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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Small Step Forwar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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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연구, 학계, 컴퓨터과학, HCI</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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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5 Part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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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Mon, 04 Feb 2019 09:47:29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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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5-1: 나라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다 2014.9 &#8211; 2014.12 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Boston에 돌아오니 새삼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와 롱디, 이제는 졸업을 그리고 그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나를 마주한 건 준비하고 있던 7개의 CHI 논문이었다. MSR 인턴십 프로젝트 2개, BudgetWiser 프로젝트 2개, 그리고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5 Part 1"</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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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 id="mce_0">박사 5-1: 나라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다</h1>



<p>2014.9 &#8211; 2014.12</p>



<p>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Boston에 돌아오니 새삼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와 롱디, 이제는 졸업을 그리고 그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나를 마주한 건 준비하고 있던 7개의 CHI 논문이었다. MSR 인턴십 프로젝트 2개, BudgetWiser 프로젝트 2개, 그리고 내가 참여하던 몇 가지 협업 프로젝트까지. </p>



<h1 id="mce_8">전환점이 된 순간 3: 스스로 하는 연구</h1>



<p>그런데 막상 지도교수인 Rob과 하는 연구가 이 중에 없었다. 재밌어 보인다고 여러 프로젝트에 열심히 달려는 들었는데, 막상 졸업논문과 직결되는 것은 없었던, 아차 싶은 상황이었다. 일단 또 잠 못 자는 몇 주를 보내고 CHI에 꾸역꾸역 7개의 논문을 가까스로 제출했다. 그리고 나서야 Rob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엄청나게 혼날 각오를 하고 &#8220;사실은…&#8221; 하면서 털어놓았는데 Rob은 깜짝 놀라면서 &#8220;7개나? 와우… 네가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나 보다&#8221;라고 이야기를 했다. 박사란 결국 독립적으로 연구 문제를 찾고, 이를 풀고, 결과를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도교수 없이도 이제는 그런 과정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p>



<p>이때가 박사과정에서 전환점이 된 세 번째 순간이었다. 어미 새의 둥지를 떠나 날아가야 하는 아기 새처럼, 결국 박사과정도 지도교수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 연구를 할 수 있을 때 끝이 나는 것이 아닐까. 독립된 연구자로서 내 연구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방향을 정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무조건 혼자서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년간 지도교수, 연구실 동료들과 치열하게 주고받는 피드백, 훈련과 경험을 통해 충분한 성장을 했을 때 비로소 독립적인 연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좋은 연구 환경이란 독립적인 연구자를 키워낼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간섭이 심한 환경에서는 성과는 잘 나올 수는 있지만 &#8220;내 연구&#8221;를 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방임하는 환경에서는 연구자가 자기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숙한 연구를 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환경에서(물론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큰 탈 없이(물론 저년 차의 힘든 시기에서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아직 몇 년씩 학생이 지도교수와 도제식으로 깊이 소통하면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소양을 익혀나가는 것보다 나은 연구자 훈련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다.</p>



<h1>The Talk</h1>



<p>&#8220;독립적 연구&#8221;라는 기준이 사실 아주 모호하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를 하면 졸업이 된다는 기준 또한 모호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학생 자신도 자기가 언제 졸업할지 불분명하다. 지도교수와 정확한 졸업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이래저래 부담되었기 때문에 나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할 대화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5년 차 시작하는 가을에 Rob과 나도 드디어 그 대화(the talk)를 나누었다.</p>



<p>나는 사실 박사과정을 1년 정도 더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석사까지 세면 2+5년을 채우는 상황이었지만 연구에 어느 정도 속도와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고, 이런 분위기로 1년 정도 더 연구하면 좋은 연구도 더 나오고 꽤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학과 박사과정 평균이 6.5년이기도 했고 연구가 점점 재밌어져서 박사과정을 길게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그런데 Rob은 내가 이 정도면 준비된 것 같다고 하면서 이번 job market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p>



<p>교수 자리를 놓고 구직자와 학교가 일종의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academic job market이라 부르는데, Rob은 market의 분위기가 매년 너무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의 연구실적을 더 쌓으면서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했다. 시간에 따라 구직하는 연구자의 연구 실적 변화보다는 시장의 상황 변화가 훨씬 크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학계는, 적어도 내가 속한 computer science 분야는, 경제 상황이나 소위 말하는 핫 트렌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었다. 미국에서는 CRA 웹사이트의 게시판에 학교들이 교수 공고를 올린다. 공고를 들여다보면 해마다 그 해에 많은 학교 찾는 키워드가 있었다. 당시 기준 1~2년 전만 해도 &#8220;소셜&#8221; 키워드가 많은 교수 공고에 적혀 있었고, 곧이어 &#8220;빅 데이터&#8221;, &#8220;인공지능&#8221; 등의 키워드가 대체하는 중이었다. 물론 몇몇 top 학교들은 특정 분야를 언급하지 않고 &#8220;좋은 사람이면 분야에 상관 없이 누구든 뽑을 수 있다&#8221;는 쿨함을 과시한다. Rob은 이번 job market이 computer science 학문 전체의 인기가 오르고 시장 요구가 많아서 좋을 가능성이 높은데, 내년이 되어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번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개인 상황 상 한국에 가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미국에서도 job market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꼭 미국에서 일하게 되지 않더라도 여러 학교나 연구소를 방문해서 내 연구를 소개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인터뷰를 보는 것은 내 연구를 홍보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이 때 아니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내 연구를 듣고 평가하고 피드백을 줄 일도 없다고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미국에서도 꼭 job market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p>



<h1>Job Market 준비</h1>



<p>이 한 번의 대화로 졸업 시기와 미국과 한국 job market에 동시에 나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갑자기 연구에서 job market과 졸업으로 내 머릿속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일단 CHI에 내놓은 연구 결과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보다 진행 중이던 연구를 좀 더 다듬으면서 job market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온라인상에 job market 관련 여러 정보와 글을 찾아보면서 지도교수님들과 전략 회의를 하고 실질적인 준비를 해나갔다.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학교 목록을 확정하고 Research Statement, Teaching Statement, CV, 추천서를 준비해야 했다(<a href="https://juhokim.com/files/faculty-apps/">지원 당시의 서류 링크</a>). 지원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 따라 이메일이나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이 과정을 통과하면 방문 인터뷰(on-site interview) 기회를 얻게 되는 구조였다. Krzysztof는 지원하는 학교가 N개이면, 당연히 상황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중 대략 1/3 정도에서 인터뷰 기회를 얻고 그중 1/3 정도에서 최종 offer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지원하는 모든 곳에서 offer를 받기란 매우 어렵고, 교수 임용과정이란 연구의 우수성뿐 아니라 학교와 학과의 상황, 문화와 성향, 필요로 하는 세부 분야, 사람들과의 합, 학교나 학과 내 정치 상황 등이 어우러진 복잡한 결정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p>



<p>아주 답답했다. 수능 xxx 점 맞고 내신이 어느 정도 되면 어느 정도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오는 고3 때보다, 또 학점 xxx 정도에 연구 경험이 어느 정도 되면 어느 정도 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오는 석사 때보다 모든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운의 영향이 커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연연하기 시작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p>



<p>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일은 Research Statement 쓰기였다. 3~4쪽 정도에 내 연구를 관통하는 스토리를 담고 주요 연구를 소개하며 앞으로의 연구계획을 소개해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은 개별 연구 프로젝트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큰 그림도 계획도 너무 막연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확정이 된 연구 결과물을 가지고 엮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나만의 단, 장기 연구계획을 세울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의 10명 넘는 사람들에게 작업하던 statement를 보내 피드백과 의견을 구하고 거의 1~2개월 동안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문서를 완성해 나갔다.</p>



<p>지원할 학교 목록을 확정하는 과정 역시 손이 많이 갔다. 일단 내 분야 교수임용 공고가 나는 학교를 트래킹하고 학교별로 지원에 필요한 자료를 챙겨야 했다. 주변을 보니 많이 지원하는 사람은 50개 넘게 하기도 하고 적게 하는 사람들은 10개 이하로 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 데서도 좋은 결과가 안 나오면 내년에 다시 시도할 각오를 하고 가장 가고 싶은 10~15개 학교와 연구소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너무 소신 지원을 해서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는 소리를 Rob에게 했고, Rob은 이 정도 목록에서 그래도 뭐라도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희망을 주었다. 학교가 아닌 곳은 인턴십을 했고 회사 연구소이지만 비교적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던 MSR과 Adobe Research 두 군데만 지원했다. Rob과 Krzysztof는 학교 목록 선정에 있어 피드백도 많이 주었고, 목록이 확정되고 난 뒤에는 각 학교에 자기들이 아는 교수를 적고, 내가 지원을 하면 개별 연락을 해서 내 얘기를 해 준다고 했다. </p>



<p>추천서를 위해서는 추천인을 정하고 추천서를 부탁해야 했다. 추천인 선정에는 전략적 요소가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Rob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을 만큼 나와 연구를 같이 했거나 내 연구를 잘 아는 사람을 보드에 다 적어보자고 했다. 이 목록을 보면서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나가면서 어떤 조합이 가장 임팩트가 있을지 논의를 했다. 이런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챙겨주는 지도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job market에 나가는 것이 단순히 교수 자리를 하나 얻는 의미를 넘어 지도교수와 함께 학계에 몇 년간 공들인 &#8220;나&#8221;라는 공동의 작업물을 내놓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총 5명의 추천인을 정할 수 있었다. Rob과 Krzysztof 이외에 MSR 인턴십 멘토였던 Merrie, 그리고 나와 가장 일을 많이 했던 Haoqi와 Philip까지 5명이었다. 사실 Haoqi와 Philip의 경우 교수를 이제 막 시작해서 유명세나 이름값 측면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내 연구의 가치와 나라는 연구자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판단을 했다.</p>



<p>학생으로서 잘 보기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교수들이 어떻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교류하는가이다. Job market 준비를 하면서 학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연구와 연구자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peer evaluation이 모든 의사결정에 중요한 비중으로 반영된다. 논문의 합격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동료들의 리뷰와 토론이다. 새로운 박사학생과 좋은 신임 교수를 확보하는 과정, 교수 승진과 tenure 심사 역시 동료들의 peer evaluation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추천서가 peer evaluation을 담는 주요 단위가 되고, 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행간의 의미를 읽고 여러 지원자를 비교한다. 좋은 학생과 교수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한편, 추천서를 통해 동료가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결국 실력 이외의 인성, 윤리, 팀워크 등의 요소가 빠질 수 없고, 자연히 스스로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을 넘어(물론 기본이 연구의 품질과 임팩트임은 변하지 않는다) 나라는 연구자의 여러 가지 면이 고스란히 추천서, 제출서류, 인터뷰 과정 등을 통해 드러나고 이를 기준으로 각 학교에서는 총체적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p>



<h1>주사위는 던져지고</h1>



<p>이렇게 5년 차의 시작이던 가을에는 실질적인 연구보다는 job market 준비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학교의 지원 마감인 12월에 맞추어 모든 지원을 마쳤다. 시장에 나라는 제품을 내놓기 위한 내실을 다지고, 포장하고, 출시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놓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와 나 자신을 믿고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임팩트를 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원 없이 했다. 자신감과 확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했고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데도 없을 수 있겠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실제 일은 거의 손에 잡히지 않고 이런저런 고민과 머릿속 온갖 좋고 나쁜 시나리오가 난무하던 시간이었다.</p>



<p>그나마 힘이 되던 것은 비슷한 과정을 함께 해나가던 같은 분야 친구들이었다. 그동안 학회에서 볼 때마다 같이 놀고 힘든 이야기를 나누었던 Walter와 Chinmay도 job market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의지가 되었다. HCI 분야 안에서도 이 두 친구는 나와 연구 주제 면에서 가장 가까웠고, 동료이기도 했지만 당장 job market에서는 현실적으로 경쟁자이기도 했다. 크라우드소싱 관련 논문을 엄청나게 뽑아낸 Walter는 나보다 논문 수가 많았고, 온라인 교육 관련 굵직한 연구를 하고 실제 적용까지 했던 Chinmay는 임팩트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 보였다. 크라우드소싱과 온라인 교육을 접목하는 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이 둘의 중간 정도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쟁과 비교가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굳이 필요도 의미도 없는 파괴적인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터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생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job market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고, 우리가 비슷한 주제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재밌고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방증이며, 앞으로 각자의 연구 환경 속에서 협업과 교류를 통해 더욱 시너지를 내자고 이야기를 했다. 다들 힘든 시기라 job market이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 동료애가 생겼다. 뭉쳐야 다 같이 성공할 수 있다는 교감을 하고 서로의 지원 학교 목록과 학교별로 자세한 상황을 공유했다.</p>



<p>사실상 마음속의 1순위였던 KAIST의 경우 연말에 지원 마감을 하고 연초에 인터뷰를 봐 봄에 결정이 나는 미국 학교와 다르게 수시지원이었다. Boston으로 안식년을 와 계실 때 인사를 드렸었던 KAIST 전산학부 오혜연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내 상황을 설명 드리고, 지금이 KAIST 전산학부에 지원하기에 적절한 시점일지 문의를 드렸다. 다행히 학과에도 신임 교원을 뽑을 계획이 있었고 HCI도 충원 계획이 있는 분야 중 하나라는 긍정적인 답을 받아서 지원했다.</p>



<p>한국에서는 KAIST에만 지원했다. 다른 좋은 옵션이 있으면 다른 학교도 지원을 생각해 봤을 것 같은데, 조금 알아보니 박사학위가 없이는 아예 지원조차 불가능한 학교가 많았다. 나처럼 박사졸업 예정자는 다른 나라의 많은 학교와 달리 애초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또한 학술대회(conference)에 가장 좋은 연구가 출판되는 것이 일반적인 CS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저널 논문만 연구실적으로 인정하는 학교도 많았다. &#8220;1저자 저널 논문은 100점&#8221;처럼 정량적으로 지원 자격이 정해져 있는 학교도 있었는데 학술대회 논문은 아무리 CHI처럼 해당 분야 최고 학술대회여도 0점이었고 아예 지원자격이 안 되기도 했다. 온라인 지원양식에서 실적 부족으로 아예 지원서 제출 클릭이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MIT CSAIL에는 학술대회 논문 단 하나를 쓰고 교수가 된 전설의 교수도 있었는데, 이런 사례를 생각하니 무의미한 지원자격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행정적 편의, 또한 정성적으로 연구 역량과 가능성을 평가하려는 의지와 역량 부족 등의 이유로 좋은 지원자들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p>



<p>엄청난 고생 끝에 7개의 논문을 냈던 CHI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MSR 인턴을 하면서 썼던 두 개 논문과 Walter와 썼던 실시간 크라우드소싱 논문, 그리고 지희와 KAIST 학생들과 함께 헸던 Factful 논문까지 총 4개 논문이 accept 되었다. 이 중 3개 논문이 상위 5% 논문에 주어지는 honorable mention 상을 받았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좋았고, job market 시기에 맞추어 좋은 결과가 나와서 좋았고, 멘토 없이 지희와 했던 연구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좋았다. 어쩌면 자만할 수 있는 결과기도 했는데, 약간은 얄밉게도 같은 해에 job market에 나가는 Walter는 5개의 논문이 accept 되어 나의 겸손함과 긴장감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p>



<p>이렇게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가운데 또 한해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김없이 연말에는 한국에 들어갔고, 지희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계획을 나누었다. 롱디도 어느새 4년 반을 향하고 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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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strong>박사 5 Part 1</strong></a> (2019.02.04)</li><li>박사 5 Part 2</li><li>에필로그</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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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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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Mon, 14 Jan 2019 01:14:45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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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4-2: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길 2014.1 &#8211; 2014.8 새해를 맞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자극을 가득 안고 한국에서 돌아왔다. 4월에 있을 UIST 학회 데드라인을 향해 본격적으로 뛰어야 할 시간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논문에 있어 조금의 성공을 맛보고 나니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2014년 봄과 여름은 전체 박사과정 중 가장 열심히 연구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기나긴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2"</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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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박사 4-2: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길</h1>



<p>2014.1 &#8211; 2014.8</p>



<p>새해를 맞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자극을 가득 안고 한국에서 돌아왔다. 4월에 있을 UIST 학회 데드라인을 향해 본격적으로 뛰어야 할 시간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논문에 있어 조금의 성공을 맛보고 나니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2014년 봄과 여름은 전체 박사과정 중 가장 열심히 연구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기나긴 탐색이 지나고 방향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했고, 연차가 주는 성과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롱디를 끝내는 길은 연구 잘하고 졸업해서 지희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강력한 동기도 있었다. 수업이나 조교 의무도 모두 마쳐서 연구 이외에 딱히 얽혀있는 일도 없었고, 오로지 연구에 올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p>



<p>이때 내 머릿속을 덮고 있던 생각은 &#8220;내 연구&#8221;를 원 없이 펼쳐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디오를 활용한 온라인 교육에 크라우드소싱을 접목하는 주제로 전체적인 박사 연구의 흐름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두 갈래의 연구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나는 edX 인턴십에서 했던, 같은 영상을 시청하는 수많은 학습자의 시청 패턴을 반영하여 학습에 도움을 주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디자인하는 방향이었다. 다른 하나는 CHI에 좋은 점수로 합격하여 한껏 고무되어 있던 ToolScape 연구의 연장선으로, 시스템이 직접 학습자에게 영상 내용을 요약하도록 질문을 던져 양질의 요약을 얻어내는 기법이었다. MOOC에서 시작된 온라인 교육의 광풍과 더불어 이러한 흐름이 학교 교육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학교 내에서도 관심과 우려가 동시에 커졌다. 대학원 학생회에서는 online learning subcommittee를 구성했다. 나는 이 위원회에 들어가 다른 학생들과 토론도 하고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방향도 고민하고 정책 제안에도 참여했다.</p>



<h1>LectureScape</h1>



<p>박사과정 동안 연구실이 재정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을 하거나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돈에 영향받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점에서는 좋았고, 제안서를 써보거나 학계의 생리를 속속들이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Rob은 소수의 학생으로 연구실을 꾸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Quanta라는 대만회사에서 거의 gift 형태로 어마어마한 돈을 우리 학과에 지원하고 있어서 제안서를 쓰거나 스폰서를 위해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적었다. 거기다 다행히 장학금이 있기도 했고… 이것이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사실 졸업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도 연구가 기본적으로 돈 없이는 진행할 수 없고 스폰서에게 돈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연차가 올라가면서 차차 알게 되었다. 이 바쁜 MIT 교수들도 20명씩 단체로 대만 Quanta 본사에 매년 방문해 세미나도 하고 튜토리얼도 진행했다. 이번 방문에는 Rob이 Elena와 나를 데리고 갔다. 포스터를 만들어 가서 Quanta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피드백도 받았다.</p>



<p>1월, 대만에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동안 구상하던 <a href="https://juhokim.com/lecturescape/">LectureScape</a>의 아이디어를 Rob에게 설명했다. 4월 데드라인인 UIST를 노려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 교수의 반응이 학생에게 주는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Rob은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라고 해주었고 잘 만들어보자고 했다. 이전 사용자의 사용 패턴이 인터페이스에 직접 반영이 되어 후속 사용자의 경험에 영향을 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LectureScape은 이 개념을 가지고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탐색하고 소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꽂혀있던 아이디어는 비디오 내에서 매초마다 학습자들이 멈춘 정도나 되돌려 본 정도를 알아내고 이를 후속 학습자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비디오 밑에 표준으로 달린 기존의 일자형 타임라인에 초당 중요도나 주목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추가하고, 나아가서 비디오를 스크롤 하면서 빨리 이동할 때 이 그래프를 따라 언덕을 넘는 듯한 경험을 구현했다. 높은 언덕, 즉 많은 사람이 돌려본 부분에서는 스크롤에 마찰을 더해 속도를 느리게 해 더욱 주목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p>



<p>이렇게 보다 동적인 스크롤링을 구현하는 기법 자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했다. Rob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비디오 학습에서뿐만 아니라 모바일에서 긴 웹페이지를 보는 상황에서 내용의 중요도나 사람들의 반응 정도에 따라 페이지의 스크롤링 속도를 동적으로 조정하는 기법을 생각해냈다. <a href="https://juhokim.com/caks/">CAKS(Content-Aware Kinetic Scrolling)</a>라 이름 붙인 이 기법을 가지고 역시 UIST를 노려보기로 했다. </p>



<p>연구 방향이 속속 잡혀가는 것은 좋았는데 두세 달 남짓의 짧은 시간에 두 논문을 동시에 만들어나가다 보니 일손이 너무 부족했다. 적극적으로 협력할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LectureScape은 영상 속 음성이나 자막 컨텐츠를 활용하는 부분이 필요해서 자연언어처리와 음성 데이터 연구를 하는 친구들을 섭외했고, 전체 흐름을 잡는 부분에서 Philip의 도움을 받았다. CAKS는 가속을 모델링 하는 부분에서 수학적인 접근도 필요했는데, 경제학이 워낙 수학적이고 하니 지희를 섭외(?)했다. 1년 차 박사과정이던 Amy는 적용 예제를 만들고 스터디 진행하는 것을 도왔다. 거의 한 달 정도는 잠을 거의 못 자면서 논문 두 개를 어찌어찌 제출했다. </p>



<p>내가 속한 CSAIL에는 홍보를 전담하는 기자 출신의 직원이 있었다. PI(Principal Investigator: 교수와 research scientist 포함)가 100명이나 되는 조직이다 보니 홍보 거리도 많고 MIT라는 네임밸류가 있어서인지 언론의 주목도도 높았다. 이 직원은 연구실별로 좋은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는데, Rob이 LectureScape을 홍보해 보면 좋겠다고 해서 이 직원과 만났다. 연구를 설명하고 데모를 보여주고 기사 방향에 대한 논의를 했다. 기사를 그쪽에서 보내주고 내가 피드백을 주어 다듬는 과정을 두 번 정도 거쳤다. 그러고 나서 이 직원은 <a href="https://www.eecs.mit.edu/news-events/media/csail-researchers-create-youtube-moocs">학과 홈페이지</a>와 <a href="http://news.mit.edu/2014/what-69-million-clicks-tell-us-about-how-fix-online-education">MIT News</a>에 기사를 게재하고 관심이 있을 만한 주요 매체에 뿌렸다. 그중에 <a href="https://www.forbes.com/sites/peterhigh/2014/08/11/mit-team-turns-6-9-million-clicks-into-insights-to-improve-online-education/">Forbes</a> 같은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기사화가 되었다. 어떻게 대중에게 연구를 효과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그 가치를 설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운, 색다르면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p>



<p>두 논문 다 처음에 간당간당한 점수가 나와서 노심초사했는데, 기적적으로 둘 다 UIST에 합격을 했다. 여름 인턴을 하던 Seattle 모 상가의 주차장 차 안에서 합격 이메일을 확인하고 혼자 소리 지르며 느꼈던 순간의 짜릿함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 드디어 뭔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p>



<h1>Crowdy &amp; Learnersourcing</h1>



<p>ToolScape에서는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들이 영상 속의 주요 내용을 효과적이고 높은 정확도로 요약해낼 수 있고, 이 데이터로 향상된 비디오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그다음으로 던졌던 질문은 영상을 시청하는 학습자가 직접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단순 요약이 아니라 subgoal label이라는 요약의 요약, 즉 책으로 치면 챕터와 섹션 제목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였다. 이러한 요약이 만들어지고 나면 후속 학습자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필요한 내용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학습자들이 영상을 요약하는 작업 자체가 자신의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p>



<p>크라우드소싱의 일반적인 형태가 많은 사람의 사간과 노력을 돈을 주고 사서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우리가 생각한 모델은 학습자가 금전적 보상 없이 자신의 학습을 위해 하는 자연스러운 행위(영상의 요약)가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모여 후속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요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개인(영상을 통한 학습)과 시스템(양질의 요약 컨텐츠 확보)의 목적이 다르지만 하나의 시스템을 통해 양쪽 목표가 동시에 달성되는 윈-윈의 학습 모델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온라인 교육 환경에서는 수천, 수만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을 하기 때문에 규모가 기본전제인 크라우드소싱을 적용하기 좋고, 요약과 같은 작업을 통해 학습자들도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



<p>사실 이 아이디어는 2013년부터 흥미로운 방향이 될 것 같아서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5">CHI에 포스터</a>로 냈었고, 학습과 크라우드소싱을 접목한다는 의미로 learnersourcing (우리말로는 학습자 크라우드소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개념을 처음 발표하고 몇 달이 지나서 제대로 달려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결국 learnersourcing은 내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T1">박사 논문</a>의 주제가 되었고, 내 job talk의 주제가 되었고, 내 연구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p>



<p>Rob은 이 프로젝트를 학부생 인턴과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Rob은 학부생들에게 다양한 연구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일종의 사명감도 느끼는 듯했다. 2013년 여름에는 20명 학부생 인턴을 선발해 연구 bootcamp를 운영하기도 했고, 매 학기 3-5명 정도의 학부생을 연구실의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흔히 학부생 인턴은 &#8220;hit or miss&#8221;라고 했다. 여러 개의 수업과 과외 활동 등으로 안 그래도 바쁜 학부생에게 많은 연구실적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그 와중에 연구에 큰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참여해서 돕는 뛰어난 학생들이 더러 있고, 이런 학생들은 연구를 계속해서 학계의 동료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러 명의 학부생과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그런 대박 학생을 만나지는 못한 상태였다.</p>



<p>Rob은 HCI 학부 수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학생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인턴십을 제안하고는 했다. Sarah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는데, 연구실 내 프로젝트 중 내 주제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만나보았다. 기본적으로 아이디어를 굉장히 재밌어하는 것 같았고, 겸손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Sarah와 같이 일을 시작했고, 비디오 학습자들이 subgoal labeling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이 워낙 분명했고 나오기만 하면 이래저래 임팩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p>



<p>Sarah가 시스템의 전반적인 구현을 하고, 나는 주로 멘토링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advisor 역할을 했다. 내가 직접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LectureScape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도 이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척이 있어 좋았다. 그러면서도 모호했던 연구실적 구분 때문에 힘들었던 석사 시절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서 연구 실적의 &#8220;소유&#8221;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1저자를 하고 싶다는 욕심은 계속 있었지만, Sarah가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에 고민과 Rob과의 상의 끝에 논문 쓰기를 주도적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Sarah에게 1저자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p>



<p><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13">이 논문</a>은 결국 CSCW에 합격했고, learnersourcing의 대표 논문 중 하나가 되었다. 가끔 이 논문의 1저자가 내가 아닌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연구를 내가 지휘했고 내 박사 논문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또 성공적인 멘토링 경험도 얻었다. Sarah는 Crowdy 연구를 가지고 CHI의 학부 Student Research Competition에 나가서 2위를 했다. 내 아이디어를 이렇게 재밌어하고 열심히, 또 성공적으로 구체화시키는 학생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내가 혼자 해냈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을 주었다. 교수가 되면 이런 즐거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h1>BudgetWiser</h1>



<p>지금 생각하면 이때 어떻게 이런 일들을 다 감당했나 싶은데, 박사 연구와 조금은 무관하게 제3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겨울에 한국에 가면 대전에는 연고도 없고 아내를 두고 서울 가서 놀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아내 연구실에 따라 나가 있으면서 일도 하고 놀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희랑 자연히 연구 얘기도 하고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나왔다. 지희가 사람들이 자기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알게 되면 세금을 뿌듯하게 잘 내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문득 &#8220;크라우드소싱 하지 뭐&#8221;를 외쳤다. 그래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크라우드소싱을 해서 예산과 세금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집단지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둘이 이 방향에 꽂혀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자끼리 결혼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지희는 이 아이디어로 교내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연구비를 따냈다. 일단 나는 메인 연구가 있기도 했고 지희는 막 부임해서 학생이 없던 상황이라 전산학과 경제학에 둘 다 관심이 있던 KAIST 학부생인 이창원 씨를 섭외해 연구를 시작했다.</p>



<p>야심 차게 시작은 했지만, 세금, 예산, 시민참여 등에 대해 상식 수준 이상으로 아는 게 없다 보니 막연했다. 일단 현상을 파악하고 기회를 찾아보기 위해 HCI 프로젝트의 기본인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밟았다. 전직 국회의원, 국회의원 보좌관, 기획재정부 공무원 등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예산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을 돌렸다. 전문가들은 예산이라는 어렵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시민들에게 유의미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에 좀 더 속도가 붙으면서 정종혁 씨, 고은영 씨를 추가로 섭외해서 지희가 학부생 3명과 직접 일하고 나는 원격으로 미팅에 참여하면서 연구를 발전시켜 갔다.</p>



<p>설문 결과를 분석하니 사람들은 예산의 중요성은 인지하면서도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데, 특히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해석을 하거나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이 언론을 통해서 예산에 대한 정보를 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신문기사 내용에 맞는 적절한 예산정보를 자동으로 추가하고 기사에 등장하는 예산과 비슷한 규모의 다른 예산을 보여주어 판단에 도움을 주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보다 사실에 근거한 토론을 할 수 있게 돕는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15">Factful</a>이라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 초기 버전을 가지고 CSCW에 제출했지만 아쉽게 떨어졌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사회이슈와 예산 간의 연관성을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얻어내고 이를 시각화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18">BudgetMap</a>이라는 인터페이스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Stanford 시절 나와 같이 석사를 하고 그 당시 한국서 병역특례를 하며 박사준비를 하던 김남욱을 섭외하여 진행했다.</p>



<p>제대로 연구를 진행하려다 보니 원격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지희와 나는 파격적으로, 여름에 한 달 동안 지희와 학부생 세 명이 내가 인턴을 하는 Seattle로 와서 같이 연구를 진행하자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Airbnb 집을 구해서 숙소 겸 일하는 공간으로 쓰고, 은영 씨에게는 민박집을 구해주었다. 마치 스타트업을 하듯, 지희와 학생들이 낮에 일하고 나는 퇴근을 하고 저녁에 합류해서 또 같이 일을 하는 식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같이 인턴을 하던 윤동욱, UW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홍성수 형, MSR에 근무하던 박현정 형 등 지인들과도 종종 만나 어울리면서 학생들도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독특한 상황에서 연구 경험을 하면서 학생들도 힘들었을 텐데, 다들 너무 열심히 잘 해주었다. 내가 KAIST에 갈 수 있어서 이런 학생들과 일할 수 있다면 보람도 있고 제대로 연구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창원 씨는 BudgetWiser 연구를 계속 이어서 돕다가 산업기능 요원으로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종혁 씨도 우리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고 졸업해서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은영 씨는 HCI 연구의 길로 진로를 결정하고 우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남욱이는 Harvard에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여 시각화 연구를 계속 진행하며 졸업을 앞두고 있다.</p>



<p>개인적으로는 4월 UIST 학회에 LectureScape과 CAKS 논문을 내고, 틈틈이 BudgetWiser 연구도 원격으로 진행하면서 5월 CSCW 학회에 Crowdy와 Factful 논문을 내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또 같은 시기에 Anant가 Cobi의 후속 연구를 진행하면서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18">HCOMP 학회에 논문</a> 준비를 했는데, 여러 교수가 프로젝트에 관여하다 보니 오히려 아무도 신경을 못(안) 쓰는 상황이 되어 내가 방향을 리드하고 Anant가 실제 논문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논문 5개를 두세 달에 걸쳐 쏟아내고 나니 봄이 지나고 학기가 끝났다. 하얗게 불태웠던 봄을 뒤로 하고 인턴십을 위해 Seattle로 날아갔다.</p>



<h1>MSR 인턴십</h1>



<p>UIST, CHI 같은 우리 분야 최고 학회에 1저자 논문이 나오기도 했고 연차도 올라가서 내 연구를 아는 사람도 조금씩 생겨서 그랬는지 MSR(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인턴십 제의가 왔다. 전산학 분야 전반에서도 그렇지만 HCI 분야에서 MSR의 상징성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HCI 연구자만 어림잡아 20~30명 정도 되는 큰 조직이었고, 최고 학회에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조직 중 하나이기도 했다. 졸업하기 전에 한번 꼭 인턴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곳이었는데, 좋은 타이밍에 좋은 기회를 얻었다. 소셜 컴퓨팅 분야에서 좋은 연구를 하는 Merrie와 Andrés가 공동 멘토였고, 연구실 동료인 Elena도 같은 팀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p>



<p>Elena와 나는 Office Mix라는 제품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했다. Office Mix는 강의자가 Powerpoint 슬라이드 위에 설명을 더하고 중간중간에 퀴즈 등을 담아서 온라인 비디오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비디오 학습이라는 내 연구주제와 운 좋게도 딱 맞는 제품이었고, 여기에 보다 향상된 기능을 구현해서 넣고, 실제 선생님과 학생들이 유용하게 쓰는지 사용성 스터디를 해보는 연구를 했다. 나처럼 새로운 인터페이스나 도구를 만드는 HCI 연구를 하면, 보통 (1) 뭘, 왜 만들어야 할지 탐색하고 (2) 기술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고 (3) 사용자들이 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보다 나은 경험을 하는지 측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Merrie는 이미 내가 충분히 성숙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본인의 스타일이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1), (2)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내 결정에 맡기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 다만 엄청 꼼꼼하게 일정을 챙기고 환경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지원해 주었다. Merrie는 굉장히 꼼꼼하고 체계적이고 똑 부러지는, 또한 자기관리에서도 빈틈없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Merrie는 오피스에 의자가 없이 책상이 달린 러닝머신 위에서 걸으면서 일을 하고, 인턴 첫날 미팅에서 12주 뒤의 farewell lunch의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 캘린더 초대를 보냈다. (3)에 있어서는 회사의 엄청난 자원과 지원에 놀랐다. 사용성 스터디는 HCI 연구자라면 누구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어려워하고 힘들어한다. 일단 참여자를 섭외해야 하고 실험환경 자체를 준비, 구축해야 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실제 스터디 세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면 연구를 주도하는 학생이 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은데, 특히 참여자가 부족한 경우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동원해서 친구들에게 고생을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참여자의 조건과 숫자를 알려주니 UX 지원 조직에서 섭외와 스케줄링을 알아서 해주고, 나는 그 시간에 나타나서 세션 진행만 하면 되었다. 특히 실제 초, 중등학교 선생님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있어 교육 관련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더욱 좋았다.</p>



<h1>4년 차를 마치며</h1>



<p>시애틀의 환상적인 여름 날씨와 월드컵, MSR의 인턴십과 BudetWiser 연구가 어우러져 바빴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많았고 이제는 이들을 구체화하고 연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교수나 멘토가 하라는 것을 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연구의 방향을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4년 전 월드컵 때는 박사 시작 직전이라 막연한 기대감에 들뜨고 여유 있었는데, 4년 후 다시 월드컵을 맞는 이 여름, 나는 박사과정 한복판에서 정신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이 블로그의 제목처럼 &#8220;a small step forward&#8221;가 매일매일 느껴지는 시간이라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9월 CHI 데드라인에는 7개의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p>



<p>이렇게 생산적인 여름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을 안고 Boston으로 돌아가기 전날.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 가족을 두고 유학을 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상황. 내가 유학 나와 있을 때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그런 일. 인턴십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신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먹먹한 마음을 안고 Boston이 아닌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p>



<hr class="wp-block-separator"/>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strong>박사 4 Part 2</strong></a> (2019.01.13)</li><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li>박사 5 Part 2</li><li>에필로그</li></ul><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2</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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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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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Thu, 09 Jun 2016 20:12:50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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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4-1: 도약, 달리다 2013.9 &#8211; 2013.12 edX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4년 차, 이제는 어떻게 보아도 저년 차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냉정히 바라봤을 때 현재까지 내 박사과정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박사 연구주제와는 상관없는 인턴십과 석사 때 연구에서 나온 2저자 논문 2개뿐. 4년 차 넘어가는 여름에서야 뛰어난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1"</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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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박사 4-1: 도약, 달리다</h1>
<p>2013.9 &#8211; 2013.12</p>
<p>edX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4년 차, 이제는 어떻게 보아도 저년 차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냉정히 바라봤을 때 현재까지 내 박사과정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박사 연구주제와는 상관없는 인턴십과 석사 때 연구에서 나온 2저자 논문 2개뿐. 4년 차 넘어가는 여름에서야 뛰어난 공동연구자들의 도움으로 1저자 논문이 처음 나왔지만, 역시 박사 연구 주제는 아니었다. 같은 연차의 잘 나가는 친구들이 1저자 논문을 2~3개씩 쓰고 우수논문상도 받는 걸 보니 걱정, 불안, 자극, 좌절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잘하는 걸 떠나서 졸업 자체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교수가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객관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온라인 교육 + 크라우드소싱 쪽으로 연구의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고, edX에서의 경험과 그간 해오던 ToolScape 프로젝트로 연구에 조금씩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좀만 더 잘하면 뭔가 될 거 같은데, &#8220;아직은 일러&#8221;라며 누군가 자꾸 밀어내는 기분이었다.</p>
<h1>edX</h1>
<p>스스로 만들어냈기에 뿌듯했고 동기부여가 강했던 edX에서의 인턴십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참고). 수십만 명의 학생이 어떻게 플랫폼을 사용해서 학습하는지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었고, 그 속에서 내가 특히 관심 있던 비디오 학습에 대한 분석 및 개선을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edX는 당시 신생기업이었고 플랫폼 안정화에 집중하느라 연구를 할 수 있는 체계가 사실상 없었다. 내가 보고 싶던 데이터는 바로 분석할 수 있는 친절한 형태로 저장된 것이 당연히 아니었다. 우선 플랫폼 초창기라 데이터 저장에 대한 체계가 일관적이지 않아 여름 내내 이른바 데이터 클리닝을 엄청나게 하고 분석 파이프라인을 갖추어야 했다. 또 하나 아차 싶었던 부분은 학습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건 해당 수업을 개설한 강사와 학교의 연구자들이지 edX 플랫폼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프라이버시, 학교별 규정, 오픈 플랫폼을 추구하는 edX의 방향성 등의 이슈가 섞여 온라인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접근 허락을 받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수차례의 미팅과 개인정보 제거의 과정을 거쳐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야 데이터를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p>
<p>이때 edX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새로운 온라인 학습형태를 연구하러 온 사람들이 두세 명 더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여름 동안 edX를 방문하고 그 이후 1년 동안 MIT 우리 연구실에서 포닥을 한 Philip Guo였다. 그 유명한 <a href="http://pgbovine.net/PhD-memoir.htm">Ph.D. Grind</a>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내가 쓰는 이 글을 Twitter에서 <a href="https://twitter.com/pgbovine/status/731514138799788032">언급하기도 했다</a>. Philip의 책은 자신이 학계를 떠나 Google에 엔지니어로 합류하면서 학계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끝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후 은퇴(?)를 번복하고 University of Rochester에 교수직을 얻었다. 그러면서 작년 Haoqi처럼 1년을 미루고 우리 연구실에서 포닥을 하기로 했다. 속았다며 실망감을 표현하고 학계 복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독자들의 이메일이 몰려드는 상황이라고 했다. Philip은 재밌고 쾌활하고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 편하게 대하는 성격이었다. 나와 여러모로 말도 잘 통하고 연구의 취향도 잘 맞아서 edX에서 비디오 분석 연구를 같이하기로 했다. 각자 하고 싶던 분석이 조금 달랐는데, 다행히 같은 분석 파이프라인을 공유할 수 있어 시너지가 났다. 이 무렵 <a href="http://learningatscale.acm.org/las2014/">Learning at Scale</a>이라는 새로운 학회가 생긴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와 같이 온라인을 통한 큰 규모의 학습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학회인데, 교육학과 Computer Science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나에게 완벽한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시작과 함께할 수 있어 더욱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Philip과 하고 있던 두 가지 분석 프로젝트를 논문화하여 Learning at Scale에 제출하기로 했다.</p>
<p>Philip의 글은 간명하고 술술 읽히는 힘이 있었다. 오랜 시간 블로깅과 대중을 향한 글쓰기를 해오던 내공이 논문을 쓰는 데에도 반영되는 듯했다. Philip은 어렵거나 현학적인 단어는 최대한 피하고 짧은 문장, 표와 목록, 한 문장 요약 등을 선호했다. Philip의 분석 논문은 무려 데드라인 두 달 전에 거의 완성본이 나왔다. 물론 내 논문은 데드라인 당일에야 완성되었다.</p>
<h1>폭풍이 몰아치던 여름</h1>
<p>내 논문 완성이 늦었던 건 내가 느리고 게을렀던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2013년 여름과 가을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edX 인턴십 동안 시작한 2개의 프로젝트와 더불어 몇 가지 다른 일들이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Rob은 연구실에 학부생 20명을 뽑아서 여름 동안 <a href="http://web.mit.edu/6.mitx/www/">bootcamp</a>를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웹 개발의 기본을 가르치고 여름 동안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야심 차고 새로운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이 중 교육과 비디오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세 팀을 맡아서 지도를 하기로 했다. edX가 학교 바로 옆에 있다 보니 랩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박사 주제는 아니지만 나에게 첫 1저자 논문을 안겨준 Cobi 프로젝트의 후속 작업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CMU에서 포닥을 하던 Paul의 주도로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5">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한 학회 논문 주제 클러스터링에 대한 논문</a>이 완성되었고, 나도 3저자로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에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를 하던 Lydia가 <a href="https://juhokim.com/publications.html#C8">학회 논문을 태깅하는 툴</a>을 만들었고, 역시 이 프로젝트에도 2저자로 참여했다.</p>
<p>남의 연구를 돕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메인 연구이던 ToolScape 역시 개선작업을 해서 9월 CHI 데드라인을 노리기로 했다. 여름 동안 인턴을 하면서 Rob과 ToolScape의 방향에 대해 상의를 했고,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한 비디오 자동요약 기술을 추가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9월에 인턴십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3주 정도 올인을 해서 이 부분을 어떻게든 구현해 넣고 실험을 돌려 분석을 추가했다.</p>
<p>여러 프로젝트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정신도 없었고 자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들도 생겼다. 내가 Cobi 프로젝트에서 맡은 잡일이 하나 있었는데, 시간도 꽤 걸리고 사실 좀 귀찮기도 해서 며칠째 손을 못 대고 있었다. 뒤늦게야 정신이 번쩍 들어 그 일을 하려고 봤는데, 누군가 이미 해 놓아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Rob이 며칠 전에 직접 일을 처리했던 것이었다. Rob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봤더니,</p>
<blockquote>
<p>&#8220;지금 네가 나보다 더 바쁘고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잖아. 이럴 땐 내가 너의 supporting staff가 되어야지.&#8221;</p>
</blockquote>
<p>라고 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한편으로 놀랐다. 좋은 연구를 위해 권위와 형식보다는 실용과 희생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또 실천하는 지도교수를 두어 정말 행운이라 생각했다. 폭풍 감동이 지나가고 나니 연구에 나태해질 때마다 이 상황이 생각나고, 다시금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 나는 어떤 모습의 지도교수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하는 일화이기도 하다.</p>
<h1>첫 논문 발표</h1>
<p>9월 CHI 데드라인이 지나고 나니 Scotland에서 열리는 <a href="https://uist.acm.org/uist2013/">UIST 학회</a>가 다가왔다. 내 첫 1저자 논문 발표였고, 몇 주 전부터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이 분야에 제대로 처음 데뷔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랩에서 두세 번 발표연습을 하면서 Google Doc을 통해 슬라이드별 실시간 피드백과 가상의 청중 질문을 받았다. 발표준비를 하면서 나는 너무도 당연히 슬라이드 별로 말할 내용을 문장으로 적어가며 준비했다. 정확히 어떤 포인트를 이야기하고 영어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단어 단위까지 세세하게 준비를 했다. 연구실에서 연습발표를 할 때 이걸 다 외울 틈이 없어 적어 놓은 것을 읽었는데, Rob은 발표를 멈추게 하고 스크립트를 다 지우라고 했다. 읽거나 외우는, 즉 스크립트가 있는 발표는 죽어있는 발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Rob의 철학이었다. 그 이후로 나도 스크립트 없이 발표한다는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엄청 꼼꼼한 Haoqi는 스토리 전반적인 흐름이 어색하다며 발표 이틀 전에 큰 그림을 뒤흔드는 몇 가지 제안했고, 나는 이걸 도저히 제대로 반영해서 발표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았지만, 그의 말이 맞았기에 의견을 따랐다. 말할 내용을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자꾸 꼬여서 괴로운 데다가 발표 구조까지 바뀌어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Scotland 숙소였던 bed &amp; breakfast (하숙집)에서 학회 세션도 안 들어가고 계속 연습했다. 그 이후로 글로만 된 아웃라인을 잡고 스토리를 여러 번 점검한 뒤에 슬라이드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슬라이드부터 만들기 시작하면 시각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p>
<p>어쨌든 15분짜리 발표 하나를 준비하는 데에 꼬박 3주 정도를 썼고,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무난하게 발표를 마쳤다. 확실히 내부의 기준이 높고 검증이 철저하면 당장은 힘들지만, 밖에 나갔을 때 자신감이 생기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힘이 생긴다. 주위에 많은 연구실이 이렇게 &#8220;빡센&#8221; 내부의 검증과 준비 문화를 갖고 있었다. 위층의 어떤 연구실에서는 연구실 미팅에서 학생이 발표 중에 엄청난 질문과 비판에 못 이겨 거품을 물고 쓰러져서 실려 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파괴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겉돌지도 않는,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MIT는 <a href="http://hacks.mit.edu/Hacks/by_year/1991/fire_hydrant/">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는 듯한 엄청난 학업량과 학문적 압박을 주는 공간</a>이었고, 이를 악물고 살아남는 자들이 훌륭한 연구자로 거듭나는 거친 환경이었다.</p>
<p>MIT 특유의 빡셈과 엄청난 학업량은 다들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하게 하면서도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낸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델에 대한 회의를 갖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2015년 초 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른 것이다. 무려 두 달 사이에 네 명의 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당시 페이스북에 쓴 글:</p>
<blockquote>
<p>최근 몇 년간 MIT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크지도 않은 학교에서 올 academic year 동안만 벌써 5명…. 개인적인 비극으로 치부하기에는 학교 당국이 너무 안일하고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엄청난 학업량과 주위 학생들, 교수들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도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8220;좋은&#8221; 학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그 구성원의 희생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위로의 전체 메일을 넘어서 학교 당국이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닐까. (2015.3.8)</p>
</blockquote>
<p>Boston의 차가운 잿빛 겨울 날씨와 겹쳐져 더욱 우울했다.</p>
<h1>폭풍이 몰아치던 가을</h1>
<p>UIST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제 여름에 edX에서 하던 분석 논문을 내기로 한 Learning at Scale 데드라인이 다가왔다. Philip이 주도한 논문은 이미 완성이 되었고, 내가 주도한 논문은 결과만 좀 있고 아직 글이 전혀 없었다. 이 와중에 California 사막지대 휴양지인 Palm Springs에서 열린 <a href="http://www.humancomputation.com/2013/">HCOMP 학회</a>에 참석했다. 크라우드소싱 연구가 많이 소개되는 학회로 Paul과 함께 쓴 Cobi 논문 발표가 있었고, 한편 나는 학회 전에 이틀 동안 열리는 <a href="http://www.humancomputation.com/crowdcamp/hcomp2013/">CrowdCamp</a>라는 워크샵에 조직위원으로 참가했다. 행사 홍보를 하고 올 사람들을 선발하고, 해커톤 형태로 진행된 워크샵의 각종 운영 준비를 했다. 하필 Learning at Scale 데드라인은 HCOMP 학회 도중이었고, 나는 낮에는 학회에 참가하고 밤에는 룸메이트가 깰까 싶어 호텔 로비에서 논문 작업을 했다. 이어서 곧 CHI 논문 리뷰가 돌아왔고 기쁘게도 좋은 점수가 나왔다. HCI 분야의 주요 학회에서는 각 리뷰어가 논문에 1~5점 사이의 점수를 부여하는데, 난생처음 5점 만점도 받아 보았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리뷰어의 지적 사항에 관해 설명하고 반박하는 rebuttal을 써야 했다. Lydia의 논문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애매한 점수가 나왔지만, 몇 군데 리뷰어의 오해가 있었고 잘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역시 rebuttal 작업을 도왔다.</p>
<p>이 모든 일이 몰아치고 정신을 좀 차려보니 오후 4시면 밖이 어둑어둑해지는 겨울이 되어 있었다. 여름에 잠시 휴가를 다녀온 이후로 쉬지 않고 달렸던 몇 달여의 시간이었다. 연구와 박사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장의 일들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집중이 잘 되는 새벽 시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녁 9-10시에 자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p>
<p>정말 다행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고대하던 ToolScape 논문이 좋은 성적으로 CHI에 합격하였다. Cobi의 후속 프로젝트였던 Paul의 논문은 HCOMP에, Lydia의 논문도 역전 드라마를 쓰며 CHI에 우여곡절 끝에 합격하였다. 정말 감사하게 이 세 논문 모두 우수논문상 (honorable mention, notable paper)을 받았다. Philip과 나의 edX 분석 논문 두 개도 제1회 Learning at Scale에 모두 합격했다. 처음 열리는 학회라 상대적으로 리뷰 과정이 다른 학회에 비해 덜 엄격해서 운도 따랐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몇 년을 해도 제자리만 맴돌던 논문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펑펑 터졌다. 그러고 나니 좀 멍하기도 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CV에 합격한 논문을 한 줄씩 추가하면서 감사한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교차했다.</p>
<h1>놀기만 할 수 없던 겨울 한국 방문</h1>
<p>드디어 연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겨울방학이 되니 기쁜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갔다. 지희는 교수로서 첫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롱디에 대한 어려움을 느낄 틈이 없을 정도로 둘 다 바쁜 몇 달이었다. 아내의 새로운 집과 직장, 직업은 나에게 낯설었고, 직접 와서 새로운 환경을 보니 새삼 우리가 떨어져 지내고 있음을 실감했다. 서로의 생활과 고생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조금씩 낯섦에 적응해 나갔다.</p>
<p>유학생에게 한국 방문은 그야말로 휴식과 치유의 시간이다. 가족과 연인,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다 오면서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푸는. 나도 석사 때 유학 나오고부터 매년 한 번씩은 2주 정도 귀국을 해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 겨울은 조금 달랐다. 지희가 한국서 교수가 되고 나는 고년 차가 되고 나니 한국에서의 진로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학회 등을 통해 간간이 인사드렸던 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몇몇 교수님은 세미나 발표를 할 기회를 주시기도 했다. 세미나는 여러 측면에서 좋은 기회였다. 우선 내 연구를 알리고 피드백을 받을 기회를 얻으니 당연히 연구 측면에서 좋고, 초청해 주신 교수님 및 학생들과 교류의 기회가 되었다. 또한, 한국에서 내 연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시험을 해볼 수 있고, 내 분야와 연구가 과연 해당 학교와 학과에 잘 어울릴지 감을 잡을 수도 있었다.</p>
<p>만난 교수님들께 진로 상담을 드리니 유용한 정보와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저널 논문을 만들라는 말을 들었다. Computer Science의 많은 세부분야에서는 저널이 아니라 학회에 논문을 낸다. 아마도 변화가 워낙 빠른 분야이다 보니 심사와 출판의 사이클이 빠른 학회가 인정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좋은 연구는 대부분 학회에 나오고, 저널은 학회 논문을 좀 더 확장시켜 내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이런 확장작업을 불필요하거나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KAIST 등 몇몇 학교에서는 CS의 경우 저널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저널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SCI 등재지 논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MIT에 돌아와 Rob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한국으로의 진로를 생각한다면 저널을 쓰는 것에 대해 충분히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SCI가 뭐냐고 했다…. 둘이 나란히 앉아 SCI 등재지 목록을 열어놓고 HCI 분야 등재지를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MIT 교수 12년 차인 Rob이 알거나 논문을 내본 적이 있는 저널은 거의 없었다.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제도와 기준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런 기준에 내 연구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달리 박사 졸업 예정자가 지원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막혀있는 학교들도 있었다. 이른바 &#8220;fresh Ph.D.&#8221;는 교수지원을 할 수 없고, 결국 포닥이나 다른 학교에서 교수 재직 경험이 있어야 임용이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많은 학교에서 이런 기준이 없어지거나 개정 중이라고 한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평가와 측정의 편의 때문에 해당 분야의 실질적인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는 한국 학계를 섬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p>
<p>한국 방문을 통해 이제 실적이 막 나오는 시점에서 잠시 우쭐해질 수도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들의 솔직한 피드백도 있었고, 발표하면서 내가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도 있었다. 연구의 문을 이제 막 열었는데 아직 알맹이가 없었다. 싹이 막 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다음 연구를 얼른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고 미국에 돌아왔다. 2014년 새해가 시작되고 있었다.</p>
<hr />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
<li style="list-style-type: none;">
<ul>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strong>박사 4 Part 1</strong></a> (2016.06.0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
<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
<li>박사 5 Part 2</li>
<li>에필로그</li>
</ul>
</li>
</ul>


<p></p><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4 Part 1</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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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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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May 2016 04:14:45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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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3: 버티고 버티니 길이 보인다 2012.9 &#8211; 2013.8 어느새 박사과정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2년 차의 여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더 이상 &#8220;저년차&#8221;도, 20대도, 미혼도 아니었다. 결혼은 했지만 롱디는 끝나지 않았다. 지희는 박사 말년 차에 접어들었고, 둘이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맞추어 같은 곳에 살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나는 2년 차 중 잠깐의 방황 끝에 학계에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3"</span></a></p>
<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3</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1>박사 3: 버티고 버티니 길이 보인다</h1>
<p>2012.9 &#8211; 2013.8</p>
<p>어느새 박사과정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2년 차의 여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더 이상 &#8220;저년차&#8221;도, 20대도, 미혼도 아니었다. 결혼은 했지만 롱디는 끝나지 않았다. 지희는 박사 말년 차에 접어들었고, 둘이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맞추어 같은 곳에 살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나는 2년 차 중 잠깐의 방황 끝에 학계에 남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지희도 교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결혼을 마치고 Boston에 돌아오니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논문 하나 없이 3년 차가 되어 있었다. 불안하고 초조해졌다.</p>
<p>2년 차 말, 연구실에 있던 고년 차 학생들이 우수수 졸업하고, 내 위에는 Katrina밖에 남지 않았다. 내 롤모델이던 Michael은 그해의 스타 학생이었고 역시나 Stanford 교수가 되었다. 연구보다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좋다던 Max는 모교 MIT에서 프로그래밍 개론 과목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전임강사(lecturer)가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스타트업을 하거나 회사에 취업했다. 워낙 CS 분야의 창업 열기도 뜨겁고 투자상황도 좋아서 주위에 박사학위 취득 이후에 스타트업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보다 저년차 학생으로는 프로그래밍 달인인 Tom, 교육학 석사를 하고 CS 박사의 길을 택한 Carrie, 학부 때부터 좋은 크라우드소싱 논문을 써온 Kyle, 그리고 연차는 나와 비슷했지만 교육 + HCI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바꾼 Elena가 있었다. 불과 2년 만에 연구실 구성원이 확 달라졌고, 딱히 선후배 문화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선배 축에 속했던 나는 왠지 모를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다.</p>
<h1>ToolScape</h1>
<p>비디오 학습으로 연구의 방향을 잡고, 그중에서도 특히 수학문제 풀이, 요리 레시피, 가구 조립하기 등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이 담겨 있는 how-to video에 집중했다. 교육학에 대한 배경과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교육과 관련된 연구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론적 바탕을 갖추기 위해 교육학 논문을 많이 읽었다. 2주 정도는 집중 읽기 기간으로 정해 다른 일을 제쳐놓고 하루에 10개 정도의 논문을 정독했다. <a href="https://juhokim.com/toolscape/" target="_blank" rel="noopener">ToolScape</a>라는 툴을 만들었는데, how-to video 속에 담긴 문제 해결의 각 단계에 관한 정보를 비디오 옆에 표시해 검색과 탐색을 돕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한 번에 한 프레임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비디오의 매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텍스트처럼 내용을 쉽게 훑어보거나, 원하는 특정 단계로 건너뛰거나, 그 단계를 반복해서 볼 수 있게 하여 학습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툴을 완성하고 사용자 스터디를 통해 유용성을 보였다. 만들면서도 유용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했지만, 막상 실제 사용자 스터디를 통해 사람들이 이 툴을 사용해 더 나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보니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HCI 학문의 매력이라 느꼈던 것이 바로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불편을 겪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를 실제 경험하면서 즐겁게 일했다. 여태 해온 연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아이디어이고 박사 연구의 중요한 축이 될 주제라 더욱 애착이 갔다.</p>
<p>9월 CHI 데드라인에 맞춰 여름 동안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정리했다. 그런데 논문을 제출하기 불과 며칠 전 엄청난 일이 터졌다. 아직 채 출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논문을 보게 되었는데, ToolScape와 매우 유사한 아이디어였다. 다음 달에 있을 UIST에 출간될 논문이었고, Berkeley에 있는 비슷한 연차의 학생이 하는 연구였다. 여태까지의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어 머리가 아찔했다. 바로 Rob에게 사실을 알리고 이제 어떡하냐며 징징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소위 말하는 &#8220;scoop&#8221; 당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때 Rob은 내가 독립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툴을 만들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분명 다른 연구적 가치가 있고, 오히려 이 논문이 나왔다는 것은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티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논문을 마무리해서 제출했다.</p>
<p>모든 연구가 그렇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비디오에서 각 단계 정보를 얻어내는 방식이 수동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 부분을 후속연구로 남겨 두었는데, 아이디어 자체에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CHI에 제출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또 떨어지고 말았다. 1, 2년 차 프로젝트에 이어 3연패. 예상했듯 기술적 완성도의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디어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다는 확신을 얻은 게 그나마 수확이었다.</p>
<p>논문은 떨어졌지만, Rob과 나는 피드백을 받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 프로젝트를 다듬어 나갔다. 학과의 연구 Qual 시험에 ToolScape를 발표해서 학과의 다른 교수 두 분에게 피드백을 받았고, 정규 논문보다 수월한 CHI의 Student Research Competition에 ToolScape을 제출했고, 학회에서 심사하는 교수들 앞에서 발표해 2등을 하는 나름 쾌거(?)를 이루었다. 학회 등에서 박사 학생이 자기 연구를 발표하고 교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Doctoral Consortium에도 ToolScape을 가지고 나갔는데,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반박하고 싶었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엄청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던 교수가 나중에 교수 인터뷰를 보러 간 학과 소속이었는데, 이때의 내 발표를 기억하고 그동안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며 칭찬해 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ToolScape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p>
<p>다만 매년 한 번씩 논문이 떨어지는 계속된 실패에 조금씩 지치고 자신감을 잃어 갔다. 하는 연구가 좋았고 결국 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논문으로 연결되지 못하니 조바심이 들었다. 그 무렵 비슷한 연차의 다른 학교 또래 학생들의 논문이 펑펑 나오기 시작했다.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학생들 웹사이트에 들어가 어떤 논문이 언제 나왔고, 나보다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비교를 하곤 했다. 조용한 밤 열등감 속에 몸부림치다 잠이 들었다. 캄캄한 동굴을 헤쳐 나가는데 남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있는 느낌이었다.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p>
<h1>Cobi</h1>
<p>가을부터 우리 연구실에 Haoqi가 포닥으로 왔다. Harvard 대학에서 크라우드소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Northwestern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중국계 미국인 Haoqi는, 부임을 1년 미루고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간다고 했다. CS 분야에서는, 특히 HCI에서는 포닥이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Haoqi처럼 임용이 된 후 1년을 미루고 포닥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임용이 결정되고 포닥을 하니 취업에 대한 걱정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고, 교수라는 새로운 직업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했다. Krzysztof도 Harvard 부임 전 Microsoft Research에서 비슷하게 1년을 보냈고, Michael도 Stanford 부임 전 Facebook에서 6개월을 보냈다. 뒷이야기지만 나도 비슷한 과정을 따랐다. Rob은 포닥이라는 제도 자체를 싫어했는데, 교수 임용까지 연구자의 가방끈을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게 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어서라고 했다. 다만 이렇게 부임을 1년 미루고 하는 포닥에 대해서는 좋은 준비라며 호의적이었다.</p>
<p>Haoqi는 생김새도, 말하는 것도, 실제로도 아주 똘똘했다. 자기주장이 분명했고,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면 지도교수 포함 누구와도 논쟁하고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편 내가 본 사람 중 손꼽을 만큼 열심히 일했고, 완벽주의자였다. 성격이 둥글둥글한 편이고 자기주장이 세지 않은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이 보여서인지, 나는 오히려 Haoqi와 꽤 잘 어울릴 수 있었다.</p>
<p>스스로 진단하건대 나는 아직도 연구에 있어 홀로서기를 못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탐색하는 면에서는 꽤 독립적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논문으로 연결시킨 경험이 없었다. 랩 선배들도 졸업하고 없는 상황에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연구의 전체 과정을 한번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었다. Haoqi가 그런 면에서 적격이었다. 지도교수보다는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울 게 많겠다 생각했다. 더군다나 쓴소리도 솔직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니 좋은 훈련이 될 것 같았다.</p>
<p>이 무렵 나로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a href="https://juhokim.com/projects/cobi/" target="_blank" rel="noopener">Cobi</a>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천 명이 참석하고 수백 개의 논문을 다루는 CHI와 같은 큰 학회의 스케줄링에 크라우드소싱을 적용해 논문 저자와 참석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아이디어였다. Rob과 Haoqi, 그리고 당시 CMU 교수이던 Steven과 포닥이던 Paul, University of Washington 박사과정이자 우리 연구실 출신 Lydia가 함께 하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시스템을 만들어 당장 CHI 학회에 적용해보는 것이 목표였다. 내 박사 연구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배움이 필요했고 성공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재미있어 보여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p>
<p>CHI에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적용하는 건 이래저래 큰일이었다. 사용자가 동료 연구자들이다 보니 참여한 모두의 직업적 신뢰가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흔히 농담처럼 얘기하는 &#8220;연구 수준의 코드&#8221;가 아니라 실제 돌아가는 코드여야 했다. 10~11월 즈음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다음 해 4월 UIST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 거의 6개월 동안 풀타임 작업으로 이어졌다. 특히 Haoqi와 가까이 일하면서 거의 매일 미팅을 하고 옆에 앉아 코딩을 했다. 수십 차례 랩 친구들에게 파일럿 테스트를 받으며 시스템을 고쳐 나갔다. Haoqi의 완벽주의 성격으로 나는 극한의 프로젝트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여러 번 의견 충돌도 겪었지만 오기가 생겨 버텨 냈다. Haoqi에게서는 하루에 2~3번씩 전화가 왔고, 한번은 일요일 새벽 3시에도 전화가 왔다. 논문을 쓸 때도 Haoqi와 옆에 앉아 동시에 작업하는 pair writing 세션을 수차례 가졌다. 논문 데드라인 날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24시간 정도 한자리에 앉아서 마무리를 했다. Rob이 보다 못해 진지한 말투로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내 <a href="http://juhokim.com/files/UIST2013-Cobi.pdf" target="_blank" rel="noopener">첫 1저자 논문</a>은 이렇게 탄생했다.</p>
<p>Cobi는 성공적으로 CHI 2013을 스케줄링 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CHI에 쓰이고 있다. 학회 참석자들을 위한 툴인 <a href="http://confer.csail.mit.edu/" target="_blank" rel="noopener">Confer</a>는 수십 개의 학회에 쓰이고 있고, 나는 UIST 1저자 논문 이외에도 Cobi 프로젝트와 연관된 3개의 논문에 더 참여했다.</p>
<h1>전환점이 된 순간 2: 연구도 같이 할 수 있다</h1>
<p>Haoqi와 가깝게 지내면서, 나는 종종 내 메인 프로젝트이던 ToolScape 연구가 지지부진하다며 투덜댔다. Haoqi는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교육학도 배워야 하고, 구현 스킬도 이것저것 필요하고, 읽을 논문도 많고, 서너 가지 다른 기술과 알고리듬을 익혀서 적용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걸 아직 다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Haoqi는 그건 좋은 연구에는 늘 나타나는 일이라고 말했다.</p>
<blockquote>
<p>&#8220;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 모든 걸 혼자서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자기 연구니까. 그런데 결국 그러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줄이고 목표를 줄여 최소한의 것만 하고 졸업하는 데에 집중하지. 그런데 중요한 건 더 멋진 시스템을 만들고 더 큰 걸 이루는 것이지, 이걸 다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아?&#8221;</p>
</blockquote>
<p>큰 울림이 있었다.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는 좌절했고, 무엇보다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물론 박사과정에 내 연구가 있어야 하지만, 혼자서 모든 부분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 연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내가 이끌어가면서, 연구를 가장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Haoqi와의 이 대화는 &#8220;같이 연구한다&#8221;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을 뿌리부터 바꾼 중요한 순간이었다. 내 박사 과정의 중요한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이후로 박사 졸업할 때까지 나는 20개 이상의 학교/연구소에 속한 60명 이상의 연구자들과 협업을 했다.</p>
<h1>학계는 고정적이지 않다</h1>
<p>내 석사 지도교수였던 Scott이 학교를 옮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Stanford를 떠나 UCSD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로 간다고 했다. 만일 내가 Stanford에 계속 남아서 Scott과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좀 아찔해졌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이직하듯 교수가 학교를 옮기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지만, 도제식으로 교수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연구하는 공대 대학원생으로서는 삶의 바탕이 흔들릴 수 있는 일이다.</p>
<p>그런가 하면 연구실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나보다 2년 선배였던 Katrina는 무려 박사 5년 차를 마치고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지도교수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교수가 1년만 더 하고 졸업해서 취업하라고 권할 정도였으니. Google에서 UX Researcher 인턴을 하고 와서는 너무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며, full-time 오퍼가 나오자 결정을 내렸다. 나보다 1년 아래였던 Tom은 창업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보다 2년 아래였던 Kyle은 연구 주제가 잘 맞지 않아 역시 그만두었다. 나라면 연구가 잘 맞지 않아도 아까워서라도 학위까지는 어떻게든 받아야겠다 생각했을 것 같은데, 확신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랩 친구들이 새삼 멋져 보였다.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건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일 뿐이니까.</p>
<h1>학회 이야기: CHI, UIST, CSCW 문화</h1>
<p>나는 여전히 논문이 이제 막 나올 듯 말 듯 한 &#8220;nobody&#8221;였지만, 어느덧 4년 정도 CHI, UIST, CSCW 등의 학회에 참석하면서 이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학회는 분명히 정해진 몇 가지 형태의 소셜 인터랙션을 기반으로 한다. 논문 발표의 형태로 더욱 공식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쉬는 시간, 식사 시간, 밤 시간 등을 통해 사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발표할 논문도 없는데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공식적 소통을 할 수 없어 이래저래 자존심도 좀 상하고 모양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적인 소통을 하는 데에는 사실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는 논문이 없더라도 학회에 참석해서 나와 평생을 얼굴 보고 같은 분야에서 활동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회가 열리는 며칠 동안 아마 수십 번은 듣는 &#8220;are you presenting anything?&#8221;이라는 질문에 웃으며 답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Rob은 발표할 것이 없어도 주요 학회는 공짜로 보내 주었다.</p>
<p>학회에 가면 논문에서 이름을 많이 보며 동경해 마지않던 대가 교수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주위에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처음 학회에 갈 때는 마치 연예인을 보듯 대가에게 인사도 하고 연구 이야기도 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생각 외로 많은 대가가 친절하게 인사도 받아주고 내 연구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음 학회에서 이분들이 나를 기억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나를 기억하는 경우는 이들의 연구가 내 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내 지도교수를 대가가 잘 알고 있거나 한 경우. 결국, 나는 대가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른바 &#8220;schmoozing&#8221;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바꾸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이나 내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 분야와 연차가 비슷했던 Walter나 Chinmay 같은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친해졌다. 학회에 가면 따로 시간을 내어 커피나 맥주 한 잔씩은 따로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 둘과는 졸업을 같은 해에 하고 교수 지원을 같이해서 job market에서는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이런 시스템에 저항하자며 우리끼리 속속들이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p>
<p>Rob은 학회에 가면 늘 한두 세션은 째고 동네 구경을 했다. Scott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어느 정도 정해 놓고 만났다. Rob은 소셜을 위한 소셜을 매우 싫어했다. 분명한 주제가 있거나 본인이 정말 편하다고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과 주로 대화했다. Scott은 그런 면에서 훨씬 적극적이고 전략적이었다. 쉽게 다가가기는 어려웠지만, 이 학회에서는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계획이 분명했고 연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늘 완벽히 되어 있었다. Rob의 슬라이드는 흰 바탕에 Arial 글씨체로 Bullet point가 많이 들어간, 그야말로 공대 스타일이었다. Scott의 슬라이드는 늘 임팩트 있는 사진이나 이야기로 시작했고, 비싼 글씨체를 돈 주고 사서 쓰고 슬라이드에 글씨는 많지 않았다.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두 지도교수와의 경험은 내가 이 스펙트럼 상에서 어느 점에 있고 싶은지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p>
<h1>MOOC와 edX</h1>
<p>비디오 학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즈음, 2011년 가을 Stanford에서는 인공지능 분야의 스타인 Sebastian Thrun 교수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16만 명의 학생이 수강했다. 이 수업 후 Sebastian은 자신이 평생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학생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수의 전 세계 학생을 가르칠 기회라며 학교를 그만두고 <a href="https://www.udacity.com/" target="_blank" rel="noopener">Udacity</a>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역시 Stanford 인공지능 분야의 대가인 Daphne Koller와 Andrew Ng 교수가 <a href="http://www.coursera.org" target="_blank" rel="noopener">Coursera</a>라는 플랫폼을 창업했고, 곧이어 MIT와 Harvard는 6천만 불을 투자해 <a href="https://www.edx.org/" target="_blank" rel="noopener">edX</a>라는 비영리 플랫폼을 시작했다. 우리 과 교수이던 Anant Agarwal이 CEO가 되었다.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8220;엄청 크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온라인 수업&#8221;)라는 말이 유행했다. New York Times에서는 2012년을 &#8220;<a href="http://www.nytimes.com/2012/11/04/education/edlife/massive-open-online-courses-are-multiplying-at-a-rapid-pace.html?_r=0" target="_blank" rel="noopener">the year of the MOOC</a>&#8220;라 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비슷한 형태로 지속하여 오던 교육 분야에 큰 파도가 하나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MOOC의 주 컨텐츠는 비디오였고, 웹상에 넘쳐나는 컨텐츠와 이전에 불가능하던 엄청난 규모의 학생 그룹을 결합시키면 새로운 걸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p>
<p>전략적인 이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Stanford, MIT, Harvard 등이 MOOC 시장에 뛰어들면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이 흐름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MIT 대학원 학생회는 온라인 교육이 학교 교육과 대학원 학생들에게 가져올 파장을 고민하고 우리의 입장을 학교에 전달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고, 나는 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실제 MOOC 플랫폼 내부와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ob에게 edX에서 인턴십을 하면 어떨까 제안을 했고, Rob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예상치 못한 제안이기는 하지만 괜찮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edX의 Chief Scientist인 Piotr Mitros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당시 edX는 전 직원 50명 정도의 신생 회사에 연구 조직은 사실상 Piotr 혼자였고, 연구 인턴십 제도 자체가 없었다. 어찌어찌 자리를 만들어서 첫 번째 연구 인턴으로 edX에서 여름 동안 일하게 되었다.</p>
<p>edX 인턴십을 생각해 내고, 요구하고, 만들어 내자, 나는 내심 뿌듯했다. 이전까지는 내가 여기까지 애를 써가며 온 것이 결국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Boston, MIT, CSAIL… 이 정도의 환경이라면 더는 환경적으로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부터의 모든 결과는 환경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완벽한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고, 환경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좋은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환경의 일부가 되어 좋든 싫든 이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또한 내가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에게 더 알맞는 환경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h1>롱디와 진로</h1>
<p>2013년 6월, 지희는 박사학위를 받고 KAIST에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내가 졸업하면서 롱디를 해결하려면 한국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한국, 미국에서의 진로 사이에 특별히 선호가 없었던 나는 오히려 한국으로 목표를 집중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지희가 8월 한국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두 달의 신혼 생활을 Boston에서 보냈다. 3년간의 동-서부 롱디가 끝나고, 한국-미국동부 롱디가 시작 되었다.</p>
<hr />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
<li style="list-style-type: none;">
<ul>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
<li class="p1"><strong><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strong> (2016.05.03)</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
<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
<li>박사 5 Part 2</li>
<li>에필로그</li>
</ul>
</li>
</ul>


<p></p><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3</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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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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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Wed, 06 Apr 2016 01:51:10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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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2: 탐색과 방황 2011.9 &#8211; 2012.8 인턴십 여름에 Adobe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2년 차. 딱히 해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박사과정의 1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좀 무서워졌다. Rob은 박사과정 동안 세 번 정도 연구 인턴십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HCI 박사과정 학생은 적어도 한두 번은 기업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Microsoft, Adobe, Autodesk,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2"</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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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박사 2: 탐색과 방황</h1>
<p>2011.9 &#8211; 2012.8</p>
<h1>인턴십</h1>
<p>여름에 Adobe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2년 차. 딱히 해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박사과정의 1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좀 무서워졌다. Rob은 박사과정 동안 세 번 정도 연구 인턴십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HCI 박사과정 학생은 적어도 한두 번은 기업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Microsoft, Adobe, Autodesk, PARC, IBM, Google 등의 기업에서 HCI 관련 연구가 활발했다. 대부분 학생은 인턴십 프로젝트를 CHI, UIST, CSCW 등 분야 최고 학회에 논문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턴십 동안 함께 일한 멘토와 후속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같은 곳으로 인턴을 반복해서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이렇게 인턴십 경험이 있으면, 나중에 졸업할 때 그 연구소에 취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교에서 지도교수와 하는 연구 이외에 더욱 다양한 연구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p>
<p>연구 인턴십은 공식 지원 절차도 있고 인터뷰를 보는 때도 있는데, 사실상 지도교수와 학생의 &#8220;인맥&#8221;을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주위에 대부분이었다. 기업 연구자가 친한 동료 교수에게 좋은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으면 직접 접촉하기도 했다. 나는 총 4번의 인턴십을 했는데, 첫 인턴십을 했던 IBM Research는 석사 지도교수이던 Scott에게 학생추천 의뢰가 왔고, 내가 해보겠다고 해서 인터뷰를 통해 합격했었다. 두 번째 인턴십을 했던 Adobe Research는 내 멘토였던 Joel이 Stanford HCI Group 출신으로 나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MIT에 한 학기 동안 방문을 와서 나를 &#8220;점찍어&#8221; 데려갔다. 세 번째 인턴십을 했던 edX는 조금 특이하게 내가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 갔다. 이 과정과 경험에 대해서는 다음 편 (박사 3)에 보다 자세히 언급하겠다. 마지막 인턴십은 Microsoft Research에서 했고, 운이 좋게 멘토였던 Merrie와 Andres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해 인턴십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왔다. 확실히 좀 더 연구가 성숙하고 커뮤니티 안에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p>
<p>인턴십의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돈이었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학교 혹은 교수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학생이기도 하지만 연구실에 소속되어 research assistant로 일하는 셈이다. MIT의 경우 1년 학비가 45,000불 정도인데, 이 비용과 함께 한 달에 2,000~2,500불 정도의 월급 (stipend)을 받는다. 집값이 보통 1,000~1,500불 정도 나가기 때문에 사실 손에 남는 건 별로 안 된다. 교수로서는 학생 하나를 1년 동안 지원하려면 학비, 월급, 학회, 장비 등을 합쳐 80,000~100,000불 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니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학생을 뽑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외부 장학금이 있는 학생은 싸게 먹혀서 좋은 점이 분명 있다. CS 분야에서 연구 인턴십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흔했다. 여름에 12주 정도를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 월급은 7,000~8,000불 정도. 한국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떼고 집값을 내고 나면 한 달에 3,000불 정도 손에 들어온다. 그래도 대학원생으로서는 stipend보다 목돈이 생기니 금전적으로 이득이 된다.</p>
<h1>창의성에서 학습으로</h1>
<p>창의성 지원 도구에 관한 연구를 하던 나는 Adobe 인턴십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주요 제품인 Photoshop, Illustrator, Acrobat, Premiere가 창의적인 이미지, 영상, 문서 작업을 하는 전문가들에게 필수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들과 연동시켜 창의성 지원 도구를 만들 수 있다면 최고의 경험이 될 것 같았다.</p>
<p>막상 회사에 가보니 실상은 조금 달랐다.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각종 기능은 이미 툴 안에 꽉 채워져 있었다. 수백 가지의 화려하고 복잡한 기능이 있었지만, 전문가조차도 그 중의 극히 일부만 사용한다는 데이터가 있었다. 반대로 툴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있는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툴의 기본 원리를 습득하지 못하는 사용자가 늘어갔고, Adobe의 당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복잡한 툴을 보다 쉽게 학습할 수 있게 돕는가였다. 진정 사용자의 창의적 활동을 돕기 위해서는 우선 &#8220;개념과 도구의 학습&#8221;을 도와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묵직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인턴십 프로젝트는 Photoshop에 도움이 필요한 사용자를 전문가와 온라인으로 연결해 주어서 화면공유, 음성채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을 도와주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당시 유행하던 Words with Friends라는 소셜 단어 게임을 변형해서 Photoshop with Friends로 정했다.</p>
<p>몇 년 동안 창의성 지원을 생각하면서 했던 많은 고민이 해결되는 시간이었다. 1년 차 때 글쓰기 도구 프로젝트를 하면서 과연 창의성의 향상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과연 글 쓰는 데에 들어가는 잡일을 줄여주면 창의성이 향상된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다. 학습의 측정 역시 만만치 않게 힘들지만, 적어도 더욱 검증된 기법이 존재했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학습이 선결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내 연구의 방향은 학습을 돕는 도구가 되었다.</p>
<h1>남의 나라에서 먹고사는 일</h1>
<p>내가 유학생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건 사실 먹고사는 문제였다. 요리는 소질도 의지도 없어서 거의 하지 않았고, 혼자 길게 시간 들여 무언가를 해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은 건물 1층 식당이나 근처 학교 식당에서 주로 해결했다. 혼자 식사를 사 와서 내 자리 모니터 앞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고, 종종 근섭, 태수, 용욱 등의 CSAIL에 있는 친구들과 먹었다. 저녁은 좀 더 외로웠는데, 보통 식사를 사 와서 집에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혼자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끔 역시 CSAIL에 있는 예일, 병권이 형, 재환이 등과 맥주 한 잔을 했다. 밤에 답답할 때는 근섭이랑 가끔 한국 노래방에 가서 남자 둘이 세 시간씩 노래를 부르고 오기도 했다. 과에 있는 한국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롱디를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고, 매달 있었던 과의 한국인 모임에서는 박사과정의 우울함과 막막함, 롱디의 우울함과 막막함이 주요 대화 주제였다.</p>
<p>연구와 일은 외국인들과 영어로, 휴식과 소셜 활동은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데에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만 한 것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작 밖에서 노느라 바빠서 거의 보지 않았었는데, 박사생활이 진행될수록 매일의 방송 일정과 최신 예능 트렌드를 꿰는 수준이 되었다. 그들의 재밌는 대화와 경험이 마치 내 것인 양 간접 경험을 통해 재미와 안정을 찾았다. 미국 뉴스보다는 한국 뉴스를 봤고, 미국 드라마보다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과 웹툰을 봤다.</p>
<p>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영어 자체가 문제였지만, 시간이 좀 지나 영어가 조금 편해지고 나니 문화적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다. 교수님, 그룹 친구들과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일 이외의 대화가 늘어나 좋기는 했지만,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알아듣고 공감하기 어려운 단어와 표현이 대화 중에 많이 나왔다. 연구 이야기를 할 때는 활발하게 참여를 하다가 일상대화가 나오면 내 지분과 흥미가 급격히 떨어졌다. HCI 분야의 특성상 미국인이 대부분이고 외국학생이 적어서 더 그런 면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할로윈에 왜 저런 분장을 하고 옷을 준비해 입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고,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기보다는 집에서 쉬거나 여행 가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미국 땅에서 주류로 살아남으려면 이 문화를 아는 것뿐 아니라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마음이 따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즐기는 척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연구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으므로. 내가 졸업을 하고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것인지, 그렇다면 내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p>
<h1>안정, 방황</h1>
<p>2년 차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1년 차 때 논문 저자 문제 때문에 아팠던 경험과 정신없는 적응 기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은 안정이 찾아왔다. 연구그룹 분위기도 좋고, 지도교수 두 분과도 잘 맞는 것 같았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p>
<p><em>&#8220;박사 2년 차는 1년 차만큼 설레거나 의지로 가득하지는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지치거나 걱정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저냥 때우며 보내기 쉬운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졸업이나 논문에 대한 압박이 큰 것도 아니고 환경이나 랩 적응은 어느 정도 되었고. 일주일에 2~3일 잠 제대로 못 자는 거야 마찬가지지만, 그것도 이제는 만성이 되어 긴장감보다는 한숨과 만성피로 속에 지샌달까.&#8221;</em> &#8212; 2011.10.31 &#8220;<a href="http://www.mcpanic.com/2011/10/30/965/">웅크리고 있다</a>&#8221; 중</p>
<p>신기하게 안정이 찾아오니까 마음이 더 불안하고 답답해졌다. 학부, 석사 때는 늘 분명한 단기목표가 있었다. 수업에서는 시험을 보고 학점을 받아야 했고, 석사 때는 연구를 해 추천서를 받고 좋은 학교에 박사로 가야 했다. 박사 2년 차의 상황은 여유가 있는데 묘하게 답답했다. 당장 이루어야 할 단기목표가 없었고, 누구도 내가 오늘 일어나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해주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어서 미팅만 없으면 평일 낮에 티비를 몇 시간씩 보거나 Charles 강을 두 시간씩 산책할 수도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혼자 하는 내 연구밖에 없기 때문에 며칠 성과가 없더라도 당장 티가 나지 않았다. 이 엄청난 자유가 처음에는 한없이 좋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이 근본 원인은 박사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구자로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임팩트란 무엇인가. 학계의 역할은 무엇인가.</p>
<p><em>&#8220;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내가 진정하고 싶은, 혹은 꿈과 비전을 생각했을 때 해야 할 일들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생각해보면 답답하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알고리즘 교과서를 읽을 때나 대체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싶은 미적지근한 논문들을 읽을 때면 학교를 당장 뛰쳐나가 나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싶기도 하고. 벤처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비전없이 근시안적으로 뛰어드는 one of them이 될까 두렵고. 연구를 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당장에라도 나올 것만 같다가도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내 결과물이 부끄러워 슬프다.&#8221;</em> &#8212; 2011.10.31 &#8220;<a href="http://www.mcpanic.com/2011/10/30/965/">웅크리고 있다</a>&#8221; 중</p>
<p>그리고 학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학문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했다.</p>
<p><em>&#8220;비전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강한데, 생각해 보니 문제는 그 비전까지 접근하는 과정과 방법론에 대한 혼란과 불확실인 것 같다. 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꼭 박사학위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학계의 접근 방식에 대한 불만도 있다. 논문을 찍어내기 위해 해야 하는 본질과 무관한 작업이 썩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에게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검증된 방법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결국 기존의 틀에서 무언가를 증명해 내야 한다.&#8221;</em> &#8212; 2012.07.21 &#8220;<a href="http://www.mcpanic.com/2012/07/21/%ec%82%b6%ec%9d%98-%ec%8a%a4%ed%83%80%ec%9d%bc%ec%9d%84-%ec%b0%be%ec%95%84/">삶의 스타일을 찾아</a>&#8221; 중</p>
<p>그러다가도 좋은 연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통스러운 과정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했다.</p>
<p><em>&#8220;진지하게 고민하고 가다듬고 큰 그림과 소소한 디테일을 두루 챙기고 고치고 빼고 넣고 뒤집고 삽질하고 코드 갈아엎고 날카로운 질문들에 말도 더듬어 보고 싫은 소리도 하고 연구를 미워도 했다가 사랑도 했다가 온갖 드라마를 겪고 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아니면 너무 부끄러운 꼴을 많이 보아서 다른 사람들이 줄 부끄러움은 아무렇지도 않은, 연구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나면 읽을 때는 간결하고 오히려 너무 심플해보이지만 읽고 나면 그 연구 속의 깊은 가치와 임팩트가 여운처럼 남는 논문이 나올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상상을 한다.&#8221;</em> &#8212; 2011.03.30 &#8220;<a href="http://www.mcpanic.com/2011/03/30/%ec%b4%88%ec%a1%b0%ed%95%9c-%ec%8b%9c%ea%b0%84%eb%93%a4-%ea%b7%b8-%ec%86%8d%ec%97%90-%eb%82%98/">초조한 시간들, 그 속의 나</a>&#8221; 중</p>
<p>지식을 만드는 학자로서의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논문 하나를 찍어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p>
<p><em>&#8220;&#8216;기존의 방법론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나만의 스타일도 없이 그냥 따라가면서 적응한다&#8217;는 우울한 결론이 나온다.</em></p>
<p><em>답은 하나다. 나만의 뚜렷한 가치관과 스타일이 있어야겠다는 것. 그 스타일을 가다듬고 키워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나로부터 뻗어 나가는 것이 순서이다. 반대가 아니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이 작업을 힘들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크게 후회할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든다.&#8221;</em> &#8212; 2012.07.21 &#8220;<a href="http://www.mcpanic.com/2012/07/21/%ec%82%b6%ec%9d%98-%ec%8a%a4%ed%83%80%ec%9d%bc%ec%9d%84-%ec%b0%be%ec%95%84/">삶의 스타일을 찾아</a>&#8221; 중</p>
<p>그러면서 정신건강이 나빠졌다. 머릿속에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떠다녔고, 그중 많은 것들은 &#8220;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8221;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당시 나를 지배하던 정서는 &#8220;불안함&#8221;이었다. 연구의 방향은 조금씩 잡혀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운동과 식단을 조절해서 신체건강을 챙기듯 자신을 보듬으면서 정신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p>
<h1>창업?</h1>
<p>&#8220;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8221;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때쯤, 창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박사과정의 너무 많은 자유도와 높은 불확실성, 막연함에 대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보다 구체적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뭔가가 나오는 것이 스타트업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p>
<p>당시 MIT에서 MBA를 하던, <a href="http://ondemandkorea.com" target="_blank" rel="noopener">OnDemandKorea</a> 라는 회사를 막 시작한 동갑내기 영준이를 만났다. 미국에 한국 방송 컨텐츠를 합법적으로 들여와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아이디어였다. 그 당시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이 불법 스트리밍 서비스나 웹하드에서 다운로드를 받아 한국 방송을 접하고 있었다. 얼마나 큰 시장인지는 몰라도, 잘만 하면 분명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p>
<p>비디오 인터페이스에 대한 관심이 많던 터라 자연히 관심이 생겼고, 기본 스트리밍 이외에 사용자를 보다 플랫폼에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함께 브레인스토밍했다. 영준이, 그리고 다른 창업멤버였던 Sam, 준석이는 Cambridge 북쪽의 집 하나를 빌려서 홈오피스로 만들어 일했다.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그렇듯 당장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가질 수 있다는 꿈과 열정이 있었다. 나는 완전 내부인도, 외부인도 아닌 위치에서 이 친구들을 종종 놀러 가 미팅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냉동 치킨너깃, 피자와 맥주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열심히 준비하는 이 친구들의 모습에 나도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CEO 영준이는 과묵하면서도 준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차분히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많고 큰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실행력이 부러웠다. 회사가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서 위치를 한국 방송사의 미국 지사가 있는 LA 지역으로 옮겼다. 그 이후로는 직접 도움을 많이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몇 번의 큰 위기를 넘기고 지금은 꽤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워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뿌듯하다.</p>
<p>비슷한 시기에 역시 당시 MIT 학생이던 주변 분들 몇몇과 뭐 재밌는 것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Cuedit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가 1년 차 때 하던 글쓰기 도구와도 연관이 있었는데, 현재 사용자의 관심사나 글을 기반으로 개인화된 뉴스나 정보를 카드 형식으로 바로바로 보여주는 아이디어였다. 브레인스토밍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몇 군데 창업 투자 프로그램에 지원도 했었다. 나름 크고 야심 찬 아이디어였고 재미있게 몇 달 동안 작업을 했지만 결국에는 접기로 했다. 아이디어가 Scott이 그렇게 강조하던 보다 구체적인 사용자의 니즈에서 나오지 못했고, 무엇보다 다들 이게 아니더라도 &#8220;돌아갈 안정된 곳&#8221;이 있었다. 모든 걸 던질 용기를 가질 만큼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이다.</p>
<p>창업을 실제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몇 달 동안 압축적으로 하면서 많이 배웠다. 실행력, 사용자의 요구, 시장, 임팩트…. 학문과 실용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CS와 HCI 연구에도 적용되는 키워드들이다. 박사과정 관점에서는 몇 달을 날리다시피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연구이고, 또 내가 세상에 가장 이바지할 수 있는 방식 역시 연구라는 결론을 내렸다.</p>
<h1>전환점이 된 순간 1: 영상을 통한 학습</h1>
<p>생각이 많고, 벌여놓은 다른 일이 많으니 자연히 연구는 표류하고 있었다. 1년 차 때 하던 글쓰기 도구 연구는 UIST에 떨어지고 여름 인턴 다녀오면서 방치되었고, 나는 다음 방향을 잘 못 잡고 있었다. 여름부터 하던 Photoshop with Friends 프로젝트는 야심 차게 CHI에 냈지만 떨어졌다. 가을, 겨울 동안 계속 진척이 있었지만, 지도교수 둘에 Adobe 멘토 둘과 매주 미팅을 하면서 내가 자신감 있게 이끌어가지 못했다. 프로젝트의 방향이 두세 번 완전히 바뀌면서 휘청거렸지만, &#8220;학습&#8221;이라는 키워드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는 Adobe 멘토 둘의 주요 관심사에서 조금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둘은 프로젝트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p>
<p>학습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게임처럼 만들어 즐기면서 배우게 하고, 팀처럼 협동해서 프로젝트를 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하지만, 잠깐 반짝하는 &#8220;오 괜찮은데!&#8221;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여지없이 이미 되어 있거나 지루하거나 불가능한 아이디어의 반복이었다.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직접 연결하는 것의 기술적, 디자인적 한계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웹상에 널려있는 수백만 개의 학습 비디오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YouTube 같은 영상 사이트에 사람들이 수학, 통계, 프로그래밍, Photoshop, 요리, 메이크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양의 학습 영상을 올리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이 비디오들은 크라우드소싱 된 지식의 집합체였다. 하지만 비디오는 언제 어떤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는지 일일이 찾아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비디오를 분석하고 이해해서 탐색과 검색의 단점을 극복하고 유용한 학습 컨텐츠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Rob과의 연구 미팅에서 아이디어를 던졌다. Rob은 바로 이거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보다 더 신나서 화이트보드에 엄청난 양의 관련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연구하다가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Rob은 이걸 계속해보자고 했다. 후에 박사 논문의 한 축이 된 비디오 학습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다.</p>
<p>내 박사 과정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세 개의 순간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비디오 학습 아이디어를 처음 Rob과 논의한 이 미팅이었다.</p>
<h1>결혼</h1>
<p>연애와 롱디는 기대 이상으로 순탄했다. 경제학 연구를 하던 지희는 공대 같은 연구실 문화가 없어서 비교적 자주 Boston에 방문할 수 있었다. 둘이서 암묵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얼굴을 보자는 원칙을 세웠고, 고맙게도 시간이 좀 더 유연했던 지희가 자주 서부에서 동부로 날아왔다. 카드값도, 항공사 마일리지도, 사랑도 쌓였다. 졸업도, 졸업 후 직장도, 같이 살 수 있을지의 여부도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었지만, 이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12년 여름, 결혼했다.</p>
<hr />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
<li style="list-style-type: none;">
<ul>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strong>박사 2</strong></a> (2016.04.0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
<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
<li>박사 5 Part 2</li>
<li>에필로그</li>
</ul>
</li>
</ul><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2</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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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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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Tue, 29 Mar 2016 01:54:04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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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사 1: 들뜬, 그러나 힘든 시작 2010.9 &#8211; 2011.8 Boston &#38; MIT 새로 이사 온 Boston은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Charles 강이 MIT가 있는 Cambridge와 Boston 사이를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Harvard, Boston University, Boston College, Northeastern University, NEC (New England Conservatory), Berklee College of Music 등의 좋은 학교가 많이 있었다. MIT는 Charles 강변에 있었는데, 강에는 sailing을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1"</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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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박사 1: 들뜬, 그러나 힘든 시작</h1>
<p>2010.9 &#8211; 2011.8</p>
<h1>Boston &amp; MIT</h1>
<p>새로 이사 온 Boston은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Charles 강이 MIT가 있는 Cambridge와 Boston 사이를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Harvard, Boston University, Boston College, Northeastern University, NEC (New England Conservatory), Berklee College of Music 등의 좋은 학교가 많이 있었다. MIT는 Charles 강변에 있었는데, 강에는 sailing을 하는 사람들이 붐벼 오후마다 장관을 이루었다. California보다 사람들은 다소 무뚝뚝하면서도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배려가 있었고, 날씬했다. MIT와 Harvard가 있는 Cambridge에는 외국 학생이 많았지만, 강 건너 남쪽 Boston에는 식당 전체에 동양인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Stanford가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과 굴지의 기술 회사에 둘러싸여 있었다면, MIT는 Boston 지역 곳곳에 늘어선 학교와 연구소에 둘러싸여 있었다.</p>
<p>나는 MIT <a href="http://www.eecs.mit.edu/" target="_blank" rel="noopener">Electrical Engineering and Computer Science (EECS: 전자컴퓨터과학과)</a> 박사과정 소속으로, <a href="http://www.csail.mit.edu/" target="_blank" rel="noopener">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CSAIL)</a> 안에 있는 <a href="http://uid.csail.mit.edu/" target="_blank" rel="noopener">User Interface Design (UID) Group</a>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CSAIL이 있는 <a href="https://www.google.co.kr/search?q=stata+center&amp;espv=2&amp;source=lnms&amp;tbm=isch&amp;sa=X&amp;ved=0ahUKEwje-Jz84OTLAhUJBo4KHezWC0gQ_AUIBygB&amp;biw=1365&amp;bih=1061" target="_blank" rel="noopener">Stata Center</a> 건물은 유명 건축가인 Frank Gehry가 설계했고, 오즈의 마법사 같은 소설에 나올 것만 같은 독특한 건물이었다. 건물 안은 네모 반듯한 공간보다 삐죽삐죽 세모, 원형의 공간이 많았다. 이렇게 멋진 건물에서 일할 수 있어 좋기는 했는데, 건물에 비가 새서 소송도 있었고 건물 외벽의 양철(?) 같은 재질 때문에 무선 인터넷이 잘 안 잡힌다는 루머도 있었다. 층마다 구조가 달라 방 번호만으로 원하는 곳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p>
<p>학생은 학과와 Lab 두 군데 소속하게 되는데, 이렇게 매트릭스 구조를 통해 학과를 넘나드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SAIL은 100명 정도의 PI (Principal Investigator: 연구책임자)와 1,000명의 연구인력이 속해 있어 MIT에서 가장 큰 Lab이었는데, 이 안에는 EECS 뿐 아니라 기계공학, 수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다수 속해 있었다. CSAIL에는 큰 규모에 걸맞게 TIG (The Infrastructure Group)라는 별도의 연구 기술지원 조직이 있었다. 서버,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설정 등 연구에 필요한 환경을 편리하게 구축할 수 있어 시간, 자원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CSAIL에서 나오는 연구를 외부와 언론에 제대로 소개하기 위한 전속 언론/PR 전문가도 있었다.</p>
<p>교수진 중에는 컴퓨터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Turing Award 수상자가 여러 명 있었고, WWW의 창시자인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Tim_Berners-Lee" target="_blank" rel="noopener">Tim Berners-Lee</a>나 자유 소프트웨어 (free software)의 대가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Richard_Stallman" target="_blank" rel="noopener">Richard Stallman</a> 같은 분도 있었다. CSAIL 커뮤니티의 메일링 리스트에는 각종 기술, 연구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졌고, 유명 교수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을 나눴다. 사유 소프트웨어 (proprietary software)에 강력 반대하며 자유 소프트웨어의 보급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인 Richard Stallman은 이 메일링리스트의 단골 멤버였다. 그는 Amazon, Apple 등 상업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회사가 잠깐이라도 언급되면 여지없이 이런 회사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자유 소프트웨어 정신에 어긋난다며 대안 서비스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분 사무실 근처를 지나가면 학생들에게 free software 관련 티셔츠를 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은 패션업계 거물이라는 농담도 돌았다.</p>
<p>Stata Center 건물 곳곳에는 딱 보기만 해도 천재 같아 보이는 너드 (nerd)스러운 학생들이 즐비했다. 학부 때부터, 아니 심지어 고등학교 때부터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쓴 학생들이 꽤 있었다. 회사 설명회에서 주는 공짜 티셔츠에 청바지가 많은 학생의 교복이었다. 한번은 내가 단정한 셔츠에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갔더니, 수업을 같이 듣던 인도 친구가 어디 면접 보길래 차려입고 왔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공짜 음식 메일링리스트도 있어서 어느 층 부엌에 그룹미팅 하다가 남은 음식이 있다고 공지가 뜨면 3분도 안 되어 접시를 든 대학원생 여러 명이 등장했다. 한국 학생은 EECS 학과에 한 해에 4~5명 정도 입학을 했는데, EE 3~4명, CS 1~2명이 일반적이었다. 한국서 온 학생은 학부 졸업 후 바로 박사로 온 친구들이 많았다. <em>&#8220;나는 놀지 않았는데….&#8221;</em> 병역특례에 석사를 거치고 와보니 이래저래 동기 중에 나이도 내가 거의 제일 많은 편이었다.</p>
<p>이런 분위기 속에 자연히 학풍이 드러나는데, 자기 연구에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한없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장 실용적이거나 스타트업을 할만한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기술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연구가 많이 나왔다. Stanford 학생이 창업해서 CEO를 하는 회사에 MIT 학생들이 CTO로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워낙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늘 치열하고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스스로가 거품이 아닐까, 지금의 성공은 운이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학교 측의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알고 보니 경쟁적인 환경에 자주 나타나는 impostor syndrome은 주위에 꽤 흔했다. 이 학교에 있는 5년 내내 열등감과 자부심이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p>
<h1>UID Group</h1>
<p>Rob은 EECS 교수로 CSAIL에서 UID Group을 이끌고 있었다. 내 박사 첫 학기가 Rob의 안식년이었는데, Rob은 가족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지는 않고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Harvard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 하필 Rob이 공동지도교수였던 Harvard의 Krzysztof 교수 그룹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바람에, 나는 지도교수 두 분과 매주 Harvard에서 미팅했다.</p>
<p>Rob은 나와 딱 10살 차이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교수로, 동부 토박이로 MIT 학부에 CMU 박사과정 6년 후 바로 모교에 돌아와 교수를 시작한 엘리트였다. 동부에 있고 싶어서 졸업할 때 Stanford, Berkeley 같은 서부의 탑스쿨에는 교수로 지원조차 안 했다고 했다. Rob은 자기 그룹에서 나오는 연구가 기술적으로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엘리트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MIT CSAIL이니까 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Scott이 센스있고 섹시한 연구를 지향한다면, Rob은 기술적으로 깊이 있는 새로운 연구를 지향했다. 이 둘의 차이는 내가 생각하는 Stanford와 MIT 학풍의 차이와도 묘하게 닮았다. 실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Stanford, 끝까지 파고드는 것을 중시하는 MIT. 이 두 방식을 잘 터득해 내 연구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p>
<p>공동지도교수였던 Krzysztof는 폴란드 출신의 젊은 교수로, 막 교수 2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박사 때 인공지능 연구를 하다가 HCI에 매료되어 두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했고, 점점 더 HCI 쪽의 연구를 시작하던 차였다. Rob이 디테일에 강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Krzysztof는 좀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8220;왜?&#8221;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이렇게 두 지도교수가 연구의 다른 부분을 건드려 주어 상호보완되는 점이 좋았다. 물론 처음 1~2년은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구 진행이 느려지거나 갈팡질팡하는 부분도 있었다.</p>
<p>그룹에는 5-10명 정도의 박사과정 학생이 있었는데, 이렇게 숫자가 불분명한 것은 지도교수가 여러 명이거나 여러 그룹에 걸쳐있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나처럼 공동지도를 받았고, 지도교수의 그룹이 아니더라도 관련 있는 연구를 하는 다른 그룹미팅에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협력을 했다. 당시 그룹의 주요 학생들: Sean은 대만 출신으로 과묵하고 무뚝뚝한 편이었고, 필요한 미팅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집에서 했다. 이따금 그룹미팅에서 자기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걸 만들어 왔다. 프로그래밍이나 구현 쪽으로 어마어마한 친구였다. Greg는 철학가의 풍모가 있었다. 말이 느릿느릿하고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하루에 몇 시간씩 생각과 사색을 위한 시간을 따로 두어 자신의 연구와 철학을 고민했다. 독창적인 생각을 위해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Max는 시니컬함으로 똘똘 뭉친 친구로, 연극을 많이 해서 가뜩이나 발음도 뚜렷한데 날카롭고 냉소적인 농담을 쉴 새 없이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얄밉지 않았던 것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냉소적이었기 때문이다. Jones 형은 푸근한 인상의 대만 출신 학생으로 일을 오래 하다가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매사 여유가 있고 항상 좋은 말을 하고 늘 웃었다. 매끼 &#8220;밥&#8221;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지극히 동양적인 식성을 갖고 있었다. Katrina는 그 당시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쿨하고 외향적인 성격에 핫핑크 안경이 인상적이었다.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분위기를 띄우곤 했고, 사교성이 좋아서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Michael은 나를 Rob에게 소개해준 바로 그 친구로, 열심히 하는데 잘하고, 자신감 있게 자기 홍보도 잘하는데 사람도 좋아서 트집 잡을 데가 없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모든 분야에 두루 뛰어나 내가 본 많은 연구자 중 &#8220;총점&#8221;이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였다.</p>
<p>UID Group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독특했다. Rob은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연구환경 자체를 지속해서 &#8220;해킹&#8221;하는 것 같았다.</p>
<ul>
<li><strong>Open space</strong>: Rob은 자신의 사무실을 공용 공간으로 만들고 그룹 학생들과 함께 open space에 앉았다. 내 자리와 불과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러다 보니 교수님과 자주 마주치게 되고 농담 따먹기라도 한 번 더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숨 막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출퇴근 시간의 개념이 없고 일이 잘되는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일을 해도 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그런 압박은 없었다.</li>
<li><strong>매일 그룹미팅</strong>: 매일 한 시간씩 그룹미팅을 했다. 포맷이 해가 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는데, 월수금은 누군가가 자신의 연구 발표를 하고 화목에는 브레인스토밍을 했다.</li>
<li><strong>연구 발표</strong>: &#8220;low bar&#8221;가 모토이다. 정제된 슬라이드는 지양하고 화이트보드나 프로토타입을 활용한다. 누군가 만들어 온 프로토타입을 다 함께 사용하면서 피드백을 주고 향후 방향을 논의했다.</li>
<li><strong>브레인스토밍</strong>: 화목에 하는 브레인스토밍은 &#8220;think outside the box&#8221;를 모토로 정말 온갖 아이디어를 같이 짜내는 시간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연구나 공동의 관심사를 던지고 온갖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시간이다.</li>
<li><strong>Rolling topics</strong>: 그룹이 관심을 가질만한 새로운 논문, 서비스, 앱, 기사 같은 것을 누구나 링크하고 미팅 때 간단히 함께 보고 토론한다.</li>
<li><strong>실시간 피드백</strong>: 10명의 사람이 있는데 손을 들고 질문하면 한 명만 말을 할 수 있어 비효율적이다. 더 편하게, 많은 피드백을 바로바로 모으기 위해, 그룹 모두가 각자 랩탑에서 공유된 Google Doc을 열어놓고, 발표를 들으면서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의견을 남긴다.</li>
<li><a href="https://groups.csail.mit.edu/uid/other-pubs/cscw14-pair-research.pdf" target="_blank" rel="noopener"><strong>Pair research</strong></a>: pair programming 개념에 착안한 것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명씩 짝지어 서로의 연구를 돕는다. 다른 친구들의 연구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를 쓰고 어떤 과정과 생각을 거쳐 연구하는지 볼 수 있어 학습효과가 크다. 그룹 내에서 협력도 많이 일어난다.</li>
<li><strong>HCI 세미나</strong>: 매주 외부의 교수나 연구자를 초청해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 직전에는 연사가 그룹과 함께 점심을 먹고, 학생 각각이 1분 동안 자신의 연구를 연사에게 설명한다.</li>
</ul>
<h1>첫번째 좌절과 상처</h1>
<p>새로운 출발과 활기찬 그룹 분위기에 한창 들떠있던 초가을, 첫 번째 뼈아픈 시련이 닥쳐 왔다. Stanford에서 2년 동안 내가 연구를 도왔던 R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HCI 분야의 대표 학회인 CHI에 이 프로젝트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다. 그런데 내 이름이 이 논문 저자 목록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9월 CHI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 도통 연락이 없어 감이 좋지 않았는데, 역시나 R은 내 이름을 제외하고 논문을 제출했다. 석사 졸업을 하는 여름 즈음부터 프로젝트에 더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2년 동안 했던 일이 있으니 당연히 이 논문의 저자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너무도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껴 항의의 이메일을 보냈고, 대화는 점점 과열되어 어지러워졌다. 나는 2년 동안 내가 작업했던 부분이 논문에 분명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고, R은 여름 동안 논문이 많이 바뀌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제출했다는 논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볼 때는 내가 만들었던 부분이 분명 담겨 있었다. 나는 조목조목 이 논문의 어떤 부분에 내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메일을 보냈고, 결국 Scott도 이 대화에 개입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야속하게도 Scott은 외부의 제삼자에게 객관적으로 평가를 부탁하자고 중재안을 제시했다. 생각해보건대 학생 사이의 갈등에 한쪽 편을 드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고, 설령 내 주장이 맞는다고 느꼈다 하더라도 떠난 석사학생과 한창 자신이 키우는 박사 학생 사이에서 아무래도 그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었을까. 머릿속에서 파괴적인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Scott이 했던 <em>&#8220;그냥 프로젝트에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연구 성과를 냈다고 할 수는 없다&#8221;</em>는 말이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나 싶어 씁쓸했다. 그랬다면 Scott은 왜 이 연구 경험을 토대로 나에게 좋은 추천서를 써주었을까. 또 연구에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나를 뽑은 많은 학교의 교수들은 또 뭔가.</p>
<p>이즈음에서 나는 더는 이 모든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1저자도 아니고 내 박사연구도 아닌 논문의 저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지만, 2년 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프로젝트에 내가 연구적으로 기여한 게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는 게 너무도 큰 상처였다. 같이 연구한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는 논문에 저자로 들어가도 좋을 게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R과 Scott에게 짧고 분명한 최종 이메일을 보냈다.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나의 기여를 증명받고 싶지는 않고, 이 논문에 저자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다만 내가 이 프로젝트에 분명히 연구적으로 여러 면에서 기여를 했으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적었다. 일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R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과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은 Scott에 대한 실망감이 함께 몰려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몇 달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Rob에게 이 일로 상담했고, Rob은 논문 저자 관련 문제는 학계에 흔히 발생하고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애매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최대한 관대하게 저자를 정한다고 했다.</p>
<p>몇 달 후 이 문제의 논문은 CHI에서 최고논문상 (best paper)을 수상한다. 아깝기도 하고 배도 아팠지만, 어쨌든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결말이 좋아서 다행인 부분도 있었다. 이제야 비교적 담담하게 이 일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동안 연구에 대해 내가 경험하고 배워왔던 많은 것들이 바닥부터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저자 관련 문제에 대한 나의 분명한 방침을 정했다. (1) 연구에 기여를 한 모든 사람을 저자로 한다. 모호하면 포함한다. (2) 협력을 시작하기 전, 누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1저자가 될 것인지, 또 각자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한다. (3) 내가 연구에 분명하고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없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이었다.</p>
<h1>내 연구를 시작하다</h1>
<p>이런 힘든 일을 겪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다른 일들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도시와 학교와 그룹과 교수에 적응해야 했고, 수업을 들어야 했고, 내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차라리 이런 다른 일들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덜 힘들었던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창의성을 돕는 도구라는 연구주제를 좁혀서 글쓰기를 돕는 도구를 만드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잡았다. 관심 있던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해 글쓰기 과정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 쓰는 사람이 글 자체와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가 잡일이나 필요한 외부 정보 등을 대신해 준다는 아이디어였다.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논문을 읽으면서 글쓰기라는 활동을 이해하는 한편, Boston 지역의 작가나 문학 교수, 전문 블로거 등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기회를 찾아 종이 프로토타입, mockup을 만들어 나가면서 계속해서 피드백을 모으고 반영했다. 그동안 수업에서 배우던 방법론을 내가 풀고 싶은 문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a href="http://www.mcpanic.com/2011/03/16/954/">이 때 썼던 글</a>). 이 주제에 관심을 느끼던 그룹의 Jones 형이 프로젝트를 도와주었고, 석사 때의 실수를 막기 위해 서로의 역할을 분명히 정하고 내가 주도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몇 달 동안의 진행 끝에 4월에 UIST 학회 논문을 제출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여러 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져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이 이유로 논문은 떨어졌다. 처음으로 내 연구를 하고 1저자 논문으로 제출해 봤다는 데에서 만족해야 했다.</p>
<p>글쓰기 도구 만들기는 재밌는 프로젝트였지만, 어떻게 더 좋은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더해갔다. 그러던 차에 1년 차가 끝나는 여름 Adobe Research에서 인턴십을 했다. 휘몰아치는 좋은 자극과 아팠던 일들을 뒤로하고 석 달 동안 California에서 인턴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1년의 롱디를 잘 버텨낸 지희에게 고마웠고, 여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이 여름, 나는 박사 연구의 핵심이 된 &#8220;교육&#8221;이라는 주제를 만났다.</p>
<hr />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ul>
<li style="list-style-type: none;">
<ul>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석사 2</a> (2016.03.1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strong>박사 1</strong></a> (2016.03.2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
<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
<li>박사 5 Part 2</li>
<li>에필로그</li>
</ul>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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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석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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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panic]]></dc:creator>
		<pubDate>Sun, 20 Mar 2016 01:51:09 +0000</pubDate>
				<category><![CDATA[박사과정을 돌아보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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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석사 2: 고민, 준비와 새로운 시작 2009.9 &#8211; 2010.8 답답함과 부끄러움 별다른 연구성과 없이 어느새 두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시간은 다가오고, 해놓은 것은 없고, 12월이면 박사과정 지원을 해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컸다. 계속되는 연구 프로젝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내가 맡은 보조 역할을 나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조금씩 길이 보이니까 스스로 한계가 더욱 두드러져 &#8230;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 class="more-link">Continue reading<span class="screen-reader-text">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석사 2"</spa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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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1>석사 2: 고민, 준비와 새로운 시작</h1>
<p>2009.9 &#8211; 2010.8</p>
<h1>답답함과 부끄러움</h1>
<p>별다른 연구성과 없이 어느새 두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시간은 다가오고, 해놓은 것은 없고, 12월이면 박사과정 지원을 해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컸다. 계속되는 연구 프로젝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내가 맡은 보조 역할을 나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조금씩 길이 보이니까 스스로 한계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학부 때 합창단을 하면서 노래는 별로 늘지 않고 귀만 까다로워져서 스스로 소리가 엄청나게 거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과 컴퓨터를 동시에 다루는 HCI 분야의 특성상 말과 논리, 프레이밍이 다른 CS 분야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존 방법보다 성능이 x % 높아졌다는 식으로 딱 떨어지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많은 논문은 마치 소설처럼 흡입력 강한 도입부로 시작해 다양한 이론과 디자인과 기술과 실험을 버무려 내놓은 잘 차린 고급정식 같았다. 셰프로 치면 당근만 썰던 나에게는 고급정식 같은 논문들이 복잡하고 멀어 보였다.</p>
<p>연구 미팅에서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답답했다. 머릿속에 분명 생각은 있는데 풀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나만의 관점을 드러내면서 미팅과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웠다. Scott은 미팅에서 날카로운 질문들로 나를 몰아붙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지도했고, 나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점점 주눅이 들었다. R과는 같이 일을 하면 할수록 성격이 점점 안 맞아서 힘들었지만 나는 을이었고, 이 연구를 떠날 용기가 없었기에 꾹 참고 일했다. 운이 좋아 박사를 이곳에 남아서 할 수 있다 해도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p>
<p>20~30명 정도 규모의 HCI Group에 native speaker가 아닌 사람은 2~3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정말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Mac을 사용했다. 한국서 들고 온 내 IBM x61 랩탑과 윈도우즈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기준을 버리고 이들의 문화와 방식에 녹아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몇 년이 지나서야 나의 한국적인 관점이 다양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색한 영어발음도 부끄러웠다. 아침마다 30분 정도씩 논문을 발음에 신경 쓰면서 소리 내 읽었다.</p>
<p>HCI 분야에서 가장 크고 좋은 학회라는 CHI 학회 데드라인이 9월에 있었다. 데드라인 며칠을 앞두고 새벽 3시가 넘도록 연구실에서 나는 코딩을 하고, 그 옆에서 R과 Scott은 논문 도입부를 뜯어고치고 또 고쳤다. R과 Scott과 나는 엄청난 시간을 쏟아가며 논문을 준비했지만 결국 시간부족으로 반쪽짜리 논문을 제출했고, 당연히 논문은 떨어졌다. 이 논문이 합격하고 박사를 지원했다면 엄청나게 탄력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Scott의 첫 박사 학생으로 졸업을 하고 Berkeley 교수로 가게 된 Bjoern Hartmann은 CHI 데드라인 날 연구실에 나와 두 개의 논문을 벌써 제출 완료했다며, 멘붕이 온 우리 옆에서 낮잠을 자는 만행을 저질렀다. Bjoern의 논문 두 개는 모두 합격했다. Bjoern은 Scott의 주니어 버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특히 날카로움, 디자인 관점의 강조, 섹시한 연구 주제를 찾아내는 안목이 아주 닮았다.</p>
<h1>크라우드소싱, 그리고 Rob</h1>
<p>이 무렵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던 주제는 바로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었다. 많은 사람이 조금씩 기여를 하여 큰 문제를 풀어낸다는 개념이 매력적이었고, 특히 컴퓨터도 사람도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크라우드의 힘으로 풀 수 있다는 human computation 개념이 너무 좋았다. 처음 human computation을 접했을 때 HCI의 정수가 이런 게 아닐까 하며 소름이 돋았다. 이 분야를 개척한 Luis von Ahn의 <a href="http://dl.acm.org/citation.cfm?id=985733" target="_blank" rel="noopener">image labeling game</a>, <a href="http://ieeexplore.ieee.org/xpl/login.jsp?reload=true&amp;tp=&amp;arnumber=1642623" target="_blank" rel="noopener">GWAP (Games with a Purpose)</a> 연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연구 분야로서 크라우드소싱은 이제 막 HCI 관점에서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신생 분야였다. 내가 하던 연구에도 크라우드소싱을 적용해서 두 웹페이지 디자인 요소 사이의 관계를 빠르고 값싸게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이 데이터를 제대로 모을 수 있게 크라우드를 위한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이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이슈였다. 당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던 크라우드소싱 논문들이 너무나도 재밌었고, 이걸 원래 관심 있던 창의성 지원과 연계해서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Scott은 별로 크라우드소싱에 관심이 없었고, PARC에 있던 Ed Chi와 MIT CSAIL의 Rob Miller 교수 연구실에서 재밌는 연구들이 막 나오고 있었다.</p>
<p>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MIT Media Lab 박사과정이던 태미누나를 통해 Michael Bernstein을 소개받았다. 태미누나는 프롤로그에 언급했던 것처럼 안면도 없이 내가 다짜고짜 유학 관련 질문을 퍼부었을 때 친절하게 도와주셨던 분이었다. 내가 MIT 박사과정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릴 기회가 있었고, 누나는 고맙게도 MIT의 컴퓨터공학과라 할 수 있는 CSAIL의 박사과정 학생인 Michael을 소개해 주었다. Michael은 Stanford 학부 졸업생으로 MIT에서 Rob과 함께 HCI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반듯하고, 배려심 있고,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첫인상이었다. 그야말로 스타 학생으로 좋은 연구를 계속 터뜨렸고, 현재는 모교로 돌아와 Stanford 교수이다. Michael은 이후 나의 박사과정 전반과 연구방향에 있어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었다. 첫 만남에서 박사과정과 크라우드소싱 연구에 관심이 많다고 했더니 자기의 지도교수 Rob에게 나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Michael은 나와 Rob에게 소개 이메일을 보냈다. 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내가 하던 현재 연구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고, 내가 박사과정에 관심이 있다는 말까지 넣어주었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 학생에게 이 정도의 친절을 베풀어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면서 또 고맙다. 곧이어 Rob의 운명적인 첫 이메일이 왔다:</p>
<p><em>&#8220;Hi Juho, </em><br />
<em>Nice to meet you! Your work sounds very interesting. (후략)&#8221;</em></p>
<h1>UIST 2009</h1>
<p>여름에 하던 프로젝트에 진척은 딱히 없었고 CHI 논문도 떨어졌지만, 내가 맡았던 부분을 짧게 정리해서 제출했던 포스터가 HCI 분야의 최고 학회 중 하나인 UIST에 통과됐다. 연구에서는 미국 와서 처음으로 얻어낸 눈에 보이는 성과였다. HCI 학회에서의 포스터는 논문보다 무게감도 현저히 낮고 실질적인 연구업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UIST라는 &#8220;큰물&#8221;을 경험해볼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포스터 통에 고이고이 만든 <a href="https://juhokim.com/files/UIST2009-poster-poster.pdf" target="_blank" rel="noopener">포스터</a>를 담아 들고 설렌 마음으로 2009년 10월, 학회가 열리는 Victoria 섬이 있는 Canada 땅을 밟았다. 학회는 그야말로 올스타들이 맹활약하는 꿈의 무대였다. 내가 동경하던 Rob의 그룹에서는 스크린샷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a href="https://groups.csail.mit.edu/uid/projects/sikuli/sikuli-uist2009.pdf" target="_blank" rel="noopener">Sikuli</a>라는 시스템에 관한 논문을 써서 best paper를 받았다. 포스터 세션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Rob과의 첫 대면을 했고, Rob은 내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재밌는 연구인 것 같고 자기네 랩에서 하는 연구와 잘 맞는 것 같으니 박사지원을 꼭 해보라고 했다.</p>
<p>아는 사람도 없고 용기도 없고 박사과정 학생도 아니니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이미 친해 보였고 자신의 연구가 확실해 보였다. 200명 남짓 되는 참가자 중 한국인은 5명 정도였다. 한국인 중에는 배석형 교수님이 논문 발표를 하셨는데, 정말 멋진 <a href="http://www.dgp.toronto.edu/~shbae/ilovesketch.htm" target="_blank" rel="noopener">스케치 툴 연구</a>를 소개하면서 라이브로 시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분들과 리셉션에서 만나 인사도 나누고 치열한 학회 중 잠깐이나마 편한 시간을 보냈다.</p>
<h1>박사 지원과 결과</h1>
<p>2년 동안 유학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삼성장학회는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정말 감사하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박사과정 5년 동안 지원을 받게 되었다. 진도와 실적이 미미했던 연구, 떨어지는 자신감과 Scott과 R을 대하는 어려움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Rob과의 만남, 장학생 합격으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천서는 연구를 같이했던 Scott과 Cliff, 그리고 시각화 수업을 들었던 Jeff에게 부탁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엄청난 라인업이다.</p>
<p>지원 마감인 12월이 다가오면서 Scott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직접 지원할 학교목록을 봐주면서 학교별로 특색을 알려주었고, SOP (Statement of Purpose: 연구/학업계획서) 역시 꼼꼼하게 봐주었다. SOP 도입부를 4가지 다른 버전으로 써오라고 했고, 그중에 가장 괜찮은 걸 골라주었다. 데드라인 며칠 뒤에야 Scott은 자신의 추천서를 제출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교수 추천서는 데드라인이 좀 넘어도 큰 상관이 없다. 그리고 &#8220;1월 3일&#8221;에 교수들에게 내 소개와 함께 당신과 일하고 싶어서 박사과정에 지원했다는 &#8220;3줄짜리&#8221; 이메일을 쓰라고 했다. 정말 신기하게 대부분 교수가 내 원서를 살펴보겠다는 답을 주었다. 그러면서 Scott은 CS 탑4 학교 (MIT, Stanford, Berkeley, CMU)는 50:50, 나머지 학교는 잘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니,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저렇게 콕 찍어서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탑4 중 2개, 나머지 학교는 모두 합격을 했다. Stanford는 떨어졌다. Scott은 내부 석사를 박사로 진학시키는 것은 웬만하면 학과에서 피하려는 일이고, 내가 외부에서 이런 스펙으로 지원을 했으면 분명 합격을 했을 것이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고, 내 생각에는 Scott도 나처럼 둘이 계속 같이 연구를 하기에는 뭔가 잘 안 맞는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Stanford가 선택지에 있었다면 선택이 더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 <a href="http://www.gohackers.com/?c=prepare/prepare_info/admission&amp;where=nic&amp;keyword=mcpanic&amp;uid=13980" target="_blank" rel="noopener">어드미션 포스팅</a>.</p>
<h1>학교 선택</h1>
<p>그토록 바라던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지희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에게는 Stanford 근처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박사과정의 옵션이 없었고, 지희도 앞으로 3년은 Stanford에서 연구를 더 해야 박사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롱디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p>
<p>많은 학교가 박사과정 합격 학생들을 위한 visit day 행사를 열어 학과소개 및 교수,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교 홍보를 했다. 3월에는 MIT, CMU, UW, Harvard의 visit day에 참석했다. MIT에 아무래도 마음이 가기는 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HCI 사람들에게 꿈의 학교인 CMU 역시 너무나 좋아 보였다. CMU는 HCI를 위한 별도의 학과라 할 수 있는 <a href="http://hcii.cmu.edu/" target="_blank" rel="noopener">HCI Institute</a>가 있을 정도로, 나오는 HCI 연구의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학교였다. 내가 간다면 지도교수는 Brad Myers 교수가 될 상황이었는데, HCI에서 손꼽히는 대가로 Rob의 지도교수이자 Scott의 할아버지 지도교수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였다. 홈페이지를 보니 제자들이 웬만한 좋은 학교에 다 교수로 가 있었다. Brad는 정말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MIT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와 일할 수 있는데 왜 자기 제자와 일을 하려 하냐고 말했다. 또 내가 와서 바로 할 프로젝트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p>
<p>이와 다르게 MIT를 방문했을 때 Rob은 나한테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주제와 방향은 내가 잡는 것이고 자신은 조언과 피드백을 줄 것이라고 했다. Harvard의 Krzysztof Gajos 교수도 <a href="http://www.eecs.harvard.edu/~kgajos/research/supple/" target="_blank" rel="noopener">내가 좋아하는 연구</a>를 하는 젊은 교수라 관심이 있었는데, 앞으로 창의성 연구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했다. Rob과 Krzysztof는 나에 관해 대화를 나눈 뒤 나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MIT와 Harvard 두 학교 중 어느 곳으로 와도 상관없는데, 나의 관심사나 성향을 봤을 때 Boston이 정말 나에게 잘 맞을 것이며, 오게 된다면 둘이 나를 공동지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이메일을 읽는 순간 나는 학교 결정을 마쳤다.</p>
<h1>Stanford 생활 마무리</h1>
<p>석사에서 박사로 넘어가면서는 연구 인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IBM Research와 Google에 지원해서 운 좋게 합격을 했고, 당시 HCI 연구그룹이 크고 활발하던 IBM Research로 선택했다.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취업 비자 처리가 좀 복잡하게 되었는데, 그 처리가 오래 걸려 3주 정도 출근을 못 하고 집에서 놀아야 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 하나가 통째로 연구소였고, 출근 첫날 각종 야생동물을 마주쳤을 때의 대처법을 교육받았다. IBM에 다른 HCI 인턴으로는 한국서 지원 당시 이메일로 큰 도움을 주었던 CMU의 김선영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매일같이 저녁에도 남아 연구를 했고, 역시 인턴십 프로젝트로 좋은 논문을 썼다.</p>
<p>미래가 결정되고 나니 근 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던 이 동네 친구들과 야외 바비큐, 맥주 파티를 정말 원 없이 즐겼다. Stanford에서 보였던 부족하고 미숙한 모습을 뒤로하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아쉽게도 이후 5년 동안 이 정도의 여유와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2010년 8월, 열흘간 차를 몰고 3,000마일을 달려 Stanford에서 Boston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6년의 롱디가 시작되었다.</p>
<hr />
<p>“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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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B%9C%EC%9E%91/">시작</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D%94%84%EB%A1%A4%EB%A1%9C%EA%B7%B8/">프롤로그</a> (2016.03.15)</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7/%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1/">석사 1</a> (2016.03.1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strong>석사 2</strong></a> (2016.03.1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3/28/%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1/">박사 1</a> (2016.03.2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4/05/%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2/">박사 2</a> (2016.04.06)</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5/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3/">박사 3</a> (2016.05.03)</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6/06/0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1/">박사 4 Part 1</a> (2016.06.09)</li>
<li class="p1"><a href="http://www.mcpanic.com/2019/01/13/%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4-part-2/">박사 4 Part 2</a> (2019.01.13)</li>
<li><a href="http://www.mcpanic.com/2019/02/04/%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B%B0%95%EC%82%AC-5-part-1/">박사 5 Part 1</a> (2019.02.04)</li>
<li>박사 5 Part 2</li>
<li>에필로그</li>
</ul>
</li>
</ul><p>The post <a href="https://www.mcpanic.com/2016/03/19/%eb%b0%95%ec%82%ac%ea%b3%bc%ec%a0%95%ec%9d%84-%eb%8f%8c%ec%95%84%eb%b3%b4%eb%a9%b0-%ec%84%9d%ec%82%ac-2/" target="_blank">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석사 2</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s://www.mcpanic.com/" target="_blank">A Small Step Forward</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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