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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eekly 수유너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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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32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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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이 아니야! ‘보이지 않는 폭탄’이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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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8 Sep 2010 01:53:52 +0000</pubDate>
		<dc:creator>김형석(다큐멘터리 사진작가)</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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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는 모니터에서 밥 먹는 사람을 보고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차명진 의원이다. 아니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차명진 의원을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다. 이 사진은 지난 7월 24일 차명진 의원 홈페이지에서 태어났다가(?) 원본은 금세 사라지고 복제된 이미지만 인터넷에서 무수히 떠돌고 있다. 크기가 480x320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디지털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져 사람들 마음을 가슴 아프게 하는(그래서 분노하게 하는) 거대한 폭탄이 되었다. 이 사진 폭탄은 이제 그 방향을 잃어 무작위로 인터넷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터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그냥 흘려보면 보이지 않는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우리는 모니터에서 밥 먹는 사람을 보고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차명진 의원이다. 아니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차명진 의원을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다. 이 사진은 지난 7월 24일 <a href="http://www.chachacha.or.kr/pierce/sub01.htm?ptype=view&#038;idx=6722">차명진 의원 홈페이지</a>에서 태어났다가(?) 원본은 금세 사라지고 <a href="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727000036">복제된 이미지</a>만 인터넷에서 무수히 떠돌고 있다. 크기가 480&#215;320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디지털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져 사람들 마음을 가슴 아프게 하는(그래서 분노하게 하는) 거대한 폭탄이 되었다. 이 사진 폭탄은 이제 그 방향을 잃어 무작위로 인터넷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터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그냥 흘려보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봐야 폭탄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 사진 한 장은 폭탄이 되었을까?</p>
<p>이 ‘잘 찍은 한 장 사진’을 무서운 폭탄으로 본 사람들이 있다. 사진 폭탄은 2주 전 서대문 충정로 아랫마을 3층 <a href="http://www.homelessaction.or.kr/">홈리스 행동</a> 사무실 테이블에 올라왔다. 홈리스 당사자분들과 함께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에서 9월호 거리 신문 ‘홈리스 뉴스’의 ‘사진댓글 기사’를 쓰기 위해 최근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고 가슴 아프게 했던 사진을 인터넷에서 한 장씩 골라서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고른 몇 장의 사진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지난 7월 ‘최저생계비한달나기희망 UP 캠페인’에참여해 “6,300원짜리 황제의 삶”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했던한나라당 국회의원차명진의원의 사진. 만장일치였다. 이 사진을 두고 기자모임에 참석한 네 사람은 1시간 동안 자신들 마음을 무참히 터트렸던 이 ‘폭탄’을 무장 해체시키고 사진에 역공습을 펼쳤다.</p>
<p>폭탄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폭탄? 먼저 사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물, 몸짓, 표정, 배치, 시선 등 화면 구석구석을 샅샅이.</p>
<p>사진에서무엇을 찾으려면 먼저 말을통해서 꺼내야 했다. 사진을 보면 모든 게 보이는데 굳이 왜 말로 해야 하나? 하지만 억지로라도 말을 해서 끄집어내야한다. 사진은스스로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으면(읽는 것은 약하다) 사진 속 그 무엇은 ‘선명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기에’ 영원히 사진 프레임 안에 갇혀 밖으로나오지못한다.</p>
<h4>보여주기 위한 ‘잘 찍은 연출 사진 한 장’?</h4>
<div class="wp-caption aligncenter">
<p><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ha.jpg" alt="" title="cha" height="200"  class="alignleft" /></p>
<p><사진 폭탄스펙></p>
<p>-크기:320X240 전후<br />
-카메라:디카<br />
-재질:디지탈<br />
-주의:언뜻보면보이지 않음. 자세히보면폭탄이터짐<br />
-폭탄의 방향성:무작위 무대상<br />
-출처:차명진의원홈페이지(“쪽방촌 체험수기가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른 사진으로 교체되었고, 체험 수기 역시 이전과 새롭게 바뀜. 마음먹으면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p></div>
<p><strong>몽</strong>: 까만안경을쓴중년의남성이숟가락을뜨고있어요. 쌀밥을푼숟가락엔갈색덩어리가올려있다. 사진에서는입보다숟가락에올라온밥이더커 보여요. 그리고바로입에 닿지 않고 중간에 걸려 있어요. </p>
<p><strong>팔라이트</strong>: 눈은감겨있고, 숟가락이입으로가기전에딱멈춰서있다. 카메라와시선은 마주 치지않았다. 반팔티를입었고, 왼쪽손은 앉은뱅이 책상 밑에있다.</p>
<p><strong>몽</strong>: 이마에 주름이있고, 입은 크게 입을벌린것처럼보인다. 눈썹이양쪽으로높이 올라가있다. 혼자방안에서먹고있다.</p>
<p><strong>토끼</strong>: (사진 안에서 보이는것만 말하기로 했는데 토끼는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구 꺼내기 시작한다) 김치 종지도 없다. 김치 정도라도 올려놓고. 그럼 저건 너무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 너무 없이 먹는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가 저렇게 쪽방에서 혼자 밥 먹다보면 김치 하나 정도는 올려놓고 먹거든. 반찬으로 김치라도 놓고 먹는다는 일종의 만족으로. 사람이 배가 고프면 다 먹을수도있지만, 저렇게는 맨 날 못 먹지. 전혀없는 사람들도 김치 정도는 사서 먹거든. 김치는사놓으면 나중에 먹어도되니까. 그런데 저기 위에 뜬밥은 아래 섞여있는 밥이랑 달라 보이네. 내 생각에는 맨밥을 떠서 반찬을 따로올린거야. 그러니까 저기 밑에 양푼 안에 있는 밥과 숟가락으로 뜬밥이 다르잖아. 저장면은 숟가락에 뜬밥을 차마 입에 넣지못해서 괴로워하는 표정이아닐까? 우리가 저거 먹어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거 한그릇 다못 먹어. 김치나 닥꽝(단무지)없이는 퍽퍽해서. 한두 숟갈뜨고 느끼해서. 저게 황제의 식사보다 낫다고 한다면 저것은 저 밥을 먹지도 않고하는 소리야. 저거 도저히 못 먹는다고. 생사의 기로에서 억지로 먹어야 한다면 먹지. 진짜 죽지않기 위해서. 그래야 목에 넘어가는거지.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저거는 최저생계비 체험에 참여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어떤 애환이나 처지를알고자 하는 취지가 하나도 없는 거지. </p>
<p><strong>몽</strong>: 그러고 보니 덩어리가 숟가락 가운데 딱 있구나.</p>
<p><strong>고요</strong>: 어떻게 저걸 딱 가운데 뜰 수 있지? </p>
<p><strong>토끼</strong>: 저 사람 왼손잡이인가? 나는 왼손잡이라 양손으로 다 먹는데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왼손으로 저분(젓가락)을들지. 근데 저분이 없잖아. 저분없이 저렇게 먹을 수 있을까?</p>
<p><strong>고요</strong>: 아! 저분이 없구나. 저분은어디로 같을까?</p>
<p><strong>몽</strong>: 보좌관이 곁에서 올려놓은 것이아닐까? 하하하(함께 웃음) 그래도 저는저사람이 저 밥을 다먹긴먹었을것같은데. 뭐몇 번먹다말았을수도있지만.</p>
<p><strong>팔라이트</strong>: 그냥 체험에 참여했다고말로 하면 돼지 왜 굳이 사진을 찍었을까? 결국 보여주기인가? 보여주기 위한 연출사진? 처음엔 잘 못 느꼈는데 지금 토끼님 이야기 들어보니 정말 저 사람이….</p></blockquote>
<h4>차 의원은 진짜 밥을 먹었을까?</h4>
<p>사람들 시선은사진정중앙에 있는 숟가락과 사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젓가락(젓가락은 상 밑에 떨어져 있거나, 상 위에 있는데 사진에 찍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에 모아졌다. 숟가락과 젓가락 이야기는 이후 차 의원이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체험 활동의 인증 샷을 찍기 위한 사진이다’, 그리고 차 의원은 ‘이 사진을 찍고 숟가락을 그냥 내려놓았다’, 그래서 ‘차 의원은 진짜 밥을 먹었을까?’라는 놀라운 상상력(?)까지 더해졌다.(차 의원은 이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험을 보여주기 위한 인증 장면을 찍을 때는 동영상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p>
<p>그런데 왜 우리는 차 의원이 숟가락을 뜨는 ‘사실’을 찍은 장면을 밥을 먹었다는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사진은 ‘그 때과 그 곳’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사실’로 찍었으니 당연히 ‘진실’을 담았을 텐데….</p>
<p>사진은 사실을 찍지만 꼭 진실을 담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사실과 진실을 같게 만드는 모호한 마력이 있다. 사실과 진실을 동일하게 만드는 사진의 무섭고 위험한 힘. 그 힘은 사진 자체보다도 사실을 진실로 오해하는 사람의 보는 눈, 생각에 있다. 우리는 차의원 사진을 보고 다음 장면을 자연스럽게 미리 예상(저숟가락위에있는밥을 바로먹었을것이다)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멀 수 있게도 할 수 있다.</p>
<p><strong>고요</strong>: 아무리 그래도 이거 먹어보니 황제의 밥상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야유를하는것이지.</p>
<p><strong>토끼</strong>: 저 사람은 한 끼만 먹은 거야? 하루를먹은거야?</p>
<p><strong>고요</strong>: 아니 이 사람이 한 끼만 먹었더라도, 생각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리고 상식이 있다면, 참 이런 생활이 힘들구나 고생이 많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먹고 어렵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위선일망정 황제의 밥보다 낫다라고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되지. 나는 이사람이 도대체 상식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지 못하겠어. 그래서나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사진과 체험수기가 올라온 기사에 댓글을 달았겠지. 뭐 “너이런거 한 끼라도 먹어보고 하는거냐?”,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들 심정을 아냐” 등등.</p>
<p><strong>몽</strong>: 난 이 사진을 보면서 끔찍한 게 뭐였냐 하면 고요님 말대로 예전에 가난에 대해 이야기 할 땐 어느 정도의 상식선이 있었어요. 옛날에 보면 정치인들이 가난한곳에 가서 그곳 사람들 도와주고 뭐 사진찍고 그랬잖아요. 금방 사진만 찍고갈망정. 그것이 그나마 상식선이었는데. 이제 지금은 그 위선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요. 대놓고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사람 체험수기 보면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겠지. 나중에는 사람들이 뭐라하니 금방 사과하고 수기 내용를 바꾸었지만.</p>
<p><strong>고요</strong>:그런 것 같아요. 보면 볼수록 사진이 야유, 야유로 들려요.</p>
<p><strong>팔라이트</strong>: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다른 곳에서 저 사진을 보았을때 어떤 생각을 할까요?</p>
<p><strong>토끼</strong>: 불쌍해 보일거야.</p>
<p><strong>몽</strong>: 불쌍하다고요.?</p>
<p><strong>토끼</strong>: 언젠가 어떤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식탁에 빵 하나를 접시에 올려놓고 옆에는 물 한잔 있는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는 장면이었는데….그 사진은 보면 불쌍하다기 보다는 한 끼식사의 경건함 같은 것을 느꼈는데 이 사진은….</p>
<p><strong>고요</strong>:불쌍하지요. 저 사진이 차명진의원이 아니고 어떤 개인의 실제삶을 담은 사진이었다면….</p>
<p>고요가 들은 ‘야유의 소리’는 사진으로 찍혀지지 않았다. 사진에는 소리 없는 침묵뿐이다. 그런데 고요는 사진에서 어떤 야유의 소리를 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시각은 청각으로, 보이는 것은 들리는 것으로 전환되었을까? 소리는 과연 시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p>
<p>보이지 않는 시선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시선. 그 시선은 누구에게나 따갑게 혹은 강렬한 찌름으로 다가 오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만, ‘폭력’으로 다가온다. ‘사진의 폭력’ 아니면 ‘폭력의 사진’인가? 들리지 않던 소리는 엄청난 폭음의 야유 소리로, 보이지 않던 것은 무시무시한 폭력의 시선으로 증폭되어 다가온 것이다.</p>
<p>이야기가 끝나는 즈음 기사에 대한 제목을 짓기로 했다. 많은 제목이 오갔는데 누가 최근 영화 제목 ‘악마를 보았다’를 제안하였다. 우리는 이 사진을 보고 정말 무엇을 보았을까? 황제! 아니면 악마! 당신은 어떻게 보이는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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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구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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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8 Sep 2010 01:48:28 +0000</pubDate>
		<dc:creator>정경미</dc:creator>
				<category><![CDATA[정경미의 시경읽기]]></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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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근심이 많은 마음이여[心之憂矣]/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구나[如匪澣矣]” 처음 시경을 읽었을 때, 「백주柏舟」의 이 두 구절에 완전히 꽂혔다. 맞다 맞어!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무릎을 치면서. 그건 마치 오래 비가 오다 해가 나는 날씨와 같았다.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시름을 깊이 헤아려주는 지기知己를 만난 듯 감격스러웠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시경에는 생기발랄한 연애시도 많지만 근심이 가득한 노래도 많다. 시경에서 휘파람은 흥겨운 가락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푸는 한숨소리에 가깝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마음속 깊은 시름을 노래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근심 중에서 가장 큰 근심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일 것이다. 가난 때문에,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을 노래한 시가 시경에는 많다. 그런데 외부적인 조건, 상황 때문에 헤어진 연인들의 아픔은 달콤하다. 그때의 이별은 두 사람의 사랑을 오히려 절실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정말 쓰라린 이별은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 두 사람 사이 믿음이 깨어져서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나’는 ‘그’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p>
<p>시경에는 이렇게 버림받은 여자의 노래가 몇 편 있다. 「곡풍谷風」은 가난한 시절 고생을 함께 했던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 여자와 즐기는 남편을 원망하는 노래이다.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는가 냉이처럼 달구만!” [誰謂茶苦 其甘如薺] 소박맞은 여자의 쓰라린 심정에 비하면 씀바귀는 쓴 것도 아니라고 하는 표현이 재미있다. 「氓」은 실 사러 온 남자한테 어리숙하게 빠져서 결혼했다가 고생만 실컷 하고 쫓겨나는 여자가 “아, 여자들이여 남자에게 빠지지 말기를/남자가 빠지는 것은 그래도 할 말이라도 있지만/여자가 빠지는 것은 말할 데도 없더라” [于嗟女兮 無與士耽/士之耽兮 猶可說也/女之耽兮 不可說也]라고 탄식하고 있다. 「곡풍谷風」,「맹氓」과 함께 버림 받은 여자의 노래로 「백주柏舟」가 있다. 이별에도 단맛과 쓴맛이 있다. 이별 중에도 가장 쓰라린 이별의 맛, 버림 받은 여자의 노래 중에서 한 편-「백주柏舟」를 감상해 보자.</p>
<p>汎彼柏舟 亦汎其流 두둥실 떠있는 잣나무배 하염없이 떠내려가네<br />
범피백주 역범기류<br />
耿耿不寐 如有隱憂 불안에 잠 못 이루네 깊은 시름 때문에<br />
경경불매 여유은우<br />
微我無舟 以敖以遊 내가 술이 없어 즐기고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br />
미아무주 이오이유</p>
<p>「백주柏舟」는 시경詩經 패풍邶風에 나오는 시이다. 패풍은 패邶 지역에서 불려졌던 노래를 말한다. 패 지역은 상商나라 말기 주왕紂王이 도읍으로 정했던 조가朝歌(殷墟. 지금의 하남성 지방)의 북쪽 지역으로, 나중에 위衛로 통합된다. 조가의 북쪽을 패邶라고 하고, 남쪽을 용鄘, 동쪽을 위衛라 했으나 후에 패邶 · 용鄘이 모두 위衛로 통합된다. 따라서 시경의 패풍, 용풍은 모두 위풍이라 할 수 있다. 은殷나라 때부터 불려지던 위풍은 시경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이다.</p>
<p>「백주柏舟」는 ‘잣나무 배’라는 뜻이다. 재질이 단단한 잣나무는 ‘변함없는 사랑’을 뜻한다. 그런데 이 잣나무로 만든 배가 강물 위에 둥실 떠서 정처없이 하염없이 물결 따라 떠내려간다. 이건 어떤 상황일까? 배에는 돛이 있고 닻이 있다. 돛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닻은 돌아올 곳을 정해준다. 그런데 강물 위에 정처 없이 떠가는 배는 돛도 없고 닻도 없는, 가야할 곳도 돌아올 곳도 없는, 버림받은 처지를 뜻한다. 즉, ‘두둥실 떠있는 잣나무 배/하염없이 떠내려가네’ [汎彼柏舟 亦汎其流]라고 하는 이 시의 첫 구절은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했으나 기실 그렇지 못한 상황, 사랑이 변해서 버림받은 여자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p>
<p>‘범피백주汎彼柏舟 역범기류亦汎其流’ 할 때, 앞의 ‘범汎’은 강물 위에 배가 두둥실 떠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뒤의 ‘범汎’은 ‘흘러가다’는 뜻의 동사이다. 이, ‘범피백주 역범기류’는 동양문화권에서 이미지가 끊임없이 차용되고 있다. 판소리 심청가 중 ‘범피중류汎彼中流’(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가라앉지 않고 떠내려가면서 주위 풍광을 읊은 대목)도 「백주柏舟」의 첫 구절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경경불매耿耿不寐’ 할 때 ‘경耿’은 깜박깜박,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집과 같이, 마음 속 근심 불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유은우如有隱憂’ 할 때 ‘은隱’은 ‘깊은’ ‘많은’의 뜻이다. ‘미아무주微我無酒’라고 할 때 ‘미微’는 ‘비非’의 뜻으로 쓰였다. ‘이오이유以敖以遊’에서 ‘오敖’는 ‘유遊’보다 더 크게 노는 것이다.</p>
<p>我心匪鑒 不可以茹 내 마음 거울이 아니니 다른 사람은 헤아릴 수 없네<br />
아심비감 불가이여<br />
亦有兄弟 不可以據 형제가 있다 하나 의지할 수 없네<br />
역유형제 불가이거<br />
薄言往愬 逢彼之怒 가서 하소연하다 노여움만 샀네<br />
박언왕소 봉피지노</p>
<p>버림받은 나의 처지는 둥실 강물에 떠 하염없이 흘러가는 저 잣나무 배와 같다. 깜박깜박, 마음속 떠나지 않는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네. 나의 이 괴로움은 술을 마셔서, 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서 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술로도 유흥으로도 풀리지 않는 깊은 시름에 나는 빠져 있다. 버림받은 여자의 근심을 누가 알아 주리요. 내 마음이 만약 거울이라면 속속들이 잘 보여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혼자 끙끙거리며 속을 끓일 수밖에. 가깝다고 하는 형제들에게 가서 하소연해 보아도 이해와 도움을 얻기보다 노여움만 샀다. 그들은 버림받은 여자의 괴로움을 헤아려주기보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버림을 받느냐고 오히려 지탄을 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버림받은 것 때문에 구박까지 받다니! 이야말로 이중고가 아닌가!</p>
<p>我心匪石 不可轉也 내 마음 돌이 아니니 굴릴 수 없고<br />
아심비석 불가전야<br />
我心匪席 不可卷也 내 마음 돗자리가 아니니 말 수도 없네<br />
아심비석 불가권야<br />
威儀棣棣 不可選也 모습은 의젓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지<br />
위의체체 불가선야</p>
<p>내 마음이 돌멩이라면 마음대로 굴릴 텐데. 내 마음이 돗자리라면 마음대로 말아둘 텐데. 내 마음 돌이 아니니 마음대로 굴릴 수가 없다. 내 마음 돗자리가 아니니 마음대로 말아둘 수가 없다.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 마음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데 나를 버린 ‘그’의 마음을 내가 어쩌리요. 내 마음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의 마음을 내가 어찌 내 맘대로 움직이겠는가. 그의 변심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날 버리니. 하지만 버리면 버림받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이렇게 이 구절에는 ‘나’를 버린 ‘그’에 대한 원망과 체념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러나 체념 뒤에는 또 일말의 원망이 떠나지 않는다. ‘위의체체威儀棣棣 불가선야不可選也’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모습은 의젓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지. 이 구절은 “허우대는 멀쩡해도 못 믿을 놈이야”라는 뜻이다. 나를 버린 그를 원망하는 대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 마디 욕은 해야 성이 풀리겠다!</p>
<p>憂心悄悄 慍于群小 시름은 깊고 깊어 여러 소인들에게 미움만 받노라<br />
우심초초 온우군소<br />
覯閔旣多 受侮不少 근심이 많다보니 수모도 적지 않네<br />
구민기다 수모불소<br />
靜言思之 寤辟有摽 가만히 생각하니 잠에서 깨어 가슴을 치노라<br />
정언사지 오벽유표</p>
<p>근심이 많다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근심이 많다는 것 때문에 뭇사람들에게 미움까지 받는 이중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피하는 것이 소인이다. 가련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그보다 나은 자신의 처지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전염병을 피하듯 가련한 처지의 사람을 피한다. 그의 괴로움이 자신에게 짐으로 더해질까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을 이 시는 ‘근심이 많다보니 수모도 적지 않네’[覯閔旣多 受侮不少]라고 하였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는 이 시의 화자는 혼자 괴로워하다가. 얼마나 괴로웠던지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친다. 도대체 얼마나 답답하면, 괴로우면,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치게 되는 것일까. ‘오벽유표寤辟有摽’ 할 때 ‘표摽’라는 글자. ‘가슴칠 표’ 자가 정말 가슴을 치네! </p>
<p>日居月諸 胡迭而微 해여 달이여 어찌 번갈아 이지러지는가<br />
일거월저 호질이미<br />
心之憂矣 如匪澣衣 마음의 근심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br />
심지우의 여비한의<br />
靜言思之 不能奮飛 가만히 생각하니 떨치고 날아가지 못함을 한할 뿐<br />
정언사지 불능분비</p>
<p>‘일거월저日居月諸 호질이미胡迭而微’는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뜻한다. 해와 달처럼 환하고 밝게 빛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다른 것에 가려져서 점점 줄어들고 사라지게 되는 것. 이것은 버림받은 여자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비탄에 빠져 혼자 괴로워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들기던 이 시의 화자는, 시의 마지막에 와서 마침내 이렇게 탄식한다.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구나”[心之憂矣 如匪澣矣] 흥興 · 비比 · 부賦 중에서 비比에 해당한다. 근심이 많은 마음을 빨지 않은 옷에 비유한 것이 절묘하다. 살다 보면 마음에 이런 저런 얼룩이 생긴다. 버림받은 여자의 비탄이란 지워지지 않는 얼룩의 옷과도 같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오점汚點이 된다. </p>
<p>누가 이 여자의 근심을 씻어 줄 것인가. 얼룩진 옷을 깨끗하게 빨아 햇볕에 개운하게 말려줄 것인가. 모두 여자의 근심이 혹여 자신에게 옮을까 피하려고만 하는데.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근심을 여자는 노래에 실어 보낸다. 이 노래는 수천 년의 세월을 흘러가면서 여자의 근심을 씻어준다. 여자의 근심이 그 여자 혼자만의 근심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한숨이 다른 누군가의 눈물과 만나 새로운 노래가 되어 흘러가도록 한다.</p>
<p>*「백주柏舟」를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인仁하면서도 불우不遇함을 읊은 시詩이다. 위衛나라 경공頃公 때에 인인仁人이 불우不遇하고 소인小人이 군주의 측근에 있었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이 시의 화자를 간신에게 모함을 받아 군주에게 내쫓긴 충신으로 본 것이다. 한편, 주희朱熹는 이 시를 ‘부인이 그의 남편에게서 소박을 맞고 자기를 잣나무배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라고 하여, 군신君臣의 관계가 아니라 부부夫婦의 관계로 풀이한다. 주희의 해석이 오늘날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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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임종진의 사진공감 INTR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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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8 Sep 2010 01:35:28 +0000</pubDate>
		<dc:creator>임종진</dc:creator>
				<category><![CDATA[임종진의 사진공감]]></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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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겨울 지리산 새벽 눈꽃...
티베트 땅 드넓은 광야를 찢겨내 듯 나부끼는 바람의 향연...
호기심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기분을 풀어주는 어느 동네 아이들의 눈빛...]]></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사진을 한다는 것</h3>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10_copy.jpg" rel="lightbox[54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10_copy-400x280.jpg" alt="" title="000010_copy" width="400" height="280"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5431" /></a></p>
<p>한겨울 지리산 새벽 눈꽃&#8230;<br />
티베트 땅 드넓은 광야를 찢겨내 듯 나부끼는 바람의 향연&#8230;<br />
호기심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기분을 풀어주는 어느 동네 아이들의 눈빛&#8230;<br />
세상 어느 것 하나라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그 앞에 서야 합니다. 하다못해 방안 책상 위에 뒹구는 몽당연필 한 자루를 찍으려 해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사진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창’ 중에서 몸을 들여야만 가능한 행위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대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p>
<p>어떻게 볼 것인가. 프레임 앞에 놓인 대상을 대체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자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봄(Viewing)은 그렇게 자신을 향한 물음을 통해 하나의 형상으로 구현됩니다.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 컷의 사진 안에는 새로운 존재가 빛을 머금고 탄생합니다. 결국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존재하는 인식에 의해 사진은 형성되고 증명됩니다.그래서 사진은 눈으로 대상을 보되 실은 자신의 내면으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두어 걸음 더 내면으로 들어가는 다가서기를 통해 사진은,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그 가치를 하나 더 얹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23_copy.jpg" rel="lightbox[54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23_copy-400x400.jpg" alt="" title="000023_copy" width="400" height="400"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5427" /></a></p>
<p>천천히, 느리게, 깊게 다가서는 사진. 긴 호흡으로 셔터를 누릅니다. 이는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프레임 속 대상에게 저를 소개하는 손짓입니다. 주고받는 교감이자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적극적인 몸짓입니다. 그렇게 머묾이 있는 길 위에서 무엇 하나 가벼이 보지 않으려 합니다. 프레임으로 타인의 삶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그저 스스로 갖게 된 작고 느슨한 시선, 매달려 뽑아내지 않는 그런, 시선들입니다.</p>
<h3>사진을 함께 읽는다는 것</h3>
<p>전공과는 다르게 사진의 재미에 빠져 놀던 학창시절이 있었습니다. 기회가 닿아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키는 사진기자로서의 삶이 뒤를 이어 있었습니다. 그저 아프고 먹먹하기만 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이 그 시작점에 있었고 역시 운이 닿아 단절의 땅 북한을 여러 차례 둘러보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이라크를 찾아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삶들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 이 나라의 수없이 많은 어느 타인들의 고단한 하루들을 가까이 목도해 왔습니다. 어느 즈음부터 기자로서의 시선에 버거움을 느끼고 나서는 홀가분한 몸으로 신발 끈을 조이고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21_copy.jpg" rel="lightbox[54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21_copy-400x280.jpg" alt="" title="000021_copy" width="400" height="280"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5428" /></a></p>
<p>시간이 참 빠릅니다. 2008년 가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캄보디아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1년 조금 넘게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결국 기억으로 남은 작고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더욱 그 시간의 흐름이 아쉬운 듯합니다. 돌아오니 왠지 헛헛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쌓인 기억들. 품고만 있기엔 그 헛헛함이 더욱 깊어질까봐 이렇게 하나씩 들추어 꺼내봅니다. 어느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봅니다. 만약 그들의 삶이 비루하거나 세상 한 구석에 처박힌 무엇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형상이기에 그저 눈으로만 보고 가벼이 판단하고 말았던 스스로를 다시 돌아봅니다. 어설픈 동정심과 가벼운 눈짓만으로 어느 그들의 삶을 마치 다 아는 양 재단했던 지난 시간들을 아프게 들추게 됩니다.</p>
<p>이제 외양만을 바라보던 얕은 소견을 걷어내려 부끄러이 기억들을 꺼내봅니다. 어떠한 외양을 지녔다하더라도 존중되고 이해되어져야 할 삶. 내게 있어 중요한 오늘 하루와 마찬가지로, 어느 그들의 의미 있는 하루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가진 삶의 가치가 작아 보이지만 더없이 귀한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들이고 또한 누구나 스스로 존중받길 원하듯이 어느 타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라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들입니다. 단지 눈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 어느 그들의 삶을 읽어드리려 합니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19_copy.jpg" rel="lightbox[54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000019_copy.jpg" alt="" title="000019_copy" width="378" height="540"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29" /></a></p>
<h3 style="margin-top:50px;">임종진</h3>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Image7_copy.jpg" rel="lightbox[5425]"><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Image7_copy-400x270.jpg" alt="" title="Image7_copy" width="250" class="alignright size-medium wp-image-5426" /></a>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등에서 사진기자를 지냈다. 2004년 이후 매년 드나들던 캄보디아에 눈이 꽂힌 그는 지난 2008년 가을 다시 캄보디아를 찾아 15개월 동안 머물며 무료사진관을 운영하다 최근 귀국해 지난 4월 캄보디아-흙, 물, 바람’전을 열었다. 작가적 관점으로의 사진보다는 ‘쓰임’의 도구로서의 사진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서울 충무로 작업실 &#8216;달팽이사진골방&#8217;과 홍대 상상마당에서 대상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중시하는 내용의 사진강좌를 운영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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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송에서 못한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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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5:29:40 +0000</pubDate>
		<dc:creator>오항녕</dc:creator>
				<category><![CDATA[수유칼럼]]></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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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4월 전주대로 자리를 옮기고나서 그 좋은 방학도 없이 동료 학자들과 위백규(魏伯珪)라는 호남 학자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을 번역을 하고 있는데, 매주 수/목요일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 7시까지는 합동 검토시간을 갖고 있다. 그동안 나온 논문들을 보면 위백규에 대해 ‘호남 실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하느라 그의 문집을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위백규의 문집은 지방 학자가 충실하게 성리학을 공부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해서, 조만간 나는 이 분을 놓고, 성리학의 변이(變異)라는 사실(史實)의 측면과, 실학 개념의 해체라는 인식(認識)의 측면을 엮어 곧 글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난 4월 전주대로 자리를 옮기고나서 그 좋은 방학도 없이 동료 학자들과 위백규(魏伯珪)라는 호남 학자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을 번역을 하고 있는데, 매주 수/목요일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 7시까지는 합동 검토시간을 갖고 있다. 그동안 나온 논문들을 보면 위백규에 대해 ‘호남 실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하느라 그의 문집을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위백규의 문집은 지방 학자가 충실하게 성리학을 공부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해서, 조만간 나는 이 분을 놓고, 성리학의 변이(變異)라는 사실(史實)의 측면과, 실학 개념의 해체라는 인식(認識)의 측면을 엮어 곧 글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p>
<p>지난 금요일도 태풍이 지나간 따뜻한 날씨 속에서 예의 검토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프로그램에서 전화가 왔다.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자기 딸을 특채한 일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서 현대판 음서(蔭敍)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음서제도에 대해 역사학자의 소견을 듣고 싶다고. 그런데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말속에는 이미 음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행정고시의 폐지와 정실(情實) 인사를 두고 음서제도를 떠올린 모양이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이기도 해서 승낙했다.  </p>
<p>인터뷰 요청받은 시간은 2시 반쯤이었는데 방송이 7시 28분부터 8-9분간이란다. 작가에게 질문지를 메일로 달라고 했다. 잠깐 몇 마디 나누다가 역사학자가 보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말해달란다. “천한 짓이지요.” 했더니, 웃는다. 그런데 웃음에 경계가 묻어있다. 이 분이 방송사고나 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묻어나는 웃음이다. </p>
<p>4시 반에 작가가 보낸 질문지를 받았다. 약간 조정이 필요할 듯했으나, 상의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답변을 조정하는 수밖에. 한나라당 아무개 의원이 상피제 운운했다는 내용 중 이름만 질문지에서 뺐다. 방송 전, 작가가 전화를 걸어 준비상황을 물으면서 다시 ‘방송 수위’에 대해 당부한다. 조금만 낮추어달라고. 거봐라, 내 말이 맞았지.</p>
<p>방송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음서제도를 정의하는 대화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조상의 음덕(蔭德)이라고 하는데, ‘음(蔭)’이란 그늘, 덕택이란 말이다. 음서제도(蔭敍制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5품 또는 3품 이상을 지낸 관리의 자손이나,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의 자손을 우대해서 관원, 즉 공직자로 임용하는 제도였다. 보통 음보(蔭補), 문음(門蔭), 음사(蔭仕), 음직(蔭職) 등으로 부른다. 음서는 사회나 문명의 여러 차원 중에서 국가 차원의 일이다.</p>
<p>음서는 그 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여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먼저 공음(功蔭)이 있다. 나라나 사회에 공을 세운 집안 어른 덕에 관직에 간단한 시험만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독립유공자, 민주화유공자에 대한 보상 방식에 음서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민주화유공자는커녕 독립유공자의 자손들도 생활보호대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고위 관료의 경우도 오랫동안 나라 살림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여 그 자손을 특별채용하는 음서의 대상이 된다. 참 실감하기 어렵다. 이 사회에 그런 존경받는 고위공직자가 없어서 그런가? 만일 그런 존경받는 공직자가 있다면, 난 찬성할 것이다.  </p>
<p>관료제가 발달했던 고려와 조선에도 음서제가 있었다. 고려는 귀족제 성격이 강한 사회였다. 귀족제 사회란 왕족에 버금가는 벌열(閥閱) 등이 여럿 있는 사회다. 그래서 음서제가 훨씬 강했는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교라는 깊이 있는 사상, 종교가 함께 기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말기로 오면 어느 사회, 문명이나 그렇듯이 음서제의 말폐가 생긴다.<br />
한편 조선시대는 사림, 학자, 양반, 관료라는 말이 떠오르다시피, 이들이 주축이 되어 사회를 끌어갔다. 우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사회는 어떤 원칙과 질서 속에서 움직여야하는 지에 대한, 요즘 말로 하면 인문, 사회학적 비전이 있어야 했고, 실제로 그걸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경륜이 있는 인재를 요구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학습량이 요구되었고, 문장이나 토론을 못하면 정부에서 자기 몫을 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서 수혜자라도 과거시험을 보았다.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고 하는 중요하거나 명예로운 자리는 음서만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법적으로 제한하여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낄 수가 없게 만는 것이다. 요 부분! 조선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을 해석할 수 있는 포인트 되겠다. </p>
<p>분명히 음서제도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수월하게 관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족들이나 양반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이 된다. 과거제도를 비롯한 제도는 자체로 체제를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제도의 보수성이다. 과거제도도 그렇고 현재의 고시도 제도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음서제도는 과거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회 보상의 영역을 보완의 성격도 있다.</p>
<p>김미화씨가 “‘상피제(相避制)’에 빗대서 특혜논란을 비판했던데, 상피제, 이건 또 어떤 제도인가요?” 라고 묻는다. 성균관 같은  학관(學官)이나 병조의 군관(軍官)을 제외하고, 의정부(議政府)·의금부(義禁府)·이조(이曹)·병조(兵曹)·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승정원(承政院)과 사관(史官), 장예원(掌隸院)·종부시(宗簿寺) 같은 관청에서는, 집안의 고모나 조카의 남편, 사촌자매의 남편, 이모의 남편은 상피한다. 똑같은 제한이 처첩 집안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는 것이다.</p>
<p>의정부는 잘 알 것이고, 의금부와 형조는 범죄사건을 다루는 관청이다. 이조와 병조는 인사(人事)를 다루는 관청이다. 사간원과 사헌부는 감찰과 언론 기관이다. 승정원은 비서실이고, 사관은 모든 국정을 기록하는 자리이다. 장예원과 종부시가 상피 대상이 된 이유는 모르겠다. 병조의 당상관(요즘으로 치면 ‘별’들)이나 내금위장(內禁衛將. 청와대 경호실장)은 동일한 관청이 아니라도 상피한다. 그러니 지 애비가 장관으로 있는 데에 지원서를 내지는 못한다. </p>
<p>마지막에,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공직인사제도나 특혜논란을 보면서 넌지시 생각해볼 한 것들이 있으면 짚어달라고 한다. 이번 사태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문제가 섞여버렸다는 점을 보아야 할 듯하다. 먼저 행정고시 폐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직의 문호를 열려고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것은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현 정부에서만 나온 얘기도 아니다. 워낙 공무원 사회가 폐쇄적이고 부처이기주의가 심해지니까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여 조직에 활력을 넣자는 취지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직위도 있다. 나도 두 차례에 걸쳐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특채되어 두 차례에 걸쳐 5년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만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천거제도를 활용했다. 그러므로 행시 폐지, 이런 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공직의 어떤 부분에 전문성이 중요한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맹형규 장관은 2011년까지 30%, 2015년까지 50%를 전문가로 채용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아마추어라는 거다. 거듭 말하자면, 수치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전문성이 필요한지, 그 전문성이 공무원의 재교육으로 되는 성격인지, 외부에서 특채할 자리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 정말 국정(國政)이 뭔지 모르는 거 같다.</p>
<p>다음, 지 자식 임용문제. 자신이 장관으로 있는 관청에, 자식이 지원했고, 또 유일하게 선발되었다는 사실은 공직자 윤리까지도 갈 것 없이 사회적 양식의 문제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짓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행시 폐지는 정책적인 합의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제 자식을 임용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까지 벌어지니까,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행시폐지=특채에서 음서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 즉 기득권의 재생산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p>
<p>이렇게 서로 다른 사안을 엉키게 만들어 문제의 성격을 어지럽게 만들면서 생산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짓, 이런 짓이 국가경영 차원에서 발생할 때 쓰는 말이 바로 ‘국정의 난맥상’이란 말이다. 난맥(亂脈), 어지러울 난, 맥락이라고 할 때 맥!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번 일을 조선시대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방송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하고 가자. “상것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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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예운동은 실패한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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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5:08:57 +0000</pubDate>
		<dc:creator>사루비아</dc:creator>
				<category><![CDATA[달팽이 공방 통신]]></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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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공예는 근대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기계와 비교해 경제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전근대적이라고 평가되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만들어 내는 대량생산품에 반대하고 수공예에 의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인간 감성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을 주창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돈 버는 것에만 사용하는 것을 몹시 한탄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공예는 근대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기계와 비교해 경제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전근대적이라고 평가되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만들어 내는 대량생산품에 반대하고 수공예에 의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인간 감성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을 주창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돈 버는 것에만 사용하는 것을 몹시 한탄했다. 자신의 노동이 ‘일상의 예술 창조로서 즐거움의 표현’이 되고,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지니고 정작 자신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제작자와 사용자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본과 기계의 노예 상태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공예정신이라고 믿었다. 그는 끊임없이 삶을 위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예술과 같은 삶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p>
<div id="attachment_5408"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312px"><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sr31_1.jpg" alt="" title="sr31_1" width="302"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408" /><p class="wp-caption-text">맑스 아님. 윌리엄 모리스이다.</p></div>
<p>그는 공예정신에 맞추어 벽지, 가구,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윌리엄모리스 회사’를 세운다. 그는 공장에서 찍어낸 동일한 상품이 아니라 생활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정성이 가득한 물건을 만들고, 공장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일, 하기 싫은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세의 장인과 같이 여기기를 원했다. 공예운동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고, 실제로 삶을 혁신하려고 했다. </p>
<div class="wp-caption aligncenter">
<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sr31_3.jpg" alt="" title="sr31_3" height="180" /> <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sr31_4.jpg" alt="" title="sr31_4" height="180" /> <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sr31_5.jpg" alt="" title="sr31_5" height="180" /><br />
윌리엄모리스 회사에서 만든 ‘상품’들.
</div>
<p>윌리엄모리스는 1880년대에 이런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소설『에코토피아 뉴스』를 쓴다. (이 소설은 몇 년 전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어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소설의 원제는 News from Nowhere. 이 책은 주인공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지 200년이 지난 미래를 1주일간 여행하면서 경험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에코토피아뉴스 표지 사진과 박홍규 사진 넣어주세요> 이 책에서 나오는 22세기의 풍광은 오히려 유럽의 중세와 비슷하며 도시인지 시골인지 그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곳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이웃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자연친화적이며, 삶과 노동이 즐겁다.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화폐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이웃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고 필요한 물건만을 소비하는 &#8216;사용가치&#8217;가 극대화된 시장이 있을 뿐이다. </p>
<div id="attachment_5409"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80px"><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sr31_2.jpg" alt="" title="sr31_2" width="270" height="400" class="size-full wp-image-5409" /><p class="wp-caption-text"><에코토피아 뉴스> 표지</p></div>
<p>하지만 결론적으로 소설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던 윌리엄모리스의 공예운동은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공방과 수공업의 형태로 일관했던 공예운동의 생산물들은 일상을 예술처럼, 예술을 일상처럼 대중의 삶을 개혁한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공방에서 생산한 공예품은 공장의 기계 생산품과 마찬가지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였는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모리스의 공예품이나 기계 생산품이나 상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것이었다. 오히려 공예품이 사치품으로 다가왔다. 모리스의 공예를 통한 사회 개혁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이처럼 공예의 상업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p>
<p>일상의 예술을 위한 공예는 쓰임을 강조하는 공예가 되어야 할 터인데 윌리엄 모리스는 그 쓰임이 교환가치로 이루어지는 상업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예의 실질적인 가치는 판매를 통한 이윤창출이 아닌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적 도구와 환경을 스스로 가꾸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한 육체적 노동에 의하여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데 말이다.</p>
<p>요즘 포털 사이트 등에서 메인에 항상 걸려있는 소개되는 블로그 중의 하나는 DIY관련한 것들이다. 블로거들은 팔기 위한 물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다. 그들은 가구와 같은 덩치 큰 물건을 만들 때 드는 약간의 수고로움 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만들고 나서 제작의 뿌듯함이 그것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이다. </p>
<p>‘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운동’은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요즘 불고 있는 ‘우리들의 공예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의 선동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우리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상품으로 팔기 위한 것이 아닌 사물에게,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에코토피아 뉴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에코토피아 뉴스의 원제는 News from Nowhere이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그의 아이디어는 과연 아무곳에도 없는(NO Where)인가? 아니면 지금 여기(Now here)인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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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즐겁게 존재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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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53:56 +0000</pubDate>
		<dc:creator>김대경</dc:creator>
				<category><![CDATA[책빵]]></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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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달여 일의 제주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로 떠날 때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돌아와보니, 별일 없었기 때문이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116X&amp;ttbkey=ttbprinceab2117009&amp;COPYPaper=1"><img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7291116x_1.gif" alt="" border="0" class="aligncenter"/></a></p>
<p>한달여 일의 제주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로 떠날 때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돌아와보니, 별일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다시 일상에 적응하는 동안 왠지 모를 께름칙함이 또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일까? 제주에서는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서울에 오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는 데도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인터넷 당일배송을 통해서나 주변 가게에서 구입할 수가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으면 경비실이나 관리실에 연락하면 되고, 아이의 영어 공부도 주변의 학원들 중에 얼마든지 선택해서 학습할 수 있으니, 정말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제주에서는 그런 편리함과 선택적 행위가 불가능했기에 사실 많이 불편했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포기하는 순간 마음이 덜 힘든데, 서울에서는 얻으면 얻을수록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털어버릴 수가 없다. 자발적 선택인 것 같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요당하거나 조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제주에서 오름과 올레길, 한라산을 누비고 다니면서 마음이 갑갑하다거나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마음 속에서 꽉 쥐고 있던 무엇인가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 빈 자리를 자연의 소리와 감각이 채우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p>
<p>지금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그 불편함과 이상함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지나치게 소유양식적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다고 한번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사람들에게 지독한 소유양식적 삶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p>
<p>어려운 고전으로만 여기던 이 책을 나는 우연히 어느 논술 교사 양성과정 수업 시간에 접하게 되었다. 강의를 진행하는 선생님이 미리 이 책을 읽어오라고 했지만,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 책장도 들춰보지 못하고 수업에 나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소유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에 귀가 번쩍 트였다. 선생님은 억지로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더 잘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잊는 것은 잊을 만하기에 잊는 것이고, 현재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나 강렬한 깨달음을 주는 것은 잊으려 해도 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 책의 2장인 <일상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를 함께 읽어나가셨다. 그 부분에는 ‘학습, 기억, 대화, 독서, 권위, 지식, 신념, 사랑’에 대해 소유양식으로 사는 사람과 존재양식으로 사는 사람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p>
<p>소유양식에 젖은 학생들은 단 한 가지 목표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즉 배운 것을 잘 기억하거나 또는 노트를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배운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것을 생산하거나 창조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오히려 어떤 주제에 관한 새로운 사고나 개념에 다소 당혹을 느낀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양의 지식에 의혹을 만들기 때문이다. (중략) 존재양식을 가진 학생들의 학습과정은 살아 있는 과정이다. 그들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며, 교수가 강의하는 것을 들으며, 자발적으로 그들이 듣는 것에 응답하면서 생명을 얻는다. 그들은 집으로 가져가서 암기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개개인은 강의를 통하여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것이다. (‘학습’ 부분)</p>
<p>교사들의 관찰에 의하면, 강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빠짐없이 받아 적는 학생은, 자신의 이해력을 믿으며 최소한 요점만 기억하는 학생보다 십중팔구 이해력이나 기억력에 있어서 떨어진다.  (중략) 문맹자나 글을 겨우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산업화된 국가의 잘 읽고 쓰는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멕시코에서 관찰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은 읽고 쓰는 능력이란 결코 흔히 주장되고 있는 것과 같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기억’ 부분)</p>
<p>소유형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형의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즉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 또 기탄없이 반응할 용기만 있다면 새로운 어떤 것이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한 집착 때문에 자기를 괴롭히는 일이 없으므로 대화 속에서 충분히 활기를 갖는다. 그들의 활기는 쉽게 전염되기 때문에, 가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토론’ 부분)</p>
<p>학생들은 학교교육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최소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ㄷ. 그들은 저자의 주요 사상을 외울 수 있게 하는 독서교육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을 ‘안다’. 이른바 우수한 학생이란 여러 철학자들이 각기 말한 것을 가장 정확하게 외울 수 있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 안내인과 비슷하다.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특정 지식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철학자에게 질문하고 그들과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독서 부분)</p>
<p>앗,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책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느끼고 생활하는 삶의 문제를 너무나 신랄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이 발간된 지 꽤 세월이 흐른 걸로 아는데,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것을 보니, 역시 고전은 고전인가 보다. 그리고 이 책은 지나온 내 삶의 궤적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p>
<p>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줄곧 범생(?)으로 살아왔다.(어떤 사람이 교사가 되는지 생각해 보라) 그때의 스타일이 그대로 교사로서의 내 삶에 전이되면서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학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알게 모르게 강조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 즉 ‘소유’하는 지식이 늘어가면서 어느 정도 내 직업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도 가지게 되었다. 강남의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숱한 강남 학원 강사와 비교당하며 평가와 수업에 완벽한 교사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동안 해 왔던 독서지도 경험이 쌓이면서 이곳저곳 연수나 관련 행사에 나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줄곧 가지고 살았나 보다.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던 일들에 흥이 나지 않고 오히려 부담과 의무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꾸만 완벽해지려는 나 자신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올해 휴직을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십 년 동안 공부하고, 책을 읽었지만, 왠지 공허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그동안 줄곧 받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면서, 나 자신을 질책하고 변명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여지를 자꾸만 지워 가면서, 미뤄 가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간절히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p>
<p>나뿐만 아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감당하기 힘든 스펙의 무게에 짓눌려 즐거운 공부 대신, 엉덩이가 짓무르고 수없이 암기해야 하는 수험서의 문제들을 풀면서 현재를 견뎌내고 있지 않은가.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대치역에서 우르르 내리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았다. 저마다 손에는 입시학원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온갖 현란한 약력을 소유하고 있는 학원 강사의 수업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p>
<p>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사회의 성격을 ‘시장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분주함’과 ‘능동성’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소외된 능동 즉 진정으로 활동하는 ‘나’ 대신 외부적 혹은 내부적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을 살고 있다고 염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 중심의 사회적 성격이 지속될 경우에는 결국 모두가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p>
<p>어려운 길이지만,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길을 만들어간다면, 우리의 교육 풍토와 사회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존재적 삶의 방식을 실천해 보고, 습관을 바꾸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진정으로 즐겁게 존재하기 위해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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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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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52:18 +0000</pubDate>
		<dc:creator>은유</dc:creator>
				<category><![CDATA[Weekl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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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style="font-size:12px; line-height:14px; margin-top:30px;"><b>  <a href="http://suyunomo.net/?p=5374" style="color:#617BCD;"> 32호 <편집자의말> 카메라 들고 떠난 그들의 색계(色戒)</a></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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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12px; line-height:14px; margin-top:30px;"><b>  <a href="http://suyunomo.net/?p=5374" style="color:#617BCD;"> 32호 <편집자의말> 카메라 들고 떠난 그들의 색계(色戒)</a></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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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족’의 비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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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34:22 +0000</pubDate>
		<dc:creator>안티고네</dc:creator>
				<category><![CDATA[고봉준의 언더라인]]></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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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테네시 윌리암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희곡의 배경은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떠들썩한 가족의 모습이다. 형님 내외인 구퍼와 메이는 다섯 아이를 대동하고 곧 여섯째가 될 아이를 임신했다. 반면 동생 내외인 마거리트와 브릭은 학생시절부터 연애를 했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결혼한 젊은 부부다. 브릭은 한때 잘나가던 축구 선수였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은 채 스포츠 중계일도 그만둔 상태. 마거리트는 여전히 아름답고 조금은 앙큼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상냥하고 좋은 아내. 하지만 브릭과 마거리트는 아직 아이가 없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테네시 윌리암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희곡의 배경은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떠들썩한 가족의 모습이다. 형님 내외인 구퍼와 메이는 다섯 아이를 대동하고 곧 여섯째가 될 아이를 임신했다. 반면 동생 내외인 마거리트와 브릭은 학생시절부터 연애를 했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결혼한 젊은 부부다. 브릭은 한때 잘나가던 축구 선수였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은 채 스포츠 중계일도 그만둔 상태. 마거리트는 여전히 아름답고 조금은 앙큼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상냥하고 좋은 아내. 하지만 브릭과 마거리트는 아직 아이가 없다. </p>
<div id="attachment_5390"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208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at.jpg" rel="lightbox[538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at.jpg" alt="" title="cat" width="198" height="288" class="size-full wp-image-5390" /></a><p class="wp-caption-text">영화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1985</p></div>
<p>자수성가를 이루어 미시시피에서 이름난 부자가 된 아버지의 예순다섯번째 생신. 경사스럽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는 은밀한 긴장감이 흐른다. 사실은 오늘이 아마도 아버지의 ‘마지막’ 생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는 그냥 경련증이라고 말해 두었지만 사실 말기암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것이다. 따라서 이번 생일파티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모든 가족이 모이는 자리가 될 것이고, 이 집안의 두 며느리인 메이와 마거리트는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사나운 고양이처럼 안달복달하며 신경전을 펼친다. 메이는 자기네들은 아이가 많으니 농장을 물려 달라고 할 셈이다. 반면 마거리트는 아직 아이는 없지만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고, 또 아버님이 자신의 남편인 둘째 아들 브릭을 편애한다는 것을 무기로 내세운다.</p>
<p>이야기의 초점은 브릭과 마거리트에게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아이가 없을까? 여기서 테네시 윌리암스는 조심스럽게 브릭의 어떤 우정에 대해 말을 꺼낸다. 브릭에게는 학창시절부터 친구였고 같은 풋볼클럽에서 환상의 콤비로 활약했었던 ‘스키퍼’라는 친구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한 친구사이가 아니라는 점. 그렇다고 해서 흔히들 상상하는 동성애 관계도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브릭이 너무도 진실하고 순결하게, 스키퍼와 우정을 나누었다는 데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자신 인생에서 단 하나의 진실은 아내 마거리트와의 사랑이 아니라 스키퍼와의 우정이었다고 고백한다. </p>
<p>마거리트 또한 남편과 스키퍼의 관계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브릭과의 말다툼 중, 마거리트는 무서운 사실을 고백한다. 남편과 스키퍼 간의 긴장감을 견디다 못한 자신이 축구 시즌 중에 스키퍼에게 접근해서 다음과 같은 위험한 말을 했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당신과 브릭이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와 자요.’ 문제의 그 밤 이후, 스키퍼는 이 사실을 브릭에게 고백하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희곡 상에서 대략 브릭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마거리트와 동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생신과 유산 분배의 신경전을 펼치는 와중에, 마거리트는 브릭에게 외친다. 그때 자신과 스키퍼는 “우리 둘은 서로 상대방을 당신-브릭-이라고 생각하고 잤다”고 말이다. 이제 죽은 스키퍼를 제발 잊고, 늘 스키퍼와의 관계가 오해받지 않도록 방패용으로 내세웠던 살아있는 고양이 매기-자기-를 좀 봐달라고. 우리는 유산을 위해 지금이라도 아이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p>
<p>여러 가지 일들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난 깊은 밤, 희곡은 브릭과 마거리트 간의 화해를 암시하듯 이 둘을 침대로 이끌며 끝이 난다.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가족 간의 갈등, 소통의 부재 혹은 이 둘의 화해보다도 마거리트가 브릭에게 외친 그 말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유산상속은 이성애 가족제도의 핵심이다. 족외혼으로 여성을 교환하고 자식을 낳아서 부계를 보존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문의 재산을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함이다. 바로 그 긴장이 흐르는 밤, 애써 외면하던 남편의 비밀을 들추며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마거리트의 분노에 떨린 한 마디. “우리 둘은 서로 상대방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짓을 했어.”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긴장된 순간, 유산과 자녀 유무라는 이성애의 그림자가 가장 진하게 드리워진 공간에 날아든 이 한마디 말. 마거리트의 이 말은 아버지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 안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는 브릭의 불안정한 지위를 단번에 드러낸다. 그리고 스키퍼와 마거리트가 보낸 그 슬픈 밤의 진실을 보여준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at02.jpg" rel="lightbox[5389]"><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at02-400x220.jpg" alt="" title="cat02" width="400" height="220"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5392" /></a><br />
지주의 아들이라는 배경, 미남자, 왕년의 풋볼스타. 이 모든 우월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이너다. 바로 자신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스키퍼와의 관계 때문에. 애초에 스키퍼와의 관계를 오해받지 않기 위해 결혼한 마거리트와의 얄팍한 행복도 스키퍼의 자살 이후로 부서져버렸다. 이런 그를, 가족에 매어둘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또한 스키퍼는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따라서 자기가 사랑하는 브릭 또한 터부시 되는 동성애를 저지른 적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아내를 안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키퍼에게 마거리트는 그토록 사랑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번도 연결된 적 없는 브릭과 맺어져 있는 존재였다. 즉 그와 마거리트의 결합의 순간 마거리트는 스키퍼에게 자신을 안아주는 브릭이었다. 반면 마거리트에게 스키퍼는 단 한번도 자신이 받아 본적 없는 브릭의 진정한 사랑을 받은 존재였다. 그녀는 스키퍼를 향한 남편의 사랑을 끊어냄과 동시에, 남편을 소유하기 위해 브릭과 연결된 존재로서 브릭이 자기 자아처럼 사랑한 존재와 결합했다. 이처럼 스키퍼와 마거리트의 맺어짐은 성과 젠더, 동성애와 이성애가 뒤섞는 일이었다. </p>
<p>스스로도 퀴어였던 테네시 윌리암스. 그의 이 희곡은 흔히 ‘가족의 비극’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싸우고 갈등하고 추한 물욕에 시달리는 가족의 비극이 부각 될 때, 그 비극적인 가족이 생산하는 또 하나의 비극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족이라고 불릴 수 없고 사랑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없는, 이성애를 강제함으로써 유지되는 가족이 배제하면서도 생산해내는 퀴어의 비극이 말이다. 극 중 브릭은 항상 자신과 스키퍼가 ‘추잡한 동성애’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원정 경기를 가서 한 숙소에서 묵을 때조차, 잘 자라는 가벼운 악수 외에 어떤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 이성애의 기준을 뒤흔드는 동성애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하지만 브릭의 지나치게 투명한 태도가 그의 특별한 친구 스키퍼의 목을 조르고 말았다. 쥬디스 버틀러는 사실 동성애는 이성애를 패러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패러디로 드러나는 것은 이성애 또한 원본없는 패러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브릭이 자신과 스키퍼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특별한 관계나 특별한 성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했던 추잡한 동성애와도 혹은 기존의 이성애와도 구별되는, 브릭이 단지 우정이라고 부른 그런 형태의 사랑은 사실 없다. 오히려 브릭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과 스키퍼 사이에 이성애를 모방한 동성애적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스키퍼를 잃고 방황하던 브릭은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의 예순다섯번째 생일날 밤, 결국 아내 마거리트에게 이끌려 이성애 속으로, 가족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자기 사랑을 잃고, 자기를 부정하면서. 슬프지만, 가족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재생산을 해야 하고, 가업은 이어져야 한다. 스키퍼, 풋볼…. 모든 소중한 것들을 잃고 묘하게도 초연한 패배자의 매력을 지닌 브릭은 결국 가족 관계로 재편입된다. 이것이야말로 ‘가족’의 비극이 아닐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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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원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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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23:15 +0000</pubDate>
		<dc:creator>현민(병역거부자)</dc:creator>
				<category><![CDATA[영장찢고 하이킥]]></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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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재판은 끝났는데 구속이 되지 않았다.
왜 울었는지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에도 이유는 알지 못했다.

유죄라는 좌절감?
(무죄로 풀려날 거란 기대도 없었으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몰랐으면서)
구속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슬퍼서? 놀라서? 당황해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suyunomo.net/img/hk_top.jpg" alt="" /></p>
<p>재판은 끝났는데 구속이 되지 않았다.<br />
왜 울었는지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에도 이유는 알지 못했다.</p>
<p>유죄라는 좌절감?<br />
(무죄로 풀려날 거란 기대도 없었으면서)<br />
미래에 대한 두려움?<br />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몰랐으면서)<br />
구속되지 않았다는 안도감?<br />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br />
슬퍼서? 놀라서? 당황해서?</p>
<p>차라리 그건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신체적 반응이라 해야 옳다.<br />
나는 법정에 있는 내내 긴장을 풀기 위해 입술을 축이고 손을 주물러댔다. 법정은 내 몸을 뚫고 들어와 오장육부를 꽉 움켜쥐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며시 놓고 가버렸다.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그 여파로 오장육부가 출렁이는 걸 느꼈다. 그리고 오장육부의 진동은 소리가 되고 액체가 되어 내 몸에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흘러나왔다. 법정의 손아귀에서 한발짝 벗어난 내 신체는 그런 식으로 사정없이 흔들리면서 꺽꺽 소리를 냈다.<br />
눈물(그것은 기관의 문제다)과 울음(그것은 신체의 문제다)의 차이를, 경험적으로, 깨달았다.</p>
<p>흔들림이 멎자 주변이 환해졌다. 뒤늦게 동행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쓸쓸하게 정돈된 집안. 어머니께서는 늘 그렇듯이 아들의 귀환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맞이하셨다. 휴가를 내고 서울에 오신 어머니를 터미널까지 배웅했다. </p>
<p>네일아트샾에 가서 손톱관리를 받고 청록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다음날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 다음날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p>
<p>그러면서 틈틈이 사람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정리하고 감옥에서 읽을 도서목록을 정돈했다.(감옥에서는 도서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고 출력물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면 유용하다. 참고로 쇠, 가죽, 끈이 안 달린 노트도 챙겨두면 그때그때의 심정을 기록할 수 있다. 스프링 없는 볼펜도 반입가능하다.)</p>
<p>그러던 와중에 검찰에서 전화가 왔길래 금요일 6시에 맞춰 가겠노라고 답했다….</p>
<p>서부지검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말끔한 친구들과 다가가니 친절하게 방문목적을 묻더니만, 방문목적을 밝히니 돌멩이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반말을 내뱉었다. ①소박한 작별인사를 나눴다. ②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③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 ④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p>
<p>서부지검 엘리베이터에는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는 게 틀림없다. 계기판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서서히 나를 둘러싼 경계와 내 형체가 희미해지는 걸 감지했다.</p>
<p>그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마트 위 진열상품이나 지나가는 도둑고양이를 대하듯 했다. 아무도 내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눈길만으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30분 후에 다시 탐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끼리의 대화. “뭐야?”, “어, 여호와의 증인.” 뭐라도 대꾸를 하고 싶지만 어느새 입이 사라져버려 말을 할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게 되었다. 호송차에 이를 즈음에 나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울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내게 행선지를 알려주지도, 눈길은커녕 뒷좌석을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왕 투명인간이 되었으니 완벽하게 투명해져서 이 낯선 상황에서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손목에 채워진 수갑만큼은 내가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p>
<p>어쩔 수 없이 나는 텅빈 눈알에다 뾰족한 바늘로 바깥 풍경을 새겨넣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지만 내겐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지극히 평범한 저녁의 풍경을. 이어폰을 귀에 꼽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직장인, 손을 맞잡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커플, 경쟁하듯 제각기 반짝이는 불빛들, 그 너머로 태연히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p>
<p>그 모든 풍경을 집어삼킬 만큼 어둠이 짙어질 무렵, 나는 어딘가에 당도하여 내려졌다.</p>
<p style="text-align:right;">
2010. 9. 5. 현민<br />
*전쟁없는 세상(<a href="www.withourwar.org">www.withourwar.org</a>)의 병역거부 가이드북 청탁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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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타자를 부르는 환대의 무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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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21:04 +0000</pubDate>
		<dc:creator>황진미</dc:creator>
				<category><![CDATA[씨네꼼]]></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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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땡큐 마스터 킴>은 2008년도에 호주에서 만들어져, 2009년 더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무형문화제 82호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2001년도에 한국인 제자가 건넨 ‘무형문화제 82호’ 김석출의 연주CD를 듣고 낯선 충격에 휩싸인다. 그 후 수년간 한국을 십여차례 방문하여 이미 80세에 가까운 김석출을 뵙고자 탐문하지만, 한국에는 그를 아는 이는 커녕 변변한 자료조차 없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2_땡큐마스터.jpg" rel="lightbox[5384]"><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2_땡큐마스터.jpg" alt="" title="402_땡큐마스터" width="280" class="aligncenter" ></a></p>
<p><땡큐 마스터 킴>은 2008년도에 호주에서 만들어져, 2009년 더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무형문화제 82호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2001년도에 한국인 제자가 건넨 ‘무형문화제 82호’ 김석출의 연주CD를 듣고 낯선 충격에 휩싸인다. 그 후 수년간 한국을 십여차례 방문하여 이미 80세에 가까운 김석출을 뵙고자 탐문하지만, 한국에는 그를 아는 이는 커녕 변변한 자료조차 없다. 96년부터 사이먼과 함께 공연을 했던 재즈가수 엠마 프란츠는 2005년 사이먼의 사연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열망에, 감독이자 프로듀서이자 카메라 감독으로 사이먼의 한국방문에 동행한다. 마침내 사이먼은 김석출을 알고 있다는 국악인 김동원의 안내로 84세의 김석출을 알현하게 된다. 영화는 2005년 사이먼이 김동원과 함께 김석출을 만나기 전 다른 한국의 명인들을 순례하며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여정과, 마지막으로 집안 굿판에서 장구를 잡은 김석출을 뵙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담는다. 김석출은 그의 방문을 받은 뒤 불과 3일 후 별세하였다. 마치 운명처럼 영화는 만들어졌고, 이제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앞에 남았다. </p>
<p>재즈뮤지션이 국악의 리듬에 이끌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84년도에 미국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첫 앨범이 나온 뒤, 외국 뮤지션들의 관심이 있었다. 89년도에 나온 두 번째 앨범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선’과의 협연을 담고 있다. 재즈와 국악은 즉흥성이라는 뚜렷한 공통점을 지닌다. 사실 즉흥성은 클래식 음악에서만 백안시되었지, 어떤 민속음악에서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음악의 본원적인 정수이다. 김석출은 국악 중에서도 무속 음악인으로, 동해안 어촌마을의 풍어와 안전을 비는 별신굿에서 무녀의 춤사위에 강약과 장단을 부여하는 반주를 맡았다. 전통적인 세습무가의 자손으로 8살에 박수가 된 그는 장구, 꽹과리 등에 모두 능통하였고, 특히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태평소 시나위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김석출만이 갖고 있는 혼의 울부짖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희에 이르러서도 며칠을 쉬지 않고 각종 무속가락을 연주해냈으며, 그의 음반은 거의 70대에 녹음된 것이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3_땡큐마스터2.jpg" rel="lightbox[5384]"><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3_땡큐마스터2-400x224.jpg" alt="" title="403_땡큐마스터2" width="200" class="alignleft" /></a>‘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샤마니즘은 ‘상징’의 도움으로 ‘알 수 없는’ 타자의 세계에 ‘이름’과 ‘체계’를 부여하는 특수한 상징조작기술이다. 샤만은 그 상징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믿음에 의해,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한국 전통무속에서 세습무는 이러한 상징적 의례를 정교하게 익힌 자들로, 강신무들과 달리 접신을 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영매>(2003)에도 나오듯이 세습무들은 강신무들이 제멋대로 굿을 한다고 천시한다. 샤만의 주술적 효력이 발휘되는 것은 샤만의 상징을 믿는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무속공동체가 사라진 오늘날, 세습무는 믿음 없는 의례를 상연하는 예술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반면 강신무는 상징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 실재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현대적 열망에 부합하여 성장추세이다.)</p>
<p>‘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속담처럼 굿은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며, 공동체의 믿음을 결집시키는 작업이다. 여기서 무속음악의 역할이 중요한데, 즉흥성과 기교를 바탕으로 무당의 춤사위를 조율하고 굿판의 흥을 쥐락펴락하여, 무당을 무아지경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물론, 참여자들의 집단무의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그 자체로 신비한 작업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클럽에서 비트가 강하고 단순 반복적인 리듬의 테크노 음악에 맞추어 헤드뱅잉을 하다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트랜스’ 상태를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현상을 염두에 둔 테크노-하우스 장르로 ‘트랜스 뮤직’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타악을 위주로 한 강하고 빠른 비트에 즉흥성을 최대로 살린 원초적 리듬의 무속음악은 음악이 본래 지니는 인간의 무의식에 직접 작용하는 속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4_땡큐마스터3.jpg" rel="lightbox[5384]"><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4_땡큐마스터3-400x300.jpg" alt="" title="404_땡큐마스터3" width="200" class="alignright" /></a>겸손한 순례자 사이먼과 함께 길을 나서는 김동원은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후신인 ‘사물놀이 한울림’의 임원이자,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일원으로, 사이먼과 국악인들과 관객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폭포 옆에서 7년간 득음수련을 한 배일동 명창과, 8살에 내림굿을 받은 강신무 정순덕과, 진도 씻김굿의 장구 명인 박병천과, 오고무의 명인 진유림 이다. 사이먼은 이들과 음악을 주고받으며 기(氣), 음양, 호흡, 장단, 졸박미, 이완된 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을 남발하거나 인물들의 행위를 밋밋하게 이어붙이거나 신비주의적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외국감독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핸드핼드 기법의 다이나믹한 화면과 약동하는 멜로디, 그리고 점차 상승하는 편집의 힘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마침내 누이의 씻김굿에서 장구채를 잡은 김석출과 4대 세습무가가 펼치는 구성진 굿판은 울컥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먼 길을 돌아 고향에 이른 뭉클함이랄까.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받치고 있던 굳건한 인연의 끈을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영화가 만들어진 후 2006년부터 사이먼과 배일동, 김동원 등이 주축이 된 한국-호주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그룹 ‘다오름’이 결성되어 수차례 공연을 갖고 있다. </p>
<p>흔히들 퓨전과 크로스오버를 말하지만, 타자에게 겸허히 배움을 청하고, 그런 타자를 두 팔 벌려 환대하는 태도가 없다면 모두 헛일이다. 국악과 무속에 ‘무형문화제’의 이름을 붙여 ‘전통문화’로 박제화한 채, 현재화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은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이다. 벽안의 뮤지션과 감독으로부터 귀중한 배움을 얻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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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 번째 순환 -“삶도 건강도 사랑도 불안하다 -왜 노동이 예외여야 하는가?”(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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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19:07 +0000</pubDate>
		<dc:creator>보이지 않는 번역자</dc:creator>
				<category><![CDATA[다가오는 봉기(번역)]]></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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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노동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감정의 복잡함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노동 관념은 항상 모순적인 두 차원, 즉 착취(exploitation)의 차원과 참여(participation)의 차원을 포함해왔다. 잉여가치의 사적 혹은 사회적 전유를 통한 개별적이고 집합적인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생산 영역에서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 사이를 엮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통해 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 이 두 차원은 유감스럽게도 노동 개념 안에서 뒤섞여 버렸다. 이는 노동자들이 착취의 차원을&#8230;</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노동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감정의 복잡함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노동 관념은 항상 모순적인 두 차원, 즉 착취(exploitation)의 차원과 참여(participation)의 차원을 포함해왔다. 잉여가치의 사적 혹은 사회적 전유를 통한 개별적이고 집합적인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생산 영역에서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 사이를 엮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통해 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 이 두 차원은 유감스럽게도 노동 개념 안에서 뒤섞여 버렸다. 이는 노동자들이 착취의 차원을 부인하는 경영자들의 레토릭에 대해 그런 것처럼, 참여의 차원을 부인하는 맑스주의자들의 레토릭에도 무관심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노동에 대한 양가적 태도가 여기서 나온다. 즉 우리가 만든 것들이 우리에게 낯설어지는[우리를 소외시키는] 한에서 우리는 노동을 경멸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즐기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한에서 노동을 떠받든다. 그런데 이것은 재앙을 선결조건으로 한다: 노동을 삶의 유일한 방식(la seule façon d&#8217;exister)으로 만들기 위해 결국 파괴되어야 했던 모든 것, 추방되어야[뿌리 뽑혀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이 일어났다. 노동의 무시무시함은 노동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노동이 아닌 모든 것의 수세기에 걸친 체계적인 황폐화에 있다. 즉 노동은 동네, 직업, 마을, 싸움, 친척 등의 친숙함(familiartités)을, 그리고 지역, 존재들〔생물이나 사물들〕, 계절들, 만들고 말하는 방식 등에 대한 애착(attachement)을 체계적으로 유린해버렸다.</p>
<p>그런데 하나의 현실적인 역설이 나타났다: 노동은 여지없이 다른 모든 실존 방식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그와 동시에 잉여적 존재가 되고 말았다. 생산성의 증가, 생산의 탈지역화, 기계화, 자동화, 수치화 등은 각 상품 제조에 필요한 산노동의 양이 영에 가까울 정도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노동 없는 노동자 사회의 역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에서 우리의 결핍을 달래줄 오락, 소비, 여가 등은 우리의 결핍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 뿐이다. 한 세기 동안 폭력적인 파업으로 유명했던 까르모(Carmaux) 광산은 깝 데꾸베르트(Cap Découverte)로 업종 변경됐다. 여기는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를 타는 “멀티플렉스의 중심”이 되었고, 바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갱내 가스 폭발을 가상 체험해 볼 수 있는 “광산박물관(musée de la Mine)”으로 유명하다.</p>
<p>기업에서의 노동은 점점 더 확연하게 나뉘고 있다. 한편에는 사이버네틱화된 새로운 생산 과정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운용하는, 고도의 전문성을 띤 연구, 구상, 통제, 기획, 소통에 관계된 업무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생산 과정을 유지보수하고 감독하는 단순 업무가 있다. 전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이고, 높은 급여를 받으며, 많은 이들이 갈망하기에, 그것을 독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조금의 부스러기도 절대 내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과 그들의 일은 어떤 불안의 중압감 속에 하나로 꽁꽁 묶여버렸다. 경영자들, 과학자들, 로비스트들, 연구자들, 프로그래머들, 개발자들, 컨설턴트들, 엔지니어들. 이들은 말 그대로 일하기를 결코(jamais)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성생활(plans cul)조차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다. 어느 인적자원개발 철학자는 이런 이론을 제시했다. “가장 창조적인 기업들은 또한 내밀한 관계가 가장 많은 기업들이기도 하다.” “다이믈러 벤츠의 인적자원관리 매니저는 이렇게 확언했다. 고용된 이들은 기업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8230; 그들의 동기, 노하우, 혁신 역량, 고객 욕구에 대한 관심 등이 혁신적인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구성한다. &#8230; 그들의 태도〔처신〕, 그들의 사교적이고 정서적인 경쟁력이 그들의 노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 &#8230; 노동에 대한 평가는 더 이상 업무 시간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도달 목표에 근거해서, 그리고 결과의 질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경영자들인 셈이다.”</p>
<p>자동화로 넘길 수 없었던 업무들은, 기계가 할 수 없기에 별 중요성이 없는 사람들(n&#8217;import quels humains)이 수행하는 그런 일들 -상품배달원, 창고관리자, 공정라인근무자, 계절노동자등-로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직무 이동이 잦고 한 기업에서 오래 머무르지도 못하는 그런 유연하고 미분화된 인력들, 생산과정의 중심을 차지하기는커녕 단지 파편으로 쪼개진 채 기계화될 수 없는 구멍들을 메우는 일이나 하고 있는 그런 인력들은 하나의 세력으로 응집할 수도 없다. 임시직(intérimaire)이야말로 그런 노동자들의 형상이다.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직업도 없이 임무에 맞는 재능만을 파는 사람들, 그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직업이 되는 그런 임시직 말이다.</p>
<div id="attachment_5383"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4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db.jpg" rel="lightbox[538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db-400x299.jpg" alt="" title="db" width="400" height="299" class="size-medium wp-image-5383" /></a><p class="wp-caption-text"><그림> -루앙의 인간주차관리기</p></div>
<p>기계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하고 유효한 핵심 노동력의 주변(marge)에는 이미 잉여적 존재가 된 다수의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생산의 흐름에는 어떤 유용성을 가진,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사람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며 기계를 파손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총체적인 기능정지(démobilisation générale)의 위협은 오늘날 생산시스템을 괴롭히고 있는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일합니까?”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들이 <<리베라시옹(Libération)>>에 나온 어느 전직 기초수급자(ex-Rmiste)처럼, “잘 살려고요(Pour mon bien-être). 난 열심히 일해야 해요(Il fallait que je m&#8217;occupe).”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결국에 일자리를 얻게 되는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Il y a un risque sérieux que nous finissions par trouver un emploi à notre désœbrement). 유동의 인구는 일에 매어 놓거나 관리해야 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임금노동보다 더 나은 훈육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독히도 말 안 듣는 놈들(les plus rétifs), 굶어죽든지 감옥에서 썩든지 택일하라고 하기 전에는 도무지 굴복할 줄 모르는 놈들을 임금노동의 품 안에 몰아넣기 위해서 “사회 소득(acquis sociaux)”에 대한 파괴 행위가 계속 이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청소, 요리, 마사지, 가사보조, 매춘, 돌봄, 특별강습, 요양, 심리상담 등 “인격적 서비스(services personnels)”라는 노예적〔시중드는〕 산업의 폭발적 팽창도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 안전〔치안, sécurité〕, 위생(hygiène), 통제(conduite), 문화(culture) 등의 지속적인 고도화, 그리고 덧없는 유행의 가속화가 계속 함께 일어날 것인데, 이것들 모두가 그런 서비스들의 필연성을 정초하고 있다. 루앙(Rouen)에서는 이제 “인간 주차관리기(인간주차요금계산기, parcmètre humain)”가 타임스탬프(horodateurs)를 대체했다: 누군가가 길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당신에게 주차권을 발부해주고, 소나기가 퍼부을 경우 필요하다면 우산까지 빌려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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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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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16:17 +0000</pubDate>
		<dc:creator>매이아빠</dc:creator>
				<category><![CDATA[매이데이]]></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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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즘 매 주 장애인 인권활동가들과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조사를 나가고 있다. 지난 주 고양시의 한 장애인시설을 보고 느낀 게 많다. 지적장애인들과 무의탁 청소년들이 함게 생활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리 재활용처리사업과 병행한다고 해도 주거환경이 너무 끔찍했다. 컨테이너 건물 주변에는 분리중인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건물 안에는 쥐들이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single_title">
<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uyunomo.net/img/01/maiday_top.gif" alt="" /></p>
<p>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p>
</div>
<div class="single_subtitle"></div>
<div class="single_title_break"></div>
<p>요즘 매 주 장애인 인권활동가들과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조사를 나가고 있다. 지난 주 고양시의 한 장애인시설을 보고 느낀 게 많다. 지적장애인들과 무의탁 청소년들이 함게 생활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리 재활용처리사업과 병행한다고 해도 주거환경이 너무 끔찍했다. 컨테이너 건물 주변에는 분리중인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건물 안에는 쥐들이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는 라면상자들과 옷가지가 쓰레기와 먼지덩어리 사이에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웬만한 불결함에는 눈도 꿈쩍 안 하는 나도 혀를 내 두를 지경이었다. 내가 면담한 한 지적 장애인은 소통이 꽤 되는 분이었다. 등이 가려운지 연신 긁어대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었다. 외출 외박은 금지되어 있고 아침에 빵 한 개 먹고 나서부터 점심 때 라면, 저녁 때 학교 급식 잔반 얻어다(일명, 푸드뱅크) 먹고 하루 종일, 어떤 때는 밥 늦도록 재활용품 분리작업을 해야 했다. 일하기 싫어 도망치다가 이틀 동안 방에 감금되었던 사람도 있고 심한 욕설과 체벌, 지독한 잔소리는 일상 다반사였다. 도망치다가 그 길로 차에 실려 인근 정신병원에 수용된 정신장애인도 만났는데, ‘간첩’에 대한 피해망상을 제외하고는 또렷한 정신을 가진 분이었다. 그분에 따르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컨테이너 박스에 가두고 밖에서 용접을 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399_매이데이.jpg" rel="lightbox[5373]"><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399_매이데이-400x300.jpg" alt="" title="399_매이데이" width="200" class="alignleft" /></a>시설생활은 이 지경이었지만 시설장은 지역사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지자체로부터 무의탁 청소년을 위탁받고, 지역단체들로부터 재활용처리사업과 푸드뱅크 사업을 지원받고, 자원봉사자를 지원받거나(비행학생 강제봉사, 자원 학생 봉사, 심지어 사법연수생들의 정기적 자원봉사까지), 학교나 종교단체, 지자체 교육단체에 강연을 나가 매달 3,4백만원을 벌고 있었다. 조사 중간에도 자원봉사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결은? “시설이 열악하니까. 그래서 다들 도와주고 싶은 거지” 맙소사! 지역사회의 후원을 위해 시설을 열악하게 유지해 왔다니! 하긴, 개인신고시설로 전환한 곳 중에는 주거환경을 개선했더니 후원금과 자원봉사가 끊겼다는 시설도 여럿 있다고 하니 참으로 빌어먹을 동점심이다.</p>
<p>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우리 조사원들은 시설 폐쇄를 결정하고 당장 생활인들을 다른 곳으로 전원조치하기로 결정했다. “명예롭게 자진 폐쇄하게 해 달라,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는 시설장의 호소에 ‘너무나 인간적인’ 복지부 직원과 지자체 담당자들은 그러자고 했고, 우리 조사원들은 “단 이틀만 시간을 줘도 시설장은 장애인들과 가족들을 회유, 협박하여 우리를 ‘침략자’로 만들고 결사항쟁의 전열을 가다듬는 걸 자주 봐 왔다”며 공무원들을 설득시켜 당일로 장애인들을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저항하던 시설장도 막상 장애인들이 서너 명씩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현실 앞에서 체념한 듯, 혹은 후일을 기약한 듯 순순히 따랐다. 그런데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고 휴머니즘적인 성품과 교양을 갖춘 ‘사모님’은 그렇지 못했다. 울며불며 “너네들이 인권을 알아? 몇십 년을 한 가족처럼 지낸 사람들을 이렇게 이별할 시간도 안 주고 떼어 놓는 게 인권이야? 너네들이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아? 무슨 약을 먹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기나 해?”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 그 얘기를 듣던 한 활동가가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분이, 장애인들을 강제노동시키고 감금하고 폭행하고 방치한 게 잘했다는 거냐?”고 대거리를 하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모님은 이렇게 소리쳤다. “난, 사회복지사가 아니야. 난, 이 애들 엄마야!”</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0_매이데이2.jpg" rel="lightbox[5373]"><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0_매이데이2-400x300.jpg" alt="" title="400_매이데이2" width="200" class="alignright" /></a>활동가들도 전원조치를 시키면서 마음이 불편한 듯 했다. 다만 조금 더 위생적이고 관리감독을 받는다지만 생활인들의 자율성과 자활교육이 전무하기는 마찬가지인 규율시설에 보내는 게 유일한 대안인 현실에 가슴 아파 했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는 분들은 가족 말고 갈 데가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일군의 장애인들을 법인시설로 이전시키고 돌아온 활동가의 말이 기억난다. “그곳이라도 별로 다를 건 없어요. 너무나 ‘시설’스럽고(감옥의 배치) … 그분들 인계하고 돌아서는데 시설 운영자가 등 뒤에 대고 그러더군요.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제가 애들, 엄마처럼 잘 돌봐 줄게요’ 라고. 공포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많은 시설 생활인들이 여성 관리자나 운영자를 ‘엄마’라고 부른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고 관리해주고 대변해주는 여자, 그 앞에서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닌 양육대상일 뿐인 여자, 자유의지와 평등한 관계를 요구할 수 없는 여자, ‘예’ 라고만 응답해야 하는 여자, 그들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의 명칭이다.</p>
<p>확실히 엄마는 ‘특별한’ 존재다. 관용구 습득에 재미를 붙인 매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은 우연히 아내가 한 말 ‘아빠한테는 나쁜 딸, 엄마한테는 귀여운 딸’이다. 아내한테는 항상 애정을 갈구하며 예쁘게 보이려 하면서도 나한테는 ‘싫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이래라 저래라 요구만 하는 매이에게 아내가 한 말이 정곡을 찔렀나 보다.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이라면 나도 아내 못지 않게 한다. 아니, 더 한다고 자부한다. 신경이 예민한 아내는 피곤하거나 짜증날 때는 심하다 싶을 만큼 무심한 표정을 짓거나 갑자기 노골적인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튼튼한 나는 항상 웃는 얼굴로 돌봐 주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매이는 엄마만 예뻐한다. 수시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다고 한다. 쪽쪽 입도 잘 맞추고 심지어 혀로 얼굴을 핥기까지 한다. 그러면 아내는 자지러지듯 웃는다. “아빠는?” 하면 시큰퉁 있다가 “아빠에게는 나쁜딸” 하며 까르르 웃고 만다. 너무 억울해서 밥에다 반찬을 얹어주며 “이거 아빠가 했어. 엄마는 반찬 못해” 하고,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 놀리면서도 “이건 아빠만 할 수 있어. 엄마는 못해” 라며 아빠의 특별함을 주장해도 엄마만큼의 사랑를 받는 건 역부족이다.</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1_매이데이3.jpg" rel="lightbox[5373]"><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401_매이데이3-400x300.jpg" alt="" title="401_매이데이3" width="200" class="alignleft size-medium wp-image-5380" /></a>엄마에겐 특별한 게 있다. 젖을 먹고 만지면서 쌓아온 ‘몸정’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몸을 나누고 살을 부비고 쾌락을 나누면서 끈적해진 모정에는 아빠의 돌봄 노동이 대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매이에게 ‘엄마’는 양육자도, 보호자도 아닌 ‘연인’이다. 몸의 쾌락을 나누는 자, 그래서 남들은 뭐라든 더할 수 없이 예쁘고, 만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 그게 ‘엄마’다. 아이가 커서 엄마 아닌 다른 대상을 연인으로 삼게 되면 ‘엄마’란 이름은 텅 비게 될 것이다. 그 자리를 뭘로 채울 것인가는 순전히 아내 하기 나름이지만, 시설생활자들이 부르는 ‘엄마’의 내용은 아닐 것이다. 후원자, 동거인, 친구, 선배, 동료시민, 과거의 연인…뭐 이런 것들과 합종연횡하는 내용이 채워지지 않을까? 분명한 건 양육자, 보호자, 대변자가 엄마의 본래적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양시의 시설 사모님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찾았다. 엄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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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사 일지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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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14:12 +0000</pubDate>
		<dc:creator>김융희</dc:creator>
				<category><![CDATA[여강만필]]></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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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태풍 “말로”가 남해안을 지나고 있다는데, 이 곳은 맑고 쾌청한 날씨입니다.
많은 상처를 남기고간 “곤파스”도 이 곳엔 비만 좀 내렸을 뿐, 조용히 지나가 주어
다행중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이 너무 많은 상처로, 특히
농작물과 과일의 피해지역 농가를 생각하면 나만의 무사함이 버거운 마음입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suyunomo.net/img/18/yg_top.jpg" alt="" /></p>
<h3>코스모스야 고맙구나</h3>
<p>태풍 “말로”가 남해안을 지나고 있다는데, 이 곳은 맑고 쾌청한 날씨입니다.<br />
많은 상처를 남기고간 “곤파스”도 이 곳엔 비만 좀 내렸을 뿐, 조용히 지나가 주어<br />
다행중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이 너무 많은 상처로, 특히<br />
농작물과 과일의 피해지역 농가를 생각하면 나만의 무사함이 버거운 마음입니다.</p>
<p>제발 이제는 그만! “농사일지” 때마다 <짖궂은 비, 무성한 잡초로 바쁘고 힘들다!><br />
이들 낱 말을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인용하고 싶지도 않습니다.<br />
모처럼 쾌청한 날씨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두 번째 심어놓은 배추 무우 싻이<br />
모두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는데도 상관 없습니다. 저 푸른 하늘에 떠가는<br />
흰구름처럼 멀리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p>
<p>그러나, 참아 그럴 수도 없나봅니다. 녹아 없어져버린 저 허전한 빈 공간들,<br />
터질 듯 튼실한 결실의 늘어선 풀씨를 보면서 금방 생각이 뒤바뀌고 맙니다.<br />
절충의 대안으로, 손봐야 할 농기구들&#8230; 예초기, 전기 톱등을 챙겨 싣습니다.<br />
기계치인 나는 늘 그의 신세를 지곤 하는데, 오늘 그 친구가 바빠서 걸린 일이<br />
없기를 빌면서&#8230;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짖고있는 손재주 있는 친구를 찾아갑니다.</p>
<p>벌써 고개 숙인 나락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풀섶에 마구 자란 메밀도 꽃이<br />
한창이고, 논둑에 심은 콩의 열매가 터질 듯, 나르는 메투기도 자주 보입니다.<br />
하늘을 쳐다보니 푸른 창공입니다.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찾은 계절의 순환,<br />
가을. 아직도 무더위에 지쳐 한 여름이라며 착각하며 지낸 내가 무안했습니다.<br />
모처럼 나들이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콧노래라도 불러보고 싶습니다.</p>
<p>마침 집에 있던 친구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나는 가져온 농기구들 이것 저것을<br />
꺼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맞은 그는, 찾는 나보다 더 반가웁나 봅니다.<br />
하긴 당연하지요. 인적이 드문 민통선 안의 생활이란 찾아준 사람이 늘 그립기<br />
마련입니다. 그런줄 알기에 이처럼 예고도 없이 당당하게 찾은 발걸음이였습니다.</p>
<p>그는 시원한 냉수와 함께 벌써 먹거리부터 내어 가져옵니다. 살아보면 알겠지만,<br />
이런 곳 생활은 도시에 비해 참 편리해 좋습니다. 아무리 크고 넓은 집이래도<br />
도시생활은 한 사람의 손님을 맞기에도 부담이 가지만, 농촌은 단촐한 살림에<br />
초라한 작은 집에서도 손님맞이가 별 부담이 없습니다. 그것이 시골생활의 매력으로<br />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요, 더불어 사는 참 길이라 여겨집니다.</p>
<p>묵은 김치 있겠다, 이곳 저곳을 흩어 쌈거리를 마련하고, 고추밭에서 풋고추를<br />
따오면 금방 지은 밥맛이 꿀맛이요, 여기에 반주로 막걸리 아님, 소주라도 한 잔<br />
나누다 보면 그동안의 밀린 하곺은 이야기들이 실타래도 명주 실타래처럼&#8230;..<br />
이제는 이야기를 끝내야 가져온 나의 농기구들을 손볼 터인데&#8230;</p>
<p>잘 손봐준 농기구들을 다시 챙겨 싣고 나는 집으로 향합니다. 아쉬운 듯<br />
그는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이지 않는 큰길에 들어서니,<br />
올 때는 보지 못했던 꽃길입니다. 코스모스 같은데, 잎이 매우 싱싱해 보이며<br />
작달막한 키에 하늘거림이 달리도 보인, 매우 깜찍하고 예쁜 꽃무립니다.<br />
살펴 보았더니 코스모스였습니다. 신품종일까?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p>
<p>집에 오자말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는 길 코스모스가 너무 예쁜데<br />
신품종 같으니 꼭 꽃씨를 많이 받아주라“는 부탁을 했습니다.<br />
간곡한 부탁을 그는 너무 싱겁게 받아드린 것 같았습니다. 필요하면 우리 집<br />
주위에 꽃씨를 받으램니다. 귀찮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p>
<p>그냥 꽃씨를 받아 두었다가 내년 늦은 때(말복 무렵)에 심으면 그처럼 작게<br />
자라며 싱싱한 잎에 예쁜꽃을 피우게 된답니다. 더욱이나 요즘 여름이면<br />
벌써 피어버린 것과는 달리, 가을 정취의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br />
그것도 모르고 오해부터 했던 내가 또 민망스럽습니다.</p>
<p>이것 말고 민망스러운 일이 나에겐 또 있습니다. 여럿이 모여 여름에 피는<br />
코스모스꽃이 화제가 되었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br />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 피는 코스모스를 보고 말들이 많습니다.<br />
여러분 앞에서 나는 시침을 때고 말했지요. 코스모스에게 물었더니,<br />
“옛날엔 가을이 참 좋았기에 긴 무더위의 여름을 참고 기다려 아름다운<br />
계절에 꽃을 피워 가을을 함께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을도 개떡같이<br />
변한 계절을 위해 그 고통을 무릅쓰고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br />
많은 구박질중에도 더러는 말은 된다고 생각해주는 이도 있었습니다.<br />
믿거나 말거나 자신있게 말했고,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써먹었더랬습니다.</p>
<p>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코스모스는 나의 잘못을 질책한 것만 같습니다.<br />
그것은 인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잘못된 말이랍니다.<br />
무언가 조건이 맞지 않아서 그랬을 뿐, 이처럼 조건에 맞는 것을 인간들처럼<br />
일부러 심통을 부리는 짖은 아니랍니다. 역시 가을엔 코스모스입니다.<br />
이 아름다운 계절에 맞춰 피워준 너의 모습이 정말 고맙다. 코스모스야!</p>
<p>군청의 도로 손질 짖, 제초제로 사라져버린 집앞 코스모스길.<br />
코스모스 씨앗이 익으면, 나는 그 길을 위해 꼭 많이 꽃씨를 따모을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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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 사진, 경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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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13:24 +0000</pubDate>
		<dc:creator>윤여일(수유너머R)</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category><![CDATA[사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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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진은 흘러간 과거를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에 담기면 어떤 과거든 제법 되돌아볼만한 해진다. 사진은 또한 전문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도 그럴듯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주류 예술이다. 운이 좋으면 무심결에 세상의 멋진 단면을 수집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여행과 나란히 성장해왔다. 사진은 여행을 다녔다는 증거이자, 여행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프레임이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1.</h3>
<p>  사진은 흘러간 과거를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에 담기면 어떤 과거든 제법 되돌아볼만한 해진다. 사진은 또한 전문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도 그럴듯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주류 예술이다. 운이 좋으면 무심결에 세상의 멋진 단면을 수집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여행과 나란히 성장해왔다. 사진은 여행을 다녔다는 증거이자, 여행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프레임이다.</p>
<p> 여행을 다니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면 그것을 붙들고 싶어진다.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카메라를 꺼낸다. 시간이 흘러 그 장면을 놓쳐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p>
<p>  그러나 사진은 경험을 증명하는 방법이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정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그 장면의 구조와 운동성을 읽어내야 한다. “이 벽은 왜 저 벽보다 낡아 보일까.” “안개는 어디서 오는가.” 그 호기심 속에서 아름다움은 서사를 갖는다. 그러나 사진은 그러한 이해의 노력을 여분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음이 무르익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셔터를 향한다. 호기심의 대상을 순식간에 기념품으로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본다는 행위의 보조 장치였을 사진 찍기는 보는 행위를 대체하고, 여행의 동선은 그럴듯한 사진의 피사체를 쫓는다.</p>
<p>  여행에서 돌아와 그렇게 탐욕스럽게 찍어댄 사진들은 한 데 모아 놓는다. 그러면 신물이 날 때가 있다. 그저 예쁘다. 박제된 아름다움들만 가득하다.</p>
<h3>2.</h3>
<p>  타지에 나가 아름다운 장면들만 모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면과 상황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낯선 대상과 마주치더라도 혼란을 완화시킬 수 있다. 낯선 상황에 부딪혀도 그 의미를 곱씹는 일은 뒤로 미뤄둔다. 먼저 찍어서 보존하는 일로 족하다. 잠시 멈춰 선다, 찍는다, 그리고 자리를 뜬다.</p>
<p>  사진은 분명 낭비를 일삼고 가치를 조작하는 현대사회의 본질적 예술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여행을 떠나서도 챙겨가는 노동윤리의 소산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하나씩 전리품으로 챙긴다. 그 성실함이 있기에 낯선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방황하지 않는다. 낯설수록 성실하게 찍어둔다. 그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방황할 기회가 차단된다.</p>
<p>  더욱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정서적 교감이나 유대 없이 남의 삶을 방문하고 엿볼 수 있다. 카메라는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패스포트다. 타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거리를 획득한다. 나는 관찰자로서 카메라 뒤에 숨는다. 나의 시선과 표정은 카메라 뒤에 감춘다. 피사체가 아름답든 추하든 바인더 너머의 대상을 쏘는(shot) 자는 한쪽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다. 호흡을 잠시 멈춘다. 피사체가 포즈를 취하지 않은 채 무방비일수록 더욱 날 것을 사냥할 수 있다. 찰칵. 사진으로 포획된 대상은 삶의 맥락에서 뜯겨져 나와 실재성을 상실한 채 박제화된다. 그렇게 이미지를 착취하고 감정을 소비한다. </p>
<h3>3</h3>
<p>  카메라는 진즉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떠났다. 소형화되어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어디서나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은 카메라 옵스큐라가 내장하고 있던 내부성의 형이상학을 떠나지 못했다. 카메라를 들고 눈을 바짝 바인더로 가져다 붙일 때 찍는 존재는 고립되고 어두운 공간으로 슬며시 들어가 시각적 배치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피사체를 만족스럽게 포착할 때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빛의 밝기, 구도, 가난, 존엄에 피사체가 부응할 때까지 셔터를 누른다.</p>
<p>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시선의 폭력이 있기 때문에 사진은 이따금 표면 너머를 사고하도록 이끈다. 사진은 절단의 미학이나, 바로 그렇기에 카메라의 초점이 외면한 여백은 여백대로, 잘려나간 공백은 공백대로 우리를 추론, 사색, 환상으로 초대한다. 또한 사진을 찍으려고 심도를 재고 각도를 정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일들은 그 하나하나가 대상을 어떤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은지 사고의 절차를 밟도록 만든다. 개중에 어떤 사진은 보고 있자면 왜 저렇게 찍었는지 그때의 감상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진을 찍는 일과 보는 일은 해석학적 기쁨을 동반한다.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해 의미를 입히거나 잘려진 삶의 한 단면에서 풍부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일은 삶이 지니고 있을 깊이와 복잡한 결을 이해하는 일종의 훈련이 된다.</p>
<p>  사실 사진 한 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는 없다. 오히려 이해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역설적 진실마저도 우리는 사진을 통해 깨닫곤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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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메라 들고 떠난 그들의 색계(色戒)</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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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07:19 +0000</pubDate>
		<dc:creator>은유</dc:creator>
				<category><![CDATA[편집실에서]]></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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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벌써 3년 전이네요. 잿빛 톤의 잔잔한 격정이 흐르는 포스터에 끌려서 본 영화가 있습니다. 니콜키드먼 주연의 <퍼>입니다.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울프의 생애를 보여주었던 그녀가 또 한 번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완벽하게 그려냈더군요. <퍼>는 사진가 디앤아버스Diane Arbus(1923-1971)의 자전적 영화입니다. 디앤아버스는 꽤 유명한 사진작가입니다. 장애인, 기형아, 성전환자 등을 ‘대놓고’ 찍었거든요.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허문 사진가로 불립니다. 다큐사진을 거대담론에서 한 개인의 심리로 옮겨왔다고도 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질문을 던졌다고도 평가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3년 전 즈음, 잿빛 톤의 잔잔한 격정이 흐르는 포스터에 끌려서 본 영화가 있습니다. 니콜키드먼 주연의 <퍼>입니다.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울프의 생애를 보여주었던 그녀가 또 한 번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완벽하게 그려냈더군요. <퍼>는 사진가 디앤아버스Diane Arbus(1923-1971)의 자전적 영화입니다. 디앤아버스는 꽤 유명한 사진작가입니다. 장애인, 기형아, 성전환자 등을 ‘대놓고’ 찍었거든요.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허문 사진가로 불립니다. 다큐사진을 거대담론에서 한 개인의 심리로 옮겨왔다고도 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질문을 던졌다고도 평가됩니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fur.jpg" rel="lightbox[5374]"><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fur.jpg" alt="" title="fur" width="150" class="alignright" /></a><퍼>는 디앤아버스의 생애를 전부 담지는 않습니다. 잘 나가는 패션사진가 남편의 어시스턴트이자 두 딸의 엄마였던 디앤이 사진작가로 서기까지의 3개 월 간 초기단계를 담습니다. 디앤이 ‘내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는 최초의 계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공식석상에서 남편 옆에서 근사한 모피 숄을 두르고 ‘누구의 아내’로 인형처럼 서 있는 그녀에게 한 부인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그러자 “모델의상도 챙기고 다림질도 하고 남편을 돕는다”며 머뭇머뭇 말하다가 울컥합니다. 그 자리를 뛰쳐나갑니다. 그 부인이 무심코 던진 돌이 그녀를 흔들어놓습니다. 때가 무르익었기에 그렇게 강한 통증을 느꼈겠지요. </p>
<p>축제였던 인생이 느닷없이 숙제가 되어버린 디앤. 단호한 표정으로 까맣고 무거운 카메라를 하얀 목덜미에 척하니 걸칩니다. 카메라는 등 떠미는 힘이 있습니다. 문을 열죠. 그런데 삶의 무대가 집안이었던 그녀는 난감합니다. 어디로 가야하나요. 그런 그녀에게 열쇠가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운 좋게 떨어진 게 아니라 억척스런 그녀가 발견합니다. 세면대에 물이 막혀서 배수구를 고치던 중 홈통에 걸려 있던 털 뭉치와 열쇠를 힘껏 뽑아냅니다. 그 열쇠를 들고 나섭니다. </p>
<p>털뭉치의 주인공은 다모증에 걸린 위층 남자 라이오넬입니다. 그는 얼굴과 온몸이 온통 털로 뒤덮인 짐승남이고 그녀는 공주님 같은 원피스 입은 상류층 부인. 미녀와 야수처럼 둘이 사랑에 빠집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는 한 계단 위, 길 밖 세상으로 자꾸 이끌립니다. 길 아닌 곳으로 들어서지 말라는 계(戒)를 깨버립니다. 그 곳에서 삶에 색(色)을 얻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천재성을 일깨워갑니다. </p>
<p>그녀는 라이오넬을 있는 그대로 감쌉니다. 어설픈 연민도 차이의 ‘승인’도 아닙니다. 둘은 차이를 ‘생산’으로 승화합니다. 서로에게 감응하고 촉발합니다. 디앤은 라이오넬의 친구들인 난장이, 거인, 성전환자 등과 친구가 됩니다.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도 벌입니다. 그녀는 변해갑니다. 남편은 온통 ‘서커스단 같은 무리들’ 뒤치다꺼리하는 당신이 낯설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내가 당신에게 사진 찍으라고 했지 집안 내팽개치라고 했느냐”고 소리도 칩니다. 순간, KBS드라마 <사랑과 전쟁>인줄 알았습니다. </p>
<p>하지만 그녀는 외려 이해받지 못하는데 영광이 있다는 듯 의연합니다. 고집스런 예술가의 기질이 돋보입니다. 우리는 상대편에게 무엇인가 말해주고 싶어 할 만큼 충분히 다르지만, 또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다는 걸 그녀는 잘 압니다. 디앤은 자신의 출구가 되어준 라이오넬을 단 한 번 원망합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고백하는 라이오넬에게 시린 눈물 뚝뚝 흘리며 말합니다. “이러려고 날 사랑하게 했나요.” </p>
<p>그러려고 사랑했죠. 라이오넬은 디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친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의 소명을 다하고 그는 갔습니다. 이 세상에 라이오넬은 없지만 그녀는 혼자서도 갈 곳이 많아졌죠. 카메라 들고 또 다른 수많은 라이오넬을 만나러 디앤은 길을 떠납니다. 뒷모습이 아름답고 강렬합니다. 라이오넬의 온몸을 덮었던 털로 만든 긴 망토를 걸쳤거든요. 완벽한 ‘라이오넬-되기’로 영화가 끝이 납니다. </p>
<p>32호 위클리 수유너머에서는 소통의 예술 ‘사진’을 다룹니다. 20여년 길없는 길을 떠돌며 인식의 ‘계’를 깨고, 레닌부터 만화까지 사진의 ‘색’다른 해석을 시도하는 다큐사진가 이상엽을 전선인터뷰에서 만났습니다. 또 이번호부터 ‘임종진의 사진공감’이 새로이 연재됩니다. 그가 캄보디아에 머물며 찍은 사진들과 <한겨레> 재직 시 지면에 싣지 못한 위험한 B컷을 공유합니다. 자기 안에 들끓는 소수성을 셔터로 폭발시키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진가가 ‘디앤아버스’라네요. 카메라 들고 떠난 그들의 색계, <퍼>만큼 감동 돋는 사진들을 만나보세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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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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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4:03:31 +0000</pubDate>
		<dc:creator>변성찬(수유너머 N)</dc:creator>
				<category><![CDATA[혁명과 정치의 사유]]></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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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들뢰즈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려 하면, 먼저 ‘들뢰즈와 정치’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한다. 들뢰즈 사유의 정치철학적 함의를 다룬 폴 패튼의 저서 제목이 『들뢰즈와 정치』가 된 것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들뢰즈는 아주 강한 의미에서의 ‘철학자’이고, 그의 사유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존재론이고, 그 ‘존재론과 함께 하는 윤리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에 대해, 또는 그들과 함께, 자신의 사유를 펼쳤지만, 한 번도 특정 분야에 대해 ‘반성’하는 철학(가령, 예술철학, 과학철학, 정치철학 등)을,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펼친 적이 없다. 들뢰즈의 정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존재론과 정치를 접속시키는 창조적 재구성 과정이 필요하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1. 들뢰즈와 정치, 들뢰즈의 정치</h3>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llljs78200708311904460.jpg" rel="lightbox[5371]"><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llljs78200708311904460.jpg" alt="" title="llljs78200708311904460" width="200" class="alignleft" /></a>‘들뢰즈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려 하면, 먼저 ‘들뢰즈와 정치’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한다. 들뢰즈 사유의 정치철학적 함의를 다룬 폴 패튼의 저서 제목이 『들뢰즈와 정치』가 된 것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들뢰즈는 아주 강한 의미에서의 ‘철학자’이고, 그의 사유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존재론이고, 그 ‘존재론과 함께 하는 윤리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에 대해, 또는 그들과 함께, 자신의 사유를 펼쳤지만, 한 번도 특정 분야에 대해 ‘반성’하는 철학(가령, 예술철학, 과학철학, 정치철학 등)을,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펼친 적이 없다. 들뢰즈의 정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존재론과 정치를 접속시키는 창조적 재구성 과정이 필요하다.</p>
<p>들뢰즈는 늘 철학은 ‘개념의 창조’라고 말했고, 실제로 수많은 개념을 창조했다. 조정환의 말처럼, “많은 연구자들이 그의 정치학을 다르게 특징”짓는 바, 그 특징은 바로 들뢰즈가 창조했던 어떤 ‘개념’에서 비롯된다. ‘내재성의 정치학’(마이클 하트), ‘탈영토화의 정치학’(폴 패튼), ‘노마디즘의 정치학’(이진경), ‘소수정치학’(니콜래스 소번) 등등. 여기에 우리는 얼마든지 더 많은 목록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차이의 정치학’, ‘잠재성의 정치학’, ‘욕망의 정치학’, ‘삶(une vie)의 정치학’ 등등. 하지만 들뢰즈의 어떤 개념에서 출발했건, 그로부터 이끌어낸 정치(학)적 함의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물론, 이 말은 그것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p>
<h3>2. 소수정치</h3>
<p>‘소수정치’ 또한 들뢰즈의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들뢰즈의 소수정치는 먼저 “민중은 결여되어 있다(People are missing)”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그는 『시네마II : 시간-이미지』에서 고전적 정치영화와 현대적 정치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민중은 이미 거기에 있다”는 전제와 “민중은 결여되어 있다”는 전제의 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비에트 영화(가령,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든, 할리우드의 영화(가령, 카프라의 영화)든, ‘민중은 이미 거기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 ‘일체주의’는 결국 ‘히틀러의 영화’ 속에서 파산했다. 그 영화들의 일체주의 속에서 ‘재현/대리’된 ‘민중(people)’은 결국 ‘민족/인종(people)’이라는 ‘다수적 표상’에 포획된 대중이었다.</p>
<p>‘민족’은 ‘자본주의라는 공리계 실현모델’이 된 ‘근대국가’의 가장 강력한 ‘포획’의 무기다. 신자유주의가 외치는 ‘세계화’ 속에서 추방당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도, ‘민족’이라는 ‘호명’ 앞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탈주’를 멈추게 된다. ‘민족-국가’, 그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양산하는 수많은 대중의 탈주선을 ‘봉쇄’하는 ‘주인-기표’이고, 또 그들을 ‘예속-주체화’하는 ‘주체화의 점’이고, 모든 ‘다수적 척도(백인, 남성, 이성애자,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 등등)’를 뒷받침하는 최후의 보루다(국가/민족의 위기 앞에 얼마나 많은 소수자들의 권리투쟁이 위축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많이 보아왔다). “민중은 결여되어 있다”는 들뢰즈의 명제는, 먼저 이렇게 “민족은 없다”는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더 이상 “민중을 단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p>
<p>또 한편 들뢰즈는 ‘도래할 민중’에 대해서 말한다. 이때의 ‘민중(people)’은 그 어떤 다수적 척도와 동일성에 ‘몰적’으로 포획된 대중이 아니라, 그로부터 탈주하는 ‘분자적 대중’ 또는 ‘무리’로서의 대중일 것이다. 자본과 국가는 그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수많은 대중들을 ‘삶의 자리’로부터 추방(‘탈영토화’)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래할 민중’이 저절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들뢰즈의 말처럼, “만약 민중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의식(화)도, 진화도, 혁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나 단결된 혹은 통합된 민중에 의한 권력의 쟁취란 가능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들뢰즈의 말을 조금 바꿔 인용하자면, 우리는 ‘혁명을 꿈꿀 불가능성’, 그리고 ‘혁명을 꿈꾸지 않을 불가능성’이라는 카프카적 딜레마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p>
<p>그래도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자에게 들뢰즈가 던지는 전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 속에 있을 것이다. “확실히 방언 같은 소수어를 사용하거나 게토나 지역주의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소수적 요소들을 이용하고 연결접속(connection)시키고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자율적이고 돌발적인 특수한 생성을 발명하게 된다. 민중의 발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수적인 것들의 연합과 접속의 과정 혹은 구성의 과정이다.”(『천 개의 고원』) 분명, 다수적 척도 자체를 바꾸지 않은 채 자신 만의 ‘게토’를 만드는 것이 소수정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운동이든, 비정규직을 외면한 채 자신의 ‘임금인상(가변자본으로서의 가치 상승)’만을 요구하는 노조운동이든, 그것은 결국 자신만의 ‘게토’를 만드는 것에 다름아니다(하지만 들뢰즈가 이러한 ‘공리적 투쟁(제도개선투쟁)’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p>
<p>누군가의 탈주는 다른 누군가의 탈주와 연결접속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탈주, 즉 ‘혁명’이 된다(가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친구와 함께 해야 한다). 자본과 국가의 ‘배제적 이접’에 맞서는 소수자들 사이의 ‘포함적 이접’, 그것은 모든 소수자들이 ‘상호-되기(이중생성)’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이 ‘소수자-되기’를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자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소수자들의 연결접속의 ‘중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개자’가 된다는 것은 ‘지도’한다거나 ‘의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소수자와 함께 ‘상호-되기(이중생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현대정치 영화의 위대한 시네아스트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 인물들이 이야기를 꾸며 내게 함으로써 타자가 되게 하고, 또 작가 자신은 자신에게 실제 인물을 증여함으로써 타자가 되는 이중 생성(인물의 작가-되기, 작가의 인물-되기)”을 이루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탈주의 진정한 목표는 소수자 자신의 ‘도망’이 아니라 ‘세상(의 다수적 척도)을 탈주시키는 것’이다. 마치 카프카가 ‘소수적 창조’를 통해서 ‘다수어를 더듬거리게’했던 것처럼 말이다. 들뢰즈가 소수자들의 연결접속을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단지 ‘우리끼리 평화롭게 잘 살 게’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진정으로 ‘세상을 탈주’시킬 가능성, 다수적 척도를 무력화시킬 가능성, 자본주의라는 공리계를 ‘극한’ 너머의 ‘문턱’으로 몰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얼마나 많은 봉기와 혁명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p>
<h3>3. 정치의 소수화</h3>
<p>들뢰즈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가령, 랑시에르가 ‘치안’과의 대비 속에서 자신의 ‘정치’ 개념을 정의했던 것처럼) 자신의 ‘정치’ 개념을 설명한 적은 없지만, 지젝이 오해한 것처럼 그가 ‘정치에 무관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들뢰즈의 사유, 그리고 그의 수많은 ‘개념 창조’는 이미 정치적 행위이고 혁명적 행위였다. 조정환의 말처럼, 들뢰즈의 철학이 현대의 좌파 정치학에 미친 가장 큰 효과는 ‘정치의 자리’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다. 들뢰즈의 철학은 “국가를 정치활동의 중심무대로 파악하는 전통적 관점”을 “삶의 미시적 영역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갈등들, 언어들, 이미지들, 계략들, 발명들 등이 낳는 탈물질적 놀이와 의미의 사건을 정치의 중심 무대로 가져왔다.” ‘국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국가의 외부(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라는 내부성 속의 외부)’에서 벌이는 투쟁=창조, 그런 의미에서의 ‘미시 정치학’, 이것이 들뢰즈의 정치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정치(개념)의 소수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도 정치-되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첨언 하나. 들뢰즈의 지나친 ‘낙관주의’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지만, 그는 ‘긍정주의자’이기는 해도 ‘낙관주의자’는 아니다. ‘낙관주의’란 ‘세상-문제로부터의 도피’이거나 허튼 ‘위로’이겠지만,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위험’을 알면서도 ‘실험’을 감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카프카가 ‘글을 쓸 수 없는 불가능성,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불가능성’라는 이중적 불가능성(딜레마) 속에서도 글쓰기=창조를 했듯이, ‘실험’이란 그렇게 출구를 ‘찾아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고, 그렇게 ‘삶의 잠재성’을 ‘믿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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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선인터뷰 이상엽- 레닌에서 만화까지,사진 그 가능성의 중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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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Sep 2010 13:26:59 +0000</pubDate>
		<dc:creator>은유</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category><![CDATA[사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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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레닌이라니. 전생에 잠깐 스친 첫사랑처럼 흠칫 발걸음을 불러 세우는 이름이다. 우연찮게 일 년 터울로 세 권의 책이 나왔다. <레닌의 노래>(2006) <레닌이 있는 풍경>(2007) <지젝이 만난 레닌>(2008) 각각 시집, 사진책, 철학서인데 표지나 표제가 빨갛다. 마치 3부작 같다. 아직도 참숯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레닌을 호명하는 이들은 대체 뉘신가. 시인 김정환은 레닌을 노래했다. 기억의 시간의식이 ‘지워지는 것’은 지나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짓밟히는’ 것이라며 “인간의 조직이 아름다웠던 시간”을 환기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lockquote style="text-align:right;"><p>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br />
- 진은영 ‘긴 손가락의 詩’ 중에서</p></blockquote>
<h4>레닌, 기억  </h4>
<p>레닌이라니. 전생에 잠깐 스친 첫사랑처럼 흠칫 발걸음을 불러 세우는 이름이다. 우연찮게 일 년 터울로 세 권의 책이 나왔다. <레닌의 노래>(2006) <레닌이 있는 풍경>(2007) <지젝이 만난 레닌>(2008) 각각 시집, 사진책, 철학서인데 표지나 표제가 빨갛다. 마치 3부작 같다. 아직도 참숯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레닌을 호명하는 이들은 뉘신가. 시인 김정환은 레닌을 노래했다. 기억의 시간의식이 ‘지워지는 것’은 지나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짓밟히는’ 것이라며 “인간의 조직이 아름다웠던 시간”을 환기했다. 철학자 지젝은 레닌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레닌이 반복되어야 한다며 “아연할 정도로 실패한 이름 레닌” 안에는 구현해낼 가치로 충만한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음을 주장한다.</p>
<p>사진가 이상엽은 몰락의 땅, 레닌의 나라로 떠났다. 시베리아횡단열차 타고 9,938km를 달렸다. 도시 곳곳마다 거리의 풍경과 살을 섞으며 다리 아프게 서 있는 ‘지독히 쓸쓸한’ 레닌을 목도했다. 세상은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레닌을 보이지 않게 했지만 그는 “한 시대 종말의 지표이자 미래사회에 대한 묵시론적 풍경” 레닌을 되살렸다. 기록함으로써 기억했다.  </p>
<div id="attachment_5391"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1.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1.jpg" alt="" title="OLYMPUS DIGITAL CAMERA" width="500" height="375" class="size-full wp-image-5391" /></a><p class="wp-caption-text">레닌이 있는 풍경</p></div>
<p>늦여름 충무로. 오후6시 잔광이 흩날리는 길모퉁이에 시베리아횡단열차가 멈춘다. 좁은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어깨에 레닌의 쓸쓸함이 내려앉은 듯하다. 참 오래도, 그리고 멀리도 돌아왔다. 최루탄가스 매캐한 아스팔트로 출근하던 새내기 사진기자가 중년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사이 그는 20개국이 넘는 아시아 땅을 밟았으며 중국 10년, 러시아 3년, 긴 호흡으로 작업했다. 우리 땅에서는 이상한 숲 DMZ, 용산 철거민, 4대강 등을 기록했다. 미순이·효순이 사건 때 사진가 100인 시국선언을 주도했고, 얼마 전 4대강 살리기 사진가 80명의 서명도 이끌어냈다.  </p>
<p>글과 사진에 두루 능한 이상엽은 칼럼니스트, 파워블로거, 기획자, 프레시안기획위원, 진보신당정책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다큐사진가로서 외연을 넓혔다. 처녀작 <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부터 최근작 <사진가로 사는 법>까지 공저 포함 18권의 책을 썼다. 그는 넘치는 자, 행하는 자이다. 삶의 상상력이 남다르다. 준비해간 질문지가 빼곡했다. 그런데 그가  ‘삼겹살과 소주’를 시키는 바람에 얘기가 좀 더 길어졌다. </p>
<h4>거리, 신념</h4>
<p>“며칠 전 <한겨레>에 칼럼을 썼거든요. 사진 하나 없이 8.5매 분량을 언어로만 얘기하려니 영 힘들더라고요. 사진가 강운구 선배 같은 경우는 영문학도 출신인데 그는 사진가이면서도 문자의 힘을 더 신뢰해요. 세상은 문자가 지배하고 사진은 보조라고 말하죠. 근데 난 아니에요. 나의 정체성은 사진이에요. 세상을 오직 사진-언어로 이야기하죠. 곧 이미지가 증언할 때가 온다고 봐요. 물론 다큐멘터리 사진에 캡션은 필수이고 문자의 도움을 받지만요.” </p>
<p>문자이냐 사진이냐. 낡은 담론을 펴려는 게 아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사진-언어’의 가능성에 그는 주목한다. 사진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이상엽은 진보월간지 ‘길을 찾는 사람들’에서 글밥 먹는 기자였다. 사진기자가 임금체불 때문에 카메라를 책상 위에 두고 나가버렸다. 주인을 잃은 카메라가 그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외면하지 못했다. 그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사진과를 다닌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로도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없지만 사진부 발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는 우쭐함 때문인지 모른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2.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2.jpg" alt="" title="12" width="500" height="332"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393" /></a></p>
<p>일단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거리에서 사진 찍는 법을 깨우쳤다. 전선에는 헬멧과 방독면으로 중무장한 일간지, 주·월간지 기자들이 서 있었다. “어린 눈에 그들은 충분히 멋있었고 그들처럼 행동했으며 알량한 진보적 지식과 민중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을 갖고 카메라를 휘두르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p>
<p>그가 사진에 매료된 또 다른 이유는 현장성이다. 글을 쓸 때는 직접 나가지 않아도 자료를 참조하거나 전화 취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사진은 그게 불가능했다. 발로 뛰어야 성과가 나오는 사진의 정직함이 좋았다. 옴짝 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사진 한 장의 위력에 매혹됐다. 한눈팔지 않고 초지일관 사진과 열애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진을 날마다 낳았다.</p>
<h4>진보, 물음</h4>
<p>그는 요즘 진보신당 프로젝트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4대강을 기록한다. 그가 맡은 분야는 ‘하중도’이다. 하중도는 하천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섬으로 강의 유속을 느리게 한다. 배가 못 지나간다. 그래서 “하중도가 밀어버릴 대상 1순위”이다. 하지만 학자나 환경단체의 연구가 없다. 4대강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하중도와 둔치를 그가 ‘이미지’로 증언하는 것이다. </p>
<div id="attachment_5395"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3.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3.jpg" alt="" title="SONY DSC" width="500"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395" /></a><p class="wp-caption-text">디아스포라연작 금강</p></div>
<p>“강과 자연. 나는 그동안 자연을 어떻게 보았는가.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자연에 대해 진보주의자는 딜레마를 갖고 있거든요.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게 진보인가? 19세기에는 도시를 피해서 자연으로 가는 자가 보수주의였죠. 진보는 철도를 내고 자연의 변화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고요. 한 세기 만에 도치됐어요. 딜레마죠. 맑시즘은 인간의 진보, 변화 발전에 대한 낙관이죠. 지율은 있는 그대로 두라고 말해요. 천성산 때부터 그랬어요. 보수적 입장이죠.</p>
<p>물론 이명박이 약속 안 지킨다, 자연 하천을 복원시키기로 하고 운하 파더라. 비판해야죠. 하지만 진보주의자에게 있어서 미래에 강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생각이 많아요. 미국은 자연하천에 인간이 접근하지 않아요. 땅이 워낙 넓으니까. 우리는 강과 조화로운 삶을 정책적으로 가야 해요. 두물머리가 유기농단지가 된 것처럼 특화해서 생산물을 비싸게 팔아야죠. 우리는 땅이 좁은 나라니까 강가에서 옹기종기 합목적적인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p>
<p>촛불집회, 용산참사, 4대강 살리기 등 우리사회의 핵심적 현안에는 늘 수많은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일반 시민, 사진 동호회, 기자, 다큐사진가 등이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같음에서 다름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진은 사유다. ‘어떻게 볼 것인가’ 질문하는 능력과 사진하는 역량은 같이 간다. 4대강과 진보에 대한 물음을 농익혀 그가 자신만의 시각을 찾으려 애쓰는 까닭이다.  </p>
<div id="attachment_5396"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4.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4.jpg" alt="" title="14" width="500"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396" /></a><p class="wp-caption-text">촛불여성연작</p></div>
<p>“사진가라면 자기중심을 잡아내야죠. ‘용산’이라는 현상을 반복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해요. 사진은 감성이에요. 그게 빠지면 사진이 건조해져요. 그게 과해서 어떤 사진가는 용산의 슬픔, 잔혹한 개발사를 증발시켜버리기도 하죠. 좋은 다큐사진은 ‘보는 힘’에서 나와요. 심미적인 것은 부차적이죠.”</p>
<p>그는 아마추어의 사진은 산만하다며 ‘나도 저 상태가 뭔지 모르는데 나 저기 갔어, 찍었어.’ 라고 말하는 사진들, 현상만 봤지 감응도 못한 상태에서 마치 전리품처럼 사진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p>
<h4>DSLR, 페르소나 </h4>
<p>아마추어 얘기가 나온 김에 ‘DSLR열풍’을 짚어보자. 디지털카메라 인구 천만시대를 진즉에 넘어섰다. 한중일 극동아시아 삼국,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DSLR을 들고 다닌다. 왜 일까?  </p>
<p>“모든 예술 장르 중 나이 삼사십 넘어서 시작할 수 있는 장르가 사진이에요. 예술의 재주 없음을 한탄할 수 없는 장르라고 할까?(웃음) 나이 들어서 음악 미술은 도저히 못해요. 사진은 좋은 장비만 있으면 웬만큼은 나오니까 착각을 줘요. 아마추어들의 장비가 더 좋은 경우도 많잖아요. 이는 우리나라에 집중된 현상이죠. 유럽은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쌓으니까 문화적 갈증이 없어요. 사진은 선택 가능한 하나의 장르일 뿐이죠. 우리나라는 초중고 때 예술적 소양교육이 부족하잖아요. 성인이 돼서 손쉽게 즐길만한 놀이가 사진 밖에 없는 거죠. 우리나라 부르주아들은 클래식이나 뮤지컬을 즐기지 사진은 안 해요. 사진은 하층민의 예술이에요.” </p>
<div id="attachment_5397"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5.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5-520x346.jpg" alt="" title="15" width="500" height="346" class="size-large wp-image-5397" /></a><p class="wp-caption-text">세기포토스쿨강좌 모습 (사진가 김윤섭)</p></div>
<p>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사진에 관하여> 저자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이렇게 말했다. ‘숙련된 기술이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셔터를 살짝 누르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흘려줘도 알아서 작동하는 카메라. 엔진을 시동하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 카메라’(33)를 들고서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무조건 일만 해대는 무지비한 노동 윤리 탓에 심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독일인, 일본인, 미국인들이 이런 방식을 매우 좋아한다’(27)고.</p>
<p>이상엽은 수잔 손탁의 통찰을 빌어 “망원렌즈는 남근의 상징”이라며 “근사한 카메라 하나가 경제적, 성적, 예술적 매력을 다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남성들은 고급 장비에 전력투구 하면서도 사진을 컴퓨터에만 저장할 뿐 직접 현상 한번 해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마치 우리가 유기농 먹을거리를 살 때 진짜로 구매하는 것이 생태학적 생활방식의 경험(지젝)인 것처럼 근사한 DSLR을 소유하는 것은 공적 페르소나를 구입하는 것인지 모른다.  </p>
<p>어쨌거나 인간의 신체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은 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서 그는 사진이라는 영상언어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문자의 시대에 유시민이 발명가였다면 앞으로는 이미지-언어를 잘 다루고 그것을 독해할 줄 아는 사람이 발명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마 지금 젊은 친구들이 40대가 되는 순간 문화지형이 크게 바뀔 겁니다.”</p>
<h4>반복, 미학</h4>
<p>예술은 지겨운 반복에서 폭발한다. 모네는 정원 연못에서 영감을 얻고 30년을 수련연작을 그리는 데 바쳤다. 점묘화로 유명한 쇠라는 자기가 원하는 색채와 표현을 얻기 위해 별로 달라지지도 않은 듯싶은데도 그 부분의 미묘한 차이를 내며 수백 장씩 그리는 고된 과정을 반복했다. 중요한 것은 걸작이 아니라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며 예술가의 자세이다.  </p>
<p>사진도 다르지 않다. 반복의 차이화 과정이다. 장애인, 기형아, 성전환자 등 소수자 사진으로 유명한 다이앤 아버스는 ‘500번은 찍어야 가면이 없는 타자의 모습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계의 전설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도 기다림의 결과다. 피사체의 감정, 빛의 의미,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합이 맞아 탄생했다. 들뢰즈의 언명대로 ‘필연은 우연에 의해 긍정된다.’  </p>
<div id="attachment_5398"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6.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6.jpg" alt="" title="16" width="500" height="326" class="size-full wp-image-5398" /></a><p class="wp-caption-text">실크로드연작 스리랑카</p></div>
<p>“사진 잘 찍는 법이요? 사진은 노동이에요. 확률을 믿어야죠. 찍고 또 찍으면 천장 중에 열장은 건질 수 있어요. 근데 잘 찍은 사진이 곧 좋은 사진은 아니에요. 형식적인 완성도가 중요해요. 아름다운 사진이 아닌데도 형식적으로 정교한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유진 리차드처럼 균형미마저 파괴할 수 있는 미학적인 관점을 획득해야죠. 저는 언어만큼이나 이미지를 독해하는 능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봐요.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이 있는 거죠.</p>
<p>고야의 후기 스케치를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보지 못해요. 그가 스페인 궁정화가에서 리얼리즘에 눈을 뜨고 민초들의 고통 받는 현실을 표현한 것은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 차 있어요. 근데 잡아끄는 힘이 있다니까요. 팔다리 잘려나가도 더 보게 되는 거. 작가는 일반인과 같은 형식을 추구하면 안 돼요. 사진은 내 이야기 읽어달라고 보여주는 거니까.”  </p>
<h4>인문책, 밑그림</h4>
<p>충무로의 밤은 어항처럼 고요하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엔 밤새 기계가 돌며 각종 인쇄물과 유인물을 뽑아내던 동네였다. 지금은 과거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 지방 소도시처럼 어둑하고 스산하다. 헌데 극동빌딩 뒤편 낮은 건물에서 밤새 노란 불빛이 새어나올 때가 많다는 후문이다. 그의 작업실이다. 두 개 층을 쓴다. 조금 넓은 아래층은 글과 사진 작업이 이뤄지는 사무실이고 천정이 낮은 위층은 책을 모아둔 서재이다.  </p>
<p>다락방 서재가 탐난다. 정원은 4명. 나뭇결이 벗겨진 창틀에 하얀 달이 꽉 차는 안온한 공간이다. 인문학 천국이다. 묵직한 책들이 벽면에 빼곡하고 창틀아래 수북하다. 한 귀퉁이에 고풍스러운 기타가 기대고 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여기가 사유의 촉발이 일어나는 곳, 인식의 동굴이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잡고 사진 작업에 임하기 전에만 대략 1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p>
<p><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7.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7.jpg" alt="" title="17" width="500" height="332"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399" /></a></p>
<p>“사진 프로젝트가 1년 이상이 되고 취재 경비가 만만치 않아요. 책이란 결과물로 내려면 당연히 주제를 잡고 공부를 해야죠. 무작정 가면 실패확률이 너무 커져요. 일관된 포토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대략의 밑그림을 그려가도 모든 현장이 50%이상은 틀어져요. 상황은 늘 변하니까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꿰맞추기 시작하면 진실 되지 않아요. 최종 결과물로 모든 것들이 정리가 돼야죠.” </p>
<p>그의 저서 <레닌이 있는 풍경> 마지막 부분 ‘읽고 참고한 책들의 목록’에는 <노마디즘> <러시아문화사> <레닌평전><유라시아기행>등 수십 권의 책이 올라있다. 그의 독서비법은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기다. 아무려나, 독서뿐이겠는가. 다음 작품에 대한 끈질긴 명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는 매일매일 하는 일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한다. 읽고 보고 만지고 느끼고 믿고 의심하고 묻고 답하고의 상호작용이 ‘찍다’로 승화되는 것.</p>
<h4>삶, 결 </h4>
<p>다큐멘터리사진가에게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요구된다. 운명이다. 타인의 가난과 아픔을 자신의 작업에 이용한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매순간 좋음과 나쁨을 물어야 한다. 셔터를 눌러도 될까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 문태준의 시어를 빌자면 ‘결을 맞추는 시간’과 ‘가서 얻어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사진가의 윤리다.  </p>
<p>“하수들은 남의 고통만 찍어 와요. 그게 초상권 문제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요즘은 여행도 자유롭고 웹이란 공간도 무한정 제공되니까 그 폐해가 더 커요. 피사체는 자기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목적 하에 남을 이용해서 고통마저도 섹시함으로 포장하죠. 만약 프로 사진가라면 선정적인 사진으로 판매가 되는 거고 아마추어라면 대단한 사진인양 남들에게 내보이면서 쾌감을 갖겠죠. </p>
<p>그 러지 않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있어야죠. 저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저 모습을 왜 어떻게 내보일 것인가에 대해 사진가 스스로 충분히 고민해야죠. 그들도 ‘저 사람이 내 얼굴을 훔치려한다’는 느낌을 금방 받아요. 눈만 마주치면 알 수 있죠. 나중에 사진에도 나옵니다. 피사체와 깊은 교감을 했구나,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게 읽히죠.&#8221;  </p>
<p>이럴 때 그는 셔터를 누른다. “당당하고 존엄해 보였을 때”</p>
<div id="attachment_5400"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8.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8.jpg" alt="" title="OLYMPUS DIGITAL CAMERA" width="500" height="375" class="size-full wp-image-5400" /></a><p class="wp-caption-text">중부서부연작 루얼까이</p></div>
<p>“이를 테면, 티베트의 정말 하찮고 추레하고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이 당당하고 존엄해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느낌. 티베트 지역 유목민의 활동구역이 5만평이에요. 나는 20평이나 될까한 공간에서 다글다글 살잖아요. 자기 삶과 비교해보죠. 분명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그들에 대한 옹호가 있어요.” </p>
<h4>아이패드, 공명</h4>
<p>올해 나이 44세. 똑 떨어지는 중년이다.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는 김훈의 유명한 수필구절도 있다만, 그는 중년의 가을을 환대한다. 새로운 도전에 설렘 가득하다. 일단 내년부터 지난 20년간 몰입해온 찍는 행위를 멈추고 그간의 작업을 정리할 예정이다. 관행적 출판을 바꿔보고 싶던 참에 때마침 찾아온 출판환경의 변화가 반갑단다.  “승부해볼 만한 시기”라고 운을 뗀다. </p>
<p>“내년까지 아이패드 백만 대가 보급됩니다. 아이패드는 백만 원 이하의 꿈의 기계에요.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거고 책이 되겠죠. 경쟁상대는 영화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이패드는 이미지 최적화 환경이에요. 뭐 스타누드가 팔리겠지만, 다행히 인간이 똑같진 않거든요. 사람이 10% 이상은 다른 사진을 요구한다는 거죠.”  </p>
<div id="attachment_5401"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9.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19.jpg" alt="" title="SONY DSC" width="500"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401" /></a><p class="wp-caption-text">디아스포라연작 용산미사</p></div>
<p>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중교화용이다. 베트남전 당시 반전여론을 끓게 만들었던 것도 1972년 세계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베트남 어린이 사진이었다. 어떤 한 순간을 깔끔하게 포착해 놓은 이미지, 지속적으로 공명이 가능한 사진에게 그는 기대가 크다. 단, ‘어떻게’의 문제가 남는다. </p>
<p>“요즘 젊은 층은 ‘꼰대가 교육시키는 것’을 가장 싫어해요. 30-40대의 교화 끝났다고 봐요. 그들은 참조만할 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너희는 뭐하냐는 식의 교육은 힘들어요. 공감하느냐, 교육하느냐는 에디팅 능력이죠. 지금은 정보와 이미지가 넘쳐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죠. 그들이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젠 사진이 가진 매체의 한계를 사진가 스스로 인정하고, 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그건 사진가의 몫이에요.”  </p>
<h4>디아스포라, 형식</h4>
<p>사진책 <우리가 사랑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14인>에서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이디어 화수분, 이상엽’ 말 그대로다. 그는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같은 사람이다. 과거를 복원하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당겨온다. 세상의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나는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 헌데 그는 이 &#8216;탁월한 기획자&#8217;라는 꼬리표를 떼고자 한다. “사진가로서 자존심이 상한다.”</p>
<p>“저한테 사진 전공자가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어요. 더 잘 찍어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거. 자기과시 욕망이랄지 열망이겠죠. 사진판에서는 비전공자치고 미려하게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를 듣긴 해요. 20년을 했으니 기계적으로 잘 찍은 사진을 얼마든지 찍죠. 이제 잘 찍는 게 아니라 자기 언어를 조율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사진가 강운구나 이갑철처럼 내용과 형식 조율된 사진. 형식의 진실함이 중요해요. 나는 아직 이상엽 만의 형식을 못 찾았어요.”</p>
<div id="attachment_5402"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20.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20.jpg" alt="" title="20" width="500"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402" /></a><p class="wp-caption-text">디아스포라연작 금호동</p></div>
<p>방법은 있다. 안다. “오직 걔만 사랑하면 된다” 사진에 집중하기. 잔가지 잘라내기. 내 인생에는 자를 게 너무 많다며 “집중하면 보인다”고 자신했다. 일단 쉰 살까지로 잡았다. 사진을 늦게 시작했으므로 그 즈음이면 나만의 사진-언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 시작이 내년이다. 주제는 디아스포라. 사진가 강운구가 전쟁과 분단으로 폐허가 된 우리 땅을 기록했다면 그는 2000년대의 국토, 즉 재개발로 파괴된 땅과 추방된 사람을 담을 것이다.  </p>
<p>여기에 근원적인 꿈을 덧입힌다면 금상첨화일 터. 그것은 모든 사진가의 로망인 “간지 나는 책 한권”을 갖는 것이다. 책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의 표정이 피어난다. 총기 넘치는 노련한 사진가는 간데없고 엄마 졸라서 기타 살 꿈에 부푼 열다섯 소년이 장황하게 떠들고 있다.</p>
<p>“가장 비싼 수입지에다가, 최고의 인쇄소에서, 기막힌 오리지널 프린트 질감에 준하는 인쇄물로 만드는 거죠. 1천권 정도 제작하려면 3천만 원이 들어요. 출판사가 떠안기 어려운 비용이죠. 그래도 간지 나는 책 한권의 유혹이 커요. 여러 가지 감정이죠. 공명심, 물질성, 오리지널리티, 볼륨감, 그러니까 무게 1Kg에 육박하는 책! 과거의 그 모-오-든 고생을 보상하는!”</p>
<h4>유목, 만화</h4>
<p>그는 한 때 일 년이면 150일을 아시아대륙을 떠돌았다. “아시아가 싸구려 패키지여행이나 하는 하찮은 곳”으로 여겨지는 데 대한 반발심 컸다. 중국에서 시작해서 동남아시아의 유구한 역사에 천착했다. 관심은 시베리아까지 확장됐고 발길은 유럽 언저리까지 다다랐다. 육체의 학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영토의 확장이 곧 인식의 확장이었다.” 한반도 안에서 살던 사내가 20년 만에 이 정도면 멀리 갔지 싶다. 욕망하는 삶, 유목하는 그. 앞으로 인생에서 20년 더 주어지면 어디까지 확장될까? “아시아가 깊어질지 서유럽까지 넓어질지는 모르겠다.”  </p>
<div id="attachment_5403" class="wp-caption aligncenter" style="width: 510px"><a href="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21.jpg" rel="lightbox[5362]"><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21.jpg" alt="" title="21" width="500" height="333" class="size-full wp-image-5403" /></a><p class="wp-caption-text">중국서부연작 멍하이제비</p></div>
<p>예고편이 남았다. 꿈 너머 꿈. 일단 이상엽 사진 형식의 진실함을 찾고, 그 다음 폼 나는 사진집 한권 만들고, 그리고 다리에 힘 빠지는 50대가 지나면 새로운 꿈이 열린다. 사진의 상상력에 대한 무한도전! 그는 만화광이다. 소싯적부터 그림과 이야기를 동경했다. 미대에 가지 못한 것은 조부때부터 공무원을 지낸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이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다행히 만화에 대한 욕망은 시들지 않았다. 사진에 미쳐 살았던 날들의 기록물이 쌓였다. 이를 밑바탕으로 구성한 논픽션 만화, 그러니까 &#8220;사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8221; 범위내에서 르포르타쥬 만화를 만들 예정이다. &#8220;아마 그것은 ‘사진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살아온 이상엽의 삶을 집대성한 것으로 “사진, 그림, 문자를 다 섞어서 가장 타인을 잘 꼬드길 수 있는 창작물이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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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을 가치 있게 사는 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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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Sep 2010 04:34:52 +0000</pubDate>
		<dc:creator>소모뚜</dc:creator>
				<category><![CDATA[밍글라바 코리아]]></category>
		<category><![CDATA[31호]]></category>
		<category><![CDATA[32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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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9일 서울에서 천연가스(CNG) 시내버스가 운행 도중 폭발해 1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버스에서 ‘펑’하는 소리가 크게 나고 연기 속에 발목을 심하게 다친 아주머니가 한 명 보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디자이너 앙드레김 아저씨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난 9일 서울에서 천연가스(CNG) 시내버스가 운행 도중 폭발해 1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버스에서 ‘펑’하는 소리가 크게 나고 연기 속에 발목을 심하게 다친 아주머니가 한 명 보였다고 합니다.</p>
<p>얼마 전에 디자이너 앙드레김 아저씨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p>
<p>내가 한국에 들어온 초기 TV에서 앙드레김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 특기하게 생기셔서 뭘 하시는 분이지 궁금했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랑 만나는 자리에 앙드레김 아저씨의 영어를 섞여서 “판~타~스틱~~”이라고 말하시는 스타일을 따라 해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적 있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지쳐 힘들 때 덕분에 웃으면서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어서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p>
<p>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누구든 언젠가 세상과 작별을 해야만 합니다. 그게 세상이 모두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평등입니다.</p>
<p>그리고 살아 있을 때 가졌던 모든 것도 그냥 놓고 가야만 합니다. 10원이라도 못 가져갑니다. 앙드레김 아저씨도 전 재산 300억을 그냥 놓고 가셨다고 합니다.</p>
<p>하지만 우리가 가져 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했었던 선행과 악행의 그림자입니다. </p>
<p>여기서 버마인들이 생각과 사는 법을 알려드리고자합니다. 사회전반이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마인 대부분의 사는 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p>
<p>전생, 현생 과 후생이 있다고 믿는 불교국가 버마에서는 이번 생에 했었던 좋던, 나빴던 행동들의 결과를 현생 아니면 후생에 꼭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기도를 해도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그 결과를 뒤집지 못 합니다.</p>
<p>현생 하나만 생각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현생에 살아가면서 후생을 위해 공덕을 취대한 쌓으려 노력합니다. 현생에 지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전생에 쌓였던 공덕이 부족하다고 여겨 후생엔 이런 상황이 없도록 더욱더 공덕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살을 한다 해도  지침과 고통 속에서 벗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p>
<p>여기서 공덕을 쌓는 다는 것은 나, 내 가족, 친척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위해 올바르게 성실하게 지키고 보호하며 개선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겁니다.</p>
<p>우선 내가 든든해야합니다.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대로 먼저 내가 든든해야 남이 나를 기댈 수 있고 또 나도 남을 위해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위해 효율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p>
<p>그래서 우선 자신이 든든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힘을 키웁니다.</p>
<p>자신이 무너질 때 스스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재산(돈과 벗)을 모으고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을 돌보고 동시에 지신이 사는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p>
<p>버마인들이 제일 창피 하게 여기는 행동은 욕심이 앞서 나와 나밖에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마 사회전체가 창피한 짓이라고 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안 보이도록 감추면서 욕심 부리고 삽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지적당한 사람은 욕을 먹는 것하고 마찬가지입니다. </p>
<p>여기서 욕심 부린다는 것은 삶을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p>
<p>1000원 워치 노력하고 만원 워치 기지고 싶은 것,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이상을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력할 만큼의 대가를 받고 이를 만족하는 사람을 부자라고  부릅니다.</p>
<p>다음 이야기부터 잔인한 독재 정부 하에서 살고 있더라도 행복과 평화가 가능하다는 버마인들의 일상생활 방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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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 번째 순환 -“삶도 건강도 사랑도 불안정하다 -왜 노동이 예외여야 하는가?”(上)</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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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Sep 2010 01:08:12 +0000</pubDate>
		<dc:creator>보이지 않는 번역자</dc:creator>
				<category><![CDATA[다가오는 봉기(번역)]]></category>
		<category><![CDATA[31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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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프랑스에서 노동 문제만큼 복잡한 문제도 없다. 프랑스인과 노동의 관계만큼 뒤틀린 관계도 없을 것이다. 안달루시아, 알제리, 나폴리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아주 경멸한다. 독일, 미국, 일본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숭배한다. 사태가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는 오타쿠(otaku), 독일에는 기꺼이 실업자가 된 사람들(frohe Arebeitslose)이 넘쳐나고 반대로 안달루시아에는 일중독자(workholics)가 넘쳐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프랑스에서 노동 문제만큼 복잡한 문제도 없다. 프랑스인과 노동의 관계만큼 뒤틀린 관계도 없을 것이다. 안달루시아, 알제리, 나폴리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아주 경멸한다. 독일, 미국, 일본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숭배한다. 사태가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는 오타쿠(otaku), 독일에는 기꺼이 실업자가 된 사람들(frohe Arebeitslose)이 넘쳐나고 반대로 안달루시아에는 일중독자(workholics)가 넘쳐난다. 하지만 당분간 그것은 호기심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위계적 사다리를 기어서 올라가면서도 사적으로는 자신이 거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처럼 자위한다. 우리는 일이 몰릴 땐 밤 10시까지 일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사무실 비품을 훔치거나, 재고품을 가져가 나중에 파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사장들을 싫어하지만 어떻게든 채용되려고 한다. 직업을 가진 것은 영예로운 일이지만, 노동은 비굴함의 표시다. 요컨대 히스테리에 대한 완벽한 임상적 예인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희생양, 자신의 주인을 잃었을 때 히스테리 환자에게 어떤 마비, 어떤 혼란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다. 대체로 그것은 회복되지 않는다.</p>
<p><img src="http://suyunomo.net/wp-content/uploads/2010/09/ci31.jpg" alt="" title="ci31" width="250" class="alignleft size-thumbnail wp-image-5348" />이 근본적으로 정치적인(politique) 나라 -이것이 프랑스다-에서 산업 권력은 항상 국가 권력에 순종해왔다. 좀스러운 행정부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끊임없이 경제적 활동의 틀을 짜왔다. 파리이공대학(Polytechnique)이나 국립행정학교(ENS) 같은 국가 귀족 출신이 아닌 많은 기업인들은 은연중에 그들을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하층민(les parias)으로 밀려나게 된다. 베르나르 따피(Bernard Tapie)가 그 비극적 주인공이다: 처음엔 무척 사랑을 받다가 나중엔 감옥에 가고 결국에는 영원한 불가촉천민(intouchable toujours)이 되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다. 마치 어떤 괴물을 대하듯 그를 바라보면서 프랑스 대중들은 그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토록 매혹적인 불명예의 스펙타클을 통해 그와의 접촉을 피하게 된다. 1980년대의 그 대단한 허세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대한 숭배는 프랑스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을 조롱하는 책을 쓴 사람은 누구나 베스트셀러를 보장받았다. 경영자들과 그들의 풍습, 그들의 글이 대중에게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은 항상 냉소라는 방역선, 경멸의 대양, 빈정거림의 바다를 넘을 수 없었다. 기업가는 가족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결국 혐오 순위에서 사람들은 그를 경찰보다 더 높이 꼽았다. 〔그러나〕공무원〔관리〕라는 것은 여러 바람과 조수에 맞서고 총아들(golden boys)과 민영화에 맞서는 좋은(bon) 노동이라는 인식이 있다.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부(richesse)를 부러워할 수 있지만 그들의 직위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p>
<p>바로 이와 같은 신경증이, 전임 경영자들은 쎄느 강둑에 있는 세계의사회(Médicins du monde)의 텐트에서 노트북을 들고 야영하는데도, 정부들은 계속해서 실업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고용을 위한 전투”를 개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토대이다. 프랑스 고용청(ANPE)이 실업자수를 2백만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통계 조작을 하고, 일반적 자료에 따르더라도 기초수당(RMI)과 비즈니스(biz)<sup><a href="http://suyunomo.net/?p=5347#footnote_0_5347" id="identifier_0_5347" class="footnote-link footnote-identifier-link" title="영역자는 마약거래(drug dealing)로 옮기고 있다.">1</a></sup>만이 가능한 모든 순간 사회적 폭발의 가능성을 막아주고 있는데도! 노동주의의 허구를 떠받치는 데 정치적 안정만큼이나 프랑스의 심리경제(l&#8217;économie psychique)도 기여를 하고 있다.</p>
<p>부디, 제멋대로 되도록 신경 꺼버리더라도, 그런 우리를 용서하기를!</p>
<p>우리는 이런 허구 속에서도 아주 잘 지내는(très bien) 세대다. 우리 시대는 노동할 때의 권리(le droit au travail)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할 권리(le droit du travail)나 퇴직 연금 같은 것에 별 생각도 없다. 전투적 좌파들의 가장 선진적인 분파들이 이론화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불안(précaire)”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불안하다는 것(ê̂tre précaire)은 그래도 여전히 자신을 노동의 영역과 관련해서, 이 경우에는 특히 노동의 해체(décomposition)와 관련해서 정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찾아야 한다는 그 필연성은 인정한다. 돈 없이는 도무지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하는 것의 필연성은 부정한다. 게다가 우리는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바쁘니까(nous taffons). 기업은 우리가 살아갈 곳이 아니라 그냥 지나쳐 갈 곳이다. 우리가 냉소적인 게 아니다. 단지 속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개인적 동기부여(motivation)나 자질(qualité), 투자 등에 대한 담론들은, 인적 자원 관리자들 한테 큰 실망만을 안기며, 우리 곁을 그냥 지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우리가 기업에 실망했고, 또 기업이 우리 부모들의 충실성에 충분한 지불을 하지 않고 너무 빨리 내쫓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실망하기 위해선 그래도 무언가를 희망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기업이 어떤 것이고 계속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그것은 안락함의 정도를 변화시켜가며 (사람을 속이는) 협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그 함정에 빠져들었던, 최소한 그것을 믿었던 우리 부모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뿐이다.</p>
<table width="100%"><tr><td align="center"><embed src="http://api.v.daum.net/static/recombox3.swf?nid=9286315" quality="high" bgcolor="#ffffff" width="67" height="8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embed></td></tr>
<tr><td align="center">추천 꾸욱!!</td></tr>
</table>
<ol class="footnotes"><li id="footnote_0_5347" class="footnote">영역자는 마약거래(drug dealing)로 옮기고 있다.</li></ol>]]></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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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우울의 해피엔딩을 찾지마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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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Sep 2010 01:02:27 +0000</pubDate>
		<dc:creator>민지(막달레나공동체)</dc:creator>
				<category><![CDATA[동시대반시대]]></category>
		<category><![CDATA[31호]]></category>
		<category><![CDATA[우울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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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쉼터에서 당직을 하고 있던 와중, 수유너머 위클리에 ‘우울증’에 관한 특집을 하니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 없다는 핑계를 대다가 끈질긴 청탁에 어찌저찌 오케이를 하고서는 거실로 나갔다. 마침 TV에서는 어린 시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한 연예인의 우울증과 그녀의 성형수술 고백에 관한 스토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저 친구도 참 힘들었을 것 같애. 인기 많고 돈을 벌었으면 뭐해. 자기를 사랑할 수 없었나봐.” 한마디 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r />
<h3>1. 뻘소리</h3>
<p>쉼터에서 당직<sup><a href="http://suyunomo.net/?p=5346#footnote_0_5346" id="identifier_0_5346" class="footnote-link footnote-identifier-link" title="막달레나공동체 너른쉼터의 실무자로 일하면서, 쉼터에서 식구들과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막달레나공동체가 궁금하시다면 www.magdalena.or.kr 를 참고하시라.">1</a></sup>을 하고 있던 와중, 수유너머 위클리에 ‘우울증’에 관한 특집을 하니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 없다는 핑계를 대다가 끈질긴 청탁에 어찌저찌 오케이를 하고서는 거실로 나갔다. 마침 TV에서는 어린 시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한 연예인의 우울증과 그녀의 성형수술 고백에 관한 스토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저 친구도 참 힘들었을 것 같애. 인기 많고 돈을 벌었으면 뭐해. 자기를 사랑할 수 없었나봐.” 한마디 했다. 문득 거실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뒹굴거리며 TV를 보던 식구들이 아무 말이 없다. 아,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나름 수습해보려고 ‘아니.. 뭐..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8230;다 어렵지&#8230;’ 버벅거리며 중얼거리다가 머쓱하게 자리를 떴다. 아, 식은땀.</p>
<p></p>
<h3>2. 우울(증)에 대하여</h3>
<blockquote><p>우울증 : [의학] 기분이 언짢아 명랑하지 아니한 심리 상태. 흔히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다. &#8211; 네이버 국어사전에서.</p></blockquote>
<p>내가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바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건 글 청탁자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우울증을 쳐보시라. 각종 의학정보가 깔끔하게 정리된 백과사전부터 ‘질병의 원인, 증상, 자가진단, 극복방법, 치료방법’들이 우르르 자동완성기능으로 안내해주고, 우울증 전문 병원들이 ‘프리미엄’으로 링크되어있다. 지식인에서는 자신이 우울증인지 아닌지 질문하고 하소연하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우울하지 않은 존재라서가 아니라, 어떤 심리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나는 공식 의학계의 어떤 곳에도 발 딛고 있지 않기도 하고. 살면서 경험하는 우울의 영역을 어디서부터 ‘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고.</p>
<p>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내리는 과정이 그리 세심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조금 알고 있다. 가족관계와 신상명세를 간단히 묻고, ‘환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을 묻는다. “뭐가 힘드세요?”, “여기에 어떻게 오셨어요?” 이런 부분이 확인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잠을 잘 자는지” 이런 세부정보를 물은 후,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처방해주면 그만이다. 일단 약을 먹어본 후 한 달 뒤에 보자든지, 최소한 6개월 이상은 먹는 것이 좋다든지 하면서. 뭔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환자라면, 돌아 나오며 살짝 허무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방금 뭐가 지나갔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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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3. 다시, 우울에 대하여</h3>
<p>생각해보니, ‘우울증’은 잘 모르겠지만, ‘우울’에 대해서는 좀 할 얘기가 있을 수도 있다. 난 수도 없이 많은 우울을 경험해봤고, 우울을 겪는 친구들도 많이 만나왔으니까. 막달레나공동체에서 만나는 인연들 역시도, 어느 날 술을 진창 마시고 ‘죽고 싶다’는 고백을 해오거나, 불면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털어 넣거나, 사는 게 힘들어서 혹은 자꾸 자해를 하고 싶어져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식구들이 종종 있었다. (성매매 경험을 한 여성들에게 우울증이 많냐고 묻지는 마시라. 여성들이 겪은 환경 때문이든, 개인의 유전적 혹은 경험적 요인 때문이든, 수치화된 통계로 그녀들의 우울을 판단할 깜냥은 없거니와 그런 것들이 ‘카테고리화 된’ 채로 한 개인의 삶을 온전히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p>
<p>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막달레나공동체를 통해 만난 한 언니와 통화를 하게 됐다.</p>
<p>“언니, 언니는 언제가 우울해요?”</p>
<p>“글쎄&#8230; 난 원래 비가 오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날 비가 오면 그땐 좀 우울한 것 같아.”</p>
<p>“음&#8230; 그렇군요. 다른 건 없나? 그럴 때 어떻게 해요?”</p>
<p>“자든지 음악을 듣든지? 지금은 전보단 심각하진 않아. 옛날엔 정말 힘들어서 막 밖에 나가서 술 먹고 그랬지. 돈도 있겠다.”</p>
<p>“그때는 일 할 땐가요?”</p>
<p>“응. 아무래도 얘기할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풀 데도 없고.”</p>
<p>“사실은 내가 우울증에 대해서 글을 써야 되거든요. 그래서 막달레나 식구들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p>
<p>“당연하지. 다들 똑같은 이유에서 우울증에 걸리면 그게 말이 되나? 그렇게 뻔 하면 벌써 다 해결됐지.”</p>
<p>“음&#8230; 바보같은 질문이었군요.”</p>
<p>“그렇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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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4. 해피엔딩은 없다</h3>
<p>어쩌면 나에게 ‘우울에 시달리다 막달레나공동체를 만나 변화하고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은 여인들’에 대한 글을 기대하면서 글 청탁이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쓰면 완전 구라, 혹은 뻥튀기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막달레나공동체에서 만났더라도,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 손잡지 못한 분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말이다.</p>
<p>사람이라는 존재가, 순식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우울한 존재’에서 ‘우울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울증’의 사전적 지식이 말해주듯, 살면서 ‘염세’적이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허무’하게 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나만 해도,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 때문에, 혹은 MB 때문에라도 우울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럼 이건 항구적인 우울증?) 누구든, 자신을 갈구는 직장상사나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연인과 가족 때문에, 혹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또는 무시당해서 우울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우울할 수도 있고, 취직이 잘 되지 않아서도, 하다못해 고스톱 치다가 돈을 잃어도 우울하다. 삶에는 항상 우울이라는 함정이 도처에 널려있다.</p>
<p>그러니 성매매의 현장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녀들’이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위험하거나 어설프다.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p>
<p></p>
<h3>5. 그럼에도 불구하고</h3>
<p>실은 최근에 우울 혹은 조울을 진하게 겪었던 터라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더 이상 막달레나공동체의 실무자 위치를 떠난 상태일 것이다. 일로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투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내게 허용되었던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제 예전과 같은 관계의 감각을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설레면서도, 이제까지 나의 실수와 한계로 인해 ‘민폐’를 끼치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면 사뭇 우울하기만 하다.</p>
<p>하지만, 세계에 대한 깊은 냉소와 허무로 점철되어있던 한때의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도 되는 공동체’, 혹은 ‘내가 나 자신을 바깥으로 내던질 때조차 나를 끌어안아주는 것들’에 대한 단초를 주었던 막달레나공동체의 사람들, 이들과의 경험이 내게는 우울의 늪에서 한발자국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아마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우울을 피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삶이 주는 하나의 ‘선물’이므로. 그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우울도 겪을 만하니까 겪게 되는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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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td align="center">추천 꾸욱!!</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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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 class="footnotes"><li id="footnote_0_5346" class="footnote">막달레나공동체 너른쉼터의 실무자로 일하면서, 쉼터에서 식구들과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막달레나공동체가 궁금하시다면 www.magdalena.or.kr 를 참고하시라.</li></ol>]]></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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