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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수님짜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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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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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려놓으려면, 붙잡아야 하는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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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Mon, 31 Jul 2023 13:58:18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견딤]]></category>
		<category><![CDATA[고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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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Hang On, Let Go]가 [내려놓으려면, 붙잡아야 하는 것들]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번역을 끝내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프랭크 바이올라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으로서 그가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   답할 수 없는 끝없는 질문 앞에 선 당신에게 십자가에 관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는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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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435017"><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src="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언렛고-표지.jpg" alt="" class="wp-image-5745" width="842" height="1248"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언렛고-표지.jpg 5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언렛고-표지-202x300.jpg 202w" sizes="(max-width: 842px) 100vw, 842px" /></a></figure>


<p> </p>
<h4><em>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Hang On, Let Go]가 [<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435017">내려놓으려면, 붙잡아야 하는 것들</a>]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번역을 끝내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프랭크 바이올라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으로서 그가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em></h4>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 </p>
<h3><strong><a>답할 수 없는 끝없는 질문 앞에 선 당신에게</a></strong></h3>
<h4>십자가에 관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는 그 안에 내재한 물음표다. 이런 질문은 끝이 없다. 시련의 즉각적인 고통 너머에 결과의 불확실성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가?</h4>
<h4>이 책은 고통에 관한 책이 아니다. 당신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견뎌내고 잘 살아내는가에 관한 것이다. 역경에 의해 파멸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그 역경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되는지에 관한 책이다. 당신에게 닥친 큰 위기, 즉 당신의 우주가 붕괴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책이다.</h4>
<h3><b>시련을 견뎌내게 해줄 꼭 필요한 한 권의 책!</b></h3>
<h4><a>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누고자 이 책을 썼는데, 그것은 당신이 계속 버텨내고 헤쳐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특히 당신이 처한 환경이 가장 어둡고, 설상가상으로 당신 앞에 놓인 지뢰밭을 건너가야 할 때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나는 어려움에 반응하는 과정 중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왔고, 그것을 보여주는 흉터가 있다. 따라서 용기를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고통에서 당신을 보호하고자 함이다.<br /></a></h4>
<p> </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435017"><img decoding="async" src="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어렛고-뒷표지-1.jpg" alt="" class="wp-image-5754" width="838" height="1234"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어렛고-뒷표지-1.jpg 5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7/행어렛고-뒷표지-1-204x300.jpg 204w" sizes="(max-width: 838px) 100vw, 838px" /></a></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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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아의 경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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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ue, 30 May 2023 07:21:32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경주]]></category>
		<category><![CDATA[노년]]></category>
		<category><![CDATA[노아]]></category>
		<category><![CDATA[예수님짜리]]></category>
		<category><![CDATA[하나님나라]]></category>
		<category><![CDATA[하나님의집]]></category>
		<category><![CDATA[황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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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침례교 교회 진흥원의 요청으로 중년과 노년을 위한 교재 [노아의 경주](부제: 황혼을 멋지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를 집필하게 되어, 책이 지난 주에 출간되어 나왔습니다. &#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 머리말서론 제1단원 노인(老人)과 하나님의 나라제2단원 노아(老兒)가 됩시다제3단원 노년(老年)의 예수님짜리제4단원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제5단원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며제6단원 한(恨)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서제7단원 메가톤급 신비(비밀)를 아는가?제8단원 턴 빈 보금자리에서제9단원 먼저 자러 들어가기 전에제10단원 적신(赤身)에서 적신(赤身)으로제11단원 황혼을 아름답게 맺는말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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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a href="https://gpf.kr/wLRbK"><img decoding="async" width="744" height="1024" src="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5/노아의-경주-표지-1-744x1024.jpg" alt="" class="wp-image-5725"/></a></figure>



<p></p>



<p style="font-size:15px"><strong>침례교 교회 진흥원의 요청으로 중년과 노년을 위한 교재 <a href="https://gpf.kr/wLRbK" data-type="URL" data-id="https://gpf.kr/wLRbK">[노아의 경주]</a>(부제: 황혼을 멋지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를 집필하게 되어, 책이 지난 주에 출간되어 나왔습니다.</strong></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p>



<figure class="wp-block-image"><img decoding="async" src="https://mall.godpeople.com/img/common/preview_wd/wdbs_book_6.gif" alt=""/></figure>



<p style="font-size:15px">머리말<br>서론</p>



<p style="font-size:15px">제1단원 노인(老人)과 하나님의 나라<br>제2단원 노아(老兒)가 됩시다<br>제3단원 노년(老年)의 예수님짜리<br>제4단원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br>제5단원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며<br>제6단원 한(恨)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서<br>제7단원 메가톤급 신비(비밀)를 아는가?<br>제8단원 턴 빈 보금자리에서<br>제9단원 먼저 자러 들어가기 전에<br>제10단원 적신(赤身)에서 적신(赤身)으로<br>제11단원 황혼을 아름답게</p>



<p style="font-size:15px">맺는말</p>



<p style="font-size:15px">&#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 style="font-size:15px">이 교재는 &#8216;평생 교회를 다녔으니 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그리스도인 아닌가?&#8217;라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인생의 황혼을 더 멋지게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집필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원한 집으로 이사하기 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이 교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p>



<p style="font-size:15px"></p><p>The post <a href="http://yejja.org/?p=5724">노아의 경주</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yejja.org">예수님짜리</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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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 소개: 하늘 다큐; 집을 찾는 하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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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ue, 23 May 2023 07:17:09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박인천]]></category>
		<category><![CDATA[새책]]></category>
		<category><![CDATA[유기적]]></category>
		<category><![CDATA[진에드워즈]]></category>
		<category><![CDATA[하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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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새 책을 소개합니다. 무조건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래와 같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썼습니다. &#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 &#8216;하나님의 시간&#8217;에 맞닥뜨린 책 한 권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제 인생에서도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년 이상 사력을 다해 목회한 결과, 내가 도착한 곳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절망과 죄의식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거기서 지푸라기처럼 부여잡았던 책 한 권이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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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a href="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5/집을-찾는-하나님-표지-1.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20" height="960" src="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5/집을-찾는-하나님-표지-1.jpg" alt="" class="wp-image-5702"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5/집을-찾는-하나님-표지-1.jpg 72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3/05/집을-찾는-하나님-표지-1-225x300.jpg 225w" sizes="auto, (max-width: 720px) 100vw, 720px" /></a></figure>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em><strong>새 책을 소개합니다. 무조건 읽으시기 바랍니다.</strong></em></p>



<p style="font-size:16px"><em><strong>제가 아래와 같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썼습니다.</strong></em></p>



<p style="font-size:16px">&#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strong>&#8216;하나님의 시간&#8217;</strong>에 맞닥뜨린 책 한 권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제 인생에서도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년 이상 사력을 다해 목회한 결과, 내가 도착한 곳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절망과 죄의식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거기서 지푸라기처럼 부여잡았던 책 한 권이 진 에드워즈의 짤막한 단편이었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나는 그때까지도 진 에드워즈라는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런 부류의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푸라기처럼 다가온 그 한 권의 책과 그 책을 쓴 저자와의 만남이 점차 &#8216;내가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지를 견인하는 거대한 섬&#8217;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저는 그 섬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으로 그 섬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이 책을 쓴 저자의 이름이 당신에게 무척 생소할 것입니다. 그가 낮엔 밭을 일구고 저녁엔 형제자매들과 기도하는 평범한 촌부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뿐만 아니라 이 책을 추천하는 제 이름 역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유의 책이 기독교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에겐 낯선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하지만 어떤 연유로든 이 책, [집을 찾는 하나님]이 당신의 눈에 띄었거나 당신의 손에 들어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8216;하나님의 시간&#8217;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책에 계시된 하나님께서 책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당신의 인생 가운데 무슨 일인가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당신의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는 동시, 제가 도착한 그 아름다운 섬으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한국의 유수한 기독교 출판사들이 이 책의 출판을 거부했습니다. 이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읽는다면 당신은 그 이유를 쉽게 알 것입니다. 성경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중심에 접근한 책들이 금서로 분류된 사례는 기독교 역사에서 무수히 많습니다. 어쩌면 그 사실이 이 책의 가치를 입증해주는 역설적 증거라고 믿는 데에 저는 주저함이 없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딱딱한 신학과 건조한 교리를 비켜 가면서 영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몸을 입혀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달콤한 영성을 추구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요청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리로 그들을 초청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역사적 &#8216;인물&#8217;이었던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그 &#8216;인물&#8217;이 사라져버린 그 자리로 부름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분의 &#8216;인격&#8217;과 한 인격체를 이뤄 그 부르심에 반응하며 살지를 탁월한 필치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상상력이 성경의 흐름에 충실하다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옆에 두고 수없이 반복해 읽으면서 그 깊이를 이해하는 한편, 실천으로 옳기고 싶은 책입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이 책의 저자가 번역한 진 에드워즈의 [유기적 성경공부]와 [믿음의 정상에 오를 때]를 저는 동시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당신의 인생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줄 것입니다.</p>



<p style="font-size:16px"></p>



<p style="font-size:16px">저자가 후기(에필로그)에서 소망하듯, 이 책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덥석 건네질 수 있기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제3의 길을 묻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이미 이 여정을 떠난 분들에겐 더 큰 배고픔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만드는 그런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p>



<p style="font-size:16px"><strong>책 주문은 아래의 전화와 이메일로: </strong></p>



<p style="font-size:16px"><strong>전화: 044-868-0979</strong></p>



<p style="font-size:16px"><strong>이메일: bidulgia@gmail.com</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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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 에드워즈를 떠나보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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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ue, 20 Dec 2022 00:11:06 +0000</pubDate>
				<category><![CDATA[기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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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60; 열흘 전인 2022년 12월 9일에 진 에드워즈(Gene Edwards)가 90세를 일기로 이 땅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본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거행하지 않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그의 시신을 매장하기로 했답니다. 평생 희귀병을 앓고 지냈으면서도 신약 성경적인 교회가 이 땅에 서기를 꿈꾸며 교회를 세우고 돕는 사역과 책을 집필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제는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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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6>&nbsp;</h6>


<p class="has-black-color has-text-color" style="font-size:15px"><em>열흘 전인 2022년 12월 9일에 <strong>진 에드워즈(Gene Edwards)</strong>가 90세를 일기로 이 땅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본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거행하지 않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그의 시신을 매장하기로 했답니다.</em></p>



<p class="has-black-color has-text-color" style="font-size:16px"><em>평생 희귀병을 앓고 지냈으면서도 신약 성경적인 교회가 이 땅에 서기를 꿈꾸며 교회를 세우고 돕는 사역과 책을 집필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의 수고를 끝내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그를 추모합니다.</em></p>



<p style="font-size:16px"></p>


<h6>&nbsp;</h6>
<hr>
<h6>&nbsp;</h6>


<p style="font-size:16px">내가 진 에드워즈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0년 12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기독교 신앙 안에 내가 모르는 더 차원 높은 무엇이 있을지 찾으며 방황할 때, 내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곧 그가 쓴 &#8216;A Tale of Three Kings(세 왕 이야기)&#8217;를 통해 그를 알게 된 것입니다.</p>



<p style="font-size:16px">그후로 한달 동안, 그때까지 그가 집필한 책 전부(20여 권)를 주문하여 읽으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strong>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strong>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이것이 나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뒤집어놓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목적 곧 <strong>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복음</strong>이 나로 하여금 더는 방황할 이유가 없게 만들었고, 그 순간부터 그 목적을 이루고 사는 흥분된 삶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p>



<p style="font-size:16px">한 달 후인 2001년 3월 초에 미국 Detroit의 세미나에서 그를 처음 대면하고 나서 더 확신을 얻은 나는 이 복음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후 약 2년 동안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열린 그와 그의 동역자들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가 세운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1월, 그가 마지막으로 교회를 세우며 순회 사역자들을 훈련하고 있던 교회에 합류해서 여러 명의 지체들과 함께하며 교회 생활을 배웠고, 또 그의 초청으로 사역자 훈련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훈련에서 프랭크 바이올라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그가 쓴 책 여덟 권을 번역해서 출간하게 되었고, 지금 또 그가 최근에 집필한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따라서 <strong>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진 에드워즈를 만나게 하신 결과</strong>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영원한 나의 멘토입니다. 하나님께 무한 감사하고, 진 에드워즈에게 또한 감사의 마음 그지 없습니다.</p>



<p style="font-size:16px">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이 시점에서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68세였는데, 지금 나의 나이도 그때 그의 나이에 근접한 68세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나를 이 땅에서 데리고 가실지 모르지만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을 살고 또 전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 복음에 내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p>



<p style="font-size:16px">이 엄청난 복음을 알게 해준 진 에드워즈를 떠나보내는 나의 소회가 바로 이것입니다.</p>


<h6> </h6>
<hr />
<h6> </h6>


<p style="font-size:16px">아래의 책은 진 에드워즈의 책들 중 내가 유일하게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 역시 나의 인생을 새롭게 바꿔주는데 한 몫을 한 소중한 책입니다.</p>


<h6>&nbsp;</h6>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00" height="736" src="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2/12/8970712933_1-1.jpg" alt="" class="wp-image-5643"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2/12/8970712933_1-1.jpg 5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2/12/8970712933_1-1-204x300.jpg 204w" sizes="auto, (max-width: 500px) 100vw, 500px" /></figure>
</div>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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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영원한 목적을 &#8220;보면&#8221;&#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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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Wed, 13 Jul 2022 20:13:03 +0000</pubDate>
				<category><![CDATA[우리가 해야 할 일이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category>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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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최근에 어떤 분이 저에게 &#8220;요즈음엔 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나요?&#8221;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별로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궁색한 대답으로 대충 때운 적이 있습니다. 딱히 글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프랭크 바이올라가 그의 Facebook에 짧은 글을 올렸기에 옮겨서 오랜만에 여기에 올립니다. 이미 제가 이것에 관하여 귀가 닳도록 말하고 다니고,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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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em>***최근에 어떤 분이 저에게 &#8220;요즈음엔 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나요?&#8221;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별로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궁색한 대답으로 대충 때운 적이 있습니다. 딱히 글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프랭크 바이올라가 그의 Facebook에 짧은 글을 올렸기에 옮겨서 오랜만에 여기에 올립니다. 이미 제가 이것에 관하여 귀가 닳도록 말하고 다니고, 손이 닳도록 글을 쓴 그런 주제지만 중요하기에 강조하고자 프랭크의 글을 번역했습니다.</em></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p>



<p>어제 위독한 상태에 있는 나이 드신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8220;하나님이 주신 사명(mission)이 무엇입니까?&#8221; 이에 대한 복음주의나 기독교 주류의 전형적인 대답은 이렇습니다:</p>



<div class="wp-block-group"><div class="wp-block-group__inner-container is-layout-flow wp-block-group-is-layout-flow">
<ul class="wp-block-list"><li>제자를 삼는 것</li><li>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li><li>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li></ul>
</div></div>



<p>나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초기에는 위의 모든 것을 그대로 믿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베일을 벗고 내 앞에 드러나기 전까지는.</p>



<p></p>



<p></p>



<p>그 대답은 영원한 목적입니다. 이것이 제자를 삼는 목표입니다. (스스로 질문해보십시오. 사도들[예수님께서 소위 &#8220;지상 명령&#8221;을 주신 대상]은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했을까요? 당신은 그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방식으로 제자 삼은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1세기 때 어떻게 제자를 삼았는지가 너무나도 분명한데, 우리는 그 방식을 잃어버렸습니다.)</p>



<p></p>



<p>구원의 목표는 죽은 후의 천국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입니다.</p>



<p></p>



<p>그리고 그 목표는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p>



<p></p>



<p>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성경 전체의 원대한 줄거리입니다. 하지만 몇몇 저자들(나 자신을 포함해서)이 이것에 관해 책을 집필하고, 글을 쓰고, 컨퍼런스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알리고 해도,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 그것은 흔히 말하는 &#8220;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8221;이 아닙니다.)</p>



<p></p>



<p>일단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목적을 &#8220;보면(알고 나면)&#8221; 가만 있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경험했기에 말할 수 있습니다.</p>



<p></p>



<figure class="wp-block-gallery has-nested-images columns-default is-cropped wp-block-gallery-1 is-layout-flex wp-block-gallery-is-layout-flex">
<figure class="wp-block-ima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350" height="303" data-id="2086"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14/11/-지상으로-e1415686677134.jpg" alt="" class="wp-image-2086"/></figure>
</figure>



<p></p>



<p></p>



<p></p>



<p></p>



<p></p>



<p></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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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교회가 창기인가(Is the Church  a Whor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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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hu, 13 Jan 2022 21:09:35 +0000</pubDate>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category><![CDATA[가정교회]]></category>
		<category><![CDATA[새예루살렘]]></category>
		<category><![CDATA[신부]]></category>
		<category><![CDATA[어거스틴]]></category>
		<category><![CDATA[어머니]]></category>
		<category><![CDATA[에클레시아]]></category>
		<category><![CDATA[영원한목적]]></category>
		<category><![CDATA[음녀]]></category>
		<category><![CDATA[제도]]></category>
		<category><![CDATA[제도권교회]]></category>
		<category><![CDATA[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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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프랭크 바이올라가 오늘 쓴 따끈따끈한 한 토막의 글을 그의 허락을 얻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교회가 창기인가(Is the Church a Whore)? &#160; &#160; 어거스틴이(Augustine) 말한 것으로 알려져서 많이 인용되는 말이 있다: “교회는 창기(a whore)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어머니이다.” &#160; 이 말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어거스틴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둘째, 이 말은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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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em>***프랭크 바이올라가 오늘 쓴 따끈따끈한 한 토막의 글을 그의 허락을 얻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em></h4>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2 style="text-align: center;"><strong>교회가 창기인가(Is the Church a Whore)?</strong></h2>
<p>&nbsp;</p>
<p>&nbsp;</p>
<h4>어거스틴이(Augustine) 말한 것으로 알려져서 많이 인용되는 말이 있다:</h4>
<h4>“교회는 창기(a whore)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어머니이다.”</h4>
<p>&nbsp;</p>
<h4>이 말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h4>
<h4>첫째, 어거스틴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h4>
<h4>둘째, 이 말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h4>
<p>&nbsp;</p>
<h4>나는 사람들이 “교회” 라고 부르는 인간이 만든 제도(기관, 조직)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위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h4>
<h4>도로시 데이(Dorothy Day)도 비슷하게 말했다: “교회에 관해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인 그리스도의 신부 말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때로는 창기이지만, 우리의 어머니이다.”</h4>
<p>&nbsp;</p>
<h4>도로시 데이가 한 말과 어거스틴이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말을 바로잡으려 한다.</h4>
<h4>나의 버전은 좀 더 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같은 단어를 여과해서 들으므로 그것을 고려해서 재구성과 재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h4>
<h4>나의 버전:</h4>
<h4>“에클레시아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주 예수님의 신부이다. 그녀는 비난을 받거나 기소될 수 없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교회’ 라고 불리는 제도(기관, 조직)가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주었고 또 어느 정도는 그분 안에서 성장하게 해주었으므로, 나는 그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어머니는 새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이다. 그녀는 바벨론의 반대편에 서 있다. 즉, 요한계시록에서 실제로 큰 음녀(창기)라는 딱지가 붙은 그 바벨론의 반대가 에클레시아이다.”</h4>
<p>&nbsp;</p>
<h4>우리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어거스틴이 교회에 관해 실제로 한 말을 인용하겠다:</h4>
<h4>“우리의 진짜 어머니요 그녀의 남편의 진짜 신부인 가톨릭 교회를 공경하자. 왜냐하면, 그녀가 크고 크신 주님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신 이 남편이 창기를 발견하여 처녀로 만들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해방시키신 분의 자비를 잊지 않도록 그녀 자신이 창기였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귀신들과 우상들과 음행을 했는데 어째서 그녀가 창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어거스틴, <em>Sermon</em> 213)</h4>
<p>&nbsp;</p>
<p><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4938"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17/08/이교에-물든-기독교-300x224.jpg" alt="" width="300" height="224"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17/08/이교에-물든-기독교-300x224.jpg 3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17/08/이교에-물든-기독교.jpg 400w" sizes="auto, (max-width: 300px) 100vw, 300px" /></a></p>
<p>&nbsp;</p>
<h4>내가 2008년에 조지 바나(George Barna)와 공저한 <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em>이교에</em> <em>물든</em> <em>기독교</em></a>의 속편들을 읽지 않고 <em>이교에</em> <em>물든</em> <em>기독교</em>의 일부분만 읽은 사람들은 내가 교회를 반대한다는 심한 오해를 하고 있다.</h4>
<h4>이것은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h4>
<h4>조지 바나와 내가 그 빨간 책에서 하고자 한 것은 <strong>제도적</strong> <strong>형태로</strong> <strong>변질된</strong> <strong>교회의</strong> <strong>관행들</strong>의 유래를 추적한 것이다.</h4>
<h4>교회의 제도적 형태는 에클레시아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이다. “가정교회”도 마찬가지이다.</h4>
<h4>이 둘 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다. 그것들은 형태(forms)이다.</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4744"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17/07/-지상으로-책-2-e1501545719696-271x300.jpg" alt="" width="271" height="300" /></a> <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4633"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17/01/BYbWSk-CcAA0A3h-224x300.jpg" alt="" width="224" height="300" /></a></p>
<p>&nbsp;</p>
<h4><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em>이교에 물든 기독교</em></a>의 속편들, 특히 <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em>영원에서</em> <em>지상으로</em></a>와 <a href="https://www.yejja.org/?page_id=129"><em>다시</em> <em>그려보는</em> <em>교회</em></a>에서, 나는 교회를 높이며 그녀가 하나님을 엄청나게 매료시키는 존재임을 드러냈다.</h4>
<h4>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신약 성경이 “교회” 라고 부르는 것을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보다 더 옹호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일부 곧 그분 자신의 몸이라고 믿는다.</h4>
<h4>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조직, 봉사, 의식 절차와는 아주 다르다. 그것들이 “제도권 교회”에서 행해지든 “가정교회”에서 행해지든 관계없이.</h4>
<p>&nbsp;</p>
<h4>그렇다면, 교회가 창기인가?</h4>
<h4>그럴 수는 없다. 만일 신약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에클레시아로 그리는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우리가 논한다면 말이다.</h4>
<h4>그녀는 새로운 창조 세계이고, 새로운 종(species)이고, 새로운 종족(race)이고,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님의 사랑스러운 신부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분이 흠뻑 빠져있는 존재이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중심이다.</h4>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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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노래 소개: 이 놀라운 사랑 크신 그 사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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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ue, 28 Dec 2021 16:59:59 +0000</pubDate>
				<category><![CDATA[시와 찬미와 노래]]></category>
		<category><![CDATA[강권]]></category>
		<category><![CDATA[고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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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유명한 아일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 &#160; &#160; 이 놀라운 사랑 크신 그 사랑이 &#160; 1. 예수님께서 스스로 죄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그의 은혜로 살리셨네 &#160;                      후렴) 이 놀라운 사랑 크신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릴 강권하여 우리 가진 것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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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em>유명한 아일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em></h4>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p>
<p>&nbsp;</p>
<p><audio class="wp-audio-shortcode" id="audio-5507-1" preload="none" style="width: 100%;" controls="controls"><source type="audio/mpeg"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2/이-놀라운-사랑-크신-사랑이.mp3?_=1" /><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2/이-놀라운-사랑-크신-사랑이.mp3">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2/이-놀라운-사랑-크신-사랑이.mp3</a></audio></p>
<p>&nbsp;</p>
<h3 style="text-align: center;"><strong>이 놀라운 사랑 크신 그 사랑이</strong></h3>
<p>&nbsp;</p>
<h4 style="text-align: center;">1. 예수님께서 스스로 죄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h4>
<h4 style="text-align: center;">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그의 은혜로 살리셨네</h4>
<p>&nbsp;</p>
<h4 style="text-align: left;">                    <em> 후렴)</em></h4>
<h4 style="text-align: center;"><em>이 놀라운 사랑 크신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릴 강권하여</em></h4>
<h4 style="text-align: center;"><em>우리 가진 것 주님께 다 드려도 항상 기쁨이 넘쳐나네</em></h4>
<p>&nbsp;</p>
<h4 style="text-align: center;">2.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난 우리 함께 하늘에 앉아있어</h4>
<h4 style="text-align: center;">   창세 전부터 주님이 누리시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네</h4>
<p>&nbsp;</p>
<h4 style="text-align: center;">3.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모든 복을 예수 안에서 받았으니</h4>
<h4 style="text-align: center;">   이 땅의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우린 평안을 누리도다</h4>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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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마리아는 유다에게 비난을 받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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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Wed, 27 Oct 2021 06:22:44 +0000</pubDate>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category><![CDATA[가치]]></category>
		<category><![CDATA[낭비]]></category>
		<category><![CDATA[마리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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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아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2:1-8을 토대로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비난을 대조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이야기는 유다의 유일한 설교를 포함하고 있다. 그가 비난한 말 몇 마디를 들어보라. “어째서 이렇게 허비하는가?” 유다는 주님을 경배하는 마리아의 섬김을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당신이 얻은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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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em>***아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a href="https://gpf.kr/2O9TC">[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a>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2:1-8을 토대로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비난을 대조하여 설명한 것입니다.</em></h4>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h4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gpf.kr/2O9TC"><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8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1-e1635315694337.jpg" alt="" width="400" height="585" /></a></h4>
<h4></h4>
<h4>이 이야기는 유다의 유일한 설교를 포함하고 있다. 그가 비난한 말 몇 마디를 들어보라.<br />
“어째서 이렇게 허비하는가?”</h4>
<h4>유다는 주님을 경배하는 마리아의 섬김을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당신이 얻은 행운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는데!” 하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한 발을 뗀 것이다. 그녀가 한 낭비하는 사랑의 행동은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었고 또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혹감 및 가혹한 비난의 비웃음과 조롱을 모두 다 감수한 것이었다. 사랑이 그녀를 강권했기 때문이다.</h4>
<h4>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옹졸한 불평에 의해 무례하게 훼방을 받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헌신의 징표는 그녀 자신의 마음과 유다의 마음, 그리고 유다에게 호응하는 다른 제자들의 마음을 드러냈다. 유다는 그의 불평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의도를 경건한 미사여구로 은폐하려 했다. 그것은 영적인 척하며 따뜻한 마음을 정죄하는 냉담한 마음의 발로였다.</h4>
<h4>유감스럽게도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유다 한 명으로 그치지 않는다. 핍박과 압제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운 것은 드물다. 구약성서를 읽어보라. 거기엔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관심이 넘쳐난다. 예수님 자신은 이 땅에서 사시는 내내 가난하셨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분의 경쟁자가 아닌 대리자였다.</h4>
<h4>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 어떤 사역보다도 더 소중한 분이다. 그 사역이 아무리 선하고 고상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사역”의 신을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 흥미롭게도, 마리아가 기름부음으로 강조한 주님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가난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것이었다.</h4>
<h4>마리아와 유다를 비교해보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사랑의 빛을 보게 되고, 유다 안에서는 죄의 어두움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장사(burial)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했고, 유다는 그분을 배반(betrayal)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위해 예비하며 그분께 사랑의 표시를 했고, 유다는 그분의 죽음을 도왔다.</h4>
<h4>나는 예수님께서 그분을 최고의 자리에 모시는 모든 사람을 옹호해주신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그분은 나서서 모든 마리아를 변호해주신다. 마리아는 오해와 모욕을 받았지만 결코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방어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복음서에서 그녀가 딱 한 번밖에 말한 적이 없지만, 그녀의 삶의 유산은 그녀의 행동에 의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h4>
<h4>이런 이유로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사랑에서 나온 그녀의 행동은 남자들이 오해할 때 여자가 올바르게 이해한 여러 케이스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마리아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h4>
<p>&nbsp;</p>
<h3><strong>어째서 이것을 허비하는가?</strong></h3>
<h4>당신이 그리스도께 드린 것은 당신의 눈에 보이는 그분의 가치의 척도이다. 예수님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다. 그것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분에게 지나칠 정도로 가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리아는 이것을 이해했다.</h4>
<h4>예수님은 그녀에게 빗발치는 비난을 감지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그녀를 괴롭게 하느냐?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h4>
<h4>주님은 단순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이 향유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너희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가 육체로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h4>
<h4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008000;">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span><br />
<span style="color: #008000;"> 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span><br />
<span style="color: #008000;">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 14:11)</span></h4>
<h4>낭비가 무엇인가?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주는 것이다. 낭비는 당신이 개에게 다이아몬드를 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당신이 가치가 떨어지는 대상에게 뭔가 가치있는 것을 주는 것이다. 뭔가 가치있는 것이 다른 곳에 쓰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그것을 낭비라고 부른다.</h4>
<h4>유다와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주님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 꼭 기억하라. 당신이 당신에게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때마다, 당신의 동료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것을 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h4>
<h4><span style="color: #993300;">“당신은 어째서 진로를 준비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습니까? 그 대신 어리석게 크리스천 그룹에 모든 관심과 시간을 쏟는 길을 택하며 당신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습니까?”</span><br />
<span style="color: #993300;"> “당신은 어째서 그 사람들과 결별했습니까? 그들이 좋은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들과 함께 멋진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었는데. 당신은 단지 그들이 당신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관계를 끊어버린 것입니다.”</span><br />
<span style="color: #993300;"> “당신은 어째서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까? 고작 그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당신은 왜 돈을 낭비합니까?”</span><br />
<span style="color: #993300;"> “당신은 어째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습니까? 단지 교회와 함께하기 위해 당신은 급여가 낮은 직업을 택했습니다. 왜 당신의 삶을 낭비합니까?”</span><br />
<span style="color: #993300;"> “당신은 어째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주식 배당금을 사용했습니까? 당신은 왜 저축해놓은 돈을 낭비합니까?”</span></h4>
<h4>당신이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라는 불평을 들을 때는 언제든지, 당신이 유다의 복음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만일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이 관심을 두어야 할 주님의 반응은 이것이다.</h4>
<h4><strong><span style="color: #000000;">“그를 가만 두라….”</span></strong><br />
<strong><span style="color: #000000;"> “그녀를 가만 두라….”</span></strong><br />
<strong><span style="color: #000000;"> “그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span></strong><br />
<strong><span style="color: #000000;"> “그녀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span></strong></h4>
<h4><span style="color: #800080;">어떤 사람들이 낭비라고 여기는 것은 주님의 눈에 좋은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낭비하는 것이다.</span></h4>
<h4><span style="color: #800080;">따라서 “어째서 이렇게 낭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가치 있기 때문에”이다&#8230;</span></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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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 나온 책: 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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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Wed, 06 Oct 2021 15:52:59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favorite]]></category>
		<category><![CDATA[Viola]]></category>
		<category><![CDATA[나사로]]></category>
		<category><![CDATA[대장간]]></category>
		<category><![CDATA[마르다]]></category>
		<category><![CDATA[마리아]]></category>
		<category><![CDATA[바이올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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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프랭크 바이올라의 &#8216;God&#8217;s Favorite Place on Earth&#8217;가 &#8216;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8216;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년 전에 번역을 마치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160;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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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프랭크 바이올라의 &#8216;God&#8217;s Favorite Place on Earth&#8217;가 &#8216;<a href="https://gpf.kr/xW9e9">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a>&#8216;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년 전에 번역을 마치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h4>
<p>&nbsp;</p>
<p><a href="https://gpf.kr/P8Rp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61"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e1633534511698.jpg" alt="" width="600" height="892" /></a></p>
<p><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603103#"><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62"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7-e1633534884126.jpg" alt="" width="600" height="897" /></a></p>
<p><a href="https://gpf.kr/xW9e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63"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3-e1633534951280.jpg" alt="" width="600" height="889" /></a></p>
<p><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603103#"><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6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5-e1633535023151.jpg" alt="" width="600" height="889" /></a></p>
<p><a href="https://gpf.kr/xW9e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66"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6-e1633535053439.jpg" alt="" width="600" height="889" /></a></p>
<p><a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603103#"><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7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7-2-e1633543961870.jpg" alt="" width="600" height="889" /></a></p>
<p><a href="https://gpf.kr/xW9e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76"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8-1-e1633544006460.jpg" alt="" width="600" height="889" /></a></p>
<p><a href="https://www.yejja.org/?page_id=737"><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81"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GFPCover-e1633544826585.jpg" alt="" width="600" height="428" /></a></p>
<p><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주님은-베다니를-사랑했지-1.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48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1/10/-베다니를-사랑했지-1-e1633621595952.jpg" alt="" width="600" height="877"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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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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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Wed, 01 Sep 2021 19:18:47 +0000</pubDate>
				<category><![CDATA[유기적 교회에 관한 글]]></category>
		<category><![CDATA[사도]]></category>
		<category><![CDATA[사역자]]></category>
		<category><![CDATA[선지자]]></category>
		<category><![CDATA[수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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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참교회]]></category>
		<category><![CDATA[총체적복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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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하나님의필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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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최근 한국의 어떤 지역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모임의 지체들이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부탁해왔기에 써서 보낸 글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 지체들이 지금 당장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교회 생활을 오래 경험한 다음 먼 훗날에 다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법 길게 써서 보낸 내용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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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strong><em>***최근 한국의 어떤 지역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모임의 지체들이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부탁해왔기에 써서 보낸 글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 지체들이 지금 당장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교회 생활을 오래 경험한 다음 먼 훗날에 다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법 길게 써서 보낸 내용입니다.</em></strong></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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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h4>
<h4>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소식을 얼마 전 접하고 감사한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창세 전에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에 반응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교회로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의 힘찬 출발을 응원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h4>
<h4>오늘은 지금부터 111년 전인 1910년 8월 29일에 한일 합병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치욕적인 날로써 흔히 “국치일”이라고 부르는 날인데, 2021년 8월 29일은 “국경일” 축제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國)에 축하(慶)할 일이 생긴 날(日)이니 실로 국경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축제의 한복판에 있는 여러분을 멀리 미국에서 마음껏 축하하고 싶습니다.</h4>
<h4>이번에 새롭게 태동하는 여러분의 모임을 보면서 제가 20여 년 전에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첫발을 내디딜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전에 20년 가까이 청춘을 바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결국 방황의 늪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때 저에게 찾아온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엄청난 충격과 감격과 환희를 안겨주었습니다. 제 나이 47세에 벌어진 일로서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항상 가슴이 떨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난 20여 년 동안 저는 그 복음의 능력을 더 놀랍게 끊임없이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감탄하고 또 흥분하고 있습니다.</h4>
<h4></h4>
<h4>지금 생각하면, 진정 그리스도와 교회를 전혀 모르고도 아는 줄로 착각하고 용감하게 목회했었던 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죽어서 천국에 갈 소망만 붙잡고, 축소된 복음을 가지고 간신히 연명하면서 살았었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에 인생을 다 걸고 정신없이 뛰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 반전을 허락하셔서 지난 20여 년을 복음에 사로잡혀, 같은 복음에 반응한 교회들과 함께 신바람 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이런 여정에서 여러분의 소식을 듣게 되니 다시 한번 가슴이 설렙니다.</h4>
<h4></h4>
<h4>여러분의 멋진 출발이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날로 더 충만한 가운데 지속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지난 20년 이상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중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려면 우리가 꼭 알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집이요, 신부요, 가족인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 위해 이것들만큼은 꼭 있어야 한다고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h4>
<h4></h4>
<h4>제가 복음을 알고 감격하고 흥분해서 미국과 유럽을 몇 년 동안 돌아다니며 교제했던 수십 개의 소위 유기적 교회 또는 가정 교회들 중(그리고 만나지는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수많은 교회들 중) 지금 남아있는 모임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100 퍼센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모든 교회가 처참하게 공중 분해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또 제가 함께 해온 교회들을 보면서 이것들만큼은 참된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데 필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꼭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리라 믿고, 제가 필수 중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만 제시하겠습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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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h4>
<h3><strong>1) 참된 주님의 교회를 이루려면 우선 그리스도의 총체적인 복음에 사로잡혀야 합니다.</strong></h3>
<h4></h4>
<h4>이 말은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올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유기적 교회들(또는 가정 교회들)이 제도권 교회를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을 하지만 빨리 우수한 교회를 이루어야겠다는 야망 때문에(또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실체 없는 꿈 때문에) 초점을 “참된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맞춥니다.</h4>
<h4></h4>
<h4>하지만 이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려면 한참 멀었는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보낼 생각부터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는 창세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생명과 사랑으로 하나로서 교제하시던 그것이 이 땅으로 확장된 것이므로, 이 교제가 제대로 여기서 이루어지려면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유하시던 그것을 제대로 알고 경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즉,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낳아주셔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h4>
<h4></h4>
<h4>그것이 바로 제가 ‘총체적인 복음’이라고 표현하는 복음에 사로잡힐 때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3장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했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곧 “복음”이라고 했던 이것에 대해 우리가 통달하고 늘 감격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추인 상태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즉, 구약시대에 그 누구도, 또한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그 누구도 이 복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 승천을 통해 모든 것을 완성하신 후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것을 나타내셨을 때 그들이 역사상 최초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h4>
<h4></h4>
<h4>이 복음은 천사들도, 마귀와 그 졸개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가 됩니다. 이 복음이 그동안 축소되고 왜곡되어 전해져서 오늘날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이(주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들이 이 총체적인 복음에서 만나지 않고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가지고 교회를 잘 해보려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나고, 온갖 문제가 생겼을 때 버텨내고 소생하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h4>
<h4></h4>
<h4>따라서 복음을 알고, 더 알고, 더 분명히 아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된 교회들은 총체적인 복음의 터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복음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괜찮은 교회를 만들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가진 지체들이 서로 주도하려고 하다가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교회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총체적인 복음이 아니면 교회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아는 복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복음을 아는 것에만 우선 집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h4>
<h4></h4>
<h4>저는 총체적인 복음을 처음 접하고 20년 이상 지난 지금, 복음으로 살아오고 또 수도 없이 그 복음을 전해왔지만, 아직도 복음을 더 깊이 아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가 아내와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내를 다 알지 못하듯이….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도 복음을 놓고 씨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이 우리 삶을 지배할 때, 그 복음에 늘 감격하며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에 사로잡힐 때,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는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복음을 더 깊이 아는 데 집중하시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겸손하게 “나는 아직 복음을 제대로 모른다”는 자세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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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복음을 아는 데 있어 저에게 가장 도움을 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제가 지난 20년 이상 수없이 늘 읽고 또 읽고 있는 것들입니다. 읽기만 할 뿐 아니라 깊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20년 가까이 목회를 하며 설교, 부흥회, 세미나 등에서 수천, 수만 번 말씀을 전했지만 저는 복음의 반의 반도 몰랐었는데, 이 성경 본문들 속에서 복음을 총체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이 본문들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세미나도 하고, 책도 집필했지만 이 본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것이 기적이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본문들을 참고로 해서 복음의 깊이가 더해지면 좋겠습니다.</h4>
<h4></h4>
<h4>이 본문 말씀이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이 아닌 전혀 차원이 다른 말씀으로 다가올 때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며, 또 교회로 살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30년 가까이 그분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수십 개 세운 후에 쓴 편지가 에베소서이고, 요한 역시 예수님을 만난 후 적어도 5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쓴 것이 요한복음으로서, 이 두 성경 본문에는 그들이 말년에 더 깊이 알게 된 주옥같은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엄청난 이야기인데, 이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h4>
<h4><u>에베소서 </u><u>1- 6 </u><u>장</u></h4>
<h4>바울이 특정한 교회에 쓴 것이 아니라, 말년에 여러 교회가 있는 지역에 쓴 편지로서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서도 직접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내용입니다. 이 안에 헤아릴 수 없는 보화가 가득 쌓여있습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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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u>요한복음 </u><u>13-17 </u><u>장</u></h4>
<h4>13-16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 즉 최측근들만 모아놓고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 밤에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만큼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차원을 확장시켜서 교회도 똑같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역사를 미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있는 생명과 사랑이 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h4>
<h4></h4>
<h4>17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하신 내용이니, 성경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차원이 확장되어 교회도 똑같이 경험하는 역사를 위한 기도입니다.</h4>
<h4></h4>
<h4>이 두 본문에 통달하고 총체적인 복음을 나날이 더 깊이 깨달아 감격 속에 이 내용 그대로를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매주 한 번은 이 두 본문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시기를 제안합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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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strong>2)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strong></h3>
<h4></h4>
<h4>총체적인 복음을 아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깨달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역사상 수많은 이단이 성경에서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도, 가톨릭도, 사이비들도 성경을 잘못 읽고 해석해서 인류 역사상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추하고도 무서운 일들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읽을 수 있도록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h4>
<h4></h4>
<h4>저는 위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된 교회들 대부분이 성경을 등한시하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도권 교회에서 설교와 성경 공부를 강조하니까 반작용으로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또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강조하다가 서로 부딪히니까 아예 성경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이 어디를 봐도 비중이 똑같다고 잘못 생각하므로 여기저기서 성경 구절을 갖다가 주장하니까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성경관의 정립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에 관해 잘 배워야 합니다.</h4>
<h4></h4>
<h4>그렇다고, 성경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을 많이 읽고, 큐티를 하고, 설교를 많이 듣는 것을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정확히 발달하지 않으면 성경을 100 독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설교를 수만 번 하거나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의 단어와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달달 외워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제대로 배우는 것에 집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꿈, 소원, 목적, 필요, 의도 등을 잘 파악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즉, 성경 안에서 제가 앞에서 강조한 그 복음을 만나야 하고, 그 복음대로 살아가야 합니다.</h4>
<h4></h4>
<h4>그리고 이미 실행하고 있겠지만 성경에 충실하고 복음을 잘 설명해놓은 책들을 읽으면 성경을 보는 눈이 생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신앙과 교회와 관련된 수십, 수백 개의 책을 읽어봐야 지식만 늘어나고 비판적인 시각만 생길 뿐이지 주님을 따라 사는 데는 도움이 별로 안 됩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수백 권의 책을 읽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다독보다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초점을 맞춘 책 단 몇 권만 택하여 책 하나당 적어도 다섯 번 이상(열 번이라도) 정독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떤 지체는 책 하나를 14번 정독했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다음, 그 책들로 책 모임을 하며 하나씩 제대로 짚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제가 집필한 책들까지도 종종 읽고 또 읽곤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책들이므로 눈을 감고도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와 복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무엇을 많이 아는 것보다 성경을 보는 눈이 발달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복음을 마스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수라고 믿습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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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strong>3) 나의 필요(사람의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필요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strong></h3>
<h4></h4>
<h4>위에서 제가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하나님의 필요’ 또는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것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임을 단 한 순간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람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위로하고,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갈 때 부산물로 생길 수는 있지만,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필요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 그런 것들도 다루긴 다루어야 하겠지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튼튼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필요에 따라 그들의 삶에 개입할 뿐, 그리고 그들을 주 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돌볼 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고 우리 각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h4>
<h4></h4>
<h4>결국 모든 지체는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 곧 그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부인하고, 제거하고, 포기하고, 떨쳐버리라고 한 것들을 도로 주워 담아서 해결하는 것에 교회가 힘을 빼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요원합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인써전스’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h4>
<h4></h4>
<h4>이것을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교회는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적 필요와 영적 필요를 둘 다 포함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육적 필요에 집중하는 신앙을 ‘기복 신앙’이라고 비하하지만, 인간의 ‘영적 필요’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합니다. 나의 구원, 나의 구원의 확신, 오늘 죽어도 천국 가는 나, 나의 축복… 나의 섬김, 나의 교제, 나의 사역, 나의 교회, 나의 전도, 나의 선교… 전부 ‘나’ 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영적인 것이라 해도 우리는 나의 필요에 의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h4>
<h4></h4>
<h4>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 곧 하나님의 필요에 삶의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집이요, 가족인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지, 교회가 사람의 육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면 곤란합니다. 제가 아는 많은 유기적 교회가 이런 인간의 필요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필요를 등한시하다가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와 다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와 목적만을 철저하게 고집하기 바랍니다.</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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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h4>
<h3><strong>4) 외부의 도움, 즉 사역자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strong></h3>
<h4></h4>
<h4>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하나로 존재하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꿈인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잘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외부 사역자들이 처음 얼마 동안은 꼭 교회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울 때 한 교회에서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때로는 1년 이상을 지체들과 함께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주고, 삶으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냥 함께 지낸 것이 아니라 날마다 모였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말은 가끔씩 모임을 갖는 오늘 우리에게 대입하면 적어도 3년에서 5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역자들에 의해 기초가 든든히 다져졌기 때문에 1세기의 교회들은 많은 핍박과 문제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h4>
<h4></h4>
<h4>그런데 다시 앞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 된 교회들을 소환하자면, 그들 대부분이(아마 거의 전부가) 외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기들끼리 교회를 세워보려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파선하게 된 것입니다. 총체적인 복음에 의해 오랫동안 교회로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끼리 신약 성경적인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선생님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학 입시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는 강의실에서 수영 강습을 받은 사람들이 수영 강사 없이 수영장에 들어가 훈련을 하고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수영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개의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오랫동안 물 속에서 지내며 수영이 몸에 밴 전문가와 함께 하는 것이 수영을 터득하는 지름길이듯이, 교회 생활도 그런 베테랑들을 통해 겸손하게 배우고 훈련받고 실제로 살아봐야 합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들이 시작되고 자라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모습입니다.</h4>
<h4></h4>
<h4>그런 사역자들의 도움에 의해 복음과 교회 생활이 점점 몸에 배어감에 따라 나중엔 그들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지체들의 역할이 늘어나게 되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h4>
<h4></h4>
<h4><strong><span style="color: #339966;">&#8220;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각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개인이 아닌 머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된 인격체)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8221; (에베소서 4:11-15)</span></strong></h4>
<h4></h4>
<h4>이 말씀이 여러분의 모임에서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만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이루어져 머리 예수님과 하나가 된 ‘온전한 사람’이 세워집니다. 여기서 “다”를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 지체 모두의 몫입니다. 목소리가 큰 누가 혼자 주도하지도 않고, 덩달이로 다른 지체에게 묻어가지도 않고 지체들 각자가 그리스도와 복음을 아는 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h4>
<h4></h4>
<h4>또 “하나”라는 말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믿고 아는 것이 다르면 온전한 교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지체들이 하나가 아닌, 제각각 이런저런 다양한 믿음을 주장하면서 공존하면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세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같은 복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에 일꾼들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도록 돕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잘 알고 교회를 풍부하게 경험한 외부 사역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겸손함이 여러분에게 꼭 있기를 바랍니다.</h4>
<h4></h4>
<p>&nbsp;</p>
<h4>위의 네 가지 외에도 강조해야 할 사항이 많이 있지만, 일단 이것들만 제대로 알고 실천해도 머지않아 차원이 다른 교회 생활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향한 저의 부탁입니다. 물론 많은 고민, 갈등, 눈물도 따라오겠지만, 이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버티고 견뎌내는 사람들은 그런 교회 생활을 누리게 될 날이 꼭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제가 부탁한 이것이 왜 그리 중요한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h4>
<p>&nbsp;</p>
<h4>마지막으로, 총체적인 복음은 여러분을 향해 여러분이 아래의 성경 본문의 내용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진실로 믿고 온종일, 아니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즉 교회를 예수님과 똑같이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내용입니다. 제가 ‘예수님짜리’ 라고 명명한 존재가 바로 교회요 그 안의 지체들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 “하늘에 동석한 자”, “영화롭게 된 자”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만이 참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h4>
<h4></h4>
<h4><strong><span style="color: #339966;">&#8220;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여기서 “복”이란 하나님이 교회를 좋게 말하신다는 의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게 말하는 존재는 예수님과 성령님 이외에는 없는데, 우리도 똑같이 좋게 말하신다는 뜻)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8221; (에베소서 1:3-6)</span></strong></h4>
<p>&nbsp;</p>
<h4>주님의 놀라운 평강이 늘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h4>
<h4></h4>
<h4>2021년 8월 29일, 역사적인 날에</h4>
<p>&nbsp;</p>
<p>&nbsp;</p><p>The post <a href="http://yejja.org/?p=5442">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들</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yejja.org">예수님짜리</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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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기적 교회로 안내하는 좋은 블로그 소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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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Mon, 17 Aug 2020 17:37:24 +0000</pubDate>
				<category><![CDATA[유기적 교회에 관한 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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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60; ***인터넷 상에 유기적 교회 또는 가정 교회에 관한 블로그나 카페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주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실지로 그렇게 살고 있는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이 두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들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블로그 제목이나 사진을 클릭하면 블로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포도나무와 생명으로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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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nbsp;</p>
<h4><em>***인터넷 상에 유기적 교회 또는 가정 교회에 관한 블로그나 카페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주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실지로 그렇게 살고 있는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이 두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들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블로그 제목이나 사진을 클릭하면 블로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em></h4>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2><strong><a href="https://blog.naver.com/dyskekq">포도나무와 생명으로 연결되어 사는 가지들의 행복</a></strong></h2>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blog.naver.com/dyskekq"><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92"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Screenshot-21-1-e1597689459903.png" alt="" width="600" height="318"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Screenshot-21-1-e1597689459903.png 6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Screenshot-21-1-e1597689459903-300x159.pn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a></p>
<p>&nbsp;</p>
<p>&nbsp;</p>
<h2><strong><a href="https://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oinsky&amp;skinType=&amp;skinId=&amp;from=menu">가정교회 이야기: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 그 놀라운 비밀에 대하여</a></strong></h2>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oinsky&amp;skinType=&amp;skinId=&amp;from=menu"><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94"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Screenshot-22-1-e1597689645992.png" alt="" width="600" height="314" /></a></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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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따뜻한 편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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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Fri, 14 Aug 2020 18:57:14 +0000</pubDate>
				<category><![CDATA[유기적 교회에 관한 글]]></category>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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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최근에 제가 아래와 같은 편지 하나를 받았는데,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때 문득 사도행전 4:32-37의 예루살렘 교회에서 있었던 일과 고린도후서 8:1-15에서 바울이 칭찬한 마게도냐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160;   &#16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현재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매우 안 좋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혹시 교회의 지체들 중에 직장에서 월급이 급격히 줄게 됐다거나, 퇴사를 했다거나, 경제적으로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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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h4><em>최근에 제가 아래와 같은 편지 하나를 받았는데,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때 문득 사도행전 4:32-37의 예루살렘 교회에서 있었던 일과 고린도후서 8:1-15에서 바울이 칭찬한 마게도냐 교회가 생각났습니다.</em></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4장-32-37-e1597430841569.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81"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4장-32-37-e1597430841569.jpg" alt="" width="290" height="241" /> </a><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8장-e159743121366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84"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8/-8장-e1597431230456.jpg" alt="" width="188" height="241" /></a></p>
<p>&nbsp;</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4>현재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매우 안 좋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h4>
<h4>혹시 교회의 지체들 중에 직장에서 월급이 급격히 줄게 됐다거나, 퇴사를 했다거나, 경제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은 가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h4>
<h4>제가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h4>
<h4>저희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손님이 0 명이었는데 지금은 다행이도 조금씩 손님들이 들어오는 추세입니다.</h4>
<h4>6월 말부터 현재까지는 일이 계속 진행이 되어 많이 회복이 됐습니다.</h4>
<h4>주님께서 이 때에 그래도 어느 정도 제게 사업의 문을 열어주신 게 혹시 이것을 위함이 아닌지 생각도 되고, 교회의 지체들 생각이 많이 나게 하셔서 목사님께 여쭙니다.</h4>
<h4>사실 아무도 경제적으로 타격이 없고 잘 지내고 있으면 가장 좋긴 하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면 말씀해 주세요.</h4>
<h4>많은 금액은 아니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h4>
<p>&nbsp;</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4><em>이  지체는 위의 편지를 보낸 후에 저에게 거금을 보내왔고, 이것이 씨가 되어 다른 형제, 자매들 또한 기꺼이 동참해서  모은 성금을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많이 힘든 상황에 놓인 지체에게 전달했습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인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교회의 힘을 또 한번 경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em></h4>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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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난 열흘 동안 받은 메시지 속의 고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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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Fri, 17 Jul 2020 03:50:23 +0000</pubDate>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category><![CDATA[고백]]></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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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60; ***금년 초에 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번의 한국 방문이 취소되어  한국의 교회 지체들 소식이 궁금했는데, 지난 열흘 동안 연달아서 날아온 메시지의 사이다 같은 고백을 접하고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그것들을 나누고자 아래에 싣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1. 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2년 된 지체 &#160; ‘영원에서 지상으로’의 복음을 듣자마자 “바로 이거다!” 확신하며 이 교회로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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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nbsp;</p>
<h4><em>***금년 초에 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번의 한국 방문이 취소되어  한국의 교회 지체들 소식이 궁금했는데, 지난 열흘 동안 연달아서 날아온 메시지의 사이다 같은 고백을 접하고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그것들을 나누고자 아래에 싣습니다.</em></h4>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1><strong>1. 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2년 된 지체</strong></h1>
<p>&nbsp;</p>
<h4>‘<a href="http://gpf.kr/If9iI">영원에서 지상으로</a>’의 복음을 듣자마자 “바로 이거다!” 확신하며 이 교회로 살기 시작한 게 어느새 꽉찬 2년이 됐습니다. 그간 ‘<a href="http://gpf.kr/oq9wa">예수님짜리</a>’의 정체성이 누리게 해주는 자유함과 총체적인 복음의 능력이 감당케 해준 자족함으로 마냥 기쁘고 감격하며 지내왔는데, 두어 달 전부터는 ‘<a href="http://gpf.kr/Hc94P">예수님 자리</a>’에서의 삶을 깊이 묵상하게 됐습니다.</h4>
<p>&nbsp;</p>
<h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는 주님의 말씀처럼 참 사랑을 한다는 건 체휼함이 먼저일진대…  현대 도시의 삶에 최적화된 지극히 평범한(?) 개인주의자로 살던 제게 던져진 이 화두는, 지금까지 기껏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어떤 것들을 사람의 의와 열심으로 제공하는데 그치다가, 결국 영육의 한계점에 부딪혀 자괴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던 저로선 막연하게 짐작만 해오던 부분이었습니다.</h4>
<p>&nbsp;</p>
<h4>그런데 이젠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h4>
<h4>아버지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영원부터 섭리되어진 십자가의 희생, 섬김, 사랑…  2천 년 전 주님이 홀로 걸으셨고, 같은 길을 면면히 걸어왔던 수많은 선배들의 맥을 이어 마치 주님이 제게 “너도 나와 함께 걷겠니?” 하시며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선하심으로 물으시며, 하찮고 보잘것없는 저를 설득시키시는 것 같은 거룩한 그 물결 앞에 “아! 주님의 설득하심이 이런걸까?”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h4>
<p>&nbsp;</p>
<h4>“이제까지 내가 했던 사랑은 가짜구나&#8230;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구나…”가 깨달아지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십자가의 삶, 그 체휼함의 고난을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육신의 정욕도 밀려왔지만, 그러기에 더욱 내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이끄심만이 나를 주장케 해달라는  마음의 소원이 가득해짐을 느꼈습니다.</h4>
<p>&nbsp;</p>
<h4>저 자신을 보면 잘 할 자신은 없지만… 그동안 거저 누려온 ‘<a href="http://gpf.kr/uz9QW">예수님짜리</a>’의 기쁨과 감격, 그 거룩한 은혜의 무게가 이제는 체휼의 삶인 ‘<a href="http://gpf.kr/vo9zu">예수님 자리</a>’로 조용히 옮겨지는것 같습니다.</h4>
<h4>아직도 저라는 인간은 변한 게 없지만, 위대한 복음의 능력이 제 삶을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낍니다.</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gpf.kr/wr9yx"><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66"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지상으로-표지-e1594954365119.gif" alt="" width="195" height="195" /></a> <a href="http://gpf.kr/jQ9sw"><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67"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표지-e1594954414673.gif" alt="" width="195" height="195" /></a> <a href="http://gpf.kr/oO9Qo"><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68"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자리-표지-e1594954467405.jpg" alt="" width="142" height="195" /></a></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p>&nbsp;</p>
<h1><strong>2. </strong><strong>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5년 반 된 지체</strong></h1>
<p>&nbsp;</p>
<h4>내게 다가온 기쁜 소식을 혼자만 알고 누릴 수 없기에 몇 자 올리려 합니다.</h4>
<p>&nbsp;</p>
<h4>2020년 7월 11일 늦은 오후 한 형제의 “복음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h4>
<h4>“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왔고, 내가 천국 시민이고 새 종족이다.”</h4>
<h4>(이렇게 답했을 때 함께 있었던 형제, 자매들은 “저 친구 뭐야!!” 라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습니다.)</h4>
<h4>지금 흥분을 가라앉히며 글을 씁니다.</h4>
<p>&nbsp;</p>
<h4>관념적이며, 지식적으로 수도 없이 듣고 또 듣고 알았다고 자부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내게 실체화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h4>
<p>&nbsp;</p>
<h4>목사님.</h4>
<h4>아, 자주 말씀하신 “흥분을 안하면 기적”이라는 그 말씀이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벌써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있지만, ‘지금 이 시간의 나를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고 다시 경험치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목사님을 깨웁니다.</h4>
<p>&nbsp;</p>
<h4>지금 밖은 비가 내려 좁은 거실에서 총총거리니, 아내가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앉아 있으랍니다. 반쪽의 속도 모르는 반쪽&#8230; 그것마저 사랑스런 반쪽.</h4>
<p>&nbsp;</p>
<h4>2008년 아무것도 모르고 받은 침례,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고 새 시민으로 살고자 앞으로 올 기회에 침례받기 원합니다.</h4>
<p>&nbsp;</p>
<h4>이해하여 주세요! 머리와 가슴과 손이 따로 놀고 있음을&#8230;..</h4>
<p>&nbsp;</p>
<h4>‘2020. 07. 11. 17시 경’</h4>
<p>&nbsp;</p>
<h4>다른 분들과 목사님이 벌써 느끼시는 감격의 경험에 지금 제가 동참한 시간을 기억하렵니다. 앞으로의 시간, 기대만으로 설레입니다.</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침례-사진-e1594957267177.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70"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침례-사진-e1594957267177.jpg" alt="" width="250" height="283" /></a></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p>&nbsp;</p>
<h1><strong>3. </strong><strong>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5년 된 지체</strong></h1>
<p>&nbsp;</p>
<h4>2014년 제도권 교회를 나와 유기적 교회로의 귀한 초대를 받고도 5년이라는 시간을 정확한 복음도 모른 채, 내 삶의 목적도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가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갈증을 느끼며 진짜 복음을 알고 싶어 참 생명을 소개하는 <a href="http://www.yejja.org/?page_id=4847">요한복음 메시지</a>를 듣고 또 들으며, 음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영혼이 있어야 할 곳은 하늘임을 알게 되어, 2019년 봄 교회 안의 한 언니를 향해 문을 두드렸다. 바울 옆의 디모데처럼 교회의 삶을 보고 배우며 하늘 차원의 과격한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저 너머의 차원에 있는 듯한 그 언니의 삶은 바울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삶이요, 아름다운 신부의 삶이요, 오로지 교회를 위해 사는 지체의 삶으로 보였다.</h4>
<p>&nbsp;</p>
<h4>그 삶은<a href="http://gpf.kr/lR9Gt"> [생명에서 생명으로]</a>  교재에 나오듯 지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가히 내가 흉내도 내지 못할 삶이었다. 최근 읽었던 책에 &#8216;바울의 등에 난 채찍질의 흉터를 보았는가?&#8217;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마치 그 언니에게서 바울의 등에 난 흉터 자국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채워온, 그 상처가 난 자국들을 보았던 것이다. 먼저 살아내신 언니를 1년 동안 보고 배우며,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8220;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8221; 라고 물으셨듯이 내 삶에서 만난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삶으로 살아낼 것인가, 내가 전해 들은 예수가 아니라 내 삶에서 나와 함께 살자고 하신 나의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께 어떤 모습으로  영원 전부터 받은 그 사랑을 돌려드리며 (감히 돌려드릴순 없겠지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h4>
<p>&nbsp;</p>
<h4>너무나도 크신 그분 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한없이 작고 낮은 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절대로 나 혼자로는 예수님을 다 알 수 없어 교회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로 화답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예수그리스도의 것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들어가도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더러운 배설물과 악뿐임을 처절히 깨닫는다. 온전히 교회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 언니 옆에서 지내며 본 그 삶으로 내 삶의 무게는 깃털만도 못함을 느끼며 오다보니 나 혼자 겪어야 했을 시간보다 한결 수월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과 인내는 나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그분만을 바라고 싶은 소망을 따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가 내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육신의 문제 해결 따위는 어느새 경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것들을 초월하고 있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8221;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의 어느 하나도 내 것이 없으므로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다. 오직 그분의 것이다.</h4>
<p>&nbsp;</p>
<h4><a href="http://gpf.kr/Jk9iB">[인써전스]</a> 책에 나오는 “하늘의 식민지” 라는 단어가 나로 하여금 주님을 향한 복종과 항복이 저절로 나오게 해준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타나야 할 것은 내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이 나는 마땅히, 온전히 죽어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내 안에 살아움직이기 시작함을 느낀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는 때와 크기와 상관없이 똑같음을 깨달은 은혜로 지체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의 연약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그분이 드러나시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아니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기만 하면 된다. 단지 내 영이 그것을 알아보고 영과 육을 분별할수 있기를… 그분이 나타나기 위한 나의 역할을 알아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h4>
<p>&nbsp;</p>
<h4>이제는 내 삶이 교회와 지체를 위해서라면 수치와 억울함을 당해도, 손해를 보더라도, 설령 죽는다 해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모두 내놓는 삶이어야 한다. 이제는 책에서 읽고 말씀에서 듣는 그분의 것들이 내 안에 활활 타오름을 느낀다. 그 불길에 나는 모두 태워버려 주님만 남아 오직 그분만 사랑하기 원한다. <a href="http://gpf.kr/ap9nN">사망에서 생명으로</a> 이끄시어 <a href="http://gpf.kr/ui9Uk">예수님짜리</a>로 봐주시고, 영원에서 영원으로 <a href="http://gpf.kr/bf9g4">예수님 자리</a>에 살게 하신 이 삶은 한시도 정체될 수 없다.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시던 그 교제가, 아들과 신부가 누리는 그 교제가 내게도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시작된 이 영원으로 향한 과격하고 절박한 앞으로의 삶이 너무나 기대된다.</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gpf.kr/oy9wS"><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7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생명으로-표지-e1595033164292.jpg" alt="" width="190" height="260" /></a> <a href="http://gpf.kr/OR96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64"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생명으로-표지-e1595033189396.jpg" alt="" width="188" height="260" /></a> <a href="http://gpf.kr/LZ9S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6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7/-표지-e1595033213861.jpg" alt="" width="174" height="260" /></a></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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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 책 소개: 믿음의 정상에 오를 때 (Climb the Highest Mountai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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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Mon, 15 Jun 2020 19:23:02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공동체]]></category>
		<category><![CDATA[그분]]></category>
		<category><![CDATA[믿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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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정상]]></category>
		<category><![CDATA[진에드워즈]]></category>
		<category><![CDATA[총체적복음]]></category>
		<category><![CDATA[추천]]></category>
		<category><![CDATA[표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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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60; ***진 에드워즈(Gene Edwards)의 책이 한국에서 새로 출간되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에드워즈가 오래 전에 쓴 책인데 박인천 형제님의 수고에 의해 이제 우리말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탁으로 제가 추천사를 써서 보냈는데 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마 차질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고로 아래에  그것을 싣습니다. &#16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추천의 글 &#160;     때로는 한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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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nbsp;</p>
<h4 style="text-align: left;"><em>***<a href="http://www.yejja.org/?page_id=842"><strong>진 에드워즈(Gene Edwards)</strong></a>의 책이 한국에서 새로 출간되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에드워즈가 오래 전에 쓴 책인데 박인천 형제님의 수고에 의해 이제 우리말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탁으로 제가 추천사를 써서 보냈는데 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마 차질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고로 아래에  그것을 싣습니다.</em></h4>
<p>&nbsp;</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gpf.kr/7N9S9"><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46"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정상에-오를-때-표지-e1592247414394.jpg" alt="" width="600" height="762" /></a></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h1 style="text-align: center;"><strong>추천의 글</strong></h1>
<p>&nbsp;</p>
<h4>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을 수 있는데, 나의 경우가 그렇다. 20년 가까이 나름 전력을 다해 목회를 했지만 결국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죄의식과 좌절 속에서 방황을 거듭할 때,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을 읽게 된 것이 나를 흑암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 <a href="http://gpf.kr/7N9S9"><strong><em>Climb the Highest Mountain (</em><em>믿음의 </em><em>정상에 </em><em>오를 </em><em>때)</em> </strong></a>의 저자인 <a href="http://www.yejja.org/?page_id=842">진 에드워즈</a>의 베스트셀러 <a href="http://gpf.kr/9w9UP"><em>A Tale of Three Kings</em> (<em>세 </em><em>왕 </em><em>이야기)</em></a>가 그 책이었다.</h4>
<h4>    그 때까지 나는 <a href="http://gpf.kr/9w9UP"><em>세 </em><em>왕 </em><em>이야기 </em></a>라는 책을 본 적도, 저자인 진 에드워즈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해서 책 속에 빠져들어가 단숨에 끝냈을 때 이토록 성경을 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에드워즈라는 사람이 누군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그가 집필한 책이 무려 20여 권이나 되고, 그 중 두 개는 꽤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나는 곧 그의 책 전부를 주문해서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책 읽기에 몰입하였다.</h4>
<h4>    그의 다른 책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이전에 깨달아 외쳤던 복음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았음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아울러, 나의 깊은 속에서부터 회개와 감격이 끊임없이 솟구쳐올랐고,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와 그리스도의 총체적인 복음이 가져다주는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그 복음을 토대로 아무런 제도 없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교회 속에서 지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 그때 나를 소생케 한 계기를 만들어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들어온 <strong><a href="http://gpf.kr/7N9S9"><em>Climb the Highest Mountain (</em><em>믿음의 </em><em>정상에 </em><em>오를 </em><em>때)</em> </a></strong>이다.</h4>
<h4>    이 책은 진 에드워즈가 1970년 대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대학 UC 산타바바라 근교의 아일라비스타(Isla Vista)에서 10년 가까이 교회생활을 함께 했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들을 위해 헌정한 책이다.  그리고 그가 순회사역자로서 섬겼던 그 교회가 결국 10년 만에 공중분해되어 청년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야기를 통해, 신약성경이 말하는 사역자와 교회 지체들의 표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책이다.</h4>
<h4>    그 표준을 한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 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자가 신앙과는 한참 다른 차원의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이 지고 갔던 십자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차원의 삶은 ‘어떤 것(it)’이 아닌 오직 ‘그분(Him)’을 추구할 때만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 표준을 개인으로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로서 살고 싶은 열정이 솟구쳐 올라올 것이다.</h4>
<h4>    이 소중한 책이 진 에드워즈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인천 형제의 수고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게 된 것이 반갑기 그지 없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마다 이 세상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예수님의 표준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오르라고 하시는 산의 정상을 향해 하나씩 발걸음을 옮기게 되기를…</h4>
<h4></h4>
<h4>                                                                          미국의 수도 와싱톤 근교에서</h4>
<h4>                                                                                                        이남하</h4>
<p>&nbsp;</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Climb_the_Highest_Mountain__81774.1311193800.1280.1280.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47"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Climb_the_Highest_Mountain__81774.1311193800.1280.1280.jpg" alt="" width="300" height="480"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Climb_the_Highest_Mountain__81774.1311193800.1280.1280.jpg 300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Climb_the_Highest_Mountain__81774.1311193800.1280.1280-188x300.jpg 188w" sizes="auto, (max-width: 300px) 100vw, 300px" /></a></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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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온라인에서 바보가 되는 예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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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 남하]]></dc:creator>
		<pubDate>Thu, 04 Jun 2020 18:37:37 +0000</pubDate>
				<category><![CDATA[새로 나온 책]]></category>
		<category><![CDATA[퍼온 글]]></category>
		<category><![CDATA[ReGrace]]></category>
		<category><![CDATA[공격]]></category>
		<category><![CDATA[논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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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풍자]]></category>
		<category><![CDATA[프랭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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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60; ***아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새 책 [다시 은혜로(ReGrace)] 19장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 인터넷 상에서 서로 인신 공격하고 비난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지금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음을 프랭크 바이올라가 개탄하며 경종을 울리려 한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0; &#160;    &#160; &#160; 온라인에서 바보가 되는 예술 &#160; &#160; 당신과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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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nbsp;</p>
<h4><em>***아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새 책 <a href="http://gpf.kr/Y49fY">[다시 은혜로(ReGrace)] </a>19장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 인터넷 상에서 서로 인신 공격하고 비난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지금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음을 프랭크 바이올라가 개탄하며 경종을 울리려 한 것입니다.</em></h4>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nbsp;</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gpf.kr/Y49fY"><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34"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다시-은혜로-표지.jpg" alt="" width="193" height="261" />  </a><a href="http://gpf.kr/Y49fY"><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35"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KakaoTalk_20200604_143243907-e1591295630859.jpg" alt="" width="196" height="261" /></a></p>
<p>&nbsp;</p>
<p>&nbsp;</p>
<h1 style="text-align: center;"><strong>온라인에서 바보가 되는 예술</strong></h1>
<p>&nbsp;</p>
<p>&nbsp;</p>
<h4 style="text-align: center;">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다른 점은 하나님은 당신이라고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h4>
<h4 style="text-align: center;">                                                                    &#8211; 앤 라모트</h4>
<p>&nbsp;</p>
<h4>    만일 당신이 모제익스와 버스터즈(Mosaics and Busters)의 나이보다 더 많다면, 당신이 앉아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할 것이다 (역자 주: Mosaics는 1984년부터 200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 Busters는 1965년부터 188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각각 가리킨다). 사실, 당신은 의자를 꽉 붙잡고 싶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어휘를 구사할 것이다. 핵심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래서 당신이 계속 읽기 전에 긴장을 풀기 바란다.</h4>
<p>&nbsp;</p>
<h4><span style="color: #008000;">바보(a jerk): 속어. 무시당할 만큼 순진하거나, 멍청하거나, 어리석거나, 하찮은 사람.</span></h4>
<p>&nbsp;</p>
<h4>    그것은 욕하는 말이 아니다.</h4>
<h4>    최신 연구에 의하면 (당신도 알다시피, 쥐를 암에 걸리게 한 원인으로 알려진 것과 동일한 연구), 만일 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온라인에서 연이어 사흘 이상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 그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마귀 자식” 또는 그 비슷한 말로 부르게 될 확률이 97.3 퍼센트이다.</h4>
<h4>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온라인에서 바보가 되는 예술을 마무리하는 확실한 방법 열 가지를 여기에 소개한다.</h4>
<p>&nbsp;</p>
<ol>
<li>
<h3><strong> 의견 차이의 핵심을 놓고 언쟁하는 것에서 당신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옮겨가라.</strong></h3>
</li>
</ol>
<h4>    이것은 인신 공격 논쟁(an ad hominem argument)이라 불린다. 당신이 타인의 메시지(message)를 동의하지 않을 때, 메신저(messenger)를 공격하라. 사람들은 자신이 논쟁에서 이길 수 없을 때 종종 이렇게 한다.</h4>
<h4>    예: “나는 방금 전에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 당신의 견해를 읽었는데, 당신은 일급 이단자요, 확실하게 엉큼한 속셈을 가진 종자이다. 사실, 나의 분별력은 당신이 사탄의 자식이라고 말해준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기를!”</h4>
<p>&nbsp;</p>
<ol start="2">
<li>
<h3><strong>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하는 대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지를 추측하라.</strong></h3>
</li>
</ol>
<h4>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지에 관한 당신의 추측을 말하라. 마치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적인 사실인 것처럼. (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믿는지를 추측한다. 그들에게 실제로 가서 묻지도 않고.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할 때 언제나 깜짝 놀란다.)</h4>
<p>&nbsp;</p>
<ol start="3">
<li>
<h3><strong> 그리스도 안의 동료 형제들과 자매들의 면전에서 말할 배짱을 가진 적이 없을 때, 그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들에 관해서 쓰도록 하라.</strong></h3>
</li>
</ol>
<h4>    달리 말해서, 배짱 없는 쪼다와 줏대 없는 겁쟁이 역할을 해보라.</h4>
<p>&nbsp;</p>
<ol start="4">
<li>
<h3><strong> 블로그에 쓴 글이나 논평을 주의 깊게 읽지 말라.</strong></h3>
</li>
</ol>
<h4>    그 대신,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 다음, 옆길로 새서 글을 쓴 사람이나 논평을 한 사람을 비난하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방금 전에 읽은 것에 관해 확인하는 질문을 절대로 하지 말라 (예를 들면, “아마 내가 당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말한 것이 xyz 입니까?”… 또는 “만일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abc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들이 쓴 글이나 논평을 “원하는 대로 해석”한 후에 단지 그들을 비판하라. 정중한 태도로 질문하지 말고, 오직 말만하고 비난만 하라.</h4>
<p>&nbsp;</p>
<ol start="5">
<li>
<h3><strong> 당신이 화나거나 상처를 받았을 때 온라인에 뭔가 글을 쓰도록 하라.</strong></h3>
</li>
</ol>
<h4>    그것을 주님께로 가져갈 시간을 주지 말라. 당신이 성령 안에 있지 않으므로 기다리라고 말하는 천사에게 돌을 던지라. 그 대신, 당신의 감정이 당신의 반응를 가지고 놀게 하라.</h4>
<p>&nbsp;</p>
<ol start="6">
<li>
<h3><strong>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당신이 그들의 말과 행동 뒤에 있는 동기를 안다고 추측하라.</strong></h3>
</li>
</ol>
<h4>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차지하시는 자리에 당신을 올려놓고, 그들의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라. (어떤 사람이 “당신은 …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는 “당신이 abc를 말하거나 하려고 했을 때 당신은 xyz를 하려고 했습니다” 라고 말할 때는 언제든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고 있다.)</h4>
<p>&nbsp;</p>
<ol start="7">
<li>
<h3><strong> 하나님 자녀의 평판을 더럽히는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 논평을 남겨서 “차 타고 지나가다가 총 쏘기” 식의 암살을 감행하라.</strong></h3>
</li>
</ol>
<h4>    당신이 격렬한 논평을 남길 때 당신의 실제 이름과 진짜 이메일 주소를 올리지 말라. 그리고 블로그 담당자가 그 논평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엉성해서 즉시 그것을 지우지 않기를 바라라. (이것이 악랄하고 미성숙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이런 류의 짓들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블로그에 남아있는 모든 논평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IP 주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h4>
<p>&nbsp;</p>
<ol start="8">
<li>
<h3><strong> 만일 누가 당신에게 대답을 준다면, 그들의 대답을 무시하고 다시 당신의 요지를 거듭 말하라.</strong></h3>
</li>
</ol>
<h4>    “그 사실들로 나를 혼란시키지 말라” 라는 태도를 취하라. 그리고 그들이 한 말을 묵살하라. 그들이 결국 당신과 동의하기를 바라면서 그냥 똑같은 주장을 주구장창 반복하라.</h4>
<p>&nbsp;</p>
<ol start="9">
<li>
<h3><strong> 사전 숙고와 꼼꼼함으로 다른 사람이 한 말 또는 쓴 글을 완전히 왜곡시킨 다음, 피해자 행세를 하라.</strong></h3>
</li>
</ol>
<h4>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무도 공격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라. 그들이 그런 믿음과 사상을 고수하지 않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몰아가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당신이 말하는 것의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찾는 대신 당신이 쓴 글이면 무엇이든지 믿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놀아라. 이것이 육신적인 행동의 극치이지만 온라인 바보가 되는 예술을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딱 맞아떨어진다.</h4>
<p>&nbsp;</p>
<ol start="10">
<li>
<h3><strong> 당신의 주님이 당신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잊으라.</strong></h3>
</li>
</ol>
<h4>    당신이 절대로 대우받기를 원치않는 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특히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대우함으로, 당신의 영적 직관을 향해 저항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라. 온라인에, 당신이 절대로 원하지 않는 방법, 즉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글을 남기는 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그들에 관해서 글을 올려라. 달리 말하자면, 당신이 마 7:12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주저함없이 그 말씀을 불순종하라.</h4>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unnamed.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39" src="http://www.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unnamed.jpg" alt="" width="331" height="512" srcset="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unnamed.jpg 331w, http://yejja.org/wp-content/uploads/2020/06/unnamed-194x300.jpg 194w" sizes="auto, (max-width: 331px) 100vw, 331px" /></a></p>
<p>&nbsp;</p>
<p>&nbsp;</p><p>The post <a href="http://yejja.org/?p=5333">온라인에서 바보가 되는 예술</a> first appeared on <a href="http://yejja.org">예수님짜리</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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