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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eekly 수유너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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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18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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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데리다의 정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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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May 2012 16:15:06 +0000</pubDate>
		<dc:creator>정정훈(수유너머N)</dc:creator>
				<category><![CDATA[편집실에서]]></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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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04년 10월 9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데리다를 기리며 작성한 추도사에서 발리바르는 ‘데리다의 정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흔히 데리다의 정치는 <맑스의 유령들>로 대표되며 정치적 선회라고 불리는 후기 작업들에 집약된 것으로 말해집니다. “얀 후스 연대의 한복판에서의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역적’ 지성인들에 대한 원조에서 시작해서, ‘외국인들’에 대한 공안정치와 낙인에 반대하여 유럽에서 피신권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r />
<blockquote><p>“마지막으로 저는 우리가, 참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속이 없는 지성인들로서, 그가 ‘새로운 국제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출현에 기여하고자 시도했던 그 모든 상황들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항상 분석과 역사적 참조에 있어 전적으로 동의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여기 또 다른 많은 분들과 함께, 종종 데리다의 주도로, 우리는, 대중의 폭력을 야기하고 그것을 되받아 배양하는 국가와 시장 주권들의 지배력에 대한 다형적이고 다극적인 저항을 구성함에 있어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이 고유한 역할을 갖는다는 확신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p></blockquote>
<p>2004년 10월 9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데리다를 기리며 작성한 추도사에서 발리바르는 ‘데리다의 정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흔히 데리다의 정치는 <맑스의 유령들>로 대표되며 정치적 선회라고 불리는 후기 작업들에 집약된 것으로 말해집니다. “얀 후스 연대의 한복판에서의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역적’ 지성인들에 대한 원조에서 시작해서, ‘외국인들’에 대한 공안정치와 낙인에 반대하여 유럽에서 피신권을 방어한 일을 지나, 그리고 팔레스타인 인민의 권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적대자들의 화해를 위한 입장을 표명한 일” 등과 같이 데리다가 현실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개입한 발리바르의 언급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는 분명 실천적 지식인이었습니다.</p>
<p>그러나 자본주의를 역사가 이른 최종단계라고 선언하며 더 이상의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며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으로서 정치적 저작들을 쓰고 현실에 개입하기 이전 시기부터 데리다는 분명 정치적 사상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스스로 밝히듯이 해체란 ‘정의의 이념’, 혹은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정의’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정의가 ‘타자의 도래함’이라면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가 서구 존재론의 ‘현전의 형이상학’과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며 해체하던 초기시절부터 항상 의식하던 바였던 것이 아니었을까요?.</p>
<p>파리 고등사범학교에 갖 부임한 데리다의 강의를 수강하던 발리바르는 그의 초창기 문제설정을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그는 곧바로 가장 어려운 곳으로 갔습니다. 증명 가능성의 조건들이라는 질문-이를 형식적 보증이라는 문제로부터 시간 속에서의 재생산이라는 문제(&#8216;흔적&#8217; 이라는 그의 위대한 테마를 예상하는)로 이행하게 만들면서- 이나 기록/글쓰기의 활동과 사고와 물질성 간의 연결이라는 질문 말입니다.” 초기 데리다의 질문은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제도적이고 행동적인 영역 이전에 이미 작동하는 또 다른 정치의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유의 방식이라는 정치적 영역 말입니다. 텍스트의 세계를 탐사하며 그 질서가 결코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 질서의 ‘이음매가 어긋나있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초기 데리다의 해체 작업으로부터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인터네셔널을 주창하는 후기 데리다의 작업까지 그는 일관되게 정치를 사유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데리다의 해체 작업은 정치 이전의 정치를 실행하는 사유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p>
<p><위클리 수유너머>의 이번 호 동시대 반시대는 ‘시대를 거스런 사상가’로서 데리다를 다룹니다. 소위 ‘정치적 선회’ 내지는 ‘윤리적 선회’로 불리는 실천적 문제와 결부된 그의 저작들에 대한 논의들이 다루어집니다만 그의 정치학이 단지 소제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소제를 다루는 사유의 방식에서부터 작동하고 있음을 이번 글들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데리다의 정치가 어떻게 시대를 거스리고 있는지 읽어봐 주십시오.</p>
<p>그리고 이번 호부터 <수유너머 위클리>의 해외 칼럼에 새로운 필자가 합류합니다. 한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서 유학 중인 일본인 ‘카케모토’씨입니다. 우리에게 이곳은 해외가 아니지만 그에게 이곳은 엄연한 해외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가 떠나온 그의 고국도 지금은 그에게 국내는 아닌 상황입니다. 이런 애매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계’와 ‘삶’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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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주댐 수몰지역에서  띄우는 영상 편지 0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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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May 2012 16:09:20 +0000</pubDate>
		<dc:creator>박은선(리슨투더시티)</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category><![CDATA[naeseong]]></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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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에서 영주댐 수몰 지역으로 들어 온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낙동강과 내성천 하류 쪽에서 주로 머물었던 터라 눈 돌릴 틈 없이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들어와 보니 마음 내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영주댐 수몰지역에서  띄우는 영상 편지 01*</p>
<p>&#8216;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8217;에서 영주댐 수몰 지역으로 들어 온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낙동강과 내성천 하류 쪽에서 주로 머물었던 터라 눈 돌릴 틈 없이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들어와 보니 마음 내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p>
<p>영주댐 건설은 크게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과,  댐건설로 하류에 일어나는 변화, 두 번째는 자연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책사업과 이익을 위해 국토에 빨대를 꽂고 있는 기업, 그리고 현장에 걸려있는 현수막 문구와 별 다를바 없이 관념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입니다.</p>
<p>그동안 이러한 문제는 여러 차례 제기 되었던 바이지만 답을 찾기는 용이하지 않습니다. 답이 없을 때&#8230; 가장 좋은 답은 질문 자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이라는 관점에서, 오늘 부터 100일 동안 이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일 한편씩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려 보려합니다.</p>
<p> 영주댐 공사의 공정률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현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역시 앞으로 일어날 일의 아주 적은 변화에 불과 할 뿐임을 생각 할 때, 이곳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변화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p>
<p>영상은 조금씩 다른 주제로, 10여개의 테마를 염두에 두고, 수몰민들과 수몰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 영주댐과 삼성, 영주댐 하류에서 일어나는 변화, 내성천의 아름다움, 주변의 지형 지질, 문화, 생태. 텐트학교, 그리고 수몰 지구에 들어와 있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꾸려 가려합니다.</p>
<p>매회의 영상은 내성천 홈페이지(www.naeseong.org) 메인에 올려놓도록 하겠지만 눈동냥으로 배운 영상작업이라 섬세한 작업은 엄두를 못 내서&#8230;. 그런저런 불안을 안고 시작합니다.</p>
<p>비록 지금은 소수가 이야기를 진행 시키고 있지만  내성천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올 날을 위해 함께  회향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p>
<p>2012년 5월 30일  평은리 금강마을 에서 지율합장,</p>
<p>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드림 (풀꽃세상, 리슨투더시티)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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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Video letter from Naeseong river 01</p>
<p>Hi ,  We wanted to update what happend you visited the river.</p>
<p>It&#8217;s been a month since that we moved to Youngju Dam construction site, where will be submerged 2014.</p>
<p>We&#8217;ve been focusing on the down stream of the Naeseong River. At the last March we stopped damming of down stream of the Naeseong. This is a very good news. But the construction at upper stream of Naeseong is very fast, so we are worried that how should we deal with this.</p>
<p>There are some big problems of the damming of Naesong River. The first, Submerging of sandy Naeseong river is the biggest problem. Because, that is the only one un touched river in this country. The river is full of highly endangered animals and plants including a &#8216;Black Headed Stork&#8217;. The Samsung company is cutting trees all over the riversides at the moment. The changes of the down stream is very serious, the sand of the river is vanishing very fast since the construction begun.</p>
<p>The second, This national project, towards to destroying the nature not protecting. That is &#8216;National&#8217; project but not for the public value. Also the construction company Smasung is just interested in making money, never care about the public values. The both ignoring voice for the public ethics.</p>
<p>For the last, our idealogical view about the nature.</p>
<p>We raised a hare several times but finding a solution it is not that easy. I guess when you can&#8217;t find the solution the best way is the &#8216;questioning&#8217; itself.</p>
<p>Buddhist nun and the green activist Jiyul&#8217; ll upload videos, one in a day for 100 days.</p>
<p>Young Ju dam construction destroyed a lot of Naeseong River&#8217;s nature already but this is only the beginning. We&#8217;ll upload everyday of places will be submerged and story of the people who want to protect this beautiful river. This will be a very meaningful recording and a resistance too.</p>
<p>From Naeseong river, Youngju city, South Korea<br />
Jiyul and Friends of the River(Pul-ggot,  Listen to the City)</p>
<p>see video letter<br />
 http://vimeo.com/43103230</p>
<p>내성천 모래강</p>
<p>naeseong.org  <http://www.naeseong.org/></p>
<p>twitter@naeseong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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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8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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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May 2012 05:09:39 +0000</pubDate>
		<dc:creator>백납</dc:creator>
				<category><![CDATA[Weekl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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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a href="http://suyunomo.net/?p=10156"><편집자의 말>118호. 데리다의 정치</a></b>]]></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a href="http://suyunomo.net/?p=10156"><편집자의 말>118호. 데리다의 정치</a></b>]]></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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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재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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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4 +0000</pubDate>
		<dc:creator>김민수(청년유니온)</dc:creator>
				<category><![CDATA[청년필독靑年筆毒]]></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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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부처님의 자비는 정말 훈훈하다. 어떻게 월요일에 태어나실 생각을 하셨지. 앞으로 향후 4년 간 부처님은 ‘황금연휴’를 만들어내실 예정이니, 석가의 위치선정 능력은 가히 대단하다 할 것이다. 보고 있나 예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부처님의 자비는 정말 훈훈하다. 어떻게 월요일에 태어나실 생각을 하셨지. 앞으로 향후 4년 간 부처님은 ‘황금연휴’를 만들어내실 예정이니, 석가의 위치선정 능력은 가히 대단하다 할 것이다. 보고 있나 예수?</p>
<p>1년 365일이 주말인 나 같은 백수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지만, 바쁜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내 동생은 오랜만에 연휴를 만끽하며 TV를 독차지했다. 연달아 케이블 채널을 돌리며 무한도전 재방송을 섭렵하던 동생이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p>
<p>“무한도전 보고 싶어!!!!! 김재철 꺼져!!!”</p>
<p>이럴 수가. 내가 홍세화와 진중권을 읽는 동안 먼발치에서 ㅉㅉ거리던 내 동생이었는데. 어디서 저런 종북좌파의 언어를 배워서 구사하고 있단 말인가.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사태와 당권파의 몽니가 연일 미디어를 장식하며 빨갱이 사냥이 다시금 시작 된 위험한 시절이거늘, 내 동생을 저렇게 만든 녀석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한도전!? 허어. 말세다, 말세.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빨갛게 만들어버리는 ‘무한도전’을 결방 시켜버린 ‘김재철’은 대체 누구인가? 그의 우국충정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p>
<p>“문화방송(MBC) 차기 사장이 김재철 청주 MBC 사장으로 결정됐다. 김재철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 (…). 친 한나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사장은 정치부 기자 때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p>
<p>10년 2월에 올라온 기사의 인용이다.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우리의 재철 씨. MBC 조직개편 과정에서 PD수첩을 학살한 뒤 고고하게 드랍쉽 타고 내려오셨으니 천고의 초인이라 할 것이다.</p>
<p>“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해 &#8220;청와대 뜻과 무관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였다&#8221;고 폭로 (…). 그는 &#8220;지배구조상 사장 선임 과정에 권력의 의지가 작용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장이라면 방송의 독립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 &#8216;은혜&#8217;에 보은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8221;고 꼬집었다.”</p>
<p>탁월함으로 앞서가는 이들의 주변에는 질투와 시기로 무장한 범인들로 들끓기 마련이다.</p>
<p>“MBC 노동조합이 (3월) 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대한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MBC 노동조합은 김재철 사장이 이동관 전 홍보수석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는 점과 일본의 한 여성전용 피부관리숍 등 국외에서도 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이 다수 발견된다는 점, 그리고 김 사장이 지방 호텔에 투숙하며 &#8216;김훈&#8217; 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사용한 정황이 있다는 점도 추가적으로 폭로했다.”</p>
<p>재철 씨는 휴일에도 격무에 시달리며 법인카드를 피부에 양보하셨다. 회사의 주인 되시는 사장님이 법인카드로 7억 정도 긁었다고 옆에서 폭로하면서 지랄하는 종북좌파들은 국가보안법의 지엄함으로 다스려야 한다.</p>
<p>“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정영하)가 김재철 MBC 사장이 재일동포 무용가 J씨에게 몰아준 행사와 그에 따른 출연료 총합이 확인된 것만 20억3000여 만 원에 달한다며 김 사장 구속수사를 재촉구했다.”</p>
<p>문화예술의 가능성을 믿는 재철 씨는 무용가 J씨에게 20억을 몰아주고 아파트도 함께 구입하였다. 특정한 문화예술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서, 바람직한 문화정책에 대한 선례를 남겼다 할 것이다.</p>
<p>“MBC 노조, 30일부터 &#8216;김재철 퇴진&#8217; 걸고 총파업 돌입”</p>
<p>이런 빨갱이들.</p>
<p>“이어 김 사장은 &#8220;정권의 나팔수니, 낙하산이니 하는 말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장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8221;라며 &#8220;이렇게 되면 모두 같은 법령에 의거해 선임된 MBC 역대 사장은 모두 정권의 나팔수라는 말이 된다&#8221;고 반박했다. 김재철 사장은 &#8220;사원 여러분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고 인격이 있듯이 저에게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도덕적 가치가 있다&#8221;고 토로했다.”</p>
<p>빨갱이들의 몽니에도 굴하지 않는 사장님의 호연지기. 사장님 파이팅. 종북좌파들이 파업으로 땡깡부리던 말던, 내 동생이 무한도전 못 본다고 징징거리던 말던, 내가 이런 글을 쓰던 말던, 하던대로 하시라. 이 비가 지나고 나면 쨍하고 해뜰날이 돌아오지 않겠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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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매듭을 푸는 수행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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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4 +0000</pubDate>
		<dc:creator>윤석원(전 전교조교사)</dc:creator>
				<category><![CDATA[하버지가 쓰는 편지]]></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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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미움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러나 불쾌한 또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야. 이는 마치 몸의 통증이 병이나 상처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치료하라고 경보를 울리는 것과 같단다. 이들은 더 나쁜 일이 닥치기 전에 피해를 막아 나를 보호하려는 감정들이므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들이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4015.jpg" rel="lightbox[10141]"><img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42" title="DSC04015"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4015-400x300.jpg" alt="" width="400" height="300" /></a></p>
<p>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미움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러나 불쾌한 또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야. 이는 마치 몸의 통증이 병이나 상처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치료하라고 경보를 울리는 것과 같단다. 이들은 더 나쁜 일이 닥치기 전에 피해를 막아 나를 보호하려는 감정들이므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들이야.</p>
<p>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지났는데도 자꾸 증폭된다면 이는 불안을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두려워하며 미움을 미워하도록 작동되는 경험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야. 이 불쾌한 감정들은 실제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야. 아니, 감정은 감정이라서 언제나 실제와 비례할 수가 없어. 그렇다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이니까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쓸어내고 긍정적인 감정을 키워서 우리의 경험체계를 바꿀 수도 있어.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그런 노력을 우리는 수행이라고 부르자. 아마 우리는 수행을 한 만큼 행복해질 것이다.</p>
<p>무언가 계속해서 우리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렇게 만드는지 그걸 찾아내자. 그걸 외면하면 무의식 속에서 우리가 그것에 계속하여 쫓겨 다니므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 커지게 될 게다. 우리를 쫓는 그것을 자의식 위로 불러내기 위해 자의식의 우리가 무의식의 우리에게 ‘너 왜, 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냐?’고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돼.</p>
<p>우리를 쫓고 있는 감정이 어떤 감정이고 그 김정을 촉발시킨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떠올리자. 그것을 무의식에서 자의식으로 위로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성숙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오랫동안 수행한 고수만 가능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쫓고 있는 저 부정적인 감정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 감정들이 드러나는 방식 즉 그 증상들에 주목하자. 그리고 그 증상들 너머에 그 감정을 촉발시킨 한 사건을 떠올리자. 할 수만 있다면 그 사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자.</p>
<p>만약에 우리가 무의식의 정탐에서 우리를 쫓던 부정적인 감정이 어떤 감정이고 그 감정을 촉발시킨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물리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치료 방법은 부정적인 감정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부정적인 감정을 쓸어내고 그 자리를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우는 거야. 즉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미움을 증폭시키는 그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못하도록 경험체계를 바꾸어 놓아야 돼. 그러려면 그 사건의 관련자를 용서하고 그 부정적인 사건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재해석하고 재평가하는 거야.</p>
<p>그 사건의 관련자가 우리 자신이든 남이든 다 용서하자.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야. 일부러 우릴 괴롭히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어. 누가 도둑질을 했다면 그가 살아남을 마지막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지 일부러 우리가 미워서 괴롭히려고 그랬던 것은 아닐 거야. 도둑질이 그의 마지막 생존 방법이라면 우리에게는 옳지 않으나 그에게 옳단다. 굶어 죽는 것보다 조금만 나누어 먹고 함께 살아보자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누가 나쁘다고 탓할 수 있겠어.</p>
<p>또 다른 예로 만약 누가 우리에게 해코지를 했다면 그렇게라도 갚아줘야 그의 마음이 후련해질 것 같아서였을 거야. 그렇다면 그러고 싶도록 빌미를 준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그를 용서하자. 우리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으려면 우리도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잖니.</p>
<p>그러나 남을 괴롭히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용서할 수 없는 경우가 정말로 있단다. 정상적인 공감 능력을 가졌다면 남을 괴롭히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자기가 먼저 괴로워야 되잖아. 그러나 이런 공감이 안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분명히 있단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면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서 많은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두려워서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의 재미를 맛보려고 할 경우야. 또 이런 부자가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려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거나 더 못살게 만들려고 할 경우이고.  유명인이 무명인을 하찮게 여겨서 자기를 높이려는 하는 경우도 있을 거야.</p>
<p>이런 경우에 우리들은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그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대항해야 한단다. 그러려면 약자들끼리 연대하여 힘을 모아야 돼. 힘을 어떻게 모으고 사용해야 할 건지 구체적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에 맞게 이 연대의 원칙을 응용하는 거야. 만약에 우리가 약자나 소수자의 괴로움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우리의 연대의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버지는 젊은 시절에 사학 재단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선생님들과 공감과 연대로 투쟁하고 승리하는 과정에서 하버지 자신이 지혜로워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커다란 성숙을 경험했단다.</p>
<p>자, 우리를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게 만든 사건의 관련자를 용서하거나 응징했다면 이번에는 그 부정적인 사건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을 차례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 삼인행필유아사언).’고 공자님이 말씀하셨어. 또 노자의 도덕경에도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이라고 말했고.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조심)할 수 있으므로,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야.</p>
<p>특히 남의 잘못을 교훈 삼아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을 일러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해. 남의 산에서는 걸리적거리는 쓸모없는 돌이지만 내가 가져다가 옥을 다듬으면 쓸모가 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나 허물과 실패까지도 나를 수양하는 데 쓸모가 있다는 말이야.</p>
<p>좀 더 적극적인 말을 찾자면 도리에 어긋난 남의 언행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어. 반면교사는 부정적인 면 즉 악행을 저질러서 거꾸로 선행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뜻이야. 우리가 그들의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게 만들므로 그들 또한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거야. 우리는</p>
<p>우리가 무언가 찜찜해서 그 원인되는 사건을 떠올리고 관련자를 용서한 다음, 우리를 괴롭히던 그 괴로움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과 오히려 그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공감하여 그 괴로움을 덜어주기로 우리는 결심했어. 그러면 이제는 그 사건의 관련자와 그리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그것들이 남아있다면 내버려 두자. 그리고 그 사건의 결과가 잘못 전개되어 찾아올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아무리 잘못 돼도 죽기밖에 더하겠니. 어떤 결과든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해라. 우리의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를 더 불안하고 두렵고 밉게 만든다.</p>
<p>해결책 있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걱정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므로 아니한 만 못하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걱정할 일이 없단다.</p>
<p>이제 마지막으로 홍아야, 우리를 괴롭혔던 사건에서 우리가 겪었던 괴로움을 나에게나 남에게 다시는 강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 그러나 우리를 괴롭혔던 사건에서 배울 더 중요한 덕목은 우리와 같은 괴로움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가 공감하여 그를 우리의 지혜로 건져내는 거야. 그럴 수 있어야 우리는 진정한 수행자가 되는 거야. 우리의 지혜는 우리가 그 괴로움을 물리쳤던 우리의 경험이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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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데리다와 메시아적인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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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3 +0000</pubDate>
		<dc:creator>최진호</dc:creator>
				<category><![CDATA[사상가 특집]]></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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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데리다는 [마르크스 유령들]에서 '햄릿'을 등장시켜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있다' (Time is out of joint)는 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사실 우리는 미래를 예측가능하길 바라고 예측에 따라 행동하지만, 데리다에 의하면 이런 예측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 있는 한 미래를 예측하려는 체계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의 시간이 우리에게 열릴 수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4>1. 데리다, 형용모순의 세계<br />
</h4>
<p>데리다는 [마르크스 유령들]에서 &#8216;햄릿&#8217;을 등장시켜 &#8216;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있다&#8217; (Time is out of joint)는 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사실 우리는 미래를 예측가능하길 바라고 예측에 따라 행동하지만, 데리다에 의하면 이런 예측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 있는 한 미래를 예측하려는 체계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의 시간이 우리에게 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예측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고 할까? 이처럼 일견 형용모순처럼 보이는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이 형용모순의 세계를 아우르는 삶의 양상들과 만나게 된다고 데리다는 말한다. 데리다 자신은 이 형용모순의 세계를 줄타기 하며 건넌다. 그는 이 세계와 관련한 자신의 언어를 은유적이기보다 수행적이라고 말한다. 즉 삶이나 현실과 유린된 언어가 아니라 삶의 실재 모습을 드러내는 언어라는 것이다. 자신의 표현은 은유가 아니며 실재의 삶을 드러내려는 글쓰기 전략이라는 것. 나는 이번 글에서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을 통해 데리다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다시 전유해 드러내고 싶다.</p>
<h4>2. 메시아적인 것과 메시아주의<br />
</h4>
<p>데리다에게 메시아적인 것은 혁명론과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메시아주의-혁명과 메시아적인 것-혁명은 대립한다. 먼저 메시아주의는 역사의 목적을 도입하는 행위다. 메시아주의는 역사의 목표나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 앞을 향하는 사람들의 이념이다. 이 이념의 지평선으로 현실의 삶을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메시아주의자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은 실체화된다. 메시아는 항상 미래의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될 것이며, 우리는 과거의 짐을 지고 현재를 밀고 미래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 메시아주의자에게 지금의 현실은 적어도 과거 보다 더 나은 것이며, 미래보다는 조금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결여와 완성의 시간들이 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메시아주의-혁명은 유토피아적 혁명이 가능하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게 해야 할 공간으로써 유토피아. 유토피아적 혁명은 시간의 실체화와  시간에 대한 은유적 형상을 통해 가능하다.<br />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은 목적론적이기 보다는 종말론적이다.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과거 현재, 미래가 바꿀 수 없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시간은 말 그대로 거꾸로 흐른다. 현재의 사건이 과거로 흘러 과거를 바꾸어 내기도 한다. 가령 아버지의 유령이 도래한 순간, 햄릿은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깨닫게 되고 복수라는 미래의 책임을 떠맡는다. 즉 어긋나 있는 시간의 이음매 사이로 일종의 메시아적인 것의 출현한 순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시간은 종말을 고한다. 과거의 의미가 새롭게 규정됨으로써 말이다. 시간을 사물화함으로써 시간을 축정가능하게 만들어버린 부르주아의 시간관과는 달리 데리다는 시간에 단절을 도입한다. 관성적 시간 속에서 이음매가 어긋나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달리, 메시아적 시간은 이 관성을 잘라낸다. 따라서 메시아적 시간은 종말론적이다.<br />
데리다는 메시아적인 것을 도입함으로서 시간에 불연속을 도입한다.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가거나 혹은 선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시아적인 것과의 만남은 이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며 이 속에서 새롭게 시공이 창조되는 관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볼 때, 이 어긋남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이 어긋남 속에서 펼쳐지는 &#8216;실재(實在)&#8217;의 세계가 열린다.<br />
그렇다면 데리다에게 메시아주의는 나쁜 것, 메시아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고 나누어 볼 수 있을까? 이러한 구분은 메시아주의가 혁명의 실체화라고 비판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계측불가능한 것을 계측가능한 것으로 다시 환원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런 이분법의 도식은 기각되어야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메시아적인 것은 메시아주의의 형태로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령 [법의 힘]에서 지적했듯이 신의 폭력을 우리가 직접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폭력은 계산 불가능하기에 우리의 앎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8220;우리는 결코 이것을 &#8216;그 자체로&#8217; 인식하지 못하며, 다만 그 &#8216;결과들&#8217; 속에서 인식할 뿐이다. 이 결과들은 &#8216;비교불가능&#8217;하다. 이것들은 어떤 개념적 일반성에도, 어떤 규정적 판단에도 접합하지 않다. 신화적 폭력, 곧 법, 곧 역사적으로 결정 가능한 것의 영역에서만 확실성이나 규정적인 인식이 존재할 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비교불가능한 효과들 속에서가 아니라면, 신의 폭력이 아니라 오직 신화적 폭력만이 그 자체로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8221;([법의 힘], 121) 즉 메시아주의는 메시아적인 것이 오염된 형태다. &#8220;환원불가능한 복수성으로 스스로를 제시하는&#8221; 메시아적인 것 혹은 해체적 담론은 &#8220;불순하고 오염적이고 협상적이고 서출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결정 및 결정불가능한 것의 모든 계보에 참여&#8221;한다. 따라서 메시아적인 것은 메시아주의에 항상 전미래적으로 출현하다. 메시아주의가 드러날 때 항상 메시아적인 것이 앞에 기입되어 있다. 항상 &#8216;법&#8217; 앞에 &#8216;정의&#8217;가 기입되어 있듯이, 메시아적인 것은 드러나지 않지만 메시아적인 것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메시아적인 것은 항상 해체이며 유령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p>
<h4>3. 메시아적인 것과 유령론<br />
</h4>
<p>[마르크스 유령들]의 서문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유령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발생한다. 먼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보자.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에게 육체적 능력의 지속이나, 생각의 지속 따위는 불가능하다. 생생불식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조건이기 때문이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기에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연적인 환상의 문제에서 시작하자. 내가 배움의 상황이 있음을 확연하게 자각하지 못할 때, 변화나 배움을 거부할 때 우리는 반복 속에서, 활동의 정지-죽음 속에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삶에서 이 착각 혹은 환멸은 존재 조건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 환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어떤 사람은 환멸을 마치 고정불변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흔들릴 때, 무서움 혹은 끔찍함을 느낀다. 무섭기에 회피해야 하고 끔찍하기에 눈을 감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어디 우리가 피하고 눈감는다고 해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가? 차라리 사건이 발생하기를 바라지 않는 욕망과 욕망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환상을 환상인 채로 받아들이고 사건에 우리의 몸을 내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br />
데리다의 작업은 이런 환(幻)이 환(幻)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삶이 환(幻)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는 것인 동시에 사는 법을 배우는 윤리적 태도라고 말한다.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에 의하면 삶은 오로지 타자로부터, 그것도 절대적인 타자인 죽음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 완전한 죽음은 배울 수 없고, 죽음을 배제한 삶도 배움이 불가능하기에, 삶과 죽음 사이에, 이 장소에서만 살아가는 법을, 환(幻)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은 탄생한다. 이 경우 유령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의 삶은 깨어지게 되는 데 그것은 과거의 의미가 변경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있는 시간의 연속성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령과의 마주침은 도래할 과거와의 만남이고 현재가 변형된다. 배움이라든가 열림이 삶과 죽음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실천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령과의 마주침 속에서 이다. 유령과의 마주하게 될 때, 과거의 기원이 만들어지고, 삶의 의미가 완성된다. 그리고 삶이 열린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유령들은 과거의 흔적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이음매가 연결되기에 시간은 종결된다. 왜냐하면 시간은 어긋나있는 것이 통상적인데, 이 시간이 연결되기에 시간은 종결된다.<br />
다른 한편에서 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유령론은 존재론과도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침묵 속에서, 존재자들의 언어를 내려놓음을 통해, 일상의 언어에서 시선을 거둘 때, 침묵 속에서 존재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존재는 존재자에 대한 모든 척도가 사라진 침묵 속에서 드러난다. 물론 존재는 모든 존재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런 공통성이 사라질 때 마주하게 되는 하나의 심연이다. 모든 규정이나 구별, 특성이 사라질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존재. 따라서 우리는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규정도 없고, 말할 방법도 찾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명 유령은 곳곳에서 출몰한다. 유령의 출몰 속에서 사건의 기원이 설정되는데(가령 햄릿이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순간) 이 기원의 앞에 유령이 존재한다. 존재론에서 존재자의 언어를 내려놓을 때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유령론에서 유령의 출몰에 눈을 돌리지 않는 한 우리는 유령들과 늘 마주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이 상황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이해로, 현존재의 존재 이해 속을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유령론은 유령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의 장소인 경계 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동일하게 현재에 관심을 둔다고 하더라도, 존재론이 현재에 시선을 집중하는 방면, 유령론에서 시간은 비동시적이다. </p>
<h4>4. 메시아적인 것과 혁명의 시간<br />
</h4>
<p>그렇다면 데리다는 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굳이 메시아적인 것을 들고 나오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혁명을 사유하기 위해서다. 메시아는 혁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시아적인 것과 유령론의 결합 속에서 혁명의 의미도 조금 바뀐다. 흔히 혁명의 시간은 결단의 시간이라고 이야기 된다. 존재론적 전회라든가 시간의 전회가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이자 응축된 시간이다. 대단한 시간이지만 데리다에게 혁명의 시간은 대단하면서 대단하지 않다. 어긋나 있는 시간의 이음매 사이로 유령이 출몰하듯, 우리에게 메시아적인 것은 늘 출몰하지 않는가. 혁명은 아주 작은 것이기도 하고 아주 큰 것이기도 하다. 혁명의 크기의 차이가 있을 만정 혁명의 강도는 동일하다.<br />
아주 작은 순간에도 우리는 메시아적인 것과 만나고 아주 거대한 메시아적인 것과도 마주칠 수 있다. 어떤 유령이 등장할지 통제불가능하다. 그것은 불현듯 오며 늘 오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의도된 것은 현존재의 흔들림을 만들어낼 수 없기에 의도된 메시아적인 것은 불가능하다. 떨림이 가능한 것은 알고 있던 것의 예측할 수 없는 재등장이어야 한다. 메시아적인 것도 혁명의 이미지의 재등장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재등장이며,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회적이고 최종적인 등장이다.<br />
시간의 이음매를 연결하는 것을 데리다는 &#8216;정의&#8217;라고 부른다. 시간의 이음매가 연결되지 않은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이음매를 연결하게 된다. 이 이음매의 연속을 혁명의 지속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혁명의 완성은 불가능하며 결여를 채워가는 식의 영구혁명론이 가능할까? 그러나 데리다에게 미완의 혁명은 없다. 매 사건은 종말이다. 이음매에 연결되면 다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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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타자, 유령, 혁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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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3 +0000</pubDate>
		<dc:creator>강민혁</dc:creator>
				<category><![CDATA[사상가 특집]]></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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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출근길에 매번 똑같은 노숙자와 마주친다. 그는 항상 정류소의 번호 표지판에 기대어 서서 초점 잃은 눈으로 행인들을 이리 저리 바라본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그가 그런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이 지나간다. 출근길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지나갈 때마다 풍]]></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나는 출근길에 매번 똑같은 노숙자와 마주친다. 그는 항상 정류소의 번호 표지판에 기대어 서서 초점 잃은 눈으로 행인들을 이리 저리 바라본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그가 그런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이 지나간다. 출근길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지나갈 때마다 풍기는 메케한 냄새는 마치 다른 세상, 다른 아침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때마다 목욕탕으로 끌고 가서 한바탕 물을 뿌려주고픈 마음도 생기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칠까 두렵기도 하고, 인생에 이런 불유쾌한 일이 한 둘이냐 싶어, 이내 세상의 다른 행인들과 잘 섞여 지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메케한 냄새도 통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br />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평소와는 좀 다른 일이 펼쳐졌다. 그가 갑자기 정류소 옆 은행 건물로 들어가, 출근하던 아가씨를 잡아채려 한 것이다. 아가씨의 기겁하는 비명소리와 주위 남자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노숙자의 알 수 없는 신음소리. 어느새 합세한 경비들이 노숙자를 힘으로 눌러 눕혔다. 반짝 반짝 거리는 대리석 바닥과 고함 소리들이 엉키면서, 시커먼 노숙자의 초점 잃은 눈빛을 더욱 강렬하게 했다. 뭔가 위협당하고, 침범당한 듯했다. 일종의 침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사람이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을 만큼 깊디깊은 상처를 품은 것 같았고, 그 상처는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동정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어서 이 지경이 되어버린 그 사람의 처지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거나, 그저 시선을 돌리고 마는 다른 행인들의 처지를, 또한 이 뒤틀린 것을 바꿀 방도에 대해서, 생애 처음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br />
  나는 당황스럽게도 그 노숙자가 로비에 들어서는 그 아가씨에게 이렇게 물으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마지막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오직 타자로부터, 죽음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던 데리다의 말을 저 노숙자가 감행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목이 메었다. 파국에 임박한 자가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살기 위해서 뭔가를 배우려 했을 거라는 상상이 들자, 저이와 내가 종이의 안팎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나타난 ‘또 다른 나’같은 느낌이었다. 불현듯 노숙자가, 타자가, 또 나라는 존재가 기묘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여전히 불유쾌로 가득 찬 삶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지만, 이때의 경험을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도대체 나란, 타자란, 노숙자란 무엇일까? </p>
<h4>성공 불가능한 애도 : 타자의 죽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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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우선 타자는 자기와 다른 것, 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타자가 타자일 수 있으려면, 정의상 자기와 분리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타자는 여전히 자기의 일부분이거나, 기껏해야 자기가 아니라고 느끼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이를 따지기 위해서 데리다는 타자와의 극적인 절연과정으로서 ‘애도 작업(travail de deuil)’라는 사건을 면밀히 탐구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애도’란 사랑하던 사람이 죽게 되자, 그/그녀를 슬퍼하며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야말로 타자의 타자됨이 분명해 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그녀가 현실적인 층위에서 사라질 때에야, 살아 있을 때에는 눈치 채지 못했던 나와 다른 그/그녀만의 특성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그/그녀의 빈자리가 아쉽다’라는 의례적인 추모사는 이런 점에 대한 통념적인 표현일 것이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원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고, 지금 달라진 것,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아마도 ‘순수한 타자’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죽음의 순간에야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느끼기 힘들었을 타자성을 생명을 잃고, 현실적인 층위에서 사라질 때에라야 비로소 ‘그/그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타자)이었구나’라고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에야 ‘내가 아닌 것(=타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 된다. 따라서 애도를 통해 둘로 나뉠 수만 있다면(나누어진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타자는, 분리되는 순간 자기가 아닌 어떤 것으로서, 분명히 ‘있다’고 규정될 수 있을 게 분명하다.<br />
  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성공적인 애도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애도는 사랑해서 늘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대단히 역설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애도에 성공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말이고, 그것은 함께 했던 기쁜 기억으로부터도 이탈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애도의 전제였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서, 애도가 일종의 배신행위가 되는 역설에 빠진다. 따라서 참으로 성공적인(정상적인) 애도[입사 introjection],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죽음을 슬퍼하지 않기란 절대적으로 수행 불가능한 것으로 된다. 이런 점에서 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 찾아오는 ‘우울증’은 이런 애도 불가능성의 증후인 셈이다. 이런 구도에서라면 결국 애도는 ‘실패한 애도[(식인성)합체/납골 incorporation]’만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했기 때문에 타자를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말이 될 터이고, 타자가 자아 내부에 분리된 채 기억의 형태로든, 감각의 형태로든, 계속 자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도 그 자체가 불가능한 채로 있기는 매 한가지다. 즉 성공한 애도와 실패한 애도 모두, 애도 불가능성을 보여 줄 뿐이다.<br />
  여기서, 우리는 ‘타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묘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생명을 가졌을 때는 육신으로라도 분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죽음과 더불어 사라질 때가 되자, 타자는 내 안으로 들어와서 굳게 자리 잡는다. ‘타자의 죽음’이야말로 ‘나’와 ‘타자’의 합체를 열어주는 기묘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p>
<blockquote><p>“만일 죽음이 타자를 찾아온다면, 그리고 타자를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면, 그렇다면 그 친구는 우리 안(<i>in</i>), 우리 사이(<i>between</i>) 이외의 곳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으로는, 그 홀로는, 그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우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i>we</i>) 결코 우리 자신(ourselves)이 아니며, 우리 사이(between us)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우리와 동일하지도 않다. ‘자아’(&#8216;self&#8217;)는 결코 그 자체로 있지 않으며, 또 스스로와 동일하지도 않다. 이 특이한 반사[굴절, reflection]는 결코 그 자신 위로 닫히지 않는다. 그것은 애도라는 이 가능성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lt;폴 드만에 대한 기억들 <i>Memories for Paul de Man</i>&gt; 영어판 28p, &lt;How To Read 데리다&gt; 한국판 128p의 번역을 일부 수정)
</p></blockquote>
<p>  타자의 죽음을 통해 타자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 타자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이르면 타자의 문제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 있는 한 나로서는 경험할 수 없을 ‘죽음’이 ‘타자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즉 ‘타자’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즉 죽음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 이 말은 ‘살아 있는’ 내가 ‘죽음이라는 불가능성’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절대적으로 체험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죽음을 타자의 그것으로 체험하며 삶 속에서 끌어안고 있다. 결국 ‘타자의 죽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불가능성’과 관계한다. 아마도 그것은 언제까지나 불가능성으로만 ‘나’와 관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죽어 버린다면 그런 불가능성을 인지할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불가능성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것과 관계하면서 삶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삶은 불가피하게 경계 위에서의 삶(sur-vie), ‘삶-죽음’이다.</p>
<h4>유령 : 불가능성의 출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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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그렇다면 데리다가 사는 법을 배운다고, 또 그것을 타자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면, 그것은 불가능성으로부터 배운다는 것과 같은 말이어야 한다. 데리다는 이런 배움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만 발생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유령(spectre)”을 불러낸다.</p>
<blockquote><p>“[.....] 만약 그것,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수행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단지 삶과 죽음 사이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삶 속에서<strong>만도</strong>, 죽음 속에서<strong>만도</strong> 아니다. 둘 사이에서,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와 같이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은 어떤 환영과 함께함으로써만 <strong>그 자신을 유지할</strong> 수 있다/어떤 환영에 대해서, 어떤 환영과 함께 <strong>서로 이야기를 나눌</strong>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혼령들(esprits)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다. 비록 그리고 특히 이것, 곧 유령이 <strong>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strong>, 비록 그리고 특히 실체도 본질도 실존도 아닌 이것이 <strong>결코 그 자체로 현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strong> ‘사는 법을 배우기’의 시간, 현존하는 교사가 없는 시간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되는데, [......] 곧 유지하기/대화하기 과정에서, 동행이나 견습 과정에서, 환영들과의 교류 없는 교류 과정에서, 환영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 다르게, 더 낫게 살기, 아니 더 낫게 살기가 아니라 더 정의롭게 살기.[.....]그리고 이러한 유령들과 함께 존재하기는 또한, 단지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기억과 상속, 세대들의 <strong>정치</strong>인 것이다.”(&lt;마르크스의 유령들 <i>Spectres de Marx</i>&gt; 한국판 12p)
</p></blockquote>
<p>  이 긴 인용문에서 데리다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죽음)으로부터 배우려는 것이고, 그것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 또한 알려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애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처럼 자아 어딘가에 납골로 저장되어 있을 타자들은 결코 그 자체로 현전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현전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환영의 형태로서만 우리 앞에 (재)출현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기억해야 할 것과 상속해야 할 것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만, 다시 말하면 ‘세대들의 정치’로서만 (재)출현한다. 정치 없는, 상속 없는, 기억 없는 “유령의 출현”은 발생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말하는 “유령”은 상속할 것을 가지고 있는 타자로서, 불가능성의 형태로서만 드러나는 아주 치밀한 구성물이다. 만일 상속할 아무것도 보유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데리다가 말하는 유령이 결코 아니다. 그런 유령은 자신을 드러내어 출현시킬 아무런 이유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현존하지 않는 그 ‘불가능성’에 대해 엄밀하게 사유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배움으로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이런 배움의 과정을 생산하지 않는 ‘유령’(이를테면 ‘동화적 이미지로서의 유령’)이라면 그의 유령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한다.<br />
  이처럼 유령은 불가능성으로서, 하지만 하나의 상속해야할 것을 지닌 것으로서만 출현한다.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유령으로 이해하려 할 때 염두에 둔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만일 ‘당·국가 체계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사라졌거나,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유령들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가 다른 무엇보다도 ‘불가능성’으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이 상속해야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서, 그래서 교조주의적 프로그래밍으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상속해야할 무엇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가능성’에 대한 위험은 해체 가능성(deconstructibility)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표명한 바 있다.</p>
<blockquote><p>“해체는 결코 가능한 어떤 것으로 현전화되지 않는다. [....] 해체는 [해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 해체의 과제에서 위험스러운 것은 오히려 가능성일 것이며, 규제된 절차들, 방법적 실천들, 획득될 수 있는 경로들의 제어 가능한 집합이 되어버리는 것이리라. 해체의 관심, 그 힘과 욕망 ㅡ 그것이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다면 ㅡ 은 불가능한 것의/에 대한 어떤 경험이다. 곧 [.....]타자의, 불가능한 것의 발명으로서, 다시 말해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의/에 대한 경험인 것이다.” (&lt;프시케:타자의 발명들 <i>Psyché: Inventions de l&#8217;autre</i>&gt;, 한국판 &lt;법의 힘&gt; 74p에서 재인용)
</p></blockquote>
<p>  이것은 유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유령은 해체와 같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은 상속시켜야 할 것을 지니고 있지만, 도달 못하는 불가능성 그 자체에 기입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유령’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상속해야할 불가능성으로서의 유령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산꼭대기에 있다고 전해지는 궁극의 무술 비법과 같은 것이다. </p>
<h4>유령과 함께하기 : 혁명을 혁명하는 혁명<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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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그러나 상속해야할 것으로서, 그런 타자로서, 우리 앞에서 선 유령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타자는 ‘항상 거짓말 할 수 있고, 자신을 환영으로 가장 할 수 있으며, 또한 다른 환영은 자신을 이 환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령과 마주하는 우리는 이 유령이 상속해야 할 것으로서 참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불리한 처지이다. 그래서 유령이 내린 명령에 복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들은 항상 죽음을 동반해서, 혹은 파국을 품고 출현하므로, 마주하는 우리를 불안으로 이끈다. 내 존재를 걸지 않고서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복수를 완수 할 수도 없다. &lt;햄릿&gt;에서 유령이 자신이 아버지라면서 불륜을 고지하고 복수를 명령하고 있을 때, 세익스피어는 그것이 진실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보증해주지 않는다. 작품 자체만으로는 유령의 불륜 고지과 복수 명령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유령조차 아버지인지 아닌지 신원이 불명확하다[면갑효과]. 따라서 그를 확실하게 식별할 수 없는 우리로선 그의 목소리에 내맡겨져서, 그의 말만 듣고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믿음의 순간은 기묘하다. 말 그대로 불현듯 빨려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유령의 명령에 복수를 맹세하고야 만다. 그는 ‘모든 사랑으로’ 자신을 유령에게 내맡기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적이다.</p>
<blockquote><p>“그의 탄생 자체에 <strong>의해</strong> 주어진 것이면서 또한 탄생의 <strong>순간에</strong>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그 이전에 도래한 이(것)에 의해 지정된 것이다. [....] 그, 햄릿이 법/바른 것을 위해, 법/바른 것을 목표로 삼아 존재하고 태어나도록 만들었으며, 따라서 시간을 바른 길 위에 다시 올려놓도록, 역사를, 왜곡/잘못을 바로 잡도록/법을 실행하도록, 이러한 왜곡/잘못에 대해 정의를 구현하고 바로 세우도록 그를 불러낸다. [....] 우리는 유령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strong>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 아닌</strong> 명령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결코 상속을 받을 수 없다. 왜곡/잘못을, 하지만 또한 <strong>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 아닌</strong> 명령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것이 바로 그가 고통 받고 있는 원초적인 왜곡/잘못, 태생적인 상처다.”(&lt;마르크스의 유령들 <i>Spectres de Marx</i>&gt; 한국판 57p)
</p></blockquote>
<p>  사실 계산하는 자에겐, 유령에게 몸을 맡기고, 명령에 맹세하는 것이 무척이나 위험한 일로 보인다. 성공을 보장하기는커녕 혹독한 파국이 예상될 뿐인 ‘불가능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심하게 식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보지만, 이마저도 거짓말과 가장, 기만으로 가득 차서, 실상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유령은 그것 자체로서도 죽음으로부터 출현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그것을 식별할 수 없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도래할지를 전혀 가늠(계산)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불가능성 그 자체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불가능성과 관계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통념적인 프로세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새로운 지평 이후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고, 완전한 파국, 완전한 몰락을 상정하고서 가야만 하는 당연한 길이 된다. 즉 ‘계산’이 멈춘다. </p>
<blockquote><p>“이질성은 개방시키며, 독특하게 타자로부터 밀려오고 도래하는 것,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의 틈입 자체에 의해 자신이 개방되도록 내맡긴다. 이러한 이접이 없이는 명령도 약속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이러한 열림은 긍정된 또는 오히려 재긍정된 장래의 유일한 기회로서 이러한 이질성을 보존해야 한다. 그것은 장래 자체이며, 장래로부터 도래한다. 장래는 이러한 열림의 기억이다. 종말에 대한 경험에서, 집요하고 일시적인, 항상 임박하게 종말론적인 그것의 도래에서, 오늘날의 극단의 극단성에서, 도래하는 것의 장래가 예고될 것이다.”(&lt;마르크스의 유령들 <i>Spectres de Marx</i>&gt; 한국판 81, 87p)
</p></blockquote>
<p>  절대적 불가능성으로서의 유령은 확실히 종말론적으로만 출현한다. 유령은 ‘출현에 대한 기다림’과 ‘출현’ 그 자체로만 발견된다. 그것은 그것 자체가 ‘도달불가능한’ 죽음으로부터 출현하였고, 더군다나 ‘식별불가능한’ 모습을 하였으며, 아울러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조차 사실인지 아닌지 ‘결정불가능’하기 때문에, 맹세 이후 도래할 장래에 대해서 ‘계산불가능’하다. 따라서 그것은 맹세와 더불어 마지막이 된다. 유령 앞에 서면 ‘그 이후’의 목적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아니, 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유령은 명령할 뿐이고, 마주하는 자가 그 명령을 알아듣는 순간,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깨닫고서[구성되어서]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복수 이후를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고 만다. 그것은 그냥 빨려 들어감이다. 햄릿에게 복수의 명령은 메시아적인 명령인 것이다.<br />
  이 지점에서야 우리는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혁명개념’을 사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단지 어떤 보존의 상태만이 아니라 심지어 개혁 과정까지도 중단시키는 혁명적 계기들에 준거한”(&lt;마르크스와 아들들&gt;, 197p) 그런 개념이다. 이것은 혁명에 대한 전통적인 형상이나 이미지들을 전복하려는 것이지, 혁명의 가치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목적을 재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끊임없이 재설정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현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작업이다. 그것은 매순간 불가능성으로 다가오고, 매순간 기존과정을 중단시키고, 매순간 새로운 배움을 환기하는,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될, 이를테면 이런 표현이 용인된다면 ‘혁명을 혁명하는 혁명’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유령은 불가능성이므로, 과정조차 변혁시키고서야 나타난다. 혁명의 과정 그 자체가 혁명의 대상이 된다.<br />
  이런 점에서 불가능성은 불가능성 자신을 뛰어넘도록 항상 환기시키는 새로운 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불가능성의 구도 아래에서라면 ‘혁명을 혁명하는 혁명’은 매번 도래하면서 혁명에 이르는 길조차 변혁하면서 다가온다. 예를 들면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 담론에서 유통되었던 사회 계급 개념에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도 그것을 폐기해야 할 것으로가 아니다. 폐기를 목적으로 했다면 이미 그렇게 되고 있으니, 그런 비판 자체가 무의미했을 터이다. 그는 기존의 사회계급 개념의 ‘전환과 비판적 재가공의 대상’(&lt;마르크스와 아들들&gt;, 184p)으로서 그것을 재탐구하고, 재발명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가 보기에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헤게모니를 쥔 세력은 항상 지배적인 수사법 및 이데올로기에 의해 표상”(&lt;마르크스의 유령들&gt; 123p)되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돌파해야 할 것으로만 마주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의 말처럼, &lt;공산당 선언&gt;에서 마르크스는 한 시대의 “지배적인 관념들”은 “지배 계급”의 관념들에 불과했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즉 데리다에게 현재의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념에 불과하다. 데리다는 우리가 마르크스에게서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 전환과 비판,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상속은 매번 비판적으로만, 매번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서만 가능한, 항상 위험한 작업인 셈이다.</p>
<blockquote><p>“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그대로의 사회 계급 개념이 충분하게 ‘분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대담 당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반복하거니와, 특히 사회 계급의 동일화/동일시의 원리이자, 사회 계급은 “궁극적 지주”로서 동질적이고 현존적이며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는 생각이었다.“(&lt;마르크스와 해체&gt; ‘마르크스와 아들들 <i>Marx &#038; Sons’</i> 한국판 187p)
</p></blockquote>
<p>  만일 비판적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 상속을 수행한다면, 동일성의 원리로 묶어버리는 계급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가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배적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모든 실패와 모든 위협을 은폐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원리, 그것이 지닌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잠재력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리려 한다. 이런 점에서 비판적 상속이란, 매번 불가능성에 자신을 내던지는 작업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고유의 근거들을 무너뜨려야만 상속가능한 그런 상황일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는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비판적으로 재가공될 것으로서, ‘새로운 마르크스’를 던져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br />
  그래서 데리다가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묶음이 바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인 것이다. 그것은 신분과 직위 그리고 호칭도 없고, 은밀하지도 공개적이지도 않으며, 서로 계약도 없이, 당과 조국, 민족 공동체 없이, 더군다나 어떤 계급으로의 공동적 소속 없이 이루어지는 비동시대적인 연대이다. 도무지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은 마르크스주의적 연대이다. 결국 이것 자체가 불가능성으로 던져진 연대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혁명을 혁명하려는 혁명은 존재론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영역에 서게 된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런 ‘혁명의 혁명’ 자체가 추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론적으로 이해불가능한 유령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령은 지금 현재의 존재라는,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것 자체가 이상화된 존재이다!-를 침범하는 형태로, 즉 비순수한 형태로서만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유령의 출현 자체가 위협적이다. 유령은 위협하고, 침범한다. 그것들은 두렵고 낯선 것(das Unheimliche)이다. 유령은 아주 낯선 사건을 만들어 내고, 지반을 흔들어댄다. 그러나 바로 이 낯선 유령들과 함께해야만, 마르크스주의는 자기 자신조차 혁명하여 우리에게 되돌아 올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혁명할 수 있을 것이다.  </p>
<p>  어느 날 아침에 봤던 그 노숙자는 나에게 유령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유령은 언제나 이미 우리의 생활 한복판에 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불현듯 은행 로비에, 아가씨를 잡아채며 나타나서, 반짝반짝 거리는 은행 로비 바닥을 한 순간에 ‘오큐파이(Occupy)&#8217;하였다. 시위대보다 앞서서, 자본가들도 미처 모르는 틈을 타서 말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배우겠다는 심정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침입은 나로 하여금, 내 밥벌이를 성찰하게 만들었다. 그의 초점 잃는 눈빛은 “너는 이제 너의 밥벌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원래 내 안에 있었던 것이 밖으로 나와 외친 듯했다. 그것은 나의 지반을 해체하고 새로운 배치에 이르도록 명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큐파이는 이제 다른 모든 밥벌이에게도 덮쳐야 한다고도 생각되었다. 어느 누구든 자신의 밥벌이가 동일한 회로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이 오큐파이에 의해 모두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이다. 유령들이 이 도시를 오큐파이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br />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가 이미 유령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불가능성을 뛰어넘어 절대적 환대의 결과로 존재하게 된 자들이지 않을까. 애도 불가능성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타자를 자신에게 받아들이고 있었지 않았는가. “저는 마지막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오로지 자신의 유령으로부터만 배울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아 보인다. 그것도, ‘그 이후’ 없이 지금 당장, 장래를 계산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태를 &#8211; 이를테면 메케한 냄새의 노숙자조차도- ‘불가능성의 출현’으로서, 또한 상속해야할 ‘유령’으로서 이해하려면, 그것을 배워야 할 사태로, 그것도 장래에 대한 계산 없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타자에게 빌려온 자기를 다시 타자에게 돌려주기 위한 운명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분리된 어떤 타자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뒤섞인, 이미 경계 위에 있는, 다시 말하면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자기, 삶-죽음로부터 배우는 것이 될 터이다. 그것은 위험한 경계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내걸어야 배울 수 있는 확정불가능한 지평이다. 우선 유령들에게 나를, 우리들을 오큐파이하도록 허락하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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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레카리아트’에서 생각난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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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2 +0000</pubDate>
		<dc:creator>가게모토 츠요시</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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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위크리 수유너머에 실릴 기사를 써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은 과연 어떤 독자가 이 글을 볼까? 라는 것이었다. 아마 일본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재밌게 쓰면 그만한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 될 텐데 한국에 있어보니까 요새 일본에서 재밌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문맥 없이 생각하게 된 것을 아웃풋을 할 샘치고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독자에게도 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위크리 수유너머에 실릴 기사를 써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은 과연 어떤 독자가 이 글을 볼까? 라는 것이었다. 아마 일본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재밌게 쓰면 그만한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 될 텐데 한국에 있어보니까 요새 일본에서 재밌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문맥 없이 생각하게 된 것을 아웃풋을 할 샘치고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독자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일본 문학연구자가 그런 말을 했다. &#8216;독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필자의 책임이 커진다&#8217;. 너무 중요한 말인 것 같다. 대학 시절에 샐 수 없을 정도로 쓰고 만들었던 치라시도 몇 백 장 밖에 인쇄를 하지 않았지만 참 열심히 썼다. 물론 그렇게 쓴 치라시도 읽는 사람은 그리 많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치라시의 문구의 위해 친구들이랑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논의를 했다. 치라시는 읽고 나서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운명이다. 버림을 당할 것을 열심히 만들었을 때의 열기가 치라시에는 있다. 그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치라시를 좋아한다. 한국어도 치라시를 통해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라시의 문구에는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의 글 보다 책임감이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어떤 상업적인 치라시라 하도라도 치라시를 주고받는 순간의 만남에 어떤 무엇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조건 치라시는 받아 다니다. 한 장의 치라시처럼 무언가를 써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p>
<p>  이제　본제로　들어가야　한다. 몇 일 전에 프레카리아트 운동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 낯선 말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교시절에 나타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마 2005년 겸인데 &#8216;임펙션(IMPACTION)&#8217;이라는 일본의 운동잡지에서 프레카리아트 특집이 나왔다. 내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에 처음에 접했던 게는 그 잡지를 보면서였다. 잡지의 좌담회나 논문을 보면 프레카리아트라는 게 뭔가 중요한 말인 것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굳이 이 말과 개념을 사용해서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그 잡지에 대해서 친구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잡지를 읽던 친구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우리를 표상할 때 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잡지를 읽지 않던 친구는 프롤레타리아트 같은 기존의 개념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따지는 그런 논의를 언청나게 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는 2005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네그리 하트의 &#8216;제국&#8217;에 나오는 &#8216;마르치츄드&#8217;라든가 낯선 외래어를 많이 접하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논의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논의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고, 옆에서 소주나 일본술의 대병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까 잠이 와서 논의의 자리에서 자주 잤다. 새벽에 잠이 깨면 아직 친구들이 논의를 계속했었을 경우도 있었다. 한번 무슨 집회인지 기억이 없지만 치라시에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후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 경험에서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타자에 대해 호소할 때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p>
<p>  우선 말해야하는 것은 세계화가 진행이 되면서 불안정한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도식을 기반으로 해서 프레카리아트 문제를 논의한다는 식의 구도가 있다. 불안정노동자의 증가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좀 더 봐야하는 게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이냐면 불안정노동은 늘어났을 뿐이지 옛날부터 계속 있어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규직이었던 남자가 비정규직화되면서 비로소 불안정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정한 노동형태는 주로 여성들이 해왔던 노동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일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같은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사한 점은 많을 것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진 후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했다. 그것을 지탱했던 사람들은 양복을 입고 회사에 다니던 정규직 아저씨나 기술자들이라고 말해왔다. 기업전사(企業戰士)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오사카에 있는 일본최대의 인력시장인 가마가사키에 가면 일용직의 노동자들이 나 같은 학생에 대해 &#8216;너희들이 다니는 학교는 총장이 세운 게 아니야, 내가 만들었지&#8217;라는 말은 많이 들게 된다. 사실 일본의 경제 발전은 언청난 불안정노동자를 필요로 해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발전의 상징같이 보이는 정규직 회사원은 그러한 불안정노동자를 필요로하는 전체적인 구조의 위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까지의 일본사의 수업의 영향인지 혹은 아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간에 60살까지 같은 회사에 다니며 양복을 입으며 날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아저씨들이야말로 일본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마가사키의 노동자의 말은 내가 가져온 지식을 반전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한 상징적인 아저씨들이 비정규직화되면서 겨우 비정규직의 문제가 문제로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닐까. 누가 아이를 키워왔는 지 누가 설거지를 해왔는지에 대한 물음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p>
<p>  그러니까 불안정노동 혹은 노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노동은 있어왔고 운동도 있어왔다. 가마가사키에서의 일용직 노동자 운동이라든가 여성들의 운동이라든가 장애인의 운동이라든가 그러한 운동들이다. 나도 역시 비정규직의 문제화와 동시에 학생으로서 가질 만한 &#8216;취직할 수 있을까&#8217;는 불안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그 불안에 대해서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비주류의 운동에서 시도되어온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8216;취직을 하지않고 사는 방식&#8217;아라는 연속 강연회도 했다. 강연회라고 하면 훌륭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대학 졸업 후 비정규로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식이 모임이다. 기억하기에는 신체장애인의 활동보조로 사는 친구에게 강연을 부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졸업 후 정규직이 되건 비정규직이 되건 도움이 될 만한 노동법을 배우는 강연회도 했다. 대학교의 취업지원센터 같은 데에서는 노동법이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비정규직노조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강연을 했다, 그런데 들으러온 학생들의 알바이토에서 당하고 있는 착취에 대한 상당회 같은 자리가 되었다. 내가 친구들이랑 같이 했던 그러한 시도에 대해 프레카리아트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내가 친구들과 같이 해온 여러 것은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고 살아남는 전략으로서의 지식과 인맥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스스로를 회고해보니까 상당히 프레카리아트 운동인 것 같이 보인다. 시위에서 호소할 때도 &#8216;알바이트에 대해서 &#8216;알바군&#8217;이라고 부르지 말아! 이름으로 부르라!&#8217;라든가 어쨌든 프레카리아트 운동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프레카리아트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왜일까? 아마 자기들의 있는 상황이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금까지의 비주류의 운동 속에서 쌓여온 경험부터 배우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p>
<p>  물론 작가인 아마미야 가린(雨宮処凛)이 쓴 &#8216;프레카리아트의 우울&#8217;이라는 매우 중요한 책도 있으며 일본에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마미야 가린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보급시키기에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쓰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지금 한국에서 프레카리아트란 용어가 어떻게 쓰여 나가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 용어를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쓴다면 어떠한 의미를 부여시키는지 그러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재미있겠다. 힘을 가진 말이 되면 좋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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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크 데리다, 유령과-함께-해체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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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2 +0000</pubDate>
		<dc:creator>최진석</dc:creator>
				<category><![CDATA[사상가 특집]]></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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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30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데리다의 첫 번째 저술은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며 붙인 장편의 해제로 알려져 있다. 단지 번역문에 대한 해설 이상의 함축을 담고 있는 이 논문은 데리다에게 프랑스 최고 철학상인 카바예스 상을 안겨주며 ‘천재’ 소리를 듣게 해 주었다. 젊은 철학자의 전도유망한 미래가 엿보이던 순간이었으나, 이후 40년간 그가 80여권의 저작을 출간하고 수백 편의 인터뷰를 남기]]></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4>이단적 사유의 행로 — 명성과 악명 사이에서</h4>
<p>1930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데리다의 첫 번째 저술은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며 붙인 장편의 해제로 알려져 있다. 단지 번역문에 대한 해설 이상의 함축을 담고 있는 이 논문은 데리다에게 프랑스 최고 철학상인 카바예스 상을 안겨주며 ‘천재’ 소리를 듣게 해 주었다. 젊은 철학자의 전도유망한 미래가 엿보이던 순간이었으나, 이후 40년간 그가 80여권의 저작을 출간하고 수백 편의 인터뷰를 남기며 영화에도 출연할 만치 세계적 명성을 누리리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br />
본격적인 데리다의 시대는 1967년, 그가 세 권의 주저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를 선보이며 시작된다. 특히 『그라마톨로지』는 여전히 데리다의 대표작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적 트레이드 마크인 ‘해체론’의 표지로서 인용되고 있다. 계몽 철학자 루소와 루소의 독자로서 구조주의의 창설자인 레비-스트로스를 면밀하게 독해하는 이 책은 서구 사상사의 명시적 기원인 동시에 그 누구도 질문하지 않은 기원의 이면에 놓인 로고스 중심주의를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것은 사유의 원천에 의문을 던지며 그 원천의 자리에는 아무런 ‘근원적인 것’이 없음을 드러내는 이중의 과제를 실행함으로써, 서구 정신의 ‘전복’을 겨냥한 대담한 시도였다. 이로써 데리다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계보를 이어 형이상학의 비판자로 자신의 사상사적 포지션을 정립한다.<br />
『철학의 여백』(1972), 『산종(散種)』(1972), 『조종(弔鐘)』(1974), 『우편엽서』(1980) 등의 후속작들에서 알 수 있듯, 그 후 데리다의 작업들은 주로 문학과 철학의 정전들을 뒤집어 읽거나 그 비-근원을 드러내며, 의미의 괴리와 파열 지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일상의 신념들, 아카데미라는 성전에 모셔진 진리가 실은 보기보다 부실하며 근거 박약한 것이었음을 파고든 데리다의 글들은 학계의 센세이션이요, 스캔들이었다. 또한 데리다가 건드린 주제들은 굳이 철학의 영토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민족, 결혼, 가족, 종교, 우정, 회화 등 담론 일반에 속한 것이라면 그 무엇도 ‘해체의 망치질’을 비껴갈 수 없었다. 데리다의 작업들이 기성의 지식 담론, 특히 대학 사회에서 두려움과 혐오감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60-70년대에 그가 누린 명성의 이면에는 ‘사기꾼’이나 ‘날라리’라는 악명이 덧칠되어 있었으며, 이는 1980년 소르본 대학에 제출한 그의 국가박사학위가 거절되었던 일화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p>
<h4>윤리·정치적 전회 — 실천적 해체론? </h4>
<p>초기 데리다의 행보에서 무엇보다도 논란거리가 된 것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그의 애매한 태도였다. 해체의 칼바람은 플라톤과 헤겔, 후설, 하이데거 등 서구 지성사의 대가들에게 거침없이 불어닥쳤지만, 정작 텍스트 ‘바깥’의 현실에서는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물론, 프랑스 교육 정책에서 철학이 제외된 데 적극 항의를 벌이거나 대학 사회의 폐쇄적 태도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긴 했어도, 60-70년대 서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회 변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현실에 대한 데리다의 거리두기는 일종의 지적인 ‘직무유기’로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했다. 더구나 알튀세르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어떻게든 ‘좌파’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던 데 비해 어떤 정치적 이념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은 누가봐도 그의 작업을 ‘비정치적인 유희’로 간주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라마톨로지』를 정점으로 삼는 그의 초기 철학을 연구할 때 마주치는 곤혹은 바로 이런 그의 비정치성, 혹은 정치적인 모호성에 연원한다.<br />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데리다 사유의 기본 흐름은 전면적인 선회를 시작한다. 소위 ‘윤리적’ 혹은 ‘정치적’ 전회라 불리는 것으로,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과 『법의 힘』(1994)을 필두로 『환대에 대하여』(1997)와 『불량배들』(2003), 『짐승과 주권』(2008-10) 등에 이르기까지 후반부 저작들에서 데리다는 현실과 정치에 대해 보다 개입적이고 발언적인 입장들을 취하기 때문이다. 팔방미인적 재능에다 워낙 다작이었던 탓에 그가 남긴 저술들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겨져 있지만, 80년대 이후 데리다의 글들은 사유가 어떻게 실천적으로 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모종의 응답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해체적 사유’가 ‘실천하는 해체’로 전화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br />
일견 이론이 실천으로, 텍스트가 현실로 옮겨가는 간단한 도식으로 보이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면 데리다의 초점은 “해체는 실천이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해체가 실천적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맑스의 문제제기를 뒤틀어 표현한 것일 텐데, 해체의 실천이란 다름 아닌 실천의 조건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는 탓이다.</p>
<h4>유령론, 또는 해체의 실천 철학 </h4>
<p>가령 후기 데리다의 중심 논제를 구성하는 정의나 환대의 논리가 그렇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설계한 이래 ‘정의’는 사회 구성의 중심 이념으로 사상사를 지배해왔으며, ‘환대’는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 원리로 군림해 왔다. 문제는 민족과 문화, 이해관계 등에 의해 지배되는 특수한 정의나 제한적인 환대만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항상 타자가 아닌 ‘우리의’라는 소유격에 지배되는 정의와 환대만이 구체적이었고, 그렇게 정의와 환대가 구체화되면서 나와 너,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인간과 동물 등의 이분법적 논리가 ‘불가피하게’ 가동된다. 달리 말해, 조건없는 보편성을 내장하는 정의와 환대의 이념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정의와 환대란 전혀 불가능한 것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정녕 그런 것인가?<br />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해체적 실천의 가능성은 그 ‘아마도’가 안고 있는 절반의 물음으로부터 솟아난다. 왜 ‘아마도’인가? 만약 현실에 충실한 미래가, 보편적 정의나 환대가 부재하는 시간만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를 말할 수 없다. 현재의 불의(특수한 정의와 환대)가 그 힘을 보존하여 10년 후, 100년 후, 영구한 세월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전망을 지금-여기의 현실에 비추어 왜 부정할 수 없겠는가?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보편적 정의와 환대를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논리적 형식이 결코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막연한 희망이나 맹목이 아니다. 사실, 초기 데리다의 비정치성에 대한 세간의 속단과 달리, 처음부터 그는 시간의 형식이란 시대별로 구부러지거나 끊어져서 존속하는 부단한 단절과 교차의 운동, 즉 ‘차연’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항상-이미 예기치 못한 낯선 것들로부터 습격을 받아왔고, 타격을 입었으며, 그만큼 변형되어 왔다. 시간의 벽을 타고 야만인[타자]들이 왔으며, 어쩌면 시간 속에서 지속하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야만인들일지 모른다!<br />
그래서 ‘아마도’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함께 뒤섞여 존속하는 탈구된 존재론을 제기한다.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던 자아와 현전의 존재론을 데리다는 타자와 비-현전의 존재론, 즉 ‘유령론’으로 뒤바꿔 던져놓는 것이다. 유령,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유령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것이 남긴 흔적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믿든 말든) 그 효과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맑스조차 ‘사용가치’라는 유령적 흔적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to be, or not to be)가 아니다. 관건은 그 질문의 효과다! 유령의 효과! 진리도 그 효과로부터 생산된다!<br />
일관되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존재한다 말하고 맹신하는 이 세계를 떠받치는 것은 비가시적인 유령-효과다. 유령이 없다면, 유령-아닌-것도 없다. 세계의 변화를 자신하고 실행하던 정치 철학이 가시적인 현전만을 이 세계의 유일한 형식으로 삼아왔다면, 이제 데리다는 우리로 하여금 그 현전의 유령적 속성을 인식하고 유령과-함께 실천해야 함을 권유한다. 정의란, 환대란, 보편적 의미에서 바로 유령적인 것의 흔적이며, 유령과-함께일 때만 비로소 불러낼 수 있는 효과-힘이기 때문이다. 허깨비도 아니고 실체도 아닌, 그런 유령과 함께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해체의 정치적 위력을 깨워낼 수 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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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사 일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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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2 +0000</pubDate>
		<dc:creator>김융희</dc:creator>
				<category><![CDATA[여강만필]]></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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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농사 일지를 쓴지가 까마득합니다. 너무 오래여서 기억도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일지쯤은 쓸거리가 없거나, 쓸 여건이 안되면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심어야 하는 작물을 놓치고 말았으니, 이 농직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바람이 나도 많이 난 모양입니다. 이런 내 짖이 왜인지를 나도 잘 몰겠습니다. 특히 일상 가장 많이 늘 먹는 채소류를 거의 심지를 않고 빠뜨렸습니다. 쑥갓, 아욱, 근대, 열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농사 일지를 쓴지가 까마득합니다. 너무 오래여서 기억도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일지쯤은 쓸거리가 없거나, 쓸 여건이 안되면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심어야 하는 작물을 놓치고 말았으니, 이 농직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바람이 나도 많이 난 모양입니다. 이런 내 짖이 왜인지를 나도 잘 몰겠습니다. 특히 일상 가장 많이 늘 먹는 채소류를 거의 심지를 않고 빠뜨렸습니다. 쑥갓, 아욱, 근대, 열무, 알타리, 시금치, 등&#8230; 겨우 상추만 몇 포기 모종한 것을 뻬고는, 야채 모두를 심지 않고 그냥 빠뜨렸습니다. </p>
<p>또 날씨 탓입니다. 아마 요즘 들어 매우 심한 기후 변덕의 영향이 없지 않을 듯 싶습니다. 농사란 것이 자연과 더불어 기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못난 농사꾼은 번번히 날씨 탓을 못면한 답니다. 올해는 날씨가 풀려 농사 준비로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도 계속 영하의 날씨로 꽁꽁 언 땅을 바라만 보아야 했고, 임박해 서둘러야 할 때에는 벌써 여름 날씨처럼 갑자기 더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작물은 어떤 기후에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용케도 작물은 말없이 자연에 적응하여 잘 대처합니다. 뒷치다꺼리나 하는 못난 농사꾼만이 불평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p>
<p>놀라운 작물의 자연에 적응력을 보면서, 그 치다꺼리가 나에겐 여간 힘듭니다. 물론 작물의 환경 적응을 위한 고통에 비하면 어림없는 엄살부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새싹은 높은 기온, 강한 햇빛에 너무 약합니다. 가끔씩 비라도 내려줘야 지탱이 되는데,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뿌려줘야 새싹이 지탱하며 겨우 자랍니다. 그런데 잡초가 엉뚱하게도 뿌려준 물에 제세상처럼 춤추듯 무성합니다. 물을 뿌리랴, 잡초를 제거해 어린 싹을 보호해 주랴, 이래 저래 힘겨운 농사꾼의 불평도 일리는 있는 것입니다. </p>
<p>농직이는 개으름은 피울 망정, 자리를 비우면 않됩니다. 늘 곁에서 함께 있어주어야 합니다. 작물들이 외로움을 타는가 봅니다. 곁에서 눈길 주기를 바라며, 계속 손길을 바람니다. 농작물은 어지간한 환경에는 잘 적응하면서, 농부의 손길이 닿아야 씩씩하게 잘 자랍니다. 개으름부림엔 별로 개의치 않지만, 눈길, 손길이 없는 작물은 늘 부실합니다. 그런데 나는 거의 자리를 비워 수시로 외도를 일삼고 있으니, 우리집 작물들은 불평이 많습니다. 더구나 금년은 외도가 더 심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집수리로, 또 여름행사 준비에, 수시로 서울 나들이에 작물에는 거의 관삼이 없었습니다.</p>
<p>아직도 집수리는 마무리를 지우지 못한 채, 독일행 행사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못심은 채소라야 없으면 그만, 주위에 널려있는 것이 먹거리들입니다. 나물이 먹고 싶으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비름, 국거리가 필요하면 항상 가능한 쑥국에, 야생의 머위도 있고, 취도 계속 자라며,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 질갱이등, 주위에는 야생의 먹거리가 널려있습니다. 다래순 고춧나물, 두릅등, 금년 봄나물들. 손쓸 시간이 없어 지금까지 그데론 채, 모두가 쇠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내가 작물을 기르는 것은 꼭 먹거리가 필요해서만은 아님니다. </p>
<p>바쁘다는 핑개로, 믿는 구석이 있어 채소류를 놓와버렸을 뿐입니다. 봄냉이도 케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잡초로 변해 하얀꽃이 만발했고, 일부는 벌써 새싹으로 태어나 여름냉이로 나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어쩜 이같은 야생 토종 야채들이 우리의 참먹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요즘 시장의 먹거리들을 보면 온통 신품종의 일색입니다. ‘신토불이’를 로고로 쓰고 있는 마트에도, 그 어디도 마찬가집니다. 야생 토종먹거리는 용돈 천원이 아쉬운 촌노의 일거리로 시장 골목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빵하나 값도 안되는 야채가 팔리기를 고대하며 쪼그리고 앉아계신 할머니를 보면 어쩐지 나는 눈물이 납니다. 이런 세상이 참 밉습니다. </p>
<p>토종 작물은 줄곧 곁에 함께하면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훨씬 오랫적부터 우리와 함께 있는 토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물을 외면이나 괄시뿐만이 아니라, 사정없이 종자를 없에버리고 변형시켜 버리는 요즘 세상입니다. 메스컴이나 티비를 보면, 모두 변형시켜 만신창이의 도깨비 작물들을 몸에 좋다며 신품종으로 추켜세우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못해 분통이 터집니다. 무조건 새것이 좋다는 엉터리 세상. 그래서 지금은 우리 종자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모두 빼앗겨 남들의 돈벌이나 시켜주고 있는 어리석음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p>
<p>비웃음이나 사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 않음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8230; 말해 뭘합니까.<br />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토종씨를 구하려 해도 도대체가 구할 수 없어 속상하고 답답합니다. 나처럼 개으르고 불성실한 농사꾼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우리 토종 작물의 재배입니다. 토종은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환경에 적응력이 매우 좋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 잡초에도 강하며 병충해에도 잘 이겨냅니다. 물론 우리의 체질에도 잘 맞을 것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지사이겠지요. </p>
<p>잎을 뚝 따면 젖빛 진을 내뿜으며 독한 상추내음이 진동하는 옛날 상추가 그리워서 시골 장터를 모두 뒤져도 아직 구하질 못했습니다. 노각이라고 하는 토종 물외는 잡초속에서 더 잘 영글며 향이 짙어, 잡초를 감당못해 버려둔 곳에 심었음싶어 찾아보지만 역시&#8230; 이처럼 우리곁을 모두 소리도 없이 사라져 종적을 감췄습니다. 야채나 식물뿐이 아닙니다. 삽사리를 기르고 싶습니다. 상품으로의 토종닭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 토종닭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서 그리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데도 구할 수 없어 속상합니다.</p>
<p>모처럼 농사일지를 쓰면서 처음부터 어둡고 목맨 소리만 늘어놓으려니 멋쩍고 죄송스럽습니다. 건강이 중요한 만큼 먹거리에도 보다 지혜로운 관심 갖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렴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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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정르뽀, 박정근사건 3차공판 두번째 이야기 – 대학인터넷커뮤니티의 ‘간첩드립질’은 보는즉시 113에 신과는 센스, 우후훗!</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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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May 2012 14:53:01 +0000</pubDate>
		<dc:creator>황진미</dc:creator>
				<category><![CDATA[씨네꼼]]></category>
		<category><![CDATA[11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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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두 번째 증인 29세 안00은 아주대 졸업생으로 공공기관 연구원이다. 2003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아좋사)”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였고, 현재까지 운영자로 있다고 한다. ‘아좋사’는 아주대 학생들의 최대 커뮤니티로 현재 약 3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검사는 안00가 경기지방경찰청에 우편으로 보내온 참고인 조서를 보여주면서, 본인 자필로 작성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아주대 학생 커뮤니티 ‘아좋사’ 개설자 증인 안00씨</p>
<p>두 번째 증인 29세 안00은 아주대 졸업생으로 공공기관 연구원이다. 2003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아좋사)”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였고, 현재까지 운영자로 있다고 한다. ‘아좋사’는 아주대 학생들의 최대 커뮤니티로 현재 약 3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검사는 안00가 경기지방경찰청에 우편으로 보내온 참고인 조서를 보여주면서, 본인 자필로 작성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였다.</p>
<p>검사 : 증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간첩 및 좌익사범 박정근입니다. 수다 떨러 왔어요. 환영해주세요” “저는 이 학교를 무너뜨리려 내려온 남파간첩 박정근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주체사상에 심취하셔가지고 단결력이 끝내주네요. 그게 다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 덕택입니다” 라는 게시글을 보았습니까?</p>
<p>안00 : 아니요. 직접보진 못했습니다. 어느 날 경찰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 성명과 소속을 밝히면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으니 나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빠서 안 되겠다고 하니까, 우편조서로 하자고 해서 주소를 불러주었더니, 질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질문지에 그런 게시물이 있다는 사실이 나와 있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찾아보려니까 이미 삭제되고 없었습니다.</p>
<p>변호인 : 증인이 113에 신고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p>
<p>안00 :  아니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p>
<p>검사는 경찰 조서의 문장을 다시 보여주면서, 113에 신고를 한 사람은 안00이 아니라, 신00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p>
<p>변호인 : 글이 삭제되었었다고 했는데, 카페 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요?</p>
<p>안00 : 회원 중에는 저와 제 동기 신00 두 사람만 삭제권한이 있습니다. 저는 삭제하지 않았고, 누가 삭제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러니까 ‘아좋사’의 운영자 중 한명인 신00가 박정근이 쓴 글을 보고 113에 신고를 했는데, 우편조서는 글을 본적도 없는 안00가 작성하였고, 지금 증인석에까지 나와 있다는 말씀. 차라리 신00를 증인으로 불렀더라면 왜 113에 신고했는지라도 들어볼 수 있으련만) </span></p>
<p>스크린에는 안00가 우편조서의 문답이 비춰진다. 안00가 자필로 쓴 답변에는 “게시글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차후에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문장들이 적혀있다.</p>
<p>변호인 : 이런 답은 뭘 근거로 한 것인가요? 경찰이 FAX로 보내온 그림들과 우편조서에 있는 “저는 이 학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적화통일…” 등의 내용만을 근거로 대답한 것인가요?</p>
<p>안00 : 네. 그런 게시물은 우리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발언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습니다.</p>
<p>박정근이 변호인을 통해 증인에게 질문을 하였다.</p>
<p>“카페에 올린 글의 내용을 문제삼아, 카페회원이 국정원에 신고를 한 일이 있지 않았나요?”</p>
<p>안00 “모르겠습니다.”</p>
<p># 박정근은 왜 ‘아좋사’에 가서 ’간첩드립질’을 한걸까?</p>
<p>대체 이게 뭔 말일까? 박정근과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란 말랑말랑한 이름의 카페는 뭔 상관이 있을까. 박정근이 카페에 들어가 올렸다는 ”간첩 및 좌익사범 박정근 입니다” 따위의 말들은 위험한 건 둘째 치고, 증인의 말처럼 카페의 성격과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박정근은 왜 남의 대학 친목 사이트에 가서 저따위 간첩 드립질을 쳤단 말인가? 우리의 박정근은 국가보안법 위반보다 개매너가 더 문제인 사람이었나?</p>
<p>여기엔 맥락이 있다. 작년 11월 &lt;대학내일&gt;의 &lt;학생운동이 재밌어진다&gt;란 기사에는 ‘진보적 지방잡대동맹(일명 지잡동)’이 소개되었다. 한번 읽어보시라. <a href="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xzcfuWy~plus~u6eeD1u5rFC7OCLuujRQBMROEG~plus~9otNHOopJRBGZBAetYQ%3D%3D">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xzcfuWy~plus~u6eeD1u5rFC7OCLuujRQBMROEG~plus~9otNHOopJRBGZBAetYQ%3D%3D</a> 재미있고 발랄한 이 기사에는 지잡동의 부맹주로 소개된 학생의 소속이 아주대라고 적시되어 있는데, 이게 사단이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아주대 커뮤니티 ‘아좋사’ 회원이 기사를 퍼서 게시판에 올렸고, 기사에는 학생에 대한 비난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어째서 아주대가 지잡대란 이름으로 불려야 하느냐, 왜 학교와 동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느냐, 입시생들이 저 기사를 보고 아주대를 지잡대로 알고 지원을 안 해 커트라인이 낮아져 진짜로 지잡대가 되면 어쩔거냐 등등. 물론 게시판에는 그 학생을 옹호하고 ‘지잡동’의 취지가 학벌체계를 부수는데 있다며 변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과열된 게시판에서 그런 ‘쉴드’는 더 격한 ‘안티’를 부르기 마련이다. 비난여론은 더욱 거세어져 심지어 그 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야 된다느니, 학교에서 징계를 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까지 오갔다고 한다. 감정이 격해진 ‘아좋사’의 회원들 중에는 지잡동이 행하는 ‘북한관련 드립질’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국정원에 신고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으며, 실제로 국정원에 신고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국정원에 ‘북한관련’ 신고를 하면 국정원시계-일명 절대시계-를 기념품으로 받는데, 이를 노린 신고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p>
<p>아무튼 이런 분위기 하에서 당시 국보법으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수차례 경찰 수사를 받던 박정근이 ‘아좋사’에 납신 것이다. “내가 진짜 간첩이다, 니네 왜 엉뚱한 사람들을 국정원에 신고하냐? 니네들 단결력 쩐다, 꼭 북한처럼” 뭐 이런 식의 취지로 게시판에 장난을 친 게, 앞의 그 괴상한 멘트들 되시겠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런데 박정근의 이 드립질에 카페 운영자중 한명인 신00는 진짜로 113에 신고를 했고(아, 이승복 어린이 돋긔), 정작 게시물은 보지도 못한 카페 개설자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span> 우편조서에 인용되어 있는 박정근의 얄궂은 멘트와 FAX로 전송되어 온 (저해상도 흑백사진이지만 뭔가 북한스러운 느낌이 팍팍 나는) 뜨악한 사진들만 보고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답변을 성실히 작성하여 보냈으며, 오늘도 박정근의 위험성(?)을 입증하려는 검찰 측의 요청에 따라 법원에까지 출두하여 영양가 없는 증언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span></p>
<p>그런데 참 놀랍다. ‘지잡동’ 활동가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켜 자신들의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빛나는 스펙정신도 놀랍고, 인터넷 상의 북한 드립질을 국정원과 113에 신고하는 투철한 신고정신도 놀랍다. 20세기의 반공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공존하는 대학문화의 풍경이라니!</p>
<p># 볼 ‘가능성’이 있으므로 기소?</p>
<p>증인은 나갔고, 변호인은 재판에 대해 몇 가지 이의를 더 제기하였다.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되어 있는 것에 부동의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으로도 수사보고서 작성자는 증인으로 부를 필요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 사건은 피의자의 내심의사(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가)가 중요한데, 가장 악의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수사관의 증언을 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p>
<p>또한 검사의 최초의 공소장에 증거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었다가 변호인 측의 문제제기로 공소장이 변경되었는데 그렇게 정정해도 하자가 남는다고 주장하였다. 검사가 작성한 범죄 일람표에는 박정근이 리트윗한 북한계정의 트윗의 원문을 타이핑해 넣었는데, 당시 클릭으로 그 원문을 열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공소사실에 이 내용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p>
<p>그러나 검사는 공소장 변경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쟁점을 줄이기 위해 한 것이었을 뿐, 하자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우회 프로그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소장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맞섰다. (박정근은 그런 프로그램을 몰랐고, 압수해간 박정근의 컴퓨터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았는데도, 검사는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봤다는 것을 전제로 작성된 공소장에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죄추정의 원칙상 박정근이 그것을 보았거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검사가 입증해야 되는 것 아닌가?)</p>
<p>판사는 검사에게 트윗이 표현물이 맞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판례에 나온 것을 정리해서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했다.</p>
<p>다음 공판은 6월 20일 3시로 정해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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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향의 찻집 이야기.- 청태전과 평화다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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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May 2012 15:27:1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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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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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내 고향은 따뜻한 남쪽 바닷가이다. 늘푸르러 하늘을 치솟는 울창한 대밭이 있고, 긴 고샅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이맘 때면 하얀꽃을 피워 가을엔 노랗게 익은 탱자가 주렁 주렁 열리고, 가시로 빽빽한 탱자나무 숲엔 참새들 노릿터로 석양이면 모여든 새들의 우짖는 소리에 귀청이 터질듯 하다. 지금은 머릿속 기억만의 어렷을 적 고향 모습이다. 오래전 우리집 대밭은 돌림병으로 자취를 감췄고, 그 많던 참새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내 고향은 따뜻한 남쪽 바닷가이다. 늘푸르러 하늘을 치솟는 울창한 대밭이 있고, 긴 고샅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이맘 때면 하얀꽃을 피워 가을엔 노랗게 익은 탱자가 주렁 주렁 열리고, 가시로 빽빽한 탱자나무 숲엔 참새들의 삶터로 석양이면 모여든 새들의 우짖는 소리에 귀청이 터질듯 하다. 지금은 머릿속 기억만의 어렷을 적 고향 모습이다. 우리집 대밭은 오래전 돌림병으로 자취를 감췄고, 그 많았던 참새들도 지금은 보인둥 만둥인 채, 탱자나무 가지엔 앙상한 가시들만이 눈에 띌 뿐이다.</p>
<p>분망한 일과로 고된 중에도 지척의 산등성이를 넘어 불어준 시원한 바람이 있어 너무 고맙고, 그 바람에 실려 퍼진 아카시아향이 육신의 위안을 준다. 마침 산등성이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려니 문득 고향의 탱자꽃 향이 콧속을 스멀거린다. 아,탱자꽃이 그립다. 동구에 늘어선 탱자나무 길을 걷고도 싶다. 어서 바쁜 일들이 끝나면 제 백사, 나는 고향에 다녀오리라. 비록 지금은 모두 사라져 변해버렸지만, 기억여행만이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와 늘상 찾는 찻집, 평화다원에서 청태전차를 마시며 질리며 보내야겠다. </p>
<div id="attachment_10139"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4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rlatngml.jpg" rel="lightbox[10136]"><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rlatngml-400x300.jpg" alt="김수희명인의 청태전차" title="김수희명인의 청태전차" width="400" height="300" class="size-medium wp-image-10139" /></a><p class="wp-caption-text">김수희명인의 청태전차</p></div>
<p>우리집 대밭은 이미 사라져 없지만, 대신할 곳이 그곳엔 있다. 낮은 산자락, 맑은 호숫가에 고즈넉한 모습의 평화다원은, 대밭에 감싸여 있으며, 대밭 사이로 억불산을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이름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찻집이다. 가경의 경관도 좋으려니와, 이 집의 찻맛은 예사를 초월한 천하 신품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의심되고 궁금하면 직접 맛보면 수긍할 것이다. 아니 찻집을 운영하는 평화다원의 내력만 들어도 납득이 갈 것이다. 찻집의 주인은 천년의 전통인 우리 고유의 “청태전”차 제조의 명인인 “김수희” 차인이시다. </p>
<p>“청태전”차는 청정한 산야의 야생 찻잎으로 만든 전차(錢茶) 일종의 고형(固形)인, 우리 고유의 차이름(茶名)이다. 청정의 자연환경인 장흥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즐겨 애용되온 전통의 발효차이다. 장흥은 삼국시대에 창건된 선종의 본산인 보림사가 있다. 보림사 주변의 비자림(榧子林)숲에서 자생한 청정의 찻잎을 이용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차가 청태전이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에 장흥의 차(茶)이야기가 기록되 있고, ‘가오고락’과 ‘임하필기’에서 전차인 장흥의 ‘청태전’의 기록을 볼 수 있다. </p>
<p>고려시대에는 전국 19곳의 다소(茶所)중 13개가 장흥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장흥의 ‘청태전’은 선약(仙藥)으로 통해 치유의 단방약으로 읽찍부터 즐겨 음용해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제조가 까다롭고 커피와 같은 새로운 음료에 밀려 거의 외면되어 왔다. 김수희 명인은 거의 평생을 야생차밭을 누비며 채취한 좋은 찻잎으로 천년 고유의 맛인 ‘청태전’차 제조에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장흥을 중심으로 한 차인들과 함께 노력의 결실을 얻어, 이처럼 맛과 효능이 뛰어난 ‘청태전’이 다시 꽃피운 것이다.</p>
<p>2008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 녹차콘테스트’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에서 100여종의 명차들과 당당히 겨뤄 “최고 금상” 수상의 영광을 획득했고, 지금은 ‘청태전’의 구수하고 독특한 맛과 향기로 까다로운 일본의 다인들도 ‘동양의 3대 명차’로 인정한다. ‘청태전차’는 일반 녹차보다 카데킨성분이 많이 함유되 있고,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페놀화합물의 일종인 플라보노이드 물질을 많이 함유해, 인체 기능 향상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p>
<p>청정의 장흥 산야엔 보림사의 비자림 이외의, 부산면 관한마을, 행원마을, 천관산 기슭, 평화마을 중샘터, 장흥 읍성공원등에도 야생차가 지천으로 널려 자라고 있다. 김수희 명인은 이런 천혜의 조건의 차밭을 누비며 어린 순을 채취하여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시들린 후, 쩌서 절구에 찧어 고형차를 만들고, 맑고 고운 바람과 하늘에 오랜 시간을 발효시킨다. 이처럼 명차는 여간 아닌 지극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같이 만들어진 차를 마시며 다원에 앉아 창밖의 가경을 바라보는 것은, 선경이 바로 이곳인 듯 싶다.</p>
<p>우리는 정담이나 진지한 말을 나눌 때면 늘상 술자리를 마련한다. 이는 술맛 때문만은 결코 아니리라. 얼굴만을 마주한 대담은 어쩐지 분위기가 너무 민숭스럽지 않는가. 그 민숭스럼의 대처로 술잔을 권하는 대화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커피나 일반 차는 계속 연음이 어렵다. 그런데 다인들을 보면 녹차는 술잔처럼 이용한다. 녹차 음차는 술잔보다도 대화 분위기에 유용하다. 더욱이나 ‘청태전’은 많이 마셔도 속이 항상 편하며,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마셔도 좋은 차이다. ‘청태전’은 오래 보관하면 더욱 성능과 맛이 향상되어 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청태전’은 정담에 안성맞춤 적격의 차인 것이다. </p>
<p>나는 쉽지 않는 먼거리의 고향을 금년들어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다. 이는 김수희 차인의 손수 끓여준 찻맛, 대숲의 바람소리, 아름다운 환경과 같은 여러 분위기의 탓도 있다.<br />
그 집에 가면 차맛 뿐만이 아니다. 반세기도 넘어 다시 맛본 무우시루떡도 그 집이었고, 화로불에 구은 찰떡을 조청에 찍어 먹었던 맛도 즐겼고, 꼭꼭 싸서 보관해 둔 귀하디 귀한 홍매화 꽃잎을 ‘천태전차’에 띄워 마시며 자작시를 낭송하는 호사를 누린 곳, 이같은 것이 모두 ‘평화다원’에서의 나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p>
<p>나는 이곳 분위기를 진즉부터 글로 쓰고 싶었지만, 마치 메스컴에서 이용되는 그 빈번한 영업집 소개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 그동안 머뭇거렸고, 사실을 진실되이 썼음에도 남들의 과장된 표현으로 비추일까 싶어 지금도 몹시 조심스럽다. 사실을 진솔하게 쓰려 노력했다. 이곳 기록의 근거는 김수희 다인에 의한 것이다. 혹 잘못이나 오해의 소지에는 고의성 없는 모두가 나의 부족함으로 이해 바라며, 그 때 낭송했던 자작시의 소개를 끝으로 청태전과 평화다원의 차이야기를 마친다. </p>
<div id="attachment_10140"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4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vudghkekdnjs.jpg" rel="lightbox[10136]"><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vudghkekdnjs-400x290.jpg" alt="평화다원 전경" title="평화다원 전경" width="400" height="290" class="size-medium wp-image-10140" /></a><p class="wp-caption-text">평화다원 전경</p></div>
<blockquote><p>꿈에 본 옛집.<br />
김수희</p>
<p>어릴 적 내 집은<br />
추녀 끝이 가지런히 다듬어진 초가집.<br />
사립문 옆에는 감나무가 서있고,</p>
<p>마당 이 끝 저 끝에 명주실 매어 놓고<br />
떫디 떫은 풋감 따서,<br />
검붉은 색 질기디 질긴 낚시줄을<br />
만드시는 아버지.</p>
<p>헛청에 숯불 피워 냄비솟 얹어놓고<br />
끓는 물에 자글자글 누애고치 넣어가며,<br />
한손에 얼레 돌려 명주실 감겨지고<br />
꼰데기 냄비솥에 쫑긋 쫑긋 돌려앉은 꼬맹이들.<br />
“뜨겁다 물러 앉거라!”하시며 꼰데기를 거네 주시던,<br />
늘 분주하신 어머니.</p>
<p>여름 날 사립문 밖<br />
도랑물이 흐르고,<br />
고무신 배 눈 깜짝할 새 떠내려 가면,<br />
한 짝 남은 예쁜 꽃신 꼭 쥐고 울던&#8230;.<br />
새록 새록 그리운 옛집의 어린 시절이<br />
머릿속 한가득 채워집니다.</p>
<p>아직도 그 옛집에서<br />
빙그레 웃으시며 손짖하시는 아버지,<br />
낭자머리 고운쪽을 머리 수건에 감추시고<br />
땀을 씻는 어머니.<br />
가슴 뭉클 잠이 깨어 뒤척이니<br />
베갯머리 촉촉이 젖어 듭니다.</p>
<p>이제 내 머리 희어진 할머니가 되어<br />
어릴 적 놀던 집과<br />
두 분 어른의 모습이<br />
더욱 가슴이 어리도록 그립습니다.</p>
<p>2006년 9월 5일. 평화다원에서.</p></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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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물머리에서의 3년, 좌충우돌 외부세력 연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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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May 2012 15:25:22 +0000</pubDate>
		<dc:creator>김디온(두물머리 밭전위원)</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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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는 외부세력이다. 올해로 벌써 3년이 되었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자전거도로를 놓기 위해 강변의 유기농단지를 철거할 계획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곳에 가서 자전거도로 반대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자전거를 좀 탄다는 친구들이 있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못 탔다. 출발과 정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빈 운동장에서 매우 긴장하며 한 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attachment_10130"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8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14.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14.jpg" alt="그림  2010. 5 서울-팔당 두물머리 자전거 떼잔차질 " title="그림  2010. 5 서울-팔당 두물머리 자전거 떼잔차질 " width="270" height="180" class="size-full wp-image-10130" /></a><p class="wp-caption-text">그림  2010. 5 서울-팔당 두물머리 자전거 떼잔차질 </p></div>
<p>우리는 외부세력이다. 올해로 벌써 3년이 되었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자전거도로를 놓기 위해 강변의 유기농단지를 철거할 계획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곳에 가서 자전거도로 반대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자전거를 좀 탄다는 친구들이 있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못 탔다. 출발과 정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빈 운동장에서 매우 긴장하며 한 바퀴 겨우 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짐작이 가시려나. 다행히 친구 중 하나가 2인용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 나는 뒷자석에서, 몸자보와 깃발을 휘날리며 페달을 밟을 수가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두물머리까지 자전거 떼잔차질을 하며 가자 했더니 30여명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모였고 무려 8시간의 개고생 라이딩 끝에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한 번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만 그것이 지난 3년간 내 활동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두물머리 유기농지 싸움에 푹 빠져버려 어느새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p>
<p>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첫 방문 이후 나는 마음을 앓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하고 사람들은 평온한 미소를 띠었다. 연대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지 않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호기심이 솔솔 생기기 시작했다. 투쟁한다는 곳에 이 평화로운 분위기는 무엇이며, 채식을 한다거나 여자가 담배를 뻑뻑 피운다거나 하는 일에 ‘그러려니’의 태도로 일관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또?(나중에 알고보니 이분들도 한 때&#8230; ) 어쨌거나 나는 그후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자들이 주변에 몇몇 있어 외롭지 않았다. </p>
<div id="attachment_10131"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53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3.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3.jpg" alt="그림  협상하고 떠난 농부들의 밭은 매년 수많은 외부세력들이 경작하고 있다 " title="그림  협상하고 떠난 농부들의 밭은 매년 수많은 외부세력들이 경작하고 있다 " width="243" height="183" class="size-full wp-image-10131" /></a><p class="wp-caption-text">그림  협상하고 떠난 농부들의 밭은 매년 수많은 외부세력들이 경작하고 있다 </p></div>
<p> ‘8당은 에코토피아’라는 희안한 이름의 생태캠프를 벌였고, 빈 밭에 배추를 3천포기를 심어  ‘4대강포기배추’라 하여 판매를 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꾸준히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왔다.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이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4대강 사업 등 이 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각종 스트레스에 분한 마음이 좀 풀리는 듯도 했다. 그러던 12월 어느 날, 두물머리 농부들 11농가 중 7농가가 협상에 임하여 4농가만 남아 싸움을 지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p>
<p> 2011년, 우리는 일찍이 비어있던 땅을 우리 자체의 밭으로 삼고, 주말마다 번개모임처럼 작물들을 심고 가꾸었다. 두물머리가 조용해지는 것이 싫었고, 뭐든 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농민분들과 에코토피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접촉면은 우둘투둘하게, 서로 맞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서 다같이 마음이 모아지는 일들을 찾아나갔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두물머리 강변가요제’는 그야말로 외부세력들이 자립적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벌인 기념비적 사건 중에 하나였다. 그때까지 별로 교류가 없던, 그러나 두물머리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던 ‘록빠’라는 팀과 함께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에코토피아가 무슨 행사를 하나 하고, 록빠도 무슨 행사를 하고 각자 자신들의 텃밭을 일구며 오가며 인사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일종의 우드스탁 같은 큰 행사를 같이 하게 된 것이다. 몇 백만원을 들여 야외 스테이지를 꾸미고 조명과 엠프를 설치하고, 3개의 무대에 수십개의 밴드와 수많은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호화로운 잔치를 열심히 준비하였다. 홍보를 하고 표를 팔고 온갖 것들을 준비하였는데 대망의 행사 당일, 날씨가 안 좋았다. 아침부터 서서히 바람이 불었고 비와 돌풍이 예고되어 야외에 마련한 그 몇 백 만원짜리 스테이지는 바람에 날아갈지로 모를 일이었다. 비싼 음향 기기를 실은 차량이 두물머리에 도착함으로써 결국 강행을 하기로 했다. 공연 시작과 함께 내리던 비는 공연의 클라이막스와 함께 폭우를 몰고 왔고, 급기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불어 닥쳤다. 이런, 이건 진짜 우드스탁과 똑같았다. 얼마 안되는 관객과 스텝과 뮤지션들이 진흙탕 속에서 미친 듯 놀았다. 한편 그날 주차된 차들이 모두 진창에 빠져 농부들이 차를 빼느라 고생하고 공연은 보지도 못했다.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는데, 농부들은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괜찮다 하셨다. 다행히도 다녀갔던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리처럼 주말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후부터는 농부들이나 팔당공대위나. 그냥 두손 두발 다 들고 ‘니네들 마음 대로 해라!’하는 심정이셨던 것 같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겨우 내 열었는데, 역시 매번 다같이 고생하고 즐거워했다. </p>
<div id="attachment_10132"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05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33.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33.jpg" alt="그림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웹자보 " title="그림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웹자보 " width="195" height="276" class="size-full wp-image-10132" /></a><p class="wp-caption-text">그림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웹자보 </p></div>
<div id="attachment_10133"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354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43.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43.jpg" alt="그림  폭우 속 진행된 야외 스테이지. 뮤지션들과 팔당공대위 위원장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title="그림  폭우 속 진행된 야외 스테이지. 뮤지션들과 팔당공대위 위원장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width="344" height="230" class="size-full wp-image-10133" /></a><p class="wp-caption-text">그림  폭우 속 진행된 야외 스테이지. 뮤지션들과 팔당공대위 위원장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p></div>
<p>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올해엔 외부세력들이 스스로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물들이 빼곡하게 자라던 하우스는 이제 벌판이 되었고 간간이 큰 흙무덤과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작년 12월 시공사의 공사시도를 겨우 막아낸 것 말고도 올초에는 지역발전협의회의 ‘4대강 사업 적극 찬성’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에 잔뜩 붙어 분위기가 안 좋았다. 농부들은 이들과 대화를 위해 밤낮없이 긴급회의를 했다. 이런 일들에는 외부세력들이 별 수를 쓰지 못했다. 2년 넘게 주말마다 함께 일하고 놀고 사고를 치며 보내왔는데도 이런 문제에는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그간 외부세력들이 해왔던 판들을 다시 열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우려 속에 잘 시도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아직 한계가 명확한 일들이었던 것일까. 아직 이 문제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 무렵 외부세력들은 답답한 마음을 한 켠에 가지고 일요일마다 늦은 오후나 밤에 모여들어 밥을 먹고 얘기를 풀어갔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갈 것인가. 봄에 우리가 이곳에 연대하는 길은 농사가 첫째인데 이에 대해 올해는 적극적인 고발조치가 이뤄질 게 예고되고 있었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농부들이 고발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실제로 지금 그렇게 되었다). 농부들도 외부세력들도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떡이나 김 등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p>
<div id="attachment_10134"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89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53.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53.jpg" alt="그림  외부세력들의 모임. ‘사랑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title="그림  외부세력들의 모임. ‘사랑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width="279" height="189" class="size-full wp-image-10134" /></a><p class="wp-caption-text">그림  외부세력들의 모임. ‘사랑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p></div>
<div id="attachment_10135"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92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63.jpg" rel="lightbox[1012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63.jpg" alt="그림  제작년, ‘4대강포기배추’ 수확" title="그림  제작년, ‘4대강포기배추’ 수확" width="282" height="211" class="size-full wp-image-10135" /></a><p class="wp-caption-text">그림  제작년, ‘4대강포기배추’ 수확</p></div>
<p> 일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도모되었다. 우리가 두물머리에서 무엇을 하든, 이제는 민폐인가 아닌가는 더 이상 따질 상황이 못 되었다. 봄은 왔고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처음에 팔당공대위에서 이런 형태의 농사를 ‘명랑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고, 그 다음해는 ‘시민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는데 이번엔 주체가 바뀌었다. 먼저 들어온 외부세력들이 나중에 올 외부세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 불법이라고 고발당하더라도 그냥 농사 지을 사람, 모이시오.’하고  몇몇 외부세력들은 이미 포트에 씨앗을 넣어 기르고 있었고 제작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에코토피아도 늦지 않게 씨를 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소식이 퍼지자 천주교농부학교가 아예 두물머리의 한 땅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농토로 삼아버렸다. 녹색당은 작년에 농사짓던 곳에 뿌려둔 것들이 있어 새로운 곳으로 밭을 이전하는 문제를 고심하다가 그곳과 새로운 곳에 동시에 밭을 갈았다. 그러는 와중에 소식을 들은 여러 그룹들과 지역의 후원세력들이 이 땅을 차곡 차곡 점거하기 시작했다. 4월과 5월, 그렇게 조금씩 땅들이 채워지고 모내기를 앞둔 지금은 넓고 황량했던 빈 들이 작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p>
<p> 정부가 경작을 불법화한 그 땅은 아무리 공무원들이 들어와 말뚝을 박고 띠를 둘러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 그룹들의 밭이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두물머리가 밭으로 지속되는 것을 바랄 뿐이다. 제발 더 이상 ‘국가가 하는 사업이니까’, 또는 이미 다른 4대강 사업 구역들이 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때문에, 라는 말로 두물머리에 억지스럽게 자전거 도로를 놓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p>
<p> 3년간의 좌충우돌 민폐작렬 연대 속에서 외부세력들은 점점 더 뭉쳐지고 다양한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기 보다는 일을 저지르고 그걸 헤쳐나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작년에 두물머리를 대안연구단에서 생태습지, 자전거도로와 함께 유기농교육이 가능한 농장, 치유농장 등을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는데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미 각자의 방식대로 두물머리 마을을 가꾸고 있는지 모른다. 복잡한 갈등과 정부와의 신경전으로 피곤이 쌓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최대한 무시하기로 한다. 외부세력들은 지금 치유와 휴식과 즐거움을 최대한 누릴 방도를 매주 모여 궁리하고 있다.</p>
<p> 광고 한 마디. 이번 주 일요일, 27일에는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모내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주에는 이때 내갈 국수를 위해 들판에 심은 열무를 뽑아 200인분의 열무김치를 담궈 놨다. 오전10시부터 저녁 때까지 모내기 하고 놀고 먹고 노래하고 놀 것이니 도시락을 싸들고 오시길. 두물머리와 외부세력들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http://cafe.daum.net/6-2nong 에 들어와서 둘러보시고, 에코토피아가 궁금하다면 http://8dang.jinbo.net 에 들어가 보시라.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의 소식을 꾸준히 받아보고 싶다면 http://riverun.org/farm 에서 밭전위원 등록을 하면 된다. 그럼, 언제고 두물머리에 한 번 방문하여 함께 씨 뿌릴 날이 있기를 기도하며.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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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건씨의 은밀한 사생활’을 내리면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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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May 2012 05:19:23 +0000</pubDate>
		<dc:creator>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dc:creator>
				<category><![CDATA[활보일기]]></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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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미 독자분들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얼마 전에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세분께서 수유너머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활보일기’관련하여 간담회를 요청하셨기에 약속 후 방문하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만남 이전부터 어떤 낌새를 채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동건씨를 비난한 장애인분이 계셨습니다. 동건씨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글의 내용들을 다 알고 있으며, 그 내용이 동건씨의 이야기임을 이미 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미 독자분들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얼마 전에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세분께서 수유너머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활보일기’관련하여 간담회를 요청하셨기에 약속 후 방문하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만남 이전부터 어떤 낌새를 채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동건씨를 비난한 장애인분이 계셨습니다. 동건씨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글의 내용들을 다 알고 있으며, 그 내용이 동건씨의 이야기임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건씨가 어떤 정신으로 집필을 허락해줬냐며 비난하셨습니다. 제가 ‘활보일기’를 쓰는 것에 크게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이용자는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어난 사태에 대한 스트레스라기 보단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인 듯 보였습니다.</p>
<h4>글을 내린 가장 결정적 이유</h4>
<p>활보일기를 쓰면서 동건씨에게 동의를 구했었습니다. 이용자의 사생활 차원에서 동의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처음 이용자에게 글을 쓴다고 했을 때에는 이용자는 실명으로 글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의 비밀스러운 것들 또한 쓰겠다고 말하였고, 대화 끝에 가명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글을 쓰고 난 뒤 이용자에게 보여주고 게시하였습니다.</p>
<p>가명을 쓰면서 간과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장애인분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부분은 협소한 만큼 또 밀접하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가명을 썼음에도 동건씨가 누구인지 동건씨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p>
<p>지금 생각하면 크게 잘못한 일인데, 동건씨와 함께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무수히 많으며, 글을 하나하나 쓸 때 마다 그들에게 모두 동의를 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쓴 까닭에 동건씨의 옛 연인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글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부분입니다.</p>
<h4>남근중심적 장애남성의 성권리 문제가 가장 복잡한 문제는 아닐까</h4>
<p>저는 동건씨의 활동보조를 하면서 동건씨의 성욕과 그것이 해결될 수 없는 사회적 조건들이 장애인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느껴졌었습니다. 동건씨가 주장하는 ‘섹스할 수 있는 권리’는 자칫 ‘인권’이라는 추상적 단어로 가려질 수도 있을 구체적 권리로 느껴졌었습니다.</p>
<p>활동가분들께서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가 남근중심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이렇게 표현된 부분들이 장애남성 일반의 인식으로 비춰져서 독자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형성시킬까 우려하셨습니다. 저는 활동보조인 일반을 대표하지 못하며 동건씨 또한 장애인 일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장애라는 것은 그 다양함 만큼이나 그 누구도 대표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돕는 활동보조인 또한 그 누구도 대표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활동보조인이 쓰는 글, 혹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쓰는 어느 글 무엇 하나도 일반성 혹은 대표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장애문제에 대한 일반성은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듯도 합니다.</p>
<p>하지만 그 구체적 개별성 안에서 대표될 수 없는 문제가 무시되어야 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동건씨의 성 문제는 그것이 일반적이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관련된 문제의 창고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장애여성의 성문제까지 언급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는 그러한 경험도 성찰도 없습니다. 장애남성의 성에 한정할 때, 그 문제의 복잡합은 남근중심적이지 않은 남성보다, 남근중심적 남성이 더 복잡해 보입니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 신체의 다른 부위로 성감대가 옮겨간 남성의 경우 성매매 보다는 안마서비스를 통해 성욕을 해소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런데 성감대의 측면에서는 남근중심적 남성의 남근과 비남근중심적 남성의 특정 신체는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특정 신체를 자극하여 쾌감을 얻는다는 의미는 ‘안마’와 ‘성매매’가 동일하지만, 남근중심적 남성은 ‘성매매’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욱 비난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섹스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기 힘든 당사자가 바로 남근중심적 욕망을 가진 동건씨 같은 남성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p>
<h4>어떻게 이야기를 하나</h4>
<p>저는 활동보조 노동자로서 글을 쓰길 원합니다. 하지만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장애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인의 활동에 대한 조건이 되어주는 노동의 특성상, 노동 이외의 조건들에 대해서 또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모든 조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활동보조 노동자로서의 고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활동보조인으로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제 스스로가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p>
<p>저는 이용자에게 활동보조를 해줄 때 활동보조인이며, 활동보조인은 어떤 행위의 주체가 아니며 아니어야 합니다. 항상 을의 지위에 있으며 있어야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한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장애인이용자를 침묵하며 관찰하는 그 시점에 저의 노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자에 대한 가치 판단을 표현하지 말 것이 요구되면서도,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p>
<p>활동보조일을 하기 이전에는 장애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었습니다. 저는 공부도 해야하고 노동도 해야하고 제 노동에 대한 성찰도 해야합니다. 요즘 들어 저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더욱 궁금해 합니다. 저에게 요구되는 당위가 저에게 기대될 만한 것일 때 그 말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대상화의 문제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비판의 대상이 됨으로써 어떤 논의를 이끌어내는 발제자의 역할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저는 아마도 대상화와 고백을 오가는 글을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질책 바랍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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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행숙, 다정함의 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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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3 May 2012 01:19:54 +0000</pubDate>
		<dc:creator>은유</dc:creator>
				<category><![CDATA[올드걸의 시집]]></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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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만득귀자. 늦게 얻은 귀한 자식이 있네. 예전에 어느 역술인이 사주를 풀면서 한자로 써주었다. 표현이 하도 예스러워 신선했다. ‘늦게’라는 시간은 주관적이다. 간절히 딸을 원하다가 첫 아이 낳고 6년 만에 가까스로 만났으니 내게 너무 늦은 자식인 건 맞다. 주변 엄마들을 보아도 둘째 아이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나 역시 만득귀자를 보노라면 거의 부처님 수준의 자비심이 발했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는 다정함의 세계. 품에서 내놓기 싫어 여섯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8932017972_1.jpg" rel="lightbox[101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8932017972_1.jpg" alt="" title="8932017972_1" width="150" height="249"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126" /></a></p>
<p>만득귀자. 늦게 얻은 귀한 자식이 있네. 예전에 어느 역술인이 사주를 풀면서 한자로 써주었다. 표현이 하도 예스러워 신선했다. ‘늦게’라는 시간은 주관적이다. 간절히 딸을 원하다가 첫 아이 낳고 6년 만에 가까스로 만났으니 내게 너무 늦은 자식인 건 맞다. 주변 엄마들을 보아도 둘째 아이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나 역시 만득귀자를 보노라면 거의 부처님 수준의 자비심이 발했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는 다정함의 세계. 품에서 내놓기 싫어 여섯 살까지 젖을 먹였다. 지금도 배불리 먹이는 일을 지상과제로 삼고 궁둥이 두드려가며 시골엄마처럼 키운다. 그렇게 일구월심 십년이 지날 즈음, 칭찬을 받게 되었다. &#8220;엄마는 참 좋은 부모 구나~&#8221; &#8220;나도 엄마처럼 좋은 부모가 될게~&#8221; 일일 삼회정도, 딸아이는 연극적인 대사와 함께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표정의 자애로움이란 유치원 원장님 포스다. 한동안 아빠는 착하다면서 남편을 격려하더니 점점 나를 더 많이 칭찬했다. 내가 뭘 그리 잘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던 대로 틈틈이 과일을 깎아주고 끼니를 정성스레 챙겨주었을 뿐이다.</p>
<p>급기야 상장까지 받게 된 건 작년 11월이다. 그날 낮에 후배를 만났다. 맛난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라서 고급한 한식집에서 고가의 전골을 먹었다. 내 배가 부르니까 저녁을 하기 귀찮았지만 기본반찬은 챙겨주었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구웠다. 삼치의 하얀 살이 보들보들 싱싱하고 간이 딱 맞아서 맛있었다. “엄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하더니 딸아이는 고양이처럼 한 마리를 뚝딱 먹어치웠다. 그렇게 맛있다니 아들도 먹일 겸 나는 생선을 한 입도 안 먹었다. 모성의 화신이라서가 아니라 낮에 먹은 고단백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아 그랬다. 그것도 모르고 칭찬에 눈 먼 딸이 묻는다. &#8220;오빠 주려고 엄마는 안 먹어?&#8221; &#8220;응.&#8221; &#8220;엄마는 참 자식을 아끼는구나&#8221; 토닥토닥. 매번 들어도 매번 웃기고 슬며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8216;왜 이래. 나 좋은 부모야&#8217; 으쓱했다. 저 지칠 줄 모르는 칭찬경영 마인드는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쓰고 딸은 책상에서 무언가를 했다. 구몬 수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겠지 했더니 잠시 후 나를 톡톡 친다. “엄마, 내가 상장을 줄게” 그 둥근 입술로 오물거리며 내미는 하얀 종이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냥 상도 아니고 &#8217;11월 자식사랑상&#8217; 이다. 나는 10월이나 9월과 다름없이 자식을 돌보았을 뿐인데 11월에 받았다. 마지막에 몇 학년 몇 반이 아니고 동호수와 자기 이름을 써넣었다. 이름 뒤에는 빨간 싸인펜으로 네모난 인장을 새겼는데 무려 &#8216;자식&#8217;이다. 막상 상을 받고 나니 &#8216;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8217;는 수상소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p>
<p>수상의 기쁨으로 한 해를 마감하고 다시 봄이 됐다. 나는 11월과 다름없이 엄마의 본분에 충실했는데도 딸아이의 칭찬이 줄었다. 시상제도도 유명무실해졌다. 딸아이는 4학년이 되자 아동 티를 벗고 언뜻 소녀 태가 났다.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베란다로 나가 속닥거렸다. 밤이면 어김없이 엄마 언제 오느냐며 울먹울먹 전화하는 일도 줄었다. 해지도록 놀이터에서 노는 딸에게 언제 올 거냐고 이제는 내가 전화를 거는 처지가 됐다. 관계의 역전 속에서 가정의 달 5월을 맞았고 ‘어버이 날’ 카드에는 예의 그 칭찬메시지가 가득했다. 큰 상을 한 번 받았더니 카드형식은 시시했다. 나는 딸의 사랑을 간구하는 가엾은 엄마가 되어, 요새 왜 그거 ‘좋은부모상’ 안 주냐고 묻고 말았다. 물어보면서도 상이름이 그렇게 진부하지 않았는데 싶어 갸웃했는데 “아, 자식사랑상?”한다. 딸아이는 요즘 자기가 소홀했다며 곧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제 귀가 길에 전화가 왔다. 준비물로 1.5리터 물병이 필요하니 사오란다. 알았다니까 “그럼 나는 그동안 자식사랑상을 준비할게” 한다.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가 돌고래처럼 솟구쳐 오른다. “엄마한테 상장을 안 준지 6개월이나 됐더라.” 삐뚤삐뚤 손 글씨 대신 의젓한 명조체로 만든 ‘5월 자식사랑상’이다. 위 어른은 6달 동안 항상 자식을 위해 많고 많은 노력을 하고, 항상 친절히 대했음으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p>
<blockquote><p>이곳에서 발이 녹는다<br />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br />
싶지 않다</p>
<p>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br />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p>
<p>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br />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br />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p>
<p>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br />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p>
<p>무릎이 반짝일 때<br />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p>
<p>-「다정함의 세계」</p></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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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학교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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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May 2012 23:15:01 +0000</pubDate>
		<dc:creator>박정훈 (다큐멘터리사진가)</dc:creator>
				<category><![CDATA[행복한 사진관]]></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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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쌈짓돈 모아서 만든 우리학교. 아무리 차별당하고 외면당해도 버릴 수 없는 단 하나, 우리학교만은 지켜야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국적이 될 ‘조선적’을 버릴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하나 된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249_1.jpg" rel="lightbox[1012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249_1-400x597.jpg" alt="" title="_DSC0249_1" width="400" height="597"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23" /></a><br />
<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435_1_1.jpg" rel="lightbox[1012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DSC0435_1_1-400x267.jpg" alt="" title="_DSC0435_1_1" width="400" height="267"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24" /></a></p>
<p>쌈짓돈 모아서 만든 우리학교. 아무리 차별당하고 외면당해도 버릴 수 없는 단 하나, 우리학교만은 지켜야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국적이 될 ‘조선적’을 버릴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하나 된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비록 일본 땅에 살면서 서너 대에 걸쳐 멸시와 설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자존심 하나는 우리가 다름 아닌 ‘조선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사용하고, 조선 사람이 조선말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요? 그 어떤 논리와 설득으로도 이것만은 변할 수 없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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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물머리 방문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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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May 2012 23:10:34 +0000</pubDate>
		<dc:creator>백납</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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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5월 15일 화요일 위클리 편집위원들이 두물머리에 방문했습니다. 두물머리에는 아직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물머리를 관통하는 자전거도로를 반대하며 불복종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기나긴 싸움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싸움에 지쳐 떠나가고 두물머리에는 이제 4명의 농부가 남았습니다. 4명의 농부들께서 시간을 내어주셔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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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01.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01-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1_18_01"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093" /></a></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40.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40-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1_18_40"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094" /></a></p>
<p>5월 15일 화요일 위클리 편집위원들이 두물머리에 방문했습니다. 두물머리에는 아직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물머리를 관통하는 자전거도로를 반대하며 불복종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기나긴 싸움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싸움에 지쳐 떠나가고 두물머리에는 이제 4명의 농부가 남았습니다. 4명의 농부들께서 시간을 내어주셔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p>
<div id="attachment_10092"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4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7_32.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7_32-400x711.jpg" alt="" title="2012_05_15_11_17_32" width="400" height="711" class="size-medium wp-image-10092" /></a><p class="wp-caption-text">두물머리에 있는 컨테이너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다.</p></div>
<h4>터무니없는 보상규모</h4>
<p>몇 년이 지난 기나긴 싸움기간 동안 많은 농민들이 보상을 받고 두물머리를 떠나갔습니다. 유기농가 11농가 중 7농가는 보상을 받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상규모가 터무니 없습니다.</p>
<blockquote><p>경기도가 농어촌발전기금을 통해 3년 거치 17년 상환, 금리 1.5%의 조건으로 농지구입자금을 융자해 주기로 하고 나갔습니다. 그저 마련해 준 것도 아니고, 빚을 지운 거죠. 2천평 구입한다고 하면 5억 정도 드는데, 한해 이자만 1천만원 돈입니다. 원금까지 갚으려면 답이 안 나옵니다. 물론, 여기만한 옥토는 구할 수도 없고.</p></blockquote>
<p>지금 두물머리는 양평군에서 제기한 경작금지와 공사업체에서 제기한 4대강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재시켜 보려는 법원 판사가 보상금 500만원에 합의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5억이면 생각해 보겠다며 코웃음을 칩니다.</p>
<h4>자전거 도로? 두물머리 대안이 더욱더 공익적인 것 아닌가?</h4>
<p>정부에서는 사업상 이유근거로 공익적 공원조성을 주장하다 보니, 농부 아저씨들도 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원은 농업공원입니다. 한강공원 같은 곳 이곳에 또 만들면 뭐하냐고 반문합니다.</p>
<blockquote><p>동네 주민들과 함께 마련한 ‘두물머리 대안’은 자전거 도로와 생태적인 공원정비, 그리고 기존의 유기농업이 공존하는 농업공원 형태입니다. 그런데 국토부와 경기도는 ‘농업’의 ‘농’자도 꺼내지 말랍니다. </p></blockquote>
<p>자전거 도로를 반길 것 같은 자전거 동호회가 오히려 두물머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전거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위해 두물머리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16_19.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16_19-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4_16_19"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02" /></a></p>
<h4>농업공원 새로운 대안모델로 각광받아</h4>
<p>농업공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농사를 즐겨 짓는 편집위원이 한마디 거듭니다. 그저 구경하는 공원이 아니라, 참여형 공원이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여형 공원에는 농사를 짓도록 하는 것이 썩 괜찮은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최근에 서울시에서 개장한 노들섬 텃밭도 그런 형태의 공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도 그곳에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노들섬에서 이루어지는 농사도 환경파괴 때문에 유기농으로 지어야 한답니다. 그러자 농부 아저씨께서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며 무릎을 탁 칩니다. 노들섬도 작은 섬인데 유기농이 환경을 파괴시킨다면 그것도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유기농이 환경파괴라 말하는 정부기관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합니다. 그는 법정 투쟁 중에 환경영향 평가가 있었다며 이야기를 계속합니다.</p>
<blockquote><p>유기농업이 강을 오염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데, 전문가에 따르면 그 오염 수치는 너무나 미약해서 수치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팔당대교 상박에서 강으로 유출되는 중금속이나 기름성분이 더 문제죠. 농사에 대한 증오가 노골적입니다. 조상중에 농사꾼한테 맞아 죽은 사람이 있나 생각할 정도로.</p></blockquote>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3_43_04.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3_43_04-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3_43_04"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00" /></a></p>
<p>언제부턴가 경기도는 지속적으로 유기농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홍보하는 환경 파괴 요소는 두물머리에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p>
<h4>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자체에 딴지를 거는 것</h4>
<p>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농부들이라 그런지 농업정책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귀농을 적극 권장 홍보하며 지원하고 있는데, 농사 잘 지어지는 두물머리에서는 농사지으면 왜 안 되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귀농도 결국 농사를 사유화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물머리는 생협과 연계하여 계획생산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p>
<blockquote><p>두물머리 유기농업은 젊어요. 40대 초반 젊은이들이 유기농업을 하려고 들어오고 있어요. 유기농업을 금지하고 기업에 팔아치우려는 건 한국 농업의 미래를 팔아치우려는 거에요.</p></blockquote>
<blockquote><p>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니깐요. 저치들 지방 땅값 올릴라고 저러는거 아냐?</p></blockquote>
<h4>사유화하는 국가 공익을 주장하는 개인</h4>
<p>두물머리 부지는 국가의 땅입니다. 농부들은 국가에 점용권을 부여받아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 점용권의 갱신은 매번 관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점용권 갱신 절차가 요식행위에 가까워서 최근에 이루어진 점용권 부여 기간은 무려 5년이었다고 합니다. 2007년에 이루어진 점용권 갱신 이후 만료기간은 올해입니다. 그래서 두물머리는 지금 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p>
<blockquote><p>공무원도 관습적으로 갱신되는걸 아는 거지요. 매년 하는게 귀찮으니까 최근에는 5년이나 해줬어요.</p></blockquote>
<p>옆에서 듣고 있던 편집위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어민들의 어업권도 이 같은 방식으로 사유화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 누구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점용권 부여로 통제하고 있던 것을 거대기업의 손에 넘기는 것이지요.</p>
<blockquote><p>우리는 애초부터 우리에게 없었던 사적 소유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공유지의 공적인 사용, 즉 유기농업의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다.</p></blockquote>
<blockquote><p>결국 국토부가 원하는 건 우리를 쫓아내고 친수구역특별법을 적용해서 두물머리를 기업에 팔아 치우려는 거에요.</p></blockquote>
<div id="attachment_10106"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4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52_13.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52_13-400x711.jpg" alt="" title="2012_05_15_14_52_13" width="400" height="711" class="size-medium wp-image-10106" /></a><p class="wp-caption-text">장애인 야학의 불복종 텃밭.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았다.</p></div>
<p>점용권이 다음 세대로 넘겨지는 과정도 공공적입니다. 농사짓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힘들게 된 사람이 함께 가면 공무원에게 가서 점용권을 넘겨지는 식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p>
<h4>싸움에서 이긴다면 두물머리는 어떻게 될까?</h4>
<p>싸움의 과정에서 이미 두물머리는 공공화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곳에서는 불복종 텃밭이라 불리는 여러 텃밭이 일궈지고 있습니다. 그 면적이 굉장히 넓습니다. 공무원들은 4명의 농부아저씨들을 대상으로 불법경작명목으로 고소장을 날리지만, 그들만으로 넓은 텃밭이 일궈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p>
<blockquote><p>저 넓은걸 우리 네명 이서 어떻게 다 한단 말이요? 함께 불복종 텃밭 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가족단위도 많아요. 이미 주말농장으로 공공적으로 이용되는 부분도 있어요. 사람들이 4명의 농사꾼만 싸우는 것 같이 보는데, 사실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기도 해요. 이미 두물머리는 4명의 것이 아니거든요. </p></blockquote>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51.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1_18_51-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1_18_51"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095" /></a></p>
<p>그들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두물머리가 사유화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2년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생명평화 미사를 드리는 천주교 신부, 수녀, 신도님들과 이번에 ‘밭전위원회’로 조직화된 젊은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p>
<blockquote><p>매일매일 미사를 드린다는게 엄청난 힘이 있더라구요. 젊은 친구들은 활력도 주고 실무적인 일들을 거의 다 도맡아 주고 있어요. 그들의 문화가 새롭고 신나고 힘을 줘요. 이 싸움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이곳과 단절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p></blockquote>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29_17.jpg" rel="lightbox[1009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2/05/2012_05_15_14_29_17-400x225.jpg" alt="" title="2012_05_15_14_29_17" width="400" height="225"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0104" /></a></p>
<p>싸움의 과정에서 이미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묶였습니다. 그들은 유기농사와 건강한 문화가 공존하는 두물머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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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면하지 않는 정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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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May 2012 23:10:34 +0000</pubDate>
		<dc:creator>이계삼</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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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다큐멘터리 영화 &#60;마이 스윗 홈(My sweet home)&#62;을 보았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법정 구속된 세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거기 나온 세 사람, 김창수, 김성환, 천주석 님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에 차창에 볼을 기대며 신록이 짙어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영화의 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다큐멘터리 영화 &lt;마이 스윗 홈(My sweet home)&gt;을 보았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법정 구속된 세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거기 나온 세 사람, 김창수, 김성환, 천주석 님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에 차창에 볼을 기대며 신록이 짙어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영화의 한 장면, 그들이 재판받으러 온 법원 뒤켠 나무그늘 아래 둘러 앉아 점심을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밥 한 그릇을 쓱싹 비운 천주석 씨가 ‘이번에 들어가면 담배 끊어야지’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구속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안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구속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설마 들어가게 되겠나, 이리저리 엇갈리는 불안한 마음들일 것이다. 들어가게될 거라고, 그렇게 말이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눅어질 것이다. 그런 그들의 불안한 점심상, 맨밥에 김치찌개를 설설 비벼 먹으며 웃고 떠드는 나무 그늘 아래의 밥상과 그들 위에 드리워진 짙은 신록, 저 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콘크리트 법원 건물.</p>
<p>선고 공판이 있기 직전, 아마도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는지, 카메라는 그들이 보내는 사회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비추어준다. 김창수 씨는 성남 단대동 주택공사 아파트 현장 앞에서 먹고 자면서 버티던 봉고차로 카메라를 데리고 간다. 김창수 씨는 셋방살이하던 사람이었다. 전세금이 올라 이사 기회를 놓치고 속절없이 재개발과 맞닦드리게 되었고, 의로운 심성의 그는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영화 곳곳에서 그가 중얼거리듯 뇌까리는 소망이란, 두 딸과 함께 살아갈 내 집을 갖는 것. 눈매가 얼마나 선한지 모른다. 최후진술 때, 할 말 다 해서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지만, 선고 공판정으로 들어가는 그의 다리가 약간 후들거리는 듯하다.</p>
<p>천주석 씨는 미싱일을 하면서 상도4동 재개발 지역에서 버틴 분이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미진 골목길과 점방을 그는 카메라와 함께 걷는다. 그리고 다 부서져가는 마을에서 끝까지 버티는 노부부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점방 앞에서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게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담배를 빼문다. 용산 대책위 연대사업부장 김성환 씨는 고향인 충남 무창포로 내려가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고 절을 올린다. 그리고 그들은 선고 공판에서 4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 도중에 재판정을 박차고 나와버린다.</p>
<p>분노, 분노, 그리고 슬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위태롭던 젊은날의 실존을 분노와 슬픔으로 지탱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서푼어치의 정의감인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라고 배웠기에,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기에, 의로움에 목말라하는 내 모습이 하느님의 진리에 근사하다는 믿음이 나의 분노와 슬픔을 정당화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고르지 않다는 것, 선하고 약한 것들은 늘 이렇게 아름다운데 언제나 패배하기만 한다는 것. 고호의 &lt;감자 먹는 사람들&gt;보다 더 한 아름다움으로 슬픔으로 육박해오는 그들의 밥상, 김치찌개, 맨밥, 호물호물 씹어넘기는 할머니와 입가심 사과 한 조각, 끔찍한 누명을 쓰고,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거쳐나온 이들에게 다시 펼쳐진 가혹하기 이를데 없는 수사와 재판, 과연 누가 심판을 받아야 하나, 누가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구속수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것인가. 선하고 약한 이들은 늘상 패배해왔었지, 이 비겁한 세상에 올라타 이들에게 채찍을 가하는 이들은 저들의 슬픔을 고통을 모르지, 절대로, 절대로 모르지.</p>
<p>‘스승의 날’이라고 아이들이 찾아왔다. 무직 백수로 지내니 좋으시냐고, 제법 컸다는 놈들이 옛 담임 앞에서 낄낄 댄다. 고3의 나날을 보내는 녀석들, 떡볶이 배불리 먹고 맥주 한잔씩 건배하고 난 뒤에 묵혀둔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 생각도 없고, 그냥 막연하고, 그냥 불안하다’며 풀이 죽은 녀석들이 뇌까리는 이야기는 결국 이 소리다.</p>
<p>내 삶을 지금껏 이끌어준 것은 김창수, 천주석, 김성환 씨 같은 분들, 그리고 이 아이들의 풀죽은 얼굴들이었다. 나는 이들이 좋다. ‘자기애’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 그들의 고통을 작게나마 나누어 겪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내 삶을 이끌어왔다. 세상의 속살을 알면 알수록, 세상이 감춘 비참과 야만의 더께는 두터웁기만 하고, 거기에는 제 살을 파먹는 흉측한 것들이 바글바글한다.</p>
<p>인생은 짧고 덧없다. 아름다움은 찰나일 뿐, 시간 앞에서 바스라진다. 영원한 것은, 약하고 힘없는 것들, 그들의 고통, 슬픔, 사랑과 우정, 이런 것들일 뿐. 나는 죽을 때까지 투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천주석, 김창수, 김성환, 이 세상의 죄를 대속한 저 헤아릴 수 없는 이름들을 부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p>
<p>나도 한몫 거들고 있는 밀양 송전탑 싸움이 6월8일 경으로 예정된 한전의 공사 재개를 앞두고 긴장된 상태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 내게도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성남 단대동 철거민 김창수씨가, 상도4동 철거민 천주석씨가 자기 동네도 아닌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라갔듯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저 79대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p>
<p>* 지난 1년간 보잘것없는 글쪼가리들을 읽어주신 &lt;수유너머 위클리&gt;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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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뉴요커는 어디에?(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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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May 2012 23:10:34 +0000</pubDate>
		<dc:creator>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uyunomo.net/?p=10088</guid>
		<description><![CDATA[뉴욕에 대한 첫 인상. 야경사진 찍을 때나 쓸모 있는 높은 빌딩과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고도 비만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과 의외로 거리에 백인들이 드물다는 것. 하긴 평일 대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이란 관광객 아니면, 실업자일 확률이 높지. 혹은 그가 일용 계약직 육체노동자일 순 있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쭉쭉빵빵한 백인 뉴요커들은 다 어디에 숨었을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뉴욕에 대한 첫 인상. 야경사진 찍을 때나 쓸모 있는 높은 빌딩과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고도 비만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과 의외로 거리에 백인들이 드물다는 것. 하긴 평일 대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이란 관광객 아니면, 실업자일 확률이 높지. 혹은 그가 일용 계약직 육체노동자일 순 있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쭉쭉빵빵한 백인 뉴요커들은 다 어디에 숨었을까,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p>
<p>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저마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거였다. 사철  세일을 하는 메이시 백화점은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체급의 아줌마들로 언제나 시끌벅적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뉴요커들은 5th AV 니먼 마커스를 사르락 거리며 돌아다닌다. 42가에 있는 허름한 가게에서 1달러짜리 피자 한쪽을 사기 위해 남미의 이민자들이 긴 줄을 서고 있을 때, 그들은 어퍼 이스트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있고, 그들이 센트럴파크를 정원 삼아 링컨센터와 메트 박물관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 맥시코와 푸에로토리코, 아프리카 말리와 중국의 쓰촨성, 한국의 울산에서 온 이민자들은 맨해튼의 바깥, 브롱스와 퀸즈, 브루클린으로 나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같은 뉴욕시티 안에서 그들은 한 번도 서로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맨해튼은 뉴욕의 강남이다. 물론 강남보다 훨씬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관대하며, 어느 정도는 가난한 자들과 이방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제법 있지만.</p>
<p>  뉴욕의 문제 혹은 흥미진진함은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대단히 섬세하고 복잡하게 그리고 완고한 방식으로 계급적 선분이 존재한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한편에서 이 계급적 선분은 대단히 투명하고 단순하게, 누구나 다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어떤 장소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면 된다. 이곳에서 관공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서비스 공간은 계급적 혹은 화폐 지불 능력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백화점은 신세계든 롯데든 현대든 다 비슷한 컨셉을 갖고 운영되는 상점일 뿐이다.(물론 그것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반면, 뉴욕의 백화점에는 어떤 등급이 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메이시 그보다 조금 비싼 블루밍데일, 그보다 조금 더 비싼 싹스 핍스 그 위에 니먼 마커스 하는 식이다. 과시적 욕망이 강한 한국의 된장녀라면  빨간 별이 선명한 메이시스 쇼핑백은 부끄러운 것으로, 화려한 서체의 니먼 마커스 쇼핑백(갤러리아 백화점 서체와 흡사한)을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점에선 나름 합리적이고 한편으론 또 수동적인 뉴욕의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지불능력을 넘어서는 장소(혹은 낯선 장소)에는 잘 가지 않는다.  </p>
<p>  표면적으로 미국(특히나 뉴욕 땅에서)에서 소수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차별하는 것만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범죄도 없다. 아동 관련 범죄가 가장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취급되며, 성적 소수자나 이민자, 타 인종을 차별하는 모든 언어적 신체적 표현은 사회적, 법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흑인들이 오랜 시간동안 피 흘리며 쌓아온 것들,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중국인들이 목숨과 바꾼 것들, 게이들, 여성들, 장애인들이 악착같이 싸워서 만들어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두께만큼 법 혹은 사회는 관용을 베푼다. 그리고 법과 사회가 그들에게 가장 관용적일 때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지갑이 활짝 열려 있을 때이다.</p>
<p>  누군가 중증장애를 가진 아프리카 출신 게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가 뉴욕에서 살아가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한. 그의 삶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은행 잔고이다. 청소년기에 유학을 와서 마흔이 다 될 때까지 뉴욕에서만 살았다는 한 한국인 여성은 이곳에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bmw를 타고 다니며 고급호텔 레스토랑을 주로 이용하고 오페라 공연 관람이 취미인 사람을 차별대우 할만한 곳이 미국 땅엔 별로 없다. 화폐의 소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가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게이든 세 살 먹은 아이든 간에. 물론 어느 사회에나 내부적으로 더 들어가면, 직업이든 학벌이든 집안이든 어떤 척도로 다시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갈음하는 배제의 선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표층의 차원에서 그것들을 선명하게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p>
<p>  때로는 화폐의 사용방식 혹은 ‘취향’의 실천이 다시 사람들을 구분하고 구별하는 증거로 활용된다. 맥도널드 티비 광고 모델은 언제나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이다. 자동차 아우디의 광고 모델은 매너 좋아 보이는 중년의 백인남이고, 현대차 모델은 흑인이거나 남미인이다. 지하철 내벽에 붙어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의 광고 모델은 그야말로 인터네셔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진짜 뉴요커는 없다. 광고는 어떤 주류적인 현상을 반영하고 타겟이 될 만한 소비자층에 친숙한 모델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특정 인종과 계급, 성별, 연령에 대한 이미지를 선도하고 고착화시킨다.</p>
<p>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맨해튼 거리에서 마주치는 고도 비만인들 중 백인-뉴요커는 얼마나 될까? 당연히 별로 없다. 우리가 상상하는 뉴요커의 이미지 속에도 ‘비만’은 제외되어 있지 않나. 그런데, 의학적 질병이 아닌 생활-비만은 그가 어떤 사회적 위치와 상태에 놓여 있는지 보여주는 샘플이기도 하다. 맨해튼에 있는 보통 식당에서 점심 한 끼 먹으려면 팁을 포함해서 10-15달러 정도 드는데,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 메뉴를 먹는다면 약 5달러 남짓. 열량은 후자 쪽이 훨씬 높다. 또 따로 시간을 내서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거나 강변을 따라 조깅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100미터도 걸을 일이 없는 것이 이곳의 생활인데, 그것조차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다양한 문화적 취미를 향유하도록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방법 또한 티비 앞에서 팝콘 바구니의 바닥을 확인 하는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노동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스크레스까지.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조건상, 육체노동을 하는 저학력의 가난한 비백인일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은 높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므로 비만은, 한 개인의 무능력이나 나태에 관한 것으로만 전가시킬 수 없는,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노동-소비의 문제 전반에 어떤 권력의 기형적 힘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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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명적 오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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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May 2012 23:10:33 +0000</pubDate>
		<dc:creator>고병권(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편집실에서]]></category>
		<category><![CDATA[11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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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두물머리밭전위원회. 정부의 ‘4대강개발’로 경작권을 박탈당한 두물머리(양수리) 농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무심코 ‘밭전’을 ‘발전’으로 읽습니다.‘개발’이나 ‘성장’, ‘발전’ 같은 말들이 오랜 세월 우리 눈에 씌여 있어서 일 겁니다. 뭔가 눈에 씌이면 바로 보고도 잘못 읽게 됩니다. 제 생각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속 ‘밭전’이라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두물머리밭전위원회. 정부의 ‘4대강개발’로 경작권을 박탈당한 두물머리(양수리) 농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무심코 ‘밭전’을 ‘발전’으로 읽습니다.‘개발’이나 ‘성장’, ‘발전’ 같은 말들이 오랜 세월 우리 눈에 씌여 있어서 일 겁니다. 뭔가 눈에 씌이면 바로 보고도 잘못 읽게 됩니다. 제 생각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속 ‘밭전’이라는 말은 우리의 어떤 치명적인 오독을 지적하기 위해 그렇게 있는 것 같습니다.</p>
<p>이름 그대로, 한강을 이루는 두 물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땅에 생겨난 작은 밭들. 지난 주 <위클리수유너머> 편집진은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어느 젊은 농부로부터 그 밭들이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근처에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당시 많은 토지들이 강제수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댐이 만들어지고나자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땅이 생겨난 겁니다. 물론 소유관계로만 따지면 하천에 생겨난 그 땅은 국유지가 분명합니다. 당시 강제수용으로 땅을 넘겼던 농부들은 새로 생겨난 땅에서 농사를 짓게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답니다.</p>
<p>그 말을 들으니 그 땅과 거기서 다시 경작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주 다르게 들렸습니다. 댐으로 상징되는 개발이 덮친 자리, 거기서 또 다시 생겨난 농지, 국가를 상대로 한 경작권 싸움. 대지를 둘러싼 ‘발전’과 ‘밭전’의 어떤 싸움이 정부와 농부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이 땅은 ‘당신들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니 ‘나가라’고 말합니다. 농부들은 이 땅은 ‘내 것이 아니’지만, ‘국가의 것이니’,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것’이니 ‘함께 농사짓자’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네 것이 아닌데 누구 맘대로 농사짓냐’고말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어떻게 이 땅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지를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거기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도로를 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수십년 간 이어오던 유기농 농사를 이어가고 오히려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설을 만드는 게 나은지.</p>
<p>2006년에 화성시에 갔을 때 ‘화성호’가 만들어지던 이야기를 어민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천과 마찬가지로 갯벌도 공유수면법상 국유지에 속합니다. 어민들은 거기서 어업을 할 수 있는 면허로서 ‘어업권’을 갖고 있을 뿐이지요. 정부가 어업권 갱신을 불허하고 어민들 모두를 쫓아내면서 내세운 원리와 방식도 이번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때 들었던 한 어민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공무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금까지 국가의 것에 빌붙어서 그만큼 먹고 살았으면 됐지, 뭘 더 해달라는 거냐”고. 마치 국가가 자기 바깥에 있는 제3자처럼 느껴졌답니다. 국민이 국가에 빌붙어 먹었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할까요.</p>
<p>국유 내지 공유는 사적독점을 막고 공적인 이용을 위해 정부가 관리하는 자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국유는 종종, 요즘에 특히, 행정부의 소유, 그것도 그것을 장악한 일파의 소유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들이 ‘민영화(사유화)’의 이름으로 많은 공공재산을 개인에게 팔어넘겨버립니다. 마치 국가가 사적 개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벗어났습니다만, 두물머리 농민들은 단지 법을 어겨가며 공공재산을 사적 이득을 위해 탈취하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이들이 경작권을 승계해서 농사를 지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오히려 이 땅의 공공성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겁니다.어쩌면 많은 공공재산, 국가재산을 팔아치우고 사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정부를 장악한 일군의 사람들과 그들과 결탁한 개발업자와 투기업자들입니다. KTX민영화나 인천공항 민영화와 같은 직접적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4대강개발처럼 여러 공적 자원들이 개발이나 투자에 대한 참여 형태로 민간 건설자본이나 부동산투기자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두물머리 농민들의 농사짓기 투쟁은 우리에게 ‘공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p>
<p>‘발전’이 아니라 ‘밭전’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보입니다. 정부는 친환경농업육성법까지 재정해가며 한때 생태농업의 모범처럼 치켜세웠던 두물머리 유기농업단지를 한강오염의 원천이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공공재산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두물머리의 밭들은 오염과 욕심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밭들은 지난 수십년 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발전주의 세력(우리를 만난 농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가 농부들을 탄압하는 걸 보면 농업에 무슨 원한이 있는 사람들 같다”고)들의 눈에는 낙후 산업으로서 농업이 갖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두물머리 농부들에게 “관광농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꺼풀에서 ‘발전’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강을 마구 파헤치면서도 ‘친환경녹색개발’, ‘친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밭전’을 ‘발전’이라고 읽는 우리의 체계적 ‘오독’ 때문일 겁니다.</p>
<p>두물머리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길을 놓으면 ‘친환경’이고 거기서 농작물이 자라면 ‘반환경’이라는 그 무서운 오독에 반대하기 위해, 두물머리에서는 지금 네 농가가 필사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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