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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eekly 수유너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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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58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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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재진행형의 여성국극: 정은영의  (20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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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5:05:58 +0000</pubDate>
		<dc:creator>이솔</dc:creator>
				<category><![CDATA[이솔의 공공공(公共空)]]></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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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그러나 나는 든든한 아군을 만났다. 작가 정은영이다. 올해 4월 6일 페스티벌 봄에 [마스터클래스]라는 연극을 연출한 정은영. 그는 한 가지 개념과 주제를 두고 다년간 공들이면서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마스터클래스]를 보고 나오는 길에 왠지 나 또한 나만의 방법론을 서서히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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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color: #0000ff;">며칠 전 밤을 하얗게 세면서 루쉰의 &lt;차개정잡문&gt;(1935)을 읽은 탓일까? 오늘은 솔직한 문체로 집필하고 싶다.</span><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1"><span style="color: #0000ff;">[1]</span></a><span style="color: #0000ff;"> 2012년 여름부터 2013년 가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공공성과 미술에 관한 고찰을 그때그때 정성껏 공유할 계획으로 시작한 &lt;위클리 수유너머&gt; 의 기고는 격주는커녕 한 달에 한 번꼴로 겨우 완성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문화계 전반에 녹아든 공공성의 개념이 내가 그동안 미국의 진보적인 교수들에게 배워왔고 가슴으로 느꼈던 공공성과는 어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되면서 나 자신의 학문 또는 비평의 깊이에 대한 회의가 든 것일까.</span><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2"><span style="color: #0000ff;">[2]</span></a><span style="color: #0000ff;"> 혹은 한국의 지역적으로 특수한 공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답답할 정도로 더딘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일까. 어쩌면 일 년의 기간을 두면서 집필을 강행한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span></p>
<p><span style="color: #0000ff;">그러나 나는 여기서 포기하는 대신 다년간 지속할 공공성과 미술에 대해 고민하는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고민을 두고 비평가의 사치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숨쉬기조차 힘겨운 빠른 순환을 강조하며, 프로덕션의 완성도, 오프닝의 성공 여부, 전시참여의 빈번도를 작가의 비평적 태도나 끈질김보다 더 중요시하는 한국 동시대 미술계에서, 어떤 한 가지 성찰을 수년에 걸쳐서 지속하는 것은 요즘 미술계의 페이스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든든한 아군을 만났다. 작가 정은영이다. 올해 4월 6일 페스티벌 봄에 &lt;마스터클래스&gt;라는 연극을 연출한 정은영. 그는 한 가지 개념과 주제를 두고 다년간 공들이면서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lt;마스터클래스&gt;를 보고 나오는 길에 왠지 나 또한 나만의 방법론을 서서히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얻었다.</span></p>
<p>여성국극은 국악의 창(唱)과 무(舞)에 대중성을 가미한 창극(일종의 뮤지컬)으로써 특히 6.25 전쟁과 그 직후 영화 산업이 잠시 주춤했을때 제일 주목받았던 근대대중문화이다.<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3">[3]</a> 그 시초는 1948년 봄 당시 최고 국악인 중 박록주, 박귀희, 김소희 등의 주도 아래 약 30여 명의 여성 국악인들이 남성 위주의 국악판에 대한 봉기를 들면서 창설한 단체가 여성 국악 동호회였고, 창립기념 공연으로 그해 가을 모든 역할을 여성이 맡은 &lt;옥중화&gt;를 선보인 것이 여성국극의 첫 공연이다.<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4">[4]</a> 그 후 50년대 번영기에는 십수개의 여성국극단체들이 활동했고, 주로 한반도의 역사, 설화나 번안극에서 영감을 받은 신파적 시대극으로 레파토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한때는 넓은 관객층과 폐물이나 혈서를 보내올 정도의 열성팬들을 거느리던 여성국극이1960년대에 드러서자 여러가지 복합적 이유로 그 맥을 잇지 못 한다. 후세양성 없이 회생 불가능한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은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주인공이었고 지금은 이미 예순, 칠순을 넘긴 제 1, 2세대 여성국극인과 그들의 예술이 정은영의 &lt;여성국극 프로젝트&gt; (2008-현재)에 담겨있다.<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5">[5]</a></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size-large wp-image-11462" title="1"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15-520x325.jpg" alt="" width="520" height="325" /></p>
<p>&lt;여성국극 프로젝트&gt;을 얘기하기 전에 여성국극을 둘러싼 “대항적 공중 counterpublic”의 성격을 작품의 배경으로 펼쳐보고 싶다. 여성국극의 문화사적 혹은 여성사적 의의를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공공사사公公私私’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우리는 종종 나라, 마을, 종가라는 이미 구축되어 개인주체를 구속하는 제도를 ‘공’이라는 영역에 놓는다. 그리고 그의 반대편에 감성, 열정, 사랑, 정념 등의 감정적 매개체나 이런 표현방식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사’적이라 부르길 서슴지 않는다. 공公을 미덕으로 여기고 사私를 죄악시여기는 태도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신체적, 사회적 젠더를 언제나 사적인 영역으로 몰아내고자 하는 기이한 전통 또한 낳은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전복하려면—특히 한국이라는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의 폐단을 뼈저리게 겪어온 민족국가에서—공공성이나 공공공간에 대한 인식을 재정비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 미술/예술사에서 공공성에 관한 담론은 막연히 공공장소public space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천을 가리키거나 사적인 것의 반대말로서의 공공이 아니라 한 공간이나 집단이 형성하는 공공성publicness과 사회성sociality으로 초점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민, 시민, 민중, 대중 등 마치 공공성이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 같은 광범위한 주체와 관련된 모든 행위와 공간이 공공성을 띤다고 쉽사리 가정하는 대신에,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의 형성과정과 그 형성을 격려하는 상황과 공간을 (재)발견하고 인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p>
<p>이런 맥락에서 여성국극이나 정은영의 작품이 예술과 공공성에 대한 담론에 일조한다고 믿는다. 여성국극은 남존여비 유교문화에서 근현대의 이성애 중심의 규범 모델로 변동한 한국사회에서, 젠더적 역할분담이 지극히 정돈된 상태를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전도/도착pervert하면서 문화 사회적 젠더 (다시)만들기에 참여한 예술공동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국극의 연극적 언어나 국극인들의 사생활과 무대 생활 간의 유연성—혹은 삶과 무대의 상호작용이나 혼재성—을 살펴보면 대항적 공공성의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p>
<p>여기에서 관건은 바로 ‘이런 복잡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거나 사라지기도 하는 상호주체적 공간에 관한 작가적 실천이 어떤 형태를 띨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국극이라는 이미 실존하는 문화예술 대항공중적 커뮤니티에 관해 정은영 작가는 어떤 미술실천을 생산하고 있는가? 작가는 한편으로는 여성국극의 젠더 생산의 표현방식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여성국극 역사와 여성국극인의 개인사에 (사회학적, 인류학적, 개인적) 관심을 표현한다. 2009년부터 여성국극의 리허설 광경을 기록 편집해서 비디오로 보여주거나 여성국극 전성기 기록 사진에 이들의 구술을 텍스트로 달아 평면작업을 만드는 데 주력을 기울였다. 2009년과 2010년에 완성한 &lt;분장의 시간 The Masquerading Moments&gt;, &lt;뜻밖의 응답 The Unexpected Response&gt;, &lt;무영탑 Directing for Gender&gt;등은 무대 전에 분장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는 영상이나 2세대 배우 이등우를 섭외해서 남자역할을 시범하고 1세대 배우 겸 연출자 김혜리를 초청해서 무영탑의 남자주인공 아사달의 ‘남자다움’에 대한 설명해보이는 영상이다.</p>
<p>어찌 보면 소극적인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듯하다. 사실 여성국극인들은 ‘(미술)작가적 개입artist intervention’이 전혀 불가능한 공동체일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작가적 개입은 가깝게는 믹스라이스가 마석 이주노동자들과 협업을 지속한 예나 멀게는 스페인 작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가 2001년 베니스의 비엔날레를 위해서 130명의 이주노동자 노점상인들의 머리를 염색한 작업 등의 포함하는 넓은 범주의 미술실천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 작업이 지식인/노동자나 작가/일반인의 이분법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여성국극이라는 커뮤니티와 정은영 작가의 관계는 작가적 개입이란 말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불가능 속에서 작가는 여성국극인의 삶으로 다가가 그들이 들려주는 연기 방식에 대한 구술을 비디오로 기록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 같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size-large wp-image-11463" title="2"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22-520x346.jpg" alt="" width="520" height="346" /></p>
<p>그런데 여기서 작가의 비디오와 사진 작업은 작가 노트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적 호소와는 거리가 먼 것이 눈에 띈다. 작가 노트의 시작 부분을 잠시 살펴보자.</p>
<blockquote><p>약 일년 전, 마침 여성국극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한 친구의 도움으로 여성국극계의 역사적 인물들을 가까이에 서 마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일상적 공간에서 만나게 된 이 전설적인 배우들은 영락없는 ‘할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상과 무대의 구분이 그리 명료하지 않은채로 종종 ‘멋있는 젊은 남역’에 그들을 동일시하곤 했다. 더우기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로서의 강력한 정체화와 향수는 흐르는 세월에 대한 원망이 짙게 뭍어나기도 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연기자로서의 자부심과 무대를 향한 뜨거움, 차마 7-80대 고령의 노인들의 이야기라 믿을 수 없는 탈규범적이고 비전형적인 유쾌한 언어들의 유희는 내 상상력의 한계치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것이어서 나는 그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마다 마치 조증환자처럼 달뜬 기분에 허우적댔다.</p></blockquote>
<p> 나도 작가처럼 여성국극의 “탈규범적이고 비전형적인 유쾌한 언어들”이 주는 “유희”와 “조증환자처럼 달뜬 기분”을 느끼고 싶어졌지만, 이러한 감정은 &lt;여성국극 프로젝트&gt; 비디오에서 얻기가 어려웠다. 개념적으로 다듬어진 사유가 배우들과의 거리를 느끼게끔 유도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런데 여성국극의 혹은 국극배우들의 정념적affective 언어를 “달뜬”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작가 혹은 나같은 관객들—의 몫이 아닐까? 그리고 작가가 이런 ‘할머니’ 배우들의 감정적, 신체적, 운율적 언어를, 그리고 퍼포먼스를, 미술적 언어로 재생산해서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미술작가가 미술 외 분야의 다른 이들과 협업을 추진하는 작업실천은 협업 그 자체의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협업의 형식과 과정, 그리고 관객의 수용에서 작품의 성격을 엿볼 수있다.      </p>
<p>활발한 활동 당시 여성국극은 크게 두 종류의 관계—국극단 배우들 간의 자매, 모녀, 때로는 동성애적인 관계, 그리고 배우들과 여성열성팬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성sociability에서 새로운 소통의 언어를 창출하며 여성국극 공동체를 둘러싼 대항적 공공성을 형성했다. 아마도 오늘날의 관객을 팬으로 만들면 정념적 소통을 감흥 할 수 있는 기회가 관객에게도 오지 않을까? 그런데 바로 그 기회를 2013년 4월 &lt;마스터클래스&gt; 공연에서 맛볼 수 있었다.</p>
<p>정은영의 &lt;여성국극 프로젝트&gt;는 2012년을 계기로 한 차례의 방법론의 전환을 겪는데, 이는 작가가 연극이란 매체를 통해 관객과 여성국극인의 만남을 주선하면서부터이다. 2012년 겨울 문화역서울 284에서 한차례의 시도를 거친 후, 조금 더 다듬은 형태로  2013년 4월 &lt;마스터 클래스&gt;를 연출했다. 연극이란 매체는 정은영 작가에게는 낯설었지만, 조영숙 이등우 등의 배우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영토였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들은 진정으로 황홀한 경험을 선사하였고, 서강대 매리홀 소극장을 빼곡 채운 100여 명의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의 소리, 몸짓 하나 하나에 집중하다가도 관중으로서 ‘추임새’를 넣어야 할 대목에서는 목청이 떠나갈 정도의 환호로 반응을 하며 그들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1시간이 넘는 연극이 그렇게 짧게 느껴졌을 때가 없었다.</p>
<p>1부에는 칠순이 넘은 제1세대 배우 조영숙이 자신의 삶, 여성국극의 역사, 그리고 여성국극의 몇 대목을 직접 선보였다. 국극무대에서 삼마이(해학의 미를 발산하는 조연배우)를 주로 맡았었고 몇 년 전 중요 무형 문화재 79호 발탈 보유자로 인정된 조영숙은 특유의 재담으로 일인 연극을 이끌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예전 사진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춤사위를 보일 때는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관객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배우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데, 이때 그의 뒷편에 걸린 화면에는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이야기에 해당하는 사진—예를 들어 사범 고등학교 시절에는 소녀 때 사진, 임춘앵 극단에서의 생활을 묘사할 때는 극단 단체사진—을 결합하며 배우의 (춤과 연기를 통한) ‘지금’과 (이야기와 시각적 보조를 통한) ‘그때’를 관객에게 동시에 전시한다.</p>
<p>그런데 현재와 과거의 대비는 뒤에 걸린 스크린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조영숙의 회상 대목에서 라이브 카메라를 든 스태프 한 명이 무대 위로 나타나 배우를 찍는데, 사진을 보는 배우의 모습이 스크린에 곧바로 투영되었다. 이때 실제 vs. 이미지 혹은 연극 vs. 기록이라는 두 가지의 구분이 서로 얽히게 되면서 ‘현재의 기록화’, 더 나아가 ‘과거 기록의 현재화’가 시도된다. 다시 말해서, 특수 기록—즉, 라이브 카메라의 흑백 영상—이 투사되면서 스크린이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이미지들—5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기록 사진들—또한 ‘지금, 바로 여기’의 현장성을 얻는 것이다. 조영숙의 삼마이 역할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고귀한 왕자 같은 남자주연 (주로 임춘앵이 연기한 남자 영웅 캐릭터)에 대조되는 감초 같은 재담꾼 역할을 맡아온 조영숙은 그 끼를 &lt;마스터클래스&gt; 내내 뿜으며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나는 무대에서는 언제나 망가질 준비가 되어있어”라고 말할 때, 조영숙은 어느새 1953년이 아닌 2013년의 삼마이로 다시 태어나있고 관객은 잠시나마 60년 전의 여성국극의 무대의 진면목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p>
<p><img class="aligncenter size-large wp-image-11464" title="3"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32-520x325.jpg" alt="" width="520" height="325" /></p>
<p>1부와 2부를 연결하는 것은 역시 라이브 카메라인데,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 뒤 대기실로 사라진 조영숙이 한 젊은 후배 배우에게 격려의 제스처를 하는 장면이 소리 없이 영상으로만 보여진다. 곧 이어 화면 속의 배우는 무대로 나타나고, 여성국극의 남자주연을 수련하는 연습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이등우라는 예순이 넘은 제 2세대 여성국극 주연배우가 춘향전의 한 대목을 연습생에게 전수하는, 이름 그대로의 &lt;마스터클래스&gt;를 연기한다. 이등우라는 남자역할의 마스터와 이몽룡, 춘향을 연기하는 두 여배우 등 총 세명의 배우가 무대에 서는데, 연습-반복-연기의 여정이 말 그래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몽룡이라는 조선 시대 백마 탄 왕자의 걸음걸이, 때로는 ‘징그럽고’ 때로는 ‘정겨운’ 말투, 그리고 눈빛이 ‘남자답게’라는 형용사 아래에서 파편화되고 해석되고 재편성되어 마침내 여배우의 몸에 입혀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자라는 젠더가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로 재현될 때, 이를 언어화 하는 이등우의 대사 자체가 일종의 해학을 선사했다. “좀 더 징그럽게 해봐” 혹은 “여자가 삐졌잖아. 그럼 달래줘야지!” “그래야 남자 같지” 라고 지시할 때 여기서 강조되는 (한국)남자다움의 허상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이 허상을 과장되게 표현해야 하는 연습생이 고전하는 장면 또한 연극의 묘미를 더했다. 남자다움의 문법은 학습할 수 하지만 하루아침에 답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답한 선생님은 잠시 생각한 후에 “그래, 남자를 한번 시켜보자” 하고는 남자관객을 한 명 무대 위로 초대한다. 물론 이 관객은 조금 전까지 해석된 ‘남자다운’ 걸음걸이를 연기하는데 비참하게 실패하고 다시 객석으로 돌아가 더 많은 웃음을 이끌어낸다. (관객 역할은 너무나 적절하게도 다큐멘터리 영화 &lt;종로의 기적&gt;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이 맡았다.)</p>
<p>젠더의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메세지는 정은영 작가의 이 전 영상작업에서도 보여주려 시도했지만, 이번 연극을 통해 더 즉물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반복의 과정, 시간을 무대라는 시공간에서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6">[6]</a> 이 연극에서 여성국극인은 여성국극인 자신을 연기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연기performance는 허구의 성격을 띠기보다 그들의 생활을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생활방식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국극이라는 장르이며 역사이고 살아있는 대항공중에 새로운 각본과 미장센이라는 미학적, 담론적 프레임을 씌운 것이 바로 정은영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60년 전 생성된 공공적 발화 행위 public speech act가 다시 이해될 수 있는—즉 오늘날의 새로운 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장site을 생산했다.   </p>
<p><img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1465" title="4"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42-400x600.jpg" alt="" width="400" height="600" /></p>
<p>비록 연극은 기립박수로 끝났지만, 작가가 제공한 프레임의 힘은 그 뒤에도 지속되었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어느새 여성국극 배우들의 ‘빠순이’들이 되어있었고 무대 밖에서 서로 배우들과 인증샷을 찍으려고 다투었다. (만약 같은날 정식으로 여성국극 공연을 관람했다면 이렇게 열광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같은 관객들이 4월27일에 남산한옥마을에서 열린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의 &lt;흥보가&gt;공연을 봤다면 사정이 달랐을 것 같다.) 오늘날 관객들에게 이들은 전설의 삼마이인 동시에 조영숙이란 한국여성이며, 이몽룡인 동시에 이몽룡보다 더 멋있는 이등우라는 국극배우였다. 관객들은 국극배우들과 함께 만든 공공의 공간에서 대항공중의 정념적 언어와 퍼포먼스로 소통을 한 것이다. 물론 &lt;마스터클래스&gt;의 팬들이 형성한 관객의 공동체는 수십 년 전의 여성국극팬들과는 다른데, 오늘날의 우리는 사라진 역사를 (조영숙의 말처럼) ‘평범한 늙은이’가 되어버린 국극인들의 삶을 향한 어떤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또 이 역사의 한 장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으로 뭉친 것 같다. 함께한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 또한 헤어졌지만 반짝했던 순간의 기억은 언젠가 다시 발화할 가능성을 내재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hr size="1" /></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1"><span style="font-size: x-small;">[<span style="font-size: small;">1]</span></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문필가의 임무는 해로운 사물에 대하여 당장 반향을 일으키거나 항쟁을 하는것이며 감응의 신경으로 공격 또는 수비를 위한 수족으로 되는데 있다. 자기의 거편대작에 뜻을 두고 미래의 문화를 위하여 머리를 쓰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현재를 위하여 항쟁하는것도 역시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싸우는 문필가인것이다. 그것은 현재를 잃는다면 미래도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노신선집 4 (여강출판사,1991),1.</span></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2"><span style="font-size: small;">[2]</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내가 처음으로 마이클 워너Michael Warner의 Publics and Counterpublics (2005)를 접한 것은 더글라스 크림프의 앤디 워홀 실험영화 수업이었다. 크림프는 워너의 글을 워홀의 작품 및 사무엘 드레니Samuel Delany의 뉴욕의 공중 목욕탕에 관한 글과 함께 토론했다. </span></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3"><span style="font-size: small;">[3]</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백현미, &lt;한국창극사연구&gt; (태학사, 1997), 333-356; 반재식, 김은식 &lt;임춘앵전기&gt; (도서출판 백중당, 2002), 79-99.</span></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4"><span style="font-size: small;">[4]</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때로는 유행소설을 각색 연출하게도 했는데 1955년 임춘액과 그 일행이 현진건의 &lt;무영탑&gt; (1938)을 선보였다. 반재식, 임은식, 362-3.</span></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5"><span style="font-size: small;">[5]</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내가 정은영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2009년 12월 부터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lt;시선의 반격&gt;전 (김현진 기획)이었다. 세로로 설치한 42인치 평면TV 두대에 &lt;분장의 시간&gt; (2009, 8 min 16 sec)과 &lt;뜻밖의 응답&gt; (2009, 4 min 35 sec)이 나란히 틀어져 있었고, 전시장 뒤 편의 블랙박스에는 세 번째 비디오 &lt;리허설&gt; (2009, 93 min 13 sec)을 상영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초상들이 내가 남긴 인상이 강해서 나중에 작가와 따로 만나기를 청해서 2011년 추운 겨울에 홍대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받은 느낌은 작가가 어떠한 공간적 사유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2011년 여름에는 부산의 영도 조선소를 방문하고 85호 크레인 부근에서 찍은 영상과 그해 여름 유독히 지독했던 장마에 대한 기록 영상을 편집해서 3-channel 비디오 작품 &lt;장마 The Season of Occupation&gt; 을 제작다고 했다. 시위의 장소와 장마에 대한 개인적 사유를 정치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정은영 작가의 이런 시도는 그 중심부의 언저리에 존재하는 목소리 크지 않은 자의 힘 있는 발언이다. 작가는 이런 태도를 품고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span></p>
<p><a href="http://suyunomo.net/wp-admin/post-new.php#_ftnref6"><span style="font-size: small;">[6]</span></a><span style="font-size: small;"> 연극이 끝나고 조영숙, 이등우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정은영은 토론자의 역할을 자청했는데, 남성관객 중 한 명이 이등우에게 전형적인 질문을 했다. 남자다운 모습의 영감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생물학적) 남자에서 얻느냐, 아니면 이상적인 남성상을 창작하는가 물었다. 이등우는 <strong>거울을 보면서 </strong>어떻게 하면 더 남자같을까 연구해서 인물을 구상한다고 대답했다. (필자 강조)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한 듯 한 관객의 말투를 직격으로 민망하게 하는 굉장한 대답이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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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58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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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20:18 +0000</pubDate>
		<dc:creator>백납(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Weekl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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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a href="http://suyunomo.net/?p=11452"><편집자의 말>158호.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a></b>]]></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a href="http://suyunomo.net/?p=11452"><편집자의 말>158호.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a></b>]]></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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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마 나는 살던 집이 좋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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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7 +0000</pubDate>
		<dc:creator>윤석원(전 전교조교사)</dc:creator>
				<category><![CDATA[하버지가 쓰는 편지]]></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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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엄마! 나는 전에 살던 집이 좋아 엉엉. 전에 살던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 빌리는 것도 너무 좋았어! 엉엉. 이 동네도 커다란 책방버스가 와서 책 빌려준대. 참 좋겠지! 엄마가 도서관을 책방이라고 그러네. 작은 도서관을 책방이라고도 한단다. 그리고 홍아 장난감들도 다 이리 왔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20120928_121000.jpg" rel="lightbox[11443]"><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20120928_121000-400x533.jpg" alt="" title="20120928_121000" width="400" height="533"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1444" /></a></p>
<h4>엄마 나는 살던 집이 좋아.</h4>
<p style="text-align: right;">문홍아(2년 7개월)</p>
<p>엄마! 나는 전에 살던 집이 좋아 엉엉.<br />
전에 살던 동네 도서관에 가서<br />
책 빌리는 것도 너무 좋았어! 엉엉.</p>
<p><em>이 동네도 커다란 책방버스가 와서<br />
책 빌려준대. 참 좋겠지!</em></p>
<p>엄마가 도서관을 책방이라고 그러네.</p>
<p><em>작은 도서관을 책방이라고도 한단다.<br />
그리고 홍아 장난감들도 다 이리 왔어!</em></p>
<p>홍아도 엄마 따라서 이리 왔네.<br />
홍아만 살던 집에 있으면 안 되지?<br />
엄마 아빠 따라와야지!</p>
<p><em>그럼 그럼,<br />
홍아랑 엄마 아빠랑 그리고 장난감들이랑<br />
여기서 다 함께 살아야지. </em></p>
<p>엄마 그래도 나는 살던 집이 좋아.<br />
나는 살던 동네도 좋아&#8230;&#8230;<br />
홍아 손에 묻더니 발에도 묻네.</p>
<p><em>응? 뭐가 뭐가? </em></p>
<p>홍아 눈물이.<br />
<em>아, 그렇구나.</em></p>
<p>엄마 살던 집에 가고 싶어 엉엉.<br />
나는 살던 집이 좋아 엄마 엉엉.</p>
<p><em>살던 집이 좋다고<br />
울 애기가 요즘 노래 부르지?<br />
여기서 살다보면<br />
‘나는 여기도 좋아’ 그럴 거야.<br />
홍아야 조금만 기다려 봐.<br />
오늘은 비가 와서 못 나가는데<br />
내일 비가 개면 이 동네 재밌는 곳<br />
여기저기 엄마랑 놀러 다니자.</em></p>
<p><em>그리고 이 집은 넓은 벽이 많아서<br />
커다란 칠판 사다 걸어놓고 놀면<br />
재밌을 거야. 맥포먼스도 붙이고 그림도 그리고. </em></p>
<p>그래도 나는 살던 집에 가보고 싶어.<br />
엄마, 옛날 살던 집으로 다시 이사갈 수 있어?</p>
<p><em>오, 가보고싶구나 울 애기.<br />
홍아야, 우리 주말에 살던 동네로 놀러갈까.<br />
그리고 그 동네 도서관에도 가보자. </em></p>
<p>엄마,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br />
살던 집이랑 도서관이랑 공원이랑 &#8230;&#8230;<br />
그런데 엄마, 나는 살던 집에서 살고 싶어 엉엉.</p>
<p><em>어! 홍아가 하품하네.<br />
엄마가 자장가 불러줄게 이리와.<br />
울 애기 이제 코하고 자자.</e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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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사 일지. 어찌 날씨만의 탓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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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7 +0000</pubDate>
		<dc:creator>김융희</dc:creator>
				<category><![CDATA[여강만필]]></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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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제는 혹한이나 날씨등, 기후 변덕에 대한 푸념은 내심 그만 접어 두려고 다져온 터이다. 우선 잦은 넉두리에 내가 지쳤고, 너무 투덜덴다는 불평 불만의 오해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또 들먹여 넉두리 짖이다. 봄이 한창일 때에도 연거푸 우박이 내렸고, 정성껏 모종을 키워 가꾼 오이와 같은 작물이 냉해로 시들어버리는 이상한 날씨는 4월의 끝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꼴들을 지켜봐야 하는 농사꾼의 속 좁은 투정을 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제는 혹한이나 날씨등, 기후 변덕에 대한 푸념은 내심 그만 접어 두려고 다져온 터이다. 우선 잦은 넉두리에 내가 지쳤고, 너무 투덜덴다는 불평 불만의 오해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또 들먹여 넉두리 짖이다. 봄이 한창일 때에도 연거푸 우박이 내렸고, 정성껏 모종을 키워 가꾼 오이와 같은 작물이 냉해로 시들어버리는 이상한 날씨는 4월의 끝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꼴들을 지켜봐야 하는 농사꾼의 속 좁은 투정을 그냥 삭이기란 생각처럼 쉽지를 않다. 또 넉두리이냐며 외면이 아닌,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p>
<p>기후의 질서에 어떤 혼란이 분명하다. 오월의 중순으로 접어든 지금까지 나는 벌과 나비를 아직도 보지를 못했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우리 집 돌배나무에 꽃이 피면 꽃보다 더 많은 벌들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금년엔 그 돌배 꽃이 벌써 시들어 한참 지났음에도 계속 적막하다. 노란 배추 꽃도, 하얀 냉이 꽃도 만발했는데 흰나비는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달이 없는 밤에 휘들러 피는 배꽃처럼, 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꽃들이 측은하다. 봄바람이 살랑데는데도 라일락 꽃 향기가 전혀 없다.</p>
<p>꽃의 개화시기도 예년 같지를 않다. 보통 4월이면 벌써 봄을 알리는 꽃들이 만발했었다. 낮은 곳에 노오란 민들레 꽃이 지천으로 깔리면, 돌배나무에는 흰 꽃무리가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이어 벚꽃이 잎사귀와 함께 무리져 화사했었다. 그런데 금년엔 5월 초순에야 피우기 시작한 꽃들이 중순에 접어들면서 이제야 한창이다. 그것도 꽃들의 개화 순서가 전혀 아니다. 꽃을 피우고 잎새를 내거나, 잎새 다음에 꽃이 피는 경우도 헝클어져 저바린 채, 꽃 피는 순서란 양지와 음지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p>
<p>물론 내가 사는 지역 우백당의 경우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 지역만 있는 현상일까? 네 계절이 뚜렸했던 기후의 특성도 이젠 볼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맑은 가을이면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며 피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여름이면 미리 꽃을 피운 것이다. 물론 꽃도 옛날 꽃처럼 청초한 모습이 아니다. 나는 여간 섭섭했다. 코스모스에게 “예전처럼 가을이 아닌 여름에 꽃을 피운” 그 까닭을 물었다.</p>
<p>코스모스는 나에게 이렇게 속내 마음을 전해 주었다.</p>
<p>『옛날엔 무더위의 여름이 지나면 살랑 바람이 불어오면서 하늘은 맑고 푸르러 초원의 말들도 살이 쩠다. 햇빛도 따사롭고 찬란했다. 정말 마음껏 흔들거리며 춤추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서 험한 날씨, 찌는 무더위도, 무서운 폭풍과 천둥 벼락도, 참고 견디며 여름을 버텼다. 그 맑고 푸른 하늘아래 시원한 바람따라 살랑거리며 춤추는 가을이 그렇게도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옛 가을이 아니다. 변덕을 부리는 지랄의 날씨는 여름도 봄도, 가을도.. 모두가 그게 그것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힘들어 여름을 버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피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p>
<p>이는 지금이 아닌 오래 전에 내가 어딘가에 벌써 써먹은 내용이다. 물론 나의 억지스러운 추측의 허언(虛言)인 것이다. 질서도 특색도 없이 모두가 뒤엉켜 버린 일들이 어찌 날씨 뿐인가? 세상이 온통 혼돈의 소용돌이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속 좁은 촌노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벌이 없어서 파리를 대신 이용하고 있다는 동료 농부의 말도 들었다. 치아가 망가지면 잇몸이 대신하듯, 현대인들의 그토록 영특을 자랑하는 과학의 능력을 믿고 싶다.</p>
<p>그러나, 글쎄 우리는 지금&#8230;</p>
<p>물 한 잔 마시기 위해 말끔한 종이컵을 쓰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열 발자욱도 걷기가 싫어 엘리베이터, 에스카레이터를 이용하고, 손에 물기를 씻으려 와글거리는 드라이어를 마구 틀어데는 화장실에서의 모습이다. 공중 화장실 앞에 걸어둔 두루마리를 젊은이가 열 여섯 번을 감아돌려 화장실에 든다. 요즘 커피점에서 파는 음료의 일회용 컵을 보라.</p>
<p>얼마 전까지는 시골집을 방문한 며누리, 손자들이 수세식 변소가 아니어서 더 이상 머물지를 않더니, 이제는 세척기가 달려 있지를 않아서 불평이란다. 이처럼 서민들의 일상사들이 변하고 있다. 도촌도 없이 공간을 꽉 메운 자동차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지구는 대혼돈이다. 이같은 무질서의 혼돈에 자연인들 어찌 지탱할 수 있겠는가?</p>
<p>이같은 현실에 나만의 지나친 호들갑이며, 그저 기우라며 모두 외면해야 할 일일까?</p>
<p>나는 아닌 것 같은 데&#8230;. 글쎄 잘 몰겠다. 파종의 농사철이 되어 장포에 모종을 하며, 예같지 않는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보면서, 어쩐지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심사를 아는 듯, 꽃이 나를 달래고 있다. 5월의 지난 5, 6일경에 집안에 피운 꽃들의 모습을 담아 여기함께 늘어놓은 푸념이 쑥스럽기도 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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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욕상실의 끝에서 – 일이 무엇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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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6 +0000</pubDate>
		<dc:creator>말자 1</dc:creator>
				<category><![CDATA[말세 프로젝트]]></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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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 이 외에는 2년4개월, 아니 28년간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그야말로 말세적 삶(-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세라고 일컬을 만한 그러한 어찌하면 나태한, 편안한, 재미있는, 조금은 다른 삶) 을 즐기고 있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나면 공복감이 몰려온다. 허기져서 뭔가 요리해먹고는 잠깐 배가 꺼질 때까지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면 너무도 편안한 조도와 바람에, 낮잠을 잔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4>2013.5.14</h4>
<p>온전히 말세적(末世的) 삶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p>
<p>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 이 외에는 2년4개월, 아니 28년간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그야말로 말세적 삶(-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세라고 일컬을 만한 그러한 어찌하면 나태한, 편안한, 재미있는, 조금은 다른 삶) 을 즐기고 있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나면 공복감이 몰려온다. 허기져서 뭔가 요리해먹고는 잠깐 배가 꺼질 때까지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면 너무도 편안한 조도와 바람에, 낮잠을 잔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평안하고, 조용하고, 생각보다 잘 굴러간다. </p>
<p>이렇게 온전히 쉬고 고민하는 시간을 또 언제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크게 엄청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구글어스로 세계여행을 갈만하고, 싸구려티켓으로 여행을 다니기도한다. 소소로운 국내여행도 일 걱정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또한 책을보고 있노라면 시대도, 나라도 초월한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일하는 내내 듣던 이야기가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행복지수가 최하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자마자 내 행복지수는 전세계 1위가 된 듯하다. 이렇게 내 현재를 나열해놓고 보면 완전히 사토리세대와 다를바 없다는 것을 더 느끼게된다. 돈은 하나도 벌고있지 않지만, 소소한 일거리들로 일부 벌고 있지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p>
<p>문득, 사토리세대스러운 삶 = 말세적 삶 = 행복한 삶에 가까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삶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이때까지 잊어왔던 &#8216;쉼&#8217;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온전히 쉴 수 있는 이 시간 망설이지 말고 더 격정적으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p>
<p>낮잠을 한참 자고 일어나는 오후 4시, 이 나태함과 의욕상실의 끝에서 불쑥 고개를 드는 문제는 하나 밖에 없다. 삶의 다른 구성요소 중의 하나인 &#8216;일&#8217;이다. 도대체 일이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할까? 나의 20대 후반 친구들을 만나보면 벌써 2-3년 일을 경험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고, 나와 함께 이태백의 대열에 합류한 이들도 많다. 일자리에서 비인격적 대우와 모멸감 또는 그 일 자체에 대한 환멸감, 육체적/정신적 고갈로 직장을 나와 다른 삶을 고민하고 있다. </p>
<p> 이를보고 어떤 노련한 윗 세대들은 말세적이라고 말하며 냉소를 날린다. &#8220;쯧쯧, 말세야. 요즘 어린 것들은 조금만 힘든 일도, 못참고 못버티고 나가요.&#8221; 4-50대가 말하는 &#8220;조금 힘든 일&#8221;은 본인들이 겪었던 세대의 힘듦과는 그 박탈감이 상당히 격차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 &#8220;조금 힘듦&#8221;으로 치부하고 2-30대를 돌릴 수 있는 부품마냥 사회가 아니, 윗 세대가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억울함이 불끈불끈 솟는다.  </p>
<p>여기서 &#8220;조금 힘든 일&#8221;를 정의해보자면<br />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아무 의문과 자유없이 내도록 엉덩이에 땀띠나도록 앉아, 허리가 휘도록, 콘텐트렌즈 또는 안경의 착용이 당연시 되도록 내몰린 이윽고, 대학교 4년간 아르바이트와 학점 4.5를 향해 코피 흘리며 공부하고도 모자라 취업고시를 격하게 치르고 나서 들어온 직장에서 &#8216;비상식적 대우, 비인격적 언사, 성장도 미래도 없는 일&#8217;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왕 이런 일을 한다면 나는 16년간의 자유를 보장 받고 일은 일대로, 성장과 자유와 자아실현은 내 스스로 하면 될 노릇이었다. 대체 잃어버린 16년은 무엇이란 말인가? </p>
<p>윗 세대들은 아무 조건도 없이-상대적으로 20대들이 그 일자리에 들어가는 조건들을 마주해보자면 그러한 것 같다. 과연 이전의 세대들이 다시 회춘한다면 현재의 20대들이 갖춘 조건들을 갖출 수 있을까- 원한다면 원하는 그 일자리에 들어와<br />
그런 취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성공을 위해서 가족이고, 개인이건 잊어버리고 밤 12시가 되도록 일만하는 삶이 당연시 되던 때라 그것을 강요하는 본인들이 전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것은 군대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문화 &#8216;이상하다.&#8217; 아무리봐도 &#8216;잘못됐다.&#8217; </p>
<p>  아주 선진적이고 회사문화가 정착된 곳이 아니면, 아니 정착된 곳처럼 보이더라도 일면에서는 밑에 후배가 들어오면 &#8216;시다&#8217;로 취급하고, 그들을 말과 행동으로 일적으로 괴롭히고, 일적으로도 성장가능성이 없는 허접쓰레기 같은 것만 시지프스 돌처럼 시킨다. 정말 이 일하는 문화의 일면 &#8216;이상하다.&#8217; 아무리봐도 &#8216;잘못됐다.&#8217; </p>
<p>  일은 타인에게 서비스와 물화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좀 더 간단하게 보면 남들에게 좋은 서비스와 물질을 제공하고 그 이윤을 취하는 것이 일인 것이다. 그 일이 &#8216;조금 덜 힘들고, 의미가 있는 일&#8217; 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그것이 자아실현으로도 일부 이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많은 외국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와 만화마저 그런 이야기들을 그리는데 이 절절한 한국사회는 그런 일을 찾기 힘들어 내가 이 세상을 득도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토리세대로 만들어버려야하는 것일까. </p>
<p>  어떤 일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의 시간을 유보당한채 살아온 16년, 아니 내 생애 전부 28년. 이제 의욕상실의 끝에서 진로탐색이라는 시간을 겨우 받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힘겹지 않고 의미있는 일을 찾아 헤매이고싶다. 나름 자아실현이라는 녀석도 찾고싶다. 외국에서는 평생에 걸쳐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을 학교에서 준다는데&#8230; 때때로 억울한 마음도 드는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사토리세대 마냥 득도해서 만족하고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걸 유보하고싶지도 않다. 이 시간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나 역시도 힘들지 않은, 그리고 행복한 지금까지 없던 그런 무언가가 되고싶은 고민을 하고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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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범인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 히치콕의 &lt;싸이코&gt;를 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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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6 +0000</pubDate>
		<dc:creator>조지훈</dc:creator>
				<category><![CDATA[그들 각자의 영화觀]]></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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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서스펜스 영화는 관객에게 늘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도대체 범인은 누군가? 관객은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눈을 맡기지 않는다. 화면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단서가 될만한 증거물을 찾고, 인물들 한명 한명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추정하면서 누가 범인일까를 짐작해본다. 그 와중에 너무 놀라지 않기 위해서 혹은 ‘감독 네 놈이 꾸민 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hitchcock.jpg" rel="lightbox[1144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hitchcock-400x517.jpg" alt="" title="hitchcock" width="400" height="517"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1448" /></a></p>
<p>서스펜스 영화는 관객에게 늘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도대체 범인은 누군가? 관객은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눈을 맡기지 않는다. 화면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단서가 될만한 증거물을 찾고, 인물들 한명 한명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추정하면서 누가 범인일까를 짐작해본다. 그 와중에 너무 놀라지 않기 위해서 혹은 ‘감독 네 놈이 꾸민 반전에 속을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서 가장 말도 안 되는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가 예상한 인물이 범인임이 드러나면 관객은 우쭐거린다. 혹여나 틀리더라도, 자기만큼 예상지 못한 인물을 범인으로 설정하지 못한 감독을 향해 약간의 우월감을 누리는 방식으로 심리적 보상을 하기도 한다. 조금은 도착적인 이런 관객의 반응은 범인 찾기가 서스펜스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보여준다. </p>
<p>그런데 서스펜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히치콕의 영화 &lt;싸이코&gt;는 좀 이상하다. 이 영화는 보통의 서스펜스 영화처럼 여러 명의 용의자를 배치하고, 누가 범인인지를 둘러싼 공방을 벌이지 않는다. 모텔 주인인 노먼 베이츠 외에는 그 어떤 용의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어머니라는 다른 용의자가 있지만, 화면 상 부재하기 때문에 노먼 베이츠와 경쟁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감독은 용의자를 한 명으로 압축함으로써 범인의 확인이 아니라 범인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으로 영화를 진행시킨다. </p>
<p>범인에 대한 해석은 세 층위에서 일어난다. 먼저 실종된 메리언을 찾기 위한 등장인물들(탐정, 그녀의 애인, 그녀의 언니)에서의 층위. 메리언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노먼 베이츠가 돈 때문에 메리언을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텔 확장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노먼 베이츠를 사건의 범인으로 몬다. 첫 번째 층위는 범행 동기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해석을 보여준다.<br />
  <br />두 번째 층위의 해석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신과의사에게서 이루어진다. 정신과의사는 노먼 베이츠의 살인행위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노먼 베이츠의 살인 행각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 따른 결과다.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하는 노먼 베이츠가 모친의 애인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녀와 그녀의 애인을 살해하고 그에 따른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기 위해, 어머니의 인격을 자기 안에 두게 된 것이 사건의 계기가 된 것이다. 정신과의사가 보기에 살인은 바로 이 어머니의 인격을 한 노먼 베이츠가 저질렀다. 노먼 베이츠 안에 있는 어머니의 인격은 아들이 젊은 여자와 있는 함께 있는 걸 질투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들이 자기 애인을 질투하듯이. 이렇게 첫 번째 층위와 두 번째 층위를 가르는 것은 ‘정신의학’이라는 지식 담론이다. </p>
<p>그런데 마지막 층위인 관객의 시선에서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난다. 사실 노먼 베이츠 안에 있는 어머니의 인격은 살인을 저지를 만큼 잔인하지 못하다. 노먼 베이츠의 방백에서 드러나듯이 어머니는 그저 노먼 베이츠의 방패막이로 사용될 뿐이다. 노먼 베이츠는 자신의 살인 행각을 감추기 위해 어머니의 인격을 이용한 것이다. 진짜 범인은 노먼 베이츠 안에 있는 어머니의 인격이 아니라, 노먼 베이츠 자신의 인격이다. </p>
<p>세 층위 모두 노먼 베이츠라는 신체가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해석이다. 노먼 베이츠 신체 안에 있는 어떤 인격이 이 범죄행각을 저질렀는가. 이 사건의 책임은 누가 질 수 있는가. 동일한 신체의 행위지만, 그 신체를 움직이는 인격의 설정에 따라 책임의 결과는 판이하다. 첫 번째 층위, 즉 돈을 노린 살해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층위인 정신과의사의 해석대로 이중인격인 상태에서의 살해는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세 번째 층위는 어찌되는가. 정신병원으로 보내자니 범인의 주체성이 보인다. 그렇다고 형사처벌을 하자니 범인의 정신 상태가 형사사건에서 다루기 곤란한 상태에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p>
<p>세 번째 층위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층위의 해석은 영화 속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관객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관객의 시점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없다면 세 번째 층위의 해석은 있을 수 없다. 해석의 완성은 관객이 한다. 관객이 어머니의 인격을 방패막이로 사용한 노먼 베이츠의 인격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궁극적인 것이 된다. 범인을 해석하는 최종 심급은 관객인 것이다. 히치콕은 관객을 초월자 위치로 올려놓음으로써 그들에게 극도의 쾌감을 주는 동시에, 관객이라는 그들의 위치를 폭로함으로써 영화에 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p>
<p>&lt;싸이코&gt;의 교훈은 범인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것은 범인을 만드는 해석자의 위치(무지한 등장인물, 지식권력의 소유자, 초월자인 관객)가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히치콕이 &lt;싸이코&gt;를 통해서 보여주는 긴장감은 바로 범인의 주체가 만들어지는, 이 다양한 층위의 해석의 대립에서 발생한다. 범인이 밝혀지는 반전의 순간에서가 아니라.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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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이들을 밀어내는 학교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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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5 +0000</pubDate>
		<dc:creator>숨(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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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거기 날라리들이 다니는 학교 아니에요?” 내가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하자 한 중학생이 보인 반응이다. 나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수긍했다. 그게 현실이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날라리들을 요즘은 위탁형 대안학교로 보낸다. 관 내의 학교에서 보내주는 부적응 학생들이 위탁되는데 다니던 학교의 학적을 유지하면서 한 학기 동안 출석을 대안학교로 한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4>2. 배제의 두 번째 구조 : 격리와 도태 </h4>
<p>“거기 날라리들이 다니는 학교 아니에요?”<br />
내가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하자 한 중학생이 보인 반응이다. 나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수긍했다. 그게 현실이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날라리들을 요즘은 위탁형 대안학교로 보낸다.<br />
관 내의 학교에서 보내주는 부적응 학생들이 위탁되는데 다니던 학교의 학적을 유지하면서 한 학기 동안 출석을 대안학교로 한다. 위탁되는 학생의 대부분은 무단으로 장기결석을 해서 학업 유예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다. 학업유예가 되면 해당년도에는 학교를 쉬었다가 다음해에 이전의 학년으로 복학해야한다. 어학연수나 신체질병 외에 학교 부적응으로 유예가 된 경우 복학한다고 해도 다시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적응으로 인한 학업 유예를 막기 위해 지역사회 민간단체나 지자체가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위탁형 대안학교다.<br />
대안학교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대안적으로 구성하고 학생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학교의 태생과 한계는 명확하다. 학교의 태생과 한계라고 말하는 것은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대안교과가 있는 교육과정에 훨씬 만족하는 편이고,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편안해하는 편이다.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수업시간이 적고 생활교사와 교과담당 교사가 아이들이 교과수업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외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br />
위탁형 대안학교의 한계는 학생들을 위탁 의뢰하는 학교와의 관계로 인해 생긴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기존의 학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고, 학교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따로 모집할 수 없고, 기존의 학교에서 보내주는 아이들을 받아야 한다. 위탁형 대안학교에 보내지는 아이들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흡연/금품갈취/비행/학교폭력/교사에게 반항 등으로 학교와 지속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결석일수가 많아 학업 유예 직전인 아이. 또는 학교에서 두드러진 문제를 일으키진 않으나 장기 결석으로 학업 유예 직전인 아이.<br />
재밌는 것은 학교에서도 이런 부류의 아이들을 위탁형 대안학교로 보내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 또한 원래 학교보다 대안학교를 오고 싶어 한다. 작년에 대안학교에 출석을 하다가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이 올해 다시 위탁 심사에 지원해서 다니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래 학교로 돌아갔을 때 적응이 쉽지 않고, 기존의 학교보다 대안학교가 복장이나 두발 등 일상생활에서 규제하는 교칙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대안학교에 대한 낙인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만 모아놓은 학교에요.” 위탁형 대안학교가 부적응한 학생을 따로 모아 놓은, 예외적인 학교라는 인식을 아이들 스스로도 하고 있다. 학교가 일군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의 교육환경이 모든 학생을 담아낼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포기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에 적응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구분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특수하게 처리하고 격리하는 형태로 교육 환경을 재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br />
이런 시도들은 위탁형 대안학교 이외의 다른 형태로도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된 정서행동선별검사는 정신건강상 문제있는 아이들을 선별해내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정서행동선별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판명이 된 학생은 문제유형별 검사를 통해 다시 주의군으로 분류된다. 주의군 아이들은 교육청의 Wee센터, 지역의 위기아동청소년 지원기관, 정신보건센터에서 다시 심층평가를 받게 되고 최종적으로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있다고 판명이 되면 전문 상담센터나 신경정신과에 의뢰되기도 한다. 다른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학교는 교육환경이 가지는 부작용이나 문제를 아이들의 정신건강이나 적응력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학교가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문 분야에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적응에 관한 문제를 일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교실에서 상담실로 보내지고, 그 다음에 외부 상담기관 등에 의뢰되고, 더 이상 기존의 학교에 출석하며 교육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위탁형 대안학교에 보내진다. </p>
<p>하지만 이런 분리와 격리를 통한 보호(?)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가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겨우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고등학교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학교는 아이의 적응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방치한다. 이때 국공립 계열의 고등학교라면 학생이 위탁형 대안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립계열의 전문계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위탁형 대안학교를 가겠다고 하면 자퇴를 하라고 종용한다. 위탁형 대안학교로 학생을 보내게 되면 한 학생당 국가에서 지원되는 수업료를 대안학교에 보내야하는데 학교의 입장에서는 행정처리를 다시 해야하니 번거롭다. 또한 차라리 자퇴를 하면 빈자리가 생기므로 다른 학생을 받을 수 있는데 공연히 대안학교로 학생을 보내면 그럴 수도 없기 때문에 손해다.<br />
한 아이는 고등학교 진학 후 전공의 특성 상 남학생들이 많아 분위기가 폭력적이고 교사의 체벌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워서 장기 결석을 하고 가출을 했다.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집을 전전하던 아이에게 지역아동센터 실무자가 대안학교를 제안했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에 대안학교라도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위탁을 보내는 것을 불허하는 방침이었고 학교의 입장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아 아이는 자퇴를 하기로 했다.<br />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럴 때에 학교와 싸워서 아이의 선택권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보호자가 학교에 강하게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학교의 각 부장교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담임교사도, 도움을 줄 사람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학생과 보호자가 학교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서울시인권센터에 진정하려고 상담을 받은 사례도 있었는데 인권 센터의 담당자가 진정을 넣어도 권고 사항이라 강제력이 없어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p>
<h4>3. 나가며 </h4>
<p>실제 부적응으로 인한 학교 탈락 비율은 초등학생보다 중학생이 더 높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성적으로 인한 경쟁과 평가가 격심해지고 교칙이 강력해진다. 아이들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생활의 스트레스와 부적응을 호소하는 경향이 높다. 가정과 지역의 환경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학교 또한 청소년들의 학교 부적응과 비행 등 문제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다.<br />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교육의 주체로 상정하는 학교는 문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끝없이 아이들을 문제로 규정해서 분리, 격리, 퇴출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교육환경이다. 하지만 학교는 특정한 아이들을 위험요소로 지목하고 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을 소수의 위험한 아이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듯이 처벌과 추방을 강화한다. 혹은 의무교육 영역에서 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거나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은 분리해서 교육하거나 그도 아니면 도태시켜버린다. 공공의 교육 현장이 배제의 구조를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교육의 이름으로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경험을 하며 정말 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p>
<p>위기 상황에 놓여있다고 일컬어지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한국의 학교가 ‘교육’이라는 주제를 과연 고민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밀려나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 상담센터를 세우고 위탁형 대안학교를 만드는 지역사회의 노력이 현재 학교교육의 모순을 더 강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가 들면 더욱 괴로워진다. 밀려나는 아이들을 위한 울타리를 만든답시고 학교 밖의 게토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할 때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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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이들을 밀어내는 학교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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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5 +0000</pubDate>
		<dc:creator>숨(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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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작년 10월부터 노원구립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아이들 만나는 일을 시작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소위 문제 청소년, 위기 청소년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가출, 금품갈취, 학교폭력, 학업중단(결석), 학대/방임, 성학대, 임신, 인터넷(게임)중독, 우울/무기력 등의 상태에 놓여있을 때 위기라고 부른다. 지원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위에 열거한 문제들을 중복해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4>0. 들어가며</h4>
<p>작년 10월부터 노원구립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아이들 만나는 일을 시작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소위 문제 청소년, 위기 청소년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가출, 금품갈취, 학교폭력, 학업중단(결석), 학대/방임, 성학대, 임신, 인터넷(게임)중독, 우울/무기력 등의 상태에 놓여있을 때 위기라고 부른다. 지원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위에 열거한 문제들을 중복해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 폭력을 겪는 아이가 가출을 했다가 금품갈취나 절도로 소년법원에 송치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생활지도부를 들락거리는 아이는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전학을 당한다.<br />
센터의 실무자들이 하는 일은 아이들이 처해있는 문제 상황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찾는 것이다. 부모가 보호자의 역할을 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이의 옹호자가 되어주거나 필요하다면 자원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br />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자꾸만 반복된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아이의 전체적인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의 여러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조건이 변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모습을 바꾸어 가며 반복된다. </p>
<p>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 중 학교는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치는 변수다. 아이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공식적인 공간이 학교다.<br />
학교는 아이의 생활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학업 중단은 위기 상황을 판단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가정의 울타리가 약한 아이들에게 학업 중단은 안정감을 가지고 일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학업 중단이 순전히 자기 선택에 기반한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위기 상황이라 일컬어지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각종 징계와 처벌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거나 부적응과 무기력으로 학교 다니기를 포기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밀려나고 밀려나서 학교를 그만두고 나면 아이들은 피씨방을 전전하거나, 집안에만 있거나,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부모의 특별한 지원이 없다면 학교를 그만 둔 후 대안적인 배움이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그나마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아이들은 검정고시 준비를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일을 한다.<br />
학교가 더 이상 배움과 우정의 공동체가 아니라 경쟁과 폭력의 정글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학교는 변화하지 않는다. 학교폭력이 사회 이슈가 된 후, 학교가 선택한 방법은 가해학생의 추방이고, 부적응한 아이들은 격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학교는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부적응하는 아이들을 점점 밀어내고 있다.  </p>
<h4>1. 배제의 첫 번째 구조 : 단계화된 처벌의 끝, 추방  </h4>
<p>기존의 교칙은 학생들의 두발, 복장, 품행과 언행, 연애, 심지어 외부 대회 작품 출품의 자유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매우 사소한 행동까지 제한한다(휴지를 함부로 버린다, 용의복장이 불량하거나 명찰을 달지 않는다, 책상/의자 위를 올라 다닌다, 등하교시 차도로 통행한다, 신사화 높은 굽 등 규정에 위반된 신발을 신는다, 학교장의 허가 없이 외부 행사에 출품, 출연 또는 참가하여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킨다). 동시에 매우 포괄적이고 애매한 규정도 많다(학습 태도가 불량하여 면학 분위기를 저해한다, 교직원이나 어른에게 불손한 언행을 한다, 풍기문란으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킨다)<br />
교칙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등교 전과 후를 포함해 항상 관찰해서 하나라도 걸리면 바로 벌점을 줘야할 지경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사가 학생의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학생 입장에서는 재수 없이 걸리면 벌점을 받게 된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일상적으로 감시자와 잠재적 범법자의 관계가 성립한다.<br />
학생들은 상벌점제로 관리되며 벌점이 누적되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징계를 받는다. 생활지도부에 불려 다니고, 교사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교내 봉사를 하고, 사회봉사를 하다가 특별교육이수를 받는다. 교칙과 교사의 지도에 순응한다면 학교 생활이 편안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위험하고 피곤한 인물이 된다. 교사만 그런 인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학생들도 생활지도부를 자주 들락거리고 징계를 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서운 애, 사고치는 애로 생각한다.<br />
벌점이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선도위원회를 소집한다.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근거로 해서 교칙에 따라 징계를 한다. 선도위원회는 학교 폭력 이외의 사안-비행, 이탈 행동에 징계를 할 수 있다.<br />
교칙을 근거로 한 감시와 처벌은 벌점 부과를 통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벌점이 초과되면 정식 징계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일정한 부류가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히게 되며 지속적으로 관리되거나 처벌을 받는 구조다. </p>
<p>반면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처벌규정은 다른 기능이 부가된다. 바로 가해 학생의 추방이다.<br />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폭대위)가 구성되어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처벌한다. 법률은 우리 사회의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진 결과 2011년부터 시행됐다. 특징은 학교 안의 다른 징계구조인 선도위원회보다 처벌규정이 보다 세부적이고 단계적이라는 점이다.<sup><a href="http://suyunomo.net/?p=11450#footnote_0_11450" id="identifier_0_11450" class="footnote-link footnote-identifier-link" title="선도위원회의 징계 종류는 총 5개로 학교 내의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출석 정지, 퇴학처분(의무교육과정 제외)이다. 반면 학교폭력 가해학생 징계 종류는 제1호에서 9호까지 있다. 제1호는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제2호는 피해학생 및 신고․ 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제3호 교내 봉사, 제4호 사회봉사, 제5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제6호 출석정지, 제7호 학급교체, 제8호 전학, 제9호 퇴학처분(의무교육과정 제외)이다.">1</a></sup> 또한 기존에 포함되지 않았던 고강도의 처벌, ‘전학’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br />
흔히 퇴학이 가장 강력한 처벌규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퇴학은 의무교육과정(중학교까지)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학생 수준에서는 전학이 가장 강력한 처벌규정이 된다. 아이들은 이것을 ‘강전’이라고 얘기하는데 강제로 전학을 보낸다는 뜻이다. 폭대위에서 전학이 결정되면 전학을 가야한다. 교칙을 중심으로 한 선도위원회의 징계가 전체 학생들의 통제를 위한 본보기식으로 적용이 된다면 폭대위의 전학 결정은 폭력 사건으로 문제가 되는 학생을 원래 있던 학교에서 퇴출시키는 의미다. 학교폭력을 보다 강력하게 처벌하고 방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지만 기대했던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br />
강제 전학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낙인이다. 그나마 가정에서 아이의 낙인감을 신경써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된다면 주소 이전을 통해 아예 다른 구의 학교로 자발적 형식을 가장한 전학을 가기도 한다. 강제 전학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는 경우 아이들은 관내의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진다. 강제 전학 후의 낙인은 해당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예민한 대처를 불러오기도 한다. 강제 전학 온 아이가 경미한 폭력(학교 친구랑 싸움)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일방적 가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빌미로 다시 전학을 보낸 사건도 있다.<br />
또한 전학을 간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여 아무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제 전학을 간 가해학생이 해당 학교에서 또 학교폭력을 저지르거나 예전 학교를 찾아가 보복폭행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sup><a href="http://suyunomo.net/?p=11450#footnote_1_11450" id="identifier_1_11450" class="footnote-link footnote-identifier-link" title="지난해 12월 제주에서는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됐던 중학생이 전학간 학교에서도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학생은 동급생 20여명을 때리고 금품을 갈취했으며 과거 자신을 신고한 피해자를 불러내 보복 폭행을 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 학교폭력 사건으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아 부산으로 이주한 중학생이 전학 간 학교에서 성추행, 폭행을 한 사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amp;#8220;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이 결정된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무슨 죄냐&amp;#8221;며 &amp;#8220;교육적인 측면에서 그 학생을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웃으며 받을 수도 없는 것이 일선 학교의 현실&amp;#8221;이라고 토로했다. (2013.3.15환경매일신문&amp;lt;폭력학생 강제전학 카드돌려막기 동일&amp;gt;">2</a></sup><br />
강제 전학이 낙인감을 주고, 실제 학생의 변화나 교육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 외에도 강제전학은 실패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학내에서 문제가 많다고 인식되는 학생을 최종 처리하는 방식으로 강제 전학이 활용됨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전학을 보내더라도 동일한 관내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학교 간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학교장 입장에서 보면 해당 학교에도 문제 학생은 차고 넘쳐 골치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서 아주 쎈 문제 학생을 한 명 보낸다면, 우리 학교에서는 그보다 덜 쎈 문제 학생 두 명을 보내 맞교환 한다. 학교장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 내용이다.<br />
이런 면들을 통해 강제전학은 교육적 효과가 전혀 없고, 특정 학생을 퇴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징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징계는 일군의 학생 무리를 학내에서 낙인화하면서 일종의 본보기를 만드는 것으로 작동했다. 폭대위에서 내려지는 ‘강전’이라는 징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학생은 외부로 추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p>
<p>변화한 것은 처벌의 방식만이 아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징계 내용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기존에는 학기말․학년말에 징계내용을 기재하도록 하고 졸업 시 삭제하도록 하였으나 2013년 2월부터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은 징계 즉시 기재하고 졸업할 때 경미한 조치사항만 삭제하도록 변경되었다. 경미하지 않은 조치사항(사회봉사, 특별교육이수, 출석정지, 전학, 퇴학)은 학생이 졸업해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아 이후 학교 진학에 반영이 된다. 이것은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으로 일부 교육청이 거부했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와 관련해 관련자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br />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 징계 사항을 졸업한 이후에도 삭제하지 않는 것은 매우 특이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법원에서는 10세에서 18세까지의 범죄 위험이 있거나 범죄를 범한 소년 중 벌금형 이하 또는 보호처분 대상 소년들을 소년보호 사건 대상이라고 하여 소년보호처분을 내린다. <sup><a href="http://suyunomo.net/?p=11450#footnote_2_11450" id="identifier_2_11450" class="footnote-link footnote-identifier-link" title="보호자와 해당 청소년이 교육을 수강하거나 사회봉사를 하거나 장기/단기 시설에 보호되거나 소년원에 장기/단기 수감되는 것이 소년보호처분의 주된 내용이다. 법원의 소년보호처분과 학교 폭대위의 조치 내용은 상당히 비슷한 형태와 단계를 띤다.">3</a></sup> 그런데 소년법 제32조 보호처분의 결정 조항을 보면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법원에서 처분하는 소년보호처분은 그 기록이 학생 신상에 남지 않도록 한다. 반면 학교 폭대위의 조치 기록이 졸업 이후에도 남아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폭대위의 가해학생 조치의 단계와 내용은 사법부의 소년보호처분과 비슷하다. 학교가 처벌기관인 사법부의 기능을 흉내내면서 학교생활기록부 징계사항 기록 및 삭제와 관련해서는 사법부보다 더욱 강력하게 처벌을 내리는 점은 경악스럽다.</p>
<ol class="footnotes"><li id="footnote_0_11450" class="footnote">선도위원회의 징계 종류는 총 5개로 학교 내의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출석 정지, 퇴학처분(의무교육과정 제외)이다. 반면 학교폭력 가해학생 징계 종류는 제1호에서 9호까지 있다. 제1호는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제2호는 피해학생 및 신고․ 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제3호 교내 봉사, 제4호 사회봉사, 제5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제6호 출석정지, 제7호 학급교체, 제8호 전학, 제9호 퇴학처분(의무교육과정 제외)이다.</li><li id="footnote_1_11450" class="footnote">지난해 12월 제주에서는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됐던 중학생이 전학간 학교에서도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학생은 동급생 20여명을 때리고 금품을 갈취했으며 과거 자신을 신고한 피해자를 불러내 보복 폭행을 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 학교폭력 사건으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아 부산으로 이주한 중학생이 전학 간 학교에서 성추행, 폭행을 한 사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8220;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이 결정된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무슨 죄냐&#8221;며 &#8220;교육적인 측면에서 그 학생을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웃으며 받을 수도 없는 것이 일선 학교의 현실&#8221;이라고 토로했다. (2013.3.15환경매일신문&lt;폭력학생 강제전학 카드돌려막기 동일&gt;</li><li id="footnote_2_11450" class="footnote">보호자와 해당 청소년이 교육을 수강하거나 사회봉사를 하거나 장기/단기 시설에 보호되거나 소년원에 장기/단기 수감되는 것이 소년보호처분의 주된 내용이다. 법원의 소년보호처분과 학교 폭대위의 조치 내용은 상당히 비슷한 형태와 단계를 띤다.</li></ol>]]></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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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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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May 2013 13:19:34 +0000</pubDate>
		<dc:creator>성현</dc:creator>
				<category><![CDATA[편집실에서]]></category>
		<category><![CDATA[158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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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저는 개인적으로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최근에 굉장히 재밌게 본 두 개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나는 직장의 신 10화이고 또 하나는 이 주 전에 했던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입니다. 직장의 신 10화에서는 회사에 20년을 넘게 근무한 고과장이 권고사직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이 10화에서의 백미는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황갑득 과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무정한의 노력]]></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저는 개인적으로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최근에 굉장히 재밌게 본 두 개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나는 직장의 신 10화이고 또 하나는 이 주 전에 했던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입니다. 직장의 신 10화에서는 회사에 20년을 넘게 근무한 고과장이 권고사직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이 10화에서의 백미는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황갑득 과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무정한의 노력과, 이러한 무정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고과장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의 가슴을 아리는 연기가 무엇보다 명품이었지만,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항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 등으로 인해 상처받고 절망하는 실업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드라마의 모습은 사뭇 제게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p>
<p>   이렇게 모순을 고발하려고 하는 모습은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도 나왔습니다. 팀 내에서 누군가 한 명은 정리해고를 당해야만 하기에, 팀 전부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 너무나 절박해 보이고 애처로워 보여서 정말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이 특집에서의 백미는 결국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정준하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사를 떠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팀에서는 단 한 명도 정리해고 당할 수 없다면서 의기투합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결국 정준하가 정리해고 대상자로 낙인찍히자 팀원들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건 그 외면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정든 회사를 떠나는 정준하의 뒷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팀 전체에 흐르고 있는 정리해고에 대한 무기력함은 칠칠치 못하게 어느새 제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습니다. </p>
<p>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두 편의 영상들이 내게 준 감동을 곱씹어보니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영상이 송출되는 매체는 TV라는 것을요. 이 두 영상은 분명히 정리해고된 대상자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을 실직자로 만들어버리는 이 체제의 근본적인 토대에 대해서는 건들지 않습니다. 직장의 신 10화나 무한상사편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정리해고 된 실직자들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장치들이 잘 배치되어 있지만, 또 그들이 해고자가 되는 것이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이게끔 그려져 있습니다. 이 영상 내에서 그들은 ‘잘릴 만 했던 자’들일 뿐 ‘잘릴 수밖에 없는 자’들은 아닙니다. 정리해고는 그들의 무능력이 초래한 결과로 그려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이 해고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처음에야 그 사실을 부인하지만 고과장이나 정준하나 결국 묵묵히 자신이 무능력자임을 인정하고 회사를 제 발로 떠나고 말지요. </p>
<p>   해고되는 자신들이나 그 해고를 지켜보는 이들이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해고당하는 이들은 기껏해야 자신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팀원들에 대한 원망만을 할 뿐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저 해고당하는 자에게 연민어린 눈빛만을 전해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연민어린 눈빛 아래에는 자신은 그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생존했다 라는 사실로부터 생기는 강한 자존감과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정리해고 되는 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분명히 할 것이지만, 결국 그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빛 또한 영상 내에서 정리해고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빛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연민에서만 멈추었을 때, 오직 연민이 주는 수동적 카타르시스에만 도취되어 있을 때, 영상 내의 정리해고를 관조만 하는 이들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기력하게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겠지요. 영상 내의 사람들처럼 체제에 대해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 내의 친구들과 적대할 것이고, 그렇게 우리의 능력은 오직 경쟁력으로서만 구축될 것이며, 반성의 회로는 더 노동에 포섭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만 머물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오직 ‘나’에만 빠져들게 되고 우리의 의식 안에서 ‘사회’라는 윤곽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사회는 재생산됩니다. 우리 눈앞에서 사회가 사라질 때 사회는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p>
<p>   저항은 지워져가는 ‘사회’라는 윤곽을 끊임없이 다시 그려내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 안에서 무엇이 산출되고 있는지, 무엇이 재생산되고 있는지, 이 사회를 위해서 생산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이 사회를 위해서 진정으로 지워야할 것은 무엇인지! 이것들을 끊임없이 다시 그려내는 과정이야말로 이 ‘사회’를 보호하는 일이자 코뮤니즘의 시작일 것입니다. tv가 전해주는 수동적 카타르시스와 싸구려 우월감과 단절하는 것! 변화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이지 않을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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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장도 돌리고 기타도 칩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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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May 2013 08:21:52 +0000</pubDate>
		<dc:creator>지안</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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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전에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장난으로 짤라볼테면 짤라보라는 말을 했을 때, 같이 알바 하던 매니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알바생이 짤린다는 게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너 막상 짤리면 기분 되게 더러울걸?”이라고. 그때 우리는 막 웃었었지만 나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해고’라는 것에 대해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lockquote><h4>콜트콜텍에 대한 소개</h4>
<p>“공장을 돌려라” “기타를 쳐라”라는 문구가 콜트콜택의 이 긴 싸움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지난 2007년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이 경영난과 노사갈등을 이유로 폐업을 감행했다. 정리해고 당하던 날, 해고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다가 공장 문에 붙어있는 해고통지서를 읽었다고 한다. 해고의 근거도 문제이지만 그 통보에서부터 이루어진 몰상식한 행동들은 2010년 콜트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방종운 지회장을 회사차량으로 상해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동아일보는 콜트콜텍 투쟁에 대해 허위기사를 싣기도 한다. (3년의 싸움 끝에 정정기사를 내리라는 판결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예고 없이 경찰과 용역들이 들이닥쳐 노동자들의 공장이기도 하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기도 했던 콜트공장을 철거했었다. 해고 이후로 7년 동안 해고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비상식적인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강 송전탑에 올라가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기타 만들던 손으로 콩과 고추를 심어 고추장을 만들기도 하고, 고추장 판돈으로 해외 원정 투쟁을 떠나기도 하고, ‘콜밴’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연주를 하러다닌다. </p></blockquote>
<p>예전에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장난으로 짤라볼테면 짤라보라는 말을 했을 때, 같이 알바 하던 매니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알바생이 짤린다는 게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너 막상 짤리면 기분 되게 더러울걸?”이라고. 그때 우리는 막 웃었었지만 나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해고’라는 것에 대해서.<br />
 얼마 전에 ‘정리해고’가 주말 예능 프로 &lt;무한도전&gt;의 꽁트 무한상사에 등장했었다. 이것이 주말 프라임타임 예능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정과장’ 캐릭터가 정리해고를 당하는 장면에 할애했다. 정리해고라는 게 그만큼 빈번한 사건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 이후로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정리해고가 이야기되고 있다. ‘정과장’의 정리해고라는 이 짭쪼름한 상황을 보며 사람들은 본인의,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의, 쌍용자동차의, 콜트콜텍의 해고를 떠올렸다. 역시 정리해고가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이것을 단순히 예능의 소스로 사용된, 일회적인 사건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실에서 무섭게 벌어지는 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 송전탑 투쟁을 노래한 소히의 &lt;한강 송전탑에는 사람이 살았어&gt;의 가사가 표현하듯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들이닥친 정리해고는 단순한 알바생인 내가 그려보아도 끔찍한 상황이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은 아무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공장 문 앞에 붙여진 종이로 해고통보를 받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밀어내버리고 남은 공간은 소히가 표현하듯 “폐허”로 전락했다. 사실 “한강 송전탑”에서 내려다본 사회는 온통 “폐허”만이 남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공장, 2200여일의 장기 투쟁장 콜트콜텍을 생각해보았을 때 “긴 시간 정말 힘들었으니까”라는 가사가 너무도 절절하게 다가온다.</p>
<h4>노동과 예술의 만남<br />
</h4>
<p> 그러나 이렇게 무진장 심각해 보이는 투쟁기록에도 불구하고 지난 화요토론회(이하 화토)에 방문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예술가 팀은 오히려 연구실에 생기를 주고 간 것 같다. 화요토론회와, 끝나고 있었던 뒤풀이에는 “다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하시나”부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인물도 훤하다”는 얘기, “다른 투쟁장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훨씬 밝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의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예술가들의 만남이야기”라는 토론회 제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밴드를 결성해보니 멀게 생각되던 “예술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다는 이인근 지회장님의 밴드 이야기와 직접 지은 &lt;봄&gt;이라는 시를 읽어주시던 방종운 지회장님. 확실히 이들은 더 이상 노동자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콜트콜텍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lt;꿈의 공장&gt;에서 예전에는 기타는 보기만 해도 “징글징글” 했었더라는 한 노동자의 말은 여기서 뒤집어진다. “투쟁보다 밴드일이 더 많더라고요”, 노동자가 예술가가 된 이 상황의 아이러니 속에서 놀라운 힘이 만들어진 것 같다.<br />
 ‘기타’라는 노동 대상의 특수성 때문일지 정말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들에게 결합했다. 그뿐만 아니고 노동자들이 예술가가 되어버렸다. 콜트콜택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에 속해있는 이인근 지회장님이 화요토론회에서 “(멤버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이 달라) 밴드가 해체하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해 화토 참석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굉장히 웃기기는 했지만 사실 정말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 혹은 적어도 그들의 삶은 예술가들이 ‘아저씨’들에게 바라는 대로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전보다 행복해진” 측면이 있다. 기타를 만들기만 하던 손이 그것을 연주하는 손이 되었을 때 노동자들이 이제 외치는 것에는 단순히 “공장을 돌려라”라는 요구사항만이 아니라 “기타를 쳐라”라는 자신을 향한 말 또한 포함된 것 같다. 이번 화요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자리를 꽉 메우기도 하였거니와 시간이 지나고도 콜트콜텍에 대한 이만큼의 여운이 남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이번 화요토론회를 “히트”쳤다고 말한 것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다.</p>
<h4>‘콜트콜텍’ 노동자와 예술가가 연대하는 공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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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이번 화토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동자와 예술가가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철거가 있기 전까지 콜트공장에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차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이웃으로 살았다. 특히 전진경 작가님은 그렇게나 콜트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이 자신들도 거기서 작업을 하고 싶지만 콜트콜텍에 대한 작업만 할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러워진다는 말에 대해 “저도 제 작업 할 거고 거기서 꼭 그분들에게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게 아니고, 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어때요 좋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p>
<p> “좋은 작업을 거기서 많이 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게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런 것보다 이웃이라는 게 힘이 되지 않을까. 각자 가진 에너지를 충돌시키는 것이 서로가 서로 다른 반응으로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현장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자. 그러면 이웃인 아저씨들도 내가 만드는 에너지를 통해 활력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관계가 되면 멋있겠다.” </p>
<p> 여기서 전 작가님이 그리던 연대의 방식은 공간을 나눈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작가님이 동료작가들에게 “(콜트콜텍 관련 작업을 하는 것)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작업하는 거예요 이 공간이 다 말해주는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이 연대를 “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거” 라고 말했을 때, 콜트콜텍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운동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혹은 참여를 못하겠다고 했을 때 나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도 “시간이 없다”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투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 후반이었던 우리가 여러 일에 많이 분노했었지만 직접 뛰쳐나가지도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집회에서의 투쟁 방식이 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것만 한다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우리가 현실에서 투쟁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고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투쟁은 뭔가 당사자인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결합해 그들이 외치는 것을 외쳐야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예술가조차 “현장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자”고 했다면, 콜트콜텍에 작업실을 차린 것이 그냥 가서 ‘아저씨’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이었고 예술가들이 보여준 투쟁 방식이 이런 것이었다면, 우리 역시 “그냥 그렇게 사는 거”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결합하거나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차원의 또 다른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p>
<h4>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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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콜트콜텍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런 말을 보았다. 밥 딜런도 그렇고 수많은 뜨거웠던 음악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에 대한 말.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예술가들의 성찰. 인터뷰에서 나온 답은 “밥 딜런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가 있었기에 세상이 이 정도”라는 것이었다. 만약 방종운 지회장님의 시 &lt;봄&gt;에 나오는, 콜트콜텍에 “깨어진 노동자들의 마음 만져줄” “희망의 손”이 온다면 그것은 예술가들의 손 혹은 예술가가 된 노동자 자신들의 손일 것 같다.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콜트콜텍이 7년이라는 시간동안 장기투쟁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예술의 이런 힘을 노동자들이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도 이들의 삶은 이 측면에서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br />
 나는 그래서 뒤풀이 시간에 한 해고노동자 분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이렇게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목표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이 투쟁의 마지막 목표가 무엇이냐고. 역시 ‘복직’이라고 답하셨다. 해고노동자들이 청춘과 삶을 바친 콜트콜텍이라는 “공장은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분들이 복직을 하더라도 (아마 그럴 거 같긴 하지만) “기타를 치자”고 계속 외쳐주었으면 한다. 이제까지의 아픔을 다 모르고서, 죄송한 말을 하는 것 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분들이 공장으로 돌아가 다시 노동자로 위치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여기서 큰 힘을 보았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 나와 친구들은 직접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 중 누군가는, 그래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고 말해버린다. 그건 우리가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뛰쳐나가보지 않고 한 번도 좌절당해보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좌절의 경험을 전하는 방식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정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겪은 분노를 세상에 보여줄 필요는 있다. 이번에 화요토론회를 보면서 참 느낀 게 많다. 지금은 재수생이 된, 십대시절 함께 분노를 나누었던 이들에게 콜트콜텍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p>
<p> 화요토론회에서 방종운 지회장님은, 낭송한 본인의 시 &lt;봄&gt;에서 해고노동자들의 마음을 말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이 땅에 수많은 노동자는/ 분노로 봄을 맞는다./ 터질 것 같은 분노로/봄을 맞는다.”라는 구절에서 봄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는 “구조조정” 당한 “노동자”의 차가운 현실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소히가 바라보는, 한강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에게는 “봄”이 왔을 것이다. 그러나 “터질 것 같은 분노”에 잠긴 노동자들은 온전히 “봄”을 맞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용역들이 깔린 공장을 노동자-예술가들이 다시 재 점거 했을 때, 노동자와 예술가가 공간을 공유하고 연대해나가며 “폐허”의 공간을 다시 꾸려나갈 때, “그냥 그렇게 사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꾸 결합할 때, 이인근 지회장님이 앞으로도 밴드가 해체하는 아픈 마음(?)을 계속 공감할 때 즉 노동자가 자꾸 예술가가 될 때, “조깅하는 사람들”의 “봄”보다 더 나은 종류의 봄은 분명 올 것 같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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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57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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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52 +0000</pubDate>
		<dc:creator>백납(수유너머R)</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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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a href="http://suyunomo.net/?p=11420"><편집자의 말>157호. 누가 기타의 주인인가</a></b>]]></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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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추억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때 당신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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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8 +0000</pubDate>
		<dc:creator>별집사</dc:creator>
				<category><![CDATA[글쓰기 최전선]]></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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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시아버님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건 작년 추석 이후였다. 그 전에는 스스로 몸을 가누고 앉아있으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추석 때엔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하셨다. 요번 설에는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수안아 이게 누고? 숙모 아이가.” 마흔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우리 부부가 대견해서인지 조카 수안이에게 나를 가리키며 수십 번도 넘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말씀을 듣지 못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6쪽)</em></p>
<p><em>&lt;앙드레 고르, D에게서 온 편지&gt;</em></p>
<p><strong><span style="color: #003366;"> 내 뼈가 으스러질지라도</span></strong></p>
<p>시아버님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건 작년 추석 이후였다. 그 전에는 스스로 몸을 가누고 앉아있으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추석 때엔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하셨다. 요번 설에는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수안아 이게 누고? 숙모 아이가.” 마흔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우리 부부가 대견해서인지 조카 수안이에게 나를 가리키며 수십 번도 넘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말씀을 듣지 못한다.</p>
<p>수십 년 간 수영으로 단련해 왔던 아버님의 몸도, 신문이나 시사 잡지, 두꺼운 책으로 가꿨던 정신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내가 몬 살겠다. 왜 그걸 그렇게 하냐고!” 아버님의 뜻 모를, 철없는, 아이 같은 행동 덕에 듣게 되는 말씀이다. 대구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들었던 농담대신 어머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p>
<p>시어머님은 전원주를 꼭 빼닮으셨다. 웃음소리도 그렇고, 작은 몸도 그렇다. 전원주 닮은 시어머님의 웃음소리가 작아진 것도 작년 추석 이후다. 아버님은 최근 치매와 척추협착으로 장애등급을 받으셨기에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작년 말부터는 하루 몇 시간 동안을 방문 간호를 받으신다. 워낙 지극 정성으로 아버님을 챙겨 오신 어머님은 도움의 손길이 아직은 익숙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님의 굳어진 육체를 요령 있게 다룰 수 있는 건 오로지 시어머님이시다. 175cm의 큰 키와 76kg의 건장한 몸은 더 이상 어머님에게는 든든함과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소변을 못 가리셔서 생기는 매일 매일의 산더미 같은 이불 빨래와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이시려는 고집이 어머님의 몸무게를 야금야금 가져간다. 이 낯선 상황 속에서 온전히 노부부가 견디고 있다.</p>
<p>우리가 해 드릴 수 있었던 일은 몇 통의 안부전화, 요양 서비스 신청, 몇 푼의 용돈과 선물을 드리는 것. 이것들 외에는 고스란히 어머님 몫이다. 남편 병수발 15년에 자신은 허리뼈에 여러 군데 금이 간 것도 모를 정도로 온힘을 다했던 김상옥 시조시인의 부인처럼 그렇게 으스러져라 간호하신다. 사려 깊고 따뜻했던 아버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지금의 어려움을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대구가 아닌 서울에 떨어져 있어서 병간호에 열외가 된 게 아니라 어머님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라도 아버님 간호는 다른 사람 손에 절대로 맡기지 않으실 것 같다. 매일매일 하얗게 세탁되는 아버님 옷들이랑 이불 빨래가, 아버님 입에 딱 맞게 최적화된 콩잎 장아찌, 곰국, 호두멸치볶음 등등의 여러 가지 정성스런 음식과 간식이 그 증거품이다.</p>
<p><span style="color: #003366;"><strong>무너지는 당신을 볼 수가 없어서</strong></span></p>
<p>“다시는 날 병원에 보내지 마. 죄책감 갖지 마, 날 위해 애쓰지도 말고.” 영화 ‘아무르’에서 아내 안나가 남편 조르주에게 첫 번째 뇌졸중으로 병원에 다녀온 이후에 하는 말이다. 거실 의자에 앉는 작은 움직임조차도 혼자의 힘으론 할 수 없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남편에게 안긴 후에 힘겹게 몸을 걸치게 되는 의자,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된 손,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자존심. 그래도 남편에게는 다 보여줄 수 있다.</p>
<p>“축축하게 젖었네.”</p>
<p>“별거 아니야.”</p>
<p>대소변을 못 가리게 된 아내의 자존감을 생각해서 조르주는 담담하게 말하고 수건으로 닦아준다.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고, 신문을 읽어주기도 하고, 밥을 먹여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설거지하고, 물을 먹여주고, 두 명의 간병인을 쓰고. 남편 조르쥬의 한결 같은 보살핌과 정성에 상관없이 시간이 갈수록 안나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요양소에 절대 보낼 수 없다는 남편의 마음이, 이웃이 존경스러워하던 그 마음이, 물 한모금 안 먹고 어린아이처럼 뱉어내는 안나의 뺨에 손을 대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p>
<p>조르쥬는 꿈 속에서 아파트 복도가 물에 잠기는 고통을 맛보기도 하고, 안나가 다시 피아노 연주를 하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두 사람만 남아 견디는 상황이 그 꿈처럼 무서웠을 테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수백 번의 간절한 생각이 연주하는 환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p>
<p>안나가 아프다고 소리를 칠 때, 조르쥬는 옆에 와서 다정하게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열 살 때에 캠프에 갔던 어릴 적 기억을.</p>
<p>“캠프가 마음에 안 들면 어머니께선 엽서에 별을 그리라고 했지. 내가 보낸 엽서에 온통 별이었어. 그 엽서를 잃어버려서 너무 아쉬워.” 결국 조르쥬는 안나와의 생활이 매 순간 별을 그려야하는 엽서처럼, 지옥처럼 되어버릴 까봐 두려워서였는지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만다. 가장 두려운 것은 변해가는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시작된 안나의 오른쪽 마비 증상이 점점 온몸으로 번져나가 자리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처럼, 그렇게 점점 고약하게 달라져 가는 자신을, 자신의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절대로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보살펴 지키겠다는 절절한 사랑과 용기가 살인으로 변질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p>
<p>마지막에 조르쥬는 안나(이미 죽은)와 함께 코트를 입고 외출을 한다. 조르쥬는 이미 안나를 빼놓고서는 다른 생활을 해 갈 수가 없다. 조르쥬는 안나가 없는 세계가 무서웠지만, 이제는 안나가 있어서 무서운 세계로 바뀌었다. 조르쥬는 감당할 수 없는 세계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올렸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상대와의 추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도 감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모습은 더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온전히 한 사람이 주위의 아무 도움 없이 다른 한 사람을 챙겨야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몬다. 이 상황에서 이제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질문한다.</p>
<p><strong><span style="color: #003366;">당신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끝을 몰라</span></strong></p>
<p>‘D에게서 온 편지’에 고르는 도린이 얼마나 아름답고, 현명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는지, 남편보다도 더 뛰어난 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와 사랑은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고픈 경지에 이르게 했다. 도린은 거미막염과 자궁암을 앓고 있었다. ‘밤새도록 발코니에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지요.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79쪽)</p>
<p>젊은 시절에 고르가 수입이 적은 기자 생활을 하며 글쓰기를 하는 동안, 도린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남편의 기사 작성을 위해 자료 정리와 조사를 했다. 옆에서 남편을 돕는 도린은 철학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고르의 저서에는 도린의 비판과 견해가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과 저서에 도린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모습이 드러나지 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미안해진 남편이 저술하게 된 이 책. 바로 고르의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저서를 쓸 때까지 고르는 도린이 있어서 발전했고, 완성되었다. 도린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한 지 58년 만에 이 부부는 시골집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주사를 맞은 뒤 이생을 함께 떠났다. 둘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 책 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부부의 한 모델로 남아 있다. 나는 이 부부가 선택한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하면서 나눴을, 서로를 풍성하게 해주는, 서로를 아름답게 살리는 사랑은 닮아 보고 싶다.</p>
<p>늙음은 피할 수도 없고, 이겨낼 수도 없는가. 늙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젊어서 싱그러웠고, 팽팽하고, 탄력 있던 기억들이 남아있는 한은. 그 누구도 늙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르’를 보면서 무거워지는 물음 때문에 다시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앙드레 고로와 도린을 보았다. 나는 뭐라고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어떻게 부부가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버겁다는 것만을 더 잘 확인했을 뿐이다.</p>
<p>복잡한 마음으로 마트에 갔다. 오징어채 옆을 지나는 순간 며칠 전부터 남편이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맛있게 먹어줄 남편 얼굴을 상상하며 장바구니에 넣는다. 반찬 하나 만드는 데에 재미를 붙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저녁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남편을 기다릴밖에. 다른 방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p>
<p><em>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더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90쪽) &lt;앙드레 고르, D에게서 온 편지&gt;</e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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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위기에서 일탈하면서 현실주의자의 얼굴에 맛난 방귀를 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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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8 +0000</pubDate>
		<dc:creator>가게모토 츠요시</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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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판에서 벌어진 여러 사태를 보면서 힘이 빠지기만 했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안 모씨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그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 모씨 같은 사람은 인기가 아주 있으며, 더럽기만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믿음직하게 보인다는 것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고 웃는 얼굴을 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끔찍한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으로서의 더러움이 없게 보이는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알기 쉬운 구도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p>
<p>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판에서 벌어진 여러 사태를 보면서 힘이 빠지기만 했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안 모씨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그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 모씨 같은 사람은 인기가 아주 있으며, 더럽기만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믿음직하게 보인다는 것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고 웃는 얼굴을 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끔찍한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으로서의 더러움이 없게 보이는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알기 쉬운 구도이다.</p>
<p>물론 내가 이렇게 쓴다는 것의 이유는 위에 구도에 전혀 동의할 수 없으며, 그러한 구도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기가 있으며 표를 획득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판에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속마음이 있는 사람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해서 정치적인 힘을 얻으려 하는 것 역시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를 정치판에 끌려오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여러 당연한 일들을 적어놓은 것에 의미는 몇 가지 있다. (1)대중을 끌려오기 위해는 인기가 있는 자를 세워야 한다는 관념, (2)그러하기 위해는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관념, 등등이, 여기까지 써온 논의 밑에 깔려 있는 생각이다. 안 모씨를 중심으로 세우면서 단결하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나 하는 생각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게 우리에 힘을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를 약하게 그리고 얌전하게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여기에서 쓰는 내용은 특히 새로운 것은 없다. 대중화할 것인가, 혹은 볼루세비키화할것인가, 라든가 하는 역사적인 논쟁에서 이미 많이 논의된 일들이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논의가 아님에도 불고하고, 좀 이런 고전적인 논의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저런 논읠 해본다는 것이다. 물론 정당정치 틀에서 정치나 사회를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내가 하려는 논의에 동의할 수 없겠지만.</p>
<p>2</p>
<p>괜찮게 보이면서 인기가 있는 사람을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면 (1)그것이 누군가에 기대한다는 점에서, (2)인기가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의미에서, (3)괜찮게 보인다는 점에서 타협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다.</p>
<p>좀 더 자세히 보자.</p>
<p>(1)기대한다는 것은 자기의 목소리의 대신에 말해준다는 것에 대한 기대이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인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러하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누군가에 대변시키면 안된다. 어떤 깔끔한 논의를 가지고 자기를 대변해주는 존재에 기대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을 빼 버리는 일이다. 더욱 이는 자기와 누군가가 같이 논의하면서 언어를 짜낸다는 운동과정이 없다.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대해보리면 자기스스로의 힘이 없어지며, 대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눈이 약해지며 긴장감도 없어진다.</p>
<p>(2)인기가 있다는 것은 정치판에서 표를 얻는다는 점에서만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생활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불고하다. 인기 혹은 표를 얻어야한다는 시고는 우리가 정치판에서의 사고에 말려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쓸모없는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표를 얻기 위해는 웃어야 하며, 욕도 하면 안되며, 마치 부처님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정치적인 인기를 위해 자기를 억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얌전한 선택 끝에 자기의 비판력까지 없어지며 권력에 회유당할 것이 인기자의 결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인기를 얻을 것을 생각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의 표현을 해방시키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인기를 얻기 위해, 자기의 표현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이다. 표 계산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표 계산을 한다는 사고는 얼마나 비참한 사고일까.</p>
<p>(3) 괜찮게 보이는 일에 타협하는 일 역시 비참한 결가를 낼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정당들이 합동하거나 협력하거나 할 일이 많지만, 우리는 그런 타협의 논리에 따라갈 필요는 깨 한 알 정도도 없다. 괜찮다는 것 자체가 타협의 논의인 것이다. 타협한다는 것은 자기의 표현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의 표현을 억압해버린다는 의미이다.</p>
<p>3</p>
<p>안 모씨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대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기대감은 완전히 타협의 논리에 휩싸이게 되어버린 결과가 아닐까. 왜 그렇게 사회가 착하게 타협을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한국 사회를 구성할 사람들이 아주 착하다는 점이다.</p>
<p>약한 개인적인 얘길 한다면, 나는 한국에 살면서 새누리당 지지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아주 한정된 사람들과 같이 지낸다는 일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협소한 한국사회만을 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친척관계가 있거나 어렸을 무렵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든 종교든 다얀한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적으로도 아주 협소한 한국을 아는 나에게도(그러니까 좌익적인 한국 사람밖에 모르는 나에게도), 한국사람들의 착함에 대해서는 신기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내가 우려하고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lt;진보적&gt;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우익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글의 문제밖에 있다). 그것이 단적으로 말하면 박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안 모씨를 기대한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 모씨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는 아주 비참하다. 완전히 표 계산 정치의 논리가 신체에 스며들며 다른 자기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착한 모습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대통령 선거 같은 커다랗게 보이는 선택의 시기에 높혀진다. 일본에서의 요새 사례로 본다면 반원전 데모 속에서의 얌전함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왈&lt;민폐를 끼치면 지지를 얻을 수 없다&gt;, 왈&lt;경찰과 싸우면 데모의 이미지가 나빠지며 지지를 얻을 수 없다&gt;, 왈&lt;찻길로 빠져나오면 교통이 혼잡하게 되니까 인도에서 항의행동을 해야한다&gt;, 왈&lt;&#8230;&gt;,, 등등의 귀찮으면서, 스스로의 표현을 스스로 억압하는 소리들&#8230;</p>
<p>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lt;민폐&gt;라는 것과 운동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일본에서는 할 수 없는 표현을 한국에서 할 수 있다는 식의 틀로 지금까지 한국 운동을 인식해왔지만, 안 모씨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는 분위기를 보면서, 정말 내가 설정한 틀 그대로 현재 한국사회를 볼 수 있을까는 의문을 느끼고 있다.</p>
<p>그들은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하면서, 현실을 중심으로 현실에 맞게 운동을 꾸미려고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운동은 축소재생산밖에 할 수 없을 것이며, 아류밖에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츠모토 하지메다 벌이는 운동은 아주 재밌는데, 마츠모토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면 재미없는 아류 운동 밖에 만들어낼 수가 없다. 마츠모토 역시 자기가 종교의 중심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어떠한 과거 운동에서 배운다는 것은 아류를 만들어낼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한 운동의 선공한 부분만을 가지고 배운다면 그것은 비참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잃은 모습으로서의 아류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의 과정으로서의 실패이며 패배들이다. 그것들을 이어받으면서, 스스로의 현장에서 생각해낸 것이 있어야 겨우 아류가 아닌 비판적인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인기라든가 대중적인 지지를 앞세우는 산수의 더하기적인 계산 정치보다 훨씬 강하게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을 현실로서 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p>
<p>4</p>
<p>같은 내용에 대해서 거듭거듭하면서 써버린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안 모씨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는 사회를 별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썼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기대하는 게 스스로의 비판력을 상실시킨다는 것이다. 연대할 대상으로서의 누군가가 아니라 기대할 대상으로서의 누군가를 설정한다는 것 역시 &lt;논의&gt; 과정을 뺀 운동을 만들어버린다(과연 그것을 운동이라 할 수 있을까?).</p>
<p>안 모씨를 기대하는 얌전한 자에게 우리가 말해야할 것이 많다. 진보진영이 믿을 수 없으면 스스로 생각해라는 것이다. 원래 정치인을 믿고 투표한다는 것은 정치의 포기에 불과하다. 투표중심의 인기주의는 우리의 정치 속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분위기를 찢어낼 방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얌전하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는 것은 아주 힘들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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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울락불락 삼형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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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7 +0000</pubDate>
		<dc:creator>윤석원(전 전교조교사)</dc:creator>
				<category><![CDATA[하버지가 쓰는 편지]]></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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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메일로 받은 동영상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홍아의 창작 동화는 아닐 게다. 그렇다면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구연이 먼저였을 게다. 그런데 그 구연이 얼마나 생생했기에 이를 다시 엄마 앞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아마도 엄마가 손주 동영상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얘기를 시켰을 게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DSCF1011.jpg" rel="lightbox[1142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DSCF1011-400x300.jpg" alt="" title="DSCF1011" width="400" height="300"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11422" /></a></p>
<p style="text-align: right;">-문홍아(4년 1개월)</p>
<p>옛날 옛날에 어느 산 밑에<br />
울락불락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br />
삼형제는 먹을 것이 없어서<br />
아주 아주 배가 고팠습니다.<br />
그런데 시냇물 건너편에 산이 있었습니다.<br />
산에는 풀이랑 열매랑 버섯이랑<br />
먹을 것이 엄청 엄청 많이 있습니다.<br />
막내 울락불락이 먼저 산에 갑니다.<br />
산 밑에는 시냇물이 흐르고<br />
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br />
그런데 그 다리 밑에는<br />
무서운 도깨비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br />
막내가 사알 살 그 다리를 소리 안 나게 건너가는데<br />
도깨비가 갑자기 나타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br />
“어느 놈이 내 다리를 건너가느냐?<br />
꼼짝 말고 거기 있거라.”<br />
“배가 고파서 산에 가서 풀을 뜯어먹으려고요.”<br />
“나도 배가 고파서 너를 먹어야겠다.”<br />
“먹지 않는 게 좋을 걸요.<br />
나는 빼빼 말라깽이거든요.”<br />
엄마:아, 아가 말라깽이가<br />
나는 빼빼 말랐으니 먹지 말라고 그랬구나.<br />
“그렇다면 안 먹는다. 빨리 가버려라.”<br />
둘째 울락불락이도 배가 고파서 산에 갑니다.<br />
다리는 건너는데 자꾸 소리가 납니다.<br />
갑자기 도깨비가 나타나서 소리지릅니다.<br />
“어느 놈이 내 다리를 건너가느냐.<br />
거기 꼼짝 말고 있거라.”<br />
“나는 둘째 울락불락입니다.<br />
배가 고파서 풀좀 뜯어먹으려고요”<br />
“나도 배가 고프니 너를 먹어버리겠다.”<br />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걸요.<br />
나는 매일 굶어서 기름기가 없는데요.”<br />
엄마, 그런데 기름기가 뭐야.<br />
흐흠, 살이 많이 쪄서 배가 축 늘어지게 만드는 거야.<br />
그래서 도깨비가 둘째를 보내주었니?<br />
“그렇다면 안 먹는다. 빨리 가버려라.”<br />
이제 큰 울락불락이 다리를 건너갑니다.<br />
쿵 쾅 쿵 쾅 발자국 소리가 납니다.<br />
“어느 놈이 내 다리를 건너가느냐.<br />
거기 꼼짝 말고 있거라.”<br />
“나는 큰 울락불락이다. 덤빌 테면 덤벼라.<br />
내 뿔은 두개의 큰 창이다.<br />
이걸로 너의 두 눈을 받아버리겠다.<br />
내 발굽은 두 개의 큰 돌이다.<br />
이걸로 너를 걷어차서 쓰러드리겠다.”<br />
큰 울락불락이 도깨비에게 달려들었습니다.<br />
두 뿔로 두 눈을 받아버리고 두 발굽으로 힘껏 걷어차서<br />
다리 밑으로 떨어뜨려 버렸습니다.<br />
다리를 지키던 도깨비가 멀리 도망갔습니다.<br />
이제 울락 불락 삼형제는 매일 산에 갈 수 있습니다.<br />
풀이랑 열매랑 버섯이랑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br />
아름다운 이야기 끝.</p>
<p>동영상( DSCF1398.AVI -2013년 4월 23일 화요일)에서</p>
<h4>녹취 후기</h4>
<p>메일로 받은 동영상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홍아의 창작 동화는 아닐 게다. 그렇다면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구연이 먼저였을 게다. 그런데 그 구연이 얼마나 생생했기에 이를 다시 엄마 앞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아마도 엄마가 손주 동영상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얘기를 시켰을 게다.<br />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동화를 고르는 수준도 놀라웠다. 전래동화라 등장인물이나 동물의 이름도 친근하고 내용 또한 용기와 지혜를 보여주는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더욱 즐겁게 한 것은 홍아의 구연 솜씨였다. 그 긴 이야기 줄거리와 의인화된 동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를 재현해 내다니.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홍아 나름대로 해석하고 창작한 줄거리와 표현들일 게다. 녹취로는 그 창작 부분과 그 표현들까지 다 살려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br />
게다가 녹취 과정에서의 첨삭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과 일치되도록 원작을 보존하기 위해서 애썼음을 밝혀 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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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가 기타의 주인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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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7 +0000</pubDate>
		<dc:creator>주노정</dc:creator>
				<category><![CDATA[편집실에서]]></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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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저 요즘 기타줄 좀 튕깁니다. 작년 연말 아는 친구로부터 기타를 한동안 배운 이후로, 요즘은 혼자서 주구장창 한 곡만 매일 연습합니다. 그 친구에겐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겨우내 연습을 잘 하지 못하다가 날이 풀린 요즘 다시 기타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은 더도 덜도 아닌 매일 딱 10분정도만 합니다. 감을 잊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반복되는 일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틀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기타 잘 치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처음 기타를 칠 때는 기타줄을 누르는 왼손가락이 ‘아려서’ 애를 먹었습니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배기는 과정이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저 요즘 기타줄 좀 튕깁니다. 작년 연말 아는 친구로부터 기타를 한동안 배운 이후로, 요즘은 혼자서 주구장창 한 곡만 매일 연습합니다. 그 친구에겐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겨우내 연습을 잘 하지 못하다가 날이 풀린 요즘 다시 기타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은 더도 덜도 아닌 매일 딱 10분정도만 합니다. 감을 잊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반복되는 일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틀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기타 잘 치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처음 기타를 칠 때는 기타줄을 누르는 왼손가락이 ‘아려서’ 애를 먹었습니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배기는 과정이죠.</p>
<p>작년 10월, 제 기타 선생은 저와 단둘이 벌이는 ‘연말 합동 공연’을 야심차게 제안했습니다. 처음 한 달은 기타의 기본적인 이론과 기술들을 배우고, 나중 두 달은 가요 4곡을 카피, ‘마스터’해서 발표하자는 계획과 함께 말입니다. 기타 초보자로서, 공연이라기보다는 학예회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평소에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도 금방 더 좋아질수 있을거란 꿈에 부푼 생각에 넙죽 ‘오케이’ 해버리고 말았습니다.</p>
<p>그런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는지.. 하고 싶은 곡은 왜 이리 많은지.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날 눈을 떠보니 공연이 3주 남아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한 달 남겨놓고 계획했던 4곡 중 두 곡은 포기.  일단 “나머지 잘할 수 있는 2곡만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 잘 해보자” 기타 선생과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공연 일주일 앞두고, 홀로 남겨져 불굴의 의지로 연습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잠시 좌절하여 나름의 ‘객관적 시각’으로 스스로의 기량을 반성해보았습니다. ‘2곡도 벅차다. 한 곡만 연습했어야 했는데&#8230;’ 울고싶었습니다. 애시당초 초보의 실력으로는 그 모든 것이, 무리한 계획이었습니다. ‘의욕 과잉’이었죠.</p>
<p>공연이 몇 일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한 지인이 제게 직접 말을 걸더군요. “너, 기타 왜 치냐”. 저는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아무리 기타를 서툴게 쳐도 그렇지, 모욕감을 주듯한 뉘앙스로 말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 기타를 나름 잘 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아니면 실력자여서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요? 그런 그가 여기에 한마디 덧붙입니다. “가난한 애들이나 기타치는 거야”.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매일 할 일 없이 빈둥대는 듯 보이는 백수 친구가 돈 안되는, ‘되도 않는’ 기타만 치고 ‘자빠져’ 있으니 불쌍해 보일 법도 합니다.</p>
<p>그 일이 있은 후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아주 ‘후달리게’ 연습 했습니다. ‘분노의 연습’이라고나 할까요. 드디어 공연 당일. ‘연습을 공연하듯, 공연을 연습하듯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저 같은 ‘초심자’에겐 되뇌이고 되뇌어도 느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긴장해서 공연을 망쳐버리고 말았죠. 나름 열심히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누구 말대로 모두의 공연장을 저의 연습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씁쓸했습니다. </p>
<p>충분히 연습을 하고나서 공연에 임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이지요. 그런면에서 저에게 청중의 귀를 어지럽힌 ‘죄’를 적어 넣은 ‘반성문’을 걸어놓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변명하자면, 초보자로서 비록 실패에 가까운 성과였지만,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내놓고 당당한 태도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너무 뻔뻔한가요?</p>
<p>저는 기타를 배우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름의 ‘예술’ 작업을 체험했다고 자부합니다. 악기를 다루며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계 맺고, 늘 변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증폭되는 고민에 귀를 기울이며, 흔들리는 믿음의 문제에 봉착하고, 한계에 도달한 상황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상황, 고민, 가치, 한계 그 어떤 것이라도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드러낼 수 있다면,  꼭 악기나 미술을 다루지 않더라도 그 모든 이들이 다 예술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말이죠.</p>
<p>이번 위클리 수유너머 157호는 기타 만들‘던’ 사람들, 콜트콜텍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 4월 수유너머N에서 열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의 화요토론회, 그리고 해고노동자들과 연극만들기를 시도하는 진동젤리의 제안이 있습니다. 조만간 이어지는 콜트콜텍 2탄도 기대해주세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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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공연 만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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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6 +0000</pubDate>
		<dc:creator>죠스(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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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여전히 연극 작업이야말로 사람/사물들과 가장 '잘' 만나게 해주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실제로 친해지고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동시에 단순하게 평가내릴 수 없는 서로의 ‘날 것’을 보게 되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서로의 ‘날 것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연극 작업이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작업은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 그것을 ‘날 것’ 그대로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20;No worker no music, No music no life&#8221;</p>
<p>- 소외에 대하여</p>
<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19" title="images"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images.jpg" alt="" width="275" height="183" /></p>
<p><strong><span style="color: #008080;">0. 제안의 말 </span></strong></p>
<p>여전히 연극 작업이야말로 사람/사물들과 가장 &#8217;잘&#8217; 만나게 해주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실제로 친해지고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동시에 단순하게 평가내릴 수 없는 서로의 ‘날 것’을 보게 되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서로의 ‘날 것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연극 작업이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작업은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 그것을 ‘날 것’ 그대로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p>
<p>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분들을 만나면서, 과연 음악이란 무엇이고 문화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타 노동자들의 손에서 시작된 음악과 문화가 정작 그들을 자신의 삶의 터전인 공장에서 몰아낸 것은 아닐까. 기타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은 무엇이며, 소위 예술가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문화 소비자들이 소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결국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각자 소외된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기타 등등.</p>
<p>기타 노동자들을 만나서면서 든 수많은 질문들이 이번 작업의 과제될 것입니다. 그 수많은 질문들을 ‘날 것’ 그대로 마주하고 함께 고민해 관객들과 ‘날 것’ 그대로 만날 수 있기를 감히 바래봅니다.</p>
<p><strong><span style="color: #008080;">1. 공연 주제 및 소재 </span></strong></p>
<p>“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이 없다.”</p>
<p>이 공연의 주제인 &#8221;노동이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이 없다&#8221;는 투쟁구호입니다. 지난 7여 년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 과정에서 만들어진 구호입니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악기와 콜텍(합쳐서 콜트콜텍)은2007년 2008년 경영상의 위기를 내세우며 국내 공장을 모두 폐쇄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싼 노동력을 쫓는 자본의 논리와 ‘편리한’ 경영을 방해하는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한 사측의 노력이 숨어있었습니다. 공장 폐쇄로 인해 정말 하루 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간 이 상황을 알리는 여러 방면의 싸움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 중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복직 판정을 받았고, 서울고법(대법은 상고 중)에서도 이번 해고 건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회사는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점거하고 있던 부평 콜트악기 공장이 올해 2월에 무너져 내린 후, 현재 그들은 그 맞은편 농성장을 꾸리고 원직 복직과 콜트 악기 불매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p>
<p>&lt;참고 사이트, 기사, 동영상&gt;</p>
<p>- 사이트 : 콜트콜텍+문화행동</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a href="http://cortaction.tistory.com/">http://cortaction.tistory.com/</a></span></p>
<p>- 콜텍 기사 프레시안 - 이들에게 공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a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204093648&amp;section=0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204093648&amp;section=03</a></span></p>
<p>- 콜트콜텍 투쟁 소개 영상</p>
<p><a href="http://cortaction.tistory.com/entry/콜트콜텍-투쟁-소개-영상-영어자막"><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http://cortaction.tistory.com/entry/</span>콜트콜텍-투쟁-소개-영상-영어자막</a></p>
<p>- 콜트콜텍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 유투브에서 검색</p>
<p>&lt;콜트콜텍 미니다큐 공장&gt;, &lt;꿈의 공장&gt;, &lt;거리특강 노동&amp;기타이야기1,2 -콜뺀&gt;</p>
<p>- 이 외에도 다양한 기사들과 동영상들이 있음. ‘콜트 콜텍’으로 검색.</p>
<p><strong><span style="color: #008080;">2. 작업의도</span></strong></p>
<p>노동자가 악기를 만들지 않으면 음악은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없다면 우리 삶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콜트콜텍 상황이 잘 보여주듯이, 우리 삶 속에서 노동, 음악(혹은 문화), 삶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보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로만 또는 그것을 소비자로만 살아갑니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악기를 비롯한 문화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더 싸게 더 빠르게 그것들을 소비하려고 하면 할수록, 공장은 더 싼 인건비와 유연한 노동력을 원하게 됩니다. &#8216;내 삶&#8217;을 풍요롭게 하려는 적극적 행위의 결과가 &#8216;타인의 삶&#8217;을 궁지에 몰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과연 싸고 빠르게 수집한 그 수많은 문화 상품들이 &#8216;내 삶&#8217;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이 맞는 지도 물어봐야할 중요한 질문입니다.</p>
<p>우리는 어쩌면 제 각각 흩어져 소외된 노동, 음악, 언어의 홍수 속에서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번 작업에서 화려한 음악 또는 언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소외되고 은폐되어 있는 우리의 노동과 삶을 드러내보고자 합니다.</p>
<p><span style="color: #008080;"><strong>3. 작업 방식 참조 - 리미니 프로토콜</strong></span></p>
<p>“우리는 작업을 하면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연극의 가능성을 계속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보다 상황 그 자체에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p>
<p>이번 작업의 접근 방식은 상당부분 포스트드라마 시어터의 기수인 리미니 프로토콜을 참고하고자 합니다. 무대, 드라마 혹은 숙련된 연기 등 재현의 테크닉들보다는 같은 시공간 속에서 지금, 여기(허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를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 포스트드라마 씨어터의 기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 역시 현대 미디어의(무대의) 연출과잉에 묻혀있는 현실을 소환해 그것들과 우리(1차적으로는 작업팀, 2차적으로는 관객)를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고자 합니다.</p>
<p>간략히 리미니 프로토콜의 작업을 소개하자면, 그들은 재능을 가진 소수만이 극장에서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에 대항하여 전문배우가 아닌 각자의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8217;일상의 전문가&#8217; 혹은 &#8217;레디메이드 공연자&#8217;들과 함께 작업합니다. 비전문배우들 하지만 각자의 영역의 전문가들인 이 &#8217;일상의 전문가&#8217;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무대 위에 노출시킵니다. 따라서 무대는 허구가 아닌 실제가 되고 그 &#8217;일상의 전문가&#8217;들의 삶 자체가 무대가 됩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리미니 프로토콜은 연습실에서 작업을 시작하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경청하고 대화하고, 자료를 찾아 분류하고, 첨부하고 편집하는 다큐멘터리 방식을 차용해 연극을 만듭니다.</p>
<p>* 참고 서적 : &lt;동시대 연출가론 - 서구편2&gt;, 연극과 인간</p>
<p>리미니 프로토콜의 공연 &#8221;칼 맑스 자본론 1권&#8221;</p>
<p>로또대박을 꿈꾸는 시각장애인 콜센터 직원, 경제사학자, 영화감독, 슬롯머신중독자 등 여덞 명의 각양각색 &#8216;일상의 전문가&#8217;들과 함께 자본론1권에 대한 토론과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공연.</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a href="http://www.youtube.com/watch?v=8f7nhccqhsc">http://www.youtube.com/watch?v=8f7nhccqhsc</a></span></p>
<p>리미니 프로토콜의 공연 &#8221;카르고 소피아&#8221;</p>
<p>화물차를 무대로 개조해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직접 화물차(무대)를 운전하며 관객들에게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공연.</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a href="http://www.youtube.com/watch?v=mYtBWxCCqCo">http://www.youtube.com/watch?v=mYtBWxCCqCo</a></span></p>
<p><strong><span style="color: #008080;">4. 작업 일정</span></strong></p>
<p>4월 : 멤버 확정, 주요 포지션 확정, 아이디어 교류, 기초 자료 수집 및 공유</p>
<p>5월 : 자료 모집, 인터뷰 진행, 섭외, 아이디어 피드백을 통한 대본 구성</p>
<p>6월 : 섭외 및 대본 구성 확정하기</p>
<p>7월 : 리허설 및 보완</p>
<p>7월 말 &amp; 8월 초 : 공연</p>
<p><strong><span style="color: #008080;">5. 작업팀</span></strong></p>
<p>진동젤리라는 팀은 정해진 멤버들이 계속 함께 공연을 만드는 팀이 아니라, 작업을 할 때마다 멤버를 구성해서 할동하는 팀입니다. 작업 포지션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함께 아이디어 및 작업 방향을 논의하는 - 전원 연출가 - 작업 방식을 추구합니다. 현재 작업은 시작단계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터디와 모임을 가지며 아이디어를 변화/완성시켜 나갈 예정입니다.</p>
<p>진동젤리 소개 (2009~ 현재) :</p>
<p>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에 함께 공명하며, 젤리처럼 유연하게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되고자 막무가내 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만듬</p>
<p>- 2011년 10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제2회 도시영화제 기획 - 명동성당 재개발 구역에서 오프닝 퍼포먼스</p>
<p>- 2012년 4월 ~ 현재 카페 연극 진행</p>
<p>(헤롤드 핀터 “산말”, 창작극 &#8221;할 말 있어&#8221;, 윤영선 &#8221;임차인&#8221; 등 공연)</p>
<p>- 2012년 7월 변방연극제 참가작 &#8220;모-래&#8221; (리슨투더시티와 공동작업)</p>
<p>- 2012년 10월 장애인미디어아트 “자막을 끄겠습니다.”제작 참여(연출)</p>
<p>- 각종 세미나, 글쓰기, 연기 워크샵 진행</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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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테인레스 접시에 담긴 죽음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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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6 +0000</pubDate>
		<dc:creator>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uyunomo.net/?p=11417</guid>
		<description><![CDATA[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일 생길 때마다 찾는 마음을 모른 척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입원해 있다는 동생을 찾아가보니 아픈 기색이 역력한 초로의 아저씨셨다.

아저씨는 열여섯 넘어 돈 벌러 고향 전라도를 떠나와 여기저길 떠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식구들과 소식이 끊기고 어찌 여자 하나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그 마누라도 벌써 십여 년 전에 집을 나가고 그 뒤로 자식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리곤 위암에 걸렸다고 한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p=11374">스테인레스 접시에 담긴 죽음Ⅰ</a>에 이어서&#8230;</p>
<p>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일 생길 때마다 찾는 마음을 모른 척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입원해 있다는 동생을 찾아가보니 아픈 기색이 역력한 초로의 아저씨셨다.</p>
<p>아저씨는 열여섯 넘어 돈 벌러 고향 전라도를 떠나와 여기저길 떠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식구들과 소식이 끊기고 어찌 여자 하나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그 마누라도 벌써 십여 년 전에 집을 나가고 그 뒤로 자식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리곤 위암에 걸렸다고 한다. 그럼 식구 소식은 통 모르냐는 말에 마지막으로 곁을 떠난 서른 넘은 아들은 방세를 못 내 결국 방을 빼게 되었는데. 월세 보증금 거의 전부를 강탈해가다시피해서 나간 후 아무 소식이 없다는 대답이다. 자식 노릇은 고사하고, 찾아와서 무슨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무서우니 말도 꺼내지 말란다.</p>
<p>그렇게 아픈 몸을 끌고 집도 없고 식구도 없이 홀홀단신이 되어 대림역 인근의 친구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려져 119로 실려 오게 되었다는 것이 얼추 그간의 사정이다. 그 몸과 그런 사정으로 30년 만에 누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 동생이 자꾸 배가 불러오니 MRI라도 찍어봐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어떡하겠느냐고 좀 도와달라는 것이 할머니의 부탁이었다.</p>
<p>사정을 들어보니 급하긴 하였다. 어쨌든 구로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구로사람이어야 하는데 아저씨는 방은 뺐지만 여전히 방이 있던 광명시 주민으로 되어있었다. 대림역 집은 어찌 된 것이냐 물어보니 친구 집에 조금 돈을 내고 잠깐 얹혀살려던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할머니 집으로 아저씨 주소지를 옮기자고 하였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네도 아저씨가 들어오시면 지원이 변경될 수도 있다고 하니 그도 또 망설여졌다. 그럼 그 다음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 집밖에 없엇다. 부탁할 만한 곳도 없고 다급한데 더 따질 일도 아니다 싶었다. 진짜 아저씨를 들일 형편은 안 되지만 일단 주소지를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을 하든 다른 방법을 좀 찾든지 해서 차차로 그 다음 일은 해결할 일이다 싶었다.</p>
<p>필요한 서류를 들고 다시 아저씨 사인을 받으러 병원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저씨도 할머니처럼 글을 모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찮으셔서 그런지 어쩐지 아저씨는 자기 이름자도 제대로 쓸 줄 몰라 하셨다. 가운데 봄을 뜻하는 글자에서 &#8216;ㅊ‘은 특히 어려운 눈치셨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자기이름 글자조차 제대로 못쓰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 깡마른 몸뚱이로 이 엄청난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겪어내면서 그 남자는 자기 이름 글자 석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온 몸으로만 이 파고를 넘기려니 몸뚱이가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평생을 써왔다는 인감은 당신 이름도 아니었다. 이름도 잘 못 쓰는 그는 온갖 것을 다 잃고 암 덩어리 하나만을 간직한 채 30년 만에 식구라고 그래도 누나를 찾았던 것이다.</p>
<p>할머니는 또 숨이 꼴딱꼴딱 조급해 하셨지만 병원비는 채 20만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당장의 병원비도 그렇지만 그 보다는 앞으로 어찌 살 것인지 그 궁리가 급했다. 아저씨를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게 해드리는 것이 가장 나은 도리인 듯 싶었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식도 없는 가족들이 부양포기 의사를 밝혀야만 한다. 가출해서 연락도 없는 식구들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행정절차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참 답답하였다.</p>
<p>또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 할지라도 어차피 식구들이 있어서 나오는 돈은 겨우 얼마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여기서 방 하나 얻어 방값내고 세금내고 나면 입에 풀칠도 겨우겨우 할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양시설 같은 곳을 가시는 게 낫겠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환자가 완강히 거부를 하였다. 거기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살기도 녹록치 않다. 이미 위뿐만 아니라 내장 전체에 암이 전이되기 시작하여 회복이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병원에 있으면서 누님 수발을 받으니 그래도 회복되는 기분이 드는가 요양병원 이야기에 펄쩍 뛰면서 방만 얻어주면 금방 일을 하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열이 오르면 맥도 못 추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겨워하시면서 일을 하러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했다. 그래! 우리야 꿈적거리지 않으면 어찌 입에 풀칠을 하고 방바닥에 등허리를 붙여보겠는가? 몸뚱이가 아무리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혓바닥이 살아있는 한 여기에는 뭘 올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차마 아파서 입맛도 잃고 소화도 안 되고 뭘 먹고 싶은 마음도, 뭘 하고 싶은 마음도, 무엇을 할 수 있는 기력도 없어지는 것, 그래서 아픔이나 슬픔, 두려움이나 원망도 느낄 기력이 없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에는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졌다.</p>
<p>그렇게 아저씨는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듯 했다. 아저씨의 기력이 회복되면서 차차 밝혀지는 일들도 생겨났다. 이미 오래 전에 수술을 받고 올해 입원을 한 것은 갑자기 다시 상태가 나빠져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할 때 친동생과 조카가 입원보증을 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출 신고를 해놓은 경찰에서는 나중에 자식들의 연락처를 알았다고 연락이 왔다. 연락을 해도 보고 싶지도 않다고는 해지만 찾긴 찾았던 것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그 어느 한 사람 코배기도 뵈질 않고 오직 할머니 말만 믿을 수밖에 없는데 며칠에 한 번씩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다.</p>
<p>일이 그러하니 나도 다시 ‘아따! 이 할마시 봐라!’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어디로 어떻게 보고 하는 생각에 절절한 마음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럼 나 몰래 식구들끼리는 다 연통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면 무슨 말은 하고, 무슨 말은 하지 말라고 일일이 시켜는 할머니다. 당신 나름으로 수를 쓰시면서 나까지 시켜먹는 것이다. 그러면서 맨날 “선상님이니께 이런 말도 한다”고 하더니만 그것도 아닌 것이다. 섭섭할 일이 무에 있겠나? 다 그런 줄이야 안다. 알고도 당하고 모르고도 당하는게 내 신세 아니던가?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그저 아저씨가 자기 이름 석 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것, 그것 하나면 난 족하다. 그것 하나면 내 명분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아직도 명분이 중요한 나는 오랜만에 눈물이 날 만큼 고귀한 명분을 얻었으므로 늙고 교활한 민중의 꼼수는 그냥 넘기기로 하였다.</p>
<p>드디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되고 인근 복지관의 도움으로 한 달짜리 고시원 방도 얻어서 아저씨는 퇴원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벌써 여기저기 고시원을 알아보고 어디는 어떻다 난리를 부리며 절대 시장 안 고시원만은 안 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고시원 앞의 꽃집 장사를 잘 아는데 그 사람들이 혹여 당신을 알아보고 왜 거길 드나드는가 묻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손주들이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은 것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할머니시다. 첫째 아이가 그래도 괜찮은 중소 문구류 제조회사에서 물류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걸 굳이 전공 살려 취업을 했다고 말하고 다니시는 꼿꼿한 분이시다. 비록 임대 아파트에 살지만 깔끔하게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아이들 건사며 집 정리를 해내시는 것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기에 대면 나는 정말 허당이다. 그 할머니 눈에 나는 ‘등신 중에도 상등신’에 속하는 줄을 나도 잘 알고는 있다. 나도 또 우리 어머니도 좀 그렇다고는 생각한다.</p>
<p>그러나 퇴원을 하신 아저씨가 피를 뭣같이 쏟으며 다시 입원을 하게 된 것은 채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사나흘 만에 할머니가 다시 도와달라는 전화를 해서 알게 되었다. 퇴원을 해도 앞으로 큰 짐 하나를 짊어지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그래도 마음이 무겨웠는데 덜컥 다시 입원을 하셨다니 그럼 퇴원은 왜 했나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앞섰다. 퇴원 전에 고시원 등등 해서는 한 번 지원받으면 땡인 것이 많았다. 이렇게 다시 입원을 할 줄 알았으면 그럼 퇴원을 말았어야 하는 건데 낭패감이 컸다. 그러기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냥 병원에 계시라고 했더니 말을 안 들으시고 또 나름 꼼수를 부리다 사람 힘들게 하는구나 하고 성질이 왈칵 났다.</p>
<p>그러나 아저씨는 영 회복의 기미를 못 찾으셨다. 결국은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고 옮기자고까지 결정을 하였는데, 옮기기 전 날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밤이었데 할머니께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이런저런 일로 퍽 지치고 쓸쓸했던 밤이다. 집에도 안 가고 서성거리고 있다 할머니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저쪽의 할머니는 울기부터 하셨다. 비명같은 울음이었다. “선상님! 그 놈이 갔어!” 뭐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쓸쓸하고 지치고 쉬고 싶은 밤이었는데&#8230;&#8230;..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이름만 올라와있는 아저씨가 말이다. 식구라고 해야 하나 어쩌나 하던 아저씨가 말이다.</p>
<p>할머니는 무슨 눈치가 있으셨던지 사나흘 전부터 시신기증을 해야겠다고 서둘렀었다. 나보고도 전화를 해보라고도 하고, 당신도 병원을 통해 또 말씀을 해놓으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저씨는 그냥 기증이 되실 예정이셨다.</p>
<p>기증이 되실 아저씨는 처치실에 계셨다. 아래층 영안실 냉장고에 일단 보관이 되기 전 입원실 한 구석에 있을 때 나는 할머니와 둘째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병원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잠시 오고가기를 왜 안 했겠는가 만은 뭐 좋은 꼴이라고 하면서 할머니가 아이들 병실 출입을 가능한 시키지 않은 줄 알고 있다. 할머니는 울고 계셨다. 끝판에는 뭐한다고 나타나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원망하던 동생인데, 그래도 불쌍하게 갔다고 울고 계셨다. 할머니를 붙잡고 위로랍시고 “그래도 이렇게 할머니 품에서 돌아가셨으니 아저씨는 편히 가셨을 거예요”라고 딴에는 말을 꺼냈는데, 할머니는 “이렇게 가는데 편히 가길 뭘 편히 간다고 그러냐”고 또 그 와중에 타박을 하신다. 그래도 날이 날인만큼 수긋이 듣기로 한다.</p>
<p>옮겨갈 인부들이 와서 함께 들어가 아저씨를 처음 뵙게 되었다. 할머니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가면 줄 요량으로 속옷과 양말, 잠옷을 사놨는데 그걸 사자에게 입히면 안되겠냐고 간청을 하였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는 해부학용으로 기증될 시신이니 소용없는 짓이다 싶었던지 거절을 하였다. 사람 몸 크기에 딱 맞는 스테인레스 접시에 하얀 린넨 천을 깔고 덮은 아저씨가 계셨다. 얼굴빛이 약간 회색으로 굳은 모습이 스테인레스 접시가 너무 차갑고 천은 너무 얇아 추워서 그러는 것만 같았다. 식구라도 돌아가신 분을 거의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내가 어찌 나올까가 가장 궁금했다. 하지만 충격은 없었다. 할머니가 아저씨 이름을 부르며 소리쳐 울어대는 모습을 뒤로, 인부 둘이 침대를 끌어내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울고, 나는 할머니를 부측하고, 둘째 아이가 뒤를 따르는 조촐한 장례 행렬이 엘리베이터를 향했다.</p>
<p>언제부터 나도 울음이 터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살뜰한 정이 있을 리 만무하건만 나는 진심으로 울고 있었다. 아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어쩌면 그만을 슬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렵고 외롭게 살다가는 사람들은 그리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저리 가는 것을 하며 울었을 수도 있다. 저렇게 접시에 담겨 이렇게 쓸쓸히가는 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안쓰럽게 살았는가? 맨 나중에는 간병인에게 &#8220;우리 누님 밥 먹었나 좀 챙겨 달라&#8221;고 했다는 것이 그래도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사람인데, 그들이 부리는 꼼수라는게 고작 그런 것인데&#8230;&#8230;.하는 생각이 하염없이 나를 울렸다.</p>
<p>장례식장을 접어들어 모퉁이를 도니 삼열 종댄가 사열 종대가 아무튼 죽 늘어선 차가운 냉장실 문들이 보였다. 관 하나 크기로 짜여진 차가운 냉장실 안으로 아저씨가 쑥 밀려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이 장례 행렬은 끝이 났다. 그 순간만이라도 아저씨를 향해 붙들고 가지 말라고,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말이라도 하며 붙들고 매달렸어야 했는데,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리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모두 울었지만 모두 시원찮았다. 그나마 할머니만 몸을 좀 못 가누어 하셨을 뿐이다. 하지만 그 울음조차 그리 옹골차지는 못했다.</p>
<p>사인을 하라는 요청이 있어 금방 서류를 보아야 했다. 잠시 위층의 상담실로 가자고 해서 따라 올라가 서너마디 말을 들은 뒤 우린 밖으로 나왔다. 다시 사망증명서를 떼느라 내가 다시 입원실로 올라가 거의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의사를 만나 증명서를 떼고 그걸 다시 장례식장에 갔다주고 오느라 밤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피곤한 슬픔이었다.</p>
<p>셋이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밤길에 내 손에는 할머니가 전하지 못한 아저씨 선물이 들려 있었다. 속옷 가게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 안에는 새로 산 아저씨 런닝과 팬티, 양말과 잠옷 한 벌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병실 자원봉사자와 할머니, 아저씨 세 분이서 함께 찍은 사진도 코팅이 되어 함께 들어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물건을 가져가기 싫다는 것이다. 어디 누구 줄 데 있으면 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께 전해 드리려고 샀던 물건을 누구에게 줄 수 있을까 하며 일단 받아 들었다. 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p>
<p>할머니는 교회를 나가신다. 그러니 아저씨는 죽어도 사잣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게 생겼다. 죽자마자 차가운 냉장고에 누워있다 내일이면 해부학 실험실에서 낱낱이 찢길 운명이다. 아저씨는 그걸 알고 있겠지&#8230;..어쩔 수 없으니까 돌아가신 분도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이 땅을 떠나셨을 것 같다. 당신의 서글픈 신세야 ‘뭐 어차피 죽은 거, 죽은 몸뚱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누’하고 그냥 넘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분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장례나 제사야 원래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장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p>
<p>우리 집이나 나는 본 데 없이 그냥 편히 지내온 사람이다. 종교도 없으니 더더욱 뭘 어찌하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죽어서 먼 길 갈 사람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냉수 한 사발이라도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집에 있는 아들에게 작은 상을 내려 달라고 하면서 “혹시 아니? 그래도 마지막 주소지가 우리 집이잖아. 아저씨가 그래도 여길 한 번 오실지도 모르잖아.”하고 애써 이유를 갖다 붙여본다.</p>
<p>새로 밥을 지을 정성까지도 없는 하찮은 마음이었다. 상 위에 밥 한 그릇에, 물 한 사발이었다. 이래야하나 하고 밥그릇에 숟가락 하나를 꽂아 두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준비한 선물을 앞에 두었다. 누님이 주신 건데, 입어 보지도 못한 건데,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해도 이렇게 준비까지 했었더라고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한 상 하나가 문 밖 복도 한 켠을 밤새 지켰다. 곡을 하는 사람도 없이 상 하나 달랑이다. 그나마도 다음 날 사람들이 혹 놀랄까봐 새벽에 얼른 치워버렸다. 그리고 선물은 어찌 할 바를 몰라 아직도 내 방 한 켠에 그냥 두었다.</p>
<p>할머니는 다음 날 병원비 정산을 하셨다. 40만원 가량의 돈이 모자란 것을 함께 일하던 교사의 남편분이 해결해 주셨다. 할머니는 얼른 사망신고를 해서 미안하게 이름 올린 것을 얼른 빼주어야 한다고 서두르셨다. 서너 차례나 고맙다고 인사도 하러 오셨다. 언제나 할 인사는 제대로 하고 보는 깔끔한 어른이시다. 그래도 전화비랑 이것저것 돈 쓴 것은 수급자 비용에서 장례비가 나오면 물어주고 싶다고 하셔서 절대 싫다고 거절을 하였다. 물론 나 혼자 다 감당한 일은 아니니 공치사를 혼자 다 들은 일은 아니었지만 공치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도 다른 면에서는 깔끔하고 싶었던 것이다.</p>
<p>사실 나도 꼼수가 없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공치사를 다 하고, 내가 들인 수고를 몇 푼으로 갚지 못하게 붙들여 매두었던 것은 나도 수작이 있었던 것이다. 내 바람은 할머니가 이제는 제발 세상을 향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사셨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할머니의 삶을 다 모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쭙잖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속여먹으려고만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켜드리고 싶었다. 절대 아무도 할머니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간곡히 말하고 싶었다. 함머니가 얼마든지 우릴 속여도 괜찮다고&#8230;.아니 사정이 그러하니 힘든 점이 있을 것이고 그걸 미리 배려하지 못한 우리가 더 잘못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이 세상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바람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러고 싶었다.</p>
<p>물론 처음부터 그런 속셈을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마음은 정말 그랬다. 할머니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할머니가 혹시라도 그런 세상을 조금 느끼셔서 그래서 내가 아닌 세상이 새삼 고마운 것은 아닌가 하는 공연한 희망의 살렘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어쩐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할머니는 요즘 조용하시기 때문이다.</p>
<p>어쨌든 이 글은 나의 조문이다. 별로 잘 알지도 못했던 아저씨에 대한 나의 조문이다. 귀찮게 생각하고, 날 속여먹으려 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며 만났던 미안함이 많은 아저씨에 대한 조문이다. 사람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는 줄도 모르고 괘씸하게도 생각했던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이고 안타까움이다.</p>
<p>이제는 어디에 계실런가? 아마도 그 어디든 이 세상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립던 부모님들도 만나지 않았을까? 혹시 떠났던 부인과 아들, 딸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날 밤 누님이 흘리는 눈물과 애통한 울음소리도 들으셨을까? 그리고 이렇게 아저씨를 기리며 긴 조문을 쓰는 내 마음도 아실까?</p>
<p>평안히 가셨는지 여쭙고 싶다. 그리 만나 그리 헤어지니 참 헛헛하고 죄송스러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게 만나고 또 그리 떠나보내게 될 줄 차마 몰랐다고&#8230;..아마 곧 뵙고 인사드릴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래도 한 집에 함께 이름을 올린 식구였는데&#8230;.. 가서 인사올리면 반갑게 맞아주시라고 바래본다. 여기는 다 잘 있으니 모두 잊으시라고&#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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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금 글 쓰는 나 – 트윅스트 (201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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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5 +0000</pubDate>
		<dc:creator>이상욱</dc:creator>
				<category><![CDATA[그들 각자의 영화觀]]></category>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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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일곱 개의 시계를 가진 종탑. 시계들은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허나 그것은 시계들  뿐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그렇다. ‘지금’이라 명명된, 양쪽으로 쭉 뻗친 직선 위의 한 점이라 생각 된 그 시간은 무수한 직선들의 교차점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선이나 점 따위로 얘기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레이터의 말대로 그것은 ‘사악해’ 뵌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1.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1.jpg" alt="" title="1" width="145" height="215"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28" /></a></p>
<h4>자문자답</h4>
<p>-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입니까?<br />
: 아닙니다.<br />
-지금 글을 쓰는 것은 맞습니까?<br />
: 아닙니다.<br />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입니까?<br />
: 아닙니다.<br />
-그렇다면 이것은 다 무엇입니까?<br />
: 대답하기 복잡한 문제입니다.</p>
<h4>대답들</h4>
<p> <i>시계탑, V<br />
</i> 일곱 개의 시계를 가진 종탑. 시계들은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허나 그것은 시계들  뿐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그렇다. ‘지금’이라 명명된, 양쪽으로 쭉 뻗친 직선 위의 한 점이라 생각 된 그 시간은 무수한 직선들의 교차점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선이나 점 따위로 얘기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레이터의 말대로 그것은 ‘사악해’ 뵌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2.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2.jpg" alt="" title="2" width="177" height="260"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29" /></a></p>
<p> 낮에 있던 사인회를 마치고 하릴 없이 마을을 산책하던 작가 홀 발티모어는 우연히 소녀 V를 만난다. V, 일곱 개의 시계를 가진 종탑이 있는 마을에서 만난 소녀. V라는 알파벳 문자의 모양처럼 그녀 또한 고정된 한 점으로 머무는 법 없이 여러 개의 갈라진 선을 그린다. </p>
<p> V가 그린 첫 번째 선. 뻐드렁니 탓에 교정을 한 소녀는 뱀파이어Vampire라 놀림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고르지 못한 치열 탓 만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이 없는 혹은 시간이 너무 많은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br />
 두 번째 선은 그녀의 원래 이름이다. 버지니아Virginia. 시간 없는 혹은 시간이 너무 많은 종탑의 시계들은 간혹 어떤 ‘시각’을 떠나지 못하기도 한다. 시계탑의 시계들은 자정을 알리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종을 울려대며 자정에 머문다. 버지니아, 그녀는 12살의 처녀성에서 결코 떠나지 못한다. 고르지 못한 치아를 교정한 버지니아는 끝없이 그렇게만 출몰한다.<br />
 세 번째 선, 비키Vicky. 발티모어는 V를 만났다. 그가 만난 V는 또 다른 V, 비키를 소환한다. 뻐드렁니 한 소녀의 나이 쯤 보트 사고로 죽은 그의 딸. 그녀는 죽었지만 발티모어의 기억 속에서 시간 없이 혹은 너무나 많은 시간들 안에서 살고 있다. 아니 발티모어의 시간에 구획을 짓는 선을 그리는 것은 그녀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어디에서나 일곱 개의 시계를 가진 종탑이 보이는 이 마을에 다시 또 나타난다.</p>
<p> <i>저자 홀 발티모어<br />
</i> 공포 소설 작가 홀 발티모어는 사인회를 하러 마을을 방문한다.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마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위하여. 사인회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의 팬임을 자처하는 보안관 바비 라그레인지를 만난다. 그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는 데, 그것은 자기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니 소설을 같이 쓰자는 것이다. 그는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길 원했다. 발티모어 또한 제안이 썩 나쁘진 않았던 모양인지 그 소설을 쓰기로 한다. 그러나 그에겐 결코 수락 못할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비 라그레인지를 공저자로 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소설이 두 개의 이름에 의해 쓰이는 것을 참을 수 없던 것이다. (결국 그는 저자 : 홀 발티모어, 아이디어 제공 : 바비 라그레인지라는 ‘절충안’을 선택한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3.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3.jpg" alt="" title="3" width="294" height="197"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30" /></a></p>
<p> 그러나 소설을 쓰는 것은 그의 바람대로 홀 발티모어 오로지 자신 뿐 일까? 그렇지 않다. 홀 발티모어는 일곱 개의 시계들을 가진 종탑이다. 글을 쓰는 것은 여러 이질적인 시간들을 살아 온 ‘그것들’이다. <뱀파이어 처형>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그는 애써 그 시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 몰라도, 절충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다. 바비 라그레인지의 아이디어가, 아내의 돈 달라는 독촉이, 술이, 술이 데려간 꿈 속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가, 그리고 그의 딸 비키가 글을 쓴다. <뱀파이어 처형>은, 각자 다른 시간을 살던 것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버리고 혹은 너무 많은 이질적인 시간들과 공조하여, 즉 뱀파이어가 되어 쓴 것이다. 홀 발티모어라는 하나의 이름은 뱀파이어들의 여러 개의 이름을 처형하고자 한다. 발티모어는 서명하고 싶은 욕망에, 단독 저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홀 발티모어라는 이름은 그것들에 의해서만 씌어질 수 있다.</p>
<p> <i>엔딩, 교정기, &lt;뱀파이어 처형&gt;</i><br />
 소설의 엔딩을 앞둔 발티모어는 공저자 문제로 바비 라그레인지와 다툰다. 다투던 중 라그레인지는 발티모어의 머리를 가격하고 발티모어는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잃은 발티모어는 꿈에서 존경해마지 않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다시 만난다.(영화에서 발티모어는 꿈에서 포를 여러번 만난다.) 발티모어는 포에게 소설의 엔딩을 어떻게 내야할지 묻는다. 포는 말한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4.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4.jpg" alt="" title="4" width="385" height="214"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31" /></a></p>
<blockquote><p> “앞으로 더 나아 가려는가?(…) 지금 멈추지 않으면 자네가 쓴 모든 말들은 자네 자신의 이야기가 될 거야. 자네가 바로 자네가 찾는 엔딩이야.(…)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면 다른 방법은 없어. 우린 같은 아픔을 공유했네. 친구여. 우리의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준비하는 무덤이 돼야 하네”
</p></blockquote>
<p> 포의 안내로 V, 뱀파이어Vampire 버지니아Virginia의 사연을 알게 된 발티모어에게 포는 이제 또 다른 V, 비키Vicky를 보여준다. </p>
<p> 발티모어는 계속 미뤘던 보안관 사무실 말뚝 박힌 소녀의 시신을 보기로 결심하고 안치소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신의 ‘주인’은 V, 세 가지 선을 그리는 그 V이다. 죽었음에도 결코 변한 데 없는 뱀파이어Vampire, 버지니아Virginia는 비키Vicky의 목소리를 낸다. “아빠, 살려 줘요.” 발티모어는 그녀를 살리고자 말뚝을 뽑는다. 뱀파이어를 처형시킨 말뚝, 그것이 뽑히자 ‘처형’되었던, 멈추어져 있던 V의 세 가지 시간은 되살아난다. 버지니아Virginia의 봉인되었던 처녀성은 해방의 핏줄기를 뿜으며 뱀파이어Vampire로 부활한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5.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5.jpg" alt="" title="5" width="264" height="166"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32" /></a><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6.jpg" rel="lightbox[11427]"><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3/05/6.jpg" alt="" title="6" width="284" height="166"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433" /></a></p>
<p>교정기에 의해 억압되었던 뱀파이어의 송곳니는 다시 돋아난다. 그것들은 단일한 이름의 처형자 발티모어를 공격한다. 교정기를 튕겨낸 들쑥날쑥하게 된 치열과 함께. 그것이 튕겨낸 것은 또한 억압돼 있던 어떤 시간들이었다. 멈춰져 있던 시간들. 비키Vicky라는 뱀파이어Vampire. 발티모어의 시간을 이루던 그것이 처형되고 소설 &lt;뱀파이어 처형&gt;이라는 무덤에 매장된다. 그러나 그것은 부활을 위한 무덤. V의 성대한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홀 발티모어가 준비한 무대장치로서의 무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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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의 의욕상실을 마주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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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May 2013 13:16:35 +0000</pubDate>
		<dc:creator>말자 1</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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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157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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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어서 모든 것이 첫 경험(?)인지라,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2년 4개월을 보냈다. 퇴사 역시도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마치 회사의 사정과 스케쥴에 피해를 끼치는 것마냥 이야기하기도 하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는 통에 (그럴 필요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하였지만서도, (그럴 필요가 다소 있어보이는) 무엇보다 대책없이 그만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1.5em; font-weight:bold;">얼마전 퇴사를 했다.</span>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어서 모든 것이 첫 경험(?)인지라,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2년 4개월을 보냈다. 퇴사 역시도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마치 회사의 사정과 스케쥴에 피해를 끼치는 것마냥 이야기하기도 하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는 통에 (그럴 필요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하였지만서도, (그럴 필요가 다소 있어보이는) 무엇보다 대책없이 그만둔다는 점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의 여러 어려움이나 사정으로 퇴사하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막상 그 다음이 잘 떠오르지 않아 불안했던 것이다. 그려진다는 미래가 그다지 지금보다 훌륭할 것 같지도 않고, 할 일 없음에 전전긍긍 불안에 떨거나 내가 왜 그랬지하며 자책하고 후회할까봐 두려웠다. 이렇다 할 대단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안적 비전이나 나만의 구체적 행동강령(?) 있는 것도 아니며, 소시민적 가정사 덕분에 부빌 언덕조차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건강한 내 맨 몸 하나 외에는 가진 것이 참으로 없었다. ‘하~&#8230;.’하고 깊은 숨을 내쉬고 나니, 문득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배짱 좋게 들었다. 무엇을 하든 삶의 어느 측면에서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고, 내가 의미있었다 평가하면 의미있는 삶의 바탕이 되어줄 시간들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자기 위안으로 나의 첫 ‘퇴사 후’가 시작되었다.  </p>
<p><span style="font-size:1.5em; font-weight:bold;">공식 백수 오일째. (주말빼고 ㅋㅋㅋ)</span> 백수 첫 날엔 책장정리를 했다. 나중에 혼인하면 다른건 몰라도 서재만은 천정도 높아야 하고, 도서관처럼 책장도 벽 한켠에 칸칸이 세워두어야 하며, 좋은 나무로 된 책상과 편안한 의자도 가져다 두고, 그 위엔 지구본을 빼놓지 않고 올려놓으며.. 등등의 구체적인 이미지상이 있을 정도로 잘 꾸며놓고 공상하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 서재이다. 스물 후반이 되어서도 부모님집에 아직 얹혀 사는 나로서는 내 책상이 놓여있는 두어평의 그 공간이 바로 예비 서재나 다름없었다. 학창시절동안에도 책상을 얼마나 애지중지했었지, 책상에 놓여있는 영수증 하나도 의미를 두고 올려놓은 경우가 있어 엄마가 책상 위에는 쓰레기가 놓여있어도 정리하지않았다. 취직하면서는 나의 꿈의 공간을 포기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돌아보니 2년 4개월동안 책상에 앉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나의 가까운 미래를 계획하거나, 공상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둘러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랜만의 책상과의 조우를 몹시 기껍게 맞이하고, 더불어 식구들이 먹은 뒤 놔두고 학교를 가거나 출근한 뒷 설거지 및 집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내일하는 시급한 기획서작성, 담당업무의 진행, 야근 등 내 바쁨과 고생스러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우리식구들의 고생스러움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나마 나는 이제 백수라 좀 쉴 수 있는데, 여전히 쉬지 못하는 우리 식구들의 바쁨과 고생스러움을 보면서 안쓰러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청소와 설거지의 손길이 성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할까?</p>
<p>둘째날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커피숍으로 향했다. 오후에 친구와 함께 미용실에 가기로 하고 그 사이시간동안 그간 너무 너무 너무 너무나 미루어 두었던 영어공부를 좀 할까해서였다. 나는 학창시절엔 영어공부를 좋아하고, 영어를 말하는 내 모습을 사랑했으며, 그래서 학부 때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직을 이수했다. 여러 이유로 교사의 꿈을 접은 뒤 사무행정직으로 일하면서는 그마저의 영어 실력도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다. 왠지 ‘영어’로 귀결되는 중고등, 대학까지의 내 학창시절이 다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의 영어공부는 그간 풀죽었던 내 학습욕을 자극했다. 영어문장이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내내 깡통소리가 ‘깡깡’하고 났다.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다짐했으며, 그리고 묶었던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 </p>
<p>셋째 날엔 서점엘 가서 시몬베유의 ‘중력과 은총’이라는 책을 샀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공유해놓은 글을 보고, “사람들은 이상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한다. 언젠가는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은총을 기대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는 우리가 그러한 현실이라는 중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상하는 대신 사실을 간파하고, 중력을 이기며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라는 뉘앙스의 책의 내용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당겨 (사실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라 느낄 터이지만)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직원회식에 함께하지 못한 직장 최고 상사가 사주는 점심을 먹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굉장한 피곤함이 밀려오며, 그간 어떻게 버티며 일을 하였는지 내가 너무 대견하기도 하고, 사람 사이에서 나 자신을 너무 혹사 시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였으며, 어쨌든 사직서 한 장이 그렇게 기특하게 여기질 수가 없었다. 그러고나니,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집으로 일찍 돌아와서는 나의 돌봄이 가장 필요한 엄마를 비롯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매일의 야근과 주말 투잡 등 자주 안마주치니 데면데면해진 가족과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안식처로서의 기능은 어느새 상실하고 하숙집으로 전락하였던 북한산 자락 나의 집으로 돌아와 그 속에서 편히 쉬기 시작했다. </p>
<p>넷째날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일을 보냈다.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고, 동네마저 고요한 늦은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벌떡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누워 마음껏 천장을 바라보았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살랑 들어오는 바람소리, 참새소리, 햇볕이 포근하게 타오르는 소리, 아침 흙냄새, 가끔가다 지나는 사람의 발소리  등 내 생활의 터전이었던 도시의 소리와 냄새를 비로소 맡아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차분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오늘은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누웠다가 자전거를 한 5분타러 나갔다가, 귀퉁이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를 앉아서 쳐다보다가, 지난 11월부터 그마저 의욕을 상실해버렸던 운동을 좀 다시 해보기도 하였다. 정말 엄마가 그토록 걱정하는 날것의 백수적 삶이었다. 그러나 삶의 속도를 늦추고, 무엇인가를 계획하지 않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 시간을 ‘소비’하자, 의욕과 활기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내 삶의 시간이 ‘재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p>
<p>오늘은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부러 서둘러 출근길 사람들과 동행을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가, 지하철 사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갈아타고 가는 여정이었는데, 출근대열 속에 속해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보니 그간 그 속에 함께 섞여있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단 한번뿐인 ‘오늘’의 아침의 귀함은 잊은채 무표정으로 낯선 사람과 부대끼거나 늦을까 불안으로 전전긍긍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닫히는 지하철문을 향해 뛰는 사람들,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지하 7층에서 지상1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하는 바람에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와당탕탕 쏟아져나와 우다다다 경주아닌 경주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울리는 땅의 진동을 느끼며 조금 비켜서있으면서 그들은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뛰고 있으면서 자신이 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향해서 뛰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겠지. 얼마전까지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내가 그랬듯이.’<br />
그들 중에 한명이었던 나도 이따금은 이것이 과연 멈출 수는 있는 레이스일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태어나서부터 입시지옥, 스펙관리, 취직지옥, 장래걱정 등 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멈추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멈춤 뒤에 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뛰도록 했던 것 같다. 삶의 목표와 행복추구를 하더라도 일단은 느리게라도 뛰면서 해야지, 멈추면 정말 낙오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두고 뛰어나가는 사람들의 뒤에서 그들을 뛰도록 뒤쫓는 것의 실체를 비로소 볼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불안이었다. 갖은 자에게는 잃을까 하는 불안, 없는 자에게는 더 없을까하는 불안. 우리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뒤쫓는 것은 불안이라는 죄수의 딜레마였다. </p>
<p><span style="font-size:1.5em; font-weight:bold;">삶은 어떤 것이어야할까.</span> 이십대 후반의 신체 건강한, 삶의 목표가 넘쳐나야 할 나는 하릴없이 지하철을 서성거리는데, 저 허리굽은 노인은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이른 아침부터 김밥과 떡을 이끌고 나와 팔고 있다. 이천원짜리 꼬마김밥냄새와 노인의 애씀이 참 맛있고 내 삶에 좋은 영양분이 되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귀농으로 억대 연봉벌기’리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책광고도 눈에 띈다. 귀농과 억대연봉, 결국 누군가가 내 놓은 대안들도 결국엔 자본이 잠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칠흙같은 밤하늘에 불빛 약한 별처럼 희망같이 느껴졌던 대안들도 서비스화 되고, 자본의 가치로 매겨지고 하고 말거라는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무심코 바라보고 있던 뉴스의 내용들이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심기 위해 반복학습을 시키기 위한 학습교구내지 확성기처럼 느껴졌다. 살다보면 이런 때도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삶의 방식을 방해없이 마주하고 생각해볼 때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열거해볼 한두시간 정도의 시간과 영혼이 쫓기지 않을 시간이 말이다. 그리고 나면, 소소로운 것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움직여가는 보이지 않는 힘까지 크고 작게, 새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모든 20대의 퇴직을 종요하는 것은 아니나, (뭐 그다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사실들이 그다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고..) 내가 점점 느껴가고 있는 내 하루의 재미와 내 하루의 소중함, 하루를 산다는 것의 재미를 모두가 얼마간은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 천명(?) 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아했던 부모님을 포함한 내 주변의 어른들과는 달리 내 마음과 처지를 자신들의 처지를 바탕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던 친구들 덕분에 마음 편히 그간 못 누렸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이전 세대와  다른 모습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지금이 20대들의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삶의 지향이 무엇인지, 방법적인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쫓기지 않고 고민하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 속에서 일이백여만원의 돈과 사무실 동료, 실무력은 잠시 잃을지 모르나, 20대 오늘이라는 시간과 삶의 정리정돈, 관찰력과 경청, 관계의 회복, 의문과 의심으로 시작하는 진실에의 추구, 대안에 대한 욕망, 무엇보다 ‘나’를 찾게 될 것이다. </p>
<p>정말 회사를 사직하는 것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 만큼 힘들었던,<br />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 돈없고, 빽없고, 구체적으로 그리는 직업상이 없는 나에게<br />
후회할 것 같아, 작년부터 계속 미루어오다 드디어 이루어 내고만 숙원사업 퇴사!<br />
사토리세대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br />
기존의 것들에 대한 욕망과 의욕을 삶의 전과정을 통하여 상실했기 때문에<br />
진짜 내 행복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br />
상식을 이야기하는 비상식적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비상식을 이야기하는 상식적인 내가 되는 시간을 모두가 만끽하길 바래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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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Apr 2013 01:09:09 +0000</pubDate>
		<dc:creator>김모양</dc:creator>
				<category><![CDATA[글쓰기 최전선]]></category>
		<category><![CDATA[156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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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문 사회면의 그래프, 도표의 퍼센티지 숫자들 중 한 점으로 자리해서 당신들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쥐 죽은 듯 살던 내가 졸업 선물로 88만원 세대라는 딱지와 함께 취업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포기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선물 받은 후부터였다. 점으로 만들려는 당신들에게 포획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결론은 점이 되어 버린 아니 원래부터 점일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이야기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나는 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문 사회면의 그래프, 도표의 퍼센티지 숫자들 중 한 점으로 자리해서 당신들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쥐 죽은 듯 살던 내가 졸업 선물로 88만원 세대라는 딱지와 함께 취업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포기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선물 받은 후부터였다. 점으로 만들려는 당신들에게 포획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결론은 점이 되어 버린 아니 원래부터 점일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이야기다.</p>
<p>소망? 어릴 때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엄마가 &#8220;우리 애는 그림을 잘 그려요.&#8221;라고 말할때 짓는 표정때문인지, 내가 스스로 욕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얀 도화지에 색칠을 하고 찰흙으로 머리 속 생각들을 주물럭 대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막연한 장래의 희망이란 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때가 왔다. 고3이 되어 지망과를 선택하고 예체능계열로 수능시험을 치를 준비를 해야 했다. 조각을 하고 싶긴 했는데 당시 전업 화가가 된 막내 고모가 밥 굶기가 쉽상이며 재료비를 대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막내고모는 자기 말처럼 근근히 먹고 살았다. 그렇게 순수 회화는 선택부터 생존포기를 각오하는 일로 여겨졌지만 디자인의 미래는 달라보였다. 디자인 경영, 디자인 코리아, 삶도 디자인, 열정도 디자인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현재의 기원이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시련을 극복해낸 우리들에게 먹고 사는 일, 단순한 기능처럼 투박한 것들을 대신할  창의력과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디자인을 6.25표어, 대전엑스포 포스터,  IMF 포스터그리기 처럼 자로 재어 깨끗하게 그림을 그리는 일 정도로 생각했었다. 나는 자를 대고도 줄을 제대로 못 그었다. 하지만 &#8216;상상력&#8217;과 합치된 디자인은 내게도 틈을 열어 주었다. 대학들도 정부의 산업디자인 육성 정책에 따라 이름이 복잡한 디자인과들을 200개를 더 만들어냈다. 입시과목도 획일적인 석고소묘을 벗어나  &#8216;발상과 표현&#8217;이라는 과목으로 바꾸어 학생들의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하겠고 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엄마도 자기처럼 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라고 응원해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세계에 입성하려면 대가가 필요했다. 입시 미술을 통과 해야했고 학원비가 필요했다. 엄마는 카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소망을 가득담아 베팅하듯 매달의 학원비를 결제했다. 내가 입학하던  2002년, LG카드는 카드사 중 최초로 천만 고객을 달성했다. 막연한 인생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도 아직 내게 풀어야 할 인생의 미지수들이, 소거할 항들이 충분히 많은 시간이었다. 하나씩 지워가다 보면 언젠가 정답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p>
<p style="text-align: center;">•        •        •</p>
<p>베팅은 실패했다. 나는 전공에서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면 &#8220;디자인이즈 비지니스&#8221;라는 산업과 소비에 기반을 둔 디자인에서 실패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산업 생산품들을 잘 팔리게 할까에 대해 주로 가르쳤다. 내가 입학할 당시 정부는 학문분야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bk21이라는 사업명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여러 학교들을 물리치고 bk21을 탈환한 교수들은 한국에도 필립 스탁이 나올 때가 되었다며 학생들을 글로벌 스타디자이너로 키우려는 꿈을 가졌다. 왜 그 있잖은가 그 레몬즙 짜는 기구를 외계인 모양으로 만들었다던, 아무도 그걸로 레몬즙을 짜찌 않고 장식장 한가운데 고이 모셔 두길 욕망한다는 그 물건을 만든 위대한 필립 스탁 말이다. 학과장은 사진 인화법 설명보다 책상 위에 걸터 앉아  &#8220;야아 &#8211; 너네 남의 밑거름이나 하며 살래?&#8221; 로 시작하는 성공학 강의가 더 길었다. 나는 학교에 있으면 과자부스러기가 떨어진 이불에 누워있는 것 처럼 버석임을 느꼈지만 내가 모자라서 그런거라 생각하고 말았다. 내 아이디어는 번쩍이며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을 오래 잡아 먹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말까였다. 찰나에 눈을 사로 잡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일도 잘 없었다. LG카드사는 고객들에게 카드 돌려막기라는 새로운 생활 습관과 신불자라는 딱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 엄마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뉴스나 신문에서 나왔다. IMF 이후 신문 경제 사회면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카드대란이었다.</p>
<p>지금은 숙련되지 않아 힘들뿐이라고, 차근차근 밑바닥 부터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실력도 늘고 자리도 잡을 수 있으라 낙관했다. 하지만 학생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장은 많지 않았다. 자유 경쟁의 바다에 몸을 내던졌다. 아르바이트 싸이트들에 이력서를 올렸다.  손이 느리다고 하루만에 정중히 짤리기도 했다. 테스트를 본답시고 당장 급한 실무일을 해주고 밥만  얻어먹고 돌아 오기도 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급하게 일을 해달라 하고, 수업까지 빼먹고 만들어 보낸 원본 파일을 확인하고는 다시 연락 주겠다며 영영 무소식인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숙련된 인재가 못되는 나를,그들을 끽소리도 못하게 만들지 못하는 내 디자인을 원망했다. 한번은 수영복 업체에서 수영복에 들어가는 무늬가 필요한데 건당 5만원을 준다 했다. 수영복이 잘 팔리면 그들은 얼마를 벌게 되는 지, 최저시급은 얼마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내가  쓰일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들이 제시한 샘플들을 보며 최선을 다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실패했다. 샘플만 그대로 베껴서 작업해도 3일은 꼬박 걸릴 일이었다. 내 시간은 5000원이상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p>
<p>그렇다고 실패한 알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급으로 가장 좋은 대우를 해준 곳은 재능교육 디자인TFT에서 였다. 겨울 방학동안  중국어 교재 편집 작업을 했다. 근무지는 혜화동 사옥이었는데 매일 출근 때와 점심시간에  학습지 노동자가  건물 앞 농성텐트에서 교대로 나와 시위를 했다. 사측에 대한 요구를 적은 샌드위치 판넬을 걸고 아무 말없이 정문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판넬에는 투쟁 일수가 적혀있었다. 3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그들의 외침보다는 점심메뉴가 중요했다. 딱 한번 과장과 대리가 그들을 나와 다른 알바들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구사대로 불려나오면 짜증날 것 같단 말에서였다. 나는 이들과 다른 이유로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이 무서웠다. 몰락이 무엇인지 그들은 내게 똑똑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뉴스나 통계수치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같이 근무해서 잘 지냈었다는 경비 아저씨조차도 들어주지 않았다. 미끄러진 사람들의 사정은 그저 변명이 될 뿐이었다. 나는 그저 내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잠깐의 기도와 함께 그들의 눈을 피할 뿐이었다.</p>
<p>판넬의 투쟁일수 앞자리 백의 숫자가 8에서 9로 바뀌는 것을 본 지 꽤 지난 어느 아침,출근하자마자 디자인 과장이 일이 당분간 없으니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챙겨나올 짐도 없어 몸만 나오면 되었던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인사를 하고 가면 되나 어쩔 줄을 몰라 복도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미 한차례 알바생이 정리 된 이후 연장된 근무였기에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때 총괄 팀장이와서 연장근무부터는 임금이 줄었다고 전했다. 구두로 약속했던 것과 다르다고 따지는 내게 &#8220;ooo씨가 작업한것에는 실수도 많았어요&#8221; 말했다.손이 벌벌 떨렸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말 그대로 개난장을 피워서 차액 13만원을 받아냈다. 모두 나와 내 굿판을 구경했다. 그 중에는 첫날 짜장면을 사주며 알바로 일을 잘하면 정규 채용때 가산점을 받는다며 열심히 하라고 말한 대리도 있었다. 식권 수령 체크표시를 다른 페이지에 한 실수를 식권을 빼돌리기 위한 작전으로 의심했던 총무팀 여직원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악다구니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위에 떨며 길에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이 준 투쟁의지가 아니었다. 대리에게 짜장면을 얻어먹을 때 나는 속으로 나보다 안좋은 학교 출신 주제에 누굴 걱정하냐며 비웃었었다. 다시는 이따위 비열한 공간에 오지않겠다. 곧 계절 학기 며칠만 참으면 졸업을 한다. 졸업장을 따서 버젓한 사회인이 되겠다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너희들을 볼 일도, 이런 취급 받을 일 없다는 불안한 확신을 떨치기 위한 푸닥거리였다. 나는 이리도 알량했다. 그때 받은 13만원으로 나를 찾겠다며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다. &lt;홈페이지 제작 3만원&gt;이라는 광고문구가 버스 광고판을 도배할 무렵, 내가 저지른 일의 의미를 알았다. 나는 이제껏 부메랑을 던져온 것이다. 왜 세상은 연결되어 돌고 도는 걸까? 내가 침묵 했던 노동환경은 앞으로도 누군가를 착취할 바탕이 될 것이다. 내가 일조한 중국어 교재들로 공부한 어린이들 중 몇은 글로벌 키드로 자라나 글로벌 경제에 이바지하겠지. 더이상 “지난번엔 이 금액이었거든요.”의 기준이 되어 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식의 경력 쌓기는 더하고 싶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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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조그만 장소를 만들겠다는 꿈이 생겼다. 나는 공동체 비스무리한 것을 꿈꾸었다.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사는 삶의 최소 조건들을 만들고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첫 시작은 경쟁이나 스펙 쌓기에 지친 나 같은 청년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였다. NEET족, 프리터 등 청년세대를 둘러싼 담론들을 벗어나서 새로운 일과 관계를 모색하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홀딱 빠져 들었다. 동네 사람들과 살 궁리도 하고 지역을 문화예술로 가꾸는 커뮤니티 대학의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자취생들이 복덕방 할배의 인생 얘기도 듣고 부동산 계약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도 함께 풀어가고, 동네 반찬가게 사장님께 밑반찬 만드는 법도 배우며 소소하고 즐거웠다. 나는 밤을 새워 일하면서 처음에 60만원을 받았는데도 행복했다. 한다하는 시민단체라면 청년문제해결에 발을 담궈야 체면이 서던 시기였다. 재단은 고용노동부의 지원비를 기반으로 청년실업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청년단체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자체 운영이 버거워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에 위탁하고 운영비를 지원했고 나는 그곳에서 일했다. 내 월급과 프로그램의 운영비는 사회적기업의 사회 공헌 자금조의 항목에서 나왔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고용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기업체를 많이 만들어 내야했다. IMF때 IT 벤쳐 창업으로 실업률을 낮춘 재미를 본 정부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로 하고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들은 정부를 대신해 사회적이고 공공을 위한 일들을 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정책이 바뀌고 재단에서 지원금이 줄자 그 기업은 커뮤니티대학활동을 프랜차이즈로 만들었다. 사회적 기업의 주요 고객인 문화 재단과 지역 공기관의 지원금을 받기위한 커뮤니티 비지니스가 되었다. 나의 활동들은 &#8216;공공재&#8217;란 이름이 붙여져 내손을 떠났다. 나는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소유권이 없었다. 처음부터 모두 비지니스 였고 사회적 기업도 기업은 기업이었다. &#8220;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 설레지 않아?&#8221; 이 말을 질리도록 들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의 함정에 빠진 열정 노동자 였다. 그리고 그 마을 대학은 또 다른 열정노동자들을 낚아 올리는 기반이었다. 나는 또 이렇게 다른 부메랑을 던지고 있었다.</p>
<p>디자인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만한 곳을 기웃거리며 이직을 준비했다. 상근자 월급도 어지간히 챙겨 줄 수 있는 규모 있는 사회단체들은 디자인을 중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부를 더 중시했다. 돈으로 못하는 기부는 재능으로 기부하면 되었다. 모든 것은 열정으로 극복해야했다. 착한 일을 하는 선한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었다. 노동 관념이 있는 단체는 영세해서 디자이너를 고용할 수 없었다. 월급을 주는 단체는 디자이너 보다는 활동가이길 원했다. 나는 나에게 월급을 주던 그 사회적 기업에 지원금을 대는 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앙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디자인실력으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채우기보다 불공정, 불안정 노동의 경험밖에 채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돈도 없고 인맥이라는 관계자본도 없는 비정규 노동 종사자, 프리타, neet 족이라 불리는 청년들을 위해서,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해서 나의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상호부조조직을 만드는 연구조사를 했다. 계약 만료 시점에 비정규노동문제, 실업문제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그 재단이 3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자고 해서 나는 다시 프리타가 되기로 했다. 나는 산업사회의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노동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임금 노동에서는 소외가 발생함을 알았다. 나는 무직상태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사는 삶은 포기했다. 임금노동에서 자아실현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 &lt;경제 활동 인구조사 표&gt;에서 내자리는 사라졌다. 정말 다른 반란은 생각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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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나는 &#8216;지원&#8217;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 머리가 났다.디자인이고 하고 싶은 일이고 일단 물려 놓은 채, 지원이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는 삶을 구성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디자인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열심히 삶을 꾸리는게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나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과 세미나도 해보고 빵을 구워서 팔아보기도 하고 연극도 해보고 이것 저것 해보았다. 그곳 사람들 중 몇몇은 임금노동에 나만큼 지쳐서 그런지 함께 하는 놀이란 말을 좋아했다. 나는 놀이란 말 속에 지워지는 책임이나 수고가 불편했다. 나는 공동을 생각하는 것보다 개인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좁은 바닥에서 어쩌다 디자인을 할 일이 생기면 다른 디자이너일을 하는 친구와 밥도 안되는 밥그릇을 두고 서로 눈치를 보는 것도 피곤해 졌다. 그 곳을 나올때 쯤에는 그 공동체도 유명해져서 여러재단에서 지원금을 따내어 여러 가지 지역 문화사업을 펼쳤다. 나는 더이상 회의를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 구성원으로 자리해 도와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 남은 장소는 책이었다. 모든 착오의 시작을 내가 나를 뒷받침해줄 탄탄한 이론을 가지지 못한 탓으로 보았다. 책에서 디자이너의 사회적 실천을 말할 때 마다 아뜰리에를 버리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버릴 아뜰리에가 없었다. 유명 디자이너이자 교수인 한 사람은 &#8216;이념을 얻게되면 잃을 것은 프라다 구두 뿐&#8217;이라 말하기도 했다. 나는 프라다 구두를 가지겠다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는 이념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이념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더 다른 책들로 손을 뻗어나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론가는 벤야민씨였다. 학교 다닐 때 똑똑하고 재바른 아이들의 파티션책상에는 꼭 그의 책이 꽂혀 있었다. 벤야민은《기술복제 시대 예술 작품》이란 책에서 혁명의 예술 형식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권위를 파괴하고 혁명의 도구가 되어 대중들과 함께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만 읊어대었다. 다시 시작한 배움은 움추린 내 자리을 확장 시켜 주는 듯했다. 낯설기만 했던 혁명같은 단어들도 입에 붙기 시작했다. 그즈음 같이 사는 친구가 아이패드 앱으로 포스터를 뚝딱 만들어 내서 보여주었다. 나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몇번의 손가락 터치로 경험하는 놀라운 기술 민주화 였다. 또 다른 친구는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내 눈앞에서 자기가 몸담은 단체의 홍보물 디자인을 하곤 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차도 쓰일 수가 없었다. 비 전공자인 그들과 차별되어 디자이너로 살아가려면 나는 더 높은 예술성을 지닌,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8216;아우라&#8217;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식과 기술을 독점하고 엘리트가 되기 위해 밤낮이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내 배움을 배신하는 것이다. 나는 벤야민이 아니었다. 오히려 벤야민이 비웃은 기술의 발달을 감지하지 못한채 사진이 등장하자 먹고 살길이 사라져 허둥대던 초상 화가들 옆이 내 자리였다. 시대에 좌절해 자살한 철학자마저도 내게 곁을 주지 않았다. 그의 혁명은 나의 혁명이 아니었다. 진화에 성공 못한 생물들은 어떻게 울었을까? 난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데 오래 울 수도 없었다. 빼앗겼다 생각했던 자리는, 활판 인쇄에서 컴퓨터 인쇄로 인쇄환경이 변화하면서, 활판 인쇄공들과 사진 식자공들의 자리를 빼앗아서 만들어낸 자리였다. 게다가 2012년 겨울은 여기저기서 더 큰  좌절로 죽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해였다. 나만 유난을 떨 수 없는 일이었다.</p>
<p>[세월이 지나면서 정원은 작은 정원이 되고, 벤치는 작은 벤치가 되고 , 방은 작은 방이 되면서 이윽고 모든 사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헛수고를 했다. 모든 사물은 오그라들었다. _ 벤야민, 《베를린의 유년시절》(서울: 도서출판 길, 2012), 1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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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 ·°＇＂，•．｀·∘∙′″‴⋰‵‶•‷․‥…&#8221;‘’‚,•‛“”„‟′″‴‵• ‶‷&#8217;.․·‧</p>
<p>내게 주어졌던, 하고 싶은 일로 잘 먹고 잘사는 소망의 미지항들을 모두 소거했다. 어느 하나 비빌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점이 되고 말았다. 내가 던진 부메랑들은 아직도 나와 내친구들의 일당을 깍아내고 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자했던 이름들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태업의 복수로 30대 경력 단절 여성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 좋은 먹잇감이다. 당신들은 또 사회문제, 특히 청년과 실업을 운운 할 때마다 나를 뭉뚱그려 숱하게 소비해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짐한다. 오돌하게 돋아서, 결코 쉬이 넘겨지지 않는 까슬까슬한 점이 되겠다고.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점들과 언젠가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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