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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네이버캐스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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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네이버캐스트 - 모바일 버전 RSS Feed]]></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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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프레퍼족 -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대비책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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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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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3/1619111008374219.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세상을 멸망시킬 재앙이 곧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종말의 날이 왔을 때 살아남기 위한 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레퍼족(Prepper, 준비족)”입니다.&amp;nbsp;이들은&amp;nbsp;전지구적인 재앙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들은 집안에 식량과 물을 충분히 구비해두고 있고, 자체적으로 연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또한 철저한 대피 연습과 무질서 상태에서의 약탈자로부터 그들의 가족과 식량을 지키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연구하고 대비하는 일에 푹 빠진 프레퍼족의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펼쳐집니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IFRAME with Flash]&lt;br/&gt;
&lt;iframe src='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499'&gt;&lt;/iframe&gt;&lt;br/&gt;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499'&gt;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499&lt;/a&gt;&lt;br/&gt;

 &lt;br&gt;&lt;/br&gt;
&lt;p&gt;&lt;strong&gt;&lt;span&gt;물을 재사용하는 '아쿠아포닉' 기술&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9/17/242/17pix.jpg'/&gt;&lt;/p&gt;
&lt;p&gt;데니스는&amp;nbsp;&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query=%EC%BD%94%EB%A1%9C%EB%82%98+%EB%AC%BC%EC%A7%88+%EB%B6%84%EC%B6%9C&amp;site=&amp;ie=utf8' target='_blank'&gt;코로나 물질 분출&lt;/a&gt;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물질 분출이란 태양 대기 중의 물질들이 강력하게 분출되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나온 플라스마가 지구에 도달하면 전력망을 완전히 파괴하는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데니스는 집에 있는 커다란 수영장을 태양열을 이용하는 ‘아쿠아포닉(Aquaponics)’ 온실로 바꿨습니다. 물을 재사용하는 ‘아쿠아포닉’ 기술은 건조한 지역에서도 채소와 물고기를 기를 수 있게 해줍니다. 수영장은 가로 9m, 세로 5m, 깊이는 깊은 쪽이 3m, 얕은 쪽이 1.5m입니다. 그는 연못 위에 닭을 키워서 매일 달걀을 얻습니다. 연못에 들어가는 닭의 배설물을 연못 식물과 조류가 먹고 이 식물들은 다시 물고기의 먹이가 됩니다. 물고기의 배설물은 다시 식물의 영양분이 됩니다. 약 50㎡ 넓이의 공간에서 수천 마리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D%8B%B8%EB%9D%BC%ED%94%BC%EC%95%84&amp;x=12&amp;y=21' target='_blank'&gt;틸라피아&lt;/a&gt;를 기를 수도 있습니다.&amp;nbsp;&amp;nbsp; &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틸라피아는 새끼를 한 번에 천 2백 마리씩 낳고 4~6주 후면 또 다시 낳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수가 늘어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태양열 패널을 이용한 ‘아쿠아포닉’ 기술은 최소한의 전력으로 물을 끌어오고 그 물은 아래로 떨어져 식물에게 갑니다. 물고기를 기르면서 나오는 영양분이 풍부한 물을 이용해 채소를 재배하는 겁니다.&amp;nbsp;이 식량 생산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2%80%EA%B0%9C%EA%B5%AC%EB%A6%AC%EB%B0%A5&amp;x=0&amp;y=0' target='_blank'&gt;좀개구리밥&lt;/a&gt;’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식물입니다. 이 식물은 물을 정화해 줄 뿐 아니라 콩처럼 단백질이 풍부해 물고기에게도 먹이고 가축들에게도 먹일 수 있습니다. 또한 최후의 수단이 필요할 때는 사람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재앙 발생시, 식량을 완벽하게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놓았습니다.&lt;/p&gt;
&amp;nbsp;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IFRAME with Flash]&lt;br/&gt;
&lt;iframe src='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0'&gt;&lt;/iframe&gt;&lt;br/&gt;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0'&gt;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0&lt;/a&gt;&lt;br/&gt;

 &lt;br&gt;&lt;/br&gt;
&lt;p&gt;&lt;strong&gt;&lt;span&gt;깨끗한 물을 얻는 방법&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9/17/242/17pix.jpg'/&gt;&lt;/p&gt;
&lt;p&gt;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물입니다. 이 중요한 자원을 도시 전체에 공급하는 전기 펌프가 무용지물이 된다면 물 문제는 심각해질 것입니다. 데니스의 집에서 한 블록 거리에는 운하가 있습니다. 전기가 끊겨도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수원이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amp;nbsp;모든 사람들이 집 근처에 수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단한 방법으로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lt;/p&gt;
&lt;p&gt;&lt;br&gt;&lt;/br&gt;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은 정수 알약을 쓰는 것입니다. 이 알약을 사용하면 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기본 성분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7%BC%EC%86%8C' target='_blank'&gt;염소&lt;/a&gt;로, 표백제와 같은 성분입니다. 사용법은 알약을 물에 넣고 흔든 다음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염소 냄새가 날 때 마시면 됩니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깨끗한 PET 병에 물을 담은 뒤 햇볕에&amp;nbsp;4~5시간 정도 놓아두는 것입니다.&amp;nbsp;&amp;nbsp; &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다른 방법으로는 가정용 염소 표백제를 사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염소 표백제 4리터로 물 1만 1천 리터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3리터의 물에 8~16방울 정도면 됩니다. 이 방법 역시&amp;nbsp;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물에서 표백제 냄새가 나면 마시면 됩니다. 만약 오염물이 많거나 탁한 물이라면 커피 필터로 걸러도 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amp;nbsp;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3/78/img_01.jpg'/&gt;&lt;p&gt;물을 재사용하는 ‘아쿠아포닉’ 기술은 건조한 지역에서도 채소와 물고기를 기를 수 있게 해준다.&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3/98/img_02.jpg'/&gt;&lt;p&gt;한 프레퍼족의 트럭은 기화장치를 이용해 나무에서 가스를 추출하고, 그 가스를 사용해 엔진을 돌린다.&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IFRAME with Flash]&lt;br/&gt;
&lt;iframe src='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1'&gt;&lt;/iframe&gt;&lt;br/&gt;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1'&gt;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1&lt;/a&gt;&lt;br/&gt;

 &lt;br&gt;&lt;/br&gt;
&lt;p&gt;&lt;strong&gt;&lt;span&gt;나무에서 전기를 얻는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9/17/242/17pix.jpg'/&gt;&lt;/p&gt;
&lt;p&gt;경제 붕괴 사태를 대비하고자 하는 데이비드와 스콧은 한 농장에 모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면 휘발유, 가스, 전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거나 아예 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2차 대전 때부터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을 이용해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인 나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를 이용해 요리를 하거나 난방을 하고, 물을 데울 수도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트럭도 몰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스콧이 만든 기화 장치를 이용해 나무에서 가스를 추출하고, 그 가스를 사용하여 엔진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스는 엔진의 오른쪽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원래 있던 기화기와 연결시키면 기화기가 공기와 나무 가스를 일대일 비율로 혼합해 줍니다.&amp;nbsp; &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 간단한 이 방식을 이용해 약 1.5kg 정도의 나무로 시간당 1킬로와트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직접 개조한 1962년 형 포드 트럭을 발전기에 연결해놓으면 공동체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가정은 연 평균 11,000킬로와트시, 하루 평균 30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그들의 주변에 있는 나무를 이용한다면, 재앙 시 발생할 수 있는&amp;nbsp;에너지 부족 문제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amp;nbsp;&amp;nbsp; &lt;/p&gt;
&amp;nbsp;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IFRAME with Flash]&lt;br/&gt;
&lt;iframe src='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2'&gt;&lt;/iframe&gt;&lt;br/&gt;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2'&gt;http://navercast.naver.com/video_player.nhn?moduleId=1502&lt;/a&gt;&lt;br/&gt;

 &lt;br&gt;&lt;/br&gt;
&lt;p&gt;&lt;strong&gt;&lt;span&gt;지하 6미터에 지은&amp;nbsp;벙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9/17/242/17pix.jpg'/&gt;&lt;/p&gt;
&lt;p&gt;핵 재앙을 대비하여 피터는 직접 벙커를 설계하고 2년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준비해 놓았습니다.&amp;nbsp;피터는 벙커로 향하는 세 가지의 이동 방법을 마련해 뒀고, 은신처까지 이동할 수 있는 세 가지 경로도 정해 놓았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흔히 사람들이 별장을 짓는 것처럼 그에게 벙커는 지하에 있는 별장과 같습니다. 6미터 지하에 있는 주름진 강철 소재의, 길이 15미터짜리 튜브는 12명의 가족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일년치의 식량과 의료용품, 물, 의류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문을 닫고 단단히 잠그면 화물을 실은 덤프 트럭 정도의 압력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벙커로 들어가는 문은 3만 5천 킬로그램 무게의 압력도 견딜 수 있습니다. 또한 약 1킬로미터 거리에서 핵 폭발이 일어나도 튼튼합니다. 이 밖에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생존과 방어를 위한 사격훈련을 하고 있고, 비상 대피 계획도 훌륭하게 짜 놓았습니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대부분의 과학자와 경제학자, 군 지도자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지구에 대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 정부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재난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철저한 대비를 해 둘 것을 추천합니다. 재앙은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p&gt;&lt;strong&gt;글·영상/사진 제공 &lt;/strong&gt;&lt;span&gt;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lt;/span&gt;&lt;a href='http://www.ngckorea.com/'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4/22/259/nation_w.jpg'/&gt;&lt;/a&gt; &lt;/p&gt;
&lt;dl&gt;&lt;/dl&gt;&lt;/div&gt;
&lt;!-- 크레딧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h1&gt;&lt;/h1&gt;&lt;dl&gt;&lt;dt&gt;&lt;a href='http://www.ngckorea.com/PR/PRProgram007.asp?wefId=159' target='_blank'&gt;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인류멸망 2012-인류멸망을 대비하는 사람들"&lt;/a&gt; &lt;span&gt;|&lt;/span&gt; &lt;span&gt;2012-2-8(수) 밤 11시&lt;/span&gt;&lt;/dt&gt;&lt;dd&gt;&lt;p&gt;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프레퍼족이다. 과연 그들의 생각처럼 미래에 인류를 멸망시킬 재앙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의 대비법을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발행일 &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2012.02.04&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dd&gt;&lt;/d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730'&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18/1730.jpg'/&gt;&lt;strong&gt;2012, 마야 예언&lt;/strong&gt;&lt;/a&gt;&lt;span&gt;과연 인류의 미래는?&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652'&gt;지학&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XGbrteUCuaU"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32]]></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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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태자사 낭공대사비 - 김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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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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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3/1454181097924005.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21/01.jpg'/&gt;&lt;/p&gt;
&lt;p&gt;태자사 낭공대사비(太子寺郎空大師碑) 탑본첩, 고려 954년, 김생 글씨 집자,&amp;nbsp;국립중앙박물관&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천여 년의 세월 속에 환생한 김생(金生)의 필적&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에 비석 한 기(基)가 서있다. 몸체가 둘로 깨어져 위아래를 붙인 이 비석은, 모습도 표면도 세월의 흔적에 닳아 있다. ‘천년을 넘어간 세월을 지낸 이 비석의 이름은 [태자사 낭공대사비(太子寺郎空大師碑)]다. 원래 이름은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acq=%ED%83%9C%EC%9E%90%EC%82%AC%EB%82%AD%EA%B3%B5%EB%8C%80%EC%82%AC%EB%B0%B1%EC%9B%94%EC%84%9C%EC%9A%B4%ED%83%91%EB%B9%84&amp;acr=1&amp;qdt=0&amp;ie=utf8&amp;query=%ED%83%9C%EC%9E%90%EC%82%AC+%EB%82%AD%EA%B3%B5%EB%8C%80%EC%82%AC+%EB%B0%B1%EC%9B%94%EC%84%9C%EC%9A%B4%ED%83%91%EB%B9%84' target='_blank'&gt;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lt;/a&gt;(太子寺郎空大師白月栖雲塔碑)], 세상 사람들은 [백월비(白月碑)]라고도 부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태자사 낭공대사비는 통일신라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82%AD%EA%B3%B5%EB%8C%80%EC%82%AC' target='_blank'&gt;낭공대사&lt;/a&gt;(郎空大師, 832~917)의 탑비이다. 태자사와 탑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고 오로지 대사의 생애를 기록한 비석만이 남아있다. 나라와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국사, 큰 스승 낭공대사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비석에는 그의 85년의 인생, 불가의 연과 수행자로서, 학승으로서, 그리고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61년의 승려로서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글은 낭공대사의 입적(入寂) 한해 뒤에 최치원의 동생이자 신라 말 고려 초 최고 문장가 최인연(崔仁㳘, 868~944)에 의해 완성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정작 비석이 세워진 것은 고려 광종 5년, 낭공대사의 사후 37년 후였다. 당시 통일신라 말기의 상황이 너무도 어지러워 대사의 탑과 비석을 세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 같은 사연은 낭공대사의 문하법손(門下法孫) 순백(純白)이 기록한 비석 뒷면의 후기에 담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통일신라 최고의 명필, 김생&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오늘날 이 비석을 제외한 모든 흔적은 사라졌지만, 낭공대사를 기리는 사업은 아마도 거대한 프로젝트였음에 틀림없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비문 글씨이다. 글씨는 고려의 이름 높은 명필이 아닌, 통일신라의 서예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9%80%EC%83%9D&amp;x=24&amp;y=16' target='_blank'&gt;김생&lt;/a&gt;(金生, 711~791)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이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3/170/0222.jpg'/&gt;&lt;p&gt;왕희지 행서 집자 [대당삼장성교서] 탑본, 중국 서안비림, 672년.&lt;/p&gt;
&lt;br&gt;&lt;/br&gt;
&lt;p&gt;김생은 통일신라 최고의 명필이자 승려로, 우리나라 신품사현(神品四賢)의 첫 번째로 꼽는 서예가다. 신품은 글씨가 빼어나 그 경지가 가히 신의 반열에 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 경지를 일컫는다. 그러나 김생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삶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전해질뿐이다. 그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에 대한 기록이 드물고, 무엇보다도 현재 남아있는 필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 김생조에 따르면 그는 평생을 서법에 매진한 인물로, 그의 글씨는 예서, 행서, 초서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하였다. 비단 이 서체들뿐일까. 삼국사기에는 중국 송 휘종 대에 고려 사신 홍관(洪灌, ?~1126)이 가져간 김생의 행초서첩을 보고 중국의 한림대조(翰林待詔) 두 사람은 그 생동감 있는 글씨를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로 여기며 신라 김생의 글씨로 믿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홍관은 김생의 글씨를 바탕을 일가를 이루었다고 하는 고려의 필명 높은 인물이다. 원대 조맹부는 김생이 쓴 [창림사비(昌林寺碑]] 비문 글씨에 대한 깊은 인상을 그의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 남겼다. “동국필법(東國筆法)의 제일”. 고려, 조선의 역대 문인들은 김생의 글씨에 대한 찬사와 감동을 기록했다. 이규보, 서거정, 허목, 홍양호, 김정희 그리고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사들과 금석학자, 서예가, 그리고 서예에 감동할 줄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김생은 신격(神格)이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무릇 글씨에서의 깨달음은 형(形)의 닮음을 넘어 글씨의 예술성과 정신성의 본질을 깨달음에 있다. 그는 동아시아 서예 역사 속에서 과거의 서예 업적들, 그리고 당시 국제 문화로 상징되는 당(唐)에 이르는 서예의 양상과 문화의 요체를 공부하고 수용했고, 이것을 김생이 생존하던 8세기 당시의 신라국과 그 이전의 이 땅의 글씨들을 발판으로 시대와 문화를 자신의 글씨에 포용하고 녹였다. 김생의 글씨에 대해 마치 왕희지가 신라에 환생한 듯 묘사되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김생이 왕희지의 글씨의 형(形)을 넘어 깊이와 본질을 이해했음을 뜻한다. 김생은 이렇게 역대 서예의 업적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글씨를 완성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글씨의 표현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구현하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적어도 존경어린 경건함을 바탕으로 써내려 가야 할 비석의 글씨는 아마도 왕희지 서풍의 품격을 바탕으로 표현하였을 것이고, 활달한 기상을 표출할 때는 용이 나는 듯 호랑이의 기세를 뿜어내듯 붓으로 쏟아 부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생의 글씨를 묵적이든, 비문이든 실견(實見)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 전기 정도까지로, 이미 조선이 되면 김생의 글씨는 귀해져서 그의 글씨를 마주하는 하늘이 내린 기회는 진정 신을 마주하는 기회만큼 어려워진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여러 글자를 모아&amp;nbsp;만든&amp;nbsp;집자 비문&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다시 낭공대사비의 김생 글씨 집자(集字)로 돌아가 본다. 집자는 단어 그대로 글자를 모아 짜 맞추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일단 김생의 필적을 모은 뒤 글자의 크기를 조절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글 원고와 이 글씨들을 맞추면서, 각 글씨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같은 글자를 수백, 수천 번을 대조하여 연결, 조정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를 비석에 새겨짐에 있어 글씨의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각수(刻手)의 손을 통해 이뤄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최소 몇 년에서 몇 십 년에 이르는 오랜 정성과 끈기를 통해 진행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태자사 낭공대사비]의 글씨는 흘림기가 약간 있는 행서체이다. 그때까지 전해오던 김생의 귀한 여러 작품들 중에서 추려냈기 때문에 비석 하나에 몇 작품이 녹여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비석 글씨는 각 글자가 2.5~3cm 정도의 높이에 불과하지만, 각 글씨는 각 획의 변화가 크고, 근육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힘차고 생기가 있는데, 훨쩍 뛰듯 활달하면서도 듬직한 무게감이 있다. 얼핏 균형이 어그러진 듯하다가도 위아래의 글씨들이 받쳐주어 조응 하면서 자연스럽게 행을 이루고 비석 문장의 흐름을 이어간다. 이 자연스러움이 여러 글씨들을 집자해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놀랄 따름이다. 이것은 이 비석의 집자를 완벽하게 이룬 단목(端木) 스님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다. 집자비의 매력은 집자한 것인 줄 모르다가, 나중에 집자를 했음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감동에 있다.&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07/02.jpg'/&gt;&lt;p&gt;여러 글자를 모아 집자하여 비석을 만드는 것은 매우 난이도 높은 작업이다. 신라시대의 명필 김생의 글씨가 고려시대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단순히 글씨를 모아 정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집자. 대가의 글씨를 모아 정리하는 정성된, 그리고 매우 어려운 작업과정을 거쳐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서예가 김생의 글씨를 고려시대에 새롭게 탄생시켰다. 고려 광종 5년 954년 갑인(甲寅)년 칠월 십오일의 일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전설로 남아있던 비석을 조선 중종 5년 이항이 다시 발견해&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그러나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없듯이, 이 비석에도 변화가 있었다. 어느덧 태자사는 없어지고, 비석의 자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김생의 집자비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이 비석이 다시 삶을 되찾은 것은 16세기 초, 정확히 1509년 조선 중종5년 당시 영주 군수였던 이항(李沆)에 의해서이다. 이항은 어린시절 보았던 안평대군이 명필의 글을 엮은 법첩인 [비해당집고첩(匪懈堂集古帖)]에서 김생의 글씨를 봤던 감동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글씨에서 어린 이항은 용이 나는 듯한 호랑이가 뛰는 기세를 느꼈고, 김생의 글씨를 다시 만나고자 하였으나 마주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영주 군수가 된 뒤 시간이 될 때마다 이곳에 있었다는 태자사의 비석을 찾았고, 드디어 이 비석을 발견, 비석을 귀하게 모시기 위해 자민루(字民樓)로 옮겨왔다. 이 사연을 그는 낭공대사비 왼쪽 옆면에 당시 명필 박눌(朴訥)의 정중한 글씨로 기록해 놓았다. 그는 이 비석을 발견한 감동을 당대에 발견된 석고(石鼓)를 발견한 감동을 빌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생에 비유하며, “큰 집으로 옮겨져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뒤 세월이 흘러 비석은 이 보물의 가치를 알고 있던 중국 사신에 의해 중국으로 반출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렇지만 비석이 크고 무거워 결국 비석을 가져가던 도중에 포기, 버려졌다. 그 이후 여러 차례의 곡절을 겪으며&amp;nbsp;비석은 1918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경복궁 회랑에 설치되었던 비석은 다시 오랜 기간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져 오랜 기간&amp;nbsp;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후 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에 새로 지으면서 드디어 다시 빛을&amp;nbsp;보게 되었다. 천삼백 년 전 사람 김생의 글씨는 914년 비석으로 환생하였고, 풀숲 속에 묻혀 지낸 이 큰 돌은 16세기 초 이항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왔다. 21세기 천 년을 지나고 이제 육십 년을 바라보는 오늘, 이항의 말대로 낭공대사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큰 집에 옮겨져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되었다”. 너무도 훌륭했기에 천여 년의 순탄치 못한 삶을 보낸 이 [태자사 낭공대사비]는 이제 소중히 여겨지며, 영원한 삶을 보낼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map.naver.com/?dlevel=11&amp;lat=37.5239279&amp;lng=126.9803104&amp;sm=hty&amp;query=6rWt66a97KSR7JWZ67CV66y86rSA&amp;menu=location&amp;searchCoord=127.1114883%3B37.3614483&amp;stab=SITE_1%3B1&amp;siteOrder=0&amp;queryRank=1&amp;mapMode=0&amp;flight=off&amp;street=on&amp;vrpanosky=on&amp;vrpanolng=126.9803106&amp;vrpanopoi=off&amp;vrpanolat=37.5239275&amp;vrpanopan=87.77&amp;vrpanofov=120&amp;vrpanoid=aOGLI6MSkCUEptm9TC5Org%3D%3D&amp;vrpanotype=5&amp;vrpanotilt=-1.33&amp;enc=b64' target='_blank'&gt;&lt;span&gt;&lt;u&gt;뮤지엄뷰로 &amp;lt;태자사 낭공대비&amp;gt; 보러가기&lt;/u&gt;&lt;/span&gt;&lt;/a&gt;&amp;nbsp;&lt;a href='http://map.naver.com/?dlevel=11&amp;lat=37.5239279&amp;lng=126.9803104&amp;sm=hty&amp;query=6rWt66a97KSR7JWZ67CV66y86rSA&amp;menu=location&amp;searchCoord=127.1114883%3B37.3614483&amp;stab=SITE_1%3B1&amp;siteOrder=0&amp;queryRank=1&amp;mapMode=0&amp;flight=off&amp;street=on&amp;vrpanosky=on&amp;vrpanolng=126.9803106&amp;vrpanopoi=off&amp;vrpanolat=37.5239275&amp;vrpanopan=87.77&amp;vrpanofov=120&amp;vrpanoid=aOGLI6MSkCUEptm9TC5Org%3D%3D&amp;vrpanotype=5&amp;vrpanotilt=-1.33&amp;enc=b64'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2/101/ico_view.gif'/&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amp;nbsp; &lt;/strong&gt;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박성원&lt;/dt&gt;&lt;dt&gt;&lt;p&gt;&lt;strong&gt;자료 제공 &lt;/strong&gt;국립중앙박물관 제공&lt;a href='http://www.museum.go.kr/'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0/11/1/292/logo.jpg'/&gt;&lt;/a&gt; &lt;/p&gt;
&lt;/dt&gt;&lt;p&gt;&lt;span&gt;&lt;strong&gt;발행일&lt;/strong&gt;&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 2012.02.04&lt;/span&gt;&lt;/p&gt;
&lt;/d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DmM7d7gyEtY"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27]]></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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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셀러론 - 알뜰파 PC 사용자를 위한 저가형 CPU]]></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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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556311251464173.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PC의 등급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탑재된 CPU(중앙처리장치)의 성능으로 이를 나누곤 한다. 그만큼 CPU는 PC의 핵심부품이며, 전체 PC의 가격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큰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고성능 CPU를 탑재한 PC일수록 본체 가격 또한 크게 올라가기 마련이다. 다만, PC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성능이 다소 낮더라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보급형 PC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CPU 업계에서는 보급형 PC를 위한 저렴한 CPU의 라인업 확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물론, 한때는 고급형으로 팔리던 구형 CPU의 가격을 낮춰 보급형 PC에 탑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는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 면에서 좋지 않고, 구형과 신형 제품의 생산 공정 라인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CPU 제조사들은 고급형과 보급형 제품을 같은 공정으로 생산하면서, 고급형 제품에서 몇 가지 기능을 생략, 혹은 축소해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도 낮춘 별도 브랜드의 보급형 제품을 출시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텔(Intel)사의 ‘셀러론(Celeron)’ CPU가 대표적인 경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81년에 IBM에서 PC를 최초로 출시한 이후, CPU 시장은 줄곧 인텔에서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텔의 독주 체제는 1990년대 들어 PC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약간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펜티엄(Pentium)’으로 대표되는 인텔의 CPU는 높은 성능을 인정받긴 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 역시 함께 받곤 했다. 그리고 보급형 PC 시장의 급격한 확대와 더불어 이전까지 존재감이 미미하던 AMD, 사이릭스(Cyrix)와 같은 후발주자들의 제품이 조금씩 판매량을 늘리기 시작했다.&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79/img_01.jpg'/&gt;&lt;p&gt;셀러론은 인텔의 저가형 CPU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펜티엄 II의 보급형 제품으로 출시된 최초의 셀러론&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이러한 이유로 인텔은 보급형 CPU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1998년에 처음 나온 ‘셀러론(코드명 코빙턴)’이다. 셀러론은 같은 시기에 팔리던 인텔의 고급형 CPU인 ‘펜티엄 II’와 같은 클럭(clock: 동작속도)을 가지면서도 가격은 절반 이하였다. 당시에는 클럭 수치가 곧 CPU의 성능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펜티엄 II와 동급 클럭의 인텔 CPU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PC 제조사들 역시 이를 마케팅 요소로 삼아 다수의 셀러론 탑재 PC를 출시하기 시작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82/img_02.jpg'/&gt;&lt;p&gt;초기형 셀러론의 제품 로고&lt;/p&gt;
&lt;/div&gt;
&lt;p&gt;&lt;br&gt;&lt;/br&gt;
&amp;nbsp;&lt;/p&gt;
&lt;div&gt;&lt;p&gt;다만, 그렇다고 하여 셀러론이 같은 클럭의 펜티엄 II와 동급의 성능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셀러론은 펜티엄 II와 같은 공정으로 생산되긴 하지만, CPU의 성능에 큰 영향을 끼치는 2차 캐시(cache) 메모리가 생략되어 있었다. 캐시 메모리의 용량이 크면 클수록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데, 2차 캐시가 완전히 생략된 셀러론은 펜티엄 II(512KB의 2차 캐시 탑재)에 비해 눈에 띄게 처리 능력이 저하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셀러론(코빙턴)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인텔은 4개월 후에 128KB의 2차 캐시를 추가한 신형 셀러론(코드명 멘도시노)을 출시했다. 신형 셀러론은 이전에 팔리던 같은 클럭의 구형 셀러론과 구분하기 위해 클럭 수치 뒤에 ‘A’를 붙이기도 했는데(예: 셀러론 300A) 이 때문에 128KB의&amp;nbsp;2차 캐시가 추가된 셀러론은 ‘셀러론A’라 불리기도 했다. 128KB의 2차 캐시가 추가된 셀러론은 초기 셀러론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일부 전문적인 작업을 제외한 일반적인 작업(인터넷 서핑, 사무 작업 등)에서는 펜티엄 II 못지 않은 성능을 냈고, 이로 인해 큰 인기를 얻으며 판매량 역시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lt;/p&gt;
&lt;/div&gt;
&lt;p&gt;2차 캐시의 용량 차이 외에도 셀러론이 상위 제품과 차이가 나는 또 한가지 요소는 FSB(Front Side Bus) 수치다. FSB는 간단히 말하자면 PC 내부에서 주요 장치간에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로를 일컫는 것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전반적인 처리 속도가 향상된다. 초기에는 셀러론과 펜티엄 II 모두 66MHz의 FSB로 작동했다. 하지만 1998년 중반 이후부터 펜티엄 II의 FSB는 100MHz로 향상되었으나 셀러론은 여전히 66MHz로 작동하는 제품만 출시되어 등급의 차별을 두었다.&lt;/p&gt;
&amp;nbsp;&amp;nbsp;&amp;nbsp;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33/img_03-1.jpg'/&gt;&lt;/p&gt;
&lt;p&gt;최초의 셀러론은 펜티엄 II와 같이 슬롯형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펜티엄 II와 달리 외부를 감싸는 커버는 생략되었다. &amp;lt;출처: (CC)Qurren at Wikipedia.org&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펜티엄 III 시대의 &lt;/span&gt;&lt;span&gt;셀러론, 본격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1999년에 인텔은 펜티엄 II의 후속 모델인 ‘펜티엄 III’를 출시했다. 펜티엄 III는 전력 구조를 개선해 보다 적은 전력을 소모하게 되었고 SSE(Streaming SIMD Extension) 명령어가 추가되어 멀티미디어 성능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해 출시된 셀러론(코드명 코퍼마인) 역시 펜티엄 III 기반으로 변경되며 유사한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나 2차 캐시 용량(128KB) 및 FSB 수치(66MHz)가 펜티엄 III보다 낮은 점은 이전의 셀러론과 동일했다. 1999년 후반부터 펜티엄 III의 FSB는 133MHz로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셀러론의 FSB는 66MHz를 유지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2001년을 즈음해 셀러론의 FSB 역시 100MHz로 한 단계 높아졌고, 2002년에는&amp;nbsp;2차 캐시의 용량이 256KB로 향상된 신형 셀러론(코드명 투알라틴)도 출시되었다. 1GHz(1000MHz) 이상의 클럭으로 작동하는 셀러론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 인데, 1GHz 이상의 클럭과 100MHz의 FSB, 그리고 256KB의&amp;nbsp;2차 캐시를 가진 셀러론은 가격대비 성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lt;/p&gt;
&amp;nbsp;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높은 클럭을 추구한 펜티엄 4, 펜티엄 D 시대의 셀러론&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2000년부터 인텔은 아키텍처(architecture: 제조 및 내부 처리 구조)를 완전히 일신한 펜티엄 4를 출시했다. 펜티엄 4는 CPU의 클럭을 손쉽게 높일 수 있는 ‘넷버스트(Netburst) 아키텍처’를 도입했으며 이는 셀러론 역시 그대로 이어받았다. 최초의 넷버스트 기반 셀러론(코드명 윌라멧, 2003년부터는 노스우드)은 2002년 초부터 출시를 시작했으며, 초기 모델의 클럭은 1.5GHz였다. 2차 캐시의 용량은 128KB(펜티엄 4는 256KB ~ 1MB)로 적은 편이었지만 FSB는 넷버스트 아키텍처의 특성을 살려 400MHz(펜티엄 4는 400 ~ 800MHz)로 크게 향상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2005년, 인텔은 펜티엄 4와 같은 넷버스트 아키텍처를 사용하면서 코어(core: 핵심 처리 회로)의 수를 2개로 늘린 듀얼코어(Dual Core) CPU인 ‘펜티엄 D’를 출시했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해 셀러론 역시 셀러론 D(코드명 프레스캇)로 변경되었다. 셀러론 D는 펜티엄 D보다 반년 정도 앞선 2004년 중반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브랜드명과는 달리 듀얼코어 CPU는 아니었다. 하지만 2차 캐시가 256KB로 커지고 FSB가 533MHz로 올라가는 등 성능 자체는 향상되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2차 캐시를 512KB까지 키운 후기형 셀러론 D(코드명 시더밀)도 출시된다. &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08/img_04.jpg'/&gt;&lt;p&gt;셀러론 D는 펜티엄 D와 달리 듀얼코어 CPU는 아니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코어2 시대의 개막과 함께 맞이하게 된 셀러론의 쇠퇴기&amp;nbsp;&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넷버스트 아키텍처의 인텔 CPU는 높은 클럭을 얻은 대신 전력소모율이 높고 발열도 심해서 소비자들의 적지 않은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인텔은 이러한 기존의 넷버스트 아키텍처에 비해 낮은 클럭에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코어(Core) 아키텍처’ 기반의 듀얼코어 CPU인 ‘코어2 듀오’를 2006년에, 2008년에는 코어2 듀오보다 2배 많은 4개의 코어를 내장한 ‘코어2 쿼드’ CPU를 출시한다.&lt;/p&gt;
&amp;nbsp;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96/img_05.jpg'/&gt;&lt;p&gt;2008년부터 셀러론도 듀얼코어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지만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lt;/p&gt;
&lt;br&gt;&lt;/br&gt;
&lt;p&gt;이후 코어2 시리즈는 실질적으로는 펜티엄 시리즈를 대신해 인텔의 고급형 CPU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기존 펜티엄의 높은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인텔은 코어2 듀오의 일부 기능을 축소시킨 보급형 듀얼코어 CPU를 ‘펜티엄’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셀러론 역시 브랜드를 폐지하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코어 아키텍처를 도입한 단일코어의 셀러론(코드명 콘로-L, 512KB 2차 캐시, 800MHz FSB)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lt;/p&gt;
&lt;p&gt;&lt;br&gt;&lt;/br&gt;
다만, 상위제품인 펜티엄이 보급형으로 내려간 만큼, 이보다 하위 등급 제품인 셀러론의 위상은 더 내려갔고, 싼 가격만을 강조하는 초저가 PC 전용의 CPU로 자리잡게 되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크게 줄어든다. 2008년에 듀얼코어 셀러론(코드명 앨런데일)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2009년에는 1MB의 2차 캐시까지 탑재한 신모델(코드명 울프데일)이 출시되었지만, 여전히 업계에서 주목 받지는 못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끈질긴 &lt;/span&gt;&lt;span&gt;생명력을 증명한 코어 i 시리즈 이후의 셀러론&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이후, 인텔은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를 도입한 ‘코어 i 시리즈’를 2008년부터 내놓기 시작했다. 코어 시리즈는 코어 i3(보급형), 코어 i5(중급형), 코어 i7(고급형) 등으로 라인업이 보다 촘촘해지면서 인텔 CPU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할렘 기반으로 재탄생한 펜티엄이 여전히 코어 i3의 하위 제품으로 존속하면서 셀러론은 존재 의미 자체가 크게 퇴색했다. 2010년에 네할렘 기반의 셀러론(코드명 클락데일)이 출시되긴 했지만, 업체들과 소비자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아 곧장 잊혀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던 셀러론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샌디브릿지(Sandy Bridge) 아키텍처 기반의 2세대 코어 i 시리즈가 출시된 이후다. 이전 코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2세대 코어 i3의 하위 모델로 샌디브릿지 기반의 펜티엄과 셀러론이 출시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상당히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고, 그 중에서도 셀러론(코드명 샌디브릿지)은 성능 면에서도 이전 모델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히 샌디브릿지 아키텍처의 인텔 CPU는 일상적인 컴퓨터 사용(사무, 인터넷, 간단한 게임 등)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성능의 GPU(그래픽카드의 핵심 칩)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구매하지 않고 그만큼 PC 구매 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 유용하다. 이는 전반적인 PC시장의 축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인텔의 보급형 모델 강화 전략에 의한 것으로, 샌디브릿지 기반의 셀러론은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면서 PC 구매 비용은 최소화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판매되었다.&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60/img_06.jpg'/&gt;&lt;p&gt;2012년 현재 판매중인 셀러론의 제품 로고&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애증의 그 이름, &lt;/span&gt;&lt;span&gt;셀러론&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인텔의 셀러론은 PC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기에 맞춰 태어났으며, 높은 가격대비 성능을 앞세워 PC의 대량 보급에 큰 역할을 한 CPU다. 다만, 일부 PC 제조사들은 셀러론의 성능적인 한계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서 단순히 싼 가격만을 강조해 셀러론 탑재 PC를 대량으로 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셀러론 PC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성능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고, 이 때문에 셀러론이 단순한 ‘싸구려 CPU’로 인식되기도 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고 펜티엄 시리즈가 보급형으로 내려 앉으면서 이보다 하위 브랜드인 셀러론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한때는 퇴출이 전망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현재까지도 셀러론은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PC를 장만하고자 하는 알뜰파 사용자들에게 있어 셀러론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친숙한 존재로 남아있을 듯 하다.&lt;/p&gt;
&amp;nbsp;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김영우 / IT동아 기자&amp;nbsp; &lt;a href='http://it.donga.com/'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0/11/30/282/itdonga_logo2.jpg'/&gt;&lt;/a&gt; &lt;/dt&gt;&lt;dd&gt;현재 IT 전문 저널인 ‘IT동아(&lt;a href='http://it.donga.com/' target='_blank'&gt;http://it.donga.com&lt;/a&gt;)’의 PC 부문 전문 기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컴맹 퇴치’를 위한 강의형 기사 집필에 힘을 기울이는 중이다.&lt;/dd&gt;&lt;/dl&gt;&lt;/div&gt;
&lt;p&gt;&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발행일&amp;nbsp; &lt;/span&gt;&lt;/strong&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v08OvwwvOmI"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22]]></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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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재규어 XK - 영국의 럭셔리 스포츠카]]></title>
<link>http://feedproxy.google.com/~r/terzeron/navercast/~3/sgecQXLwPHs/contents.nhn</link>
<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53432523007017.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영국의 럭셔리 브랜드인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query=%EC%9E%AC%EA%B7%9C%EC%96%B4&amp;sm=ncc_clk&amp;fbm=1&amp;ie=utf8' target='_blank'&gt;재규어&lt;/a&gt;(Jaguar)는 고성능과 멋스러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특히 재규어를 대표하는 모델들의 우아한 디자인은 독특한 기품마저 내뿜는다. 스피드 경쟁에서도 두각을 보이며 기술적인 부분 역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켜오고 있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39/01.jpg'/&gt;&lt;/p&gt;
&lt;p&gt;재규어 XK120 로드스터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재규어의 역사는 모터사이클 매니아이자 자동차 판매원인 영국인 월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로부터 시작된다. 야간대학에서 기계학을 전공하며 자동차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그는 모터사이클 사이드카 제작자인 10살 연상의 윌리엄 웜슬리(Willam Walmsley)를 만나게 된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1922년 재규어의 전신인 ‘스왈로우 사이드카’(SS)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가벼운 알루미늄 차체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오스틴 세븐 스왈로우, SS1의 성공, 자동차 메이커 입지 굳혀&lt;/span&gt;&lt;/strong&gt;&lt;/p&gt;
&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35/02.jpg'/&gt;&lt;p&gt;1922년~1939년까지 생산된 오스틴7&amp;nbsp; &amp;lt;출처: (cc) Mali at Wikipedia&amp;gt;&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85/03.jpg'/&gt;&lt;p&gt;오스틴7 스왈로우 (1927년~1937년) - 윌리엄 라이온즈가 오스틴7의 뼈대에 자신이 디자인한 바디를 올려 만들었다.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월리엄 라이온즈가 자동차 제작에 뛰어든 배경이 흥미롭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소형차 ‘오스틴 세븐’(Austin 7·1922년 허버트 오스틴이 개발한 자동차로 차제가 가볍고 운전이 쉬워 자동차 대중화를 앞당긴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라는 차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디자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오던 그는 어느 날 새로운 바디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자신의 차인 오스틴 세븐의 뼈대 위에 올렸다. 이 차가 바로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Austin 7 Swallow)다. 낮은 가격대와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이 차는 출시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의 성공은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바디 제작 요청으로 이어졌는데, 밀리는 주문 물량에 더 큰 공장을 빌려야 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62/04.jpg'/&gt;&lt;p&gt;1932년~1934년까지 생산된 SS1 전측면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amp;gt;&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71/05.jpg'/&gt;&lt;p&gt;SS1 후측면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대표적인 모델이 SS1(스왈로우 사이드카와 바디 제작과 관련해 전속계약을 체결한 스탠다드사와 스왈로우의 앞글자를 따 ‘SS’로 명명했다)이다. 1931년 런던모터쇼에 공개된 이 모델은 외관은 흡사 고급차 벤틀리(Bentley)와 유사했으나 가격은 벤틀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이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잇따른 성공에 고무된 월리엄 라이온즈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회사 이름을 재규어로 바꾸고 본격적인 자동차 제작에 뛰어든다. 참고로, ‘SS’라는 회사명이 전쟁 기간 동안 악명을 떨친 독일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82%98%EC%B9%98+%EC%B9%9C%EC%9C%84%EB%8C%80' target='_blank'&gt;나치 친위대&lt;/a&gt;(SS)의 약자와 같아 결국 이름을 바꿨다는 일화도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재규어 XK의 탄생&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이를 전후해 재규어의 상징이 된 ‘XK’ 엔진을 자체 제작하게 된다. 경주용 엔진을 모티브로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DOHC&amp;x=11&amp;y=25' target='_blank'&gt;DOHC&lt;/a&gt; 형식의 XK 엔진은 직렬 6기통의 3.4ℓ(3,392㏄)엔진이었다. 이 엔진이 바로 재규어를 대표하게 될 양산형 스포츠카 ‘XK120’ 의 엔진이다. XK엔진은 훗날 2,392㏄와 3,785㏄, 4,195㏄ 등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재규어 XK120C와 D타입 에 적용돼 르망24시간 경주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95/06.jpg'/&gt;&lt;p&gt;재규어 XK120 로드스터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amp;gt;&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29/07.jpg'/&gt;&lt;p&gt;재규어 XK120 로드스터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차명의 ‘XK’는 XK 엔진의 이름에서 따왔다.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8%A4%EB%B2%84%ED%97%A4%EB%93%9C+%EC%BA%A0%EC%B6%95+%EC%97%94%EC%A7%84' target='_blank'&gt;오버헤드 캠축 엔진&lt;/a&gt;을 장착하고 시속 193㎞의 최고 속도를 자랑한 이 모델은 1948년 런던 모터쇼 최고의 히트작으로 평가됐다. 출시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988파운드(3,300달러)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엇보다 기품있고 우아한 곡선이 눈길을 끈 디자인은 우아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곡선의 미학은 전쟁 이전 마지막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자동차 경주 대회에 참가한 알파 로메오, 프랑스의 최고급 스포츠카 탈보, BMW 328MM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탈리아의 차체 제작자이자 공기역학적 스타일로 이름을 떨친 ‘토우링’의 작품이다. 당시 스포츠카의 대세로 여겨졌던 본체와 분리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D%8E%9C%EB%8D%94&amp;x=32&amp;y=9' target='_blank'&gt;펜더&lt;/a&gt;(Fender)의 방식을 탈피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일체형 밀폐구조도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XK120의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때문에 모터쇼 등장 이후 주문이 몰리며 윌리엄 라이온즈의 성공 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43/08.jpg'/&gt;&lt;/p&gt;
&lt;p&gt;재규어 XK120 로드스터 버전 전면 - 우아한 곡선이 눈길을 끈 디자인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미국인 사로잡은 영국의 스포츠카, 140·150으로 명성 이어&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알로이판을 수작업으로 판금한 바디가 그것인데, 이럴 경우 양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시승용 차량마저 부족하자 언론의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 성능의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이에 월리엄 라이온즈는 출시 7개월 후인 1949년 5월 벨기에로 기자단을 초청해 XK120의 성능 시연을 보였다. 표준형 모델의 지붕과 창을 닫은 상태로 시험 운전한 결과,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기록인 203㎞/h의 속도를 기록하며 이같은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lt;br&gt;&lt;/br&gt;
&amp;nbsp;&lt;br&gt;&lt;/br&gt;
XK120은 특히 미국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XK120이 세상에 공개될 즈음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나빠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미국 등에 대한 자동차 수출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월리엄 라이온즈는 미국 스타일이 아닌 가장 영국적인 스포츠카를 제작해 미국 시장에 내놓았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할리우드의 대스타인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query=%EC%A1%B4+%EC%9B%A8%EC%9D%B8&amp;sm=ncc_clk&amp;fbm=1&amp;ie=utf8&amp;x=21&amp;y=11' target='_blank'&gt;존 웨인&lt;/a&gt;과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D%81%B4%EB%9D%BC%ED%81%AC+%EA%B2%8C%EC%9D%B4%EB%B8%94&amp;x=41&amp;y=25' target='_blank'&gt;클라크 게이블&lt;/a&gt;의 애마로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시장에서의 성공과 국가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윌리엄 라이온즈는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47/09.jpg'/&gt;&lt;/p&gt;
&lt;p&gt;재규어 XK140 드롭헤드 쿠페 실내 인테리어 &amp;lt;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XK120의 명성은 XK140, XK150으로 이어졌다. 1954년 엔진 성능을 높혀 190마력 특허 엔진을 장착한 XK140은 XK120에 비해 엔진이 조금 앞으로 설치됐다. 운전석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다. 또한 XK140의 고정헤드, 드롭헤드 쿠페에서는 앞 좌석이 앞으로 당겨져 임시용 뒷 좌석의 활용도가 높아졌다.&lt;br&gt;&lt;/br&gt;
&amp;nbsp;&lt;br&gt;&lt;/br&gt;
1957년에는 실용성을 강조한 중형 세단 스타일의 XK150이 공개됐다. 곡면으로 제작된 전면 유리창, 넓어진 실내공간이 특징이다. 디스크 브레이크 장착 등 새로운 시스템도 추가됐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XK140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XK120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혔던 곡선의 미학은 사라졌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91/10.jpg'/&gt;&lt;/p&gt;
&lt;p&gt;1951년 실버스톤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한 XK120. &amp;lt;출처: (cc) Writegeist at Wikipedia&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월리엄 라이온즈는 특히 재규어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경주대회에 적극 참여했다. XK 엔진으로 무장한 XK120은 출시 이듬해에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 열린 1시간 양산차 경주(One-Hour Production Car Race)에서 우승했다. 르망 24시 경주에서는 1951년 우승을 시작으로 1955~1957년까지 3회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1957년 르망 24시 경주에서는 1위에서 6위까지의 자동차 중 5대가 XK엔진의 재규어였다.&amp;nbsp; 재규어 XK는 출시 후 12년동안 3만대가 팔렸는데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차는 XK120 으로 총 1만 2,078대가 팔렸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ol&gt;&lt;li&gt;&lt;strong&gt;재규어 XK120 로드스터 제원&lt;/strong&gt;&lt;br&gt;&lt;/br&gt;
엔진 형식 : 직렬 6기통 3.4ℓ / 배기량 : 3392㏄ / 최고속도 : 193㎞/h / 차체형식 : 2인승 고정헤드 쿠페형·2인승 드롭헤드 쿠페형 / 트랜스미션 : 4단 수동 최대출력 : 160hp·5000rpm / 최대토크 : 26.9㎏·m·25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4394㎜ X 1562㎜ X 1334㎜ / 휠베이스 : 2591㎜ / 총 중량 : 1295㎏ 제로백(0-100㎞/h) : 10.0초 / 생산년도 : 1948~1954년 / 생산국가 : 영국(코번트리) / 생산대수 : 1만2078대 &lt;/li&gt;&lt;/ol&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29/237/17_%B0%B6%B7%AF%B8%AE.jpg'/&gt; &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30/73/%B0%B6%B7%AF%B8%AE.jpg'/&gt;&lt;/p&gt;
&lt;p&gt;&lt;!--&lt;div id="gallery_top"&gt;&lt;/div&gt;--&gt;&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4/13/51/%BE%C8%B1%A4%C8%A3.jpg'/&gt;&lt;/div&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amp;nbsp;안광호(&lt;a href='http://navercast.naver.com/mailto:ahn7874@kyunghyang.com'&gt;ahn7874@kyunghyang.com&lt;/a&gt;) / 경향신문&amp;nbsp;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09/9/30/230/logo01.jpg'/&gt; &lt;/dt&gt;&lt;dd&gt;경향신문 편집국 디지털뉴스팀 소속으로, 자동차 분야 취재를 맡고 있다.&amp;nbsp;자동차의 역사와 기술에 대해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려 노력 중이다. &amp;nbsp;&amp;nbsp;&lt;/dd&gt;&lt;/dl&gt;&lt;/div&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제조사 정보&lt;/strong&gt;&lt;br&gt;&lt;/br&gt;
&lt;/p&gt;
&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73/asd.jpg'/&gt;&lt;/div&gt;
&lt;div&gt;&lt;p&gt;&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E%AC%EA%B7%9C%EC%96%B4' target='_blank'&gt;&lt;strong&gt;재규어&lt;/strong&gt;&lt;/a&gt;&lt;/p&gt;
&lt;p&gt;재규어는 영국의 럭셔리 세단 자가용 제조업체로 잉글랜드 코벤트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35년 SS 90과 SS 100 모델의 재규어 브랜드 차량이 처음 출시되었다. 1949년에서 1961년까지 XK 120, XK 140, XK 150, E Type과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스포츠카를 생산했다. 이 모델들의 판매는 모두 성공적이었고, 재규어는 세계적인 스포츠카 생산업체로 성장했다.&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auto.naver.com/company/sale.nhn?mnfcoId=25' target='_blank'&gt;재규어 다른 모델 보기&lt;/a&gt;&lt;/p&gt;
&lt;p&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발행일&lt;/strong&gt;&lt;/span&gt;&amp;nbsp; &lt;span&gt;2012.02.03&lt;/span&gt;&lt;/span&gt;&lt;/p&gt;
&lt;/div&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sgecQXLwPHs"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21]]></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feedburner:origLink>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21</feedburner:origLink></item>
<item>
<title><![CDATA[체감온도의 원리 - 덥거나 춥다고 느끼는 정도를 나타낸 온도]]></title>
<link>http://feedproxy.google.com/~r/terzeron/navercast/~3/RDtwviGYBw4/contents.nhn</link>
<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4510195786832.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어제의 기온이 영하 10℃, 오늘 기온이 영하 5℃라고 할 때, 기온은 어제보다 높아졌는데, 이상하게 오늘 날씨가 어제보다 더 매섭고 춥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추위를 느끼는 요소에는 기온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이나 습도, 햇볕에 따라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덥거나 춥다고 느끼는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lt;strong&gt;온도&lt;/strong&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number1.gif'/&gt; 를 만들었는데, 이 온도가 바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B2%B4%EA%B0%90%EC%98%A8%EB%8F%84&amp;x=18&amp;y=21' target='_blank'&gt;체감온도&lt;/a&gt;’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기의 온도를 뜻하는 기온은 온도계를 이용해 재는 기계적인 온도다. 그러나 체감온도는 온도계로 재는 온도가 아니라 계산하는 온도다. 춥다, 덥다고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 숫자로 나타내는 작업이 좀처럼 쉽지 않다.&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2/%BB%E7%B6%F7%BF%C2%B5%B5%B0%E81-copy.jpg'/&gt;&lt;p&gt;체감온도는 덥거나 춥다고 느끼는 정도를 나타낸 온도다.&lt;/p&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탐험가의 도전으로 만든 체감온도&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7/19/232/10px.jpg'/&gt;&lt;/p&gt;
&lt;p&gt;체감온도를 처음 계산한 사람은 미국의 탐험가 폴 사이플과 찰스 파셀이다. 이들은 남극을 6번이나 정복하면서 체감온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39년 사이플과 파셀은 남극에서 플라스틱 실린더에 물을 채워 건물 위에 매달고 실험을 했다. 바람과 기온에 따라 실린더의 물이 어는 시간을 5분 간격으로 측정하고, 그런 다음 피부의 단위 면적당 열이 손실되는 양을 계산해 체감온도를 구하는 식을 만들었다. 최초의 체감온도 계산식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이플과 파셀이 만든 체감온도 계산식은 당시 겨울철 야외활동과 군 작전 훈련에 널리 쓰였다. 그러나 물이 어는 것을 피부의 열손실에 적용했다는 점과 이 계산식으로 체감온도를 구하면 과장된 값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91/01.jpg'/&gt;&lt;p&gt;지질학자이자 탐험가였던 폴 사이플은 체감온도를 식으로 처음 만들었다.&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38/02.jpg'/&gt;&lt;p&gt;바람과 기온에 의해 결정되는 체감온도를 계산하는 온도계.&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기온이 높아도 더 추운 이유&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7/19/232/10px.jpg'/&gt;&lt;/p&gt;
&lt;p&gt;체감온도를 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체감온도는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느낌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체감온도 계산식이 있지만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쓰는 계산식은 2001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만든 JAG/TI 모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와 미국은 매년 극심한 추위 때문에 체감온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추위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다. 여기서 만든 체감온도 계산식은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 만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실험에 참가한 12명의 사람은 얼굴 중 코, 턱, 이마, 뺨에 센서를 붙였다. 그리고 기온과 바람의 속력을 다르게 했을 때 피부의 온도와 열손실이 어떻게 되는지 측정해 아래와 같은 공식을 만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체감온도(℃) = 13.12+0.6215×T-11.37×V &lt;/span&gt;&lt;sup&gt;&lt;span&gt;0.16&lt;/span&gt;&lt;/sup&gt;&lt;span&gt; +0.3965×V &lt;/span&gt;&lt;sup&gt;&lt;span&gt;0.16&lt;/span&gt;&lt;/sup&gt;&lt;span&gt;×T&lt;/span&gt;&lt;br&gt;&lt;/br&gt;
&lt;span&gt;단, T : 기온(℃), V : 풍속(km/h)&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사이플과 파셀의 계산식은 물이 어는 시간을 재서 만들었지만, 2001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만든 JAG/TI 계산식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식이 다소 복잡해 직접 값을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 계산기를 이용해 체감온도를 구하면 기온이 영하 10℃, 바람의 속력이 시속 5km일 때 체감온도는 영하 13℃이고, 기온이 영하 5℃, 바람의 속력이 시속 40km면 체감온도는 영하 14℃다. 두 경우를 비교하면 기온이 5℃ 더 높더라도 바람이 더 셀 때는 체감온도가 더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기온과 풍속에 따른 체감온도와 체감 증상&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7/19/232/10px.jpg'/&gt;&lt;/p&gt;
&lt;p&gt;기상청은 온도와 바람의 속력에 따라 체감온도를 계산한 뒤 그 값을 4단계로 나눴다. 체감온도에 따른 증상과 대처 방법을 제시해 추위를 대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61/03.jpg'/&gt;&lt;/p&gt;
&lt;p&gt;기상청의 체감온도 표.&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그러나 이 계산식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체감온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인 태양열, 습도, 추위에 대한 개인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점이다. 특히, 높은 온도에서는 피부에 접하는 공기의 습도가 체감온도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온과 상대적인 습도를 바탕으로 계산하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query=%EC%97%B4%EC%A7%80%EC%88%98&amp;site=&amp;ie=utf8' target='_blank'&gt;열지수&lt;/a&gt;를 대신 사용한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체감온도는 인종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과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은 같은 온도여도 느끼는 추위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현재 캐나다와 미국에서 개발한 체감온도 계산식을 쓰고 있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체감온도를 구하려고 연구하고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96/04.jpg'/&gt;&lt;p&gt;모자나 장갑보다는 목도리의 보온 효과가 크므로, 체감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목도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amp;lt;출처: gettyimages&amp;gt;&lt;/p&gt;
&lt;br&gt;&lt;/br&gt;
&lt;p&gt;실제로 우리나라 사람 20대 남녀 18명을 선발해 실험한 결과, 성별에 따라서는 남성의 피부온도가 여성의 피부온도보다 높아 여성이 남성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남성과 여성의 피부온도 차이는 기온이 낮아질수록 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겨울철 쉽게 체감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겨울철 보온을 위해 목도리, 장갑, 모자를 갖춰 입는데, 모자나 장갑보다는 목도리의 보온 효과가 크다. 목은 추위에 민감할 뿐 아니라, 목이 차가우면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액공급이 되지 않아 위험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추위는 심장에서 멀수록 더 많이 느끼므로 손이나 발, 귀, 코 등 몸 끝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체감온도를 높이는 방법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날씨 정보에서 알려 주는 체감온도에 귀 기울여 보자. 그리고 체감온도 결과표를 보고 얼마나 추울지 예상해 보자. 올 겨울 매서운 추위가 찾아와도 거뜬하게 추위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ol&gt;&lt;li&gt;&lt;strong&gt;온도&lt;/strong&gt;&lt;p&gt;물체가 차갑고 뜨거운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것을 온도라고 한다. 온도는 종류도 여러 가지고, 각각의 쓰임과 특성도 다르다.&lt;br&gt;&lt;/br&gt;
- 섭씨온도(℃) :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을 0℃로 두고 끓는점을 100℃로 정해 그 사이를 100등분한 온도. 사용하기 편리해 세계적으로 널리 쓰고 있는 표준화된 온도다.&lt;br&gt;&lt;/br&gt;
- 화씨온도(℉) :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을 32°F로 두고 끓는점을 212°F로 정해 그 사이를 180등분한 온도. 세 온도 중 가장 먼저 나온 온도지만, 지금은 미국과 영국 정도에서만 쓰인다.&lt;br&gt;&lt;/br&gt;
- 절대온도(K) :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K로 정한 온도. 물의 어는점이 273.15K이고 눈금 간격이 섭씨 온도와 같다. 열역학적 온도라고도 하며, 물질이 가질 수 있는 최저온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음수(-)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 &lt;/p&gt;
&lt;/li&gt;&lt;/ol&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정경아 / 수학동아 기자 &lt;/dt&gt;&lt;dd&gt;과학 전문 월간지 과학동아 기자. 일상을 과학으로 재미있게 푸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 중이다.&lt;/dd&gt;&lt;/dl&gt;&lt;dt&gt;&lt;p&gt;&lt;strong&gt;자료제공&lt;/strong&gt;수학동아&lt;a href='http://math.dongascience.com/'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8/24/213/%BC%F6%C7%D0%B5%BF%BE%C6.jpg'/&gt;&lt;/a&gt;&lt;/p&gt;
&lt;/dt&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 &lt;/span&gt;&lt;/strong&gt;&amp;nbsp;2012.02.03&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219'&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0/12/01/184907327731720.jpg'/&gt;&lt;strong&gt;온도계의 원리&lt;/strong&gt;&lt;/a&gt;&lt;span&gt;어떻게 측정할까?&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496'&gt;기계공학&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65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0/09/17/192553721697010.jpg'/&gt;&lt;strong&gt;온도&lt;/strong&gt;&lt;/a&gt;&lt;span&gt;열과 온도의 관계&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631'&gt;열학&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RDtwviGYBw4"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20]]></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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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태국 코따오 - 다이버들의 성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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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149166604444.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건강한 맨발의 섬' 코따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필자가 코따오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태국의 수많은 섬들 중 아주 작고 아담한 섬. 자연도 건강하고, 공기도 건강하고, 사람들도 건강한 섬이다. 여행자들은 누구라도 맨발로 거리와 해변을 거닐고, 숙소는 물론 식당, 마사지 숍, 편의점&amp;nbsp; 조차도 맨발로 다니는 자유로운 섬. 이런 건강한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왔는지…이 작은 섬은 무엇을 간직하고 있기에 많은 여행자들은 가기도 쉽지 않은 이 섬으로 모여드는 것일까.&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94/01.jpg'/&gt;&lt;/p&gt;
&lt;p&gt;눈부신 삼각해변을 간직한 코따오의 낭유안&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눈부신 삼각해변을 간직한 낭유안&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코따오 아름다움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이름. 바로 낭유안 섬이다. 낭유안 섬은 다이빙 포인트로도 그 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낭유안에서 더 유명한 것은 멋진 삼각해변이다. 낭유안은 세 개의 작은 섬이 연결된 해변이 있다. 낭유안의 삼각해변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낭유안의 삼각해변은 산호해변으로 모래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대비되어 더더욱 멋진 풍경을 만든다. 낭유안의 삼각해변은 남쪽에 있는 섬의 전망대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 바로 아래 부분에 조금 올라가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해변에서 전망대까지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해변에서 ‘뷰포인트 View Point’ 라는 간판만 따라 올라가면 된다. 단 낭유안의 삼각해변은 산호해변으로 산호가 곱게 부서지지 않고 작은 조각으로 남아있는 식이라서 맨발로 걸으면 아플 수가 있으므로 아쿠아 슈즈나 스포츠 샌들을 신는 것이 좋다. 섬 내 숙소도 있어 섬 내에 머물며 낭유안 섬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도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164/02.jpg'/&gt;&lt;/p&gt;
&lt;p&gt;낭유안의 삼각해변은 투명한 수중환경으로도 유명하다.&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코따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망고 베이&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코따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변으로 태국어로 ‘아오 마무앙’이라고도 한다. 섬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자랑하는 곳으로 산호초들이 있고 파도가 없이 잔잔해 좋은 스노클링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도로가 없고 험한 절벽 산으로 둘러 싸여져 있어 육로로는 이동할 수 없고 배를 타고 접근해야한다. 일일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이다. 망고 베이 리조트와 아오 마무엉 리조트, 두 개의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별적으로 움직여 망고 베이만 보는 것보다는 섬을 한 바퀴 도는 스노클링 투어 등을 이용해 둘러보는 곳이 좋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83/03.jpg'/&gt;&lt;/p&gt;
&lt;p&gt;코따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변인 망고 베이의 전경&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시리도록 투명한 수중 환경&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따오 Tao’는 거북이를 의미하는 말로 섬의 모양이 거북의 등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의 가장 긴 부분도 7km 정도이고, 총면적 21평방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이 갖고 있는 바다 속 환경만큼은 태국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코따오와 인근의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는 다이버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전 세계 다이버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다이빙 초보자들에게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 코따오의 거의 모든 숙박업소에는 다이빙 숍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이빙 입문에 관한 인프라가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다. 숙소 어디에서도 교육에 열중하는 초보 다이버들이나 장비를 갖춘 다이버들이 배를 타고 나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코따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이버의, 다이버에 의한, 다이버를 위한’ 섬이라도 할 수 있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더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아 인적이 드문 맑은 해변과 내륙으로는 청정의 산림이 눈과 코를 상쾌하게 한다. 태국의 다른 휴양지에 비하면 여전히 시골 같은 분위기 또한 코따오만의 매력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42/04.jpg'/&gt;&lt;p&gt;‘따오 Tao’는 거북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54/05.jpg'/&gt;&lt;p&gt;검의 관문인 매핫 Mae Had의 모습&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코따오 100배 즐기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해변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매핫 Mae Had은 선착장이 있어 섬의 관문인 동시에 은행, 우체국 등의 편의 시설들도 모여 있어 섬 내 행정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다. 코따오에서 가장 발달한 해변은 싸이리 비치 Sairee Beach이다. 길이 2km 정도에 달하는 해변을 따라 숙소와 식당, 여행사 등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매핫의 북쪽으로 있는 싸이리와 찰록반까오까지의 도로만 포장이 되어 있고 나머지 길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산길로 되어 있다. 일부 해변은 도로가 없어 긴꼬리배라 불리는 롱테일 보트 등을 이용해서만 접근 가능한 곳도 있다. 코따오가 첫 방문이라면 일단 싸이리에 숙소를 잡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섬 내 가장 많은 식당들이 몰려 있는 곳은 역시 매핫과 싸이리 비치이다. 전체적으로 태국 현지 식당이 귀한 코따오지만 매핫에는 저렴한 식당들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싸이리에는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다국적 레스토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시푸드를 맛보고 싶다면 해변의 레스토랑들을 공략할 것. 또한 코따오 나이트라이프의 특징은 섬의 분위기만큼이나 건강하다는 것이다. 퇴폐적인 업소는 없고 그저 모래사장에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면서 바다와 해변의 분위기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흥겨운 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싸이리다. 로터스 바를 중심으로 싸이리 비치를 따라 해변의 바들이 발달해 있다. 코따오에서 쇼핑을 할 만한 큰 시장이나 마트 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기타 생필품 등의 가격이 높은 편이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꼬따오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구입하는 것이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가는 길&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행정구역상으로는 수랏타니에 속해 있지만 코따오와 더 가까운 육지는 춤폰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방콕에서 춤폰까지의 버스와 춤폰에서 코따오까지의 선박이 포함된 조인티켓을 구입해서 이동한다. 방콕에서 춤폰까지는 약 7~8시간, 춤폰에서 코따오까지는 선박으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장 빠르게 코따오로 접근하는 방법은 방콕에서 코사무이까지 항공으로 이동 후, 코사무이에서 선박으로 코따오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코사무이 공항에서도 코따오까지 가는 선박 티켓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29/237/17_%B0%B6%B7%AF%B8%AE.jpg'/&gt; &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30/73/%B0%B6%B7%AF%B8%AE.jpg'/&gt;&lt;/p&gt;
&lt;p&gt;&lt;!--&lt;div id="gallery_top"&gt;&lt;/div&gt;--&gt;&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strong&gt;글&lt;/strong&gt; 트래블 레시피(&lt;a href='http://www.travelrecipe.co.kr/' target='_blank'&gt;http://www.travelrecipe.co.kr&lt;/a&gt;) 김정숙 여행 컨설턴트 &lt;/p&gt;
&lt;div&gt;&lt;dl&gt;&lt;dd&gt;10여 년 간 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태국관련 가이드북을 집필하고 있는 작가이다. 현재 여행컨설팅 전문여행사, 트래블레시피(www.travelrecipe.co.kr)에서 푸켓 여행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lt;/dd&gt;&lt;/dl&gt;&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trong&gt;발행일&lt;/strong&gt;&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 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f3EG88MFlb0"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19]]></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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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집안 청소 대작전 - 친환경 청소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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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1/1701391886504040.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먹는 것으로 청소한다!’ 소금이나 베이킹소다 등 생활 속 천연 재료만으로도 집안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할 수 있다. 항상 깨끗하고 상쾌한 집안을 유지하게 하는 재료의 특성과 효과를 전한다. 화학 세제보다 더 잘 닦이고, 우리 몸에 안전하고, 환경까지 생각하는 천연 세제의 매력 속으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266/01.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베이킹소다&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청소할 때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냉장고 악취는 물론이고 옷장이나 신발장의 나쁜 냄새 제거에도 효과적이며, 맨손으로 사용해도 피부가 상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알코올&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기름때를 말끔히 없애고 살균 작용도 뛰어나다. 휘발성이 높아 두 번 닦을 필요가 없고 순식간에 증발하므로 전기 제품 등 물로 닦기 어려운 소재에도 사용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탄산수&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유리나 거울은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손때나 얼룩이 남는다. 탄산수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의 살균과 청정 계면활성 효과가 물때와 얼룩을 제거하고 세균 번식을 막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구연산&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레몬이나 귤 등에 들어 있는 신맛을 내는 성분으로 세척력과 살균 효과가 있다. 물에 희석해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책상 위에 뿌려둔 뒤 닦아내면 찌든 때까지 제거해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소금&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먼지와 습기를 빨아들이는 효과가 있다. 도마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수세미로 문지른 후 물로 헹구면 소독 효과뿐 아니라 칼집이 난 도마 사이에 낀 이물질 제거도 가능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식초&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신맛을 내는 주성분인 초산은 인체에 해가 되는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기름기와 단백질을 분해하는 성질이 있어 찌든 때 제거에 그만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레몬&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살균과 표백 효과가 좋다.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은 특히 싱크대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레몬 조각으로 싱크대를 문지르면 살균 효과가 있고 퀴퀴한 냄새도 없앨 수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가족생활의 80%를 차지하는 거실, 깨끗하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87/02.jpg'/&gt;&lt;/p&gt;
&lt;p&gt;집 안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거실은 온 가족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공간에 비해 쉽게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제대로 청소하면 거실은 물론 집안 분위기도 밝게 유지할 수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거실 청소의 기본은 쓸기와 닦기.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제거한 후, 살균효과가 있는 식초를 물과 1:3으로 희석해 스프레이 통에 담아 뿌리거나 알코올을 뿌려 걸레로 닦아낸다. 마룻바닥에 얼룩이 생겼을 때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헝겊에 적셔 닦으면 좋다. 면봉에 우유를 묻혀 먼지가 쌓인 전화기나 리모컨 틈새를 닦아주면 미세 먼지와 세균이 제거되는데, 닦은 후에는 반드시 물로 한 번 더 닦아 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먼지가 좋아하는 창은 이렇게 청소하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창문&lt;/span&gt;&lt;/strong&gt; 먼지로 인해 가장 더러운 곳이 창문. 더러움이 심한 바깥부터 청소하는데, 먼저 마른 헝겊으로 흙먼지를 떨어낸다. 그 다음 유리닦이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닦은 후 마지막으로 탄산수를 묻힌 헝겊으로 닦으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블라인드&lt;/span&gt;&lt;/strong&gt; 먼지떨이로 블라인드 사이의 먼지를 대충 떨어낸 후 목장갑을 끼고 알코올을 뿌린 다음 블라인드 날개의 양면을 골고루 닦는다. 두 손 모두 알코올을 뿌린 장갑을 끼고 블라인드 줄을 훑어 내리면 줄도 쉽게 닦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창틀과 창살&lt;/span&gt;&lt;/strong&gt; 폭이 좁은 긴 솔 또는 페인트 붓으로 창틀 홈에 쌓여 있는 먼지와 쓰레기를 떨어내고 청소기로 먼지를 제거한다. 걸레에 알코올을 묻혀 2차로 닦는데 먼지가 다 제거되지 않는 경우, 알코올을 직접 뿌려 닦고 좁은 틈새는 칫솔을 이용해 닦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방충망&lt;/span&gt;&lt;/strong&gt; 방충망 바깥 면에 신문지를 대고 내부에서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먼지를 빨아들이면 그냥 먼지를 제거하는 것보다 먼지가 덜 날리면서 제거 효과도 뛰어나다. 진공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이용해도 좋고, 마른 걸레를 이용해도 먼지가 덩어리져 날리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218/03.jpg'/&gt;&lt;/p&gt;
&lt;p&gt;먼지의 온상이지만 세탁하기 어려운 카펫. 하지만 베이킹소다만 있으면 걱정 끝. 먼지를 제거한 후 베이킹소다 1/2컵에 유칼리 오일을 1~2방울 잘 섞은 후 카펫 전체에 뿌리고 1시간 정도 그대로 둔 후 청소기를 돌려 베이킹소다가 남지 않도록 빈틈없이 빨아들이면 섬유 깊숙이 침투해 있는 때를 깨끗이 없앨 수 있다. 물청소가 불가능한 현관도 베이킹소다를 뿌리고 빗자루로 쓸어내면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일생의 3분의 1을 보내는 침실, 쾌적하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96/04.jpg'/&gt;&lt;/p&gt;
&lt;p&gt;침대 매트리스에는 평균 200만~300만 마리의 집먼지 진드기, 곰팡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쾌적하고 건강한 침실 생활을 위해서는 매트리스와 침구의 청소와 관리가 필요하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루 24시간 중 우리는 평균 7~8시간 수면을 하며 침실에서 생활한다. 수면은 인체가 정상적인 생리작용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균형 있는 영양 섭취 못지않게 건강한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런 수면이 이루어지는 침실, 어떻게 하면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까. 먼저 매트리스 청소가 필요하다. 먼지를 없애고 베이킹소다를 매트 전체에 뿌린 다음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후 매트를 세워 바람에 잘 말린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건강 침구에 대한 궁금증&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Q. 건강한 수면에 적합한 베개 높이는?&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높은 베개는 건강에 해롭다는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도 있듯이 자신에게 알맞은 베개를 선택해야 건강에 이롭다. 성인에게 적합한 베개 높이는 6~8cm로 목과 허리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팔뚝 높이 정도가 적절한 베개의 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높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trong&gt;Q. 이불 속통, 어떤 것이 좋을까?&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흡수성과 통기성이 좋은 양모 이불이 좋고, 가벼운 이불을 원한다면 거위털 이불이 제격이다. 거위털 이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사계절 내내 사용 가능하다. 폭신하게 감싸는 느낌을 원한다면 명주 이불이 좋다. 명주나 목화 이불은 흡습성이 좋고 보온성과 회복력이 뛰어나 관리를 잘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67/05.jpg'/&gt;&lt;/p&gt;
&lt;p&gt;수시로 손빗자루를 이용해 매트리스의 먼지를 떨어내고, 섬유탈취제보다는 소독용 알코올을 뿌려 살 균 소독한다. 모처럼 매트리스를 청소했다면 매트리스의 위아래와 앞뒤를 바꿔 놓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용하는 면을 바꿔 주면 사용 기간이 늘어난다. 이불에도 집먼지 진드기가 가득한데 일주일 에 두세 번 햇볕에 말리고 가볍게 두들기면 대부분의 집먼지 진드기를 없앨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먹을거리를 다루는 주방, 깨끗하고 안심할 수 있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83/06.jpg'/&gt;&lt;/p&gt;
&lt;p&gt;주방은 온갖 식품을 조리하고 항상 습한 곳이기 때문에 세균이 살기에 최적의 장소다. 기름때나 물때는 생길 때마다 닦아줘야 늘 깨끗한 주방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설거지할 때마다 싱크대도 청소한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집 안에서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곳이 바로 주방. 주방은 기름때를 비롯해 식기에 낀 때,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 등 여러 가지 때가 한꺼번에 생기는 곳이다. 음식물을 다루는 곳인 만큼 특히 살균에 신경 써서 청소한다. 개수대의 음식물 쓰레기 망은 김빠진 맥주를 부어 악취를 없앤다. 스타킹에 10원짜리 동전을 몇 개 넣어 음식물 쓰레기 망에 넣어두면 음식 찌꺼기가 부패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276/07.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1.&lt;/span&gt;&lt;/strong&gt; 음식물이 눌어붙은 냄비는 물과 베이킹소다를 2:1 비율로 섞어 넣고 10~20분간 끓인 후 실온에 30분간 두었다가 헹군다. 찌든 때가 쌓이기 쉬운 손잡이 부분은 베이킹소다를 묻혀 닦는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2.&lt;/span&gt;&lt;/strong&gt; 도마 표면은 칼 흠집이 생겨 온갖 잡균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사용 후 깨끗이 씻은 다음 베이킹소다로 닦고 뜨거운 물에 헹궈 햇빛이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건조시킨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3.&lt;/span&gt;&lt;/strong&gt; 가스레인지 위는 맥주나 굵은 소금을 천에 묻혀 닦고,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마무리 한다. 베이킹소다와 식초 희석액을 뿌리고 10분 후 기름이 불면 천으로 닦는 것도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도마청소용 천연세제&lt;/span&gt;&lt;br&gt;&lt;/br&gt;
&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숯&lt;/span&gt;&lt;/strong&gt; 숯을 넣고 끓인 물을 도마에 여러 차례 붓고 햇빛에 완전히 건조시키면 칼집으로 생긴 홈까지 소독된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레몬&lt;/span&gt;&lt;/strong&gt; 도마 냄새가 심할 때는 레몬즙을 바르거나 레몬을 넣은 뜨거운 물에 1시간 정도 담갔다가 햇빛에&amp;nbsp;말린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녹차&lt;/span&gt;&lt;/strong&gt; 생선 비린내와 김치 냄새가 심할 때는 녹차 우린 뜨거운 물을 붓는다. 우려 마시고 남은 티백을&amp;nbsp;모아서 활용해도 좋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물마를 날 없는 욕실, 뽀득뽀득하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62/08.jpg'/&gt;&lt;/p&gt;
&lt;p&gt;욕실은 욕실 벽과 바닥, 세면대, 욕조, 변기 등으로 나누어 관리해주면 좋다. 또 평소 김이나 약, 과자봉지에 있는 건조제를 모아뒀다가 욕실 수납장 구석에 놓으면 습기를 제거할 수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매일 물을 사용하는 욕실은 집 안에서 가장 습한 곳으로 조금만 방심해도 곰팡이 꽃이 피어난다. 평상시 수시로 청소하고 남은 물기를 닦아내는 것을 생활화하면 항상 깨끗한 욕실을 유지할 수 있다. 벽에 생긴 곰팡이는 알코올을 바른 헝겊 봉으로 두들겨 닦고, 변기의 찌든 때는 물과 구연산을 3:1로 섞어 만든 구연산수로 더러운 부분을 닦는다. 오래돼서 잘 닦이지 않는 거울은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1:1로 섞어 닦는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48/09.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1.&lt;/span&gt;&lt;/strong&gt; 타일 이음매 부분에 생기기 쉬운 붉은색이나 갈색 물때는 비교적 간단히 없앨 수 있으므로 눈에 보이는 즉시 솔이나 칫솔로 닦는다. 닦은 후에는 물로 헹군 후, 유리닦이로 물기를 제거한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2.&lt;/span&gt;&lt;/strong&gt; 세면대에는 물때와 비누 찌꺼기 등 묵은 때의 주범들로 가득하다. 사용 후 바로 물로 씻어내는 습관을 들이고, 수도꼭지는 구연산을 사용하면 곰팡이균과 녹까지 제거할 수 있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3.&lt;/span&gt;&lt;/strong&gt; 욕실 용품은 겉으로 보기에 깨끗해도 조금이라도 미끈거리면 잡균이 번식하고 있는 것. 일주일에 한 번은 살균 효과가 있는 식초 물을 묻힌 헝겊으로 닦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베이킹소다로 입욕제 만들기&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4/292/7.jpg'/&gt;&lt;/p&gt;
&lt;p&gt;재료 베이킹소다, 소금 각 2작은술, 에센셜 오일 최대 4방울 작은 접시에 베이킹소다와 소금 그리고 에센셜 오일을 넣고 잘 섞는다. 이것을 욕조에 넣고 물에 풀면 끝! 베이킹소다와 소금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에센셜 오일의 향이 욕실을 부드럽게 감싸 기분 좋게 목욕할 수 있게 한다. 목욕하고 남은 물은 청소에 재활용하면 유용하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제공&lt;/strong&gt; 땅 위에 심은 별&amp;nbsp;&lt;a href='http://kr.univera.com/' target='_blank'&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17/187/a.jpg'/&gt;&lt;/a&gt;&lt;/dt&gt;&lt;dd&gt;&amp;lt;땅 위에 심은 별&amp;gt;은 자연의 좋은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삶, 생활이 흥미롭고 쉬워지는 실용을 엮어 전하는 세계적인 천연물 웰니스&amp;nbsp;기업 유니베라의 건강하고 행복한 매거진입니다. &lt;/dd&gt;&lt;/dl&gt;&lt;p&gt;&lt;/p&gt;
&lt;dl&gt;&lt;dt&gt;&lt;strong&gt;기획, 편집&lt;/strong&gt; ㈜디자인하우스 DES사업부&amp;nbsp;&lt;a href='http://www.design.co.kr/' target='_blank'&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17/290/b.jpg'/&gt;&lt;/a&gt;&lt;/dt&gt;&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 2012.02.03&lt;/span&gt;&lt;/p&gt;
&lt;/d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108'&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37/2108.jpg'/&gt;&lt;strong&gt;친환경 살림비법&lt;/strong&gt;&lt;/a&gt;&lt;span&gt;알고나면 바꾸기 쉽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522'&gt;주거/인테리어&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072'&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37/2072.jpg'/&gt;&lt;strong&gt;구석구석 친환경 체크리스트&lt;/strong&gt;&lt;/a&gt;&lt;span&gt;바빠도, 돈 없이도 따라할 수 있는 친환경 살림법&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522'&gt;주거/인테리어&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1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37/1815.jpg'/&gt;&lt;strong&gt;만들어 쓰는 친환경세제&lt;/strong&gt;&lt;/a&gt;&lt;span&gt;환경도 살리고 비용도 절감한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522'&gt;주거/인테리어&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yY8G1FTRvmg"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14]]></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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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북극 넙치잡이의 삶 - 배가 다니기엔 얼음이 너무 많고, 개썰매가 다니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다]]></title>
<link>http://feedproxy.google.com/~r/terzeron/navercast/~3/inkf9F1VhXo/contents.nhn</link>
<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1/142622424082751.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앙아꼬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앙아꼬끄는 잘 알고 있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이미 그 모든 꿈과 소망이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두 세계를 다 볼 수 있는 앙아꼬끄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숨겨진 비밀, 즉 ‘원하는 것을 찾는 법’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린란드의 ‘앙아꼬끄’ 전설 中)&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54/01.jpg'/&gt;&lt;/p&gt;
&lt;p&gt;빙산 아래 수심 300미터에서 넙치를 낚아 올리는 그린란드 어부들&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북극바다의 선물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탐험대와 연락이 닿았다. 북쪽으로 1,000km 지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단다. 어느 정도 기온 상승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모양이다. 얼음 슬러지와 크레바스를 뚫고 나가느라 대원들도 개들도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썰매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2차 에어드롭까지는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대원들도 그렇지만 썰매개들이 정말 많이 지쳤을 것 같다. 녀석들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넙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2차 에어드롭 때 넙치를 배불리 먹여야겠다. 부둣가로 나갔더니 마침 40대 중반의 어부가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저씨, 혹시 넙치 있어요?” “지금 낚싯줄을 걷으러 나가려는 참이오.”&lt;br&gt;&lt;/br&gt;
“같이 가도 될까요?” “타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답 한번 시원하다. 이름은 이와츠, 강인한 어깨와 팔뚝을 지닌 넙치잡이 어부였다. 올해 45살인데 벌써 세 살짜리 손자가 있단다. 그는 빙산 사이로 능숙하게 배를 몰더니 억센 팔로 낚싯줄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껴입었어도 빙산의 바다에서 평생 단련된 근육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잠시 후 기다란 낚싯줄에 1미터 간격으로 커다란 북극넙치들이 낚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낚싯줄 하나에 바늘만 700여 개라는데 이따금 홍어나 게 따위가 걸리기라도 하면 ‘에이, 잡것들’ 하며 그냥 바다에 내버린다. ‘아니 그걸 왜 버려요?’ 나는 펄쩍 뛰며 그 귀한 ‘잡것들’을 정성껏 챙겨두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와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넙치의 아가미 부분을 잘라내고 내장을 빼냈다. 지방이 풍부한 넙치는 추위를 이겨내는 데는 제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방이 많아서 보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빨리 가공해서 유통해야 한다. 이렇게 잡은 넙치의 가격은 1kg당 14kr(약 2,800원)정도. 어부들이 내는 세금은 수입의 25%에 육박하지만 고기가 풍부한 일루리사트에는 그래도 ‘먹고 사는 정도’를 넘어 ‘부자’ 어부들이 꽤 많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67/02.jpg'/&gt;&lt;p&gt;넙치 낚싯줄에 걸린 60cm 크기의 대구&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07/03.jpg'/&gt;&lt;p&gt;넙치잡이 배 주변에 몰려든 갈매기 떼&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멀리 빙산 위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 떼가 비린내를 맡고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와츠가 던져주는 넙치 내장 덕분에 갈매기들은 오늘 포식을 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몰려든 갈매기 떼들로 인해 잔잔하던 바다가 시끌벅적해졌다.&lt;/p&gt;
&lt;p&gt;&lt;br&gt;&lt;/br&gt;
“오늘은 빙산이 별로 안 보이네요.” “더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참 좋겠구먼.”&lt;/p&gt;
&lt;p&gt;&lt;br&gt;&lt;/br&gt;
빙산들이 점령하고 있던 자리를 지금은 고기잡이 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와츠는 이웃 어부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당최 쉴 틈이 없다. 일루리사트 주민들은 거의 다 어부들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새우를 잡아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흥청망청 돈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망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 어선을 앞세운 기업 형 새우잡이에 밀려 다들 소규모 넙치잡이로 살아가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깊은 북극의 바다 밑에서 넙치들이 계속해서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다. 녀석들이 바다에서 올라와 일루리사트 주민들의 생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와츠는 지금 바다에서 냉장고와 TV, 자동차, 기름, 옷, 신발…… 모든 것을 끌어 올리고 있는 셈이다. 오늘 하루 4시간가량 걷어 올린 넙치가 300~400kg이니까 한국 돈으로 80~100만 원쯤 될 것이다. 작은 어선을 가진 어부지만 그래도 참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 저녁 나는 숙소에서 넙치 튀김과 대구매운탕, 조림을 요리했다. 이렇게 크고 신선한 자연산 물고기를 회로 먹지 않고 튀김이나 조림으로 해먹을 수 있다니! 그린란드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30/04.jpg'/&gt;&lt;/p&gt;
&lt;p&gt;세 명의 어부들이 빙산을 헤치며 생계의 원천인 넙치를 걷어 올리고 있다.&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하나의 항구, 두 개의 어판장&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이와츠와 함께 항구로 돌아오자 때마침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탐험대의 현지 파트너로 통역을 해주며 물심양면으로 우릴 도와준 스물한 살 청년 아까룽누아끄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침 잘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거든요. 내일이면 나는 누크로 떠납니다.”&lt;/p&gt;
&lt;p&gt;&lt;br&gt;&lt;/br&gt;
아까룽누아끄가 말했다. “떠난다고? 왜?” “누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로열 그린란드에서 일할 겁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로열 그린란드는 덴마크 기업으로 그린란드 전역에 걸쳐 수산물 판매와 가공, 유통 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회사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있어 로열 그린란드라는 대기업에 고용된다는 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까룽누아끄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외삼촌은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게 싫대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곳 어부들 대부분은 로열 그린란드를 못마땅해 한다. 자기들을 착취하는 덴마크 식민지기업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덮은 눈만큼 순박한 원주민들은 초기 덴마크 이주민들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이주민들은 정복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돈이 덴마크어와 덴마크 문화와 결부되어 왔다.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되는 자리를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선 가공 공장이나 실업자 수당을 기다리는 줄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1979년,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치지역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덴마크의 재정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근본적인 갈등 요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23/05.jpg'/&gt;&lt;p&gt;넙치잡이 미끼를 손질하는 어부&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82/06.jpg'/&gt;&lt;p&gt;로열그린란드. 덴마크 자본의 수산물 유통회사&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이러한 역사, 문화적인 배경 위에서 최근 일루리사트에는 그린란드 순수 자본으로 ‘할리부트 그린란드’라는 회사가 세워졌다. 항구를 배경으로 두 회사가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 모습은 꽤 상징적이다. 빙산 사이로 배를 몰고 나가 할리부트(북극넙치)를 잡는 어부들은 이제 양쪽 회사를 번갈아보며 자신의 수확물을 어디로 가져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회사 모두 공판장과 가공 공장을 모두 갖추고 있어 그 자리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가공 처리되어 일본과 유럽 등지로 실려 간다. 갈수록 할리부트 그린란드 쪽으로 납품하는 어부들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덴마크 기업이 받는 타격도 그에 비례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방법&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gt;&lt;/p&gt;
&lt;p&gt;“잘 가, 누크에 가서 열심히 해. 꼭 성공할 거야.” “고마워요. 탐험대를 위해서 기도할게요.”&lt;/p&gt;
&lt;p&gt;&lt;br&gt;&lt;/br&gt;
나는 아까룽누아끄와 헤어지면서 힘차게 악수를 했다. 이방인인 주제에 이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까지 하는구나,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까룽누아끄를 보내고 다시 이와츠를 찾았다. 그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커피를 받아들고 곁에 앉았다. (옆에 싱싱한 횟감을 가득 쌓아놓고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와츠가 손을 들어 언덕 위를 가리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전에는 여자들이 저기 모여서 바다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곤 했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넙치를 잡을 때 어부의 아내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 손수건이나 깃발을 흔들며 위험을 알렸다는 것이다. 빙산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간혹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가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쓰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루리사트 사람들은 그렇게 가족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부의 아내들이 깃발로 ‘낙빙주의’를 알렸던 것이다. 지금은 라디오나 휴대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개썰매로 얼음낚시를 할 때는 없었던 풍경일세.” 이와츠가 말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225/07.jpg'/&gt;&lt;/p&gt;
&lt;p&gt;거대한 빙산 근처에서의 조업은 언제나 낙빙과 쓰나미의 위험을 동반한다.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세대 차이란 자연을 누리던 기억이나 날씨에 얽힌 기억으로도 구분된다. 우리 어른들이 가끔 회상에 잠겨 젊을 때 헤엄쳐서 한강을 건넜다는 둥,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썰매를 탔다는 둥 옛날 얘기를 들려주곤 하듯이 이곳 역시 얼음에 대한 기억이 세대마다 다르다. 오늘날 그린란드의 달라진 환경은 이 한 마디로 표현한 수 있다. 즉 ‘배가 다니기엔 얼음이 너무 많고, 개썰매가 다니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옛날,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은 누구나 개썰매를 끌고 얼음벌판으로 달려갔다. 얼음 위에 먼저 구멍을 뚫고 미끼를 꿴 낚싯줄을 납작한 판때기에 묶어 물속에 넣는다. 그럼 판때기는 수심 300~500미터 바닥에 닿은 뒤 해류에 쓸려 멀리 이동한다. 그렇게 4~8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낚싯줄을 걷어 올리면 대형 북극넙치들이 잡혀 올라온다. 이누이트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식으로 넙치를 잡았다. 그러나 얼음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아주 추운 겨울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할 뿐, 이제 대부분의 넙치잡이 어부들은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나는 전에 니콜라이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가 떠올라 이와츠에게 물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오르드 지역에서 잡는 넙치가 훨씬 크다면서요?” “거긴 먹을 게 더 많으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빙하와 바다가 만나는 아이스피오르드(Ice Fjord)는 내륙에서부터 땅을 훑으며 흘러온 만년빙 속에 온갖 영양분이 들어있다. 이 먹이를 찾아 바다 속 플랑크톤이 몰려오고, 플랑크톤은 새우를, 그리고 새우는 납치와 물개와 고래를 불러온다.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피오르드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들이 일루리사트의 바다를 누비며 천혜의 어장을 만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긴 넙치가 많지만 작아.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에 가야지만 1미터가 넘는 녀석들을 잡을 수 있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먹이가 가장 풍부한 아이스피오르드에서 생존경쟁을 해가며 살아남은 넙치들이 그만큼 덩치가 더 크다는 얘기였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전통적인 넙치잡이 풍경을 그려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다 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빙판이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심해의 바닥 어딘가에는 커다란 넙치들이 떼 지어 살고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어부라면 그 광활한 얼음 벌판 어디쯤에 구멍을 뚫어 낚싯줄을 내릴 것인가? 막막하고 난감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심해의 어느 한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여 넙치 떼를 낚아 올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행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현자가 있어 구멍 뚫을 위치를 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앙아꼬끄 전설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96/08.jpg'/&gt;&lt;/p&gt;
&lt;p&gt;평생을 일루리사트 바다에서 살아온 넙치잡이 어부 이와츠&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앙아꼬끄는 그린란드 전설에 등장하는 샤먼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눈’을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가르치곤 했다. 먼 옛날 일루리사트 앞바다를 지나던 앙아꼬끄는 갑자기 빙산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 쓰러졌다. 다시 깨어난 뒤 그는 함께 사냥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여기서 고기를 잡아라!’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가리킨 곳에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내려 수많은 넙치들을 낚아 올렸다. 이것이 훗날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전통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날 그린란드 어부들에게 ‘내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기후와 그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 속에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넙치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넙치를 잡았던 전통이 남아있는 한 그린란드 어부들은 얼마든지 적응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낚아 올린 북극넙치는 여전히 이들에게 생존과 건강의 원천이 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29/237/17_%B0%B6%B7%AF%B8%AE.jpg'/&gt; &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30/73/%B0%B6%B7%AF%B8%AE.jpg'/&gt;&lt;/p&gt;
&lt;p&gt;&lt;!--&lt;div id="gallery_top"&gt;&lt;/div&gt;--&gt;&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2/13/88/a.jpg'/&gt;&lt;/div&gt;
&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박대영(공연예술기획자, 문화탐험가) &lt;/dt&gt;&lt;dd&gt;2011년 그린란드 탐험대의 베이스캠프 매니저로 누크, 일루리사트, 까낙 등지를 직접 오가며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취재하고 북극권의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지난 7년간 공연기획자로서 세계 50여 나라와 도시에서 동시대의 문화를 탐험한 바 있고, 현재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lt;/dd&gt;&lt;/dl&gt;&lt;p&gt;&lt;/p&gt;
&lt;dl&gt;&lt;dt&gt;&lt;strong&gt;사진&lt;/strong&gt; 그린란드 탐험대,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lt;/dt&gt;&lt;/dl&gt;&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trong&gt;발행일&lt;/strong&gt;&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 2012.02.02&lt;/span&gt;&lt;/p&gt;
&lt;/div&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2&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49'&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25/185131158195135.jpg'/&gt;&lt;strong&gt;낮선 여름 속으로&lt;/strong&gt;&lt;/a&gt;&lt;span&gt;어제는 재이고, 오늘은 장작이다. 밝게 불타는 건 오늘 뿐이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18'&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8/152210531267017.jpg'/&gt;&lt;strong&gt;해빙기의 항구&lt;/strong&gt;&lt;/a&gt;&lt;span&gt;여행의 발견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이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27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1/1428071258988972.jpg'/&gt;&lt;strong&gt;눈 덮인 화성&lt;/strong&gt;&lt;/a&gt;&lt;span&gt;낯선 시간, 낯선 사람 그리고 낯선 생각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218'&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03/174317778712783.jpg'/&gt;&lt;strong&gt;머나먼 출발&lt;/strong&gt;&lt;/a&gt;&lt;span&gt;“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이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18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1/12/28/175644936412026.jpg'/&gt;&lt;strong&gt;개썰매 훈련&lt;/strong&gt;&lt;/a&gt;&lt;span&gt;탐험대의 고달픈 신고식&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lt;div&gt;&lt;span&gt;2/2&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119'&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1/12/21/150628138901704.jpg'/&gt;&lt;strong&gt;썰매개의 나라&lt;/strong&gt;&lt;/a&gt;&lt;span&gt;100년 전 탐험 방식 그대로&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05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1/12/14/1531321122082378.jpg'/&gt;&lt;strong&gt;탐험의 시작&lt;/strong&gt;&lt;/a&gt;&lt;span&gt;83일간 한밤의 태양 아래서 기록한 그린란드 견문록&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61'&gt;양극지방&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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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inkf9F1VhXo" height="1" width="1"/&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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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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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감마선 폭발 -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폭발 현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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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82212871002063.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2008년 3월 19일 우연히 밤하늘을 바라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평생 한 번 뿐일지 모르는 색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다. 무려 74억 년을 여행해 마침내 지구에 도달한 빛을 맨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74억 년 전이면 태양계가 존재하기도 전이다.&amp;nbsp;빛공해가 없는 외진 곳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라도 맨눈에 보이는 별은 3000개 정도다. 단 하나를 빼고는 모두 우리은하의 별들이고 그 대부분은 1500광년 안에 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사실 별이 아니고 우리은하의 이웃인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query=%EC%95%88%EB%93%9C%EB%A1%9C%EB%A9%94%EB%8B%A4%EC%9D%80%ED%95%98&amp;site=&amp;ie=utf8' target='_blank'&gt;안드로메다은하&lt;/a&gt;로 지구에서 200만 광년 떨어져 있다.&amp;nbsp;따라서 74억 광년 떨어진 천체가 맨눈에 보였다는 건 이 천체가 어마어마하게 밝았다는 뜻이다. 오늘 당장이라도 외진 곳으로 떠나 74억 년 전의 빛을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 빛은 더 이상 밤하늘에 빛나지 않는다. 2008년 밤에도 불과 40초 동안 희미한 별처럼 보였다 사라졌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35/1.jpg'/&gt;&lt;/p&gt;
&lt;p&gt;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 현상, 감마선 폭발의 구상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 현상, 감마선 폭발&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사실 이 빛의 실체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0%90%EB%A7%88%EC%84%A0+%ED%8F%AD%EB%B0%9C&amp;x=0&amp;y=0' target='_blank'&gt;감마선 폭발&lt;/a&gt;(gamma-ray burst, 줄여서 GRB) 때 발생하는 후광이다. 감마선 폭발이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현상으로 수초~수분 동안 지속된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태양이 평생 내놓는 에너지보다 크다. 태양보다 10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자체 중력을 못 이겨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8%94%EB%9E%99%ED%99%80&amp;x=0&amp;y=0' target='_blank'&gt;블랙홀&lt;/a&gt;로 붕괴할 때나 서로 쌍을 이룬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4%91%EC%84%B1%EC%9E%90%EB%B3%84&amp;x=0&amp;y=0' target='_blank'&gt;중성자별&lt;/a&gt;이 합쳐지면서 블랙홀이 될 때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폭발하는 순간 나오는 빛의 대부분이 매우 짧은 파장인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0%90%EB%A7%88%EC%84%A0&amp;x=0&amp;y=0' target='_blank'&gt;감마선&lt;/a&gt; 영역(일부는 짧은 파장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X%EC%84%A0&amp;x=0&amp;y=0' target='_blank'&gt;X선&lt;/a&gt;)이기 때문에 감마선 폭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감마선이 나온 뒤에는 X선,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E%90%EC%99%B8%EC%84%A0&amp;x=0&amp;y=0' target='_blank'&gt;자외선&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0%80%EC%8B%9C%EA%B4%91%EC%84%A0&amp;x=0&amp;y=0' target='_blank'&gt;가시광선&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0%81%EC%99%B8%EC%84%A0&amp;x=0&amp;y=0' target='_blank'&gt;적외선&lt;/a&gt; 같이 파장이 긴 빛이 뒤따르는데 이를 후광(afterglow)이라고 부른다. 후광은 감마선 폭발 직후 나타나 수 주에서 수 개월에 걸쳐 지속되는데,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분출물이 주변의 성간물질과 부딪쳤을 때 나온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건 후광 가운데 가시광선 영역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감마선 폭발 현상은 1960년대 처음 관측됐는데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2004년 11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감마선 관측 위성인 스위프트(Swift)를 쏘아 올렸다. 예상 수명 5년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도 작동하는 스위프트는 매주 두 개꼴로 감마선 폭발을 발견하며 이 분야의 관측데이터를 ‘폭발’적으로 축적시켰다. 또 스위프트와 연계된 지상의 망원경(자외선과 가시광선, 적외선 영역 관측)은 감마선 폭발의 후광을 관측했다.&lt;/p&gt;
&lt;br&gt;&lt;/br&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41/2.jpg'/&gt;&lt;/p&gt;
&lt;p&gt;2004년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쏘아 올린 감마선 관측 위성, 스위프트의 구상도.&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앞에서 언급한 감마선 폭발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GRB+080319B&amp;x=0&amp;y=0' target='_blank'&gt;GRB 080319B&lt;/a&gt;로 불린다. 이름에서 숫자는 관측된 날짜(2008년 3월 19일)이고 B는 이날 관측된 두 번째 감마선 폭발이라는 뜻이다. GRB 080319B는 후광 스펙트럼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0%81%EC%83%89%ED%8E%B8%EC%9D%B4&amp;x=0&amp;y=0' target='_blank'&gt;적색편이&lt;/a&gt;를 분석한 결과 무려 74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관측데이터를 토대로 밝기를 계산한 결과 GRB 080319B는 지금까지 관측된 모든 천체 가운데 가장 밝은 천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GRB 080319B가 우주의 극한 현상 가운데 밝기 부분에서 최고기록 보유자인 셈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37/img_00.jpg'/&gt;&lt;/p&gt;
&lt;p&gt;GRB 080318B. 74억 년 전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 지금까지 관측된 천체 가운데 가장 밝아 40초 동안&lt;br&gt;&lt;/br&gt;
맨눈으로도 보였을 정도다. 사진은 GRB 080318B의 후광으로 왼쪽은 스위프트의 X선 망원경, 오른쪽은&lt;br&gt;&lt;/br&gt;
스위프트의 가시광선/자외선 망원경으로 촬영했다.&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300/img_000.jpg'/&gt;&lt;/p&gt;
&lt;p&gt;GRB 090423. 130억 년 전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로 지금까지 관측한 천체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됐다. 사진은 적외선 망원경이 포착한 천체로 확대된 부분에서 붉은 점이 GRB 090423이 내는 후광이다. 적색편이가 크다는 뜻에서 붉은 색을 입혔다.&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130억 년 전 사건도 포착&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감마선 폭발은 밝기 뿐 아니라 시간의 기록도 갖고 있다.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7억 살로 추정된다. 빅뱅 이후 137억 년이 흘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측하는 빛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얼마나 됐고 어떤 천체에서 나왔을까.&amp;nbsp;2009년 4월 23일 역시 스위프트가 관측한 감마선 폭발(&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GRB+090423&amp;x=0&amp;y=0' target='_blank'&gt;GRB 090423&lt;/a&gt;)은 무려 약 130억 년 전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빅뱅이 일어난 뒤 6억 3000만 년이 지난 시점이다.&amp;nbsp;GRB 090423은 관측 당시만 해도 우주에서 가장 오래 전 사건으로 우주 극한 현상의 시간 종목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D%97%88%EB%B8%94%EC%9A%B0%EC%A3%BC%EB%A7%9D%EC%9B%90%EA%B2%BD&amp;x=0&amp;y=0' target='_blank'&gt;허블우주망원경&lt;/a&gt;이 131억 광년 전 은하(&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UDFy-38135539&amp;x=0&amp;y=0' target='_blank'&gt;UDFy-38135539&lt;/a&gt;로 명명)의 빛을 관측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리를 내줬다. 그 뒤 감마선 폭발과 은하에서 각각 나이가 좀 더 많은 천체가 관측됐으나 아직은 확증이 안 된 상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GRB 090423의 폭발이 일어났던 빅뱅 이후 6억 3000만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주의 크기는 오늘날의 9분의 1에 불과했고 은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명신 교수는 “감마선 폭발은 초기우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언젠가는 빅뱅 후 3억 년 쯤 뒤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을 관측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임 교수팀은 GRB 071025라는 또 다른 감마선 폭발의 후광을 관측해 분석한 결과 초기 우주에 있었던 우주먼지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GRB 071025 폭발 역시 지구에서 120억 광년 떨어진 상당히 오래된 사건이다. 임 교수는 “후광의 스펙트럼이 매끄럽지 않고 붉은색을 많이 띠고 있다”며 “이는 감마선 폭발 주변에 먼지가 많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amp;nbsp;빛이 먼지에 흡수돼 약해진 패턴을 분석한 결과 먼지의 기원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B4%88%EC%8B%A0%EC%84%B1+%ED%8F%AD%EB%B0%9C&amp;x=0&amp;y=0' target='_blank'&gt;초신성 폭발&lt;/a&gt;로 추정됐다. 태양보다 큰 별의 마지막 단계인 초신성 폭발이 초기 우주에서 이미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감마선 폭발은 우주 초기부터 전 영역에 걸쳐 관측되고 있는데 80억 년 전 부근이 피크다. 즉 우주의 진화에서 별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던 시기(50억 살 전후)에 감마선 폭발도 가장 많이 일어난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77/5.jpg'/&gt;&lt;/p&gt;
&lt;p&gt;120억 년 전 일어난 감마선 폭발 GRB 071025의 후광을 레몬산 망원경으로 찍은 영상. 왼쪽의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보이지 않지만(1) 오른쪽 근적외선에서는 희미하게 보인다(2). 서울대 임명신 교수팀은 이 관측자료를 분석해 GRB 071025의 빛이 초신성에서 비롯한 우주먼지에 가려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감마선 내는 시간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지금까지 관측된 감마선 폭발 수백 건의 감마선 지속시간을 보면 짧게는 0.01초에서 길게는 수분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지속시간 분포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흥미롭게도 쌍봉낙타의 등 같은 패턴이 나온다. 즉 0.3초 부근이 볼록한 작은 혹과 30초 부근이 볼록한 큰 혹 모양이다. 이는 감마선 폭발이 단일한 현상이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천체물리학자들은 감마선 폭발의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첫 번째가 감마선 지속 시간이 2초 미만인 ‘짧은 감마선 폭발(short GRB)’로 관측된 감마선 폭발의 30%를 차지한다. 짧은 감마선 폭발은 쌍을 이루는 중성자별이 서로 가까워져 합쳐지거나 중성자별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때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면서 감마선을 내뿜는 것으로 추정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두 번째는 ‘긴 감마선 폭발(long GRB)’로 감마선 지속 시간이 2초가 넘는 경우다. 전체 감마선 폭발의 70%가 해당된다. 긴 감마선 폭발은 질량이 태양의 100배정도인 큰 별이 중력을 못 이겨 블랙홀로 붕괴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초신성폭발을 하며(이를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7%B9%EC%B4%88%EC%8B%A0%EC%84%B1&amp;x=0&amp;y=0' target='_blank'&gt;극초신성&lt;/a&gt;(hypernova)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천체 회전축의 방향으로 감마선을 포함한 제트를 분출한다. 후광 데이터는 대부분 긴 감마선 폭발에서 얻어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이 가설이 확증된 건 아니다. 특히 짧은 감마선 폭발은 후광 데이터가 별로 없어 아직 불확실한 점이 많다. 부산대 물리학과 이창환 교수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감마선 폭발을 두 타입으로 분류하는 데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초기에는 같은 메커니즘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다른 경로를 밟아 이런 패턴이 나왔다고 설명하는 가설도 있다”고 말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72/9.jpg'/&gt;&lt;/p&gt;
&lt;p&gt;감마선 폭발의 두 가지&amp;nbsp;메커니즘.&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속속 관측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38/7.jpg'/&gt;&lt;/p&gt;
&lt;p&gt;2011년 3월 28일 관측한 감마선 폭발의 시간 별 X선 밝기 변화. 감마선 지속 시간이 길 뿐 아니라 수일에 걸쳐 강력한 X선을 내뿜었다. 이 관측을 토대로 연구자들은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을 별이 지나가다 빨려 들어갈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lt;/p&gt;
&lt;br&gt;&lt;/br&gt;
&lt;p&gt;최근에는 새로운 감마선 분출 현상도 관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프트 위성의 감마선 망원경이 2011년 3월 28일 관측한 감마선은 수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강력한 X선이 수일간 관측됐다. 이 특이한 현상을 분석한 결과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을 별이 지나가다 빨려 들어가며 감마선을 분출한 것임이 밝혀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11년 12월 1일자 ‘네이처’에 실린 감마선 분출 현상도 특이하다. 역시 스위프트 위성이 2010년 12월 25일, 즉 크리스마스 때 관측해 ‘크리스마스 감마선 폭발’로 불린 GRB 101225A(A는 이날 관측된 첫 번째 GRB라는 뜻)가 그 주인공.&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현상이 특이했던 건 감마선 분출이 무려 30분이나 지속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어지는 X선 후광은 빨리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기존의 긴 감마선 폭발 메커니즘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후광 데이터가 불충분해 이 폭발이 언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네이처’에는 이 현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는데 둘의 입장차이가 너무 커서 어리둥절할 정도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스페인 안달루시아 천체물리학 연구소 크리스티나 퇴네 박사가 주축이 된 국제 공동연구팀(서울대 임명신 교수팀도 포함됨)은 덜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중성자별이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1%B0%EC%84%B1&amp;x=0&amp;y=0' target='_blank'&gt;거성&lt;/a&gt; 옆을 지나다 나선 궤도로 접근해 결국은 합쳐지면서 블랙홀로 바뀌고 이때 감마선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열흘 뒤 초신성폭발이 이어졌다. 이 가설이 맞다면 세 번째 감마선 폭발 메커니즘이 밝혀진 셈이다. 퇴네 박사는 “크리스마스 폭발은 감마선 폭발의 유형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이 지구에서 55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고 추측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탈리아 브레라천문대 세르지오 캄파나 박사팀은 이와는 전혀 다른, 상당히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크리스마스 폭발은 지구에서 ‘불과’ 1만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내부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 이 시나리오에서도 중성자별이 등장하는데, 소행성 같은 작은 천체가 중성자별의 중력에 잡혀 끌려오다 중력의 차이(조석력)로 천체가 일그러지며 파괴된다. 그 뒤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잔해가 폭발할 때 감마선이 분출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킨 사건의 축소판인 셈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이 모델은 1960년대 감마선 폭발 현상이 처음 관측된 뒤 1973년 제안된 모델이었는데, 감마선 폭발이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게 밝혀진 뒤 잊혀 있었다. 임명신 교수는 “두 연구 그룹을 이끈 캄파나 박사와 퇴네 박사는 스승과 제자 사이”라며 “이들이 한 현상을 전혀 다른 입장에서 해석하며 대립하게 된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여러 가지 천문학의 난제를 풀기 위한 도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수명을 넘겨가며 활약한 스위프트 위성과 지상의 여러 망원경 덕분에 지난 수년 동안 감마선 폭발 연구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와 가장 먼 천체라는 기록을 세웠고 초기 우주의 먼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관측된 감마선의 거리 분포는 우주의 진화 이론을 뒷받침했다.&lt;/p&gt;
&lt;br&gt;&lt;/br&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59/8.jpg'/&gt;&lt;/p&gt;
&lt;p&gt;GRB 101225A에 대한 2가지 해석.&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그럼에도 새로 알게 된 사실보다 규명해야 하는 현상들이 더 많아졌고, 감마선 폭발이 생각보다 복잡한 현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임명신 교수는 “감마선 폭발 현상은 우주의 별 탄생 역사나, 초기우주의 물질 상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방법으로 죽는 별들의 모습, 우주 최초의 별들의 성질 등 여러 가지 천문학 난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강석기 / 동아사이언스 전문기자&lt;/dt&gt;&lt;dd&gt;과학전문 월간지 과학동아의 기자. 해가 지날수록 과학기사 쓰기가 힘들어지는 중년에 길목에 서 있다. &lt;/dd&gt;&lt;/dl&gt;&lt;p&gt;&lt;/p&gt;
&lt;p&gt;&lt;strong&gt;자료제공&lt;/strong&gt; 과학동아&lt;a href='http://science.dongascience.com/'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8/24/136/%B0%FA%C7%D0%B5%BF%BE%C6.jpg'/&gt;&lt;/a&gt;&lt;/p&gt;
&lt;p&gt;&lt;strong&gt;사진&lt;/strong&gt; NASA, 서울대&lt;/p&gt;
&lt;/div&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발행일&amp;nbsp; &lt;span&gt;2012.02.02&lt;/span&gt;&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9'&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18/189.jpg'/&gt;&lt;strong&gt;초신성 폭발&lt;/strong&gt;&lt;/a&gt;&lt;span&gt;별의 장렬한 죽음&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651'&gt;천문학&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w_0bHl4YXKc"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11]]></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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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야간통행금지 - 폴 엘뤼아르]]></title>
<link>http://feedproxy.google.com/~r/terzeron/navercast/~3/6_uH-OHMjfY/contents.nhn</link>
<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1/1042151346619705.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div&gt;&lt;div&gt;&lt;h2&gt;야간통행금지&lt;/h2&gt;&lt;h2&gt;COUVRE-FEU&lt;/h2&gt;&lt;em&gt;폴 엘뤼아르&lt;/em&gt;&lt;em&gt;Paul Eluard&lt;/em&gt;&lt;div&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archiving/btn_kor.gif'/&gt;&lt;/div&gt;
&lt;br/&gt;&lt;br/&gt;&lt;strong&gt;&lt;a href='#'&gt;&lt;/a&gt;&lt;/strong&gt;&lt;br/&gt;&lt;br/&gt;

&lt;/div&gt;
&lt;div&gt;&lt;div&gt;&lt;p&gt;&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문은&amp;nbsp;감시받고&amp;nbsp;있었는데&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우리는&amp;nbsp;갇혀&amp;nbsp;있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거리는&amp;nbsp;차단되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도시는&amp;nbsp;정복되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도시는&amp;nbsp;굶주려&amp;nbsp;있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우리는&amp;nbsp;무장&amp;nbsp;해제되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밤이&amp;nbsp;되었는데&amp;nbsp;&lt;br&gt;&lt;/br&gt;
어쩌란&amp;nbsp;말인가&amp;nbsp;우리는&amp;nbsp;서로&amp;nbsp;사랑했는데
			&lt;/p&gt;
&lt;/div&gt;
&lt;div&gt;&lt;p&gt;&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la&amp;nbsp;porte&amp;nbsp;était&amp;nbsp;gardée&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nous&amp;nbsp;étions&amp;nbsp;enfermés&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la&amp;nbsp;rue&amp;nbsp;était&amp;nbsp;barrée&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la&amp;nbsp;ville&amp;nbsp;était&amp;nbsp;matée&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elle&amp;nbsp;était&amp;nbsp;affamée&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nous&amp;nbsp;étions&amp;nbsp;désarmés&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la&amp;nbsp;nuit&amp;nbsp;était&amp;nbsp;tombée&amp;nbsp;&lt;br&gt;&lt;/br&gt;
Que&amp;nbsp;voulez-vous&amp;nbsp;nous&amp;nbsp;nous&amp;nbsp;sommes&amp;nbsp;aimés.&amp;nbsp;	
			&lt;/p&gt;
&lt;/div&gt;
&lt;/div&gt;
&lt;div&gt;&lt;em&gt;[이곳에 살기 위하여] 오생근 옮김, 민음사, 1974&lt;/em&gt;&lt;em&gt;&lt;/em&gt;&lt;div&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archiving/btn_kor.gif'/&gt;&lt;/div&gt;
&lt;br/&gt;&lt;br/&gt;&lt;strong&gt;&lt;a href='#'&gt;한글&lt;/a&gt;&lt;/strong&gt;&lt;br/&gt;&lt;br/&gt;

&lt;/div&gt;
&lt;/div&gt;
&lt;/p&gt;
&lt;div&gt;&lt;h2&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8/4/18/11.jpg'/&gt;&lt;span&gt;정끝별 시인 &lt;/span&gt;&lt;/h2&gt;&lt;p&gt;한 여자와 두 남자의, 기이한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과 사랑과 죽음을 그렸던 영화 [&lt;a href='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802' target='_blank'&gt;글루미 썬데이&lt;/a&gt;]를 보면서 나는, 시인 엘뤼아르와 그의 아내 갈라 그리고 시인이자 화가인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7%89%EC%8A%A4+%EC%97%90%EB%A5%B8%EC%8A%A4%ED%8A%B8&amp;x=0&amp;y=0' target='_blank'&gt;에른스트&lt;/a&gt;와의 짧았던 동거를 떠올렸었다. 향연 혹은 축제라는 뜻의 ‘갈라(Gala)’라는 이름을 가진 이 러시아 아가씨를 엘뤼아르는 스위스의 요양원에서 만났다. 둘 다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환자들이었고 엘뤼아르가 17세, 갈라가 19세였다. 자유분방한 데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갈라는 엘뤼아르를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시의 뮤즈였다. 그에게 시는 갈라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의 고백이자, 갈라와 나누고 싶은 사랑의 밀어였다. 그러나 갈라는, 이후 화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2%B4%EB%B0%94%EB%8F%84%EB%A5%B4+%EB%8B%AC%EB%A6%AC&amp;x=0&amp;y=0' target='_blank'&gt;달리&lt;/a&gt;에게 달려간다. 1929년 달리는 엘뤼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달리가 갈라에게 매혹되었을 즈음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엘뤼아르의 시집 [침묵하지 않아서](1925)에 수록된 “가장 어두운 눈(目) 속에서 가장 밝은 눈이 감긴다”라는 한 행의 시에 열광했던 이는 화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5%B4%EB%84%A4+%EB%A7%88%EA%B7%B8%EB%A6%AC%ED%8A%B8&amp;x=0&amp;y=0' target='_blank'&gt;마그리트&lt;/a&gt;였다. 마그리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초현실 속의 현실, 무의식 속의 의식, 환(幻) 속의 실재라는 역설의 정수를 이 한 행의 시에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다다이스트(허무주의적 예술가)이자 초현실주의자였던 엘뤼아르의 시 세계를 집약시켜 놓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후 엘뤼아르는 “눈(目)의 계단들/ 형태들의 창살을 가로질러// 영원한 계단/ 존재하지 않는 휴식(‘르네 마그리트’)이라는 시를 마그리트에게 헌정했고, 마그리트는 엘뤼아르 초상화 [백마술(La Magie blanche)]과 엘뤼아르의 시집 삽화 등으로 화답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46/img_01.jpg'/&gt;&lt;p&gt;폴 엘뤼아르&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97/img_02.jpg'/&gt;&lt;p&gt;갈라 달리&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20/img_03.jpg'/&gt;&lt;p&gt;살바도르 갈리가 달라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조각물 &lt;br&gt;&lt;/br&gt;
&amp;lt;출처: (cc) commons.wikimedia.org&amp;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B0%80%EB%9E%80+%EC%BF%A4%EB%8D%B0%EB%9D%BC' target='_blank'&gt;밀란 쿤데라&lt;/a&gt;는 엘뤼아르 사후에 그를 줄곧 서정시의 대가의 자리에 앉혀 놓곤 했다. 그러다가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서정시의 시대”라며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A%A4%ED%83%88%EB%A6%B0&amp;x=28&amp;y=18' target='_blank'&gt;스탈린&lt;/a&gt;과 엘뤼아르를 겨냥해 비난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전쟁과 폭력과 독재에 저항했던 투철한 레지스탕스였으나, 말년에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스탈린 체제에 동조했던 엘뤼아르에 대한 단죄였을 것이다. 쿤데라는 역사의 무의미와, 이데올로기의 허무와,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엘뤼아르 또한 죽기 몇 달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말하는 것인데 난 표현이 부족하고/ 시간이 모자라고 대담함이 부족하다/ 나는 꿈꾸고 내 안의 심상들을 되는대로 지껄인다/ 나는 잘못 살았고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잘못 배웠다”(‘모든 것을 말하다’)라고 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로 시작해서 무려 19연을 반복적으로 변주한 후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로 끝맺는 ‘자유’는 엘뤼아르를 세계적인 시인으로 만들어 준 대표작이다. 단순한 반복 형식에,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과 지치지 않는 저항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초고에서는 마지막 연을 ‘자유여’ 대신 사랑의 대명사 ‘갈라여’라고 썼다는 시인의 시작 메모에서도 알 수 있듯, 엘뤼아르가 갈망하는 ‘자유’의 뿌리는 ‘사랑’과 한 몸처럼 이어져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위의 행들과 동일하게 반과거 시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nous nous aimions)’라고 하지 않고, 왜 복합과거의 시제로 ‘사랑했는데(nous sommes aimés)’라고 했을까?  ‘사랑하고 있었는데’라고 끝냈다면 감시받고 갇히고 무장해제되었던 상황과 동일한 맥락을 형성해, 사랑했던 과거 사실과 상황에 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했는데’라고 썼기 때문에 사랑의 지속성이 강조되고, 이 불가능한 지금-여기의 상황과 이 불행한 상황에 저항해 진행형의 사랑으로 복원하려는 의지가 강조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인간은 서로 화합하기 위해 태어났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기에, “그대가 와서 고독은 무너졌으며/ 나는 지상의 안내자를 갖게 되어 내 갈 길을/ 알게 되었다 궤도를 이탈하리라는 것을/ 앞으로 나아갔으며 공간과 시간은 넓어졌다”(‘죽음, 사랑, 삶’)고 노래하는 시인 엘뤼아르! ‘인간’과 ‘그대’가, ‘화합’과 ‘이해’와 ‘사랑’이, 그리고 ‘안내’와 ‘이탈’과 ‘나아감’이 그에게는 모두 동의어였다. 사랑으로 인해 길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며 더불어 연대하는 것, 그것이 그가 평생을 꿈꾸며 실천했던 ‘죽음, 사랑, 삶’이었고, 그리고 ‘자유’의 본질이었다. 엘뤼아르에게 이 “지구가 오렌지처럼 푸른”(‘사랑, 시’) 까닭일 것이다.
 &lt;/p&gt;
&lt;/div&gt;
&lt;div&gt;&lt;/div&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8/4/29/so.jpg'/&gt;&lt;p&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36/jak.jpg'/&gt;&lt;/div&gt;
&lt;div&gt;&lt;p&gt;&lt;strong&gt;폴 엘뤼아르&lt;/strong&gt;&lt;span&gt;(Paul Éluard, 1895.12.14~1952.11.18)&lt;/span&gt;&lt;/p&gt;
&lt;p&gt;1895년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노동자의 거리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83%9D+%EB%93%9C%EB%8B%88' target='_blank'&gt;생-드니&lt;/a&gt;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중고등학교 시절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했고,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스위스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B%A4%EB%B3%B4%EC%8A%A4&amp;x=28&amp;y=16' target='_blank'&gt;다보스&lt;/a&gt;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독가스로 폐를 다쳐 평생의 고질이 되었다. 전후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5%99%EB%93%9C%EB%A0%88+%EB%B8%8C%EB%A5%B4%ED%86%B5&amp;x=22&amp;y=20' target='_blank'&gt;앙드레 브르통&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3%A8%EC%9D%B4+%EC%95%84%EB%9D%BC%EA%B3%B5&amp;x=1&amp;y=7' target='_blank'&gt;루이 아라공&lt;/a&gt; 등과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 Surrealisme)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스페인 내전 때 인민 전선에 참가해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전체주의에 대항했다. 주로 평화와 사랑을 갈망하는 진보적인 시들을 발표했으며 특히 불연속적인 이미지, 논리를 무시한 비유와 같은 특징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시인이 되었다. 대표 시집으로 [고뇌의 수도], [사랑, 그것은 시(詩)], [정치적 진실] 등이 있다. 정치적 시인이자 사랑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h4&gt;국내 출간 작품&lt;/h4&gt;&lt;ul&gt;&lt;li&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818'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94/01.jpg'/&gt; &lt;strong&gt;이곳에 살기 위하여&lt;/strong&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4726'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31/02.jpg'/&gt; &lt;strong&gt;사랑이랑 의미를&lt;br&gt;&lt;/br&gt;
알기에 멀리서만…&lt;/strong&gt; &lt;/a&gt;&lt;/li&gt;&lt;/ul&gt;&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query=%ED%8F%B4+%EC%97%98%EB%A4%BC%EC%95%84%EB%A5%B4+&amp;x=37&amp;y=18&amp;sm=ncc_clk&amp;fbm=1&amp;ie=utf8'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amp;nbsp; &lt;a href='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8F%B4%20%EC%97%98%EB%A4%BC%EC%95%84%EB%A5%B4&amp;frameFilterType=1&amp;frameFilterValue=6000004574' target='_blank'&gt;&lt;span&gt;다른 작품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div&gt;
&lt;/div&gt;
&lt;div&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7/28/172/j.jpg'/&gt; &lt;/div&gt;
&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query=%EC%A0%95%EB%81%9D%EB%B3%84&amp;x=0&amp;y=0&amp;sm=ncc_clk&amp;fbm=0' target='_blank'&gt;&lt;u&gt;정끝별&lt;/u&gt;&lt;/a&gt; &lt;/dt&gt;&lt;dd&gt;&lt;p&gt;1988년 &amp;lt;문학사상&amp;gt;에 시가, 1994년 &amp;lt;동아일보&amp;gt;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31067' target='_blank'&gt;자작나무 내 인생&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701' target='_blank'&gt;흰 책&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0259' target='_blank'&gt;삼천갑자 복사빛&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111402' target='_blank'&gt;와락&lt;/a&gt;], 시론•평론집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3099' target='_blank'&gt;패러디 시학&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586249' target='_blank'&gt;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8259' target='_blank'&gt;오룩의 노래&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36673' target='_blank'&gt;파이의 시학&lt;/a&gt;] 등이 있다. &lt;/p&gt;
&lt;/dd&gt;&lt;/dl&gt;&lt;/div&gt;
&lt;div&gt;&lt;span&gt;&lt;/span&gt;&lt;p&gt;&lt;span&gt;‘세계의 명시’는 민음사와 함께합니다.&lt;/span&gt;&lt;a href='http://www.minumsa.com/'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0/6/28/16/icon.gif'/&gt;&lt;/a&gt;&lt;/p&gt;
&lt;/div&gt;
&lt;p&gt;&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발행일 &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2012.02.02&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casthome_thumbnail_image/19/66.jpg'/&gt;&lt;strong&gt;살바도르 달리&lt;/strong&gt;&lt;/a&gt;&lt;span&gt;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1040'&gt;해외미술인&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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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6_uH-OHMjfY"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08]]></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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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낙죽장 - 김기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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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1/1044232039796002.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85/01.jpg'/&gt;&lt;/p&gt;
&lt;p&gt;1955. 12 . 27 ~ | 보유자 인정: 2000년 7월 22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결국은 벌겋게 단 인두를 들고 &lt;br&gt;&lt;/br&gt;
낙죽(烙竹)을 놓는 일이지&lt;br&gt;&lt;/br&gt;
한때는 산과 산을 뛰어넘는 &lt;br&gt;&lt;/br&gt;
사슴의 발자국을 남기는 줄 알았으나&lt;br&gt;&lt;/br&gt;
한때는 맑은 시냇물의 애무를 견디다 못해 &lt;br&gt;&lt;/br&gt;
그만 사정해버리는 젊은 바위가 되는 줄 알았으나&lt;br&gt;&lt;/br&gt;
결국은 한순간 숨을 멈추고&lt;br&gt;&lt;/br&gt;
마른 대나무에 낙을 놓는 일이지&lt;br&gt;&lt;/br&gt;
남을 사랑한다는 것&lt;br&gt;&lt;/br&gt;
아니 나를 사랑한다는 것&lt;br&gt;&lt;/br&gt;
남을 용서한다는 것&lt;br&gt;&lt;/br&gt;
아니 나를 용서한다는 것 모두&lt;br&gt;&lt;/br&gt;
낙죽한 새 한마리 하늘로 날려보내고&lt;br&gt;&lt;/br&gt;
물이나 한잔 마시는 일이지&lt;br&gt;&lt;/br&gt;
숯불에 벌겋게 평생을 달군&lt;br&gt;&lt;/br&gt;
날카로운 인두로&lt;br&gt;&lt;/br&gt;
아직도 지져야 할 가슴이 남아 있다면&lt;br&gt;&lt;/br&gt;
아직도 지져버려야 할 상처가 남아 있다면&lt;br&gt;&lt;/br&gt;
- [낙죽], 정호승, 계간 &amp;lt;창작과비평&amp;gt; 2004년 겨울호 &lt;/p&gt;
&lt;h5&gt;대나무에 새겨진 삶의 염원&lt;/h5&gt;&lt;p&gt;낙죽(烙竹)이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이나 이와 같은 기법으로 만든 대나무 공예품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대나무에 인두로 화문(畵紋)을 그리는 것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종이나 대나무, 가죽, 비단 등에 인두로 그리는 모든 글[書] 혹은 그림[畵]을 검누르게 지져내는 것을 낙죽(烙竹), 또는 낙필(落筆), 낙화(烙畵)라고 부른다. 낙화의 시초는 소인(燒印)으로부터 시작된다. 옛날에는 우마(牛馬)와 죄인에게 낙인을 찍어 죄인이라는 표시를 한 일이 있었는데 우마에게 표시하는 것을 소인이라 하고 죄인에게 표시하는 것을 낙인(烙印)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낙화의 시초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구명할 만한 문헌은 없다. 조산시대에 일반 생활필수품의 수요에 따라 낙인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대전회통(大典會通)]등 기타 조선시대의 직제 중에서 낙죽장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언제 어떻게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상고]에 “순조 말에 박창규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낙화를 잘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박창규가 조각과 낙죽에 능한 인물임을 알 수 있으나, 낙화와 낙죽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사람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낙죽하는 작업을 ‘낙(烙낙) 놓는다’고 하거나 ‘낙질한다’ 또는 ‘낙지진다’라고 하는데 이때 쓰이는 도구는 인두와 화로뿐이며 인두는 바느질 인두와는 형태가 다른 ㄱ자 모양이고 안으로 굽어서 인두의 몸체는 앵무새 부리처럼 두툼하게 생겼으나 끝이 뾰족하다. 인두는 두 개를 준비하여 화로에 꽂아 두고 번갈아 사용하는데, 이는 알맞은 열기(熱氣)를 계속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두가 알맞게 뜨겁도록 하는 일과 알맞게 뜨거워진 인두를 사용하는 일은 기능공의 숙련과 경험에 의하여 기술을 발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무늬의 강도, 즉 색채의 표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또, 열이 약하면 무늬의 색채가 얕아져 색조변화가 생기고 작업에 진전이 없다. 인두의 적합성 여부를 시험할 때에는 인두를 볼 근처에 가까이 대고 열기를 가늠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경험에 의하여야 이루어진다. 낙죽에서 인두를 쓰면서 농담(濃淡)을 섞어 문양, 즉 무늬나 그림의 내용을 효율성있게 나타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낙죽장은 날렵한 재질과 속력이 있어야 하고 경험과 훈련 또한 많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낙죽은 이제까지 크게 각광을 받거나 주목받는 일이 많지 않았던 죽공예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공예의 하나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아 전승되고 있다. &lt;/p&gt;
&lt;h5&gt;낙죽장 김기찬 선생&lt;/h5&gt;&lt;p&gt;김기찬 선생은 1955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복정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중농 수준 정도여서 어렸을 때 그다지 배를 곯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대부분의 농촌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농사부터 집안의 잔일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였다. 아버지는 짚으로 만드는 물건인 멍석, 둥구미, 걸망태 등과 싸리나무로 엮어 만드는 채반, 소쿠리, 삼태기 등 무엇이든지 모양이 좋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하였으며 의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마음과 외모, 체질을 닮고 아버지에게는 손재주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lt;/p&gt;
&lt;p&gt;선생은 젊었을 때부터 자수성가를 하겠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20대이던 1970년대 중반에 우연한 기회에 만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그의 사랑방을 내주고 관광기념품 용도의 그림 그리는 것을 뒷바라지해 주었다. 이때 선생도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78년 한려수도 단체 여행단에 끼어 남도 여행을 하였는데 그때 송광사에서 받았던 인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결구 그 해 가을에 다시 송광사에 왔다. 송광사 청략각 아래에 있는 여관 겸 식당을 하는 집에 하숙을 정하고 한 달이 넘게 머물렀다. 지금의 장인인 여관 주인이 큰 딸과의 혼사를 제의하여 1980년 초 결혼을 하고 송광사에 정착하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결혼 후 공부에만 전념하여 송담 이백순 선생에게 매일 1시간씩 한문을 배우고 순천의 상운 김영도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웠다. 이어 광주 무등산 관음암 스님의 권유로 광주에 있는 장진회라는 화실에서 국제 이종득 선생에게 사군자와 산수그림을 배웠다. 그때 화실에 자주 놀러 오던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021' target='_blank'&gt;박용기&lt;/a&gt; 선생을 만났다. 당시 박용기 선생은 광양에서 자신이 만든 죽패도를 담양에 가서 낙을 놓으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김기찬 선생에게 권유하였다고 한다. 이런 권유로 1983년 초에 담양에 가서 이동연 선생에게 낙죽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낙죽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6개월 후에 국비 전수장학생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드나들었는데 1985년에 이동연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막막하였다. 그럼에도 낙죽을 계속하였고 그 결과물인 작품을 전승공예대전에 한 해도 빠짐없이 출품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활동을 인정받아 이동연 선생이 작고한 지 3년 후에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87년 국양문 선생이 낙죽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후 김기찬 선생은 국양문 선생의 전수교육 조교가 되어 낙죽의 대를 잇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1988년부터 전라남도에서 추진하였던 공예인 지원 프로그램 덕분으로 광주대학교의 김종식 교수에게 3년 정도 디자인을 지도받았다. 또한, 1986년부터 3년간 전 동신대학교의 김병록 교수에게도 목공예를 지도받게 된다. 중요무형문화재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2000년에 송광사 내에 공방을 짓고 이름을 ‘금죽헌공예미술관’이라 하였다. 선생은 작품을 만들 때 판매를 염두에 둔 적은 없다고 한다. 제작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언젠가는 훌륭한 전시관을 건립하여 그곳에 평생 만들고 수집한 낙화와 낙죽을 전시하고 싶은 꿈이 있다.&lt;/p&gt;
&lt;h5&gt;주요작품&lt;/h5&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102/02.jp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심정필정 낙 붓, 大(40cm), 小(36cm)&lt;/span&gt;&lt;br&gt;&lt;/br&gt;
&lt;/strong&gt;왕대 뿌리에 심정필정을 낙죽으로 음 양감이 나도록 시문하였다. 각통과 꼭지는 대추나무로 하고 견사로 고리를 만들었다. &lt;/p&gt;
&lt;p&gt;&lt;/p&gt;
&lt;h5&gt;낙죽 작품의 쓰임새&lt;/h5&gt;&lt;p&gt;낙죽의 종류에는 낙죽, 낙화, 점반죽법이 있는데 주로 대나무에 많이 사용하며 합죽선, 도병, 진소, 죽장, 장죽, 화살대, 대나무필통, 대나무합, 선초, 침통 등의 기물에 표현된다. 나무제품에서도 낙 놓은 예를 볼 수 있는데, 윷의 X자형 지장도 그런 유형의 한 가지이다. 낙죽으로 만든 작품을 쓰임에 따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 생활용품: 참빗, 얼레빗, 비녀, 담뱃대, 실패, 차판, 버선자, 지팡이&lt;br&gt;&lt;/br&gt;
&amp;nbsp;● 문구류: 필통, 붓&lt;br&gt;&lt;/br&gt;
&amp;nbsp;● 부채류: 합죽선, 단선(둥글부채)&lt;br&gt;&lt;/br&gt;
&amp;nbsp;● 가구류: 책장, 고비&lt;br&gt;&lt;/br&gt;
&amp;nbsp;● 무기류: 죽패도, 장도, 화살통&lt;br&gt;&lt;/br&gt;
&amp;nbsp;● 의약계 용품: 선추침통&lt;br&gt;&lt;/br&gt;
&amp;nbsp;●불교 용품: 불자(拂子)&lt;/p&gt;
&lt;h5&gt;낙죽의 무늬&lt;/h5&gt;&lt;p&gt;대나무 제품에 들어가는 낙죽의 무늬는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시문된 것은 소라문, 산수문, 매화와 국화 등 사군자문, 백수백복문과 만자문 등 문자문, 십장생문, 박쥐문, 점문, 귀갑문, 연화문, 운문(雲文) 등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소라문: 평면보다 곡면에 잘 어울린다. 합죽선, 선추침통 등에 주로 쓰인다. &lt;br&gt;&lt;/br&gt;
&amp;nbsp;● 산수문: 필통이나 차판 등의 넓은 면에 활용하기가 좋다. &lt;br&gt;&lt;/br&gt;
&amp;nbsp;● 사군자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문양으로 동양화의 주요 소재이다. &lt;br&gt;&lt;/br&gt;
&amp;nbsp;● 백부백복문(百壽百福文): 대표적인 문자무늬로 무병장수와 복을 염원하는 의미이다. &lt;br&gt;&lt;/br&gt;
&amp;nbsp;● 만자문(卍字文): 불교에서 불, 보상살이나 절, 탑 등에 상징으로 쓰이는 것으로 이는 태양, 물, 신령한 빛 등을 상징하며 길상과&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 행운을 나타낸다. 낙죽에서는 각진 모양으로도 표현하지만, 구름문을 응용하여 둥글게 변형하여 복합적으로도 활용한다. &lt;br&gt;&lt;/br&gt;
&amp;nbsp;● 십장생문: 십장생(十長生)은 10가지 자연 숭배 대상으로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거북, 불로초, 사슴, 학 등 오래도록 살고&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죽지 않는다는 자연과 동식물을 가리킨다. 이들은 세속을 초월한 세계에서 불로장생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서민들의&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소박한 염원을 담고 있으며, 낙죽과도 조화가 잘 되는 소재이다. &lt;br&gt;&lt;/br&gt;
&amp;nbsp;● 박쥐문: 길상문(吉祥文)으로 목공예에서는 조각이나 금속장식에 많이 쓰인다. 낙죽으로 제일 많이 활용되는 것은 합죽선의&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속살낙이고, 그 외 실패와 버선자 등이 있다. &lt;br&gt;&lt;/br&gt;
&amp;nbsp;● 점문(點文): 인두를 세워 뾰족한 끝으로 점을 만드는 무늬이다. &lt;br&gt;&lt;/br&gt;
&amp;nbsp;● 귀갑문(龜甲文): 6각이나 8각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에 낙을 놓는다. [반야심경] 등 글자 가 많이 들어갈 경우에 사용한다. &lt;br&gt;&lt;/br&gt;
&amp;nbsp;● 연화문(蓮花文): 민화적인 그림에서 단청의 문양에까지 다양하게 쓰이며, 낙죽에서도 응용범위가 넓다. &lt;/p&gt;
&lt;h5&gt;작업도구와 제작과정 &lt;/h5&gt;&lt;p&gt;낙죽 작업에 쓰이는 도구들은 인두류가 중심이다. 낙죽 작업의 핵심 도구인 인두는 낙화용(烙畵用)과 낙죽용(烙竹用)이 있는데, 그 모양이 조금 다르다. 또한 개인에 따라 무게를 달리 하기도 한다. 그 외에 화로와 대나무 교정틀, 조각칼 및 기타 도구들이 사용된다. &lt;/p&gt;
&lt;p&gt;낙죽작업의 제작은 대나무를 고르고 베어 재료를 준비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늬를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린 이후 본격적인 낙죽 작업을 하게 된다. 낙죽 작업을 할 때에는 정좌(正坐)하여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두발은 앞쪽에서 모으는데 왼발 바닥에 낙죽할 재료를 얹고 왼손으로 잡는다. 오른손으로는 인두를 잡고 지지는데 이때 재료를 잡은 왼손은 인두의 움직임에 맞추어 적절히 이동시켜 주어야 한다.&lt;/p&gt;
&amp;nbsp;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15/03.jpg'/&gt;&lt;p&gt;붓대롱 만들기. 붓대롱에 소라문, 매화문 낙을 놓는 장면&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1/294/04.jpg'/&gt;&lt;p&gt;실패 만들기. 실패용 죽편에 송학문 낙을 놓는 장면&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1/30/05.jpg'/&gt;&lt;p&gt;필통 만들기. 낙죽한 죽편을 홈에 끼워넣는 장면&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낙죽 작업을 할 때에는 인두가 얼마나 달구어졌는가에 따라 선의 강약이 다르다. 열이 높을수록 빠른 손놀림이 요구되고, 열이 낮아지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높은 열에서는 선을 그리고, 낮은 열에서는 질감을 넣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오랜 숙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낙을 놓은 후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된다. 낙죽은 대나무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지만, 마무리는 목공예 기법에 사용하는 여러 칼(편도, 환도)과 톱, 끌 등을 활용하여 마무리 작업을 한다. 아무리 낙죽이 잘 되었어도 마무리를 잘 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므로, 낙죽을 작품화하려면 목공예 솜씨도 있어야 한다.&lt;/p&gt;
&lt;h5&gt;약력&lt;/h5&gt;&lt;div&gt;&lt;dl&gt;&lt;dt&gt;1955년&lt;/dt&gt;&lt;dd&gt;경기도 광주 중부면 출생&lt;/dd&gt;&lt;dt&gt;1982년&lt;/dt&gt;&lt;dd&gt;전라남도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2회&lt;/dd&gt;&lt;dt&gt;1983년&lt;/dt&gt;&lt;dd&gt;이동연 선생께 사사&lt;/dd&gt;&lt;dt&gt;1984년&lt;/dt&gt;&lt;dd&gt;제9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lt;/dd&gt;&lt;dt&gt;1987년&lt;/dt&gt;&lt;dd&gt;전라남도 공예품 경진대회 최우수상&lt;/dd&gt;&lt;dt&gt;1993년&lt;/dt&gt;&lt;dd&gt;전승공예대전 문화재위원장상&lt;/dd&gt;&lt;dt&gt;2000년&lt;/dt&gt;&lt;dd&gt;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기능보유자 인정&lt;/dd&gt;&lt;dt&gt;2001년&lt;/dt&gt;&lt;dd&gt;뉴욕 롱아일랜드 대학 힐우드 미술관 특별전 &amp;lt;동방의 빛&amp;gt; 참가&lt;/dd&gt;&lt;dt&gt;2001년~&lt;/dt&gt;&lt;dd&gt;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출품 및 전수교육 활동&lt;/dd&gt;&lt;dt&gt;2008년&lt;/dt&gt;&lt;dd&gt;계심헌 공예미술관 개관&lt;/dd&gt;&lt;dt&gt;2009년&lt;/dt&gt;&lt;dd&gt;프랑스 보르도시 전시 및 시연&lt;/dd&gt;&lt;dt&gt;2009년&lt;/dt&gt;&lt;dd&gt;신작발표전 ‘텅빈충만에서 빛의세계로’&lt;/dd&gt;&lt;dt&gt;2010년&lt;/dt&gt;&lt;dd&gt;한국미용박물관 개관2주년 특별기획초대전&lt;/dd&gt;&lt;/dl&gt;&lt;/div&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webtop02/2009/4/30/73/%B0%B6%B7%AF%B8%AE.jpg'/&gt;&lt;/p&gt;
&lt;p&gt;&lt;!--&lt;div id="gallery_top"&gt;&lt;/div&gt;--&gt;&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p&gt;&lt;strong&gt;글 &lt;/strong&gt;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lt;a href='http://www.chf.or.kr/'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8/8/218/56.jpg'/&gt;&lt;/a&gt; &lt;/p&gt;
&lt;dd&gt;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lt;p&gt;&amp;nbsp;&lt;/p&gt;
&lt;strong&gt;공식블로그&lt;/strong&gt; : &lt;a href='http://blog.naver.com/fpcp2010' target='_blank'&gt;http://blog.naver.com/fpcp2010&lt;/a&gt;&lt;/dd&gt;&lt;p&gt;&lt;/p&gt;
&lt;dl&gt;&lt;dt&gt;&lt;strong&gt;사진&lt;/strong&gt;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lt;/dt&gt;&lt;/dl&gt;&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trong&gt;발행일&lt;/strong&gt;&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 2012.02.03&lt;/span&gt;&lt;/p&gt;
&lt;/d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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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KV6bIGDbmHg"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07]]></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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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연엽주 - 연꽃에 귀기울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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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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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009749321489.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36/1.jpg'/&gt;&lt;/p&gt;
&lt;p&gt;약 500년 전부터 빚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엽주.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개화성’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한여름, 연꽃 피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옛 선비들의 풍류 가운데 ‘개화성(開花聲)’이란 게 있다. 한여름 새벽에 배를 타고 연지(蓮池)에 나가서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일컫는 말이다. 연꽃은 동트기 전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조그만 조각배에 몸을 싣고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 숨죽이고 귀를 세우다 보면, 어디선가 ‘퍽’하고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신비스럽기도 하고, 숨죽이며 귀를 세우면서 듣는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이 트면서 햇발이 연지에 다다르면, 그 신비스럽기만 하던 개화성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말로만 들었던 이 풍류를 경험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새롭기만 하다. 어느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연엽주를 빚기 위해 고향마을에 있는 연방죽을 찾았다. 연방죽이라고는 하지만 사방 4km나 되는 매우 큰 연지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어 수초밭이나 다름없는 폐허가 되어있었는데, 아직도 연꽃은 피고지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눈을 의식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널빤지에 함석을 대서 만든 조그만 배를 빌려 타고 방죽 안으로 들어가, 연잎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개화성이 들려왔다. ‘벅’하는 소리였다. 이윽고 꽃봉오리가 터질 것 같은 연꽃 옆으로 나아가 숨죽이길 십여 분이 지났을까. 여기 저기서 ‘벅’, ‘퍽’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생전 처음이었다. 꽃잎이 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개화성’은 참으로 멋진 풍류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자연친화적이면서도 멋과 풍류가 깃든 연엽주 빚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연엽주는 여러 가지 가향재(加香材) 가운데 특이하게 한여름에 피는 연잎(蓮葉)을 술에 넣는 가향주(佳香酒)이자 계절주이다. 연엽주가 언제부터 빚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는데, 500년 전부터 빚어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1600년대 말엽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 연엽주 빚는 법이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고, 이후의 문헌인 [산림경제]를 비롯하여 [증보 산림경제], [고사십이집],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양주방], [주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 조선 중기 이후의 여러 문헌에 술 빚는 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엽주에 대한 유래는 “조선조 무장이었던 이완 장군이 부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빚었다.”는 설과, “금주령 때 궁중의 제례용 술과 허약한 왕의 보신을 위해 신하들이 빚었다.”는 설 등 두 가지 얘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헌에 따라 술 빚는 법에서 차이가 있는데, [증보산림경제]의 기록을 보면, “찹쌀고두밥에 백곡을 섞어 버무린 다음, 연잎으로 싸서 띄운다.”고 하였으나, 후대의 문헌인 [규합총서]에는 “고두밥에 물과 가루누룩을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안칠 때, 연잎과 솔잎을 켜켜로 안치고 찬 곳에서 익힌다.”고 수록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규합총서]보다 훨씬 후대의 문헌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증보산림경제]의 술 빚는 법과 같으나, “연못 가운데 있는 연잎에 찰밥과 누룩 섞은 것을 싸서 짚으로 동여매어 나뭇가지로 고정시켜 두면, 이틀쯤 뒤에 술이 익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보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멋과 풍류가 깃든 술빚기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199/2-1.jpg'/&gt;&lt;/p&gt;
&lt;p&gt;연꽃. 옛 선비들은 연꽃이 피는 소리, 즉 ‘개화성’을 듣는 풍류를 즐기곤 했다.&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34/2-2.jpg'/&gt;&lt;/p&gt;
&lt;p&gt;연엽주 담그는 모습.&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충남 아산 지방에 전해오고 있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5%84%EC%82%B0%EC%97%B0%EC%97%BD%EC%A3%BC' target='_blank'&gt;아산 연엽주&lt;/a&gt;는 예안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에게만 그 비법이 전수되어 온 궁중의 술로 알려지고 있으며, [규합총서]와 같은 방법으로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 되어 있다. 기능보유자 최황규 여사에 따르면, “예로부터 ‘남성의 양기(陽氣)를 보(補)하고 혈관을 넓혀 혈행(血行) 개선과 함께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가용 약주로 빚어져 오는 바, 이 지방에서는 ‘명약주(名藥酒)’로 더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산 연엽주의 유래는 “과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쌀 소비가 많은 술을 못 빚게 하고자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임금께서 술을 못 드시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하들이 차(茶)보다는 도수가 높고, 여느 술보다는 도수가 낮은 약주인 연엽주를 빚어 드시게 했는데, 비서승감(秘書丞鑑)을 지낸 예안 이씨 5대조가 당시 연엽주의 양조(釀造)에 관여했던 관계로, 그 제조법이 사가에 전해져서 이후 가문의 가양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산 연엽주의 방문을 보면, 먼저 멥쌀과 찹쌀을 섞어 물에 깨끗이 씻어 불렸다가 시루에 안친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 고두밥을 짓고 익으면 퍼내서 꾸들꾸들해질 때까지 식힌다. 이어서 잘게 부순 누룩을 비롯 솔잎, 감초 등의 약재와 물을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 버무리기가 끝나면 술독에 먼저 연잎을 깔고, 그 위에 술밑과 연잎을 한 켜씩 켜켜이 안친 뒤, 안방 아랫목에서 보름 정도 익히면 완성된다. 연엽주는 “대취(大醉)하도록 마셔도 소피 한 번만 보고 나면 술이 다 깰 정도로 뒤끝이 개운하다.”는 평(評)을 얻고 있는데, 이는 ‘술을 빚는 이의 손맛과 지극한 정성이 들어가야 고유한 술맛이 살아난다’고 믿고 있는 이득선 씨의 고집 때문으로, 그의 부인 최황규 씨는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옛 양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300/3-1.jpg'/&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84/3-2.jpg'/&gt;&lt;/p&gt;
&lt;p&gt;연엽주 담그는 모습. 한여름을 피하고 서리가 내리기 직전인 늦여름이나 입추 무렵에 채취한 연잎을 이용해야 술이 시어지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한여름 열기가 가라앉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가 술빛기에 가장 좋을 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연엽주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는 옛 문헌 가운데, 가장 후기의 방문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수록된 연엽주는 이양주법(異釀酒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느 술빚기와는 달리 술독을 사용하지 않고 발효시킨다는 점에서 와송주(臥松酒)나 죽통주(竹筒酒)와 같은 이양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방문을 보면, 찹쌀로 지은 고두밥에 팔팔 끓여 식힌 물과 누룩을 혼합하여 만든 술밑을, 연못 속의 살아있는 연잎으로 싸서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발효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연엽주는 매우 까다로운 술이다. 따라서 연잎의 수분이 가장 많을 때인 한여름은 피하고, 서리가 내리기 직전인 늦여름이나 입추 무렵에 채취한 연잎을 이용하여 빚어야 술이 시어질 염려가 없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또한 연엽주를 빚을 때는 날물(生水)을 쓰지 않도록 하고, 또 한여름의 열기가 가라앉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가 술빚기에 가장 좋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여름 다 지내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면 연잎의 수분은 점점 줄어들면서 향이 좋아진다. 따라서 이때의 연잎으로 싸서 술을 빚게 되면, 연잎 자체의 향도 오묘해질 뿐 아니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 때문에 적정 발효온도가 되어, 단시간 내에 술이 익게 되며 술맛이 좋아진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누정에 올라 연지의 연꽃을 내려다보면서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기회가 되어 ‘개화성’까지 감상할 수 있는 풍류를 즐긴다면, 그 이상의 술자리는 없다 할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좋은 술에 걸맞은 좋은 술자리 문화 조성이 필요&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지난 10여년 간 각종 강연과 실기지도를 통해 연엽주에 대한 가치를 알려왔다. 최근에야 남양주시를 비롯한 김포, 대구, 상주, 무안 등지에서 연엽주와 연화주가 개발되어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연엽주와 연화주가 등장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통주의 개발과 상품화가 지역특산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과다생산과 경쟁으로 공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나 어두컴컴하고 난잡스런 분위기, 현란한 조명과 귀청을 때리는 음악소리에 묻혀 술이 술을 부르는 자리가 아닌, 시간이 흐를수록 지난 봄날에 가졌던 두견주음이나 도화주음, 창포주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마셨던 술자리가 생각날 때 연엽주와 그 음주문화의 가치는 새로워질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엽주는 특히 ‘계절성’과 ‘개화성’을 떠올릴 수 있는 풍류를 답보할 때, 애주가들로 하여금 연엽주 감상을 손꼽아 기다리게끔 하는 격조높은 명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멋과 흥이 따르는 술자리문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10/4/59/jakga.jpg'/&gt;&lt;/div&gt;
&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B0%95%EB%A1%9D%EB%8B%B4' target='_blank'&gt;&lt;span&gt;&lt;u&gt;박록담&lt;/u&gt;&lt;/span&gt;&lt;/a&gt; &lt;/dt&gt;&lt;dd&gt;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lt;/dd&gt;&lt;/dl&gt;&lt;/div&gt;
&lt;/div&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amp;nbsp; &lt;/span&gt;&lt;/strong&gt;&lt;span&gt;2012.02.02&lt;/span&gt;&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52'&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25/1802421230634584.jpg'/&gt;&lt;strong&gt;송순주&lt;/strong&gt;&lt;/a&gt;&lt;span&gt;선비들이 상비(常備)했던 반주(飯酒)&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25'&gt;음식/요리일반&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07'&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6/140026427641377.jpg'/&gt;&lt;strong&gt;도화주&lt;/strong&gt;&lt;/a&gt;&lt;span&gt;무릉도원의 신선이 되는 술&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25'&gt;음식/요리일반&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22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04/121611422555440.jpg'/&gt;&lt;strong&gt;매화주&lt;/strong&gt;&lt;/a&gt;&lt;span&gt;청아하고 기품 있는 향&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25'&gt;음식/요리일반&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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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c0GX3mZLx4Q"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7]]></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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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세이초 기념관 관장이 말하는 마쓰모토 세이초 -  “나는 데뷔가 늦어서 시간이 없어, 시간이 너무 없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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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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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023572134272790.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30년간 마쓰모토 세이초의 담당 편집자로 일하고, 현재는 세이초&amp;nbsp;기념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후지이 야스에와의 인터뷰는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관장실에서 진행되었다. 세이초 기념관 측에서는 그간의 연락을 중계해 준 야나기하라 씨가 배석했다. 올해로 여든. 당초 건강상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할 뻔한 인터뷰였다. 약속이 잡힌 후에도 직접 만나기까지 우리는 치과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불안한 기분이었다. 연로해서 의사소통이 어렵다거나 오래 인터뷰를 하기가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직접 만난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관장 후지이 야스에 씨는 예상외로 건강해 보였고, 준비해 간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하, 맞아, 그러고 보니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식으로, 애틋한 미소를 지으며. &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59/01.jpg'/&gt;&lt;/p&gt;
&lt;p&gt;세이초 기념관의 관장 후지이 야스에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당신이 쓴 [마쓰모토 세이초의 잔상](이하 [잔상])을 재미있게 읽었다. 선임 편집자가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세이초 선생의 담당 편집자가 되었다고 했는데 첫인상은 어땠나.&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다들 비슷한 인상을 가지는 것 같고, 선생 본인도 스스로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얘기하곤 했다. 나도 명함을 들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참으로 보기 드문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무뚝뚝하게 대응할 거라고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전혀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생은 희한한 분이라, 시간을 들여서 오래 지내보면 정말 맛이 우러나오는 사람이었다. 짧게 사귄 사람은 오해한 채로 끝나서 껄끄럽다거나 무섭다고 느끼겠지만. 무뚝뚝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만났고, 나 역시도 별로 애교 있는 편이 아니라서 무뚝뚝한 사람끼리 굉장히 짧게 인사하고 끝났다(웃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잔상]에 당신이 빌려준 책들을 선생이 헌책방에 팔았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집필에 도움을 주고자 자료로 모은 책을 여러 권 선생에게 빌려줬는데, 어느 날 아는 사람한테 전화가 와서, 헌책방에서 후지이 야스에라는 이름이 적힌 책을 봤다며 요즘 생활이 어렵느냐고 물었다는 내용을 읽고 한참 웃었다. 당신이 놀라서 선생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책들은 프로 헌책방 주인의 손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고.&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그 책들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입했던 귀중한, 부수가 적어서 좀처럼 입수하기 힘든 책이었다. 진짜 속상해서 화를 냈는데 그때 사과하는 선생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웃음). 정말 진심으로 난처해하는 거다. 결국 내가 한발 양보해서 이해하는 마음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는 건 역시, 작가에게 좋은 작품을 쓰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편집자로서의 내 직업을 인식하고 있었다. 내 책을 팔아버린 건 분하고 화도 났지만 용서하기로 했다(웃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 2기의 편집이 당신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특별한 감개가 있을 듯하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세이초 전집은 1기부터 3기까지 전 66권이 있는데 꽤 긴 시간을 두고 1기 2기 3기가 만들어졌다. 당시 나는 [소화사 발굴]의 취재로 바쁘게 움직일 때였는데, 느닷없이 전집을 만든다고 해서 출판국으로 자리를 옮겨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집 작업은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나는 이와나미나 중앙공론의 전집류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 가며 정성껏 만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 &lt;/strong&gt;선생은 여성의 심리묘사가 정치하고 예리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한 심리묘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세이초 선생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랄까, 그런 건 어땠나.&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글쎄. 선생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평등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확실히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 직업인으로 보았다. 겉모습이나 지위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선생은 굉장히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나는 출판사는 커도 아무 직함도 없는 평사원이었지만, 선생은 평사원인 나에게도 항상 예의를 갖추어 대해 주었다. (여성을 차별하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쨌든 덕분에 나는 일하기가 편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선생은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항상 출신 대학이 아니라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공부했는지를 묻고 그에 따라 사람을 대했다고.&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한 사람 한 사람 성실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학력이나 지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정 사람이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도쿄 대학 출신이라도 선생이 보기에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싶으면 인정사정 없었다던데.&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그랬다. 기껏 좋은 대학에 갔는데 왜 공부하지 않느냐, 졸업해서 취직하면 그걸로 끝이냐, 그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뭘 공부했냐고 물어서 프랑스 문학이라든가 독일 문학이라고 대답하면, 또 선생은 거기에 대해 지식이 있으니까 끈질기게 질문하는 거다. 결국 상대방은 선생의 날카로운 질문공세에 꼼짝 못했다. 보통은 그랬다. 문답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몰아붙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 지나치게 엄격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만큼 성실했던 거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는데 왜 이런 걸 모를까 하고 궁금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끝까지 따지는 거지, 아이처럼. 순수하게. 못살게 군다기보다 당신이 알고 싶은 마음에. 정말 아이 같았다. ‘왜? 왜?’라고 항상 묻잖아, 아이는.&lt;/p&gt;
&lt;p&gt;&lt;/p&gt;
&lt;p&gt;선생은 또 자주 첫 번째 독자나 마찬가지인 편집자들에게 원고의 감상을 물어보거나 혹은 앞으로의 작품 구상에 대해 줄줄 늘어놓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원고의 감상을 요구받은 편집자들은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편집자가 ‘(연재분) 세 장만으로 감상은 곤란한데’라고 하자, 세 장이라면 그 세 장만의 감상이 있을 것 아닌가, 라며 화를 낸 적도 있다. 앞으로의 작품 구상을 늘어놓는 경우, 일단 남에게 얘기를 하는 도중에 작품의 모습이 점점 달라지기도 하고, 빼고 더할 것이 뭔지 알게 되니까 그런 방법을 쓴 것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262/03.jpg'/&gt;&lt;/p&gt;
&lt;p&gt;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에 위치한 고쿠라성 &amp;lt;출처: Ian Ruxton at commons.wikimedia.org&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 &lt;/strong&gt;어제 아침에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D%9B%84%EC%BF%A0%EC%98%A4%EC%B9%B4' target='_blank'&gt;후쿠오카&lt;/a&gt;에서 고쿠라로 와서 기념관과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3%A0%EC%BF%A0%EB%9D%BC%EC%84%B1&amp;x=0&amp;y=0' target='_blank'&gt;고쿠라 성&lt;/a&gt;을 구경했다. 고쿠라라는 도시는 작지만 소박하고 정취가 있더라. 선생의 단편 [어느 ‘고쿠라 일기’전]을 읽었을 때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세이초 선생에게 고쿠라라는 곳이 가지는 의미가 무척 클 텐데.&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아무래도 인생의 반을 고쿠라에 살았으니까 특별한 의미가 있었겠지. 진학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도 고쿠라였고, 취직한 뒤에 학력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것도 고쿠라였다. 여러 가지 감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로서 능력의 대부분을 여기서 축적한 것도 분명하다. 선생은 역시 고쿠라가 키운 작가다. 작가로서의 영양분은 거의 여기서 배양했다고 생각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 &lt;/strong&gt;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모리 오가이 저택에도 들렀다. 얼마 전에 우연히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A%A8%EB%A6%AC+%EC%98%A4%EA%B0%80%EC%9D%B4&amp;x=28&amp;y=17' target='_blank'&gt;모리 오가이&lt;/a&gt;(森 鷗外)의 단편 시대소설 ‘산쇼다유’를 읽었는데, 그 뒷부분의 느낌이 세이초의 시대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하더라.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10509' target='_blank'&gt;사이고사쓰&lt;/a&gt;]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고쿠라가 고향인 것도 있겠지만, 그중에는 모리 오가이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정서적인 감동이 늘 같이 작용해서 고쿠라가 더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조금 전에는 통틀어서 고쿠라가 세이초를 키웠다고 말했지만, 그중에서도 모리 오가이의 존재가 대단히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에 있었던 건 1899년 6월부터 2년 10개월에 불과하다(선생이 소년이었을 때 모리 오가이는 죽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여기 고쿠라에 와서 깜짝 놀란 게 있다. (뒤쪽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다리를 오가이 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옆에 육각으로 된 오가이 문학비(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듦. 고쿠라 3부작으로 불리는 [닭], [독신], [두 친구]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가 있다. 나 같은 도쿄 사람이 생각하기에, 고쿠라는 오가이가 군의부장으로서 있었던 2년 10개월간이라는 인식밖에 없다. 오가이라고 하면, 도쿄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6%84%EC%BF%84&amp;x=0&amp;y=0' target='_blank'&gt;분쿄&lt;/a&gt;구에 있는 간초로(觀潮樓, 구 저택)라든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B%9C%EB%A7%88%EB%84%A4+%ED%98%84&amp;x=11&amp;y=18' target='_blank'&gt;시마네 현&lt;/a&gt;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3%B0%EC%99%80%EB%85%B8&amp;x=17&amp;y=15' target='_blank'&gt;쓰와노&lt;/a&gt;(생가)를 오가이의 고향으로 보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보니 오가이의 존재가 훨씬 큰 거다. 오가이가 문화유산으로 남긴 것이 나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다리 이름을 지을 때 시민들의 제안으로 오가이 교가 된 거거든. 그러니까 문필업에 종사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도 오가이라는 존재가 면면히 흐르고 있구나, 그런 게 역시 도쿄 같은 대도시하고는 전혀 다르구나 싶었다.&lt;/p&gt;
&lt;p&gt;&lt;/p&gt;
&lt;p&gt;모리 오가이라는 사람은 고쿠라에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 건 [오가이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를 어디서 처음 배웠다든가 하는 등 여러 가지가 쓰여 있는데, 그런 걸 소년 세이초는 전부 지적인 활동으로서 존경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물론 일기 같은 건 없었지만, 오가이가 가이코샤(偕行社, 일본 장교 단체 기관지)에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B9%B4%EB%A5%BC+%ED%8F%B0+%ED%81%B4%EB%9D%BC%EC%9A%B0%EC%A0%9C%EB%B9%84%EC%B8%A0&amp;x=0&amp;y=0' target='_blank'&gt;클라우제비츠&lt;/a&gt;의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73096' target='_blank'&gt;전쟁론&lt;/a&gt;]을 독일어로 강의했다, 장교들에게 독일어 원서를 강의할 정도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게 전부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오가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세이초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5%84%EC%BF%A0%ED%83%80%EA%B0%80%EC%99%80+%EC%83%81&amp;x=17&amp;y=19' target='_blank'&gt;아쿠타가와 상&lt;/a&gt;&amp;nbsp;수상작이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고 마지막이 [료조兩像, 모리 오가이](유작)다. 처음도 끝도 모리 오가이였다. 오가이를 생각하는 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선생은 오가이를, 자주 깊이 읽었다. 그런 게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타나곤 했다. 예를 들어 내가 뭔가 고민하고 있으면, 오가이의 단편 제목 하나를 들면서 ‘그 주인공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고 툭 던지실 때가 있다. 그 정도로 몸에 녹아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는 통틀어서 고쿠라가 세이초를 키웠다고 했지만, 그중의 가장 큰 기둥은 아마도 작가로서는 모리 오가이였을 거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이렇게 가까운 곳을 걸어 다녔구나 하는 그 생각만으로도 흥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같은 곳을 걸었겠지, 세이초 소년은.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작품 가운데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15945' target='_blank'&gt;짐승의 길&lt;/a&gt;], [나쁜 놈들]이나, [검은 가죽 수첩] 같은 이른바 ‘악녀 시리즈’의 경우는 통속적이라고 평가되는데, 이런 대중소설에 대해 선생이 특별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나. ‘사이고사쓰’ 같은 문학성이 높은 작품과는 결이 다른데.&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그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작가와 출판사는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 관계다. 비즈니스에는 주문이 있고. 주문이 들어와서 이번엔 이런 식의 장편을 써달라고 하면 선생은 모든 주문에 부응해서 써냈다. 그 힘이 엄청났다. 뭘 해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게 내가 느낀 세이초 상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사이고사쓰’나 [어느 ‘고쿠라 일기’전] 시대의 작품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하는 본심을 내게 흘린 적이 있다. 본인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양반인데, 무척 드문 일이었다. ‘주위가 쓰게 내버려두지 않아, 장편 추리만 주문하니까’ 하고 절실하게 말하더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만약 데뷔작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 잘 나갔다면 그 이후의 작품 경향도 바뀌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당신 생각은 어떤가.&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단편은 지금도 대단히 높이 평가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면, 단편집은 100만 부가 팔리거나 하는 그런 상품이 아니다. 문학적으로는 무척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출판사들 생각은 다르다. 단편집으로 장편 미스터리 같은 부수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게 비즈니스의 약점이라고 할까, 슬픈 일이다(웃음). 문학적인 평가는 지금도 대단하다. 하지만 단편 열 편을 모아서 책 한 권을 만들어도 한 편의 장편 미스터리 부수에 못 따라가니까. 당신들도 출판사에 있으니까 잘 알지 않나(웃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2/2/57/04.jpg'/&gt;&lt;/p&gt;
&lt;p&gt;기념관 내 '사색과 창작의 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 한국어 번역이 끝났다. 그 책에서 선생은 당시 미국과 일본의 군정 관계자를 상당히 비판했는데, 혹시 연재중이나 단행본 출간 후에 살해나 테러 위협은 없었나(웃음)? &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있었다. 본인이 워낙 당당하니까 나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아는 것만도 두 번, 심지어, 오늘 강연회에서 죽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내가 아는 게 다는 아니었겠지. [일본의 검은 안개]는 내가 담당하기 전이었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미국 쪽에선 뭔가 없었나?&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미국에서 직접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선생은 미국에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선생의 작품 중에 [북의 시인, 임화]가 있고, 또 한국에 파병되어 종전을 전북 정읍에서 맞았다. 한국에 대한 소회가 있을 듯하다. &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선생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고대사나 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고대사에 한정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이 항상 시야에 들어 있었다. ‘아시아 속의 일본’이라는 감각을 아마 일본인 중에서도 대단히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런 선생에게 한국은 중요한 나라였다. 우연찮게 징용돼서 한국에서 남쪽 전장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는데, 수송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비록 군인의 신분이었지만 한국에서 지낸 시기는 작가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군대에 있었던 시간을 1년 정도 틀리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1년 반밖에 안 있었는데 2년 반 정도 있었던 것처럼. 아마 한국에서의 체험이 굉장히 각별했던 모양이다. 워낙 아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고 한국에도 늘 시선을 돌리고 있던 사람이 군인으로라도 가게 됐으니까. 군대에서도 위생병이라 마을에 나갈 수 있었다. 마을에 나가서 뭘 했느냐 하면, 약을 사야 했는데 그것보다 동네 헌책방에 가는 걸 즐겼다(웃음). 한국에 군인으로 갔으면서 헌책방을 돌아다녔다는 것도 참 드문 경우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한국에서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00318' target='_blank'&gt;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lt;/a&gt;]을 열심히 번역해서 출판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혹자는 표지에 쓴 세이초 선생의 얼굴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그런다고 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나(웃음).&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선생님 본인은 당신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곤 했는데. 디자이너이기도 했으니까. 결국 스타성은 작품으로만 이해되면 되지 않겠나. 사실…… 표지로 쓰기엔 좀…… 무섭지(웃음).&amp;nbsp; ‘세이초 월드’ 시리즈를 만들 때는 선생의 특색을 살리면서 잘 팔릴 수 있는 장정으로 했으면 좋겠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 &lt;/strong&gt;장시간 질문에 응해 주어서 고맙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을 힘 닿는 데까지 홍보하겠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 &lt;/strong&gt;나도 이 기념관을 무척 열심히 만들었다.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왔지만, 세이초 선생만큼 박력 있는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강한 모습, 박력 있는 모습을 어떻게 전할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든 기념관이기 때문에, 한국 분들이 많이 와서 봐주면 좋겠다. 여러 가지로 직접 느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질문:&lt;/strong&gt; 당신이 방금 말한 것처럼 그런 정서나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세이초 선생을 좋아하는 건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대로 쓰는 박력, 몰입하고 전력투구하는 모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이초 월드’ 시리즈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거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후지이 야스에:&lt;/strong&gt; 고마운 얘기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 마음이 통해서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와주어서 고맙다.&lt;/p&gt;
&amp;nbsp;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10/05.jpg'/&gt;&lt;/p&gt;
&lt;p&gt;기념관 내에 복원한 세이초의 생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인터뷰를 마치고 어제 둘러본 세이초 기념관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선생이 살던 집 일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코너를 지나면서 보니 서재의 형광등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 생전에 선생이 항상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일까. 세이초는 생전에 “나는 데뷔가 늦어서 시간이 없어, 시간이 너무 없어”라는 말을 하곤 했다는데. 취재로 돌아다니는 일 외에는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글만 쓰시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도 집필 작업은 항상 서재에서만 이루어졌단다. 언젠가 미야베 미유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세이초 선생님의 하마다야마 자택 바로 옆을 전차 노선이 지나는데요. 기념관에 그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서 저렇게 전차가 가깝게 달리면 시끄럽지 않았을까 싶어서 관장인 후지이 야스에 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세이초 선생님은 새벽에 첫차가 달리면 ‘첫차가 지나가는군.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라고 하셨다네요.” 나만이 아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이 있어, 하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서 일을 시작했다. 아아 이 말이 묘하게 가슴을 친다, 내내 빛을 발하던 서재의 형광등 불빛과 함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후지이 야스에 관장*&lt;br&gt;&lt;/br&gt;
&lt;/strong&gt;193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5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문예춘추에 입사. ‘주간문춘’ 편집부, 출판국 등을 거쳐서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30년에 걸쳐 마쓰모토 세이초의 담당을 맡아 &amp;lt;쇼와사 발굴&amp;gt;, &amp;lt;마쓰모토 세이초 전집&amp;gt;등의 편집에 종사했다. 1995년에 퇴사 후, 기념관의 설립 준비에 참여하였고 1998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lt;/p&gt;
&amp;nbsp;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l&gt;&lt;dt&gt;&lt;strong&gt;인터뷰&lt;/strong&gt; 모비딕 조원식, 북스피어 김홍민, 번역자 김경남 (2011년 10월 26일) &lt;/dt&gt;&lt;dt&gt;&lt;strong&gt;정리&lt;/strong&gt; 북스피어 편집부 김경남&lt;/dt&gt;&lt;/dl&gt;&lt;/div&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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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831881713106.jpg'/&gt;&lt;strong&gt;마쓰모토 세이초&lt;/strong&gt;&lt;/a&gt;&lt;span&gt;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900771418587.jpg'/&gt;&lt;strong&gt;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궁금증&lt;/strong&gt;&lt;/a&gt;&lt;span&gt;세이초 공방설에 대한 진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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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lIA8pv26GIY"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6]]></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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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궁금증 - 세이초 공방설에 대한 진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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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2/02/120318503338030.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lt;strong&gt;&lt;span&gt;1. 세이초 공방설은 어떻게 퍼져나갔는가 혹은 진위에 대하여 &lt;/span&gt;&lt;/strong&gt;&lt;/p&gt;
&lt;div&gt;&lt;p&gt;“미스터리, 시대소설, 현대사, 고대사... 한 사람의 두뇌에서 이렇게 폭넓고 깊이 있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것은 누구라도 쉬 믿지 못할 모습이었다. 그래서 유령 작가가 따로 있다느니 집필 공방이 있다느니 하는 풍문이 나돌았으리라.” &lt;br&gt;&lt;/br&gt;
&lt;br&gt;&lt;/br&gt;
- 후지이 야스에(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관장)&lt;/p&gt;
&lt;/div&gt;
&lt;p&gt;일본 근대 문학사를 읽다보면 히라바야시 다이코(平林たい子)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다. 1905년생인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가로 출발했지만, 패전 후 보수적 반공주의자가 되었는데, 아마도 이런 정치적 입장은 당시 왕래가 매우 어렵던 시절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게 했을 것이다.&amp;nbsp;1962년 5월 18일, 그녀는 당시 남한문단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A%B9%80%EB%8F%99%EB%A6%AC' target='_blank'&gt;김동리&lt;/a&gt;와 대담을 하게 된다. 사실상 사회를 본 평론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7%AC%EC%84%9D%EA%B8%B0&amp;x=21&amp;y=15' target='_blank'&gt;여석기&lt;/a&gt;를 포함하여 삼자 형태를 띤 좌담이었는데 지금과는 다르게 해방 후 양국문단은 이렇다 할 교류가 전혀 없었던 터라, 다소 일반적인 이야기만이 오갈 수밖에 없는, 쉽게 말해 명백한 한계가 있는 좌담이었다. 따라서 지금 읽어보면 너무 소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amp;nbsp;그러나 이 좌담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잠깐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하다 여석기가 일본 작가들의 생활(경제적 기반)에 대해 묻자, 평소 순문학 작가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히라바야시가 자국의 유행 작가(대중 작가)를 대놓고 폄훼하는 그 부분이다. &lt;/p&gt;
&lt;div&gt;&lt;p&gt;글쎄요. 그런 작가는 사고라는 게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쓰고 있는데 몇 명의 비서를 채용해서 자료를 모아오게 해 가지고는 그 자료를 가지고 쓸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 같은 작가는 상당히 반미(反美)인데요. 그 이유가 자기 비서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어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료를 모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쓰모토(松本)라고 하면 인간이 아니라 ‘타이프라이터(타자기)’입니다. &lt;br&gt;&lt;/br&gt;
&lt;br&gt;&lt;/br&gt;
- 히라바야시, ‘한일 문학을 말한다’, &amp;lt;&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82%AC%EC%83%81%EA%B3%84' target='_blank'&gt;사상계&lt;/a&gt;&amp;gt;, 1962년 8월호&lt;/p&gt;
&lt;/div&gt;
&lt;p&gt;흥미롭게도 이 대담은 정작 이 대담이 행해진 한국이 아니라(당시 세이초를 아는 사람이 한국에는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녀의 말은 사실상 ‘세이초 공방설’에 대한 공식적인 제기라 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소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쓰모토 세이초가 보여준 엄청난 작업량은 그가 지하실에 여러 명이 견습 작가들을 두고 그들이 쓴 책을 세이초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다는 추측을 낳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즉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 한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정도는 상당수의 작가들도 이미 받고 있는 어시스턴트에 불과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따라서 히라바야시가 세이초를 인간이 아니라 ‘타자기’라고까지 부른 것은 소문에 기대어 그녀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적개심’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다. ‘세이초 공방설’이 불거지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편집자 후지이 야스에는 세이초의 친필 원고를 공개하여 이를 둘러싼 의혹을 불식시키기도 했다. &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168/07.jpg'/&gt;&lt;/p&gt;
&lt;p&gt;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출간한 책들의 표지들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2. 세이초의 데뷔 이후, 그가 쓴 작품의 양은 어느 정도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1957년에 세이초는 [얼굴]이라는 작품집으로 ‘일본탐정작가클럽상’(現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고, 그 이듬해 [눈의 벽]과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1462' target='_blank'&gt;점과 선&lt;/a&gt;]을 출간하여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소위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대를 연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실제 그의 작품을 일별하다면, 이게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작가생활 40년 동안 그가 발표한 작품은 약 980편(에세이 등 포함)으로, 출간한 저서만 약 750권이다(편저 포함). 원고지로는 약 240,000매이다(참고로 300페이지짜리 장편소설이 평균 1,000매 정도이니, 약 240권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만 놓고 보면, 장편만 약 100편을 남기고 있다(중단편은 약 350편). 한 작품 당 등장인물의 수를 평균 4명으로만 잡아도, 전부 해서 약 2,000명에 육박한다. 우리에게 세이초는 보통 추리소설가로서 받아들여지지만, 그가 뛰어난 논픽션작가이자 역사가 그리고 고고학자이기도 했다는 점을 잊을 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말이지 그는 ‘문호’라는 칭호에 어색하지 않는 인물이라 하겠다. 그의 살인적인 작업양은 종종 인구에 회자가 되는 것인데, 한참 전성기 때에는 연재물을 무려 10개나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신문 2개, 주간지 3개, 월간지 5개. 일반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lt;span&gt;3. 세이초는 왜 그렇게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썼을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일본에서도 그의 작업량은 일종의 수수께끼다. 즉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쓰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혹자는 세이초가 돈독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그는 인기 작가였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번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9년에 이미 누적판매부수만 1,000만 권을 넘어섰으며, 오랫동안 작가수입 랭킹 1위를 고수했다. 여기서 작가 수입 랭킹 운운한 것은 세이초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함도, 또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도 아니다. 도리어 이미 충분히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하는 힘든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는지에 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이때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소위 ‘세이초 콤플렉스’다. 이는 그의 과거에서 현재의 맹아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세이초의 경우만큼은 그런 유혹에 빠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세이초 콤플렉스’란 넓게 보면 그를 힘들게 한 생활환경, 좁게 보면 보잘 것 없는 학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는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대작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로서 아카데미와 정면으로 대결하여 종국에는 그들로부터 일정 정도의 인정을 얻어내기도 했다. 실제 그는 일본에서 학력이라는 매우 두터운 장벽을 뛰어넘은 입지전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나 지금이나 문학계는 고학력자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다. 그에 비하면, 일본의 경우는 그나마 예외가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미야베 미유키부터 고졸 학력의 소유자로 대학 따위는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정말 세이초는 ‘학력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와 같은 처지에서 열등감 내지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중에서 특히 지방 신문사를 찾아갔다가 실소를 당한 것(“신문기자가 되려면, 대학 정도는 나와야 한다”)이 아마도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261/img_02.jpg'/&gt;&lt;p&gt;소년 마쓰모토 세이초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방대한 작업의 동인을 단순히 ‘학력 콤플렉스’로 환원시키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에게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그것을 객관화시킬 줄 알았다. 예컨대, 세이초는 어느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lt;/p&gt;
&lt;div&gt;&lt;p&gt;“아사히(朝日)에 들어가자 학력에 의한 차별대우를 분명히 보게 되었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전전(戰前)의 아사히신문에는 사원 신분으로 세 계급이 있어 사원, 준사원, 임시직원으로 나뉘었다. 대체로 임시직원은 소학교나 중학교 졸업자, 준사원은 전문학교 졸업자, 사원은 대학 졸업자였던 것 같다. 준사원 이상과 임시직원은 매사 대우가 달랐는데, 예를 들어 월급날이 달랐고 강당에서 사원집회를 할 때도 임시직원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중졸의 젊은 임시직원은 비분강개했다. 이곳에서 중졸자들이 대졸자에 대해 갖는 그런 의식이 내가 그들(중학교 진학자)에게 가지고 있었던 열등감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계속해서 전문학교졸은 대졸자에게, 사립대 졸업자는 도쿄대 졸업자에게 각기 열등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소 마음이 평안해졌다.” &lt;br&gt;&lt;/br&gt;
&lt;br&gt;&lt;/br&gt;
- 마쓰모토 세이초&lt;/p&gt;
&lt;/div&gt;
&lt;p&gt;‘학력에 의한 차별’,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낳은 ‘학력 콤플렉스’가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도리어 평안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평안함이 곧바로 ‘극복’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극복’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이초는 자신은 원래 교훈적인 문장을 쓰는 것을 싫어하며, 또 스스로도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차별에 결코 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문호 세이초의 작업을 단순히 ‘학력 콤플렉스’로 환원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차라리 그것을 그 같은 열등감과 암울한 환경 속에서 얻은 어떤 낙천성과 왕성한 호기심(앎에 대한 갈구)에서 찾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4.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데뷔작은 순문학이라던데&lt;/span&gt;&lt;/strong&gt;&lt;/p&gt;
&lt;div&gt;&lt;p&gt;“이 장 제목을 ‘출발점’이라고 정한 이상 여기에는 마땅히 ‘사이고사쓰’를 넣어야겠지만 감히 그것을 제쳐 놓고 다른 작품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제 28회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씨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였습니다. 나오키 상이 아닙니다. 사회파 추리 작가라는 간판이 너무 압도적이라 이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기가 쉽지만요.”&lt;br&gt;&lt;/br&gt;
&lt;br&gt;&lt;/br&gt;
-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F%B8%EC%95%BC%EB%B2%A0+%EB%AF%B8%EC%9C%A0%ED%82%A4&amp;x=0&amp;y=0' target='_blank'&gt;미야베 미유키&lt;/a&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00318' target='_blank'&gt;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lt;/a&gt;] 中에서)&lt;/p&gt;
&lt;/div&gt;
&lt;p&gt;1950년 &amp;lt;주간 아사히&amp;gt;는 ‘백만인의 소설’이라는 문예공모를 실시한다. 바로 여기에 투고하기 위해 세이초는 느닷없이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문학에 큰 뜻을 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가계에 보탬이 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생활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해서 어렵게 쓴 소설이 바로 ‘사이고사쓰’로, 이 작품은 3등으로 입선, 이례적으로 나오키 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다. 결국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몇몇 심사위원에 눈에 들어 큰 격려를 받는다. 이때 그의 나이는 41살이었다. 그는 나오키 상 심사위원이었던 기기 다카타로로 권유로 &amp;lt;미타문학&amp;gt;에 두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해 나오키 상 후보에 오른 ‘어느 ‘고쿠라일기’ 전’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작품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5%84%EC%BF%A0%ED%83%80%EA%B0%80%EC%99%80%EC%83%81&amp;x=0&amp;y=0' target='_blank'&gt;아쿠타가와 상&lt;/a&gt; 후보로 바뀌게 되고, 놀랍게도 제28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어두운 반생을 보낸 중년의 마쓰모토가 죽고, 이후 일본국민의 사랑을 받은 추리소설의 대가 세이초가 탄생하는 순간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2/08.jpg'/&gt;&lt;/p&gt;
&lt;p&gt;세이초의 책이 소개된 신문 광고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5. 세이초는 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렸을까&lt;/span&gt;&lt;/strong&gt;&lt;/p&gt;
&lt;div&gt;&lt;p&gt;“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소위 사소설이라는 것이 내 체질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소재는 가구(假構; 허구)의 세계로 새롭게 만든다. 그쪽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나 감정이 강조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소설의 본도(本道)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적인 사소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길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사소설 같은 것을 2, 3편 썼다. 그러나 결국은 위와 같은 생각을 확인한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lt;br&gt;&lt;/br&gt;
&lt;br&gt;&lt;/br&gt;
- 마쓰모코 세이초, [반생의 기록]&lt;/p&gt;
&lt;/div&gt;
&lt;p&gt;세이초가 자신에 대해 말을 아꼈던 것은 어두운 과거를 은폐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자신보다 사회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자신(근대문학이 만든 환영이기도 한 내면)을 탐구하는 것보다 역사나 사회를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첫째, 그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작품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문학이론(텍스트론)에서는 상식이 된 지 오래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식의 연구가 여전히 대세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째, 세이초가 그토록 방대한 작업량을 소화한 것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재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우리는 보통 ‘문학자’라고 하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자료를 읽고 나름대로 이야기를 구축해갔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이초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사실 [반생의 기록]은 세이초의 어두운 이미지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작업이 전부 그 같은 이미지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이초가 자전적인 작품이 영상화되는 것을 꺼려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므로 오랫동안 세이초의 담당편집자였고 지금은 &amp;lt;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amp;gt; 관장으로 있는 후지이 야스에의 지적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녀는 [반생의 기록]에 담긴 자전적 내용을 점검하면서, 그곳에 담겨 있지 않은 그의 다른 면을 강조한다. 즉 소년처럼 호기심이 왕성하고 매우 낙천적이었던 세이초의 모습을 부각시킨다(&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6&amp;category_type=series' target='_blank'&gt;후지이 야스에 인터뷰 보기&lt;/a&gt;).&amp;nbsp;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반생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반생의 기록]은 허구인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거기에 씌어진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후지이가 제시하는 ‘낙천적이고 명랑한 세이초’는 어떻게 되는가? 그녀는 이를 ‘모순’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딱히 모순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두 가지 면 모두가 세이초라는 인간의 본모습이다. 즉 그의 낙천성은 그가 생활인으로서 겪은 어두운 인생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7%88%EC%93%B0%EB%AA%A8%ED%86%A0+%EC%84%B8%EC%9D%B4%EC%B4%88&amp;x=0&amp;y=0'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보기&lt;/span&gt;&lt;/a&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amp;nbsp; &lt;a href='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B%A7%88%EC%93%B0%EB%AA%A8%ED%86%A0+%EC%84%B8%EC%9D%B4%EC%B4%88' target='_blank'&gt;&lt;span&gt;다른 작품 보기 &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조영일&lt;/dt&gt;&lt;dd&gt;문학평론가.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amp;lt;문예중앙&amp;gt;에 ‘비평의 빈곤: 유종호와 하루키’를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988821' target='_blank'&gt;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967924' target='_blank'&gt;한국문학과 그 적들&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72870' target='_blank'&gt;세계문학의 구조&lt;/a&gt;]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8039' target='_blank'&gt;언어와 비극&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26578' target='_blank'&gt;근대문학의 종언&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924724' target='_blank'&gt;세계공화국으로&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590856' target='_blank'&gt;역사와 반복&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0645' target='_blank'&gt;네이션과 미학&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48616' target='_blank'&gt;정치를 말하다&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06787' target='_blank'&gt;문자와 국가&lt;/a&gt;] 등이 있다.&lt;/dd&gt;&lt;/dl&gt;&lt;/div&gt;
&lt;p&gt;&lt;strong&gt;자료제공 &lt;/strong&gt;북스피어&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831881713106.jpg'/&gt;&lt;strong&gt;마쓰모토 세이초&lt;/strong&gt;&lt;/a&gt;&lt;span&gt;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9221906598500.jpg'/&gt;&lt;strong&gt;세이초 기념관 관장이 말하는 마쓰모토 세이초&lt;/strong&gt;&lt;/a&gt;&lt;span&gt; “나는 데뷔가 늦어서 시간이 없어, 시간이 너무 없어” &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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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2GWmeVPtrhs"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5]]></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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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마쓰모토 세이초 -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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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03733212538884.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lt;strong&gt;&lt;span&gt;궁핍과 학력차별의 벽을 뛰어넘어, 41세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늦깎이&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1909년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query=%EA%B8%B0%ED%83%80%ED%81%90%EC%8A%88&amp;ie=utf8&amp;sm=ncc_clk&amp;qdt=0' target='_blank'&gt;기타큐슈&lt;/a&gt;의 작은 도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3%A0%EC%BF%A0%EB%9D%BC&amp;x=12&amp;y=11' target='_blank'&gt;고쿠라&lt;/a&gt;에서 태어난 마쓰모토 세이초(마츠모토 세이초, 松本清張, 1909.12.21~1992.8.4)는, 소학교만 마친 채로 가난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작은 전기회사의 급사로 들어갔다. 원래 신문기자가 꿈이었던 세이초는 궁핍한 환경에서도 책을 탐독했고, 특히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A%A8%EB%A6%AC+%EC%98%A4%EA%B0%80%EC%9D%B4&amp;x=28&amp;y=9' target='_blank'&gt;모리 오가이&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5%84%EC%BF%A0%ED%83%80%EA%B0%80%EC%99%80+%EB%A5%98%EB%85%B8%EC%8A%A4%EC%BC%80&amp;x=31&amp;y=19' target='_blank'&gt;아쿠타가와 류노스케&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8%B0%EC%BF%A0%EC%B9%98+%EA%B0%84&amp;x=18&amp;y=12' target='_blank'&gt;기쿠치 간&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7%90%EB%93%9C%EA%B1%B0+%EC%95%A8%EB%9F%B0+%ED%8F%AC&amp;x=9&amp;y=13' target='_blank'&gt;에드거 앨런 포&lt;/a&gt; 등을 사랑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아니면 신문기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좌절감을 맛본다. 이후 인쇄소의 석판공으로 기술을 닦던 중, 불온잡지를 구입한 혐의를 받고 빨갱이로 몰려서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열흘에 걸쳐 고문을 받고서야 구류 처리가 되었는데, 이 수감 체험은 19세 청년 세이초에게 잔혹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를 계기로 부친은 세이초에게 책을 못 읽게 금지시켰고, 그의 장서는 모두 불구덩이에 던져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36년 27세 때 우치다 나요와 결혼할 무렵 아사히신문사 규슈 지사가 고쿠라로 이전되어 오자, 용감하게 지사장에게 편지를 써서 채용되었다. 그 뒤로 20년 동안 이 신문사를 다니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원했던 직장에는 학력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대졸 정사원들에 비해 월급날도 하루 늦고 회사의 행사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등 심한 학력차별에 시달렸던 세월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44년 35세 때 그동안 교련에 열심히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생병으로 징집되었고, 그 이듬해 한국에서 패전을 맞았다. 하지만 세이초는 오히려 이 군대 생활에서 직장에는 없는 평등한 ‘인간 존재’를 발견하고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훗날 ‘백제의 풀’, [북의 시인, 임화] 등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집필할 때 활용되었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귀국한 뒤로 일본의 극심한 인플레 때문에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빗자루 중개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 여러 지방의 고적을 돌아보면서, 여행과 고대사 연구를 향한 강한 욕구를 조금씩 갖게 된다. 신문사의 일이 정상화되면서, 그의 아르바이트는 현상금이 걸린 포스터를 그리는 일로 다시 바뀌었다. 원래부터 미술과 디자인에 감각이 있던 세이초는 자주 입선되어 상금을 타곤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자식은 네 명으로 늘어나, 여덟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짐은 날로 커졌다. 40세가 되었지만, 세이초에게는 문학에 대한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역사는 1950년부터 극적으로 펼쳐진다. &amp;lt;주간 아사히&amp;gt;에서 ‘백만 인의 소설’을 공모했는데, 응모를 결심한 세이초는 백과사전에서 우연히 본 ‘사이고사쓰’(&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82%AC%EC%9D%B4%EA%B3%A0+%EB%8B%A4%EC%B9%B4%EB%AA%A8%EB%A6%AC' target='_blank'&gt;사이고 다카모리&lt;/a&gt;가 세운 임시정부의 지폐)에 착안해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에 걸어 다니면서 줄거리를 구상했고, 모기장 속에서 한 자 한 자 원고를 써나간 것이 그의 데뷔작 ‘사이고사쓰’였다. 이 소설은 공모전에 응모한 총 992편 중에서 3등으로 뽑혔다. 원래는 더 높은 등수였는데 같은 아사히 신문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밀려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고사쓰’는 학력차별과 싸워가며 가난 속에서 묵묵히 문학의 꿈을 키워온 세이초의 세계가 열리는 신호탄이었다.&lt;/p&gt;
&lt;br&gt;&lt;/br&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68/img_01.jpg'/&gt;&lt;p&gt;마쓰모토 세이초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늦은 만큼 일분일초도 허비하지 않고 작품을 썼던 전&lt;/span&gt;&lt;span&gt;력투구의 자세&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이때부터 세이초는 신문사 생활 외에 작품을 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고, 자신의 작품을 평소에 존경하던 작가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기기 다카타로(木々高太郎)의 추천을 받아 &amp;lt;미타문학(미타분가쿠)&amp;gt;에 실은 원고가 바로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이었다. 비록 재능은 있지만 고단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주인공 고사쿠는 세이초 자신의 초상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곧 대중적 인기를 반영하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82%98%EC%98%A4%ED%82%A4+%EC%83%81' target='_blank'&gt;나오키 상&lt;/a&gt;에 당당히 후보로 올랐지만, 곧바로 낙선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심사위원이었던 나가이 다쓰오가 “이 작품은 나오키 상이 아니라,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5%84%EC%BF%A0%ED%83%80%EA%B0%80%EC%99%80%EC%83%81' target='_blank'&gt;아쿠타가와 상&lt;/a&gt;에 더 적합하다”라고 함으로써, 급기야 아쿠타가와 상 본선에 오르고 종국에는 당선되는 행운까지 얻게 된다(대중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을 심사위원이 순문학으로 평가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서 ‘넘긴’ 것이다,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1953년 1월, 마침내 대중문학과 순문학의 경계가 무너지는 실로 파격적인 대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회사 근무와 집필을 병행하던 세이초는 점차 자신감을 얻었고, 1956년 47세에 과감하게 아사히 신문사를 퇴직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56년에는 23편, 1957년에는 33편을 쓸 정도로 창작력에 불이 붙으면서 “공부하면서 쓰고, 쓰면서 공부한다”는 각오를 실천하기 시작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이초가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55년에 발표한 ‘잠복’부터다. 원래 탐정소설 애독자였던 세이초가 “일반적인 소설처럼, 인간성이 드러나는 탐정소설을 읽고 싶다”는 평소의 바람을 직접 실현한 것이다. 이어서 단편소설집 [얼굴]로 10회 탐정작가클럽 상(現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1958년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점과 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진다. 또한 이 소설로,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다. 단순히 사건 해결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삶을 묘사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악을 그려낸 것이 독자들을 열광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언론매체에서는 ‘세이초 이전, 세이초 이후’라는 수식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새로운 문학이 탄생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이어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73223' target='_blank'&gt;제로의 초점&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5298' target='_blank'&gt;너를 노린다&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5299' target='_blank'&gt;모래그릇&lt;/a&gt;] 등을 내면서 세이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부동의 지위를 쌓는다. 특히 대중들이 세이초에게 거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은, 그가 수준 높은 작품을 ‘동시에’ ‘대량으로’ 집필하는 엄청난 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중년에 데뷔한 한을 풀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려는 사람처럼 작업에 몰두했다. 일분일초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른바 ‘교환작업’이라는 방식으로 여러 편의 작품을 동시에 썼다. 이런 초인적인 작업량 때문에 따로 스텝을 둔다는 소문까지 생길 정도였지만, 30년 동안 담당편집자를 맡았던 후지이 야스에(현재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장)는 세이초가 직접 교정을 본 수정원고를 제시하면서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왕성한 필력은 세이초의 작품수로 잘 대변된다. 작가 생활 40년 동안에 쓴 장편이 약 100편이고, 중단편 350편에다가 에세이 등까지 포함하면, 편수로는 거의 1,000편, 단행본으로는 700여 권에 이른다. 또한 이 작품들은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현재(2012년 2월)까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36편이고, TV 드라마로 나온 것이 총 436편에 달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2/2/225/02.jpg'/&gt;&lt;/p&gt;
&lt;p&gt;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전경 &amp;lt;제공: 북스피어&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논픽션까지, 시대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인간을 탐구하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소설가로서 자리를 잡자마자, 세이초가 다음으로 파고든 것은 논픽션이었다. 1961년 51세에 문제작 [일본의 검은 안개]를 발표해서 일본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다. [소설 제국은행 사건]에서 발견한 주제를 확대시켜, 미국의 점령사령부 아래 발생한 12개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파고들어, 당시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고발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사회나 조직의 불투명한 비리를 표현할 때 ‘검은 안개’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는 실제 사건들을 정력적으로 조사하면서 “자료를 가공 없이 배열하고, 그 자료들을 추리를 통해 연결하는” 독자적인 논픽션 장르와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이전까지는 금기시되었던 의혹의 사건들을 찾아내고 그 핵심에 초점을 맞추는 세이초의 추리는, 그 추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작가로서의 용감한 태도와 사명감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어서 1964년부터 7년간에 걸쳐 집필한 [쇼와사 발굴]은 그의 작품 가운데 혼신의 대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일본현대사의 유일한 군사 쿠데타인 2.26사건 등, 쇼와 시대의 일본에서 은폐되었던 사건과 정치 내막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논픽션 대작이었다. 세이초는 철저히 취재하기 위해, 당시의 산 증인을 직접 찾아내서 새로운 증언들을 확보하기도 하고, 또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자료를 집요하게 찾아냈다. “다른 사람이 쓴 재료로는 쓰고 싶지 않다”라는 대각오로 전담편집자인 후지이 야스에와 함께 이 장대한 현대사 논픽션을 7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세이초의 이런 열정적인 집필 자체가 현대사를 발굴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고 할 수 있다. 세이초는 이 [쇼와사 발굴]로 자신이 존중했던 작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8%B0%EC%BF%A0%EC%B9%98+%EA%B0%84&amp;x=0&amp;y=0' target='_blank'&gt;기쿠치 간&lt;/a&gt;(菊池寬)의 이름이 붙은 18회 기쿠치 간 상을 받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보편적인 테마로 인간을 묘사하고,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려 했던 세이초의 고독한 투쟁은 “내용은 시대를 반영하고, 그 사상의 빛을 받아 면모해 간다”라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세이초의 이런 정신은 1992년에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내내 지켜졌다. 끊임없는 자기공부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던 세이초였기 때문에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 등으로 창작 세계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오늘날 사회파 추리소설은 ‘세이초의 아이들’로 불리는 작가들의 맹활약으로 그 면모가 이어지고 있다. 세이초의 장녀를 자처하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F%B8%EC%95%BC%EB%B2%A0+%EB%AF%B8%EC%9C%A0%ED%82%A4&amp;x=19&amp;y=18' target='_blank'&gt;미야베 미유키&lt;/a&gt;를 위시하여,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AA%A8%EB%A6%AC%EB%AC%B4%EB%9D%BC+%EC%84%B8%EC%9D%B4%EC%B9%98' target='_blank'&gt;모리무라 세이치&lt;/a&gt;,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D%9E%88%EA%B0%80%EC%8B%9C%EB%85%B8+%EA%B2%8C%EC%9D%B4%EA%B3%A0&amp;x=26&amp;y=17' target='_blank'&gt;히가시노 게이고&lt;/a&gt;,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A%B8%B0%EB%A6%AC%EB%85%B8+%EB%82%98%EC%93%B0%EC%98%A4&amp;x=14&amp;y=18' target='_blank'&gt;기리노 나쓰오&lt;/a&gt;,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8B%A4%EC%B9%B4%EB%AC%B4%EB%9D%BC+%EA%B0%80%EC%98%A4%EB%A3%A8&amp;x=9&amp;y=9' target='_blank'&gt;다카무라 가오루&lt;/a&gt;&amp;nbsp;등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이들이 세이초 월드를 당당히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이초는 평생 온갖 규범을 넘어선 작가였고, 전쟁과 조직과 권력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문단과 학계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6년부터 실시한 전국 독서 여론조사(마이니치 신문 주최)에서 10년 동안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선정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국민작가의 지위를 얻었지만, 관에서 받은 훈장은 평생 동안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세이초는 인생을 바쳐 전력투구로 글을 쓴 대가의 초상으로 우리 곁에 당당하게 남아 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h2&gt;마쓰모토 세이초의 주요 작품 리스트(잡지 발표 기준)&lt;/h2&gt;&lt;ol&gt;&lt;li&gt;&lt;span&gt;no.&lt;/span&gt;&lt;span&gt;발표연도&lt;/span&gt;&lt;span&gt;제목&lt;/span&gt; &lt;/li&gt;&lt;li&gt;&lt;span&gt;1 &lt;/span&gt;&lt;span&gt;1951 &lt;/span&gt;&lt;span&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10509' target='_blank'&gt;사이고사쓰&lt;/a&gt; (西郷札)&lt;/span&gt;&lt;/li&gt;&lt;li&gt;&lt;span&gt;2 &lt;/span&gt;&lt;span&gt;1952 &lt;/span&gt;&lt;span&gt;기억 (記憶), 어느 ‘고쿠라 일기’ 전 (或る ’小倉日記’伝)&lt;/span&gt;&lt;/li&gt;&lt;li&gt;&lt;span&gt;3 &lt;/span&gt;&lt;span&gt;1953 &lt;/span&gt;&lt;span&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10509' target='_blank'&gt;국화 베개&lt;/a&gt; (菊枕)&lt;/span&gt;&lt;/li&gt;&lt;li&gt;&lt;span&gt;4 &lt;/span&gt;&lt;span&gt;1956 &lt;/span&gt;&lt;span&gt;얼굴 (顔), 목소리 (声)&lt;/span&gt;&lt;/li&gt;&lt;li&gt;&lt;span&gt;5 &lt;/span&gt;&lt;span&gt;1957 &lt;/span&gt;&lt;span&gt;무숙인별첩 (無宿人別帳), 지방신문을 사는 여자(地方紙を買う女), 일년 반만 기다려(一年半待て),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1462' target='_blank'&gt;점과 선&lt;/a&gt; (点と線), 눈의 벽 (眼の壁), 귀축(鬼畜)&lt;/span&gt;&lt;/li&gt;&lt;li&gt;&lt;span&gt;6 &lt;/span&gt;&lt;span&gt;1958 &lt;/span&gt;&lt;span&gt;아지랑이 그림 (かげろう絵図),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9641' target='_blank'&gt;검은 화집&lt;/a&gt; (黒い画集),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73223' target='_blank'&gt;제로의 초점&lt;/a&gt; (ゼロの焦点)&lt;/span&gt;&lt;/li&gt;&lt;li&gt;&lt;span&gt;7 &lt;/span&gt;&lt;span&gt;1959 &lt;/span&gt;&lt;span&gt;파도의 탑 (波の塔), 안개 깃발 (霧の旗), 검은 복음 (黒い福音), 소설 제국 은행 사건 (小説帝銀事件), 아마기 고개(天城越え)&lt;/span&gt;&lt;/li&gt;&lt;li&gt;&lt;span&gt;8 &lt;/span&gt;&lt;span&gt;1960 &lt;/span&gt;&lt;span&gt;일본의 검은 안개 (日本の黒い霧, 논픽ㄱ션), 모래 그릇 (砂の器,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B%AA%A8%EB%9E%98%EA%B7%B8%EB%A6%87&amp;x=0&amp;y=0' target='_blank'&gt;드라마&lt;/a&gt;), 구형의 황야 (球形の荒野,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A%B5%AC%ED%98%95%EC%9D%98+%ED%99%A9%EC%95%BC+&amp;x=27&amp;y=11' target='_blank'&gt;드라마&lt;/a&gt;), 나쁜 녀석들 (わるいやつら,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B%82%98%EC%81%9C+%EB%85%80%EC%84%9D%EB%93%A4&amp;x=20&amp;y=12' target='_blank'&gt;드라마&lt;/a&gt;), 역로 (駅路,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C%97%AD%EB%A1%9C+&amp;x=14&amp;y=23' target='_blank'&gt;드라마&lt;/a&gt;)&lt;/span&gt;&lt;/li&gt;&lt;li&gt;&lt;span&gt;9 &lt;/span&gt;&lt;span&gt;1961 &lt;/span&gt;&lt;span&gt;시간의 습속 (時間の習俗)&lt;/span&gt;&lt;/li&gt;&lt;li&gt;&lt;span&gt;10 &lt;/span&gt;&lt;span&gt;1962 &lt;/span&gt;&lt;span&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15945' target='_blank'&gt;짐승의 길&lt;/a&gt; (けものみち,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C%A7%90%EC%8A%B9%EC%9D%98+%EA%B8%B8+&amp;x=18&amp;y=16' target='_blank'&gt;드라마&lt;/a&gt;), 별책 검은 화집 (別冊黒い画集), 유리의 성 (ガラスの城)&lt;/span&gt;&lt;/li&gt;&lt;li&gt;&lt;span&gt;11 &lt;/span&gt;&lt;span&gt;1963 &lt;/span&gt;&lt;span&gt;신과 야수의 날 (神と野獣の日), 현대 관료론 (現代官僚論), 반생의 기록 (半生の記)&lt;/span&gt;&lt;/li&gt;&lt;li&gt;&lt;span&gt;12 &lt;/span&gt;&lt;span&gt;1964 &lt;/span&gt;&lt;span&gt;쇼와사 발굴 (昭和史発掘, 논픽션)&lt;/span&gt;&lt;/li&gt;&lt;li&gt;&lt;span&gt;13 &lt;/span&gt;&lt;span&gt;1965 &lt;/span&gt;&lt;span&gt;&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15947' target='_blank'&gt;D의 복합&lt;/a&gt; (Dの複合), 도깨비불 마을 (鬼火の町), 소설 동경 제국 대학 (小説東京帝国大学), 중앙유사(中央流沙)&lt;/span&gt;&lt;/li&gt;&lt;li&gt;&lt;span&gt;14 &lt;/span&gt;&lt;span&gt;1969 &lt;/span&gt;&lt;span&gt;코끼리의 하얀 다리 (象の白い脚), 손가락 (指), 야광의 계단 (夜光の階段,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C%95%BC%EA%B4%91%EC%9D%98+%EA%B3%84%EB%8B%A8&amp;x=0&amp;y=0' target='_blank'&gt;드라마&lt;/a&gt;)&lt;/span&gt;&lt;/li&gt;&lt;li&gt;&lt;span&gt;15 &lt;/span&gt;&lt;span&gt;1971 &lt;/span&gt;&lt;span&gt;고대 탐구 (古代探求, 역사서), 머나먼 접근 (遠い接近)&lt;/span&gt;&lt;/li&gt;&lt;li&gt;&lt;span&gt;16 &lt;/span&gt;&lt;span&gt;1972 &lt;/span&gt;&lt;span&gt;바람의 숨결 (風の息), 뜨거운 실크 (熱い絹)&lt;/span&gt;&lt;/li&gt;&lt;li&gt;&lt;span&gt;17 &lt;/span&gt;&lt;span&gt;1973 &lt;/span&gt;&lt;span&gt;불의 길 (火の路)&lt;/span&gt;&lt;/li&gt;&lt;li&gt;&lt;span&gt;18 &lt;/span&gt;&lt;span&gt;1976 &lt;/span&gt;&lt;span&gt;세이초 통사 (清張通史, 역사서), 지나간 장면 (渡された場面), 소용돌이 (渦)&lt;/span&gt;&lt;/li&gt;&lt;li&gt;&lt;span&gt;19 &lt;/span&gt;&lt;span&gt;1977 &lt;/span&gt;&lt;span&gt;현인 (眩人)&lt;/span&gt;&lt;/li&gt;&lt;li&gt;&lt;span&gt;20 &lt;/span&gt;&lt;span&gt;1978 &lt;/span&gt;&lt;span&gt;검은 가죽 수첩 (黒革の手帖,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9D%BC%EB%B3%B8%EB%93%9C%EB%9D%BC%EB%A7%88+%EA%B2%80%EC%9D%80%EA%B0%80%EC%A3%BD%EC%88%98%EC%B2%A9&amp;x=0&amp;y=0' target='_blank'&gt;드라마&lt;/a&gt;), 비범한 여자 화가 (天才画の女)&lt;/span&gt;&lt;/li&gt;&lt;li&gt;&lt;span&gt;21 &lt;/span&gt;&lt;span&gt;1979 &lt;/span&gt;&lt;span&gt;백과 흑의 혁명 (白と黒の革命), 페르세폴리스로에서 아스카까지 (ペルセポリスから飛鳥へ, 역사서)&lt;/span&gt;&lt;/li&gt;&lt;li&gt;&lt;span&gt;22 &lt;/span&gt;&lt;span&gt;1980 &lt;/span&gt;&lt;span&gt;골호의 풍경 (骨壺の風景)&lt;/span&gt;&lt;/li&gt;&lt;li&gt;&lt;span&gt;23 &lt;/span&gt;&lt;span&gt;1981 &lt;/span&gt;&lt;span&gt;다채로운 강 (彩り河)&lt;/span&gt;&lt;/li&gt;&lt;li&gt;&lt;span&gt;24 &lt;/span&gt;&lt;span&gt;1982 &lt;/span&gt;&lt;span&gt;세이초 일기 (清張日記), 의혹 (疑惑), 미주지도 (迷走地図)&lt;/span&gt;&lt;/li&gt;&lt;li&gt;&lt;span&gt;25 &lt;/span&gt;&lt;span&gt;1983 &lt;/span&gt;&lt;span&gt;성수배열 (聖獣配列)&lt;/span&gt;&lt;/li&gt;&lt;li&gt;&lt;span&gt;26 &lt;/span&gt;&lt;span&gt;1984 &lt;/span&gt;&lt;span&gt;안개 회의 (霧の会議)&lt;/span&gt;&lt;/li&gt;&lt;li&gt;&lt;span&gt;27 &lt;/span&gt;&lt;span&gt;1987 &lt;/span&gt;&lt;span&gt;까만 하늘 (黒い空)&lt;/span&gt;&lt;/li&gt;&lt;li&gt;&lt;span&gt;28 &lt;/span&gt;&lt;span&gt;1988 &lt;/span&gt;&lt;span&gt;붉은 빙하기 (赤い氷河期)&lt;/span&gt;&lt;/li&gt;&lt;li&gt;&lt;span&gt;29 &lt;/span&gt;&lt;span&gt;1990 &lt;/span&gt;&lt;span&gt;신들의 난심 (神々の乱心)&lt;/span&gt;&lt;/li&gt;&lt;li&gt;&lt;span&gt;30 &lt;/span&gt;&lt;span&gt;1992 &lt;/span&gt;&lt;span&gt;에도기담 고슈영악당 (江戸綺談 甲州霊嶽党)&lt;/span&gt;&lt;/li&gt;&lt;/ol&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7%88%EC%93%B0%EB%AA%A8%ED%86%A0+%EC%84%B8%EC%9D%B4%EC%B4%88&amp;x=0&amp;y=0'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보기&lt;/span&gt;&lt;/a&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amp;nbsp; &lt;a href='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B%A7%88%EC%93%B0%EB%AA%A8%ED%86%A0+%EC%84%B8%EC%9D%B4%EC%B4%88' target='_blank'&gt;&lt;span&gt;다른 작품 보기 &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조원식&lt;/dt&gt;&lt;dd&gt;역사비평사 기획실장으로 있다가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반해서 &lt;모비딕&gt;이라는 새로운 문학 브랜드를 만들어 '세이초 월드'를
시리즈로 기획하고 책을 내고 있다. 세이초라는 큰 산을 한국에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전력투구중이다

&lt;/dd&gt;&lt;/dl&gt;&lt;/div&gt;
&lt;p&gt;&lt;strong&gt;자료제공 &lt;/strong&gt;북스피어&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900771418587.jpg'/&gt;&lt;strong&gt;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궁금증&lt;/strong&gt;&lt;/a&gt;&lt;span&gt;세이초 공방설에 대한 진실&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519221906598500.jpg'/&gt;&lt;strong&gt;세이초 기념관 관장이 말하는 마쓰모토 세이초&lt;/strong&gt;&lt;/a&gt;&lt;span&gt; “나는 데뷔가 늦어서 시간이 없어, 시간이 너무 없어” &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842'&gt;해외문학인&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KeTuVo9j-Ko"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3]]></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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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펑크 스타일 - 기존의 질서와 균형 잡힌 미에 대한 반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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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04359990286349.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220/ic.jpg'/&gt;&lt;/p&gt;
&lt;p&gt;펑크 차림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맨 오른쪽)가 런던에서 다른 펑크 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1977).&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펑크 스타일은 원래 런던에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B9%84%EB%B9%84%EC%95%88+%EC%9B%A8%EC%8A%A4%ED%8A%B8%EC%9A%B0%EB%93%9C' target='_blank'&gt;비비안 웨스트우드&lt;/a&gt;(Vivienne Westwood)와 그의 파트너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7%90%EC%BD%A4+%EB%A7%A5%EB%9D%BC%EB%A0%8C&amp;x=0&amp;y=0' target='_blank'&gt;말콤 맥라렌&lt;/a&gt;(Malcolm McLaren)에 의해 시도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76년 노동계층이 모여 있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D%82%B9%EC%8A%A4+%EB%A1%9C%EB%93%9C' target='_blank'&gt;킹스 로드&lt;/a&gt;에 ‘Let It Rock'이라는 매장을 열고, 주로 페티쉬(fetish) 의상을 주로 팔았는데, 이는 반체제적 스타일이었다. 말콤은 펑크록 밴드인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4%B9%EC%8A%A4+%ED%94%BC%EC%8A%A4%ED%86%A8%EC%8A%A4&amp;x=0&amp;y=0' target='_blank'&gt;섹스 피스톨스&lt;/a&gt;(Sex Pistols)의 매니저였으며, 밴드의 멤버들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을 입었다. 찢어진 진즈와 티셔츠, 가죽 재킷, 헝클어진 머리스타일,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D%94%BC%EC%96%B4%EC%8B%B1&amp;x=31&amp;y=12' target='_blank'&gt;피어싱&lt;/a&gt;(piercing), 타투(tattoo),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3%B4%EB%94%94+%ED%8E%98%EC%9D%B8%ED%8C%85&amp;x=28&amp;y=20' target='_blank'&gt;보디 페인팅&lt;/a&gt;(body painting) 등은 유행으로 확산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전통적으로 ’아름답다거나 추하다‘ 라는 가치를 무시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였으며, 팝음악과 함께 펑크 스타일을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펑크는 전통적 인습과 체제, 미신적 관습에 의한 오류 등에 대하여 저항 혹은 공격하는 사람이다. 펑크는 속어로 비성숙한 풋내기 젊은이, 불량소년·소녀, 풋내기,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 혹은 꽃미남, 저질이거나 값어치가 없으며, 정신과 건강이 허약한 사람을 뜻한다. 어원에서 풍기듯이 펑크 스타일이란 기존의 질서와 균형 잡힌 미에 대한 반동을 뜻한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33/2-1.jpg'/&gt;&lt;/p&gt;
&lt;p&gt;섹스 피스톨스의 ‘신이여 여왕을 수호하소서’ 프로모션 영상 속 장면(1977).&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03/2-2.jpg'/&gt;&lt;/p&gt;
&lt;p&gt;섹스 피스톨스의 존 라이든(쟈니 로튼, 1977).&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1970년대 경제적 불황기를 맞은 국제 정세에 따라, 실업률의 증가는 틴에이저들에게 불안, 초조를 초래하였다. 특히 실직에 대한 불안은 영국에 이민 온 소수 인종인 흑인과 파키스탄계의 인도인의 자녀들에게는 심각한 것이었다. 영국 정부의 인종차별에 대한 심한 반발을 느낀 런던의 틴에이저들은 이 소수 집단의 좌절, 절망, 분노, 공포를 은연중 그들의 스타일에 풍자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정치적인 항거운동을 해나갔다. 펑크들은 아프리카 문화를 동경하였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는 무산계층, 프롤레타리안, 보헤미안이었다. 물질만능에 많은 가치를 둔 출세 지향적인 틴에이저들을 지탄하였으며, 스스로 반성취주의(anti-achievement statement)를 택하였다. 또한 펑크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D%9E%88%ED%94%BC' target='_blank'&gt;히피&lt;/a&gt;의 경건한 지식주의의 도취에서 벗어나 반지식주의를 지향하였다. 펑크는 질서와 균형을 무시한 예술파괴주의(&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0%98%EB%8B%AC%EB%A6%AC%EC%A6%98&amp;x=12&amp;y=14' target='_blank'&gt;반달리즘&lt;/a&gt;, Vandalism)자들로서 아방가르드 그룹에 속하는 미술대학생들에게 열광적으로 퍼져 나갔다. 펑크는 아프리카인들의 모히칸(Mochican, 혹은 spike) 헤어스타일에 빨강, 파랑 등의 염색과 보디 페인팅, 클립과 옷핀의 장신구, 담뱃불로 지져 구멍을 내거나 일부러 찢어서 구멍을 낸 티셔츠 위에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나를 죽이시오’, ‘인생은 지루하다’등의 메시지를 프린트한 충격적 스타일을 입었다. 특히 이들은 무산계급의 상징인 남루한 옷차림을 좋아하였고 중고가게에서 1940년대의 옷을 구입하였거나 떨어진 옷을 패치워크하는 등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7%B8%EB%9F%B0%EC%A7%80%EB%A3%A9&amp;x=0&amp;y=0' target='_blank'&gt;그런지룩&lt;/a&gt; 스타일을 선호하였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45/a.jpg'/&gt;&lt;/p&gt;
&lt;p&gt;1970년대 후반의 두 펑크족.&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인류역사의 영원한 숙제인 사회계층간의 갈등, 인종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거, 기성세대가 독점한 사회에서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야망의 포기는 펑크로 하여금 철저한 허무주의, 무질서, 무정부주의(anarchism)로 도피하게 한다.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E%94%EB%93%9C%EB%9D%BC+%EB%A1%9C%EC%A6%88&amp;x=18&amp;y=22' target='_blank'&gt;잔드라 로즈&lt;/a&gt;(Zandra Rhodes)는 펑크의 허무주의와 예술파괴주의를 그녀의 패션디자인에 적극 도입하였다. 옷감을 찢고 구멍을 내거나 옷핀으로 연결시키고, 체인으로 장식한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기존의 웨딩드레스와 아름다운 옷이라는 개념을 전복시켰다. 이제 옷이란 ‘입는다’라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이념의 표현’에 대한 매개체로서 물질만능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성 말살에 대한 고발의 장(field)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김민자 /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amp;nbsp; &lt;/dt&gt;&lt;dd&gt;주요 저서로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802' target='_blank'&gt;복식미학 강의 I: 복식미를 보는 시각&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803' target='_blank'&gt;복식미학 강의 II: 복식미 엿보기&lt;/a&gt;], [현대패션 100년],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29587' target='_blank'&gt;한국적 패션디자인의 제다움 찾기&lt;/a&gt;] 등이 있으며, 2004년 프랑스 메종 오브제 "아시아의 탈렌트"로 선정되었다.&lt;/dd&gt;&lt;/dl&gt;&lt;p&gt;&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발행일&amp;nbsp; &lt;/span&gt;&lt;/strong&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86'&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0/185532364844672.jpg'/&gt;&lt;strong&gt;1970년대 패션&lt;/strong&gt;&lt;/a&gt;&lt;span&gt;절충주의와 반패션&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14'&gt;패션스타일/양식&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dpVxaNa0w5M"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2]]></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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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1970년대 패션 - 절충주의와 반패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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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0/1201231960330925.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절충주의 시기에는 핫 팬츠(hot pants)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B2%A8+%EB%B3%B4%ED%85%80' target='_blank'&gt;벨 보텀&lt;/a&gt;(bell bottom), 히피 룩과 미니스커트, 미디스커트, 맥시 스커트 등 다양한 스커트 길이가 유행하였고, 레이온이나 저지 등의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A%A4%EB%A6%AC+%ED%94%BC%EC%8A%A4+%EC%8A%88%ED%8A%B8&amp;x=0&amp;y=0' target='_blank'&gt;스리 피스 슈트&lt;/a&gt;(three-piece suits)로 구성된 ‘디스코 룩(disco look)’과 주류패션에 대항하는 펑크패션이 등장하였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51/untitled-1.jpg'/&gt;&lt;/p&gt;
&lt;p&gt;1970년대의 복장. &amp;lt;출처: 한국사전연구사&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불황의 시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1970년대는 세계경제에 인플레 현상이 심했던 불황의 시기였다. 높은 인플레이션, 늘어가는 실직률, 산업환경과 기술에 대해 불만이 커져갔다. 1960년대의 낙천적이고 소비가 미덕이었던 시대는 지나갔고, 소비자들은 좀 더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국과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증가하였으나, 세계의 경제는 안정을 되찾았고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1979년 미국의 동맹국인 이란의 국왕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AA%A8%ED%95%98%EB%A7%88%EB%93%9C+%EB%A0%88%EC%9E%90+%EC%83%A4+%ED%8C%94%EB%A0%88%EB%B9%84&amp;x=39&amp;y=11' target='_blank'&gt;팔레비&lt;/a&gt;가 국외로 쫓겨나게 되면서 마지막 절대군주제가 종말을 고했으며,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로서 석유 값은 급등하였고, 금값 폭등과 에너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동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중국에서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D%A9%EC%83%A4%EC%98%A4%ED%95%91&amp;x=38&amp;y=13' target='_blank'&gt;덩샤오핑&lt;/a&gt;(등소평)이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B%89%EC%8A%A8&amp;x=19&amp;y=15' target='_blank'&gt;닉슨&lt;/a&gt;과 핑퐁 외교를 벌이는 등 개혁정치를 추진하면서 냉전의 분위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중국이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새롭게 주요국가로 부상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석유파동과 환경문제&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있으면서 에너지 확보가 처음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환경문제가 부각되었다. 70년대 패션산업은 자연섬유를 생산하고, 인조 모피를 개발하고 직물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친환경적인 방법을 모색, 실천함으로써 패션산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0/164/2-1.jpg'/&gt;&lt;p&gt;1970년 대 초는 젊은 여성에게 미니스커트가 그대로 유행하였다. 프린지(fringe)로 장식된 스웨이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영국의 젊은 여성. &amp;lt;출처: (cc) JaneArt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0/154/2-2.jpg'/&gt;&lt;p&gt;핫팬츠와 벨 보텀 팬츠, 남성의 목까지 오는 머리 길이가 대 유행하였다(1971).&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45/03.jpg'/&gt;&lt;p&gt;미니스커트와 맥시스커트를 입고 있는 독일 모델들(1972). &amp;lt;출처: (cc) Deutsches Bundesarchiv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p&gt;&lt;strong&gt;&lt;span&gt;팝 뮤직과 대중문화&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1970년대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B%A4%EC%9B%90%EC%A3%BC%EC%9D%98&amp;x=34&amp;y=14' target='_blank'&gt;다원주의&lt;/a&gt;의 시대로, 개념 미술,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C%80%EC%A7%80%EB%AF%B8%EC%88%A0&amp;x=19&amp;y=16' target='_blank'&gt;대지미술&lt;/a&gt;, 페미니즘 예술로서의 공예,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아트 등이 새로운 예술매체로서 등장하였다. 대중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팝송가수나 영화배우가 문화의 주체자로서 대중의 생활양식과 가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들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D%B0%EC%9D%B4%EB%B9%84%EB%93%9C+%EB%B3%B4%EC%9C%84&amp;x=32&amp;y=15' target='_blank'&gt;데이비드 보위&lt;/a&gt;(David Bowie),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A7%88%EB%8F%88%EB%82%98' target='_blank'&gt;마돈나&lt;/a&gt;(Madonna),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A%B7%B8%EB%A0%88%EC%9D%B4%EC%8A%A4+%EC%A1%B4%EC%8A%A4&amp;x=7&amp;y=17' target='_blank'&gt;그레이스 존스&lt;/a&gt;(Grace Jones),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B3%B4%EC%9D%B4+%EC%A1%B0%EC%A7%80&amp;x=22&amp;y=13' target='_blank'&gt;보이 조지&lt;/a&gt;(Boy George),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8B%A0%EB%94%94+%EB%A1%9C%ED%8D%BC&amp;x=25&amp;y=22' target='_blank'&gt;신디 로퍼&lt;/a&gt;(Cindi Lauper),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7%88%EC%9D%B4%ED%81%B4+%EC%9E%AD%EC%8A%A8&amp;x=32&amp;y=17' target='_blank'&gt;마이클 잭슨&lt;/a&gt;(Michael Jackson) 등 록 가수의 패션과 외모를 모방하였다. 마이클 잭슨의 베르사체 풍, 마돈나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9E%80%EC%A0%9C%EB%A6%AC+%EB%A3%A9&amp;x=25&amp;y=11' target='_blank'&gt;란제리 룩&lt;/a&gt;, 보이 조지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5%A4%EB%93%9C%EB%A1%9C%EC%A7%80%EB%84%88%EC%8A%A4+%EB%A3%A9' target='_blank'&gt;앤드로지너스 룩&lt;/a&g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광택있는 천과 번쩍거리는 장식의 글램 룩, 찢어진 청바지나 바랜 옷 등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7%B8%EB%9F%B0%EC%A7%80+%EB%A3%A9&amp;x=23&amp;y=10' target='_blank'&gt;그런지 룩&lt;/a&gt;, 펑크 족의 허무주의적인 옷차림은 디자이너 컬렉션의 영감으로 영향을 미쳤고 거리의 패션으로 등장하였다. 팝송 가수의 거장이었던 마이클 잭슨의 흰 양말과 검정 구두의 조합도 유행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77년 영화 [&lt;a href='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05' target='_blank'&gt;스타 워즈&lt;/a&gt;(Star Wars)]의 미래주의적인 패션과 [&lt;a href='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87' target='_blank'&gt;토요일밤의 열기&lt;/a&gt;]의 디스코(disco) 춤과 의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남자 주인공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A1%B4+%ED%8A%B8%EB%9D%BC%EB%B3%BC%ED%83%80&amp;x=29&amp;y=22' target='_blank'&gt;존 트라볼타&lt;/a&gt;가 입었던 밝은 색의 셔츠, 폴리에스터 슈트, 금색 체인과 플랫폼 신발, 여자배우들이 입었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D%8A%B8%EB%A6%AC%EC%BD%94+&amp;x=0&amp;y=0' target='_blank'&gt;트리코&lt;/a&gt; 원피스와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A%A4%ED%8C%90%EB%8D%B1%EC%8A%A4&amp;x=27&amp;y=19' target='_blank'&gt;스판덱스&lt;/a&gt; 상의는 대중의 패션으로 유행되었다. 영화 [탑 건], [월 스트리트],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amp;lt;달라스&amp;gt;와 &amp;lt;다이너스티&amp;gt;의 의상들이 패션에 영향을 주었다.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8B%A0%EB%94%94+%ED%81%AC%EB%A1%9C%ED%8F%AC%EB%93%9C&amp;x=21&amp;y=20' target='_blank'&gt;신디 크로포드&lt;/a&gt;(Cindy Crawford),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6%B0%EB%8B%A4+%EC%97%90%EB%B0%98%EC%A0%A4%EB%A6%AC%EC%8A%A4%ED%83%80&amp;x=28&amp;y=15' target='_blank'&gt;린다 에반젤리스타&lt;/a&gt;(Linda Evangelista) 등 슈퍼 모델도 패션의 리더로서 유명해졌다. 1981년 설립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MTV' target='_blank'&gt;MTV&lt;/a&gt;(Music Television)는 텔레비전, 음악, 패션의 완벽한 조합을 보여 주었다. 뮤직 비디오 속의 많은 가수들의 모습은 대중의 패션에 영향을 주었다. 비보이(B-boy)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0%B0%EA%B8%B0+%ED%8C%AC%EC%B8%A0&amp;x=9&amp;y=24' target='_blank'&gt;배기 팬츠&lt;/a&gt;(baggy pants), 야구 셔츠, 거꾸로 쓴 야구 모자, 묶지 않고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 등 힙합풍의 패션이 유행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0/62/3-1.jpg'/&gt;&lt;p&gt;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 그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amp;lt;출처: (cc) Rik Walton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0/28/3-2.jpg'/&gt;&lt;p&gt;영국의 펑크 그룹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 멤버의 가죽 점퍼 차림과 화장.&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0/291/3-3.jpg'/&gt;&lt;p&gt;펑크의 선구자 린 로비치(Lene Lovich), 길게 딴 머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1979). &amp;lt;출처: (cc) Richard Marchewka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어떤 패션이 유행하였는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미디스커트와 통 넓은 팬츠 슈트&lt;br&gt;&lt;/br&gt;
&lt;/strong&gt;1960년대 즐겨 입었던 무릎 위 길이의 미니스커트는 점차 길어져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미디스커트(midi skirt)나 발목 바로 위까지 오는 맥시스커트(maxi skirt)로 바뀌었다. 특히 석유파동 이후 불황의 시대에 소비자들은 발랄한 미니스커트 대신 미디스커트와 맥시스커트를&amp;nbsp; 선호하였다. 1970년대 고급 여성복의 경향은 팬츠 슈트였다. 스커트 길이에 따른 유행을 좇는 데 지친 패션 추종자들은 통 넓은 팬츠 슈트를 입었다. 팬츠는 높은 굽이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B%A8%EC%A7%80+%ED%9E%90&amp;x=19&amp;y=28' target='_blank'&gt;웨지 힐&lt;/a&gt;(wedge heel)의 이브닝 샌들과 함께 ‘플레어스(flares)'와 ’백스(bags)'를 입었다. 플레어스는 엉덩이와 허벅지가 꼭 끼고 무릎 아래부터 넓어져 아래가 벨 모양이 되게 재단된 팬츠이다. 이를 미국에서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B2%A8+%EB%B3%B4%ED%85%80&amp;x=14&amp;y=23' target='_blank'&gt;벨 보텀&lt;/a&gt;이라 불렀고, 한국에서는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D%8C%90%ED%83%88%EB%A1%B1' target='_blank'&gt;판탈롱&lt;/a&gt;이라 하였다. 백스는 1920년대 유행한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8%A5%EC%8A%A4%ED%8D%BC%EB%93%9C+%EB%B0%B1%EC%8A%A4&amp;x=14&amp;y=16' target='_blank'&gt;옥스퍼드 백스&lt;/a&gt;’와 유사한 팬츠모양으로 앞주름이 들어간 헐렁한 바지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엉덩이 둘레를 꼭 맞게 했고 높은 구두나 부츠 위에 입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225/07.jpg'/&gt;&lt;p&gt;홀터 탑(halter top)과 플래어 팬츠를 입고 있는 스웨덴 모델 울라 존스(Ulla Jones).&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178/08.jpg'/&gt;&lt;p&gt;핫팬츠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학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1983). &amp;lt;출처: (cc) Ed Uthman at commons.wikim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60/09.jpg'/&gt;&lt;p&gt;1970년대 유행한 플래어 진즈와 플랫폼 슈즈(platform shoes). &amp;lt;출처: (cc) Mike Powell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p&gt;&lt;strong&gt;에스닉 룩&lt;br&gt;&lt;/br&gt;
&lt;/strong&gt;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에서 시작된 동양과 서양간의 문호개방은 패션 트렌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75년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B%8B%A4%EC%B9%B4%EB%8B%A4+%EA%B2%90%EC%A1%B0&amp;x=29&amp;y=15' target='_blank'&gt;다카다 겐조&lt;/a&gt;는 중국의 마오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은 마오 아 라 모드(Mao à la Mode)를 발표하였다.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C%9D%B4%EB%B8%8C+%EC%83%9D+%EB%A1%9C%EB%9E%91' target='_blank'&gt;이브 생 로랑&lt;/a&gt; 역시 러시아, 모로코, 카자크의 민속복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에스닉 룩을 선 보였다. 나아가 극동 지방의 카프탄 드레스와 일본의 기모노, 말레이시아의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82%AC%EB%A1%B1&amp;x=2&amp;y=14' target='_blank'&gt;사롱&lt;/a&gt;은 서구 디자이너의 영감의 원천으로 등장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레이어드 룩&lt;br&gt;&lt;/br&gt;
&lt;/strong&gt;석유파동 이후 사람들은 실용적이며 저렴한 가격의 옷을 선호하였다. 팬츠 위에 미니스커트 그리고 그 위에 재킷을 겹쳐 입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을 시도하였으며, 전체적으로 헐렁하게 입는 루스(loose) 룩 혹은 빅 룩(big look)을 선호하였다. 또한 1970년대 말에는 솜으로 패딩한 코트, 오리털 코트가 방한용으로 유행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복고풍의 등장&lt;br&gt;&lt;/br&gt;
&lt;/strong&gt;1970년대 초반 젊은이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밀리터리 룩으로 표현되기도 하여 군복이나 반전시위 문구를 새긴 티셔츠가 유행하였다. 이러한 밀리터리 룩과 달리 여성들은 더 여성스럽게 디자인된 프릴(frill)이 달린 부드러운 블라우스와 미디길이의 개더스커트를 입었다. 로라 애슐리(Laura ashley)는 전원풍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섬세한 꽃무늬와 레이스 장식, 팝 슬리브,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0%9C%EB%8D%94+%EC%8A%A4%EC%BB%A4%ED%8A%B8&amp;x=35&amp;y=9' target='_blank'&gt;개더 스커트&lt;/a&gt;,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D%8E%98%EC%A0%84%ED%8A%B8+%EB%93%9C%EB%A0%88%EC%8A%A4' target='_blank'&gt;페전트 드레스&lt;/a&gt; 등 복고적이며 낭만적인 디자인을 내 놓았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을 표현하고자 나체로 질주하는 스트리커(streaker)가 등장하였다. 1974년 상영된 [&lt;a href='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84' target='_blank'&gt;위대한 개츠비&lt;/a&gt;(The great Gatsby)]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흰색 슈트와 1930년대의 여성스러운 슬림 룩과 가든 파티 드레스는 여성의 향수적 취향을 자극하였고, 개츠비 룩은 곧 널리 유행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1/84/10.jpg'/&gt;&lt;p&gt;1970년대에 판매하던 개더 스커트 패턴의 포장 사진. &amp;lt;출처: (cc) patterngate @ Flickr&amp;gt;&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94/11.jpg'/&gt;&lt;p&gt;1972년 어느 가족의 모임 사진. &amp;lt;출처: (cc) elaine... @ Flickr&amp;gt;&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1/83/12.jpg'/&gt;&lt;p&gt;낚시를 즐기는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부부(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1971).&lt;/p&gt;
&lt;/div&gt;
&lt;/div&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p&gt;&lt;strong&gt;스포츠웨어&lt;br&gt;&lt;/br&gt;
&lt;/strong&gt;1970년대는 건강과 여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스포츠와 몸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고, 이에 따라 활동적인 운동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트레인이 중요시되었다. 남녀가 조깅을 즐겼으며, 풀오버 상의와 바지, 올 인원 트랙 슈트(all in one tracksuit)를 착용했다. 사람들은 이 편안한 조깅복을 캐주얼웨어나 레저복으로 입기도 했다.&lt;/p&gt;
&lt;p&gt;&lt;br&gt;&lt;/br&gt;
&lt;strong&gt;디스코 스타일의 남성복&lt;br&gt;&lt;/br&gt;
&lt;/strong&gt;디스코의 열풍은 남성복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당혹스러운 색상의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과 바지, 그리고 베스트로 이루어진 스리 피스 슈트(three-piece suits)가 대 유행하였다. Three-piece suits의 라펠은 넓었고, 통이 넓은 플래어 바지와 허리선이 올라간 베스트로 구성되었다. 넥타이는 폭이 넓었고, 와이셔츠의 칼라는 넓고 끝이 길었다. 목에 스카프를 매는 것이 여성들에게 유행하였다. 몸에 꼭 끼는 스판덱스 바지나 튜브 탑, &lt;a href='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amp;sm=ncc_clk&amp;ie=utf8&amp;query=%EB%A0%88%EC%98%A4%ED%83%80%EB%93%9C' target='_blank'&gt;레오타드&lt;/a&gt;가 유행하기도 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0/260/6-1.jpg'/&gt;&lt;p&gt;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포스터.&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30/174/6-2.jpg'/&gt;&lt;p&gt;넓고 끝이 긴 칼라의 와이셔츠를 입은 닉슨 대통령 영부인 팻 닉슨.&lt;/p&gt;
&lt;/div&gt;
&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30/35/6-3.jpg'/&gt;&lt;p&gt;1970년대에는 폭이 넓은 넥타이가 유행하였다. &amp;lt;출처: (cc) Allan warren at en.wikipedia.org&amp;gt;&lt;/p&gt;
&lt;/div&gt;
&lt;/div&gt;
&lt;!-- //20110629 패션연재를 위한 신규UI(3개일때) --&gt;&lt;p&gt;&lt;strong&gt;참고문헌&lt;/strong&gt;&lt;br&gt;&lt;/br&gt;
&lt;span&gt;김민자, 최현숙, 김윤희, 하지수, 최수현, 고현진,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68498' target='_blank'&gt;&lt;span&gt;서양패션멀티콘텐츠&lt;/span&gt;&lt;/a&gt;], (교문사, 2010); 김민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청소년 하위문화 스타일',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803' target='_blank'&gt;&lt;span&gt;복식미학강의 2&lt;/span&gt;&lt;/a&gt;], (교문사, 2008, pp.169~192); Bond, D., [The Guinness Guide to 20th Century Fashion], (Guinness Superlative, 1989); Ewing, Elizabeth,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63309' target='_blank'&gt;&lt;span&gt;History of Twentieth Century Fashion&lt;/span&gt;&lt;/a&gt;], (Batsford, 1974); Haye, Amy De La, [Fashion Source Book], (Macdonald Orbis, 1988); Herald, Jacqueline,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64479' target='_blank'&gt;&lt;span&gt;Fashions of A Decade: The 1970s&lt;/span&gt;&lt;/a&gt;], (London: B.T. Batsford, 1992); Howell, Georgina, [In Vogue: 75 Years of Style], (Condé Nast Books, 1991);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61952' target='_blank'&gt;&lt;span&gt;Icons of Fashion: the 20th Century&lt;/span&gt;&lt;/a&gt;], edited by Gerda Buxbaum, (Prestel, 1999);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348637' target='_blank'&gt;&lt;span&gt;Key Moments in Fashion&lt;/span&gt;&lt;/a&gt;], edited by Humaira Husain, (London: Hamlyn, 1999); McDowell, Colin,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77814' target='_blank'&gt;&lt;span&gt;Fashion Today&lt;/span&gt;&lt;/a&gt;], (Phaidon, 2000); McGee, Diane, [A Passion for Fashion], (Simmons-Boardman Books, Inc., 1987); Polhemus, Ted, [Street Style], (Thames and Hudson, 1994); Wilson, E. and Taylor, L., [Through the Looking Glass], (BBC Books, 1989).&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김민자 /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amp;nbsp; &lt;/dt&gt;&lt;dd&gt;주요 저서로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802' target='_blank'&gt;복식미학 강의 I: 복식미를 보는 시각&lt;/a&gt;],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803' target='_blank'&gt;복식미학 강의 II: 복식미 엿보기&lt;/a&gt;], [현대패션 100년], [&lt;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29587' target='_blank'&gt;한국적 패션디자인의 제다움 찾기&lt;/a&gt;] 등이 있으며, 2004년 프랑스 메종 오브제 "아시아의 탈렌트"로 선정되었다.&lt;/dd&gt;&lt;/dl&gt;&lt;p&gt;&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
발행일&amp;nbsp; &lt;/span&gt;&lt;/strong&gt;&lt;span&gt;2012.02.03&lt;/span&gt;&lt;/p&gt;
&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lt;h5&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xt_rew.gif'/&gt;&lt;/h5&gt;&lt;div&gt;&lt;div&gt;&lt;span&gt;1/1&lt;/span&gt;&lt;/div&gt;
&lt;div&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prev.gif'/&gt;&lt;/a&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ico_anext.gif'/&gt;&lt;/a&gt;&lt;/div&gt;
&lt;/div&gt;
&lt;ul&gt;&lt;li&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92'&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31/1043331216749225.jpg'/&gt;&lt;strong&gt;펑크 스타일&lt;/strong&gt;&lt;/a&gt;&lt;span&gt;펑크 스타일&lt;/span&gt;&lt;span&gt;&lt;a href='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type=subject&amp;list_type=all&amp;category_id=709'&gt;패션/미용용어해설&lt;/a&gt;&lt;/span&gt;&lt;/li&gt;&lt;/ul&gt;&lt;/div&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TSMFFyQaWmM"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386]]></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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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궁모란병 - 작자미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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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2/173508585035203.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2/197/00.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궁모란병]&lt;br&gt;&lt;/br&gt;
&lt;span&gt;비단에 채색 ㅣ 국립고궁박물관&lt;/span&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진한 홍색과 연한 홍색, 연한 청색과 연한 황색. 울긋불긋 화려하면서 풍성한 꽃병풍이다. 아니, ‘화려’와 ‘풍성’이라는 표현으로 무언가 부족한 품위와 위엄이 서려있다. 여덟 첩 병풍의 소담한 꽃송이들은 모두 같은 구도로 그려졌다. 활짝 핀 자태를 뽐내며 땅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위로 상승하듯 배치된 것이다. 고귀한 의미를 간직하여 궁중행사나 잔치에 반드시 진설되었던 모란병풍, 바로 [궁모란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EB%8C%80%EB%B3%91%ED%92%8D&amp;os=716624' target='_blank'&gt;&lt;span&gt;메인 작품 보러가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의 왕, 모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5월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꽃송이가 크고 꽃잎이 소담하며 색상도 화려하여 예로부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화왕(花王)이라 불려왔다. ‘꽃의 왕’은 탐스런 자태만큼이나 다양한 일화와 별호를 간직하고 있다. 이미 중국 당대부터 향기와 빛깔이 다른 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서 천향국색(千香國色)이라 불렸다. 당 현종도 사랑하는 여인 양 귀비와 함께 모란을 자주 즐겼다. 하루는 두 사람이 침향정에서 모란을 감상하면서 중국 최고의 시인이자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던 이백을 불러 시를 청했다. 이에 이백은 “유명한 꽃과 경국지색 모두 기쁨을 선사해서, 군왕이 언제나 미소 띠고 바라본다네.”라는 시를 지어 바쳤다. 모란과 양귀비의 미색을 동시에 읊은 유명한 시이다. 또한 북송대 유학자였던 주돈이는 국화를 꽃 중의 은자(隱者), 모란을 꽃 중의 부귀자(富貴者), 연꽃을 꽃 중의 군자로 비유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90/01.jpg'/&gt;&lt;/p&gt;
&lt;p&gt;서희 [옥당부귀도] &lt;br&gt;&lt;/br&gt;
비단에 채색, 교토 양족원 소장&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우리나라에도 모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마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가 [삼국유사]에 실린 선덕왕의 ‘모란고사’일 것이다. 당태종은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도와 씨앗을 신라 왕실에 선물로 보냈다. 덕만은 모란병풍을 감상한 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단언하면서 당의 황실이 배우자가 없는 나를 희롱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선덕왕의 모란고사 만큼 유명한 우화가 바로 설총의 [화왕계]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란은 꽃의 왕이며, 장미는 모란에게 아양 떠는 여인으로 의인화되었다. 장미의 아첨과 매력에 끌려든 화왕 앞에 할미꽃이 등장하여 군자의 도리로서 사치와 허영을 물리쳐야 한다고 충언한다. 이때 모란은 할미꽃의 지혜로운 교훈을 받아들여 장미의 유혹을 물리친다. 선덕왕의 모란고사와 설총의 [화왕계]는 7세기에 이미 우리나라의 모란이 유입되어 귀한 꽃으로 사랑받았음을 알려주는 일화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공예품에 표현된 모란문양&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모란은 길조와 부귀를 암시하는 서상지물(상서로운 조짐의 물건)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려의 왕족과 귀족은 공작새, 앵무새와 더불어 고가의 모란을 송나라 상인에게 구입해서 정원 가꾸기에 주력했다. 중국 황실이 모란꽃 진상을 요구하여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몇몇 사찰에서 모란을 전문적으로 재배하기도 했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104/02.jpg'/&gt;&lt;p&gt;[청자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병] 12세기&lt;br&gt;&lt;/br&gt;
국보114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B2%AD%EC%9E%90+%EB%AA%A8%EB%9E%80+%EA%B5%AD%ED%99%94+%EB%AC%B4%EB%8A%AC+%EC%B0%B8%EC%99%B8+%EB%AA%A8%EC%96%91+%EA%BD%83%EB%B3%91+%28%E9%9D%91%E7%A3%81%E8%B1%A1%E5%B5%8C%E7%89%A1%EF%A5%9E%E8%8F%8A%E8%8A%B1%E6%96%87%E7%93%9C%E5%BD%A2%E8%8A%B1%E7%94%81%29&amp;os=613856'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237/03.jpg'/&gt;&lt;p&gt;[청자모란무늬 매병] 12세기&lt;br&gt;&lt;/br&gt;
보물34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B2%AD%EC%9E%90+%EB%AA%A8%EB%9E%80+%EB%AC%B4%EB%8A%AC+%EB%A7%A4%EB%B3%91+%28%E9%9D%91%E7%A3%81%E8%B1%A1%E5%B5%8C%E8%BE%B0%E7%A0%82%E5%BD%A9%E7%89%A1%EF%A5%9E%E6%96%87%E6%A2%85%E7%94%81%29&amp;os=613866'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모란에 대한 사랑은 갖가지 공예품, 장신구, 복식의 문양에서 발견된다. 특히 고려시대에 유통되던 고급청자에 모란무늬가 다채롭게 그려졌다. 꽃꽂이 화병으로 사용되었던 참외모양 병에는 여덟 면에 모란과 국화가 번갈아 상감기법으로 묘사되었다. 주둥이가 작고 어깨가 튼실한 매병에는 뜨락에 심겨진 모란목이 산화동이 사용된 진사채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참외모양 병의 모란이 도안화된 디자인이라면, 매병의 모란은 붓을 휘둘러 자연스럽게 그린 회화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68/03-1.jpg'/&gt;&lt;p&gt;[나전칠 국화 모란 넝쿨 매화 대나무 무늬 상자]&lt;br&gt;&lt;/br&gt;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82%98%EC%A0%84+%EC%B9%A0+%EA%B5%AD%ED%99%94+%EB%AA%A8%EB%9E%80+%EB%84%9D%EC%BF%A8+%EB%A7%A4%ED%99%94+%EB%8C%80%EB%82%98%EB%AC%B4+%EB%AC%B4%EB%8A%AC+%EC%83%81%EC%9E%90+%28%EF%A4%91%E9%88%BF%E8%8F%8A%E7%89%A1%EF%A5%9E%E5%94%90%E8%8D%89%E6%A2%85%E7%AB%B9%E6%96%87%E7%AE%B1%E5%AD%90%29&amp;os=612538'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72/03-2.jpg'/&gt;&lt;p&gt;[나전칠 모란 넝쿨 무늬 능화 모양 반]&lt;br&gt;&lt;/br&gt;
동경국립박물관 &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82%98%EC%A0%84+%EC%B9%A0+%EB%AA%A8%EB%9E%80+%EB%84%9D%EC%BF%A8+%EB%AC%B4%EB%8A%AC+%EB%8A%A5%ED%99%94+%EB%AA%A8%EC%96%91+%EB%B0%98+%28%EF%A4%91%E9%88%BF%E7%89%A1%EF%A5%9E%E5%94%90%E8%8D%89%E6%96%87%E8%8F%B1%E8%8A%B1%E5%BD%A2%E7%9B%A4%29&amp;os=612545'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란은 여인들이 규방에서 사용했던 나전칠기의 표면을 장식했다. 네모반듯한 상자에는 문인들의 표상인 국화, 매화, 대나무와 함께 모란이 선택되었다. 상자 옆면에는 매화의 가지나 대나무 잎사귀가 일부 표현된 반면, 윗면에는 활짝 핀 국화와 탐스러운 모란이 넝쿨을 이룬 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능화모양의 쟁반에는 모란의 줄기가 섬세하면서도 오묘하게 얽혀있다. 이렇듯 꽃의 왕으로 불렸던 모란은 왕실과 귀족의 치장으로, 여인네 규방의 장식으로 상서로운 의미를 간직한 채 사랑받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조선왕실의 궁모란병&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조선 왕실은 왕권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궁궐 안팎을 의도적으로 장엄했다. 특히 집무와 주거를 담당한 실내공간은 용도와 기능에 어울리는 궁화(court painting)로 치장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이렇듯 궁궐이라는 공간의 기능성과&amp;nbsp;장식성, 왕권의 상징성을 모두 갖춘 궁화는 주로 병풍 형태로 갖추어졌다. 병풍이 성스러운 장소에 설치되어 궁궐의 신성화와 장엄화를 돋보이도록 꾸며진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259/04.jpg'/&gt;&lt;/p&gt;
&lt;p&gt;[일월오봉병] 국립고궁박물관&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9D%BC%EC%9B%94%EC%98%A4%EB%B4%89%EB%8F%84+%EB%B3%91%ED%92%8D&amp;os=716642'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왕실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병풍에 [일월오봉병]이 있다. [일월오봉병]은 임금의 어좌 뒤에 특별히 설치된 궁화인데, 두 줄기 폭포가 흐르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 소나무 두 그루 파란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굽이치는 물결로 구성되었다. 색상배합도 청, 홍, 녹, 백등 진한 원색이 사용되었다. [일월오봉병]은 한 국가에서 군주의 위치와 존재를 상징한다. 해와 달의 하늘, 다섯 개 봉우리의 땅. 그 앞 어좌에 앉은 임금. 즉, 해와 달의 정중앙에 앉은 군주는 천지인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치자가 된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15/05.jpg'/&gt;&lt;/p&gt;
&lt;p&gt;[모란도 병풍] 국립고궁박물관&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EB%B3%91%ED%92%8D&amp;os=716628'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궁모란병은 주로 궁중의 내전이나 침전에 놓였고, 가례, 종묘제례 등 왕실의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왕실의 모란병풍은 꽃을 찾는 벌, 나비, 새들을 그린 화충도나 화조도와는 차이가 있다. 대신 오로지 탐스런 꽃송이만 그린 ‘모란도’와 괴석을 함께 배치한 ‘석모란도’로 구분된다. 혼례식장을 장식하는 모란병풍은 꽃송이 아래 괴석에 자웅을 표시하는데, 이는 남녀를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궁화의 모란은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소담한 꽃송이들이 아니다. 꽃의 자태는 도안화된 모양이며, 채색은 화선지에 물감을 들인 선염법이 아닌 두꺼운 장지에 석채를 쌓아올린 진채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실 모란도의 활짝 핀 꽃송이는 평면적이면서도 장식적이다. 이러한 시각적 화려함은 부귀영화, 천보, 천명, 태평성대의 기원을 담고 있는 모란도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월오봉병]과 더불어 한 왕조의 번영과 안녕을 염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원색의 장식적 병풍을 탄생시킨 셈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290/06.jpg'/&gt;&lt;/p&gt;
&lt;p&gt;[모란도] &lt;br&gt;&lt;/br&gt;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amp;os=685320'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궁화로 제작된 모란도는 사대부와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했다. 특히 모란도는 십장생도, 수노인도와 함께 새해를 축하하기 위한 세화로 그려졌다. 나쁜 액운을 막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길상 벽사적 염원이 반영되어 치레와 장엄용으로 민간에 유통된 것이다. 이러한 모란도는 궁모란도와 솜씨가 다르다. 만개한 꽃송이와 막 피기 시작한 꽃망울이 동시에 표현되었고, 원색과 중간색이 함께 채색되었다. 두폭 가리개의 모란도는 궁화보다 수수하지만, 보다 많은 백성들에게 든든한 믿음과 소망을 안겨준 또 다른 서상지물이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음력으로 임진년이 밝았다. 여전히 날씨는 춥고 세상사에 휩쓸려 마음이 서늘해도, 희망을 꿈꾸고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새해이다. 부디 올해만큼은 사업이 번창하여 부자가 될 수 있기를. 멋진 이를 만나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하는 학교와 직장에 철커덕 합격하길. 그늘진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을 만큼 웃음이 가득하고 하늘로 뛰어 오를 만큼 기쁜 일만 생기길. 부귀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액운을 막고 좋은 일을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새해 벽두부터 마음 한 구석을 모란병풍으로 치장하면서 소박한 꿈을 되뇌어본다. 다 잘될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sm=sta_hty.arts&amp;query=%uBAA8%uB780%uB3C4'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더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 &amp;nbsp;&amp;nbsp;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sm=sbx_hty&amp;where=arts_list&amp;query=%EB%AA%A8%EB%9E%80%EB%8F%84+' target='_blank'&gt;&lt;span&gt;모란도 미술검색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 수신 --&gt;&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송희경 / 문학박사(한국미술사)&lt;/dt&gt;&lt;dd&gt;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고, 조선후기 회화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는 [조선후기 아회도]와 [미술의 이해와 감상]이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lt;/dd&gt;&lt;/dl&gt;&lt;/div&gt;
&lt;!-- // 수신/발신 텍스트형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 //그림목록 이미지형 시작 --&gt;&lt;div&gt;&lt;dl&gt;&lt;dt&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worklist.gif'/&gt; &lt;span&gt;모란을 다룬 작품&lt;/span&gt; &lt;/dt&gt;&lt;dd&gt;&lt;ul&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amp;os=685316'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138/01.jpg'/&gt; &lt;strong&gt;모란도&lt;/strong&gt; &lt;em&gt;연도미상&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amp;os=685317'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240/02.jpg'/&gt; &lt;strong&gt;모란도&lt;/strong&gt;&lt;em&gt;연도미상&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AA%A8%EB%9E%80%EB%8F%84+%EB%B3%91%ED%92%8D&amp;os=716625'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231/03.jpg'/&gt; &lt;strong&gt;모란도 병풍&lt;/strong&gt; &lt;em&gt;연도미상&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97%B0%ED%99%94%EB%AA%A8%EB%9E%80%EB%AC%B8+%EC%9E%A5%EC%8B%A0%EA%B5%AC%EC%83%81%EC%9E%90&amp;os=741897'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6/17/04.jpg'/&gt; &lt;strong&gt;연화모란문&lt;br&gt;&lt;/br&gt;
장신구 상자&lt;/strong&gt; &lt;em&gt;연도미상&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B%B6%84%EC%B2%AD%EC%82%AC%EA%B8%B0+%EB%AA%A8%EB%9E%80+%EB%AC%B4%EB%8A%AC+%EB%B3%91+%28%E7%B4%9B%E9%9D%91%E6%B2%99%E5%99%A8%E9%90%B5%E7%95%B5%E7%89%A1%EF%A5%9E%E6%96%87%E7%94%81%29&amp;os=613027'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6/127/05.jpg'/&gt; &lt;strong&gt;분청사기 모란무늬&lt;/strong&gt; &lt;em&gt;16세기&lt;/em&gt; &lt;/a&gt;&lt;/li&gt;&lt;/ul&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sm=sbx_hty&amp;where=arts_list&amp;query=%EB%AA%A8%EB%9E%80%EB%8F%84+' target='_blank'&gt;작품 더보기&lt;/a&gt; &lt;/dd&gt;&lt;/dl&gt;&lt;/div&gt;
&lt;!-- //그림목록 이미지형 끝 --&gt;&lt;p&gt;&lt;span&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amp;nbsp; &lt;span&gt;2012.02.03&lt;/span&gt;&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div&gt;
&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CCkx8qyKgHI"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295]]></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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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차이콥스키  - 관현악의 대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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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lt;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 /&gt;
&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2/144340133049116.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p&gt;차이콥스키의 음악에는 가슴을 파고드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특별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의 음악은 저절로 우리 마음을 움직입니다. 가슴 저미는 선율과 풍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긴박감 넘치는 종결부의 벅찬 환희!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항상 가슴이 확 트이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주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음악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민한 성격에다 동성애 성향이 있었던 차이콥스키는 늘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보다 몇 배의 감정적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탈출구였습니다. 그래서 차이콥스키의 작품은 그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차이콥스키가 본격적으로 그의 대표작을 내놓기 시작한 시점도 그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시기와 일치합니다. 1877년, 37세의 차이콥스키는 불행과 행운을 함께 경험하며 격변기를 맞이했습니다. 그해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후원금을 받기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으나 사랑하지도 않는 여성과 성급한 결혼을 감행한 후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마도 차이콥스키는 결혼을 하면 동성애에 대한 소문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당시 작곡 중이던 오페라 [&lt;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919' target='_blank'&gt;예브게니 오네긴&lt;/a&gt;]의 주인공 오네긴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했는지도 모릅니다. 차이콥스키는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타치아나의 연애편지를 매정하게 거절한 오네긴의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그는 1877년 7월에 그에게 열렬한 연애편지를 보낸 음악원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라는 여인과 급히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오페라와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경에 이르렀고 차이콥스키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lt;/p&gt;
&lt;br&gt;&lt;/br&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210/1.jpg'/&gt;&lt;/p&gt;
&lt;p&gt;우수의 작곡가 차이콥스키. &amp;lt;출처: Wikipedia&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가혹한 운명을 상징하는 ‘운명의 동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개인적인 전환과 위기를 맞이한 이 시기에 차이콥스키는 독자적인 음악양식을 보여준 대작들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 [교향곡 4번]은 매우 특별합니다. 차이콥스키 관현악 양식의 결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이 비범한 교향곡은 차이콥스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교향곡 4번] 도입부를 장식하는 금관악기의 팡파르는 차이콥스키를 뒤따르는 가혹한 운명을 나타내듯 처절하고도 비극적으로 제시됩니다. 이 팡파르는 4악장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끊임없이 그를 추적해오는 운명의 집요함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마치 바그너의 음악극에 사용되는 라이트모티브(leitmotiv, 특정 인물이나 감정 등을 일정한 음악적 동기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주도동기 혹은 유도동기라 부르기도 함)와 비슷합니다. 이 팡파르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운명의 동기’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금관악기가 연주하는 운명의 팡파르가 단조로 제시된다는 점은 특히 중요합니다. 차이콥스키 당대에는 밸브가 달린 개량 금관악기들이 보편화되어 금관악기로 단조 선율을 연주하는 데 제약이 없었으나, 밸브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금관악기로 단조 팡파르를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금관악기가 장송행진 풍의 비극적인 음악을 연주할 때는 약음기를 낀 채 작은 소리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차이콥스키는 전통적인 관례를 깨고 [교향곡 4번] 도입부를 단조의 포르티시모(&lt;em&gt;&lt;span&gt;ff&lt;/span&gt;&lt;/em&gt;, 매우 크게 연주하라는 강약 기호)로 충격적인 팡파르를 제시해 듣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아마도 이 팡파르는 당대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오늘날에도 이 팡파르는 말러의 [교향곡 5번] 1악장을 여는 트럼펫의 팡파르와 함께 훌륭한 ‘단조 팡파르’라 할 만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차이콥스키의 ‘운명의 동기’는 비단 [교향곡 4번]에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의 [교향곡 5번](1888년)은 ‘차이콥스키의 운명 교향곡’이라 해도 좋을 만큼 1악장 도입부의 ‘운명의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클라리넷의 어두운 음색으로 단조로 연주되는 운명의 동기는 [교향곡 4번]의 운명처럼 가혹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체념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우울한 운명은 4악장에 이르러 승리로 바뀝니다.&lt;/p&gt;
&lt;p&gt;&lt;br&gt;&lt;/br&gt;
[교향곡 5번]에서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던 차이콥스키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6번 ‘비창’]에서 교향곡 역사상 매우 독특한 결말로 완전한 체념의 정서를 전해줍니다. 차이콥스키는 1893년 9월에 [‘비창’ 교향곡]을 완성하고 그해 10월에 초연한 후 9일 만에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비창’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는지도 모릅니다. 끝없이 하강하는 선율과 꺼져가듯 길게 사라지는 4악장의 종결부는 삶의 종말을 나타내는 듯합니다.&lt;/p&gt;
&lt;br&gt;&lt;/br&gt;
&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136/2.jpg'/&gt;&lt;/p&gt;
&lt;p&gt;[비창 교향곡]의 결말은 모든 것을 체념한 비극을 들려준다. &amp;lt;출처: NGD&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비창’ 교향곡] 4악장의 종결부에서 활약하는 악기는 비올라와 첼로, 더블베이스의 저음현과 목관악기 중 가장 어두운 음색을 지닌 바순입니다. 교향곡이 끝이 가까워오면 비올라와 바순이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첼로와 더블베이스만 남아 피아니시시시모(pppp)의 극히 여린 음으로 사라져갑니다. 이때 더블베이스는 두 파트로 나뉘어, 상성부는 점차 느려지는 심장박동을 독특한 리듬으로 표현하고 하성부는 현을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으로 다가오는 종말의 마지막 발걸음을 암시합니다.&amp;nbsp;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화려한 알레그로 악장 대신 어둡고 느린 악장으로 대체한 점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 할 만합니다. 운명을 극복하고 승리로 끝맺는 [교향곡 5번]과 비교해볼 때 [교향곡 6번]은 상당히 염세주의적인 느낌을 주지만, 운명에 굴복하는 ‘비창’의 우울한 정서는 오히려 우리의 정신을 맑게 정화시켜 한없는 미(美)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감정적 고양을 표현하는 ‘동형진행’ 기법&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br&gt;&lt;/br&gt;
교향곡 4·5번의 ‘운명의 동기’와 [교향곡 6번]의 특별한 종결부 외에도 차이콥스키 관현악에서 거론할만한 특징은 너무나 많지만, 그 중 차이콥스키 음악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법 하나는 꼭 소개해드리고 싶군요. 차이콥스키는 감정적인 고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동형진행’, 즉 ‘시퀀스’(sequence)라는 기법을 종종 사용했습니다. 동형진행이란 쉽게 말해 일정한 선율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기법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반복만 하는 게 아니라 음높이를 점진적으로 다르게 반복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혹은 침체시키기도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그의 음악에 자주 사용하던 동형진행 방식은 하나의 선율 패턴을 점점 더 높은 음으로 반복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감동적인 ‘사랑의 테마’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동형진행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예라 할 만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div&gt;&lt;/div&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랑의 테마 중간 부분을 잘 들어보면 작은 소리로부터 점차 큰 소리로 연주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차이콥스키는 동형진행의 기본 단위가 되는 짧은 선율을 먼저 제시합니다. 이 시퀀스 단위가 ‘난 널 사랑해’라는 문장이라고 가정한다면, 차이콥스키는 점차 어조를 높여 ‘난 널 사랑해’를 반복하다가 몇 차례 반복된 후에는 마치 ‘나는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사랑해’ 라는 식으로 음표는 줄이고 음은 높여서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구축합니다.감정의 고양상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음악이 있을까요! 동형진행 기법을 사용한 작곡가들은 많지만 차이콥스키처럼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곡가는 드물 겁니다.&lt;/p&gt;
&lt;p&gt;&lt;br&gt;&lt;/br&gt;
차이콥스키는 생전에 국제적인 작곡가로서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소수의 러시아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대중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음악을 만들었으니 그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오늘날에도 차이콥스키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클래식 입문자에게나 클래식 마니아에게나 늘 한결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살아남을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라 할 만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B0%A8%EC%9D%B4%EC%BD%A5%EC%8A%A4%ED%82%A4'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amp;nbsp;&amp;nbsp;&amp;nbsp; &lt;a href='http://mus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music_classic&amp;sm=tab_nmr&amp;query=%EC%B0%A8%EC%9D%B4%EC%BD%A5%EC%8A%A4%ED%82%A4&amp;ie=utf8&amp;sortby=sim&amp;nso=so%3Ar%2Ca%3Aall%2Cp%3Aall' target='_blank'&gt;&lt;span&gt;차이콥스키 음반 더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iv&gt;&lt;div&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09/10/27/136/%C3%D6%C0%BA%B1%D4.jpg'/&gt;&lt;/div&gt;
&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lt;/dt&gt;&lt;dd&gt;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amp;lt;객석&amp;gt; 및 &amp;lt;연합뉴스&amp;gt;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lt;/dd&gt;&lt;/dl&gt;&lt;p&gt;&lt;strong&gt;음원 제공 &lt;/strong&gt;소니 뮤직 &lt;a href='http://www.sonymusic.co.kr/'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09/11/10/201/%B7%CE%B0%ED.jpg'/&gt;&lt;/a&gt; &lt;/p&gt;
&lt;/div&gt;
&lt;/div&gt;
&lt;!-- 크레딧 끝 --&gt;&lt;p&gt;&lt;strong&gt;&lt;br&gt;&lt;/br&gt;
발행일&amp;nbsp; &lt;/strong&gt;&lt;span&gt;2012.01.11&lt;/span&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 //110518 관련글 추가 --&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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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DFHl1N1rxiY" height="1" width="1"/&gt;</description>
<guid isPermaLink="false"><![CDATA[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287]]></guid>
<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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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양산을 쓴 세 여인들 - 마리 브라크몽]]></title>
<link>http://feedproxy.google.com/~r/terzeron/navercast/~3/0aRP_7lt4Dk/contents.nhn</link>
<description>&lt;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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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tyle&gt;img { max-width: 100%; height: auto; }&lt;/style&gt;
&lt;h3&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2012/01/12/1051581612989188.jpg'/&gt;&lt;/h3&gt;&lt;div&gt;&lt;!-- 컨텐츠 내용 --&gt;&lt;p&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2/79/00.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브라크몽 [양산을 쓴 세 여인들, 일명 삼미신] 1880년경&lt;br&gt;&lt;/br&gt;
&lt;span&gt;캔버스에 유채 ㅣ 139×89cm ㅣ 오르세 미술관&lt;/span&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 The Bridgeman Art Library - GNC media, Seoul&amp;nbsp;&amp;nbsp;&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1/9/27/165/ci_france.jpg'/&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프랑스국 립박물관연합(RMN)&amp;nbsp;&lt;/span&gt;&lt;span&gt;&amp;nbsp;&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9/27/195/ci_gnc.jpg'/&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지엔씨미디어&lt;/span&gt;&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마리 브라크몽은 그 실력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안타까운 화가이다. 화가이자 조각가, 공예품 장식가였던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D%8E%A0%EB%A6%AD%EC%8A%A4+%EB%B8%8C%EB%9D%BC%ED%81%AC%EB%AA%BD&amp;x=8&amp;y=20' target='_blank'&gt;펠릭스 브라크몽&lt;/a&gt;과 결혼한 그녀는, 안타깝게도 권위적이면서 예술가로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던, 그리고 색채보다 데생이 우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C%83%A4%EB%A5%B4%EB%8C%95&amp;x=9&amp;y=24' target='_blank'&gt;샤르댕&lt;/a&gt;과 같은 화가들을 아내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으며, 또한 그녀와 함께 몇몇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하빌랜드 도자기 회사]와 관련하여 참여했던 프로젝트였는데, 그녀는 이 회사를 위하여 여러 가지 접시를 장식할 문양을 그렸다. 하빌랜드 도자기 제품 중에서 그녀가 진행했던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는 바로 ‘예술의 뮤즈들’을 주제로 그린 커다란 대형 도자기 패널 작품이었는데, 이 패널은 1878년의 &amp;lt;만국박람회&amp;gt;에 출품되기까지 했다. 이후 브라크몽은 이 패널화의 밑그림들을 1879년의 &amp;lt;인상주의 전시회&amp;gt;에 출품했으며, 그곳에서 드가로부터 큰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B2%A0%EB%A5%B4%ED%8A%B8+%EB%AA%A8%EB%A6%AC%EC%A1%B0&amp;x=17&amp;y=25' target='_blank'&gt;베르트 모리조&lt;/a&gt;, 에바 곤잘레스, 그리고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B%A9%94%EB%A6%AC+%EC%BB%A4%EC%85%8B+&amp;x=34&amp;y=26' target='_blank'&gt;메리 커셋&lt;/a&gt;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인상주의 여류 화가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96%91%EC%82%B0%EC%9D%84+%EC%93%B4+%EC%84%B8+%EC%97%AC%EC%9D%B8%EB%93%A4%2C+%EC%9D%BC%EB%AA%85+%EC%82%BC%EB%AF%B8%EC%8B%A0&amp;os=813788' target='_blank'&gt;&lt;span&gt;메인 작품 보러가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gt;인상주의 여성 화가들 중의 한 명&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그녀는 개인적으로 도미니크 앵그르의 화풍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화풍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식 제품이나 도자기 위에 표현된 그녀의 모티프들은 중세 시대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그러나 1877년부터 1880년 사이의 기간 동안, 그녀의 화풍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바로 이 작품 [양산을 쓴 세 여인, 일명 삼미신] 속에 나타난 분할된 붓 터치 및 한색과 난색의 병렬적인 표현 방법 등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모네와 르누아르의 열렬한 애호가이기도 했던 브라크몽은 남편 펠릭스와 함께 시슬레와도 긴밀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시슬레를 통해 고갱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생전에 단 한 번도 개인전을 개최한 적이 없었던 브라크몽이었지만, 그녀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1919년에 ‘베른하임 죈 갤러리’에서는 그녀를 위하여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 회고전의 도록 서문은 그녀의 열정적인 옹호자이자, 이 작품을 구매하여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귀스타브 제프루아가 직접 집필했다. 도록 서문에서 그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현대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그림은 완전히 색다른 작품이다. 정원에 세 명의 여인이 서 있다. 가운데의 갈색 머리의 날씬한 여인은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서 있고, 금발의 여인과 빨강 머리의 여인이 그녀를 사이에 두고 약간 몸을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당시의 유행하던 옷을 차려 입은 1880년대식 ‘삼미신’으로, 이 시대의 모든 젊은 여인들이 맵시를 내기 위하여 즐겨 입었던 목이 올라간 블라우스와 그다지 점잖아 보이지 않는 ‘푸프’ 장식을 허리에 두른 나붓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을 보고 꿈을 꾸지는 않는다. 다만 무척 부드럽고 정확하게 묘사된 옷 아래 감춰진 여인들의 몸의 형태만을 볼 뿐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 이미지캡션 시작 --&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2/27/01-1.jpg'/&gt;&lt;p&gt;작자미상 [삼미신] BC 331&lt;br&gt;&lt;/br&gt;
조각, 대리석, 8cm×38cm×40cm, 루브르 박물관 &lt;br&gt;&lt;/br&gt;
&lt;span&gt;ⓒ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lt;/span&gt;&lt;br&gt;&lt;/br&gt;
&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6/23/169/ci_france.jpg'/&gt;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amp;nbsp;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6/23/74/ci_gnc.jpg'/&gt; 지엔씨미디어&lt;/span&gt;&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82%BC%EB%AF%B8%EC%8B%A0&amp;os=558828'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2/268/01-2.jpg'/&gt;&lt;p&gt;라파엘 [삼미신] 15세기&lt;br&gt;&lt;/br&gt;
캔버스에 유채, 17.8cm×17.6cm, 콩데 미술관 &lt;br&gt;&lt;/br&gt;
&lt;span&gt;ⓒ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lt;/span&gt;&lt;br&gt;&lt;/br&gt;
&lt;span&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6/23/169/ci_france.jpg'/&gt;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amp;nbsp; &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1/6/23/74/ci_gnc.jpg'/&gt; 지엔씨미디어&lt;/span&gt;&lt;br&gt;&lt;/br&gt;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82%BC%EB%AF%B8%EC%8B%A0&amp;os=485250' target='_blank'&gt;작품 보러가기&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a&gt; &lt;/p&gt;
&lt;!-- 이미지캡션 끝 --&gt;&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화창한 햇빛 속에서 알맞은 각각의 여인의 몸의 비율과 서로 어우러지는 키, 제각기 포즈를 취한 다리의 자세와 상체의 굴곡, 그리고 다양한 손 동작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이 여인들은 움직이고 숨쉬며, 나아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여인들의 존재감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마치 가벼운 공기 속에서 사물 위를 날아가는 듯한 꿈속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구릿빛과 태양빛, 그리고 날씨의 색을 띠고 있는 천연 직물로 만들어진 여인들이 입고 있는 블라우스와 드레스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색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고 흰색과 붉은색의 양산 아래로 부드럽게 새어 드는 여름날의 빛을 통하여, 매혹적인 여인들의 ‘설렘’의 감정이 이 위대한 작품 속에 녹아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세 여인, 지나간 시절의 매혹적인 ‘세 여신’들은 푸른 하늘과 녹음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정원 안에서 환희의 순간을 맛보았을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관련링크&lt;/strong&gt; : &lt;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sm=sta_hty.arts&amp;query=%uB9C8%uB9AC%20%uBE0C%uB77C%uD06C%uBABD' target='_blank'&gt;&lt;span&gt;통합검색 결과 더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amp;nbsp;&amp;nbsp;&amp;nbsp; &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sm=sbx_hty&amp;where=arts_list&amp;query=%EB%A7%88%EB%A6%AC+%EB%B8%8C%EB%9D%BC%ED%81%AC%EB%AA%BD' target='_blank'&gt;&lt;span&gt;브라크몽 미술검색 더 보기&lt;/span&gt;&lt;/a&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09/8/27/51/map_arrow.jp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lt;dl&gt;&lt;dt&gt;&lt;strong&gt;글&lt;/strong&gt; Caroline Mathieu / 오르세 미술관 학예실&lt;/dt&gt;&lt;dt&gt;&lt;strong&gt;자료제공&lt;/strong&gt; 지엔씨미디어&lt;/dt&gt;&lt;/dl&gt;&lt;p&gt;&lt;strong&gt;이미지&lt;/strong&gt;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amp;nbsp;Wikipedia, Yorck Project&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 //그림목록 이미지형 시작 --&gt;&lt;div&gt;&lt;dl&gt;&lt;dt&gt;&lt;img src='http://static.naver.com/ncc/image/tit_worklist.gif'/&gt; &lt;span&gt;브라크몽의 주요작품&lt;/span&gt; &lt;/dt&gt;&lt;dd&gt;&lt;ul&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A%B0%84%EC%8B%9D%2C+%EB%A3%A8%EC%9D%B4%EC%A6%88+%ED%82%A4%EB%B3%B4%EB%A1%B1%EC%9D%98+%EC%B4%88%EC%83%81%2C+%ED%99%94%EA%B0%80%EC%9D%98+%EC%9E%90%EB%A7%A4&amp;os=510505'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249/01.jpg'/&gt; &lt;strong&gt;화가의 자매&lt;/strong&gt; &lt;span&gt;브라크몽&lt;/span&gt; &lt;em&gt;19세기&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9D%91%EC%A0%91%EC%8B%A4+%EB%82%B4%EB%B6%80&amp;os=655270'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58/02.jpg'/&gt; &lt;strong&gt;응접실 내부&lt;/strong&gt; &lt;span&gt;브라크몽&lt;/span&gt; &lt;em&gt;19세기&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D%9D%B0+%EC%98%B7%EC%9D%84+%EC%9E%85%EC%9D%80+%EB%B6%80%EC%9D%B8&amp;os=718654'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12/218/03.jpg'/&gt; &lt;strong&gt;흰 옷을 입은 부인&lt;/strong&gt; &lt;span&gt;브라크몽&lt;/span&gt; &lt;em&gt;1880년&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where=arts_detail&amp;query=%EC%9A%B0%EC%82%B0&amp;os=655552'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164/04.jpg'/&gt; &lt;strong&gt;우산&lt;/strong&gt; &lt;span&gt;브라크몽&lt;/span&gt; &lt;em&gt;19세기&lt;/em&gt; &lt;/a&gt;&lt;/li&gt;&lt;li&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sm=ncc_clk&amp;where=arts_list&amp;query=%EB%A7%88%EB%A6%AC+%EB%B8%8C%EB%9D%BC%ED%81%AC%EB%AA%BD' target='_blank'&gt;&lt;img src='http://ncc.phinf.naver.net/ncc02/2012/1/12/110/05.jpg'/&gt; &lt;strong&gt;테라스가 있는 정원&lt;/strong&gt; &lt;span&gt;브라크몽&lt;/span&gt; &lt;em&gt;19세기&lt;/em&gt; &lt;/a&gt;&lt;/li&gt;&lt;/ul&gt;&lt;a href='http://arts.search.naver.com/service.naver?sm=ncc_clk&amp;where=arts_list&amp;query=%EB%A7%88%EB%A6%AC+%EB%B8%8C%EB%9D%BC%ED%81%AC%EB%AA%BD' target='_blank'&gt;작품 더보기&lt;/a&gt; &lt;/dd&gt;&lt;/dl&gt;&lt;/div&gt;
&lt;!-- //그림목록 이미지형 끝 --&gt;&lt;p&gt;&lt;span&gt;&lt;strong&gt;&lt;span&gt;발행일&lt;/span&gt;&lt;/strong&gt;&amp;nbsp; &lt;span&gt;2012.02.02&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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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src="http://feeds.feedburner.com/~r/terzeron/navercast/~4/0aRP_7lt4Dk" height="1" width="1"/&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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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CDATA[Sat, 04 Feb 2012 10:05: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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