산실이었다면 에펠탑은 높이에서 기록을 세웠다.</p>
<p align="justify">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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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 #333333; FONT-SIZE: 12pt">기계관과 기술 신비주의</span><br/></strong><img id="013333f12763000f32e85fed"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0/24/17/10px.jpg"/></p>
<p align="justify">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기계관(Galerie des Machines)이라는 또 하나의 걸작을 남겼다. 건축가 샤를 뒤테르(Charles Dutert)와 구조기술자 빅토르 콩타맹(Victor Contamin)의 합작품으로 순수 기술적 측면에서는 에펠탑보다 훨씬 중요했다. 기둥 간격이 무려 115미터로 이전까지 장 스팬의 기록이었던 1868년 성 판크라스역의 73미터를 일거에 훌쩍 넘어버렸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기계관의 스팬이 35미터밖에 안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115미터의 스팬은 순수 기술 차원에서 큰 걸음이었을 뿐 아니라 에펠탑의 높이 기록과 함께 대중들에게 끼친 영향도 컸다.</p>
<p align="justify"><br/>기계관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수치 기록에 있지 않고 새로운 구조체계를 심미성과 공학성의 양방향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제시한 데에 있다. 수치 기록은 이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거더 피어(girder pier)를 양쪽에서 사선 방향으로 올려 만든 아치로 기본 골격을 짰다. 115미터 스팬은 종횡 양방향으로 트러스 아치가 지지했다. 여기까지는 볼트라는 전통적 구조방식을 철물로 단순 대체한 전형적 처리였다. 새로운 기술 발전이 세 가지 있었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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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40"><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97e9560018df831475"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4/268/07.jpg"/><p class="caption_type2">뒤테르 &amp; 콩타멩의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기계관 전경. 기둥 없이 115미터의 스팬을 만들어내면서 기술 신비주의에 방점을 찍었다.</p></td>
<td style="VERTICAL-ALIGN: top"><img id="01336d97c73e001425b1e572"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1/4/31/08.jpg"/><p class="caption_type2">기계관의 힌지 점지지 구조 디테일.</p></td></tr></tbody></table><!-- 이미지캡션 끝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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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table class="NHN_Layout_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NHN_Layout_Preset" valign="top">
<table style="WIDTH: 735px; HEIGHT: 242px" class="Basicborder NHN_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35" height="242"><tbody><tr><td style="VERTICAL-ALIGN: top" class="NHN_Layout_Preset m-tcol-c">
<p align="justify">첫째, 강철을 사용해서 재료가 가벼워진 덕분에 아치를 이루는 종 방향 트러스 부재의 두께가 74센티미터로 얇아졌다. 둘째, 아치의 일반적 역학 작용이 사선방향의 하중과 마찰력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이 건물에서는 양쪽에서 캔틸레버로 올라온 사선격자형 거더 피어가 정점에서 만나 핀으로 고정된 것 같은 모양으로 처리했다. 셋째, 지면과 접합은 안정된 면 지지가 아니라 바닥에 구멍을 뚫고 힌지(hinge경첩)를 박은 점지지로 처리했다. 강철의 팽창과 수축에 따른 응력(stress應力)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에펠 등 교량 기술자들이 1870년대 이후부터 첨단기술로 사용해오던 것이었다.</p>
<p align="justify"><br/>기계관은 이런 기술 처리를 이용해서 기계문명의 역동성을 고도의 은유적이고 상징적 차원으로 표현했다. 지면의 점 지지가 가장 압권이었다. 115미터 거리와 44미터 높이의 거대한 아치를 지면 양쪽에서 점 두 개만으로 지지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더 없는 역동성을 상징했다. 기단을 지워서 아슬아슬하게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굳건하게 서 있는 이런 장면은 구조 기술의 가능성과 힘을 가장 자극적인 장면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수정궁과 에펠탑이 기술 대중주에 머물렀다면 기계관에서는 기술 신비주의로 발전했다. 수정궁의 실내가 기술적으로는 진부하면서 유리라는 재료의 특성을 조작해서 얻은 결과라면 기계관은 순수하게 기술만을 이용해서 기계 문명을 신비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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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author_credit">
<div class="writer_area">
<div class="thumb"><img id="012c397355bf00175d1abc0e" class="_attachment _photo"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0/11/11/29/%C7%CA%C0%DA.png"/></div>
<dl class="writer"><dt><strong class="tit">글·사진</strong>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dt>
<dd>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dd></dl><p> </p>
<div class="smarteditor_area" align="right"><strong><span style="COLOR: #333333; FONT-SIZE: 9pt">발행일</span></strong><span style="FONT-SIZE: 9pt"> </span><span style="COLOR: #6a6a6a; FONT-SIZE: 9pt">2011.11.16</span></div></div></div>
<p> </p>
<p> </p>
<p> </p>
<div class="yearstable2">
<h4><img alt="19세기 건축과 동서양 정치문화"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h_tb19.gif"/><span>컨텐츠 제공: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span></h4>
<table class="yearstable2_top" cellspacing="0" cellpadding="0"><colgroup><col/><col/><col/><col/></colgroup><tbody><tr><td><img alt="연도"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area4.gif" width="87" height="30"/></td>
<td><img alt="서양건축"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area5.gif" width="215" height="30"/></td>
<td><img alt="서양 정치문화"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area6.gif" width="215" height="30"/></td>
<td><img alt="동양/한국 정치문화"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area7.gif" width="223" height="30"/></td></tr></tbody></table><div class="yearstable2_inner">
<div class="yearstable2_scr">
<table class="yearstable2_btm" cellspacing="0" cellpadding="0"><colgroup><col class="area4"/><col class="area5"/><col class="area6"/><col class="area7"/></colgroup><tbody><tr><td class="td_year">
<p><span>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뒤랑(1760~1834)</strong> 
<ul class="mgb"><li>[고대와 현대의 모든 장르의 건물들에 대한 비교 모음집, 1800]</li>
<li>[에콜 폴리테크니크 강의록, 1802~05]</li></ul><strong>국제적 신고전주의(1800~1848)</strong> <strong>장 프랑수아 테레즈 샬그랭(1739-1811)</strong> 
<ul class="mgb"><li>파리 뤽상부르 궁(1801)</li></ul><strong>페르시에(1764-1858) &amp; 퐁텐(1762~1853) 파트너</strong> 
<ul class="mgb"><li>[로마에서 설계한 궁전, 주택 그리고 기타 건물들, 1798]</li>
<li>파리 리볼리 가(1802)</li>
<li>[로마와 그 인근의 대표 휴양주택 선집, 1806]</li></ul><strong>장 프랑수아 테레즈 샬그랭</strong> 
<ul class="mgb"><li>파리 개선문(1806/사후 1830년 아벨 블루에가 완공)</li></ul><strong>페르시에 &amp; 퐁텐 파트너</strong> 
<ul class="mgb"><li>파리 카루셀 개선문(1806~08)</li></ul><strong>알렉상드르 피에르 비뇽(1763~1828)</strong> 
<ul class="mgb"><li>파리 마들렌 사원(1807~42)</li></ul><strong>펠릭스 뒤방(1797~1870)</strong> 
<ul class="mgb"><li>파리 에콜데보자르 교육관(1832~39)</li></ul><strong>루이 피에르 발타르(1764~1846)</strong> 
<ul class="mgb"><li>리옹 대법원(1835~?)</li></ul><strong>샤를 밀라데</strong> 
<ul><li>렌 극장(1836)</li></ul></td>
<td><strong>프랑스제국(제1제국)</strong> <strong>나폴레옹 1세(1804~1814)</strong> 
<ul class="mgb"><li>나폴레옹 황제 즉위(1804)</li>
<li>제3차 대프랑스 유럽동맹 결성(1805)</li>
<li>트라팔가 해전(1805)</li>
<li>나폴레옹 대학 창설(1806)</li>
<li>나폴레옹, 베를린 입성(1806)</li>
<li>알베라 전투(1811)</li>
<li>경제 공황 상태에 빠짐(1811~1812)</li>
<li>러시아 원정(1812)</li>
<li>연합군, 나폴레옹 격파(1813)</li>
<li>나폴레옹 퇴위, 엘바섬 유배(1814)</li></ul><strong>프랑스왕국</strong> 
<ul><li>루이 18세(1814~1824) </li>
<li>프랑스 왕국 수립(1814)</li>
<li>나폴레옹, 엘바섬 탈출 - 백일천하(1815)</li>
<li>산업혁명 돌입(1817)</li>
<li>나폴레옹,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사망(1821)</li>
<li>샤를 10세, 의회에 도전(1830)</li>
<li>7월혁명(1830)</li>
<li>루이 필립 - 7월왕정 성립(1830-1848)</li>
<li>알제리 정복 완료(1839)</li>
<li>생시몽(1760~1825)과 푸리에(1772~1837)의 이상도시이론</li></ul></td>
<td><strong>청나라</strong> 
<ul class="mgb"><li>영국인 피어슨, 종두법을 전함(1805)</li>
<li>서양인의 출판과 전도 금지(1805)</li>
<li>소설가 이여진(1763-1830)</li>
<li>영국선, 향산형에 정박 후 마카오 일시 점령(1808)</li></ul><strong>아편수입 엄금(1815)</strong> 
<ul class="mgb"><li>선종(1820~1850, 도광제)</li>
<li>임칙서, 호광 총독이 됨(1837)</li>
<li>영국인, 아편 3만4천 상자 반입(1837)</li>
<li>임칙서, 아편 2만 상자 몰수 소각(1839)</li></ul><strong>조선</strong> 
<ul><li>순조(1800-1834)</li>
<li>정약종 순교(1801)</li>
<li>인정전 낙성(1804)</li>
<li>안동 김씨 세도정치(1805-1863)</li>
<li>홍경래, 평안도에서 농민전쟁(1811-1812)</li>
<li>충청·강원에서 천주교 탄압(1815)</li>
<li>정약용 [목민심서] 완성(1818)</li>
<li>로마 교황청, 조선교구 창설(1831)</li>
<li>추사 김정희(1786-1856)</li></ul></td></tr><tr><td class="td_year">
<p>1820~1870<span>색채주의</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히토르프(1792~1867)</strong> 
<ul><li>[시칠리아의 고대 건축, 1827]</li>
<li>파리 생뱅상드폴(1833-48)</li>
<li>[그리스의 색채주의 건축, 1851]</li></ul></td>
<td> </td>
<td><strong>조선</strong> 
<ul><li>헌종(1834~1849)</li>
<li>프랑스 선교사 모방 밀입국(1836)</li>
<li>기해교난- 외국인 신부, 천주교도 처형(1839)</li>
<li>송광사 화재(1839, 기해교난)</li>
<li>헌종의 친정(1841)</li>
<li>[천세력] 간행(1842)</li>
<li>김대건 신부 (1822-1846), 새남터에서 순교</li>
<li>극에 달한 삼정의 문란</li></ul></td></tr><tr><td class="td_year">
<p>1840~20세기초<span>네오 바로크와 프랑스 제국양식</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에티엔 테오도르 도미</strong> 
<ul class="mgb"><li>파리 대법원(1840~71)</li></ul><strong>르퓌엘(1810-80) &amp; 비스콘티(1791~1853) 파트너</strong> 
<ul class="mgb"><li>파리 누보 루브르(1852~57)</li></ul><strong>르네 바르델</strong> 
<ul class="mgb"><li>리옹 상무성(1857)</li></ul><strong>히토르프</strong> 
<ul class="mgb"><li>파리 북역 두 번째 역(1858~66)</li></ul><strong>가브리엘 다비우(1823~81)</strong> 
<ul class="mgb"><li>파리 생미셸 분수(1860)</li></ul><strong>샤를 가르니에(1825~1898)</strong> 
<ul><li>파리 오페라하우스(1861~75) 보자르 양식(1848~1870)</li></ul></td>
<td><strong>프랑스공화국(제2공화국)</strong> 
<ul><li>프랑스 제2공화국(1848~1852)</li>
<li>2월혁명 - 루이 필립 퇴위, 공화정 선언(1848)</li>
<li>루이 나폴레옹, 10년 임기 대통령 선출(1852)</li></ul></td>
<td> </td></tr><tr><td class="td_year">
<p><span>19세기 영국 고전주의</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엘름스(1814-47)</strong> 
<ul class="mgb"><li>리버풀 성 조지 홀과 순회 재판소(1841-51)</li></ul><strong>존 내시(1752-1835)</strong> 
<ul><li>슈루즈베리 크론힐(1802년경)</li>
<li>런던 리젠트 파크 내 컴벌랜드 테라스(1812-17)</li>
<li>런던 리젠트 파크 내 콘월 테라스(1812-27)</li>
<li>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내 이오니아식 블록(1815-30)</li>
<li>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내 퀴드런트(1815-30)</li>
<li>브라이턴 로열 파빌리온 증개축(1815-21)</li>
<li>런던 올솔스 교회(1822-25)</li>
<li>윈저 왕실 별장(1828)</li></ul><strong>코커렐(1788-1863)</strong> 
<ul class="mgb"><li>조지홀 내 콘서트홀(1851-54)</li></ul><strong>베리(1795-1860)</strong> 
<ul class="mgb"><li>런던 여행자 클럽(1829-32)</li>
<li>런던 리폼클럽(1837-41)</li></ul><strong>워터하우스(1830-1905)</strong> 
<ul class="mgb"><li>런던 자연사박물관(1872)</li></ul><strong>에스턴 웹(1848-1930)</strong> 
<ul class="mgb"><li>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1901)</li></ul><strong>데시무스 버튼(1800-81)</strong> 
<ul><li>런던 웰링턴 아치(1828)</li></ul></td>
<td><strong>영국</strong> 
<ul><li>스티븐슨, 증기기관차 시운전(1814)</li>
<li>웰링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격퇴(1815)</li>
<li>조지 4세(1820-1830)</li>
<li>시인 워즈워스(1770~1850)</li>
<li>결사법 폐지. 노동조합 결성 인정(1824)</li>
<li>시인 바이런 경(1788-1824)</li>
<li>세계 최초 철도 개통(1825)</li>
<li>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li>
<li>웰링턴 내각(1828~1830)</li>
<li>윌리엄 4세(1830~1837)</li>
<li>맨체스터-리버풀 철도 개통(1830)</li>
<li>노예사용 금지법(1832)</li>
<li>노예 폐지(1833)</li>
<li>옥스퍼드 운동(1833)</li>
<li>공황의 시대(1836~1839)</li>
<li>런던 노동자 협회 결성(1836)</li></ul></td>
<td><strong>청나라</strong> 
<ul><li>아편전쟁 발발(1840-1842)</li>
<li>영국군, 상해 점령 - 청나라 항복(1842)</li>
<li>남경조약 체결 - 홍콩 할양(1842)</li>
<li>호문채 추가조약(1843, 영국을 최혜국 대우)</li>
<li>미국과 망하조약(1844)</li>
<li>프랑스와 황포조약(1844)</li>
<li>홍수전, 태평천국운동(1850-1864)</li>
<li>임칙서, 태평천국 토벌 중 병사(1785-1850)</li>
<li>태평군, 남경 점령 - 천경이라 칭함(1853)</li>
<li>운남 회교도의 난(1855)</li>
<li>프랑스 선교사, 광서에서 피살(1857)</li></ul></td></tr><tr><td class="td_year">
<p>1800~1870<span>19세기 그릭 리바이벌</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윌킨스(1778~1839)</strong> 
<ul class="mgb"><li>[마그나 그라이키아](1807)</li>
<li>캠브리지 다우닝칼리지(1805~22)</li></ul><strong>인우드 부자</strong> 
<ul class="mgb"><li>런던 성 판크라스 교회(1819~22)</li></ul><strong>노빌레</strong> 
<ul class="mgb"><li>빈의 테세우스 신전(1820~23)</li></ul><strong>스머크(1780~1867)</strong> 
<ul class="mgb"><li>런던 윈덤광장의 세인트 메리(1822~24)</li>
<li>런던 대영박물관(1823~46)</li>
<li>런던 대영 박물관 도서관(1854~57)</li></ul><strong>해밀턴(1784~1858)</strong> 
<ul class="mgb"><li>에든버러 왕립 고등학교(1825~29)</li>
<li>[시골 교회 디자인, 1836]</li></ul><strong>알렉산더 톰슨(1817~75)</strong> 
<ul><li>글래스고 칼레도니아 자유 교회(1856~57)</li>
<li>글래스고 성 빈센트 가 교회(1857~59)</li>
<li>글래스고 퀸스 파크 통일 장로교회(1867~69, 철거)</li></ul></td>
<td> </td>
<td><strong>조선</strong> 
<ul><li>철종(1849-1863)</li>
<li>안동 김씨 세도정치(1805-1863)</li>
<li>지석영, 우두 종두법 전함(1855)</li>
<li>영국 군함 호네트호, 독도 측량(1855)</li>
<li>영국 군함 실비아호, 부산 도착(1855)</li>
<li>프랑스 군함 비르지니호, 동해안 측량(1855)</li>
<li>최제우, 동학 창시(1860)</li>
<li>러시아 함대, 원산에서 통상 요구(1861)</li>
<li>김정호 [대동여지도] 완성(1861)</li></ul></td></tr><tr><td class="td_year">
<p>19세기<span>독일 신고전주의</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길리 부자</strong> 
<ul class="mgb"><li>프리드리히 대제 기념비 설계경기 계획안(1797)</li>
<li>[건축적 관심사에 대한 유용한 논설과 뉴스 모음집, 1799]</li>
<li>스판다우의 신주택(1804)</li></ul><strong>바인브레너(1766~1826) </strong>
<ul class="mgb"><li>카를스루에 시청사(1806~25)</li></ul><strong>살루시(1769~1845)+D81</strong> 
<ul class="mgb"><li>로텐베르크의 뷔템베르크 무덤예배당(1820~24)</li>
<li>슈투트가르트의 로젠슈타인 성채(1824~29)</li></ul><strong>싱켈(1781~1841)</strong> 
<ul class="mgb"><li>베를린 신왕궁 수비대(1817~18)</li>
<li>베를린 국립극장(1819~21)</li>
<li>[공장 주인과 수공업자를 위한 모범적 선례, 1821~37]</li>
<li>베를린 성채 다리(1822~24)</li>
<li>베를린 구박물관(1824~30)</li>
<li>베를린 프리드리히베르더 교회(1824~31)</li>
<li>베를린-글리니케 클라인 글리니케 성채(1824~29)</li>
<li>포츠담 샤를로텐호프 성채(1826~30)</li>
<li>포츠담 니콜라이 교회(1830~37/돔은 1843~49 사후 완공)</li>
<li>베를린 바우 아카데미(1831~36, 철거)</li></ul><strong>폰 클렌체(1784~1864)</strong> 
<ul class="mgb"><li>뮌헨 글립토테크 조각관(1816~31)</li>
<li>뮌헨 로이히텐베르크 궁전(1816~18)</li>
<li>뮌헨 루트비히 가 개발(1816~27)</li>
<li>뮌헨 열성 궁정교회(1826~37)</li>
<li>뮌헨 육군성(1826~30)</li>
<li>뮌헨 왕궁(1826~35)</li>
<li>뮌헨 영국정원 내 모놉테로스(1827)</li>
<li>도나우스타우프 발할라데어 도이첸(1830~42)</li>
<li>뮌헨 궁정 대연회장(1832~42)</li>
<li>뮌헨 퇴링 성채(1836)</li>
<li>뮌헨 프로필라이아(1846~50)</li></ul><strong>젬퍼(1803~79)</strong> 
<ul class="mgb"><li>[건축 4요소, 1851]</li>
<li>[기술 예술과 축조예술 양식, 혹은 실용미학, 1860~63]</li>
<li>뮌헨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극장(1864~66)</li>
<li>드레스덴 신오페라하우스(1871~78)</li>
<li>빈 자연사박물관(1872~79)</li>
<li>빈 왕립극장(1874~88)</li>
<li>빈 왕궁 내 신궁(1881~?)</li></ul><strong>휩슈(1795~1863)</strong> 
<ul class="mgb"><li>[그리스 건축 소고, 1822]</li>
<li>[우리는 어떤 양식으로 지을 것인가?, 1828]</li>
<li>카를스루에 예술극장(1837-46)</li></ul><strong>폰 찬트(1796~1857)</strong> 
<ul class="mgb"><li>슈투트가르트 빌라 빌헬마(1842~53)</li></ul><strong>지브란트(1800~78)</strong> 
<ul class="mgb"><li>뮌헨 미술관(1835~48)</li>
<li>뮌헨 성 보나파즈 바실리카(1835~50)</li></ul><strong>스튈러(1800-65)</strong> 
<ul class="mgb"><li>베를린 성 마태오 교회(1844~46)</li></ul><strong>한젠(1813-91)</strong> 
<ul class="mgb"><li>빈 국회의사당(1873~83)</li></ul><strong>폰 슈미트(1825-91)</strong> 
<ul class="mgb"><li>빈 시청사(1872~83)</li></ul><strong>기타 독일 신고전주의</strong> <strong>크노벨스도르프</strong> 
<ul class="mgb"><li>베를린의 장크트-헤드비히 성당(1747~73)</li></ul><strong>곤타르트</strong> 
<ul class="mgb"><li>베를린의 도이처 돔(1785)</li></ul><strong>보우만</strong> 
<ul class="mgb"><li>베를린의 훔볼트 대학교(1748~65)</li></ul><strong>랑한스</strong> 
<ul><li>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1789~91)</li></ul></td>
<td><strong>신성로마제국 내 오스트리아제국</strong> 
<ul class="mgb"><li>교육자 페스탈로치(1746~1827)</li>
<li>오스트리아 제국 성립(1804)</li>
<li>프란츠 1세(1804~1835)</li>
<li>신성로마제국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1792~1806)</li>
<li>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li>
<li>나폴레옹, 오스트리아 공격 빈 입성(1809)</li>
<li>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에 승리(1809)</li>
<li>빈 회의 최종의정서 조인(1815, 독일연방 결성)</li>
<li>산업혁명기에 돌입(1828)</li>
<li>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li>
<li>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 농노해방령(1861)</li>
<li>멘델의 유전법칙(1865)</li></ul><strong>신성로마제국 내 라인연방</strong> 
<ul><li>볼프강 폰 괴테(1749~1832)</li>
<li>남서독일 16개국 라인연방 조직(1806)</li>
<li>신성로마제국 소멸 선언(1806)</li>
<li>라인연방 해체 시작(1813)</li>
<li>종교개혁 300주년 기념식(1817, 바르트부르크 자유개혁)</li>
<li>프로이센 관세동맹 확대(1828, 20개국)</li>
<li>남부독일 관세동맹 결성(1828)</li>
<li>작센·브라운쉬바이크 봉기(1830)</li>
<li>자유주의 운동(1830-1837)</li></ul></td>
<td><strong>청나라</strong> 
<ul class="mgb"><li>제2차 아편전쟁(1857)</li>
<li>영국·프랑스군, 광동 지역 점령(1857)</li>
<li>영국·프랑스 연합군, 북경 점령(1860)</li>
<li>총리각국사무아문 설치(1861)</li>
<li>이홍장, 상해와 소주에 제포국 설치(1862)</li>
<li>[상해신보] 창간(1862)</li>
<li>홍콩상하이은행(회풍은행) 설립(1865)</li>
<li>미국에 1차 유학생 30명 파견(1872)</li>
<li>일본군, 대만 침략(1874)</li>
<li>이홍장, 해군 창설(1880)</li>
<li>천진수사학당 창설(1880) - 과학기술자 양성</li>
<li>독일과 수교조약(1883)</li></ul><strong>조선</strong> 
<ul><li>고종(1863-1907)</li>
<li>대원군 섭정(1863-1873)</li>
<li>안동 김씨 세도정치 타파(1863)</li>
<li>동학 최제우, 대구서 처형(1864)</li>
<li>비변사, 의정부에 합침(1865)</li>
<li>대원군, 경복궁 중건을 명함(1865)</li>
<li>삼군부 설치(1865)</li>
<li>병인교난(1866)</li>
<li>제너럴 셔먼호, 대동강서 불탐(1866)</li>
<li>병인양요(1866) - 프랑스 함대, 강화도 점령</li>
<li>경복궁 근정전, 경회루 완공(1867)</li>
<li>대원군, 사액서원 이외의 서원 철폐 명함(1868)</li>
<li>서원 철폐(1871)</li>
<li>신미양요(1871) - 미국 함대 축출</li>
<li>척화비 세움(1871)</li></ul></td></tr><tr><td class="td_year">
<p>19세기 <span>절충주의 역사양식</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페르시우스(1803-1845)</strong> 
<ul class="mgb"><li>포츠담 증기엔진실(1841~43)</li></ul><strong>발뤼(1817-85)</strong> 
<ul class="mgb"><li>파리 성삼위일체 성당(1861~67)</li></ul><strong>아바디(1812-1884)</strong> 
<ul class="mgb"><li>파리 바실리크 사크레쾨르(1874~84)</li></ul><strong>빔멜(1786-1845)</strong> 
<ul class="mgb"><li>함부르크 증권거래소(1837~41)</li></ul><strong>폰 게르트너(1791~1847)</strong> 
<ul class="mgb"><li>뮌헨 성 루트비히 교구 대학교회(1829~44)</li>
<li>뮌헨 펠트헤른할레(1841~44)</li></ul><strong>찰스 돌(미상)</strong> 
<ul class="mgb"><li>런던 러셀 호텔(1900)</li></ul><strong>조지 길버트 스콧(1811~1878)</strong> 
<ul class="mgb"><li>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역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1868~74)</li></ul><strong>브로드릭(1821~1905)</strong> 
<ul class="mgb"><li>리즈 시청사(1853~58)</li></ul><strong>노르만 쇼(1831~1912)</strong> 
<ul><li>노섬버랜드 크랙사이드 회화실(1869~84)</li>
<li>런던 뉴 스코틀랜드 야드(1901~07)</li></ul></td>
<td> </td>
<td><strong>조선</strong> 
<ul><li>고종 친정 시작(1873)</li>
<li>민씨 세도정치(1873)</li>
<li>조일 수호조규 조인(1876)</li>
<li>삼군부 폐지(1880)</li>
<li>통리기무아문 설치(1880)</li>
<li>신사유람단, 일본시찰(1881-8)</li>
<li>미국․영국․독일과 수호통상조약(1882-5)</li>
<li>임오군란(1882)</li>
<li>인천 개항(1883)</li>
<li>태극기 국기로 정함(1883)</li>
<li>우정총국 우편업무 시작(1884)</li>
<li>갑신정변(1884) - 김옥균 등 일본 망명</li>
<li>선교사 언더우드, 아펜젤러 내한(1885)</li></ul></td></tr><tr><td class="td_year">
<p>1820년대~20세기초<span>부르주아 양식</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트레일 젤</strong> 
<ul class="mgb"><li>런던 피커딜리 아케이드(1909~10)</li></ul><strong>바세로 파리 갈레리아 베로도다(1826)</strong> <strong>멘고니(1829~1877)</strong> 
<ul class="mgb"><li>밀라노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1865~75)</li></ul><strong>뷔롱 &amp; 뒤랑고슬렝 낭트 파사주 폼프레(1840~43)</strong> <strong>클뤼세나(1811~80)</strong> 
<ul class="mgb"><li>브뤼셀 생위베르 로열 아케이드(1837~46)</li></ul><strong>셰단 -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1899~1908)</strong> <strong>세딜(1836~1900)</strong> 
<ul><li>파리 프렝탕 백화점</li></ul></td>
<td><strong>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1867∼1918)</strong> 
<ul><li>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1867)</li>
<li>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67~1916)</li>
<li>노동자단체법 성립(1870)</li></ul></td>
<td> </td></tr><tr><td class="td_year">
<p>1850~20세기 초<span>제국 양식</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프랑스 제국양식--&gt;네오 바로크 볼 것</strong> <strong>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양식</strong> <strong>크나프(미상)</strong> 
<ul class="mgb"><li>슈투트가르트 왕궁(1856~60)</li></ul><strong>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스튈러</strong> 
<ul class="mgb"><li>베를린 구국립미술관(1866~76)</li></ul><strong>파울 발로트(1841~1912)</strong> 
<ul class="mgb"><li>베를린 독일제국 의사당(1884~94)</li></ul><strong>벨기에 제국양식</strong> <strong>조제프 폴라에르(1817~79)</strong> 
<ul class="mgb"><li>브뤼셀 대법원(1866~83)</li></ul><strong>알퐁스 발라(1818~95)</strong> 
<ul class="mgb"><li>브뤼셀 벨기에 보자르 왕립박물관(1875~85)</li></ul><strong>샤를 루이 지로(1851~1932)</strong> 
<ul class="mgb"><li>브뤼셀 벨기에 독립 50주년 기념아치(1905)</li></ul><strong>영국 제국양식</strong> 
<ul><li>베리 &amp; 존스, 타워 브리지, 런던(1886~94)</li></ul></td>
<td><strong>독일제국 성립(1871, 제2제국)</strong> 
<ul><li>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1871~1888)</li>
<li>재상 비스마르크(1871~1890)</li>
<li>보불전쟁(1870) - 파리 함락(1871)</li>
<li>빌헬름, 베르사유 궁전서 대관(1871)</li>
<li>독일 제국헌법 공포(1871)</li>
<li>구교단체 금지령(1875)</li>
<li>사회주의 노동당 결성(1875)</li>
<li>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삼국동맹(1882~1915)</li>
<li>베를린 열국회의(1884~1885)</li>
<li>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li>
<li>비스마르크 실각(1890)</li>
<li>사회주의자 탄압법 폐지(1890)</li>
<li>마르크스, [자본론] 완간(1894)</li>
<li>뢴트겐, X선 발견(1895)</li>
<li>제1차 함대건설법(1898)</li>
<li>제2차 함대건설법(1900)</li></ul></td>
<td><strong>청나라</strong> 
<ul><li>청-프랑스 전쟁(1883-1885)</li>
<li>프랑스군, 대만 봉쇄(1884-10)</li>
<li>청-프랑스 전쟁 종결(1885)</li>
<li>청-일 천진조약(1885)</li>
<li>미국과 이민조약(1888)</li>
<li>당산-천진 철도 개통(1888)</li>
<li>손문, 이홍장에게 부국강병책 건의(1894)</li></ul></td></tr><tr><td class="td_year">
<p>18세기말~1880<span>19세기 고딕 리바이벌 </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프랑스 고딕 리바이벌(1840년대~19세기말)</strong> <strong>장 바티스트 라쉬</strong> 
<ul class="mgb"><li>낭트 생 니콜라(1840~50)</li></ul><strong>프란츠 크리스티앙 고(1790~1854)</strong> 
<ul class="mgb"><li>파리 생클로틸드(1846~53)</li></ul><strong>루이 에레</strong> 
<ul class="mgb"><li>파리 라크루아 노트르담 성당(1863~69/80)</li></ul><strong>피에르 보상(1814~88)</strong> 
<ul class="mgb"><li>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1866~88)</li></ul><strong>독일 고딕 리바이벌</strong> <strong>요제프 코른호이젤(1782~1860)</strong> 
<ul class="mgb"><li>빈 자이텐슈테텐가 유대인 커뮤니티(1824~26)</li></ul><strong>알렉시스 드샤테알스</strong> 
<ul class="mgb"><li>함부르크 성 베드로 교회(1840~43)</li></ul><strong>헤르만 베서만</strong> 
<ul><li>베를린 붉은 시청사(1861~69)</li></ul></td>
<td><strong>빅토리아 여왕 시대(1837-1901)</strong> 
<ul><li>인민헌장 가결(1837)</li>
<li>청과 아편전쟁(1840~1842)</li>
<li>글로브, 백열전구 발명(1840)</li>
<li>런던서 YMCA 결성(1844)</li>
<li>철선 그레이트 브리튼호, 대서양 횡단(1844)</li>
<li>경제공황의 시대(1845~1847)</li>
<li>공장법 성립(1847) - 10시간 노동</li>
<li>소설가 디킨스(1812~1870)</li>
<li>존 스튜어트 밀(1806~1873)</li>
<li>런던 세계박람회 개최(1851)</li>
<li>공업인구가 농업 인구 초과(1851)</li>
<li>인도 직접통치 시작(1858)</li>
<li>찰스 다윈 [종의 기원] (1859)</li>
<li>런던 지하철 개통(1863)</li>
<li>제1인터내셔널 결성(1864~1876)</li>
<li>캐나다 자치령 성립(1867)</li>
<li>그리니치를 기준 자오선 설정(1884)</li>
<li>옥스퍼드 운동(1833~1845) - 영국 국교회 개혁운동 </li></ul></td>
<td> </td></tr><tr><td class="td_year">
<p>18세기말~1870<span>비더마이어</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요한 고틀리에프 브렌델</strong> 
<ul><li>베를린 파우엔인젤 파우엔인젤 성채(1794~97)</li></ul></td>
<td> </td>
<td> </td></tr><tr><td class="td_year">
<p>1831~1870<span>빅토리안 고딕</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초기 빅토리안 고딕</strong> <strong>오거스터스 퓨진(1812~52)</strong> 
<ul class="mgb"><li>[대비, 1836]</li>
<li>런던 국회의사당=웨스트민스터 신궁전(1836~60년경)</li>
<li>버밍엄 세인트채드 교회(1839~41)</li>
<li>훌름 세인트윌프레드 교회(1839~42)</li>
<li>치들 세인트길스 교회(1840~46)</li>
<li>[영국 기독교 건축의 부활에 대한 변호, 1843]</li>
<li>램즈게이트 세인트오거스틴 교회(1845~52)</li></ul><strong>성기 빅토리안 고딕</strong> <strong>딘&amp;우드워드 파트너</strong> 
<ul class="mgb"><li>옥스퍼드 대학 박물관(1855~61)</li></ul><strong>존 러스킨(1819~1900)</strong> 
<ul class="mgb"><li>[건축의 일곱 등불, 1849], [베니스의 돌, 1853], [예술 강의, 1870]</li></ul><strong>조지 길버트 스콧(1811~78)</strong> 
<ul class="mgb"><li>함부르크 니콜라이 교회(1844~80)</li>
<li>[세속 건축과 주거 거축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주장, 1857]</li>
<li>엑스터칼리지 예배당(1857~59)</li>
<li>헤르포드 스크린(1862)</li>
<li>런던 앨버트 기념비(1863~72)</li></ul><strong>조지 에드먼드 스트리트(1824~1881)</strong> 
<ul class="mgb"><li>웨스트민스터 성 야고보 더 레스(1859~61)</li>
<li>브리스틀 성당 복원(1868~77)</li>딘(1792~1871)과 우드워드 (1816~1861)파트너 
<li>옥스퍼드대학 박물관(1855~1861)</li></ul><strong>윌리엄 버터필드(1814~1900)</strong> 
<ul><li>런던 올 세인츠(1849~1859)</li>
<li>옥스퍼드 케블칼리지 예배당(1873~76)</li></ul></td>
<td> </td>
<td><strong>청나라</strong> 
<ul class="mgb"><li>청일전쟁 발발(1894-1895)</li>
<li>북양함대, 일본에 항복(1895)</li>
<li>시모노세키 조약(1885)</li>
<li>러시아·프랑스·독일 3국 간섭(1895)</li>
<li>일본으로부터 요동반도 환원(1895)</li>
<li>손문, 광주의거 실패로 일본 망명(1895)</li>
<li>일본군, 대만 점령(1895)</li>
<li>독일, 교주항 조차(1898)</li>
<li>프랑스, 광주항 조차(1898)</li>
<li>미국, 대청 문호개방 선언(1899)</li>
<li>의화단, 산동에서 봉기 - 반제국주의 제창(1899)</li>
<li>의화단, 영국 선교사 살해(1899-1901)</li></ul><strong>청의 문화</strong> 
<ul><li>고증학·사학·금석학자 전대흔(1728-1804)</li>
<li>조자겸(1829-1883)</li></ul></td></tr><tr><td class="td_year">
<p><span>신건축운동</span></p></td>
<td class="td_pointcor"><strong>19세기 구조합리주의</strong> <strong>오로(1801~72)</strong> 
<ul class="mgb"><li>리옹 겨울정원 계획안(19C 중반)</li></ul><strong>부알로(1812~96)</strong> 
<ul class="mgb"><li>파리 생퇴젠(1854)</li></ul><strong>라브루스트(1801~75)</strong> 
<ul class="mgb"><li>파리 생주느비에브 도서관(1838~50)</li>
<li>파리 국립도서관(1854~75)</li></ul><strong>철물건축</strong> <strong>에펠(1832~1923)</strong> 
<ul class="mgb"><li>님 근교 가라비 교(1879~88)</li>
<li>파리 에펠탑(1889)</li></ul><strong>소리네르</strong> 
<ul class="mgb"><li>누아시엘 메니에 공장(1872)</li></ul><strong>쾨프케</strong> 
<ul class="mgb"><li>드레스덴 블라우에스 분더(1881~93)</li></ul><strong>기차역 플랫 홈</strong> <strong>뒤크네</strong> 
<ul class="mgb"><li>파리 동역(1847~52)</li></ul><strong>조지 길버트 스콧</strong> 
<ul class="mgb"><li>런던 세인트판크라스 역(1863~65)</li></ul><strong>큐빗</strong> 
<ul class="mgb"><li>런던 킹스 크로스역(1851~52)</li></ul><strong>함부르크 중앙역(1903~06)</strong> <strong>온실건축</strong> <strong>데시무스 버튼</strong> 
<ul class="mgb"><li>런던 큐가든 내 야자수실(1845~47)</li></ul><strong>쾨르너</strong> 
<ul class="mgb"><li>베를린 달렘식물원(19C말)</li></ul><strong>와이엇빌(1766-1840)</strong> 
<ul class="mgb"><li>런던 큐가든 내 오렌지실(1836)</li></ul><strong>폰 찬트</strong> 
<ul class="mgb"><li>슈투트가르트 빌라 빌헬마(1842~53)</li></ul><strong>플뢰리(1801~1875)</strong> 
<ul class="mgb"><li>파리 식물원 내 멕시코-오스트레일리아 쌍둥이 온실(1834)</li></ul><strong>젱엔슈미트</strong> 
<ul class="mgb"><li>빈 쇤부른 야자수실, 오스트리아(1882)</li></ul><strong>대형공공건축</strong> <strong>벨랑제</strong> 
<ul class="mgb"><li>파리 곡물거래소 유리 돔(1763~69)</li></ul><strong>발타르</strong> 
<ul class="mgb"><li>파리중앙시장(1845~70)</li></ul><strong>버닝</strong> 
<ul class="mgb"><li>런던 석탄거래소(1847~49)</li></ul><strong>팩스턴(1801~1865)</strong> 
<ul class="mgb"><li>1851년 런던 대박람회 수정궁</li></ul><strong>보르디오</strong> 
<ul class="mgb"><li>브뤼셀의 벨기에 독립 50주년 기념궁전(1880)</li>
<li>베를린 자연사박물관(1883~1889)</li>
<li>파리 동물학 박물관(1889~?)</li></ul><strong>지로</strong> 
<ul class="mgb"><li>파리 프티 팔레(1900)</li></ul><strong>뒤테르(1845-1906) &amp; 콩타맹(1840~93)</strong> 
<ul><li>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기계관</li></ul></td>
<td><strong>만국박람회의 시대</strong> 
<ul class="mgb"><li>1797년 파리, 1851년 런던, 1855년 파리, 1867년 파리, 1873년 빈, 1876년 필라델피아, 1878년 파리, 1889년 파리, 1900년 파리 </li></ul><strong>프랑스제국(제2제국)</strong> <strong>나폴레옹 3세(1852-1870)</strong> 
<ul class="mgb"><li>루이 나폴레옹 황제 즉위(1852)</li>
<li>프랑스 제2제정 수립(1852)</li>
<li>레세프스, 수에즈 운하건설권 획득(1854)</li>
<li>오스망의 파리 재개발 정책(1853~1870)</li>
<li>소설가 빅토르 위고(1802-1885)</li>
<li>나폴레옹 3세, 원로원·입법원에 권한 양보(1860)</li>
<li>자유무역 시작(1860)</li></ul><strong>프랑스공화국(제3공화국)</strong> 
<ul><li>제3공화국(1870-1940) 성립</li>
<li>생화학자 파스퇴르(1822~1895)</li>
<li>보불전쟁 발발(1870)</li>
<li>프로이센, 파리 점령 - 보불전쟁 휴전(1871)</li>
<li>티에르 대통령 체제(1871)</li>
<li>파리 코뮌 성립 선언(1871)</li>
<li>정부군-코뮌간의 7일간의 시가전(1871)</li>
<li>청․프랑스 전쟁(1883~1885)</li>
<li>제2인터내셔널 결성(1889~1914)</li>
<li>파리 만국박람회 개최(1900)</li>
<li>제2회 올림픽 파리에서 개최(1900)</li></ul></td>
<td><strong>조선</strong> 
<ul class="mgb"><li>노비세습제 폐지(1886)</li>
<li>언더우드, 새문안교회 창립(1887)</li>
<li>대일 곡물수출 정지(1889, 방곡령)</li>
<li>동학교도, 탄압중지 청원(1892)</li>
<li>갑오농민전쟁(1894) - 전봉준, 고부관아 점령(1894)</li>
<li>일, 경복궁 침입-민씨정권 붕괴(1894)</li>
<li>갑오개혁(1894)</li>
<li>청군, 평양에서 일군에 패배(1894)</li></ul><strong>동학농민군, 우금치 전투 패배(1894) </strong>
<ul><li>전봉준 체포, 처형(1894)</li>
<li>고종, [홍범 14조] 선포(1894)</li>
<li>을미사변(1895) - 명성황후 시해 </li>
<li>을미개혁(1895)</li>
<li>단발령(1895)</li>
<li>친일내각 수립(1895)</li>
<li>양력 연호 제정(1896)</li>
<li>아관파천(1896-1897)</li>
<li>친일정권 몰락, 친러정권 수립(1896)</li>
<li>서재필, [독립신문] 창간(1896)</li>
<li>고종,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 - 국호 대한제국(1897)</li>
<li>을사늑약 쳬결(1905)</li></ul></td></tr></tbody></table></div></div>
<ul class="lst_archi"><li>왕, 황제는 생몰년도가 아닌 재위년도로 표시했다.</li>
<li>건물연도는 착공~완공년도를 표시했으며, 연도 하나만 있는 경우는 착공연도 미상으로 완공연도만 표시했다. </li>
<li>고유명사는 문교부 고시 제 85-11호(1986) 외래어 표기법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2002)를 따랐다.</li>
<li>언어권별 표기는 현재의 국경선이 아닌 역사 문화권(로마네스크~고딕 시기)을 기준으로 했다.</li></ul></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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